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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제가 멈추라고 하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엘라는 북부 교육실에서 아이들과 싸우고 있었다.정확히는.말로.“다시 하겠습니다.”“공녀님.”“네.”“벌써 네 번째입니다.”“알고 있습니다.”열여섯 살쯤 된 견습기사 로웬이 억울한 얼굴로 자신의 답안을 내려다봤다.오늘 문제는 단순했다.북부 외곽 초소 세 곳.지원 가능한 병력은 스무 명.그중 어디에 몇 명을 배치할 것인가.로웬은 처음부터 같은 답을 고집했다.가장 위험한 제3초소에 전원 배치.“왜 안 됩니까?”로웬이 물었다.“안 된다고 하지 않았습니다.”“그런데 계속 다시 하라고 하시잖아요.”“이유를 설명해보라고 했습니다.”“제3초소가 제일 위험합니다.”“압니다.”“그럼 거기 사람을 많이 보내야죠.”“제1초소는요?”“덜 위험합니다.”“제2초소는?”“거기도요.”엘라는 턱을 괴었다.“그러면 제3초소에 스무 명을 전부 보내고.”“네.”“그 사이 제1초소가 공격당하면요?”로웬이 멈칫했다.“……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없는 건 아니죠?”“네.”“제2초소는?”“…….”“물자가 가장 많이 쌓여 있습니다.”“네.”“거기가 무너지면 어떻게 됩니까?”로웬의 표정이 조금씩 굳어졌다.엘라는 기다렸다.결국.그가 답안을 다시 봤다.“나눠야 합니까?”엘라가 어깨를 으쓱했다.“모르겠습니다.”로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또요?”교실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엘라도 웃었다.“제가 나누라고 하면 그대로 나누실 겁니까?”“공녀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제가 실제 북부 방어전을 몇 번 해봤습니까?”로웬이 입을 다물었다.“없습니다.”“그렇죠.”엘라는 칠판에 적힌 세 초소를 가리켰다.“저보다 여러분이 아는 것도 있습니다.”“…….”“그러니까.”“…….”“제 말을 정답처럼 듣지 마십시오.”로웬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다시 해보겠습니다.”“네.”그때였다.교육실 밖이 소란스러워졌다.빠른 발소리.기사들의 낮은 목소리.엘라가 문 쪽을 바라봤다.평소와 달랐다.잠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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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점은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습니다

사흘 뒤.황궁에서 답이 왔다.생각보다 빨랐다.아침 식사를 마치기도 전.푸른빛을 두른 전령새 한 마리가 대공성 중앙탑으로 날아들었다.평범한 전령새가 아니었다.황실 직속 마법 전령.그 다리에 매달린 것은.편지 한 장이 아니라.작은 공간 보관함이었다.휴고가 그것을 들고 엘라를 찾아왔을 때.그녀는 빵을 입에 문 채였다.“공녀님.”“네.”“황궁에서 왔습니다.”엘라의 눈이 바로 커졌다.빵을 내려놓았다.“벌써요?”“황실 최고 등급 전령입니다.”“폐하께서 보내셨습니까?”“봉인은 황제 폐하와 황실 신성력 연구원 공동입니다.”엘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러다.다시 빵을 봤다.반쯤 먹었다.잠시 고민.그대로 집었다.휴고의 시선이 빵으로 향했다.엘라가 진지하게 말했다.“중요한 일일수록 식사는 해야 합니다.”“아무 말씀도 안 드렸습니다.”“눈으로 하셨습니다.”“그런 기술은 전하께 배우셨습니까?”엘라가 입을 다물었다.요즘.이 성 사람들이 점점 닮아가는 것 같았다.좋지 않았다.마법 연구실.엘라가 도착했을 때.단테는 이미 와 있었다.그리고.그녀를 보자마자.빵을 봤다.엘라는 바로 말했다.“식사 중이었습니다.”“알아.”“왜 그렇게 보십니까?”“아무 말도 안 했는데.”엘라가 멈췄다.휴고가 아주 조용히 옆으로 시선을 피했다.단테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앉아.”엘라는 억울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연구실 중앙에는.황궁에서 온 보관함이 놓여 있었다.에른.세리아.휴고.단테.엘라.필요한 사람만 모였다.오염된 마력석은 여전히.연구실 깊은 격리실 안에 봉인되어 있었다.