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열두 번째 명령이 끝나면: Chapter 181 - Chapter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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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화. 다시 울린 전화

휴대전화를 켠 순간 부재중 전화가 마흔두 통 쌓여 있었다.프라하 공장의 냉각 설비가 멈췄다는 보고였다.생산품 일부가 손상될 가능성이 있었다.도현과 나는 동시에 업무 모드로 돌아갔다.“기술팀 연결하겠습니다.”그가 말했고, 나는 현지 책임자에게 생산 중단을 지시했다.한 시간 만에 긴급 대응 체계가 가동됐다.하지만 이상한 점이 있었다.설비 고장은 단순했는데 경보가 여섯 시간 동안 전달되지 않았다.당직자가 경보를 확인하고도 상부 보고를 미뤘다.이유는 이전 회수 사태 뒤 책임을 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징계해야 합니다.”한예린이 말했다.“고의로 숨긴 보고입니다.”“해고까지는 과해요.”나는 당직자를 직접 면담했다.그는 손을 떨며 말했다.“또 생산을 멈추면 제가 책임질까 봐…”회사의 투명성 정책이 오히려 직원에게 공포로 전달된 것이다.“보고했다고 처벌받은 적 있습니까?”“없습니다.”“그런데 왜 두려웠어요?”“문제가 생기면 대표님이 직접 책임진다고 하니까, 현장에서는 더 큰 잘못처럼 느껴집니다.”뜻밖의 말이었다.내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나서는 태도가 직원들에게는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로 보였던 것이다.도현은 면담 뒤 말했다.“당신이 책임을 독점하면 아래 사람들은 더 숨습니다.”“제가 무서운 대표였나 봐요.”“무서운 사람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을 겁니다.”“그게 왜 문제예요?”“다른 사람도 무너지면 안 된다고 생각하게 만드니까.”징계는 감봉 대신 재교육과 보고체계 개선으로 결정했다.전 직원 회의에서 나는 말했다.“문제를 만든 것보다 숨기는 것이 더 위험합니다. 보고한 사람에게 실패 책임을 전부 묻지 않겠습니다.”회의가 끝난 뒤 도현이 물었다.“본인에게도 같은 규칙을 적용합니까?”“무슨 뜻이에요?”“당신도 문제가 생기면 숨기지 않고 보고할 겁니까?”“누구한테요?”그가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저에게.”나는 웃었다.“의장님께 보고하라는 거예요?”“남편에게 부탁하는 겁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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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화. 대표의 휴가

이사회는 내게 강제 휴가를 권고했다.최근 석 달간 정식 휴가가 하루뿐이었다는 이유였다.“일주일 쉬십시오.”윤세라 대표가 말했다.“불가능해요.”“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대표의 업무예요.”파리와 프라하, 바르샤바의 책임을 각각 한예린과 현지 부대표에게 위임하는 계획이 이미 준비돼 있었다.도현은 놀랍게도 찬성했다.“쉬어야 합니다.”“도현 씨도 똑같이 일하잖아요.”“저는 지난달 이틀 쉬었습니다.”“그게 자랑이에요?”결국 우리는 함께 일주일 휴가를 내기로 했다.문제는 어디로 갈지였다.도현은 아무도 없는 산장을 원했고, 나는 도시 안에서 평범하게 쉬고 싶었다.“사람이 많으면 연락받을 가능성이 큽니다.”“산장 가면 도현 씨가 하루 종일 저만 볼 거잖아요.”“그것이 문제입니까?”“조금 부담스러워요.”그의 표정이 굳었다.“알겠습니다.”“또 상처받았어요?”“조금.”나는 한숨을 쉬었다.“저만 보고 있는 게 싫다는 뜻 아니에요.”“그럼?”