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EX급 빙신(氷神), 출근합니다: Chapter 101 - Chapter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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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화: 3월 3일의 솥뚜껑과 첫 월급 1

​2026년 3월 3일. 달력 상으로는 분명 봄의 시작을 알리는 3월이건만, 부산의 하늘은 며칠째 쾌청함과는 거리가 먼 누르스름한 잿빛으로 덮여 있었다. ​단순한 중국발 황사나 미세먼지가 아니었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쇳내와 혀끝에 맴도는 씁쓸한 맛. 저 멀리 바다 건너편, 놈들이 득실거리는 심해나 어딘가의 기둥에서부터 바람을 타고 넘어온 옅은 마력의 찌꺼기, 일명 '독기(毒氣)'였다. ​"콜록, 아따 마. 하늘 꼬라지 봐라. 숨쉬기 존나 빡세네." ​아침 일찍 마당 평상에 걸터앉아 기지개를 켜던 나는, 목구멍이 칼칼해지는 불쾌감에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내 몸뚱어리는 Z급이다. 단전에 똬리를 틀고 있는 빙정(氷精)이 알아서 혈관으로 침투하려는 독기들을 차갑게 얼려 부숴버리니 생명에 지장이 있을 리는 없었다. 그저 목에 먼지가 낀 것처럼 텁텁할 뿐. 하지만 일반인인 하숙집 식구들에게는 기관지염을 유발하기 딱 좋은 찝찝한 날씨였다. ​드르륵. 그때, 1층 미닫이문이 열리며 앞치마를 두른 최 여사님이 마당으로 나오셨다. 여사님의 양손에는 웬 무식하게 거대한 시커먼 무쇠 쇳덩어리가 들려 있었다. ​"이모님, 그게 뭡니까? 아침부터 웬 캡틴 아메리카노 방패를 들고 나오셨대." ​"방패는 무슨! 솥뚜껑이다, 솥뚜껑! 창고 구석에 짱박혀 있던 거 끄집어냈다 아이가." ​여사님이 마당 한가운데 놓인 평상 옆 휴대용 가스버너 두 개를 이어 붙이더니, 그 위에 지름만 한 1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무쇠 솥뚜껑을 쿵, 하고 올려놓으셨다. ​"오늘이 며칠이고? 3월 3일 아이가. 삼겹살 데이! 게다가 밖을 봐라. 공기에 몹쓸 먼지구덩이가 꽉 찼는데, 이런 날엔 목구멍에 돼지기름을 쫙 발라가가 먼지를 밑으로 쓸어내려야 하는 기다." ​"아, 돼지기름으로 미세먼지를 씻어낸다는 그 과학적 근거 1도 없는 한국인의 민간요법이요?" ​내가 피식 웃으며 태클을 걸자, 최 여사님이 들고 있던 행주를 둥글게 말아 내 등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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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화: 3월 3일의 솥뚜껑과 첫 월급 2

​치이이이익-!!​고기가 뜨거운 쇠 표면에 닿자마자 요란한 파열음이 마당 전체를 울렸다. 돼지기름이 자글자글 끓어오르며 아래쪽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그 타이밍을 놓칠세라 최 여사님이 잘 익은 묵은지를 포기째로 턱, 하고 솥뚜껑 가장자리에 얹었고, 하루 씨가 깨끗하게 씻은 미나리를 뭉텅이로 듬뿍 올려놓았다. 고기 기름을 머금고 구워지는 김치와 미나리의 파괴적인 냄새가 독기로 텁텁했던 부산의 공기를 완벽하게 정화(?)하고 있었다.​"미쳤다... 냄새 도랐네.""햄! 햄! 내 배고파 죽는다! 빨리 뒤집어라!"​학교에서 막 돌아와 교복도 안 갈아입은 희선이가 젓가락을 양손에 쥐고 방방 뛰었고, 히나 역시 입맛을 다시며 내 곁을 맴돌았다. 성배 아저씨는 "고기엔 역시 쏘주지!"라며 초록색 병을 한 아름 안고 나와 평상에 세팅을 마쳤다.​드르륵, 탁!​그때, 2층 끝방의 미닫이문이 신경질적으로 열리는 소리가 났다.머리를 질끈 묶고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신수지가, 슬리퍼를 직찍 끌며 계단을 내려왔다. 사흘 내내 랩실에 처박혀 레비아탄의 데이터를 뜯어보던 그녀의 퀭한 눈이 솥뚜껑을 향해 정확히 고정되어 있었다.​"마이야르 반응... 아미노산과 환원당이 120도 이상의 고온에서 결합하며 만들어내는 저 갈색의 시각적 자극과 휘발성 향기 분자..."​중얼중얼. 과학적 용어로 삼겹살의 위대함을 분석하던 그녀는, 빈자리에 털썩 주저앉더니 눈을 번뜩였다.​"젓가락 주십시오. 