지난 사흘 동안.엘라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단테와의 신성력 치료도 중단한 상태였다.뜻밖에도.단테는 한 번도 재촉하지 않았다.물론.둘째 날쯤.“황궁은 언제 답하지.”라고 세 번 물었다는 이야기는 휴고에게 들었다.엘라는 아직 그걸 놀리지 않았다.나중을 위해 아껴두고 있었다.“열겠습니다.”에른이 말했다.보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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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에 대공 전하가 있습니다

지도 중앙에서 번진 검은빛은.오래가지 않았다.한 번.쿵.마치 심장이 뛰듯 빛났다.그리고.사라졌다.연구실 안에는.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단테의 손등에서 피어올랐던 마기 역시 천천히 가라앉았다.엘라는 가장 먼저.그의 손을 봤다.“대공 전하.”단테가 고개를 들었다.“왜.”“지금 어떠십니까?”“…….”그는 바로 괜찮다고 하지 않았다.잠시.자신의 몸을 확인했다.“가슴이.”“네.”“조금 무겁다.”“통증은요?”“없어.”“두통.”“약해.”“마기는요?”단테는 손을 한 번 쥐었다 폈다.“평소보다 움직이는 느낌은 있는데.”“…….”“폭주할 것 같지는 않아.”엘라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세리아도 바로 단테의 마력 수치를 확인했다.“상승은 있었습니다.”“얼마나.”“기존보다 11퍼센트 정도.”휴고의 표정이 굳었다.“많은 것 아닙니까?”“단순 수치만 보면 그렇습니다.”세리아가 말했다.“하지만 흐름이 다릅니다.”“어떻게.”엘라가 물었다.세리아는 측정판을 내밀었다.평소 단테의 마기가 올라올 때는.선이 제멋대로 흔들렸다.폭주 직전에는.거의 찢어질 듯 넓게 퍼졌다.그런데.조금 전 기록은 달랐다.일정했다.쿵.쉬고.쿵.다시 쉬고.마치.무언가와 박자를 맞춘 듯.“이건.”엘라가 중얼거렸다.“폭주가 아닙니다.”“네.”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적어도 지금까지 저희가 보던 폭주 형태는 아닙니다.”단테의 시선이.지도 중앙에 머물렀다.“그러면.”그가 말했다.“내 마기가 저 마법진에 반응한 건가.”에른이 대답했다.“가능성이 높습니다.”“반대는.”“예?”단테가 고개를 들었다.“내 마기에.”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마법진이 반응한 가능성.”연구실이 다시 조용해졌다.에른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그것도.”“…….”“배제할 수 없습니다.”엘라가 지도를 바라봤다.스물일곱 개의 점.그것을 잇는 선.옛 발테르의 문장.그리고.중앙.대공성.정확히는.단테가 서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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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이 사람이어서는 안 됩니다

다음 날 아침, 대공성의 오래된 문서 보관실에는 평소보다 많은 책이 쌓여 있었다.발테르 가문의 족보, 역대 대공들의 개인 기록, 북부 방어선 보수 내역, 선대 대공들이 황실과 주고받았던 서신까지. 휴고가 밤새 찾아낸 것들이 긴 테이블 위를 거의 덮고 있었다. 엘라는 그 앞에 앉아 책 한 권을 펼쳤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간을 찌푸렸다.“이건 왜 이렇게 쓰여 있습니까?”맞은편에서 다른 기록을 보고 있던 단테가 고개를 들었다.“뭐가.”“사람 이름이 너무 많습니다.”“족보니까.”“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다 비슷합니까?”단테는 잠시 족보 쪽을 바라봤다. 엘라의 손가락 아래에는 오래전 발테르 가문 남성들의 이름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다니엘, 다미안, 다리우스, 데미트리. 몇 장을 넘기자 비슷한 이름이 또 나왔다.“가문 전통이었겠지.”“읽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은 전통 같습니다.”“칠백 년 전 사람이 네 편의를 생각했겠나.”엘라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후대 사람을 배려하는 것도 중요합니다.”