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당신의 밤에 들어가겠습니다: Chapter 1 - Chapter 10

10 Chapters

꿈의 여행자

“오늘은 무슨 재미난 일을 해볼까.”어스름한 새벽.태양이 떠오르기 전의 수도는 언제나 가장 아름다웠다.거리를 밝히는 수백 개의 마도등이 아직 밤을 붙잡고 있었고, 성벽 위에서는 경비병들이 변함없이 창을 세운 채 순찰을 돌고 있었다.황궁의 집무실에서도 몇몇 창문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밤새 서류를 붙잡고 씨름하는 관리들.곧 시작될 하루를 준비하는 상인들.누군가는 나라를 위해 일하고.누군가는 백성을 위해 고민하고.누군가는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하지만.그 모든 풍경을 수도에서 가장 높은 시계탑 위에 앉아 내려다보는 한 여자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흠.”금빛 머리카락이 새벽바람을 타고 길게 흩날렸다.휘이이잉—찬 공기가 볼을 스쳐 지나가자 여자는 기분 좋은 듯 눈을 가늘게 접었다.세이아 룬 트리비아.트리비아 백작가의 장녀.사교계에서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조용하고 겁 많은 영애라는 소문이 붙어 있는 여자.그리고.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을 가진 여자.바람에 흩날리는 금빛 머리카락 사이로 자수정이 박힌 귀걸이가 은은하게 빛났다.겉보기에는 평범한 장신구였다.조금 값비싸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어디에서나 볼 법한 귀걸이.하지만 세이아에게 이것은 장신구가 아니었다.족쇄였다.동시에.그녀의 목숨을 붙들어 주는 안전장치이기도 했다.세이아가 손끝으로 귀걸이를 천천히 돌렸다.차갑고 매끄러운 자수정의 감촉.어릴 적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몸에 지니고 살아온 물건이었다.잠을 잘 때도.식사를 할 때도.외출할 때도.언제나.하지만.가끔은.아주 가끔은.너무 얌전히 사는 것도 건강에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세이아의 입꼬리가 장난스럽게 올라갔다.“조금만 놀아 볼까.”달칵.작은 소리와 함께 귀걸이가 귀에서 빠졌다.순간.콰아아아아—!억눌려 있던 마력이 폭발하듯 몸 밖으로 터져 나왔다.보랏빛 빛무리가 세이아를 중심으로 거대한 파동처럼 퍼졌다.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새벽 공기를 흔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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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가져온 꽃

“눈을 감아.”낮은 목소리가 바로 위에서 들렸다.“이번에는 내가 널 지킬 테니까.”콰아아아앙——!세상이 무너졌다.흰 꽃밭이 흔들리고.멀리 있던 신전의 기둥이 굉음을 내며 쓰러졌다.검은 균열이 하늘을 가르며 벌어졌다.그리고.그 모든 것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자신을 끌어안은 남자의 체온.단단한 팔.귀 가까이에서 울리는 심장 소리.쿵.쿵.쿵.세이아의 심장도.같은 박자로 뛰었다.쿵.쿵.쿵.‘이상해.’처음 보는 사람이다.분명.처음이어야 했다.그런데.왜 이 품이 이렇게 익숙하지?왜.이 사람이 자신을 놓치면 안 될 것처럼 끌어안고 있다는 사실이.조금도 낯설지 않은 거지?세이아는 남자의 품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푸른 눈.한겨울의 호수처럼 차갑고 깊은 눈동자.그런데 지금은.차가움보다 두려움이 더 짙었다.마치.한 번 잃어 본 사람을.다시는 잃지 않겠다는 사람처럼.“당신…….”세이아가 입을 열었다.“누구예요?”남자의 표정이 굳었다.하지만.대답을 듣기 전에.콰아아아아——!검은 빛이 쏟아졌다.남자가 세이아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 쪽으로 끌어안았다.“세이아.”낮고 다급한 목소리.“눈 감아.”세이아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그리고.마지막 순간.무언가가 손바닥 안으로 들어왔다.가볍고.부드러운 감촉.꽃잎.그것을 확인할 틈도 없이.의식이 끊어졌다.⸻“……!”세이아는 눈을 번쩍 떴다.헉.숨이 거칠게 터져 나왔다.익숙한 천장.연한 크림색의 벽지.햇빛이 들어오는 창문.그리고.자신의 침실.한동안.세이아는 침대 위에서 움직이지 못했다.가슴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쿵쿵쿵쿵.그녀는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꿈.”분명 꿈이었다.하지만.평소와 달랐다.지나치게 선명했다.감각도.향기도.목소리도.특히.자신을 끌어안았던 남자의 체온까지.세이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아.기억을 더듬었다.은빛 머리카락.푸른 눈.새하얀 꽃밭.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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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해 동안 당신을 꿈꿨다

