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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시험은 중단됐다.전달석 잔류 오염이 예상보다 빠르게 줄었다는 결과만 놓고 보면, 원래라면 연구실 분위기가 들떠도 이상하지 않았다. 3.8퍼센트까지 낮춘 뒤 밤새 자연 방출을 거쳤고, 다음 날 아침 0.9퍼센트. 숫자만 보면 효율은 기대 이상이었다. 그러나 줄어든 마기가 회수석으로 이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순간부터 누구도 그 수치를 성과라고 부르지 않았다.에른은 연구실 바닥 전체에 측정침을 박았고, 아르센은 서쪽 정원 지맥과 대공성 지하 지맥을 각각 따로 표시했다. 기존 지도에는 두 흐름 사이에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실제 측정값은 달랐다. 아주 가느다란 지맥 하나가 연구실 아래를 지나 남서쪽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너무 약해서 평소에는 감지하기 어려웠고, 서쪽의 맑은 흐름이 세척 시험으로 조금 활성화되면서 그제야 반응이 선명해진 것이다.단테는 지도 위에 새로 그어진 얇은 선을 한동안 내려다봤다.“끝은?”“아직 못 찾았습니다.”에른이 대답했다.“방향은.”“남서쪽입니다. 대공성 밖으로 나갑니다.”“거리.”“현재 확인한 건 약 600미터. 그 뒤로는 흐름이 너무 약해집니다.”단테는 고개를 들었다.“오늘은 여기까지?”에른이 잠시 멈췄다.예전 같으면 대공이 직접 더 확인하자고 했을 질문이었다.오늘은 의미가 달랐다.에른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우선 성 안 구간만 더 확인하고, 외부 추적은 기사단 지형 담당과 마렌 님 기록을 같이 보겠습니다.”“좋아.”단테는 더 말하지 않았다.엘라는 연구실 바닥에 표시된 가느다란 선을 보며 손을 한 번 쥐었다 폈다. 검은 점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조금 전과 같은 방향감이 남아 있었다. 남서쪽. 희미하지만 분명한 감각.단테가 알아챘다.“아직 느껴져?”“조금요.”“아파?”“아닙니다.”“그럼.”그가 아주 짧게 말했다.“느낌 따라가지는 마.”엘라는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안 갑니다.”“바로 대답하네.”“저도 이제 압니다.”단테의 표정이 아주 조금 풀렸다.“뭘.”“궁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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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을 가져오지 않아도 됩니다

백은샘을 직접 확인하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은 오전 회의가 끝나기 직전이었다.처음에는 현장 조사를 나갈 계획이 없었다. 옛 남서 온실 아래 막힌 배수 지맥이 어디로 이어졌는지 확인했고, 그 끝에 현재도 남아 있는 백은샘이 있다는 것까지 찾았으니 다음 순서는 기록 조사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전날 단테가 먼저 ‘이건 건드리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고 말한 뒤라, 서쪽의 맑은 지맥을 세척용으로 사용할 계획도 일단 보류된 상태였다.그런데 에른이 오래된 대공성 원예 기록 한 장을 가져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백은샘 주변 식생 기록입니다.”단테가 문서를 받아들었다. 봄철 개화 시기, 야생동물 관찰 기록, 샘물 온도. 얼핏 보면 마법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기록을 남긴 사람도 마법사가 아니라 백여 년 전 대공성의 정원 관리인이었다.엘라는 단테 옆에서 복제본을 읽다가 한 문장에서 시선을 멈췄다.백은샘의 물은 한겨울에도 완전히 얼지 않으며, 샘 주변의 흰풀은 성내 서쪽 정원보다 보름가량 먼저 꽃을 피운다. 단, 샘물을 옮겨 심은 흰풀에는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물을 가져와도 안 됐네요.”엘라가 말하자 에른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서 확인할 가치가 있습니다.”단테가 물었다. “무엇을.”“따뜻한 물이 원인인지, 지맥 자체의 흐름이 원인인지요.”아르센이 지도 위 백은샘을 가리켰다. “만약 후자라면 우리가 필요한 건 샘의 마력을 가져오는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흐름의 형태만 분석할 수 있다면요.”그 말에 엘라가 고개를 들었다.선대 대공의 우회 마력에서도 같은 일을 했다. 선대의 마력을 계속 꺼내 쓰는 대신, 그들이 마기를 오래 담지 않고 다른 곳으로 넘겼던 흐름의 패턴을 일반 마력석에 복사했다. 그렇다면 맑은 지맥도 마찬가지일 수 있었다. 지맥을 세척수처럼 끌어다 쓰지 않고, 그것이 잔류 마기를 밀어내는 방식만 배울 수 있다면 백은샘을 건드릴 이유가 없어진다.단테도 같은 데까지 생각이 닿은 듯 문서를 다시 봤다.“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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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지 않아도 되는 힘

