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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북부로 가야 합니다

“공녀님.”“네.”“지금 웃으셨습니까?”엘라는 책상 위의 서류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아닙니다.”맞은편에 앉아 있던 소년이 눈을 가늘게 떴다.“분명 웃으셨습니다.”“착각입니다.”“제가 틀렸다고요?”“네.”“왜요?”엘라는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지금 본인이 틀릴 수 있다는 걸 인정하신 겁니까?”소년의 입이 다물렸다.교실 뒤쪽에서 작은 웃음이 터졌다.아이들이 동시에 고개를 숙였다.엘라는 아무렇지 않게 다시 서류를 봤다.“자.”그리고.손가락으로 한 문장을 가리켰다.“다시 보겠습니다.”소년의 얼굴이 울상이 됐다.“또요?”“네.”“세 번째입니다.”“알고 있습니다.”“이번에도 틀렸습니까?”“아니요.”소년의 눈이 커졌다.“그럼 왜 다시 봅니까?”“맞았다고 해서 이유까지 맞는 건 아닐 수 있으니까요.”“…….”“왜 이 답을 골랐는지 설명해보십시오.”소년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그리고.다시 문제를 읽기 시작했다.교실은 조용했다.하지만.긴장된 침묵은 아니었다.아이들은 저마다 문제를 풀었고.막히면 손을 들었다.누군가는 먼저 질문했다.누군가는 옆 사람과 의견을 비교했다.그리고.교실 앞.엘라는 예전처럼 직접 답부터 말하지 않았다.기다렸다.물었다.필요하면 힌트를 줬다.가끔은.“그건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이제 그 말을 하는 데.조금도 부끄럽지 않았다.⸻몇 해가 흘렀다.황궁의 나무는 몇 번이나 꽃을 피웠고.눈도 여러 번 내렸다.아이들은 자랐다.그리고.엘라도 자랐다.어린 시절보다 훨씬 길어진 금빛 머리카락은 등 아래까지 내려왔다.검술 훈련 때문에 여전히 몸을 움직이기 편한 옷을 선호했고.황궁 수업이 있는 날이면 소매를 단정하게 걷어 올리는 버릇도 그대로였다.입이 빠른 것도.고집이 센 것도.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다만.예전보다 멈출 줄 알았다.자신이 아는 것과.모르는 것을 구분했고.상대가 원하는 도움과.자신이 주고 싶은 도움을 조금씩 구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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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멉니다

출발 전날.엘라는 짐을 싸다가 세 번째로 멈췄다.“이건 필요합니다.”시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엇이요?”“과자입니다.”“공녀님.”“네.”“저희는 지금 북부로 가는 겁니다.”“알고 있습니다.”“여행 기간이 보름 가까이 걸립니다.”“그래서 필요합니다.”시녀는 말문이 막혔다.엘라는 아주 진지했다.침대 위에는 옷보다 먹을 것이 더 많이 올라와 있었다.말린 과일.견과류.작은 비스킷.꿀에 절인 사과.그리고.테오도르가 보냈다는 레몬 쿠키 한 상자.시녀는 머리를 짚었다.“짐칸이 부족합니다.”엘라가 고개를 들었다.“마차가 몇 대입니까?”“네 대입니다.”“그런데요?”“공녀님 짐만 싣는 게 아니니까요.”“저는 필요한 것만 가져갑니다.”시녀의 시선이 침대 위를 훑었다.“이게요?”엘라도 따라봤다.잠시 침묵.“쿠키는 필요합니다.”“왜요?”“전하께서 주셨습니다.”“황태자 전하께서요?”“네.”“그럼 가져가야죠.”시녀의 태도가 바로 바뀌었다.엘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제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는 안 된다면서요.”“황태자 전하께서 주신 거라면 의미가 다릅니다.”“어떻게요?”“선물입니다.”“제가 산 과자도 제 마음을 위한 선물입니다.”시녀는 대답하지 않았다.엘라는 승리한 얼굴로 상자를 다시 가방 안쪽에 넣었다.그때.문이 열렸다.“아직도 짐 싸니?”펠리시아 공작이었다.엘라는 고개를 들었다.“거의 끝났습니다.”공작은 방 안을 보고 그대로 굳었다.“이게 거의 끝난 거냐?”“네.”“이건 이사 수준인데.”“보름입니다.”“가는 데만.”엘라가 잠시 멈췄다.“그렇네요.”“돌아오는 데도 보름.”“그렇네요.”“북부에 얼마나 있을지도 모른다.”엘라는 대답하지 않았다.그 사실은.생각보다 더 묵직했다.이번 파견에 정확한 종료 날짜는 없었다.한 달이 될 수도.두 달이 될 수도.그보다 길어질 수도 있었다.엘라가 북부에 있는 동안.단테의 상태를 확인하고.필요하다면 신성력 반응을 시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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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에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엘라는 다음 날 아침.정말로 다시 그 문 앞에 섰다.휴고는 그녀를 보자 잠시 눈을 감았다.“오셨군요.”“네.”“정말로요.”엘라가 고개를 갸웃했다.“어제 말씀드렸잖아요.”