지금 제 대뇌피질이 저 지방과 단백질 덩어리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아이고, 저 화상. 또 씻지도 않고 기어 나왔네! 무라, 무라! 고기는 산더미니까!"​최 여사님이 혀를 차면서도 신수지 앞에 앞접시를 놔주셨다.​고기가 노릇노릇하게 익자마자 마당은 흡사 전쟁터로 돌변했다.​"얍! 내 고기!""아, 희선아! 내가 찜해놓은 건데 왜 가져가!"​가장 바삭하게 익은 한 점을 두고 희선이와 히나가 젓가락 칼싸움을 벌이는 동안, 신수지는 아예 말없이 묵은지와 고기를 집게로 쓸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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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화: 3월 3일의 솥뚜껑과 첫 월급 3

​"......"​마당을 채우던 왁자지껄한 소음과 솥뚜껑에서 고기가 익어가는 지글거리는 소리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순간 조용해졌다.​철수는 꾹 다물었던 입술을 떼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 봉투 두 개를 각각 최 여사님과 성배 아저씨의 무릎 앞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이게... 이게 뭐고?"​최 여사님이 당황한 듯 눈을 깜빡거리며 봉투를 집어 들었다. 봉투 겉면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감사합니다'라는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철수가 마른침을 삼키고, 목청을 가다듬었다.​"저... 오늘 삼천 그룹 입사하고 첫 월급 탔습니다. 팀장님이 주신 금일봉 떡값까지 합쳐서, 현금으로 좀 뽑아왔어요."​"첫, 첫 월급...? 아이고 미친놈아, 니가 고생해서 번 돈을 왜 여다 주노! 빨간 내복이나 사 입고 저축을 해야지!"​"맞다, 임마! 니 장가갈 밑천 모아야 할 거 아이가!"​성배 아저씨도 당황하며 봉투를 다시 철수 쪽으로 밀어내려 했다.하지만 철수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녀석의 눈시울이 이미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아닙니다. 이거... 이모님이랑 아저씨가 받으셔야 해요."​철수의 목소리가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녀석은 두 주먹을 꽉 쥔 채, 바닥을 보던 시선을 들어 올려 우리 식구들을 한 명 한 명 눈에 담았다.​"부모님은 각성하지 못한 F급 일반인인 저를 집안의 수치라 부르셨어요. 그래서 삼천그룹에 당당히 입사해 제 존재를 증명하고 싶었죠. 가출해서 이 하숙집에 처음 발을 들였을 땐… 정말이지 제가 쓸모없는 쓰레기인 줄로만 알았습니다."​철수의 뺨을 타고 굵은 눈물방울이 툭, 하고 떨어져 내렸다.​"근데 이모님은... 3년 동안 쥐뿔도 없는 백수 놈한테 맨날 등짝을 때리시면서도, 아침마다 제일 고봉밥을 퍼주셨잖아요. 돈 없어서 월세 밀려도 쫓아내긴커녕 취직하면 갚으라고 따뜻한 방 내주셨고... 아저씨는 저 면접 보러 갈 때마다 다 닳아빠진 구두 맨날 공짜로 광택 내서 닦아주셨잖아요."​"철수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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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화: 서울의 봄, 한강의 깍쟁이들 1

​2026년 3월 중순.철수가 첫 월급 턱으로 사 온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싹싹 긁어 먹었던 삼겹살 파티 이후로 며칠이 지났다. 남녘인 부산에는 슬슬 벚꽃 몽우리가 맺힐 법도 하건만, 지독한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며 얄미운 칼바람을 뿜어내고 있었다.​"아, 뜨시다. 역시 겨울엔 온수 매트가 최고지."​나는 등과 엉덩이를 지글지글 지져주는 거실 바닥의 온수 매트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부엌에서는 최 여사님이 무를 숭숭 썰어 넣고 시원하게 동태탕을 끓이는 소리가 달그락거렸고, 2층 끝방에서는 여전히 신수지와 철수가 기계 부품을 깎고 조립하는 기괴한 소음이 간헐적으로 들려왔다.