단테가 피식 웃었다.“그건 네가 족보를 읽기 싫어서 하는 말 같은데.”“조금은 맞습니다.”문서 끝에서 내용을 정리하던 휴고가 웃음을 참았다. 전날까지 대공성 지하에서 정체불명의 문을 발견하고, 발테르를 ‘그릇’이라 부르는 고대 문구까지 읽었던 사람들답지 않게 아침의 시작은 평범했다.엘라는 그게 오히려 좋았다.모든 순간이 심각할 필요는 없었다. 무서운 것을 알아냈다고 밥을 먹지 않을 수도 없었고, 모르던 비밀이 나타났다고 하루 종일 겁에 질려 있을 수도 없었다. 사람은 그런 와중에도 족보의 이름이 헷갈린다고 투덜거리고, 차가 식었다고 새로 가져오고, 옆 사람이 책을 너무 크게 넘기면 시끄럽다고 말하며 살아갔다.그게 지금의 북부였다.그리고 어쩌면, 지금의 단테이기도 했다.엘라는 다시 기록으로 시선을 내렸다.“여기 있습니다.”그 말에 단테의 표정이 바로 달라졌다.엘라가 펼친 것은 약 사백 년 전의 가문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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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선택이 정답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엘라는 평소보다 조금 늦게 문서 보관실에 도착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전날 너무 오래 기록을 들여다본 탓에 눈이 뻑뻑했고, 세리아가 아침 식사까지 전부 마친 뒤에 움직이라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엘라는 억울했지만 반박하지 않았다. 요즘 들어 자신도 무리하는 습관이 있다는 말을 너무 자주 들어서, 괜히 버티다가 또 단테에게 지적당하는 게 더 싫었다. 문을 열자 단테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긴 테이블 위에는 어제 보지 못한 기록 몇 권이 더 올라와 있었고, 휴고는 반대편 책장을 뒤지고 있었다. 엘라는 문 앞에서 잠시 멈춰 단테를 봤다. “대공 전하.” 단테가 책에서 시선을 들었다. “왜.” “몇 시부터 계셨습니까?”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인사보다 그게 먼저인가.” “중요하니까요.” “한 시간 전.” 엘라는 바로 휴고를 봤다. 휴고가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 “한 시간 반입니다.” 단테의 표정이 굳었다. “휴고.” “전하께서 아침을 드신 시간부터 계산했습니다.” “그걸 왜 계산해.” “공녀님께서 물으실 것 같아서요.” 엘라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준비입니다.” 단테는 둘을 번갈아 보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 둘이 요즘 너무 잘 맞는 것 같은데.” “대공 전하가 자꾸 숨기시니까 그렇습니다.” “안 숨겼어. 한 시간쯤이라고 했잖아.” “한 시간과 한 시간 반은 다릅니다.” “삼십 분이야.” “삼십 분이면 수업 하나를 할 수 있습니다.” “넌 뭐든 수업 기준으로 생각하나.” “직업병일 수도 있습니다.” 단테는 더 말해봐야 소용없다는 듯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엘라는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어제보다 문단이 더 촘촘한 기록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조금 피곤했지만, 오늘은 분명히 찾아야 할 것이 있었다. 역대 대공들이 정말 북부의 마기를 받아왔다면, 누가 처음 그 방식을 만들었는지. 왜 그걸 시작했고, 왜 후대에까지 이어졌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 방법밖에 없었는지. 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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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간다고 같은 방식으로 걷는 건 아닙니다

