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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가져온 꽃

Author: 유월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8-21 07:17:52

“눈을 감아.”

낮은 목소리가 바로 위에서 들렸다.

“이번에는 내가 널 지킬 테니까.”

콰아아아앙——!

세상이 무너졌다.

흰 꽃밭이 흔들리고.

멀리 있던 신전의 기둥이 굉음을 내며 쓰러졌다.

검은 균열이 하늘을 가르며 벌어졌다.

그리고.

그 모든 것보다 더 선명하게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자신을 끌어안은 남자의 체온.

단단한 팔.

귀 가까이에서 울리는 심장 소리.

쿵.

쿵.

쿵.

세이아의 심장도.

같은 박자로 뛰었다.

쿵.

쿵.

쿵.

‘이상해.’

처음 보는 사람이다.

분명.

처음이어야 했다.

그런데.

왜 이 품이 이렇게 익숙하지?

왜.

이 사람이 자신을 놓치면 안 될 것처럼 끌어안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도 낯설지 않은 거지?

세이아는 남자의 품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

푸른 눈.

한겨울의 호수처럼 차갑고 깊은 눈동자.

그런데 지금은.

차가움보다 두려움이 더 짙었다.

마치.

한 번 잃어 본 사람을.

다시는 잃지 않겠다는 사람처럼.

“당신…….”

세이아가 입을 열었다.

“누구예요?”

남자의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대답을 듣기 전에.

콰아아아아——!

검은 빛이 쏟아졌다.

남자가 세이아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 쪽으로 끌어안았다.

“세이아.”

낮고 다급한 목소리.

“눈 감아.”

세이아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무언가가 손바닥 안으로 들어왔다.

가볍고.

부드러운 감촉.

꽃잎.

그것을 확인할 틈도 없이.

의식이 끊어졌다.

⸻

“……!”

세이아는 눈을 번쩍 떴다.

헉.

숨이 거칠게 터져 나왔다.

익숙한 천장.

연한 크림색의 벽지.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

그리고.

자신의 침실.

한동안.

세이아는 침대 위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가슴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쿵쿵쿵쿵.

그녀는 손으로 가슴을 눌렀다.

“…꿈.”

분명 꿈이었다.

하지만.

평소와 달랐다.

지나치게 선명했다.

감각도.

향기도.

목소리도.

특히.

자신을 끌어안았던 남자의 체온까지.

세이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아.

기억을 더듬었다.

은빛 머리카락.

푸른 눈.

새하얀 꽃밭.

무너진 신전.

검은 균열.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던 남자.

“드디어.”

세이아가 작게 따라 말했다.

“다시 만났군.”

다시.

그 단어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대체 언제 봤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귀족 사교계에서도.

황궁에서도.

북부나 남부의 귀족 명단에서도.

기억에 없는 사람.

물론 세이아가 모든 귀족 얼굴을 외우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 정도로 눈에 띄는 남자를 봤다면.

적어도 한 번쯤 기억했을 것이다.

은발.

푸른 눈.

그렇게 흔한 조합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 얼굴.

“…….”

세이아는 눈을 가늘게 떴다.

잘생겼다.

굉장히.

“…아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세이아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정신 차리자.”

그녀는 꿈의 여행자였다.

수없이 많은 사람의 꿈을 보았다.

꿈속에서는 얼굴이 현실보다 과장되거나.

기억에 없는 사람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까.

그 남자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세이아는 천천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왼손.

손가락이 조금 말려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꼭 쥐고 있는 것처럼.

“…?”

그녀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펼쳤다.

사락.

하얀 꽃잎 하나가.

손바닥 위에 떨어졌다.

세이아의 몸이 굳었다.

“…….”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하얀 꽃잎.

손톱보다 조금 큰.

가늘고 부드러운 꽃잎.

아주 희미하게.

꿈속에서 맡았던 꽃향기가 남아 있었다.

세이아는 한동안 꽃잎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손끝으로 그것을 건드렸다.

부드러웠다.

실제 꽃잎.

꿈의 잔재가 아니다.

마력으로 만든 환영도 아니었다.

“…말도 안 돼.”