​나른하고 잉여로운 아침. 완벽한 휴가 중인 군인의 표본 같은 자세였다.​"볼 게 이리 없나."​채널을 휙휙 돌리던 내 손가락이 뉴스 전문 채널에서 딱 멈췄다.화면 우측 상단에 시뻘건 글씨로 [긴급 속보]라는 자막이 미친 듯이 깜빡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시청자 여러분, 긴급 속보입니다. 현재 서울 한강 여의도 방어선에 비상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한강 수위가 급격히 상승하며 정체불명의 해귀 떼가 대규모로 둔치로 상륙하고 있습니다!]​"어어?"​자세가 절로 고쳐 앉아졌다.10년 전 대해식 이후, 한강은 더 이상 치맥을 먹으며 돗자리를 까는 국민 공원이 아니었다. 바다와 이어진 그곳은 해수들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수도의 방벽이 되었다.​하지만 수심이 얕고 폭이 좁은 강물의 특성상, 200미터가 넘어가는 대형 해수급 괴물들은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다. 기껏해야 인간 크기만 한 해귀(해저 언데드나 어인류)들이나 소형 군주급만 깔짝거리는 수준.​당연히 거대한 재앙을 온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3면의 험난한 외곽 바다(부산 등)는 국방부 소속의 정규 군대가 피를 흘리며 틀어막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언론 노출이 쉬운 '한강 방어선'은 돈 많고 빽 좋은 대형 길드들이 사유지처럼 꿰차고 있었다. 수도의 영웅 행세를 하며 주가를 올리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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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화: 서울의 봄, 한강의 깍쟁이들 2

​위잉- 위이이잉-!!그리고 내 주머니 속의 군용 스마트폰이 기다렸다는 듯 미친 듯이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예. 하태수입니다."​-[하 준위! 방송 봤나! 당장 출동 준비하게! 청와대랑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지금 우리 아크 부대로 제발 좀 살려달라고 SOS가 수십 통째 빗발치고 있네!]​전화기 너머로 사령관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고막을 때렸다.​"방송은 방금 봤습니다만. 아니, 한강은 길드 놈들이 독점 계약 맺고 지키는 구역 아닙니까? 돈은 지들이 다 쳐먹어놓고 똥 싸니까 왜 남포동에서 잘 쉬고 있는 저한테 짬처리를 한답니까? 서울까지 차비가 얼만데."​-[그 썩어빠진 자본주의 길드 놈들이 지들 살겠다고 도망을 쳤으니까 문제 아닌가! 지금 수방사 전력만으로는 저 물량을 못 막아! 여의도가 뚫리면 서울 시내 한복판이 피바다가 되네!]​사령관의 목소리는 다급함을 넘어 절박했다.​나는 리모컨으로 TV 전원을 툭 끄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귀찮은 상경이긴 하지만, 평소 꿀이나 빨면서 군부대를 무시하던 그 서울 깍쟁이 길드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줄 완벽한 명분이 생겼다.​"뭐, 좋습니다. 남이 싸놓은 똥 치우는 특수 청소 비용은 두둑하게 청구할 테니 국방부 예산 빵빵하게 비워두라고 하십쇼. 야간 할증에 시외 출장비, 그리고 내 기체 연료비까지 싹 다 청구할 겁니다."​-[알았네! 백지수표라도 끊어줄 테니 제발 한강 좀 지켜주게!]​나는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바닥의 온수 매트가 아쉬웠지만, 밥값을 하려면 몸을 움직여야지.​"이모님, 저 서울 출장 좀 다녀오겠습니다."​"아이고, 우리 태수 밥도 안 묵고 우짜노! 내 동태탕 다 끼리놨는데!"​"금방 가서 미꾸라지들 좀 썰고 올 테니까 불 약하게 켜두십쇼. 저녁 밥상 전에는 무조건 맞춰 옵니다."​외투를 챙겨 입고 현관을 나서는 내 발걸음은 가벼웠다.​[아크 부대 지하 7층 특수 격납고]​"태수야! 왔어?!"​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윤철수가 몽키스패너를 든 채 반색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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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화: 서울의 봄, 한강의 깍쟁이들 3