동쪽 옛 감시탑으로 출발하기로 한 날, 엘라는 새벽부터 대공성 앞마당에 나와 있었다.눈은 그쳤지만 밤새 기온이 내려가 바닥이 단단하게 얼어 있었다. 말의 숨이 하얗게 퍼졌고, 기사들은 안장과 짐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조금 들떠 있었을 엘라도 오늘만큼은 장갑을 다시 조여 매며 주변을 꼼꼼히 살폈다. 목적지는 첫 번째 옛 감시탑. 대공성에서 말을 타고 세 시간가량 걸리는 거리였고, 현재는 정식 초소로 쓰이지 않아 길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고 했다.무엇보다 이번 조사는 단순한 답사가 아니었다.발테르 대공의 몸을 망가뜨리는 마기 유입을 우회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오래전에 사라진 길을 찾는 일이었다.“공녀님.”엘라가 돌아보자 레온이 준 손목 보호대 위로 두꺼운 장갑을 끼우던 시녀가 외투 단추를 하나 더 잠갔다.“답답합니다.”“공작 각하께서 꼭 목까지 잠그라고 하셨습니다.”“아버지가 여기까지 따라온 것도 아닌데요.”“출발 전날 편지가 왔습니다.”엘라가 멈췄다.“……뭐라고요?”시녀가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엘라가 추운 지역으로 나간다고 하면 외투 단추를 끝까지 잠그게 하시오.’라고.”엘라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도대체 북부 대공성 시녀에게까지 어떻게 지시를 전달한 걸까.“아버지는 북부에 정보망이라도 있으십니까?”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있는 것 같은데.”엘라가 돌아봤다.단테가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검은 승마복 위에 두꺼운 외투를 걸쳤고, 허리에는 검을 찼다. 평소 방 안에서 보던 모습보다 훨씬 단정했지만, 엘라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의 얼굴부터 살폈다.창백하긴 했다.그래도 어제보다 눈 밑 그늘이 조금 옅었다.단테가 그녀의 시선을 알아챘다.“왜.”“상태 확인 중입니다.”“눈으로?”“우선은요.”단테가 코웃음을 쳤다. “세리아한테 이미 검사받았어.”엘라는 바로 옆을 봤다. 마침 계단을 내려오던 세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수면 네 시간 반, 아침 식사 절반 이상. 마기 수치는 평소보다 약간 높
last updateปรับปรุงล่าสุด : 202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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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간다고 두고 가는 건 아닙니다

다음 날 아침, 엘라는 두 번째 감시탑으로 갈 준비를 하다가 세리아에게 붙잡혔다.정확히는 엘라가 아니라 단테가 붙잡혔다.“오늘 전하는 안 됩니다.”세리아의 말은 단호했다. 단테는 이미 승마복까지 갖춰 입은 채 치료실 한가운데 서 있었고, 엘라는 그 옆에서 장갑을 끼다 말고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휴고와 에른은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 대화가 처음은 아닌 듯했다.단테가 낮게 물었다.“이유.”“밤사이 마기 수치가 올랐습니다. 두통도 어제보다 강하고요.”“이동 못 할 정도는 아니야.”“저는 이동 가능 여부만 보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어제 하루 동안 세 시간 넘게 외부에 계셨고, 오염 마력석 근처에서 반응도 있었습니다. 오늘 또 설원으로 나가시면 내일 상태까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두 번째 감시탑만 보고 돌아오면 돼.”“어제도 첫 번째만 보고 돌아오신다고 하셨습니다.”“실제로 그랬잖아.”세리아가 잠시 눈을 감았다.엘라는 괜히 시선을 피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이 상황에서 단테의 편을 들면 자신까지 함께 쫓겨날 것 같았다.“전하.”세리아가 차분히 말했다.“오늘 쉬십시오.”단테의 턱이 굳었다.“우회로가 살아 있는지 확인해야 해.”“압니다.”“시간 끌 일이 아니야.”“그렇다고 전하께서 하루 쉬는 동안 북부가 무너지는 것도 아닙니다.”“그건 모르잖아.”세리아가 바로 대답하려던 순간, 엘라가 입을 열었다.“저는 갈 수 있습니까?”단테의 고개가 곧바로 돌아왔다.“엘라.”“왜요?”“지금 내 이야기 중이잖아.”