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Chapter 91 - Chapter 100

163 Chapters

91화: 폭풍을 두른 흑기사 (첫 출근의 끝자락) 1

​[2026년 1월 5일. 오후 1시 / 아크 부대 지하 7층 특수 격리 구역] ​"끄으응- 어이구, 시원하다." ​나는 목을 뒤로 젖히며 뻐근했던 어깨를 길게 늘였다. 뼈마디가 우두둑 맞춰지는 경쾌한 소리가 지하 벙커의 서늘한 공기를 갈랐다. 유리창 너머에서는 방금 전까지 사색이 되어있던 사령관과 연구원들이, 내가 얌전하게 반으로 갈라둔 군주의 마석을 수거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방호복을 겹겹이 껴입고 로봇 팔을 조작하는 그들의 눈빛에는, 마치 인류를 구원할 성배라도 다루는 듯한 경외감이 가득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저 반쪽짜리 마석이 앞으로 대한민국, 아니 전 세계의 에너지 판도를 어떻게 뒤집어놓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다. 저거노트의 출력 한계가 사라지는 건 물론이고, 도심 전체를 마력 배터리 하나로 굴리는 미친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하 준위! 정말 고생 많았네! 이 은혜는 국가적 차원에서 확실하게 보답하겠어!" ​사령관이 상기된 얼굴로 다가와 내 손을 덥석 부여잡았다. 손에 땀이 아주 흥건했다. ​"보답은 무슨요. 월급이나 밀리지 말고 꼬박꼬박 꽂아주십쇼. 연장 근로 수당도 확실히 쳐주시고요." "하하하! 암, 당연하지! 준위 자네는 우리 아크 부대의, 아니 인류의 보물이야!" "비행기 그만 태우시고. 전 제 파트너 소화 좀 시킬 겸, 드라이브나 한 바퀴 돌고 오겠습니다." ​나는 사령관의 부담스러운 눈빛을 피해 슬쩍 손을 빼내고는 스마트워치를 톡톡 두드렸다. ​"레비. 배도 부른데 뜀박질 한 번 할까?" [크하하! 기다렸어! 내 몸속에 넘쳐나는 이 미친 출력 좀 봐! 당장 달 안방까지 날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워치 스피커를 뚫고 나오는 레비아탄의 목소리에는 이전에 없던 기괴한 하울링이 섞여 있었다. 기계음 사이로 스산하게 맴도는 바람 소리. 칼라드볼그의 코어를 흡수한 부작용, 아니 완벽한 진화의 증거였다. ​나는 곧장 위층 격납고로 올라가 콕핏의 해치를 열고 몸을 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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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화: 폭풍을 두른 흑기사 (첫 출근의 끝자락) 2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 / 삼천 그룹 저거노트 연구센터] ​"야, 윤철수. 너 F급이라며?" ​퇴근 시간이 훌쩍 지난 오후 6시 30분. 모두가 빠져나간 휑한 연구동 복도에서, 거만한 목소리가 끈적하게 울려 퍼졌다. ​"예... 그렇습니다, 박 책임님." ​철수는 양손에 서류 뭉치와 빈 커피잔들을 한가득 안은 채 엉거주춤 고개를 숙였다. 그의 앞에는 사원증 목걸이를 덜렁거리는, 기름진 머리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30대 중반의 남자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삼천 그룹 제1 연구팀의 파트장이자, B급 각성자인 박 책임이었다. ​"나 참, 세상 말세야. 우리 삼천 그룹이 언제부터 등급도 없는 일반인을 연구원으로 덥석덥석 받았대? 윗선에서 무슨 생각인지 원." "공채 시험... 필기와 실기 포트폴리오로 정당하게 입사했습니다." "아, 그래. 그 기계 쪼가리 만지는 재주 좀 있다고? 야, 윤철수." ​박 책임이 손가락으로 철수의 가슴팍을 툭툭 찌르며 비아냥거렸다. ​"저거노트 코어 설계는 말이야, 직접 마력을 다뤄본 각성자가 아니면 절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야. 넌 그냥 우리 팀 잡일이나 거들면서, 어깨너머로 엑셀이나 타이핑해. 내가 시킨 이면지 정리랑 커피 심부름은 다 했고?" "예, 거의 다..." "거의 다? 굼뜨네 진짜. 오늘 야근 확정이다. 내일까지 내 개인 프로젝트 데이터 정리 싹 다 해놔. 알았어?"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이자 텃세. 철수의 짧게 깎은 머리 아래로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가 있었지만, 녀석은 입술을 꾹 깨물며 감내했다. 3년의 백수 생활 끝에 얻어낸 기적 같은 직장이다. 부모님의 그늘을 벗어나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일어선 첫 무대. 여기서 엎어질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책임님." ​철수가 다시 한번 허리를 숙이려던 찰나였다. ​위이이이잉-!!!! ​갑자기 연구센터 건물 전체가 미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유리창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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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화: 겨울 간식의 제왕과 코타츠 밑의 수라장 1