세이아가 중얼거렸다.

꿈속의 물건은 현실로 나올 수 없다.

꿈은.

현실의 기억과 감정으로 만들어진 공간이다.

아무리 생생하더라도.

그 안의 물건까지 현실로 가져올 수는 없다.

적어도.

세이아가 알고 있는 꿈은 그랬다.

그녀는 꽃잎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채 마력을 끌어올렸다.

보랏빛 빛이 손끝에 맺혔다.

꿈의 잔재를 확인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

“흔적을 보여 줘.”

빛이 꽃잎을 감쌌다.

잠시.

아무 변화도 없었다.

세이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상한데.”

한 번 더.

이번에는 조금 더 깊게 마력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꽃잎 표면 위로 아주 희미한 은빛이 번졌다.

“…은빛?”

세이아의 보랏빛 마력과는 전혀 다른 색.

그런데.

은빛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안쪽.

아주 미세하게.

금빛이 섞여 있었다.

은빛과 금빛.

꿈속에서 자신을 끌어당겼던 거대한 빛과 똑같았다.

세이아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너.”

꽃잎을 눈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대체 뭐야.”

당연히.

꽃잎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익숙한 목소리.

세이아가 급히 꽃잎을 손안에 감췄다.

“들어와.”

문이 열렸다.

전속 시녀 마리가 세면 도구와 아침옷을 들고 들어왔다.

“일어나셨군요.”

“응.”

“오늘은 생각보다 늦게 일어나셨어요.”

세이아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해가 이미 꽤 높이 떠 있었다.

“몇 시야?”

“아홉 시를 조금 넘었습니다.”

“…….”

평소보다 두 시간은 늦었다.

세이아가 잠시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내가 그렇게 오래 잤어?”

마리가 이상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가씨가 주무신 건 새벽이었잖아요.”

“새벽?”

“네.”

“내가?”

“새벽 다섯 시쯤 돌아오셨잖아요.”

세이아의 움직임이 멈췄다.

“…돌아와?”

“시계탑에서요.”

“…….”

아.

맞다.

세이아는 새벽까지 수도의 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대한 꿈을 발견했다.

그 안으로 끌려 들어갔고.

그 뒤.

어떻게 현실로 돌아왔지?

기억이 없었다.

“아가씨?”

마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왔다.

“어디 편찮으세요?”

“아니.”

세이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손안에 감춘 꽃잎이.

이상할 정도로 뜨겁게 느껴졌다.

“꿈이 좀 이상했어.”

“또 남의 꿈에 들어가셨어요?”

마리의 얼굴에 바로 걱정이 떠올랐다.

세이아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또라니.”

“지난번에 꿈속에서 길 잃은 아이 데리고 나오다가 하루 종일 주무셨잖아요.”

“그건.”

세이아는 잠시 생각했다.

“사고였지.”

“아가씨는 항상 그렇게 말씀하세요.”

“이번에는 진짜야.”

마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백작님께 말씀드릴까요?”

“안 돼.”

너무 빠른 대답이었다.

마리가 눈을 가늘게 떴다.

세이아는 자연스럽게 웃었다.

“아버지 괜히 걱정하시잖아.”

“걱정하실 만한 일을 안 하시면 됩니다.”

“마리.”

“네.”

“너 요즘 아버지랑 말투가 닮아 간다?”

마리가 미소 지었다.

“영광이네요.”

“…이 집에는 내 편이 없어.”

“백작 부인께서는 편이실 수도 있죠.”

“어머니한테 말하면 바로 귀걸이 세 개 더 달아 주실걸.”

“그럼 얌전해지시겠네요.”

세이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아주 작게 입술을 내밀었다.

마리가 웃음을 참으며 옷장을 열었다.

“아침 식사 준비되어 있어요.”

“아버지도?”

“네. 오늘은 오전 회의가 늦어져서 아직 계세요.”

“어머니는?”

“함께 계십니다.”

세이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라면 반가웠을 텐데.

오늘은.

왠지 아버지 얼굴을 보면.

꿈 이야기를 들킬 것 같았다.

“안 내려가면?”

마리가 즉시 대답했다.