“쉬는 동안에도 각자 시간이 필요해요.”도현은 잠시 생각했다.우리는 파리 외곽의 작은 집을 빌렸다.오전은 각자 보내고, 오후부터 함께하기로 했다.첫날 아침 도현은 서재에 들어갔고 나는 정원을 걸었다.두 시간이 지나자 그가 밖으로 나왔다.“벌써 끝났어요?”“당신이 보이지 않아서.”“집 안에 있잖아요.”“알고 있습니다.”그는 더 가까이 오지 않았다.“함께 걸어도 됩니까?”“오전은 각자 시간인데요.”표정이 어두워졌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그가 돌아서는 모습이 신경 쓰였다.나는 몇 걸음 뒤에서 불렀다.“십 분만 같이 걸어요.”“규칙을 바꾸는 겁니까?”“제가 원해서요.”도현이 돌아왔다.우리는 나란히 걸었지만 손을 잡지는 않았다.“왜 안 잡아요?”“각자 시간이라고 했습니다.”“걷는 동안은 잡아도 돼요.”그제야 손가락이 맞물렸다.휴가는 함께 붙어 있는 연습이 아니라, 떨어져 있어도 불안해하지 않는 연습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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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화. 아무 일도 없는 날

휴가 셋째 날까지 아무 사건도 생기지 않았다.회사 전화도 없었다.처음에는 평화로웠지만 점점 도현이 불안해졌다.“정말 아무 연락도 없습니까?”“없어요.”“문제가 있는데 숨기는 것 아닐까요?”“사람들이 알아서 하는 거죠.”“확인만 해 보겠습니다.”그가 휴대전화를 집자 내가 빼앗았다.“휴가예요.”“비상 상황인지 확인만—”“비상 상황이면 연락 오겠죠.”도현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대신 나를 빤히 바라봤다.“휴대전화 돌려주십시오.”“싫어요.”“그것은 제 물건입니다.”“회사에 전화하려고 하잖아요.”“당신이 제 선택을 통제하고 있습니다.”말이 맞았다.나는 바로 휴대전화를 돌려줬다.“미안해요.”도현은 전화를 걸지 않았다.“왜 안 해요?”“당신이 틀린 방식으로 막았어도, 제가 회사에 전화하려던 이유가 불안이었으니까.”“그럼?”“그 감정을 견뎌 보겠습니다.”그날 오후 우리는 아무 일정 없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도현은 책을 읽었고 나는 그의 무릎에 다리를 올렸다.한 시간이 지나도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지루해요?”내가 물었다.“아닙니다.”“뭘 읽는지도 모르잖아요.”“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좋습니다.”“저 안 보고 있는데도요?”그는 책을 덮었다.“봐야 합니까?”“아니요.”도현이 다시 책을 펼쳤다.나는 웃으며 눈을 감았다.아무 일도 없는 날은 생각보다 어려웠다.위기도, 계약도, 질투할 사람도 없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저녁에 도현이 물었다.“오늘도 주도권을 원합니까?”“아니요.”“그럼 무엇을 원합니까?”“아무것도 안 하는 거.”“그것도 함께?”“네.”우리는 일찍 불을 껐다.명령도 질문도 없이 손만 잡고 누웠다.평범한 밤이 가장 낯설고, 그래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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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화. 휴가의 끝