“왜.”카일 레온 에스트라드의 낮은 목소리가 고요한 집무실을 갈랐다.“내 꿈에 있었지?”세이아는 대답하지 못했다.정확히는.대답할 말을 고르는 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꿈에서 보았던 남자가 현실에 존재한다.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이상한데.그 남자 역시 자신을 기억하고 있었다.아니.기억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까.꿈속의 카일은 분명 세이아를 알고 있었다.오래전부터 기다려 온 사람처럼.그녀를 보자마자 말했다.‘드디어.’‘다시 만났군.’하지만 지금 눈앞의 남자는 달랐다.푸른 눈동자에 반가움은 없었다.경계.의심.그리고.설명하기 어려운 당혹감.세이아는 문득 생각했다.‘꿈속에서는 그렇게 애틋하게 쳐다보더니.’현실에서는 사람을 범인 취급한다.묘하게 억울했다.세이아는 천천히 수정함을 든 손을 내렸다.“그 질문은 제가 하고 싶은데요.”카일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무슨 뜻이지?”“대공 전하께서 먼저 제 꿈에 계셨으니까요.”“내가?”“정확히 말하면.”세이아는 잠시 말을 골랐다.“그곳이 제 꿈인지, 전하의 꿈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습니다.”“꿈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건가?”그 말에 세이아의 눈이 가늘어졌다.“대공 전하.”“왜.”“저한테 싸움을 거시는 겁니까?”“그럴 생각은 없었다.”“그런데 사람의 자존심을 굉장히 정확하게 건드리시네요.”카일의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에드윈이 작게 헛기침했다.“둘 다.”그러나.어느 쪽도 그를 보지 않았다.카일은 세이아를.세이아는 카일을 보고 있었다.잠시 후.카일이 먼저 물었다.“어디까지 봤지?”“어디까지라니요?”“내 꿈에서.”세이아의 웃음기가 조금 사라졌다.“흰 꽃밭.”카일의 눈빛이 변하지 않았다.“거대한 호수.”“…….”“무너진 신전.”그 순간.아주 미세하게.카일의 턱이 굳었다.세이아는 놓치지 않았다.“검게 갈라진 하늘도 봤습니다.”“그만.”낮은 목소리가 떨어졌다.이번에는 분명했다.카일은 알고 있다.그 장소를.세이아가 한 걸음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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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의 당신은 나를 기억한다

『찾았다.』낮고 기이한 목소리가 울렸다.그 순간.수정함 안에서 피어난 새하얀 꽃이 크게 흔들렸다.사락.은빛 꽃잎 사이로 금빛이 번졌다.세이아와 카일은 동시에 굳었다.방금 들린 목소리는.에드윈의 것도.카일의 것도.물론 세이아의 것도 아니었다.그런데 분명.바로 곁에서 속삭인 것처럼 선명했다.『찾았다.』다시.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웠다.세이아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아버지.”“나도 들었다.”에드윈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세이아의 손은 아직 카일의 손 안에 있었다.조금 전까지 하나로 이어져 있던 은빛 날개 문양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그리고.쿵.두 사람의 심장이 동시에 뛰었다.세이아가 눈을 내리깔았다.맞잡힌 손.커다란 카일의 손 안에 자신의 손이 완전히 들어가 있었다.이제는 놓아도 될 텐데.이상하게.둘 다 먼저 손을 떼지 않았다.“대공 전하.”“왜.”“언제까지 잡고 계실 겁니까?”카일의 시선이 두 사람의 손으로 내려갔다.“네가 먼저 놓지 않았는데.”“전하께서 먼저 잡으셨잖아요.”“네가 가까이 대라고 했다.”“아버지가 그랬죠.”“결국 네 손이다.”세이아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원래 이렇게 말이 많으셨습니까?”“당신 앞에서는 그런 모양이군.”세이아가 잠시 말을 잃었다.너무 아무렇지 않게 나온 대답이었다.카일도 뒤늦게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은 듯 입을 다물었다.에드윈이 낮게 헛기침했다.“내가.”두 사람이 동시에 그를 바라봤다.“여기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면 좋겠군.”세이아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손을 뺐다.“잊은 적 없어요.”“그래 보이지 않았다.”카일도 한 걸음 물러났다.그러나.세이아의 손끝에는 아직도 그의 체온이 남아 있었다.이상했다.평소라면 누군가 자신의 손목을 잡거나 허리에 팔을 두르는 순간부터 먼저 경계했을 것이다.그런데 카일에게는.놀라기는 해도.싫다는 생각이 늦게 들었다.아니.정확히는.싫지 않았다.그 사실이 더 문제였다.세이아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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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을 죽였다고?