“백작님이 올라오십니다.”

“…역시 내려가자.”

⸻

아침 식당.

은빛 식기가 정갈하게 놓인 긴 식탁.

따뜻한 빵.

버섯 수프.

달걀 요리.

잘 익은 과일.

그리고.

맞은편에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남자.

세이아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빵을 집었다.

“…왜.”

에드윈 룬 트리비아.

트리비아 백작이 눈을 가늘게 떴다.

“세이아.”

“응.”

“오늘 새벽.”

세이아의 손이 빵 위에서 멈췄다.

“…응.”

“수도 경비대에서 이상한 보고가 올라왔다.”

세이아가 빵을 접시에 내려놓았다.

“무슨 보고?”

“성벽 경비병 열일곱 명이.”

에드윈이 천천히 말했다.

“정확히 같은 시각에 잠들었다더군.”

“…그런 일이?”

“황궁 관리들 열두 명도.”

“세상에.”

“새벽 시장의 상인들까지.”

“피곤했나 봐.”

에드윈은.

아무 말 없이 딸을 바라보았다.

세이아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 시선을 받아냈다.

잠시.

식탁 위로.

묘한 침묵이 흘렀다.

옆에 앉아 차를 마시던 세이아의 어머니가 작게 웃었다.

“여보.”

“왜?”

“그렇게 보면 세이아가 먼저 눈을 피할 것 같아요?”

에드윈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그렇죠?”

“그래서 더 답답한 거요.”

세이아가 빵에 잼을 바르며 말했다.

“왜 나라고 생각해?”

“내가.”

에드윈이 말했다.

“너를 키운 지 스물세 해다.”

“나는 스물세 살인데?”

“그러니까.”

에드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스물세 해 동안 네가 사고를 치기 직전의 표정과.”

“사고를 친 뒤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는 표정을 봐 왔다는 뜻이다.”

세이아는 잠시 생각했다.

“지금은 어느 쪽인데?”

“후자.”

“정확하네.”

에드윈이 이마를 짚었다.

“세이아.”

어머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세이아도 따라 웃으려던 순간.

손안에 숨겨 둔 꽃잎이.

아주 희미하게.

쿵.

뛰었다.

“…!”

세이아의 얼굴이 굳었다.

착각인가?

꽃잎이 어떻게 뛴다고.

그러나.

다시.

쿵.

손바닥 안에서.

심장처럼.

아주 작게.

세이아는 본능적으로 손을 테이블 아래로 내렸다.

어머니가 그녀를 바라봤다.

“세이아?”

“응?”

“괜찮니?”

“왜?”

“표정이.”

“아.”

세이아는 웃었다.

“배가 조금 아픈가 봐.”

에드윈의 얼굴이 바로 굳었다.

“어디가?”

“…아버지.”

“치유사를 부르지.”

“아니.”

“마리!”

“아버지.”

세이아가 단호하게 불렀다.

에드윈의 입이 닫혔다.

“그 정도 아니야.”

“확실하니?”

“응.”

“왜 아프지?”

“빵을 빨리 먹었나 봐.”

어머니가 조용히 물었다.

“아직 한 입도 안 먹었는데?”

“….”

세이아가 빵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었다.

에드윈의 눈빛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무슨 일 있지?”

역시.

이 집 사람들 앞에서 거짓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세이아는 잠시 고민했다.

꽃잎을 보여 줄까.

아니면.

조금 더 혼자 확인할까.

그때.

손바닥 안의 박동이 멈췄다.

세이아는.

천천히 손가락을 쥐었다.

“아버지.”

“말해.”

“나중에.”

에드윈의 얼굴이 굳었다.

“세이아.”

“정리되면 말할게.”

“무슨.”

“약속해.”

세이아가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위험한 일이면 바로 말할게.”

에드윈은.

오랫동안 딸을 바라봤다.

그리고.

마지못해 숨을 내쉬었다.

“오늘 안으로.”

“응.”

“밤까지 미루지 말고.”

“알았어.”

어머니도 덧붙였다.

“우리한테 혼날 것 같아서 숨기는 거면 더 혼날 거야.”