휴가 마지막 날 아침, 한예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급한 일은 아니지만 복귀 후 확인 부탁드립니다.]도현이 화면을 보고 물었다.“무슨 내용입니까?”“파리 센터 계약이요.”“열어 볼 겁니까?”나는 잠시 고민하다 휴대전화를 뒤집었다.“내일 볼래요.”도현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잘했습니다.”“칭찬받으니까 기분 이상해요.”“명령에 따른 것이 아니니까 더 그렇습니까?”“조금.”휴가를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도현은 다음 휴가 날짜를 잡자고 했다.“이번에는 한 달 안에 하루.”“또 아무것도 안 하는 날?”“네.”“도현 씨가 버틸 수 있어요?”“연습해야 합니다.”집에 도착하자마자 회사 메일이 쏟아졌다.파리 운영센터가 예상보다 빠르게 흑자로 전환됐고, 바르샤바 공장도 첫 시험 생산에 성공했다.좋은 소식뿐이었다.하지만 프라하 이사회에서는 새로운 안건이 올라왔다.유럽 네 도시를 통합하는 지역 총괄직 신설.후보는 나였다.임기는 오 년.받아들이면 프라하 법인장직과 파리 공동 대표직을 내려놓고, 유럽 전 사업의 최종 책임자가 된다.도현은 문서를 읽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번에는 바로 반대 안 해요?”“하고 싶습니다.”“왜요?”“당신의 책임이 더 커지니까.”“사업적으로는요?”“필요한 자리입니다.”“저는요?”도현이 나를 바라봤다.“원하는 얼굴입니다.”이번에도 그는 내 표정을 먼저 읽었다.“하고 싶어요.”“알겠습니다.”“그 말뿐이에요?”“반대 의견을 말해도 됩니까?”“네.”“오 년은 깁니다. 네 도시 전체의 문제를 당신이 또 혼자 가져갈 가능성이 큽니다.”“그래서 부대표 체제를 만들 거예요.”“서울로 돌아오는 일정은?”“협상해야죠.”그의 턱이 굳었다.“그 부분은 양보하지 마십시오.”“남편으로 하는 말이에요?”“네.”“의장으로서는요?”“지역 총괄이 어느 한 도시에 묶이지 않는 편이 합리적입니다.”이번에는 감정과 논리가 같은 방향이었다.나는 지원서를 열었다.도현은 대신 작성하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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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화. 유럽 총괄 후보

지역 총괄 후보는 나 혼자가 아니었다.독일 법인 책임자 루카 마이어.한예린.그리고 외부 영입 후보인 마르틴 슈나이더.마르틴은 유럽 대기업에서 십오 년간 근무한 전문경영인이었다.첫 공개 토론에서 그는 내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한서윤 대표의 성과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위기 대응이 지나치게 개인에게 집중돼 있습니다.”“그래서 권한 위임 체계를 만들고 있습니다.”“최근 냉각 설비 사고에서도 대표에게 직접 보고가 올라갔습니다.”“보고체계가 잘못 설계됐기 때문입니다.”“오 년간 네 도시를 운영하기에는 경험이 짧지 않습니까?”회의장 분위기가 팽팽해졌다.도현은 심사위원이 아니어서 뒷줄에 앉아 있었다.마르틴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차도현 의장의 배우자라는 사실이 본사 지원을 얻는 데 유리하지 않았습니까?”나는 준비한 투자 계약과 독립 심사 기록을 공개했다.“배우자라는 이유로 얻은 지원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지적하십시오.”마르틴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토론 후 그가 개인적으로 다가왔다.“공격적으로 들렸다면 사과합니다.”“검증 질문이었다고 생각하겠습니다.”“저는 한 대표를 낮게 평가하지 않습니다.”그의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오히려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멀리서 도현의 표정이 굳는 것이 보였다.나는 바로 선을 그었다.“선임 결과가 나온 뒤 업무상 논의하시죠.”도현은 행사장을 나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에 타자마자 내가 물었다.“질투해요?”“네.”“마르틴 씨는 그냥 영입 제안한 거예요.”“당신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었습니다.”