“보통은.”휴고가 말했다.“전하께 거절당하고 나면 하루 정도는 마음을 정리하십니다.”“저는 정리할 게 없습니다.”“왜요?”“싫다고 하셨으니까 안 들어갔고.”“…….”“오늘 다시 물어보러 왔습니다.”휴고는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이상할 정도로 단순했다.억지로 밀고 들어가지도 않고.그렇다고 포기하지도 않는다.문을 닫았다고 떠나지도 않는다.“노크하겠습니다.”“네.”똑.똑.안쪽은 조용했다.휴고가 말했다.“전하.”잠시 뒤.낮은 목소리가 들렸다.“왜.”“펠리시아 공녀께서 오셨습니다.”“돌려보내.”엘라가 바로 말했다.“대공 전하.”문 너머에서 짧은 침묵.“또 왔나.”“네.”“왜.”“어제 오늘 다시 여쭤보겠다고 했습니다.”“그걸 꼭 지켜야 하나?”엘라는 잠시 생각했다.“안 지킬 이유가 없었습니다.”휴고가 입술을 꾹 눌렀다.엘라는 문을 바라봤다.“오늘은 제가 들어가도 됩니까?”단테의 대답은 빠르지 않았다.한참 뒤.“싫다.”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그리고.정말 돌아섰다.휴고의 눈이 커졌다.“공녀님?”엘라가 그를 바라봤다.“왜요?”“끝입니까?”“네.”“정말요?”“오늘은 싫다고 하셨잖아요.”휴고는 말문이 막혔다.엘라는 그대로 몇 걸음 걸었다.그러다.멈췄다.다시 돌아봤다.“아.”휴고가 안도한 얼굴이 됐다.뭔가 더 하려나 보다.엘라가 문을 향해 말했다.“대공 전하.”“…….”“내일도 다시 여쭤보겠습니다.”휴고의 표정이 묘해졌다.안쪽에서.단테가 낮게 말했다.“귀찮군.”엘라는 웃었다.“저도 이제 그 말씀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그리고.이번에는 정말 돌아갔다.⸻그날 오후.엘라는 북부 대공성의 교육 시설부터 살펴봤다.공식적인 파견 명목이.황실 교육 및 관리 체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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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보면 조금 다릅니다

엘라는 다음 날.정확히 오후에 찾아갔다.너무 일찍도.너무 늦게도 아니었다.복도 끝에 있는 시계를 한번 확인하고.단테의 방문 앞에 섰다.휴고는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정확하시군요.”엘라가 물었다.“무엇이요?”“오후에 오라고 하셨는데 정말 오후에 오셨습니다.”“아침에 오면 싫어하실 것 아닙니까?”“그렇겠지요.”“그럼 왜 아침에 옵니까?”휴고가 잠시 말이 없었다.너무 당연하게 말해서.반박할 게 없었다.엘라는 문을 바라봤다.“오늘 상태는 어떻습니까?”“어제보다는 조금 나으십니다.”“조금.”“네.”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조금 나은 겁니다.”휴고가 웃었다.“좋아지셨다고는 안 하십니까?”“조금 나으시다면서요.”“그렇습니다.”“그럼 그만큼만 알아야죠.”휴고의 눈빛이 아주 조금 달라졌다.그 역시.지난 몇 년 동안 배웠던 일이었다.하루 좋아졌다고.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노크하겠습니다.”“네.”똑.똑.잠시 뒤.안에서 단테의 목소리가 들렸다.“들어.”엘라의 눈이 커졌다.휴고도.둘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저한테 하신 말씀입니까?”엘라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휴고 역시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아마도요.”문 안에서.“다 들린다.”낮고 짜증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엘라는 바로 문 쪽을 바라봤다.“죄송합니다.”“들어오라니까.”엘라의 손이 문손잡이로 향했다.그러다.멈췄다.“대공 전하.”안쪽에서 긴 한숨.“또 뭐지.”“제가 들어가도 된다는 뜻이 맞습니까?”“…….”“정확하게 확인하려고요.”몇 초.침묵.그리고.“그래.”단테가 말했다.“들어와.”그제야.엘라는 손잡이를 잡았다.찰칵.문을 열었다.처음 보인 것은.어둠이었다.커튼이 절반 이상 닫혀 있었다.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은 하나뿐.벽난로에는 불이 피워져 있었지만.방 안 전체가 밝지는 않았다.엘라는 문턱 안쪽에서 멈췄다.그리고.그를 봤다.창가에 앉아 있는 남자.검은 머리카락.창백한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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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내밀기 전에 묻겠습니다