『역시 기억하지 못하는군.』검은 존재의 목소리가 꽃밭 전체에 스며들었다.세이아의 표정이 굳었다.“…무엇을.”검은 안개 속.여섯 장의 날개가 천천히 펼쳐졌다.검게 썩은 깃털 사이로 황금빛 눈동자들이 하나둘 떠올랐다.하나.둘.셋.기분 나쁠 정도로 많은 눈이.모두 세이아를 향했다.『당신이.』낮은 웃음.『첫 번째 날개를 직접 죽였다는 것을.』순간.바람이 멎었다.세이아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꽃잎이 떨어지는 소리도.하늘이 갈라지는 소리도.바로 옆에 서 있는 카일의 숨소리조차.오직.한 문장만이 머릿속에 남았다.내가.첫 번째 날개를.죽였다.“…뭐라고?”세이아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검은 존재가 웃었다.『기억하지 못하는 얼굴이군.』“헛소리하지 마.”이번에는 카일이었다.그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은빛 검끝이 검은 존재를 향했다.『첫 번째 날개.』“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카일의 푸른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았다.“내 이름은 카일이다.”검은 존재의 고개가 기이하게 꺾였다.『이름.』킥킥.금속 긁는 듯한 웃음이 흘러나왔다.『역할보다 이름을 먼저 말하는군.』“그래서?”『이번에는 꽤 다른 모양이야.』카일은 더 대답하지 않았다.대신.검을 들었다.그 순간 세이아가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잠깐만요.”카일이 돌아봤다.세이아는 검은 존재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방금 말.”그녀가 천천히 물었다.“무슨 뜻이지?”『어느 부분을 묻는 거지?』“내가.”세이아의 손끝이 조금 굳었다.“첫 번째 날개를 죽였다는 말.”카일의 표정이 굳었다.“세이아.”“확인해야 합니다.”“저것이 진실을 말한다고 누가 보장하지?”“아무도요.”세이아가 대답했다.“그래도 듣기는 해야죠.”검은 존재가 즐거운 듯 웃었다.『역시.』“뭐가?”『그 눈은 같군.』세이아의 보랏빛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누구랑.”『과거의 당신과.』순간.머릿속에.장면 하나가 번쩍였다.피로 물든 손.은빛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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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날개가 기다리는 곳

“꿈의 주인이 오고 있다.”마흔세 명.잠들어 있던 북부 병사들이 동시에 눈을 뜨고.같은 말을 했다.그들의 눈동자는 모두 검게 물들어 있었다.에드윈이 전령이 가져온 서신을 천천히 내려놓았다.침실 안에는 한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세이아는 카일의 손등을 바라보았다.조금 전까지 은빛으로 빛나던 날개 문양 아래.검은 깃털 하나가 떠 있었다.작았다.그러나.불길할 정도로 선명했다.“아버지.”“보고 있다.”에드윈이 가까이 다가왔다.“대공 전하.”“말씀하십시오.”“손을 조금만.”카일이 손을 내밀었다.에드윈이 마력을 흘려보냈다.보랏빛 빛이 검은 깃털을 감쌌다.순간.치이익——!“……!”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에드윈이 급히 손을 뗐다.세이아의 표정이 굳었다.“반응했어요.”“그래.”“아버지 마력에?”“아니다.”에드윈의 시선이 세이아에게 향했다.“네게.”“…저한테요?”“내 마력이 이 문양을 건드리는 순간.”그가 낮게 말했다.“안쪽의 힘이 네 쪽으로 움직였어.”세이아는 잠시 카일의 손을 바라보았다.그러다.손을 뻗었다.“잠깐.”카일이 즉시 손을 뒤로 뺐다.세이아가 눈썹을 올렸다.“왜요?”“위험할 수 있다.”“그래서 만져 보려는 겁니다.”“말이 앞뒤가 안 맞는군.”“전하께서 위험하다고 피하기 시작하면 오늘 해 뜨기 전에 북부는 못 갑니다.”“세이아.”“그리고.”그녀가 손바닥을 내밀었다.“아까도 말씀드렸죠.”“뭘.”“전하 혼자 지키는 건 금지라고요.”카일의 눈빛이 조금 깊어졌다.“…그건 아직 설명하지 않았지.”“지금부터 설명하면 되겠네요.”“나는 설명보다 네가 손을 거두는 쪽이 좋다.”세이아가 피식 웃었다.“싫은데요.”그리고.이번에는 묻지 않았다.카일의 손목을 잡았다.“세이아.”그 순간.쿵.두 사람의 심장이 동시에 뛰었다.검은 깃털이 번쩍였다.파아아앗——!“……!”세이아의 시야가 뒤집혔다.⸻사아아아—은빛 잎이 바람에 흔들렸다.세이아가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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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질투는 내 감정이다