“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세리아가 엘라를 살폈다.“공녀님 상태는 문제없습니다. 신성력 수치도 정상이고, 지난번 검은 점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엘라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에른 마법사님과 기사분들하고 다녀오겠습니다.”단테의 얼굴이 굳었다.“안 돼.”이번에는 엘라의 눈썹이 올라갔다.“왜요?”“그냥.”“그건 이유가 아닙니다.”“위험하잖아.”“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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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는 문을 여는 데만 쓰이지 않습니다

선대 대공의 개인 서고는 대공성 서쪽 끝에 있었다.평소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이라 복도부터 분위기가 달랐다. 창문은 작았고, 벽에는 오래된 초상화 몇 점이 걸려 있었다. 먼지는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공간 전체에는 오랫동안 닫혀 있던 방 특유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엘라는 문 앞에 서서 손잡이를 바라봤다.“여기는 왜 계속 닫아두셨습니까?”단테는 잠시 문을 보다가 대답했다.“굳이 들어갈 이유가 없었어.”“선대 대공 각하의 물건이 있어서요?”“그것도 있고.”엘라는 더 묻지 않았다.단테가 아버지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는 걸 아직 거의 듣지 못했다. 어릴 때 무엇을 배웠는지, 어떤 말을 들었는지는 조금씩 나왔지만 정작 선대 대공이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서는 늘 짧았다.휴고가 옆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냈다.“현재 서고 문은 일반 열쇠로도 열립니다.”엘라가 눈을 깜빡였다.“그 검은 열쇠는 여기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니었습니까?”“아닙니다.”휴고가 고개를 저었다.“전하께서 기억하신 것은 선대 대공 각하의 책상 안에 보관되어 있던 별도의 열쇠입니다.”단테가 낮게 덧붙였다.“내가 어렸을 때 한 번 봤어.”“그 이후에는요?”“없어졌다고 생각했지.”휴고가 문을 열었다.철컥.오랫동안 닫혀 있던 문이 천천히 안쪽으로 밀렸다.엘라는 무심코 단테를 먼저 봤다.그는 움직이지 않았다.표정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그런데 오른손이 아주 미세하게 굳어 있었다.엘라는 조용히 물었다.“들어가도 괜찮으십니까?”단테가 그녀를 봤다.“내 방도 아닌데.”“그래도요.”잠깐의 침묵.“……그래.”그제야 엘라가 안으로 들어갔다.서고는 생각보다 넓었다.한쪽 벽 전체가 책장이었고, 반대편에는 지도와 문서 보관함이 놓여 있었다. 중앙에는 오래된 책상 하나와 의자. 창가 쪽에는 낮은 소파까지 있었다.엘라는 천천히 주위를 살폈다.“그대로 두셨네요.”“휴고가.”단테가 말했다.휴고는 작게 고개를 숙였다.“선대 대공 각하가 돌아가신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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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를 찾는다고 바로 돌릴 필요는 없습니다

다음 날 아침, 선대 대공의 묘역으로 향하는 길은 예상보다 조용했다.눈은 밤사이 조금 더 내렸지만 바람이 잦아든 덕분에 이동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대공성 서쪽 정문을 나선 일행은 말을 타지 않았다. 묘역까지는 걸어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고, 무엇보다 오늘은 단테의 상태를 조금 더 세밀하게 확인하며 움직이기로 했기 때문이다.엘라는 출발 전에 이미 세리아에게 단테의 상태를 들었다. 수면 다섯 시간 조금 넘게. 아침 식사 절반 이상. 두통 약함. 가슴 압박 없음. 마기 수치는 평소보다 높지만 안정적인 흐름. 전날처럼 외부 활동을 막을 정도는 아니었다.그런데도 엘라는 성문을 나선 뒤 한 번 더 물었다.