​콕핏의 관성 제어 시스템이 풀가동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내장 전체가 뒤로 쏠리는 듯한 엄청난 중력가속도(G-force)가 전신을 짓눌렀다.​시야에 비친 부산항 앞바다가 순식간에 점으로 사라지고, 한반도의 굵직한 산맥들이 흐릿한 선처럼 뒤로 밀려 나갔다. 빙정이 뿜어내는 절대영도의 냉기가 기체의 과열을 실시간으로 식혀주지 않았다면, 비행 마찰열만으로도 장갑판이 녹아내렸을 속도였다.​부산에서 서울까지. 일반 수송기로도 한참이 걸리는 거리를, 저항 제로의 진공 터널을 뚫고 질주하는 흑기사는 단 몇 분 만에 주파해버렸다.​"목표 지점 확인. 강하한다."​[서울 한강 여의도 둔치]​"크아아악!! 살려줘!!""후퇴해라! 장비 버려! 일단 살고 봐야 할 거 아냐!"​서울의 심장부 한강 둔치는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다.콘크리트 제방을 넘어온 수천 마리의 스틸 사하긴 떼가 날카로운 강철 작살로 공원의 조형물들을 부수고, 벚나무들을 꺾어 던지며 무차별적인 학살을 자행하고 있었다.​그 난장판의 한가운데, 마포대교 진입로 근처에서 화이트 타이거의 최무진 이사는 호위병들을 고기 방패로 세워둔 채 헐레벌떡 방탄 SUV 차량의 문손잡이를 당기고 있었다.​"이, 이 병신들아! 빨리 안 열어?! 내가 여기서 죽으면 화이트 타이거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된다고!"​언론 앞에서 폼을 잡던 그의 명품 슈트는 진흙과 강물로 엉망이 되어 있었고, 거만했던 얼굴은 공포에 질려 콧물까지 흘리고 있었다.​키에에엑-!​그때, 사하긴 무리를 이끌던 덩치 큰 대장 개체 하나가 다리 교각을 박차고 뛰어올라 최무진의 차를 향해 작살을 내리꽂았다.​"히, 히익!! 헬 플레어...!"​최무진이 다급하게 시뻘건 화염구를 쏘아 올렸지만, 놈은 콧방귀를 뀌며 입에서 고압의 물줄기를 뿜어내 불꽃을 단숨에 꺼버렸다. 날카로운 강철 작살이 최무진의 머리통을 으깨기 위해 뻗어 내려오는 절체절명의 순간.​그의 머리 위, 잿빛으로 탁한 서울의 하늘이 일순간 쩍- 하고 두 갈래로 갈라졌다.​파아아아아앗-!!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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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화: 서울 구경은 5분이면 족하다 1

​파아아앗-!!​차가운 강바람이 휘몰아치는 여의도 둔치 위로, 짙은 보랏빛 섬광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레비아탄의 양팔에서 길게 뽑혀 나온 것은 단순한 전기의 다발이 아니었다. 베링해협에서 캐온 극소용돌이의 마석이 뿜어내는 '초고압 진공'의 칼바람. 그 칼바람의 궤적을 따라 테라와트급의 플라즈마 뇌전이 얽혀들며, 마치 공간 자체를 찢어발기는 듯한 거대한 두 가닥의 뇌전 채찍이 완성되어 있었다.​"키리리릭...!""키에에엑!"​강변을 새까맣게 뒤덮고 있던 스틸 사하긴 떼가 일제히 기괴한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동족인 대장 개체가 단 한 방에 증발하는 것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저 바다 밑바닥의 배후가 불어넣은 살육의 본능은 놈들에게서 도망칠 의지마저 앗아간 모양이었다.​놈들이 양팔의 강철 작살을 치켜든 채, 시커먼 파도처럼 나를 향해 밀려들기 시작했다.​"물량 하나는 기가 막히게 뽑아냈네. 징그러운 미꾸라지 새끼들."​나는 콧방귀를 뀌며 조종간을 가볍게 쥔 양손의 손목을 바깥쪽으로 스냅을 주어 튕겼다. 나와 신경망이 완벽하게 동기화된 레비아탄의 양팔이 그 미세한 움직임을 증폭시켜 거대한 궤적을 그려냈다.​콰아아앙-!!​허공을 가른 폭풍 뇌전의 채찍이, 몰려드는 사하긴 떼의 선두를 가로로 쓸고 지나갔다.​마법 저항력이 극한에 달했다는 놈들의 시커먼 강철 비늘?