마차 유리창에 붙어 있던 검은 깃털이.사락.천천히 재로 변했다.기다리고 있습니다.핏빛으로 번졌던 글씨도 뒤따라 흐려졌다.두 번째 날개가.마지막 한 획까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세이아와 카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덜컹.마차가 어두운 길을 달렸다.밤은 깊었고.수도를 벗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에는 사람 사는 불빛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오직 마차 앞에 매달린 마도등만이 희미한 빛을 뿌렸다.세이아는 창문에서 천천히 시선을 거뒀다.그리고.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카일이 아직 잡고 있었다.조금 전.‘누구도 먼저 보내지 않는다.’그렇게 약속하며 맞잡은 손.은빛 날개 문양은 이미 희미해졌지만.체온은 그대로였다.세이아가 손가락을 조금 움직였다.카일의 시선이 바로 내려왔다.“왜.”“아직 잡고 계셔서요.”“놓으라고 했나?”“아니요.”“그럼.”카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그대로 있지.”세이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대공 전하.”“왜.”“꿈에서 돌아오고 나서 조금 달라지신 것 같은데요.”“뭐가.”“예전 같으면 제가 이런 말을 하는 순간 먼저 놓으셨을 것 같아서요.”카일의 엄지가.자신도 모르게 세이아의 손등을 한 번 쓸었다.그리고.움직임이 멈췄다.두 사람 모두 그것을 느꼈다.“….”“….”세이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이것도 기억 때문입니까?”카일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모른다.”“정말요?”“그래.”“아까부터 전하께서는 모르는 게 너무 많으시네요.”“당신은 다 아나?”“적어도.”세이아가 그의 손을 조금 들어 보였다.“제가 잡고 싶은 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있죠.”카일의 눈빛이 미세하게 변했다.세이아는 그 반응을 보고 웃었다.“왜요?”“아니.”“또요?”“당신이.”그가 잠시 말을 골랐다.“생각보다 거리낌이 없군.”“전하한테만 그런 것 같습니다.”카일의 손에.아주 조금 힘이 들어갔다.세이아가 눈을 깜빡였다.“전하?”“그런 말.”낮은 목소리였다.“쉽게 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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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날개는 그의 동생이었다