“대공 전하.”단테가 옆을 봤다. “왜.”“지금은 어떻습니까?”“방금 세리아가 말했잖아.”“세리아 치료사님은 검사 결과를 말씀하신 거고요. 저는 지금 느낌을 묻는 겁니다.”단테는 잠시 걷던 속도를 늦췄다. 예전이라면 ‘괜찮아’ 한마디로 끝냈을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말하면 엘라가 다시 물을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잠깐 자신의 상태를 확인한 뒤 대답했다.“춥고.”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눈 때문에 빛이 조금 거슬리고.”“네.”“사람 소리는 많지 않아서 괜찮아.”“걸을 만하십니까?”“그래.”엘라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단테가 바로 말했다. “칭찬하지 마.”“안 하려고 했습니다.”“얼굴이.”“대공 전하는 정말 제 얼굴에 관심이 많으십니다.”단테의 걸음이 아주 잠깐 멈췄다.엘라도 멈출 뻔했다가 그냥 계속 걸었다.몇 걸음 뒤, 단테가 낮게 말했다.“네가 너무 티가 나는 거야.”“그 이유는 이제 안 믿습니다.”“마음대로 해.”뒤에서 따라오던 휴고가 아주 작게 헛기침했다. 웃음을 감추는 소리와 비슷했지만, 엘라는 굳이 돌아보지 않았다.선대 묘역은 낮은 언덕 너머에 있었다.높고 화려한 건물은 아니었다. 눈 덮인 돌길 끝에 검은 돌로 지어진 작은 예배당이 있고, 그 뒤로 역대 발테르 대공들의 무덤이 이어져 있었
last updateปรับปรุงล่าสุด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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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길을 찾으려면 먼저 무너지지 않아야 합니다

임시 저장석 제작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오전 내내 연구실 한가운데에는 마력석 조각과 금속 고리, 측정 장치가 널려 있었다. 에른을 포함한 대공가 마법사 셋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마력을 흘려보내고 있었고, 엘라는 그 과정을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지켜봤다.단테도 함께였다.다만.오늘은 처음부터 의자에 앉아 있었다.세리아가 그렇게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서 있어도 되는데.”단테가 세 번째 말했다.세리아는 기록지를 내려다보지도 않았다.“앉아 계십시오.”“두통 없어.”“아침엔 있었습니다.”“지금은 없어.”“그래도 앉아 계십시오.”“세리아.”“전하.”둘이 서로를 바라봤다.엘라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괜히 끼어들면 단테가 자신까지 노려볼 것 같아서였다.그런데 단테가 먼저 그녀를 봤다.“넌 왜 아무 말도 안 하지.”엘라는 눈을 깜빡였다.“제가요?”“평소 같으면 뭐라도 하잖아.”“세리아 치료사님이 이기실 것 같아서요.”단테의 표정이 굳었다.“아직 안 졌어.”엘라가 아주 잠깐 생각했다.그리고.“대공 전하.”“왜.”“지금 앉아 계십니다.”단테가 입을 다물었다.에른이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감췄다.휴고는 노골적으로 창밖을 봤다.세리아만 평온했다.“좋습니다.”그녀가 말했다.“계속 앉아 계십시오.”단테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엘라는 결국 웃었다.⸻임시 저장석은 원리만 보면 간단했다.일반 마력석에 한꺼번에 밀려드는 마기를 잠시 받아두는 것.하지만.문제는 마기였다.보통 마력석은 마기에 닿으면 오염됐다. 약한 양이라면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이번에 예상되는 흐름은 달랐다. 수백 년 동안 닫힌 우회로의 봉인을 처음 해제하는 순간. 현재 한곳으로 몰려 있는 흐름이 바뀌면 상당한 양의 마기가 한꺼번에 튀어 나올 수 있었다.에른이 첫 번째 시제품에 마기를 소량 주입했다.검은 선이 마력석 안쪽으로 퍼졌다.1초.2초.3초.그리고.쩍.작은 균열.엘라의 표정이 굳었다.에른이 바로 흐름을 차단했다.“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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