“또 눈으로 시간 재고 있었어요?”“그렇습니다.”“그래도 안 끼어들었네요.”도현은 창밖을 보며 말했다.“당신이 총괄이 되려는 자리에서 남편이 개입하면 안 되니까.”“집에서는 말해도 돼요.”그의 시선이 돌아왔다.“그 사람이 싫습니다.”“첫날부터요?”“당신 능력을 공격한 뒤 함께 일하고 싶다고 말하는 방식도 싫습니다.”“그건 저도 조금 싫었어요.”도현의 표정이 풀렸다.“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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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화. 네 명의 후보

최종 심사는 실제 위기 대응 방식으로 진행됐다.각 후보에게 같은 가상 상황이 주어졌다.바르샤바 공장 화재.프라하 물류 중단.파리 투자 철회.세 사건이 동시에 발생했을 때 무엇을 먼저 결정할 것인가.루카는 생산 복구를 우선했다.한예린은 현금 흐름을 지키려 했다.마르틴은 본사 지휘 체계를 즉시 가동하겠다고 했다.나는 모든 책임자를 한 화면에 연결하는 대신 각 도시의 부대표에게 일차 권한을 넘겼다.“총괄이 직접 결정하지 않습니까?”심사위원이 물었다.“현장 정보는 현지 책임자가 가장 정확합니다.”“결정이 엇갈리면요?”“총괄은 충돌을 조정해야지 모든 판단을 빼앗아서는 안 됩니다.”예전의 나라면 모든 상황을 직접 통제하려 했을 것이다.도현은 심사장 밖에서 결과를 기다렸다.“어떻게 했습니까?”“권한 나눴어요.”“잘했습니다.”“내용도 모르면서요?”“당신이 혼자 책임지지 않았다면 잘한 겁니다.”결과 발표 전날, 루카가 후보에서 사퇴했다.“뮌헨 공장을 떠날 생각이 없습니다.”한예린도 스스로 재무 부대표직을 선택했다.결국 나와 마르틴의 경쟁이 됐다.마르틴은 다시 제안했다.“누가 총괄이 되든 상대를 부대표로 두는 건 어떻습니까?”“선임위원회에서 결정할 일입니다.”“개인적으로는 한 대표와 경쟁보다 협력을 하고 싶습니다.”그 순간 도현이 근처에 있다는 걸 알았지만 보지 않았다.“결과 후에 논의하죠.”호텔로 돌아오자 도현이 넥타이를 풀며 말했다.“마르틴을 부대표로 둘 겁니까?”“필요하면요.”“매일 함께 일하게 됩니다.”“그렇죠.”그의 손이 멈췄다.“싫습니다.”“업무 능력은 좋잖아요.”“그래서 더 싫습니다.”솔직한 답에 웃음이 났다.“도현 씨 친구 재하 때도 그러더니.”“제가 경계하지 못할 만큼 유능한 사람이 당신 옆에 있는 것이 불편합니다.”“저는 능력 있는 사람하고만 일할 건데 어떡해요?”그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계속 불편해해야겠군요.”“그래도 막진 않을 거죠?”“네.”“잘했어요.”도현의 눈빛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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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화. 세 번의 질문

도현은 거실 거울 앞에 의자를 놓았다.도구는 없었다.“오늘은 묶지 않아요?”“질문만 하기로 했습니다.”나는 의자에 앉았다.그는 내 뒤에 서서 거울 속으로 눈을 맞췄다.“첫 번째.”“네.”“마르틴에게 개인적인 호감이 있습니까?”“없어요.”“두 번째.”도현의 손이 의자 등받이에 놓였다.“그 사람과 매일 일하게 되어도 괜찮습니까?”“업무상으로는요.”그의 턱이 굳었다.“개인적으로는?”“조금 불편해요. 자꾸 평가하듯 보니까.”도현의 눈빛이 풀렸다.“세 번째.”그는 오래 침묵했다.“지역 총괄이 되면 저 없이도 괜찮습니까?”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그게 마르틴이랑 무슨 상관이에요?”“없습니다.”“질투 질문이라며요.”“가장 질투하는 대상은 그 사람이 아니라 당신의 새 자리인 것 같습니다.”숨이 막혔다.도현은 다른 남자보다도 나를 더 멀리 데려갈 직책을 질투하고 있었다.“도현 씨 없이 일할 수는 있어요.”그의 표정이 굳었다.