로그인그 뒤 며칠 동안 나는 2층 방에서 지냈다. 방문은 바깥에서 잠겼고, 식사 때와 지후가 들어올 때만 열렸다. 휴대전화는 돌려받지 못했다. 엄마의 상태는 지후가 말로 전해 주는 내용밖에 알 수 없었다.“담당 의료진이 안정적이라고 했어.”“누구한테 들었는데?”“확인할 방법이 있어.” 그 이상은 알려 주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을 그대로 믿지 않기로 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속이 뒤집혔다. 입을 막고 세면대로 달려갔다. 먹은 것도 별로 없는데 헛구역질이 계속됐다. 며칠 전부터 냄새가 유난히 거슬렸고, 몸이 무겁고, 열이 있는 것처럼 나른했다.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으니 당연하다고. 그런데 세면대 가장자리를 붙잡고 숨을 고르는 순간, 머릿속에서 날짜 하나가 떠올랐다. 생리가 늦었다. 병원과 태윤의 집, 회사 일을 오가느라 정확히 세지 못했지만 평소보다 분명 늦었다.“설마…….” 손바닥이 식었다. 그때 문이 열렸다. 지후가 아침 식사가 놓인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따뜻한 수프 냄새가 퍼지는 순간 속이 다시 울렁거렸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입을 막았다.“냄새…… 치워 줘요.” 지후가 멈췄다.“또 토했어?”“그냥 속이 안 좋아요.” 그는 나를 한참 바라봤다. 걱정보다 관찰에 가까운 시선이었다.“언제부터 이랬지?”“며칠 됐어요.”&ldqu
“오지 마.” 내가 먼저 말했다. 지후는 한 걸음 멈췄다.“왜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해?”“이 사진들, 네가 찍은 거야?”“전부는 아니야. 부탁한 것도 있고, 받은 것도 있어.”“그럼 이 물건들은?”“네가 버린 거잖아.” 그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주인이 없는 물건이 됐으니까 내가 가져온 거고.” 말의 논리가 너무 차분해서 오히려 숨이 막혔다.“내 머리카락도?” 지후는 잠깐 웃었다.“그건 조금 구하기 어려웠지.” 나는 속이 뒤집히는 걸 참으며 한 걸음 더 물러났다.“한지후 씨.” 처음으로 그렇게 불렀다. 지후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왜 그렇게 불러?”“지금 내가 아는 지후야가 아니니까.”“서린아.”“내 이름 그렇게 부르지 마.” 목소리가 떨렸지만 멈추지 않았다.“이건 사랑이 아니야. 감시고, 수집이야. 내가 힘들 때 도와주지 않고 계속 보고만 있었잖아.”“도와줄 때를 기다린 거야.”“내가 네 도움이 없으면 안 되는 때를?” 그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답처럼 느껴졌다. 나는 문 쪽으로 움직였다. 지후가 길을 막았다. 손을 대지는 않았다. 그저 몸 하나로 출구를 가렸다.“지금 나가면 강태윤에게 돌아갈 거야?&
지하 끝에는 두꺼운 문이 있었다. 잠겨 있지 않았다. 문을 여는 순간, 센서 조명이 천천히 켜졌다.“……뭐야, 이게.” 벽 전체가 사진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전시 공간인 줄 알았다. 한 걸음 들어간 뒤에야 사진 속 사람이 전부 나라는 걸 알아봤다. 대학 건물 앞을 걷는 나. 카페에서 친구와 웃는 나. 성북동 집 정원에서 책을 읽는 나. 집안이 무너진 뒤 좁은 원룸 앞에서 택배 상자를 들고 있는 나. 가사관리사 유니폼을 입고 버스를 기다리는 나. 할인 스티커가 붙은 도시락을 고르는 나.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까지 있었다. 각도도 이상했다. 멀리서 망원렌즈로 찍은 사진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바로 옆 테이블에서 찍은 듯한 사진, 지하철 승강장 반대편에서 찍은 사진, 아파트 복도 끝에서 찍힌 뒷모습도 있었다. 누가 봐도 우연히 남은 기록이 아니었다. 7년. 내가 태윤과 헤어진 뒤부터 지금까지, 누군가가 내 생활을 계속 모아 왔다. 나는 벽 가까이 다가갔다. 사진 아래 작은 날짜표가 붙어 있었다. 날짜가 끊기지 않았다. 집안이 몰락한 시기에도. 엄마가 병원에 오래 머물기 시작한 시기에도. 내가 하루에 두세 곳씩 청소 일을 뛰던 때에도.“보고 있었으면서…….” 목이 잠겼다. 지후는 내가 힘들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손을 내민 적은 거의 없었다. 필요한 순간에 나타난 사람처럼 행동했지만, 실제로는 필요해지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아닐까. 시선이 방 중앙으로 옮겨갔다. 유리 진열장이 줄지어 서 있었다. 안에 놓인 물건을 확