그딴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채찍의 겉을 감싸고 있는 진공의 압력이 놈들의 비늘을 종잇장처럼 우그러뜨리며 방어력을 0으로 만들면, 곧바로 뒤따라 들어가는 초고열의 플라즈마가 놈들의 살육과 뼈대 자체를 순식간에 기화시켜버렸다.​퍼퍼퍼펑!!선두에 서 있던 수백 마리의 사하긴들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시뻘건 핏물과 잿가루가 되어 공중으로 흩어졌다. 채찍이 휩쓸고 지나간 아스팔트 바닥은 마치 거대한 레이저 커터로 도려낸 듯 쩍쩍 갈라지며 시뻘건 용암을 토해냈다.​[크하하하! 형님! 이 밸브 진짜 미쳤어! 관절에 무리가 하나도 안 온다고! 예전 같았으면 이 정도 출력 뽑을 때 프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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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화: 서울 구경은 5분이면 족하다 2

​단 5분.수천 마리의 스틸 사하긴 떼가 흔적도 없이 정리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그뿐이었다.​치이이익-.강변을 뒤덮었던 뽀얀 수증기와 먼지구름이 걷히고, 얼어붙은 한강 둔치 위에는 오직 창백한 냉기를 뿜어내는 나의 흑기사, 레비아탄만이 우뚝 서 있었다.​[형님. 주변 반경 10킬로미터 이내 생체 반응 제로. 마력 파장 소멸. 아주 깔끔하게 밀어버렸어.]​"수고했다. 출력 원래대로 낮춰."​나는 뻐근한 뒷목을 주무르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상황은 끝났다. 이제 남은 건, 이 난장판을 수습하고 밀린 계산서를 청구하는 일뿐.​쿠웅, 쿠웅.레비아탄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마포대교 진입로 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방탄 장갑차 옆에 주저앉아, 얼이 빠진 표정으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최무진이 있었다.​놈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명품 슈트는 진흙탕에 구른 듯 엉망이었고, 포마드로 깔끔하게 넘겼던 머리는 산발이 되어 이마에 들러붙어 있었다. 가장 압권인 것은 놈의 바짓가랑이 안쪽이 눈에 띄게 젖어 있다는 점이었다.​진짜 쌌네, 저거.​쿵-!레비아탄이 놈의 코앞에 거대한 발을 내려놓았다. 20미터 높이의 거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뇌전의 스파크가 놈의 정수리를 짓눌렀다.​치이익-. 외부 스피커가 다시 켜졌다.​[어이. 서울 깍쟁이.]​"히, 히익...!"​내 무심한 기계음이 울려 퍼지자, 최무진이 발작을 일으키며 엉덩방아를 찧은 채 뒤로 물러섰다.​[입이 있으면 대답을 해야지. 랭킹 1위 길드 간부라는 양반이 벌레 몇 마리 나왔다고 시민들 버리고 빤스런을 치냐? 니들 주특기인 언론 플레이는 어디 가고 흙바닥에 주저앉아서 오줌이나 지리고 있노.]​"그, 그게... 내, 내 화염이 도저히 통하질 않아서... 전략적인 후퇴를..."​[전략적 후퇴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니가 싸지른 똥, 부산에서 올라온 내가 다 치웠다. 봤지?]​최무진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놈의 동공에는 짐승 앞의 초식동물 같은 원초적인 공포가 서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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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화: 매끈한 장난감과 엘리트 소위 1