다음 날 오후.엘라는 단테의 방문 앞에 서서.잠시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평범한 손이었다.검을 오래 쥐어서 손바닥에는 옅은 굳은살이 있었고.손목에는 레온이 준 새 보호대가 채워져 있었다.그리고.그 안에는.사람들이 강하다고 말하는 신성력이 있었다.사제들이 정화에 실패한 마기를.조금 더 오래 눌러둘 수 있을지도 모르는 힘.황제가 자신을 북부로 보낸 가장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했다.하지만.엘라는 아직.그 힘을 단테에게 한 번도 쓰지 않았다.휴고가 옆에서 물었다.“긴장하십니까?”“조금요.”“오늘은 무엇을 하실 생각입니까?”엘라는 고개를 들었다.“모릅니다.”휴고가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그렇군요.”“왜요?”“공녀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오히려 안심됩니다.”엘라의 눈이 가늘어졌다.“처음에는 제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같지 않으셨습니까?”“조금.”“집사님.”“지금은 아닙니다.”휴고가 재빨리 덧붙였다.엘라는 문을 한번 바라봤다.“대공 전하 상태를 먼저 보고 결정하겠습니다.”“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나으십니다.”“수면은요?”“세 시간 조금 넘게.”“식사는?”“절반 이상.”“마기는요?”“오전에는 안정적이었습니다.”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노크했다.똑.똑.“대공 전하.”잠시 뒤.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들어와.”이번에는.엘라도 놀라지 않았다.그래도.손잡이를 잡기 전 물었다.“들어가겠습니다?”문 너머에서 깊은 한숨이 들렸다.“그래.”그제야 문을 열었다.⸻어제보다 방이 조금 밝았다.커튼 한쪽이 더 걷혀 있었다.단테는 소파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었다.엘라는 문턱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미간을 찌푸렸다.“업무 보십니까?”단테가 눈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보면 모르나.”“치료진이 허락했습니까?”그제야.단테가 그녀를 바라봤다.“네가 내 치료진인가?”“아닙니다.”“그럼.”“그래도 궁금합니다.”단테는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두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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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라고 하면 멈추겠습니다

다음 날 오후.엘라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단테의 방 앞에 도착했다.그리고.문을 두드리지 않았다.휴고가 그런 그녀를 바라봤다.“왜 안 들어가십니까?”“아직 시간 전입니다.”“십 분 정도인데요.”“대공 전하가 오후에 오라고 하셨습니다.”“지금도 오후입니다.”엘라는 복도 끝 시계를 바라봤다.“그래도 어제랑 비슷한 시간에 오는 게 좋지 않을까요?”휴고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긴장하시는군요.”엘라가 바로 대답했다.“네.”숨기지 않았다.휴고가 조금 웃었다.“이번에는 바로 인정하십니다.”“안 무서운 척한다고 안 무서워지는 건 아니잖아요.”“무엇이 제일 걱정되십니까?”엘라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제가 생각한 것보다 신성력이 강하게 반응하는 것.”“…….”“대공 전하의 마기가 예상보다 크게 반응하는 것.”“…….”“그리고.”잠시 말을 멈췄다.“제가 멈춰야 할 때 못 멈추는 것.”휴고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왜요?”“효과가 보이면.”엘라는 솔직하게 말했다.“조금만 더 하고 싶어질 수도 있으니까요.”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엘라는 손가락을 한번 쥐었다 폈다.“사람을 도우려고 할 때.”“…….”“도움이 되는 것 같으면 더 해주고 싶잖아요.”“그렇지요.”“그런데.”엘라는 문을 바라봤다.“어제 약속했습니다.”멈추라고 하면.설득하지 않겠다고.휴고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그 약속만 기억하시면 되겠군요.”“네.”엘라는 숨을 한번 길게 내쉬었다.마침.시계가 정각을 알렸다.“갑니다.”휴고가 웃음을 참았다.“전쟁터 가시는 분 같습니다.”“비슷하게 긴장됩니다.”“전하께서 들으시면 좋아하시겠군요.”“그건 말씀하지 마십시오.”엘라는 노크했다.똑.똑.잠시 뒤.“들어와.”오늘도.허락이 먼저 왔다.엘라는 손잡이를 잡았다.“들어가겠습니다.”“그래.”문이 열렸다.단테는 침대가 아니라.소파에 앉아 있었다.어제보다는 얼굴빛이 조금 나아 보였다.적어도.엘라 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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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워진다고 꼭 닿아야 하는 건 아닙니다