세이아가 웃었다.

“어머니까지.”

“특히 내가.”

“…알았어.”

평범한 가족의 대화.

그런데도.

세이아는 이상하게 안심됐다.

꿈에서 느꼈던 그 낯선 감정이.

조금 가라앉았다.

⸻

식사를 마친 뒤.

세이아는 자신의 방이 아니라.

가문의 서고로 향했다.

트리비아 저택의 서고는.

일반 귀족가의 도서실과는 조금 달랐다.

겉으로 보이는 책장은 평범했다.

역사서.

마법서.

가문 기록.

그러나.

가장 안쪽.

백작가 직계혈족의 마력에만 반응하는 작은 문 뒤에는.

트리비아의 비밀 기록이 보관되어 있었다.

세이아가 손바닥을 문 위에 올렸다.

보랏빛 문양이 나타났다.

달칵.

문이 열렸다.

안쪽.

빛 하나 없는 좁은 공간.

세이아가 손가락을 튕겼다.

탁.

벽에 달린 마도등이 하나씩 켜졌다.

책장에는.

수백 년 동안 트리비아가 남긴 기록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다.

세이아는 손안의 꽃잎을 꺼냈다.

여전히.

멀쩡했다.

시들지도 않았다.

“꿈의 물건이 현실로 넘어온 사례.”

그녀가 중얼거리자.

보랏빛 마력이 책장 사이로 퍼졌다.

몇 권의 책이 스스로 빠져나왔다.

휙.

휙.

탁.

책상 위에 내려앉았다.

세이아는 첫 번째 책을 펼쳤다.

《몽계의 이론》

두 번째.

《트리비아 역대 능력자 기록》

세 번째.

《꿈과 현실의 경계》

세이아의 손이 멈췄다.

“이거네.”

책장을 빠르게 넘겼다.

사락.

사락.

그러다.

한 구절에서.

손이 멈췄다.

『꿈은 현실을 모방하나 현실이 될 수 없다.』

다음.

『몽계에서 만들어진 것은 몽계의 경계를 넘지 못한다.』

그리고.

『만일 꿈속의 물건이 현실에 남는다면.’

세이아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뒤.

글자가 지워져 있었다.

“…뭐야.”

종이가 찢어진 것도 아니었다.

잉크가 번진 것도 아니었다.

문장 자체가.

아예 사라진 것처럼.

공백.

세이아는 마력을 흘려보냈다.

보랏빛 빛이 종이 위를 훑었다.

그 순간.

희미한 글자가 떠올랐다.

『그곳은 꿈이 아니다.’

세이아의 몸이 굳었다.

“…뭐?”

글자가 다시 사라졌다.

세이아는 바로 마력을 더 흘려보냈다.

그러나.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꿈이 아니다?”

그러면.

자신이 들어갔던 곳은 대체 무엇이었지?

그 남자는.

왜 그곳에 있었고?

왜 자신을 알았으며?

왜.

다시 만났다고 했을까.

세이아의 시선이 꽃잎으로 향했다.

은빛.

금빛.

그리고.

자신의 것과는 다른.

아주 오래된 마력.

“아버지에게.”

말해야 하나.

세이아는 잠시 고민했다.

결국.

책을 덮었다.

“그래.”

혼자 확인할 수 있는 선은 넘었다.

이 정도라면.

에드윈에게 보여 주는 게 맞다.

세이아는 꽃잎을 작은 수정함에 넣었다.

그리고.

서고를 나섰다.

⸻

에드윈의 집무실 앞.

세이아가 문을 두드리려던 순간이었다.

안쪽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차가운 음성.

“…지난 두 달 동안 마흔세 명이다.”

세이아의 손이 멈췄다.

마흔세 명?

“전부 같은 증상입니까?”

에드윈의 목소리.

“그래.”

“치유사는?”

“육체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마법은?”

“저주도 아니다.”

잠시.

침묵.

그리고.

낯선 남자가 말했다.

“전부.”

낮은 목소리가 조금 더 가라앉았다.

“잠든 채 깨어나지 않는다.”

세이아의 표정이 굳었다.

잠든 채.

깨어나지 않는다.