​철수의 첫 출근을 다이내믹하게 장식해 준 그날 이후, 삼천 그룹 저거노트 연구소의 분위기는 180도 뒤집혔다. ​듣자 하니, F급이라고 꼽을 주던 박 책임은 그날 밤 엉엉 울며 사직서를 썼다고 하던데. 뭐, 윗선에서 사직서를 반려하고 철수 밑에서 이면지나 파쇄하는 보조 업무로 좌천시켰다니 내 알 바는 아니다. ​내 전담 엔지니어로 신분 세탁을 마친 철수는, 내가 넘겨준 제4 군주의 마석 코어 절반을 쥐고 연구소의 왕으로 군림하는 중이었다. 녀석의 S급 두뇌가 드디어 날개를 달았으니, 조만간 레비아탄에 달아줄 기깔난 장비 하나 뽑아오겠지. ​그렇게 골칫거리 하나를 해결하고 나니, 내게 남은 건 잉여로움이 흘러넘치는 완벽한 휴가뿐이었다. ​2026년 1월 중순. 부산의 겨울 바닷바람은 예의 없이 뺨을 후려갈겼다. Z급으로 각성한 뒤로는 추위 따위 느낄 일 없는 몸이 되었지만, 굳이 이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남포동 거리를 걷는 이유가 있었다. ​"하아, 입김 나오는 거 보소." ​목도리에 코를 파묻고 걷다 보니, 저 멀리서 달달하고 꼬소한 기름 냄새가 훅 끼쳐왔다. 추운 겨울날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치명적인 후각 공격.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붕어빵 트럭 앞이었다. ​그런데 그 트럭 앞에, 익숙한 두 실루엣이 마주 보고 서서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대치 중이었다. ​"하루야. 붕어빵의 근본이 팥이라는 건 옛날이야기지. 바삭한 껍질을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그 안에서 부드럽고 달콤하게 흘러내리는 노란 슈크림. 이게 바로 현대 미식의 결정체 아니겠어? 팥은 퍽퍽해서 목막힌다고." ​와인색 코트를 걸친 미혜 누나가 우아하게 팔짱을 낀 채 슈크림 붕어빵 예찬론을 펼쳤다. ​하지만 맞은편에 선 하루 씨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다. 평소의 수줍음 많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양손을 꼭 쥔 채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언니, 그건 아니죠. 붕어빵의 진정한 영혼은 달짝지근하게 졸여낸 통팥에 있어요. 그 투박하면서도 깊은 단맛이 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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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화: 겨울 간식의 제왕과 코타츠 밑의 수라장 2