“하지만 힘든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말할 거예요.”“그것으로 충분합니까?”“도현 씨는 뭐가 필요한데요?”“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나는 몸을 돌려 그를 바라봤다.“업무를 대신해 줄 사람으로는 필요 없어요.”눈빛이 흔들렸다.“그런데 집에 돌아왔을 때 차도현이 없으면 싫어요.”도현의 손이 턱 가까이 왔다가 멈췄다.“만져도 됩니까?”“네.”손끝이 뺨을 감쌌다.“질문은 끝났습니다.”“그럼 이제요?”“당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십시오.”“오늘은 커프 써도 돼요.”“왜?”“세 번만 묻고 참았으니까.”도현의 시선이 짙어졌다.“보상입니까?”“아니요.”나는 그의 손목을 잡아 보관함 쪽으로 이끌었다.“제가 원해서요.”그는 마지막까지 다시 확인했다.“색깔.”“초록색.”질투로 시작한 밤이었지만, 끝은 의심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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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화. 선임 결과

지역 총괄 최종 선임 결과는 비공개 이사회에서 발표됐다.[유럽 지역 총괄: 한서윤.]임기는 오 년.일 년마다 외부 평가.서울 순환 근무 보장.나는 화면을 한동안 바라봤다.기뻐해야 하는데 먼저 두려움이 밀려왔다.네 도시의 매출과 고용, 사고와 확장까지 모두 내 이름 아래 놓인다.한예린이 가장 먼저 손을 내밀었다.“축하합니다, 총괄님.”루카도 영상으로 인사했다.마르틴은 결과를 받아들이며 말했다.“부대표 제안은 유효합니까?”“심사위원회와 검토하겠습니다.”회의장을 나오자 도현이 기다리고 있었다.“축하합니다.”공식적인 말투였다.“그게 끝이에요?”주변 사람이 사라진 뒤 그가 나를 품에 안았다.“자랑스럽습니다.”“조금 늦었어요.”“사람들이 보고 있었습니다.”“남편인 거 다 아는데요.”“당신의 선임이 저와 연결되는 순간을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그의 배려가 이해되면서도 서운했다.“그래도 꽃 정도는 줘도 됐잖아요.”“준비했습니다.”차 안에는 꽃 대신 작은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다.안에는 네 도시의 이름이 새겨진 펜이 들어 있었다.서울, 프라하, 바르샤바, 파리.“또 일하라는 선물이에요?”“결정할 때 사용하십시오.”펜 아래에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혼자 서명하지 않는다.]“이건 무슨 뜻이에요?”“법적으로 공동 서명이 필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도현이 내 손을 잡았다.“큰 결정을 혼자 감당하지 말라는 뜻입니다.”나는 펜을 가방에 넣었다.“첫 결정은 마르틴 부대표 선임이에요.”도현의 표정이 즉시 굳었다.“벌써입니까?”“질투 관리 잘하세요.”“노력하겠습니다.”“막으면 안 돼요.”“알고 있습니다.”“집에서 표정으로 압박하는 것도 안 되고요.”그는 잠시 침묵했다.“그 부분은 확답하기 어렵습니다.”나는 웃었다.유럽 총괄이 된 첫날에도 가장 다루기 어려운 문제는 네 도시가 아니었다.내가 어디에 있든 따라오는 차도현의 표정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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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화. 총괄의 첫 결정