백은샘의 흐름을 본떠 만든 세척 구조는 다음 날 아침부터 다섯 번의 반복 시험에 들어갔다. 전날 한 번 성공했다고 해서 바로 현장 설계에 넣지 않기로 한 결정 때문이었다. 아르센은 같은 크기의 일반 마력석 세 개를 새로 준비했고, 에른은 각각 다른 산지에서 가져온 돌을 섞었다. 하나는 북부에서 흔히 쓰는 회색 마력석, 하나는 황실 기술단이 수도에서 가져온 표준석, 마지막 하나는 품질이 조금 떨어져 보조 장치에나 쓰던 갈색 마력석이었다.단테가 실험대 위 세 돌을 보고 물었다.“일부러 다른 걸 쓴 거야?”“네. 좋은 돌에서만 되는 구조면 북부 전체에 쓰기 어렵습니다.”아르센이 갈색 돌을 들어 보였다.“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실제 방어선에는 항상 최상급 마력석만 들어가지 않으니까요. 전쟁이 길어지거나 보급이 끊기면 이런 돌도 써야 합니다.”단테는 잠시 돌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재료가 있을 때만 안전한 체계는 결국 물자가 부족해지는 순간 누군가의 몸으로 부족분을 메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북부가 몇 번이나 그래왔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엘라는 안전선 밖에서 자료판을 받아들며 물었다.“오늘도 백은샘에서 가져오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거죠?”에른이 답했다.“없습니다. 어제 기록한 흐름 비율만 사용합니다. 7 대 3, 4 대 6, 5 대 5로 순차 변환하고 합류점에서 압력을 한번 낮춥니다.”“그 비율이 꼭 저 숫자여야 합니까?”아르센이 웃었다.“그걸 확인하는 게 오늘 시험 중 하나입니다.”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성공한 모양을 그대로 신앙처럼 반복하는 순간, 또 다른 고정된 답이 된다. 정말 중요한 건 백은샘을 똑같이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잔류 마기를 움직이게 했는지 찾는 일이었다.⸻첫 번째 반복 시험은 전날과 거의 같은 조건이었다.손상률 14퍼센트의 폐기 예정 전달석 안에 남은 오염을 3.6퍼센트까지 맞춘 뒤, 일반 마력을 세 갈래 흐름으로 흘렸다. 백은샘의 실제 마력을 가져온 것도 아니고, 신성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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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약한 돌을 먼저 버리지 않습니다

남은 여섯 번의 반복 시험은 이틀에 걸쳐 끝났다.두 번째와 세 번째 시험에서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네 번째에서 자동 제어석이 갈색 마력석의 내부 통로를 잘못 읽어 분배량을 6퍼센트 높이는 바람에 진동 수치가 기준선 가까이 올라갔고, 다섯 번째에서는 오염 마기의 점도가 예상보다 높아 세척 시간이 스물세 분까지 늘어났다. 여섯 번째에는 회수석의 흡수 속도가 세척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중간에 한 차례 정지해야 했고, 마지막 일곱 번째 시험에서는 일부러 가장 상태가 좋지 않은 일반석을 섞었다.완벽하게 같은 결과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대신 일곱 번 모두 사람의 마력이나 신성력을 사용하지 않았고, 백은샘을 포함한 자연 지맥에서도 힘을 끌어오지 않았다. 문제가 생긴 시험은 미리 정한 기준에서 멈췄고, 멈춘 뒤에도 마기가 다른 곳으로 새어나가지 않았다. 자동 제어석은 시험을 거칠 때마다 조금씩 수정되어, 마지막에는 각 전달석의 상태를 먼저 읽고 그 돌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흐름을 보내는 데 성공했다.일곱 번째 시험이 끝난 직후 아르센은 결과표를 테이블 한가운데 내려놓았다.“연구실 단계는 여기까지 가도 되겠습니다.”단테가 마지막 수치를 읽었다.“마지막 돌.”“잔류 오염 0.8퍼센트. 추가 균열 없습니다.”“제일 약한 거였다며.”“네. 현장 본선에 넣기에는 등급이 낮은 돌입니다.”단테는 갈색 마력석을 바라봤다. 처음 시험했을 때 진동을 일으켰던 것과 같은 종류였다. 원래 방식대로라면 품질 미달 판정을 받고 창고 한쪽으로 밀려났을 돌이었다. 그런데 흐름을 돌에 맞춰 조정하고 나자 다른 돌보다 조금 느릴 뿐 제 역할을 했다.“그러면 이 정도 돌까지 현장에서 쓸 수 있다는 건가.”에른이 고개를 끄덕였다.“주 전달석으로는 권하지 않습니다. 다만 부하가 낮은 구간이나 임시 교체석으로는 충분합니다.”“고급석 없다고 바로 멈추지는 않겠네.”“그렇습니다.”단테가 자료를 내려놓았다. “그게 좋군.”아르센은 곧바로 다음 설계도를 꺼냈다. 연구실 시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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