곁눈질로 오른쪽을 힐끔 보니, 미혜 누나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귤을 까며 TV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에 걸린 요염한 미소만큼은 숨기지 못한 채였다. ​'이 누나가 미쳤나. 대낮부터 거실에서.' ​내가 어찌할 바를 몰라 헛기침을 하려던 찰나. ​이번엔 왼쪽 발등 위로 작고 앙증맞은 발가락이 꼬물꼬물 기어 올라와 톡톡 건드리는 게 느껴졌다. ​'......?!' ​고개를 돌려 하루 씨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만화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 얼굴이 토마토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부끄러워서 귀끝까지 빨개졌으면서도, 이불 속의 발장난만큼은 멈추지 않는 그 고집스러운 직진. ​이건 실수로 닿은 게 아니다. 명백한 영토 침범이자, 소리 없는 캣파이트의 연장선. ​오른쪽 허벅지를 지분거리는 미혜 누나의 도발적인 발길질. 왼쪽 발등을 꾹꾹 눌러오는 하루 씨의 수줍지만 집요한 터치. ​그 아찔한 감각들이 코타츠의 열기와 섞여 내 이성을 마구잡이로 헤집어놓기 시작했다. ​[형님. 경고. 심박수 150 돌파. 혈관 팽창. 체온 상승. 전투 모드 돌입할까? 방어막 켜 줘?] ​손목의 레비아탄이 또다시 눈치 없이 분위기를 파악 못 하고 경고음을 띄웠다. ​'닥쳐, 이 고철 덩어리야. 제발 가만히 좀 있어.' ​나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애써 만화책 페이지를 넘겼다. 글자가 눈에 들어올 리 만무했다. ​군주급 괴수의 주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던 Z급의 동체 시력과 반사 신경이, 이불 속에서 벌어지는 두 여자의 발장난 앞에서는 맥없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코타츠 안은 이미 지옥의 수라장이나 다름없었다. ​"아, 아하하. 날씨가 참 덥네요. 겨울인데 왜 이렇게 덥지." ​내가 억지로 겉옷을 펄럭이며 너스레를 떨자, 미혜 누나가 나른한 목소리로 받아쳤다. ​"그러게. 열기가 아주 후끈후끈하네. 태수 넌 더 더운 거 같은데? 땀나는 거 봐." ​하루 씨 역시 질 수 없다는 듯 내 무릎 위로 담요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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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화: 발렌타인 전쟁과 안 씻는 불청객 1

​시간은 참 눈치도 없이 잘만 흘러간다. 바다 밑바닥에 처박힌 심연의 흑막, 지난번 이그니스가 말했던 '그분'인지 뭔지 하는 놈이 쏘아보던 그 기분 나쁜 시선을 뜨끈한 돼지국밥 한 그릇으로 말아먹은 지도 벌써 한 달. ​그동안 놈이 당장이라도 해일이라도 일으켜 쳐들어올 줄 알고 은근히 긴장 탔었는데, 이게 웬걸. 부산 앞바다는 갈매기 똥 하나 안 떨어질 만큼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뭐, 쫄아서 숨죽이고 있다면 나야 땡큐지." ​2026년 2월 14일. 달력에 빨간색 하트가 조잡하게 그려져 있는, 제과업계의 농간이 극에 달하는 그날 아침. ​나는 평상시처럼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하숙집 1층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늦겨울의 아침 공기는 여전히 싸늘했지만, 1층 거실에서 풍겨오는 공기는 묘하게 달착지근하고 끈적했다. 평소의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아니라, 코끝을 찌르는 진한 카카오와 버터의 향기. ​"아, 오늘 그날이구나." ​계단 마지막 칸을 밟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군주급 괴수를 마주했을 때 발동하는 Z급의 위기 감지 센서가, 지금 이 거실 한복판을 정확히 타겟팅하며 요란한 사이렌을 울려대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아침 밥상 대신, 보기만 해도 혈당 수치가 치솟을 것 같은 화려한 박스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양옆으로, 오늘따라 유난히 힘을 빡 준 두 여자가 팔짱을 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어났어, 태수야?" ​먼저 선빵을 날린 건 미혜 누나였다. 몸의 굴곡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얇은 검은색 목폴라 니트. 아직 밖은 입김이 훅훅 나오는 한겨울인데, 누나의 패션은 이미 계절을 두 개쯤 건너뛴 듯 아찔했다. ​그녀가 식탁 위로 쓱 밀어낸 것은, 검은색 무광 박스에 금박 리본이 정성스럽게 묶인 수제 초콜릿 세트였다. 뚜껑이 반쯤 열린 박스 안에는 럼주가 섞인 생초콜릿과 트러플이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가게 마감하고 밤새 만든 거야. 단 거 별로 안 좋아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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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화: 발렌타인 전쟁과 안 씻는 불청객 2