​띠링-.​나른한 봄햇살이 거실 유리창을 넘어오던 오후.소파에 길게 누워 귤을 까먹고 있던 내 바지 주머니에서, 경쾌한 알림음이 짧게 울렸다. 온수 매트의 열기에 취해 반쯤 감겨 있던 눈을 비비며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입금 알림: 아크 부대 특수 작전 대금 및 위약금 정산][입금자: (주)화이트 타이거 길드][금액: 34,500,000,000원]​"......오호라."​화면에 찍힌 0의 개수를 세어보던 나는 절로 실소를 터뜨렸다.삼백사십오억.서울 한강 둔치에서 내 벼락 한 방에 오줌을 지렸던 최무진 이사, 놈이 아주 영혼까지 끌어모아 계좌를 털어 넣은 모양이었다. 아마 화이트 타이거 길드의 올해 순이익 절반은 족히 날아갔으리라.​"이 맛에 특근 뛰는 거지. 역시 자본주의 사회에선 금융 치료만 한 게 없어."​도망친 죗값을 돈으로 토해낸 그 깍쟁이 놈들의 창백해진 얼굴을 상상하니, 입안의 귤이 유난히 더 달게 느껴졌다. 이 돈이면 하숙집 옥상에 그릴을 새로 하나 놓고, 이모님 주방 싱크대도 최고급으로 싹 다 갈아엎을 수 있겠다.​내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쑤셔 넣을 때였다.​위이잉- 위잉-!​이번에는 군용 통신망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에 뜬 발신자는 아크 부대의 사령관님. 휴가 중에 울리는 직장 상사의 전화만큼 불길한 건 없지만, 방금 전 거액의 입금을 확인한 터라 너그러운 마음으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예, 하 준위입니다. 사령관님, 방금 부대 쪽으로 입금 꽂힌 거 보셨습니까? 제 수당 떼먹지 말고 칼같이 통장에 넣어주십쇼."​-[하하! 하 준위, 자네 덕분에 우리 부대 예산이 아주 차고 넘치네! 헌데 수당은 수당이고, 지금 당장 부대 지하 연병장으로 좀 출근을 해줘야겠어.]​"저 오늘 비번인데요. 또 어디 앞바다에 미꾸라지 새끼들이라도 튀어나왔습니까?"​-[아니, 괴수가 쳐들어온 건 아니고. 삼천 그룹에서 이번에 새로 뽑아낸 양산형 기체 테스트가 있네. 신수지 소장이 자네의 레비아탄이랑 모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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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화: 매끈한 장난감과 엘리트 소위 2

​"반갑습니다. 하태수 준위입니다. 그쪽이 저 새하얀 장난감 주인이군요."​내 나른한 대답에, 최유리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장난감이라는 단어가 그녀의 엘리트 적인 자존심을 단단히 긁은 모양이었다.​그녀가 턱을 살짝 치켜들며, 내 등 뒤에 서 있는 레비아탄을 곁눈질했다.​"장난감이라뇨. 발뭉은 삼천 그룹의 최신 마력 공학이 집약된 결정체입니다. 오히려 제 눈에는... 하 준위님의 저 기체가 당장 폐기장으로 가야 할 구형 고철로 보입니다만."​"야야! 최 소위! 말조심해라!"​옆에서 기겁한 철수가 최유리의 팔을 잡아당겼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눈을 똑바로 쏘아보았다.​"소문은 익히 들었습니다. 하와이에서 군주를 잡고, 며칠 전 서울에서도 맹활약하셨다고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파일럿의 변칙적인 '이능력'에 의존한 결과물 아닙니까? 정규 군사 교육도 받지 않은 민간인 출신이, 저렇게 안정성 떨어지는 구형 껍데기를 몰고 다닌다는 건 현대 전술의 수치입니다."​따박따박 쏘아붙이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자신감과 오만함이 절반씩 섞여 있었다.명문 사관학교에서 수천 시간의 시뮬레이션을 거치며 오직 '데이터'와 '통제된 스펙'만을 진리로 믿고 자란 범생이의 시선. 그 시선에서 나라는 존재는, 근본도 없이 운 좋게 강력한 장비를 얻어걸린 양아치쯤으로 보이는 게 당연했다.​나는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채 픽 웃었다.​"그래서요. 수치스러운 고철 덩어리한테 뭘 원하시는데요, 최 소위님."​"실전 데이터입니다. 제 발뭉의 스펙이 저 구형 기체를 상대로 얼마나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지, 모의 대련을 통해 증명하고 싶습니다."​최유리가 장갑을 낀 손으로 발뭉을 가리키며 당당하게 선언했다.​"만약 제가 이긴다면, 하 준위님이 가진 그 비합리적인 특권들... 독립적인 작전권이나 보급 우선순위 등을 정규군인 저희 발뭉 부대 쪽으로 일부 양도해 주셨으면 합니다."​이건 또 무슨 신박한 개소리람.나는 황당하다는 듯 옆에 선 신수지를 쳐다보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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