마르틴은 지역 운영 부대표로 선임됐다.첫 업무는 네 도시의 권한을 재배치하는 일이었다.그는 회의에서 말했다.“총괄 직속 승인 항목을 줄여야 합니다.”“동의합니다.”내가 바로 받아들이자 임원들이 놀랐다.“한서윤 총괄이 직접 확인하던 계약이 많습니다.”“그래서 줄이는 겁니다.”현지 대표에게 인사권과 일정 금액 이하 투자권을 넘겼다.나는 최종 결정자가 아니라 방향과 충돌을 조정하는 역할로 바뀌었다.업무는 줄지 않았지만 종류가 달라졌다.그날 저녁 마르틴과 회의가 길어졌다.도현에게 한 줄을 보냈다.[회의가 늦어요. 먼저 식사해요.]답은 짧았다.[알겠습니다.]집에 돌아왔을 때 그는 정말 식사를 마친 뒤였다.“기다리지 않았네요.”“먼저 먹으라고 했으니까.”“서운하지 않았어요?”“서운했습니다.”“그런데요?”“기다리지 않는 것도 연습해야 합니다.”도현은 내 외투를 받아 걸었다.“마르틴과 단둘이 있었습니까?”질문이 나오자마자 그가 멈췄다.“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법무팀도 있었어요.”“말하고 싶어서 하는 겁니까?”“네.”그의 표정이 풀렸다.“고맙습니다.”도현은 더 묻지 않았다.그러나 침실에 들어가자 보관함 앞에 잠시 섰다.“오늘 원해요?”내가 묻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질투가 남아 있습니다.”“그럼 쉬어요.”“대신 부탁이 있습니다.”“뭔데요?”“오늘 회의에서 있었던 일 중 가장 먼저 저에게 말하고 싶은 것을 들려주십시오.”나는 권한을 현지 대표들에게 넘긴 이야기를 했다.도현은 끝까지 들었다.“두렵지 않았습니까?”“많이요.”“잘했습니다.”“도현 씨가 기다리지 않고 밥 먹은 것도 잘했어요.”그가 쓴웃음을 지었다.“이렇게 작은 일로 칭찬받을 줄은 몰랐습니다.”결혼 후 우리는 거대한 위기보다 사소한 습관을 바꾸는 데 더 오래 걸리고 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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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화. 오 년의 시작

지역 총괄 취임식은 프라하에서 열렸다.나는 네 도시의 현지 대표들과 같은 단상에 섰다.“유럽 총괄은 모든 결정을 대신하는 자리가 아닙니다.”첫 연설에서 말했다.“각 도시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책임과 정보를 연결하는 자리입니다.”도현은 객석 뒤쪽에 앉아 있었다.연설이 끝났을 때 가장 오래 박수친 사람도 그였다.취임식 뒤 기자가 물었다.“오 년 임기 동안 결혼생활과 장거리 근무를 어떻게 유지하실 계획입니까?”나는 대답했다.“회사 일정과 부부 관계를 어느 하나의 희생으로 유지하지 않겠습니다.”“차 의장님이 유럽으로 완전히 이동할 가능성도 있습니까?”이번에는 도현이 말했다.“필요한 기간에는 이동하겠지만 제 직책도 유지합니다.”“두 분 중 누가 상대에게 맞추는 겁니까?”나는 도현을 바라봤다.그도 나를 봤다.“그때 더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움직입니다.”취임식이 끝난 밤, 도현은 새 카드를 만들지 않았다.대신 빈 종이 한 장을 테이블에 놓았다.“또 규칙 써요?”“아닙니다.”그가 펜을 내게 건넸다.“오 년 뒤 원하는 모습을 적으십시오.”나는 잠시 생각했다.[네 도시가 나 없이도 운영되는 것.]도현은 그 아래 적었다.[서윤이 어디에 있든 돌아오고 싶어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미 그런데요.”내가 말하자 그가 고개를 저었다.“불안하게 붙잡지 않고도.”나는 종이를 접었다.“이건 보관해요?”“오 년 뒤 함께 열겠습니다.”“또 문서 유출되면요?”도현은 작은 금속 상자를 꺼냈다.두 사람의 반지를 동시에 대야 열리는 잠금장치였다.우리는 종이를 안에 넣었다.철컥.상자가 잠겼다.“오늘은 뭘 원합니까?”도현이 물었다.“오 년 시작하는 날이니까 조금 강하게.”“범위.”“손목 고정, 자세 통제. 안대는 싫어요.”“이유는?”“도현 씨 얼굴 보고 싶어서.”그의 눈빛이 깊어졌다.“그럼 끝까지 보십시오.”커프가 손목을 감쌌다.하지만 오 년을 묶은 것은 자물쇠가 아니었다.언제든 다시 열고, 다시 선택하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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