​[나의 유일한 구원자, 하 준위님께. 유럽에서 당신을 그리워하며 성스러운 기도를 담아 보냅니다. 이 초콜릿을 먹고 제 축복을 떠올려 주세요. 조만간 제가 직접 그곳으로 쳐들어... 아니, 방문하겠습니다. - 당신의 영원한 수호 성녀, 소피아 올림.] ​"......" ​정적. 바티칸에서 날아온 광기 어린 택배의 등장에, 미혜 누나와 하루 씨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버렸다. ​"하. 성녀라는 여자가 아주 글로벌하게 끼를 부리네?" "바다 건너에 있다고 방심했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치네요." ​이젠 2파전이 아니라 3파전이다. 수라장으로 변해가는 거실 한복판에서 내가 조용히 유서를 작성할 고민을 하고 있던 바로 그 순간. ​쾅-!! ​거실 문이 부서져라 열리며, 교복 마이를 풀어 헤친 희선이가 씩씩거리며 난입했다. ​"다들 비키라!! 태수 햄은 내끼다!!" ​희선이가 가방을 집어 던지며 품에서 꺼낸 것은, 마트에서 1+1 행사로 파는 시뻘건 '가나 초콜릿' 한 다스였다. 녀석은 포장도 뜯지 않은 그 판초콜릿 뭉텅이를 내 가슴팍에 거칠게 들이밀었다. ​"햄! 내 용돈 털어서 샀다! 양으로 승부한다! 이거 무그면 오늘부터 내랑 사귀는 기다, 알았제!" ​중학교 3학년의 당돌하다 못해 뻔뻔한 직구. 그 어이없는 투척에 살벌했던 3파전의 긴장감이 일순간 픽, 하고 김이 빠져버렸다. ​미혜 누나가 이마를 짚으며 실소를 터뜨렸고, 하루 씨도 입술을 가리며 쿡쿡 웃었다. ​"아이고, 우리 희선이. 햄이 그렇게 좋나." ​나는 희선이가 내민 가나 초콜릿을 툭 받아 챙기고는, 식탁 위에 놓인 미혜 누나와 하루 씨의 수제 초콜릿 박스도 양손에 하나씩 꽉 쥐었다. ​"정성들 뻗치셨네. 고맙게 잘 받겠습니다." ​내가 덥석 세 개의 초콜릿을 다 챙기자, 여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꽂혔다. ​"근데 햄, 답례는 없나? 화이트데이까지 우째 기다리노!" "맞아, 태수야. 우리가 이렇게 고생했는데, 뭐 해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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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화: 발렌타인 전쟁과 안 씻는 불청객 3

​킁킁. 그녀가 코를 벌름거리며 허공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나, 난다... 미치도록 아름답고... 폭력적인 오버테크놀로지의 존나 꼴리는 냄새가..." ​초점 없는 눈으로 중얼거리던 여자가 갑자기 나를 확 밀치고는, 신발도 안 벗은 채 하숙집 마당 쪽으로 미친 듯이 뛰쳐나갔다. 링거 거치대가 우당탕거리며 바닥을 긁었다. ​"아, 안 돼! 소장님! 거기서 더 가시면...!" ​철수가 기겁을 하며 말리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여자가 달려간 곳은 하숙집 뒷마당, 전용 주기장에 다소곳이 앉아 대기 모드에 들어가 있던 레비아탄의 앞이었다. ​"오오... 오오오오...!" ​여자가 레비아탄의 거대한 장갑판을 보더니, 마치 사이비 종교의 신도를 방불케 하는 경이로운 탄성을 터뜨렸다. ​"이게... 베링해협에서 그 수십 킬로미터짜리 폭풍을 갈아버렸다는 플렉소 일렉트릭의 결정체...! 장갑판의 이 미세한 마모 흔적, 그리고 틈새로 새어 나오는 이 미친 뇌전의 잔여물! 완벽해! 완벽하다고!!" ​그녀는 급기야 기름때 묻은 손으로 레비아탄의 차가운 발등 장갑을 쓰다듬더니, 그 위에 뺨을 부비기 시작했다. ​[히익! 형님, 이 여자 뭐야! 왜 내 발에 볼을 비비고 난리야! 냄새나니까 당장 떨어지라고 해! 수리 끝내고 도색한 지 얼마 안 된 완전 새 거란 말이야!!] ​산전수전 다 겪은 레비아탄조차 기겁하며 내 머릿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나 역시 어이가 털려 입을 떡 벌린 채 철수를 돌아보았다. ​"야. 저 미친 여자는 누군데. 니네 직장 상사냐?" ​철수가 벽에 기대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울먹거렸다. ​"사, 상사가 아니라... 우리 삼천 그룹 저거노트 개발 총괄 책임자. 신수지 수석 연구소장님이야. 니가 갖다준 마석 데이터 보고 눈이 돌아가서... 기체 실물 안 보면 숨 넘어간다고 사흘 밤낮을 날 괴롭히다가 기어코 쳐들어온 거야..." ​아, 이 여자가 그 소문으로만 듣던 천재 매드 사이언티스트. 신수지. ​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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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화: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사육법 1