다음 날.엘라는 단테를 찾아가지 않았다.정확히는.찾아갈 수 없었다.“오늘은 안 됩니다.”세리아가 단호하게 말했다.엘라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이제 안 저립니다.”“압니다.”“신성력도 정상이고요.”“그것도 압니다.”“그럼 왜 안 됩니까?”세리아는 팔짱을 꼈다.“어제 처음으로 서로 다른 두 힘이 직접 반응했습니다.”“접촉도 안 했습니다.”“그래서 더 봐야 합니다.”“무엇을요?”“후발 반응.”엘라가 입을 다물었다.세리아는 책상 위 기록지를 펼쳤다.“전하의 마기 수치는 어젯밤까지 다시 상승하지 않았습니다.”엘라의 눈빛이 밝아졌다.“그럼 좋은 것 아닙니까?”“좋은 변화일 수 있습니다.”세리아가 바로 말을 고쳤다.“하지만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습니다.”“…….”“공녀님의 신성력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았는지 확인해야 하고요.”엘라는 자신의 손가락을 몇 번 움직였다.정말 멀쩡했다.그래도.반박하지 않았다.“오늘 하루 쉬고.”세리아가 말했다.“내일 다시 확인하겠습니다.”엘라가 한숨을 쉬었다.“알겠습니다.”세리아의 눈썹이 움직였다.“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이시는군요.”“싫긴 합니다.”“그런데요?”“제가 어제 대공 전하께 상태를 보고 결정하자고 했습니다.”엘라는 시무룩한 얼굴로 덧붙였다.“저만 예외라고 하면 이상하잖아요.”세리아가 웃었다.“정확합니다.”엘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문 앞에서 멈췄다.“그런데.”“네.”“대공 전하께는 말씀드렸습니까?”“무엇을요?”“제가 오늘 안 간다고요.”세리아가 눈을 깜빡였다.“굳이 말씀드려야 합니까?”엘라가 잠시 생각했다.어제 단테는.다음 치료를 확정하지 않았다.자신 역시.오늘 반드시 찾아가겠다고 말하지 않았다.그러니.약속을 어긴 것은 아니었다.그런데.왠지.마음에 걸렸다.“제가 말씀드리고 오겠습니다.”세리아가 물었다.“치료는 안 됩니다.”“대화만요.”“오래 계셔도 안 되고요.”“알겠습니다.”“신성력 사용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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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두 걸음 반입니다

다음 날 오후.엘라는 문 앞에 서기 전에 먼저 세리아를 찾아갔다.“상태는요?”세리아가 고개를 들었다.“누구요?”엘라가 잠시 멈췄다.“둘 다요.”세리아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좋은 질문입니다.”엘라는 의자에 앉았다.“저부터 말씀해주십시오.”“신성력 흐름 정상.”“손은요?”“문제없습니다.”“후발 반응은?”“없었습니다.”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대공 전하는요?”세리아는 옆에 놓인 기록지를 펼쳤다.“수면 세 시간 반.”엘라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어제보다 줄었네요.”“네.”“두통은요?”“오전에는 중간 정도였고, 지금은 약합니다.”“마기 수치는?”“어제와 큰 차이 없습니다.”엘라는 잠시 생각했다.“그럼 오늘 실험은.”“가능은 합니다.”세리아가 먼저 말했다.“하지만.”엘라는 기다렸다.“두 걸음 반까지 반드시 가야 하는 건 아닙니다.”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네.”“세 걸음에서 멈출 수도 있고.”“…….”“아예 안 할 수도 있습니다.”“알겠습니다.”“그리고 공녀님.”“네.”세리아가 이번에는 엘라를 똑바로 바라봤다.“어제처럼 전하 상태만 보시면 안 됩니다.”엘라가 눈을 깜빡였다.“제 상태도요?”“네.”“알고 있습니다.”세리아의 눈썹이 올라갔다.엘라는 조금 억울했다.“정말입니다.”“그럼 실험 중 공녀님 손이 저리거나.”“…….”“신성력이 통제하기 어렵거나.”“…….”“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바로 말씀하십시오.”“네.”“‘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금지.”엘라의 입이 다물렸다.세리아는 아주 정확하게 그녀가 할 말을 막았다.“알겠습니다.”“좋습니다.”엘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문으로 향하려다가.다시 돌아봤다.“세리아 치료사님.”“네.”“혹시.”잠시 망설였다.“오늘 접촉 이야기가 다시 나오면요.”세리아의 표정이 진지해졌다.“전하께서 원하십니까?”“어제는 아직 아니라고 하셨습니다.”“그럼 오늘 다시 확인하면 됩니다.”“네.”“하지만 치료적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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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같이 걸어보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북부에는 드물게 햇빛이 들었다.눈은 여전히 쌓여 있었지만.구름 사이로 비친 빛이 대공성의 검은 벽을 희미하게 밝혔다.엘라는 창문을 열었다가.삼 초 만에 닫았다.“……춥습니다.”뒤에서 시녀가 웃음을 참았다.“오늘은 따뜻한 편입니다.”