지후는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었다.“역시 이게 서린이답네.”“나답다는 게 뭔데?”“예전의 너.”“그건 예전의 나야.” 내가 잘라 말하자 그가 잠깐 눈을 깜빡였다.“지후야. 내 휴대전화 돌려줘. 엄마 상태도 내가 직접 확인할 거야.”“내일 하자고 했잖아.”“왜 꼭 내일이어야 해?”“지금은 강태윤 쪽이 움직이고 있을 테니까.”“그럼 병원에 연락할 방법만 만들어 줘. 네 전화로 걸고, 스피커폰으로 해도 돼.” 지후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나는 그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안 되는 이유가 뭐야?”“서린아.” 그가 가까이 다가왔다.“지금 네가 해야 할 건 쉬는 거야. 먹고, 자고, 생각을 정리해.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내가 알아볼게.”“내 일인데?”“그래서 내가 대신 보고 있는 거야.”“대신 보지 마.” 말이 튀어나왔다.“내가 볼게.” 거실이 조용해졌다. 지후가 고개를 약간 기울였다.“강태윤한테도 그렇게 말했어?”“응.”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그래서 싸웠고, 그래서 나왔어.” 그의 입꼬리가 굳었다.“그런데 네가 똑같이 하면, 내가 여기 온 이유가 없어.” 잠시 뒤 지후는 웃었다.“피곤해서
실내는 지나치게 깨끗했다. 흰 벽, 회색 바닥, 형태가 단정한 가구들. 생활하는 사람이 있다기보다 언제든 촬영할 수 있게 꾸민 쇼룸 같았다. 나는 현관 쪽으로 돌아가 문손잡이를 눌러 봤다. 열리지 않았다.“왜 잠겼어?”“보안 때문이야.” 지후가 외투를 벗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밖에서도 쉽게 들어올 수 없고, 안에서도 인증 없이 열리지 않아.”“내가 나가고 싶으면?”“지금 나갈 이유가 있어?” 질문으로 돌아온 답에 가슴이 식었다.“산책을 하고 싶을 수도 있잖아.”“경호가 정리되면 같이 나가자. 혼자 움직이는 건 위험해.” 나는 더 묻지 않았다. 지금까지 태윤에게서 도망치려 했던 이유가, 바로 이런 말들이었으니까. 그런데 지후는 자기가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옷 갈아입자.” 그가 테이블 위에 놓인 상자를 가리켰다.“병원에서 나온 옷 그대로잖아.”“씻고 내 옷 입으면 돼.”“여기엔 네 옷이 없어. 준비해 뒀어.” 상자 안에는 아이보리색 원피스와 얇은 카디건, 새 속옷까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문제는 디자인이었다. 7년 전, 집이 무너지기 전 내가 즐겨 입던 스타일과 너무 닮아 있었다.“이걸 왜 골랐어?”“네가 이런 옷 좋아했잖아.”“스물두 살 때.” 나는 원피스를 다시 상자에 내려놓았다.“지금 나는 스물아홉이야.&rdquo
지후의 손은 허공에 잠깐 머물렀다. 표정에서 온기가 사라진 듯 보였다. 하지만 눈을 한 번 깜빡이는 사이 다시 부드러운 미소로 돌아왔다.“……그래. 아직 많이 놀랐겠지. 좀 쉬어.” 그는 손을 거두고 앞을 봤다. 나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왜 이렇게 불편할까. 지후는 오래 알고 지낸 사람이고, 오늘 나를 집 밖으로 나오게 도와준 사람이다. 그런데 손이 다가오는 순간 몸이 먼저 거부했다. 태윤의 손이라고 언제나 편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두렵고 싫었던 때도 많았다. 다만 최근의 태윤은 내가 멈추라고 하면 멈췄고, 기다려 달라고 하면 기다리려고 했다. 그 차이가 지금 와서 선명하게 느껴졌다.‘태윤아…….’ 이름을 생각하자 가슴이 아팠다. 지금쯤 내가 병원에서 사라진 걸 알았을 것이다. 화가 났을까. 상처받았을까. 아니면 또 모든 방법을 동원해 나를 찾으려 할까. 그 생각은 무서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정말 나를 찾고 있을 거라는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을 붙잡았다. 나는 그 모순이 싫었다.◇ 차는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산길로 접어들었다. 가로등이 줄고, 마주 오는 차량도 드물어졌다.“……지후야, 아직 멀었어?” 불안해져 시간을 보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손끝이 빈 천만 훑었다.“어?”“왜?”“내 휴대전화가 없어.” 가방 안도 확인했다. 없었다. 병원에서 나올 때는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