입춘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부산 남포동의 아침 공기는 여전히 칼날처럼 예리하게 뺨을 베고 지나갔다. ​평소 같았으면 멀리 자갈치 시장 쪽에서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나 갈매기 우는 소리에 눈을 떴겠지만, 최근 일주일 동안 내 아침을 깨우는 알람 소리는 조금 기괴한 방향으로 바뀌어 있었다. ​지잉- 지지직! 윙- 철컥. ​"아놔, 진짜. 아침부터 무슨 공사판도 아니고." ​나는 까치집이 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섰다. 소음의 진원지는 내가 있는 1층이 아니라, 머리 위쪽인 2층 끝방이었다. 일주일 전, 김치전 세 장과 월 50만 원의 선불금으로 우리 하숙집에 무단 입주한 삼천 그룹 수석 연구소장, 신수지의 임시 랩실. ​거실을 지나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보니, 입이 떡 벌어지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게 다 뭐람." ​2층 끝방의 창문 틈새로 굵직한 공업용 케이블 대여섯 가닥이 뱀처럼 구불구불 흘러나와 마당으로 늘어져 있었다. 그 케이블들의 끝이 향한 곳은, 마당 한구석 전용 주기장에 무릎을 꿇고 대기 모드에 들어가 있는 나의 전용기, 레비아탄이었다. ​레비아탄의 두꺼운 초합금 장갑 군데군데에 손바닥만 한 진단용 센서들이 거머리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기체의 모노아이는 피곤한 듯 붉은빛을 껌뻑거리고 있었다. ​[형님... 일어났어...? 나 좀 살려줘. 저 미친 여자가 새벽 3시부터 내 동력로 위상 데이터를 뽑아간다고 장갑판 틈새로 탐침을 쑤셔 넣고 있다고. 간지러워 미칠 것 같아.] ​스마트워치 너머로 들려오는 레비아탄의 목소리에는, 그저 병원에 끌려온 강아지처럼 처량한 기계음만이 웅웅거릴 뿐. ​"야. 그래도 명색이 20미터짜리 결전 병기인데, 쪼그만 인간 여자애 하나를 못 당해서 징징대냐." ​[형님은 모른다고! 저 여자가 내 구동 회로를 들여다볼 때 짓는 그 눈빛! 그건 나를 기계가 아니라 아주 맛있게 구워진 통돼지 바비큐를 보는 눈빛이었다고! 내 존엄성이 바닥을 치고 있단 말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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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화: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사육법 2