엘라가 천천히 돌아봤다.“지금요?”“네.”“북부 사람들은 따뜻하다는 말의 뜻을 다시 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수도 분들은 대부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엘라는 아버지가 억지로 넣어준 두꺼운 외투를 내려다봤다.이제는.조금 고마웠다.물론.편지에 적을 생각은 없었다.아버지가 알면 평생 이야기할 테니까.아침 식사 뒤.엘라는 세리아에게 향했다.오늘도 치료 가능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하지만.치료실에 들어가자마자.조금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세리아가 기록지를 들고 있었고.휴고도 옆에 서 있었다.둘 모두.묘한 얼굴이었다.“무슨 일입니까?”엘라가 물었다.휴고가 먼저 말했다.“전하께서 오늘 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엘라는 눈을 깜빡였다.“그렇습니까?”“네.”“상태가 안 좋으십니까?”세리아가 대답했다.“그건 아닙니다.”“그럼요?”휴고가 한숨을 쉬었다.“나가시겠답니다.”“어디를요?”“성 밖으로.”엘라의 표정이 바뀌었다.“허락됐습니까?”세리아가 바로 말했다.“아닙니다.”역시.엘라는 잠시 눈을 감았다.“왜 나가신답니까?”휴고가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남쪽 외성 근처.설화초 군락지와 인접한 작은 마을.밤사이 눈이 무너지며 창고 하나가 파손됐고.대피민용 식량 일부가 젖었다.“기사단이 이미 갔습니다.”휴고가 말했다.“행정관도요.”“그럼 대공 전하께서 직접 가실 이유가 있습니까?”휴고가 아주 깊게 한숨을 쉬었다.“제가 그것을 한 시간째 설명하고 있습니다.”“한 시간이나요?”“정확히는 오십이 분입니다.”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기록하셨군요.”“공녀님께 배웠습니다.”“좋은 변화입니다.”세리아가 둘을 바라봤다.“지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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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하는 게 더 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날. 단테는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정확히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수면 두 시간. 두통 중간 이상. 아침 식사는 세 숟갈. 마기 수치는 전날보다 높았다. 세리아는 기록지를 확인하자마자 말했다. “오늘 외부 이동은 없습니다.” 단테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치료 실험도 하지 않습니다.” “알아.” “업무는.” “본다.” 세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한 시간.” “두 시간.” “한 시간.” “한 시간 반.” “한 시간.” 단테가 그녀를 바라봤다. 세리아도 물러서지 않았다. “어제 외부 이동하셨습니다.” “폭주 안 했어.” “피로가 누적됐습니다.” “이 정도는.” 말이 멈췄다. 단테가 미간을 눌렀다. 세리아는 기다렸다. 요즘 그가. 그 말을 고치려 노력하는 걸 알고 있었다. 한참 뒤. 단테가 말했다. “……업무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시간은요?” “적어.” “그럼 사십 분.” 단테가 세리아를 노려봤다. “왜 줄어들지.” “협상하려고 하시니까요.” “치료사가 협박도 하나.” “환자가 말을 안 들으면요.” 문 옆에 서 있던 휴고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동의합니다.” 단테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넌 왜 항상 저쪽 편이지.” 휴고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전하 편이라서 그렇습니다.” “말이 안 맞잖아.” “아닙니다. 아주 정확합니다.” 단테는 결국 한숨을 쉬었다. “한 시간.” 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대신.” “또 무엇입니까?” “급한 보고만.” “제가 고르겠습니다.” “내 보고서를?” “네.” 단테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휴고가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전하께서 고르시면 전부 급하다고 하실 겁니다.” 단테는 반박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럴 생각이었다. ⸻ 엘라가 그 소식을 들은 것은. 점심 무렵이었다. 그녀는 북부 교육반 수업을 마치고 나오다 휴고와 마주쳤다. “집사님.” “공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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