“적어도 질투는.” 카일의 손이 세이아의 뺨을 감쌌다. 거칠게 검을 잡아 온 손이었다. 손가락 마디마다 옅은 굳은살이 박여 있었는데, 정작 그녀의 피부에 닿는 손길은 지나칠 만큼 조심스러웠다. “온전히 내 감정인 것 같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세이아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카일의 엄지가 뺨 아래를 느리게 스쳤다. 턱선. 그리고 입술에서 손가락 하나 떨어진 곳까지. 그 짧은 움직임만으로도 이상하게 숨이 얕아졌다. “…전하.” “왜.” “그런 말씀을 하시면서.” 세이아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왜 손은 안 떼십니까?” 카일의 시선이 자신이 만지고 있는 곳으로 내려왔다. “떼야 하나?” “보통은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보통이 아닌 모양이군.” “그건 진작 알고 있었습니다.” 세이아가 웃었다. 그러나 카일은 웃지 않았다. 푸른 눈이 그녀의 얼굴을 천천히 훑었다. 눈. 코. 그리고. 입술. 그곳에서 시선이 아주 잠깐 멈췄다. 세이아는 이제 그 시선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 “또 보시네요.” “뭘.” “제 입술.” 카일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예전이라면 부정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래.” 너무 쉽게 인정했다. 세이아가 오히려 말문이 막혔다. “왜.” 카일이 물었다. “보면 안 되나?” “…안 된다고는 안 했습니다.” “그럼 됐군.” 그의 손이 뺨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세이아는 그제야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런데. 막상 손길이 떨어지고 나니. 조금 아쉬웠다. 그 사실이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공 전하.” “왜.” “꿈에서 돌아오고 난 뒤로 조금 뻔뻔해지신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 배웠는지 모르겠군.” “설마 저라고 하시려고요?” “당신 말고 누가 있지?” 세이아가 피식 웃었다. “배우는 속도가 너무 빠른데요.” “좋은 스승을 만났으니까.” 세이아가 그를 빤히 바라봤다. “수업료는 비쌉니다.” “내겠다고 했잖아.” “무엇으로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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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의 심장은 검을 선택했다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기 전.세이아는 조용히 창문을 열었다.차가운 밤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벨로아의 밤은 유난히 고요했다.평소라면 늦은 시간까지 여관에서 술잔 부딪치는 소리와 상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야 할 마을이었다.하지만 지금은 아무 소리도 없었다.사람들은 모두 문을 잠근 채 숨을 죽이고 있었다.검은 장막이 드리운 북쪽 하늘에서는 달빛조차 내려오지 않았다.마을 전체가 거대한 그림자 아래 갇힌 것 같았다.세이아는 침대 위에 이불을 둥글게 말아 올렸다.누군가 밖에서 보면 사람이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 뒤 여행용 망토를 걸쳤다.허리에는 작은 단검을 찼다.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니 무기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아무것도 들지 않고 적이 부른 장소로 향하는 것보다는 나았다.세이아는 마지막으로 방문을 바라보았다.조금 전까지 카일이 문밖에 서 있었다.그가 떠나는 발소리도 들었다.그런데 이상했다.카일은 쉽게 물러나는 사람이 아니었다.특히 세이아가 평소와 다르게 행동했다면 더욱 그랬다.‘아직 복도에 있는 건 아니겠지.’세이아는 조용히 기척을 살폈다.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기사들의 발소리도.카일 특유의 묵직한 마력도 없었다.그녀는 잠시 망설이다 창틀 위로 올라섰다.방은 여관 이층이었다.바닥까지 거리는 높지 않았다.세이아가 손끝을 움직이자 보랏빛 마력이 창 아래로 길게 늘어났다.빛은 투명한 계단이 되어 허공에 떠올랐다.세이아는 소리 없이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발이 땅에 닿는 순간 계단은 빛가루가 되어 사라졌다.망토의 모자를 깊이 눌러썼다.북쪽의 버려진 종탑.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위치를 알 수 있었다.멀리 검은 장막 아래로 오래된 탑 하나가 우뚝 솟아 있었다.탑 위에는 금이 간 종이 매달려 있었다.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종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세이아는 마을의 좁은 골목을 따라 걸었다.집집마다 창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가끔 커튼 틈 사이로 사람의 눈이 보였다.그러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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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여신

첫 번째 날개의 계약이 새롭게 맺어졌다.여신의 심장은 검을 선택했다.그리고.두 번째 날개는 심판대에 오른다.은빛 문장이 밤하늘을 가득 메웠다.마치 신계의 누군가가 인간계 전체에 판결문을 내린 것처럼.벨로아의 주민들은 거리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누군가는 기도를 올렸고.누군가는 두려움에 무릎을 꿇었다.조금 전까지 마을을 뒤덮고 있던 검은 안개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교회에 잠들어 있던 사람들도 모두 눈을 떴다.하지만.누구도 기뻐하지 못했다.북쪽 하늘에서 타오르는 붉은 불길 때문이었다.라시드 성.에스트라드 대공령의 중심지.카일이 태어나고 자란 성이 붉은 불꽃에 휩싸여 있었다.그러나 이상하게도 연기는 보이지 않았다.불길은 성벽도.지붕도 태우지 않았다.검은 성 전체를 감싼 채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릴 뿐이었다.그리고 그 불길 속에서.거대한 문 하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하늘과 땅을 이어 붙인 듯한 검은 문.표면에는 수많은 눈과 날개가 새겨져 있었다.세이아는 무너진 종탑 위에서 그것을 바라보았다.“두 번째 문.”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카일의 팔은 여전히 세이아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계약을 맺은 직후부터 그는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입맞춤의 여운 때문만은 아니었다.두 사람 사이에.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감각이 생겨났기 때문이었다.쿵.세이아가 눈을 깜빡였다.쿵.또다시.자신의 것이 아닌 심장 박동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느껴졌다.가까이 있지 않아도.손을 맞잡지 않아도.마치 자신의 가슴 안에서 두 개의 심장이 함께 뛰는 것처럼.그리고 심장뿐만이 아니었다.분노.불안.초조함.그 모든 감정 사이에 섞인.세이아를 향한 지나치게 강한 보호 본능까지.이제는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다.거의 집착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아프나?”카일의 목소리가 들렸다.“아니요.”“숨이 불편해졌다.”세이아가 그를 돌아보았다.“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느껴진다.”카일의 시선이 세이아의 가슴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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