화면에는 레비아탄의 심장부와 내 단전의 위치를 연결한 복잡한 3D 시뮬레이션 그래프가 미친 듯이 솟구치고 있었다. ​"저번 베링해협에서 캐온 제4 군주 칼라드볼그의 마석 절반. 그걸 저 기체(레비아탄)에 쑤셔 넣었을 때, 이론상으로는 코어가 융합되지 못하고 폭주해서 기체 프레임이 찢어졌어야 정상입니다. 서로 다른 속성의 마력이 충돌하니까요." ​신수지가 벌떡 일어나 맨발로 방 안을 서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저 기체는 폭풍의 압력을 고스란히 자신의 뇌전으로 치환해서 완벽하게 소화해버렸죠. 그 매개체가 뭔지 아십니까? 바로 태수 씨입니다." ​그녀가 깡마른 손가락으로 내 가슴팍, 정확히는 단전 쪽을 쿡 찔렀다. ​"저 기체가 내는 무지막지한 진동과 압력이 당신 몸속에 있는 절대영도의 얼음, 그 '빙정'을 두들겨 패고, 그 비틀림에서 발생하는 반발력이 다시 기체의 동력으로 무한 공급되는 이 미친 사이클. 플렉소 일렉트릭(Flexo-Electric)의 궁극점." ​신수지의 입꼬리가 귀밑까지 찢어질 듯 올라갔다. ​"기계가 본체가 아니었어요. 태수 씨, 당신이라는 생물학적 배터리가 저 무식한 깡통의 진짜 '엔진'이었던 겁니다. 당신이 없으면 저 거대한 병기는 그저 전력 낭비 심한 고철 덩어리에 불과해요!" ​"뭐, 대충 그런 셈이죠. 그러니까 내 허락 없이 저 깡통 함부로 뜯어고치지 마십쇼. 내 몸이랑 연결된 거라 예민하니까." ​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신수지가 흥분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뜯어고치다니요! 이건 신성한 진화의 과정입니다! 지금 저 폭풍의 코어를 안정화시켰으니, 다음 스텝은 출력의 한계 돌파입니다. 철수 사원에게 이미 설계도 초안을 넘겼죠. 뇌전과 폭풍을 한 점으로 압축해서 터뜨리는 궁극의 물리 타격 무장, [절대영도 파일벙커(Pile Bunker)]...!" ​혼자만의 도파민에 취해 허공에 대고 열변을 토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하지만 내 목적은 이 여자의 논문 발표를 들어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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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사육법 3

​"오, 윤철수. 퇴근했냐. 아침에 나갈 때보다 얼굴이 반쪽이 돼서 들어오네." ​내가 소파에 기대앉아 만화책을 넘기며 반기자, 철수가 코트를 벗을 새도 없이 내 옆으로 다가와 털썩 주저앉았다. ​"태수야... 나 진짜 죽을 것 같아. 저 2층에 있는 악마가... 매일 새벽마다 내 사내 메신저로 설계도 수정안을 20개씩 던져. 오늘 회사에서도 내내 그놈의 파일벙커 구동식 짜느라 믹스 커피만 일곱 잔 마셨다..." ​"야, 니가 좋아서 들어간 대기업이잖아. F급 일반인에서 군주 마석 다루는 전담 엔지니어로 승진시켜 줬으면 그 정도 몸은 굴려야지. 엄살 피우지 마." ​"그건 고마운데... 업무 템포가 사람 새끼가 아니잖아! 어제는 폭풍 압력 밸브 설계하다가 스트레스받아서 앞머리가 한 움큼 빠졌다고!" ​철수가 징징거리며 성긴 머리를 쥐어뜯으려 할 때, 2층 계단에서 슬리퍼 끄는 소리가 들렸다. 신수지였다. 아침에 샤워를 한 덕에 그나마 몰골은 사람다워 보였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번들거렸다. ​"윤철수 사원. 퇴근했으면 방금 내가 메일로 보낸 3차 수정안 확인했겠죠?" ​"히익! 소, 소장님! 지, 지금 막 집에 도착했는데요...!" ​철수가 마치 저승사자를 본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파 구석으로 몸을 웅크렸다. ​"엄살 부리지 마십시오. 압축률을 0.3%만 더 끌어올리면 레비아탄의 물리 타격력을 기존 대비 세 배 이상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밥 먹고 바로 제 방 랩실로 집합하세요. 밤샘 작업 들어갑니다." ​안경을 고쳐 쓰는 신수지의 눈빛이 섬뜩하게 빛났다. 저 지독한 워커홀릭. 철수의 앞날이 훤히 보여 속으로 짧게 묵념을 올렸다. ​"자자, 그만 싸우고 저녁 밥 묵자! 다들 상 차리라!" ​다행히 부엌에서 들려온 최 여사님의 호통이 철수의 숨통을 잠시나마 틔워주었다. ​오늘의 저녁 메뉴는 아침과는 또 다른 풍성함이었다. 큼지막한 무를 썰어 넣고 매콤하게 졸여낸 고등어조림. 거기에 파를 송송 썰어 두툼하게 말아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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