그건.

꿈의 문제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녀는 생각할 것도 없이 문을 열었다.

“아버지.”

집무실 안.

에드윈이 고개를 들었다.

“세이아?”

그리고.

창가에 서 있던 남자가.

천천히 돌아섰다.

햇빛을 머금은 은빛 머리카락.

한겨울의 호수처럼 서늘한 푸른 눈.

검은 제복.

넓은 어깨.

그리고.

“….”

세이아의 걸음이 멈췄다.

손에서.

수정함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말도 안 돼.

꿈속에서는.

새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머리카락도 조금 달라 보였다.

분위기도.

지금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하지만.

얼굴은.

분명했다.

그 남자였다.

자신을 끌어안았던 사람.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던 사람.

“드디어.”

“다시 만났군.”

그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그대로 되살아났다.

세이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남자 역시.

세이아를 보는 순간.

표정이 굳었다.

푸른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의 시선이.

세이아의 얼굴에서.

귀로 내려갔다.

자수정 귀걸이.

그리고.

다시.

세이아의 눈으로.

잠시.

너무 긴 침묵이 흘렀다.

에드윈이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둘이.”

“아는 사이인가?”

“아니.”

남자가 즉시 대답했다.

세이아도.

거의 동시에 말했다.

“처음 봅니다.”

에드윈의 눈썹이 올라갔다.

둘 다.

그렇게 말하면서.

서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남자가 창가에서 몸을 돌렸다.

한 걸음.

세이아를 향해 다가왔다.

꿈과는 달랐다.

여기는 현실이었다.

꽃밭도.

신전도.

검은 균열도 없다.

그런데.

남자가 가까워질수록.

세이아의 심장이.

꿈속에서와 같은 박자로 뛰기 시작했다.

쿵.

남자의 걸음이 멈췄다.

그도 느낀 듯했다.

그의 눈빛이 더 깊어졌다.

세이아의 손안.

수정함 속 꽃잎이.

은빛으로 빛났다.

남자의 손등도.

아주 순간적으로.

희미한 빛을 냈다.

세이아가 숨을 삼켰다.

“당신…….”

남자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왜.”

낮은 목소리.

꿈속에서 듣던 것보다.

훨씬 차갑고.

현실적이었다.

하지만.

분명 같은 목소리였다.

“내 꿈에 있었지?”

세이아의 보랏빛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손안의 수정함에서.

하얀 꽃잎이.

심장처럼.

한 번.

뛰었다.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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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초에 사랑은 너희가 만든 것이 아니니까.』아무 색도 없는 눈이 아이의 그림자 속에서 떠올랐다. 새하얀 손은 세이아와 카일에게 돌아가려던 보랏빛과 푸른빛을 한꺼번에 움켜쥐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이가 스스로 놓아주려 했던 사랑이었다. 자신에게서 태어난 감정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두 사람에게 돌려주기로 선택한 마음. 그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손이 그 선택을 가로막은 순간, 두 빛은 다시 아이의 가슴 쪽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안 돼.”아이가 제일 먼저 반응했다. 작은 손으로 가슴을 누르며 뒤로 물러났지만, 그림자에서 솟은 힘은 오히려 더 강하게 두 감정을 밀어 넣었다. 세이아를 향한 카일의 사랑과 카일을 향한 세이아의 사랑이 다시 한 몸 안에서 뒤엉켰다. 아이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돌려주겠다고 했어. 나는…… 이거 돌려주고 싶어.”『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왜?”『사랑은 본래 개인의 것이 아니니까.』“누구 마음대로요?”세이아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감정을 빼앗긴 탓에 심장은 여전히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지만, 판단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림자에서 솟은 손과 무색의 눈을 바라보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카일과 제가 서로를 사랑하며 무엇을 선택했는지 당신이 어떻게 압니까?”『나는 알고 있다.』“그 대답은 많이 들었습니다.”세이아가 잘라 말했다.“오르페온도 알고 있다고 했고, 무명도 저희가 선택하지 않은 가능성을 저희보다 잘 안다고 말했습니다. 하늘의 문장도 제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했죠. 이제는 당신입니까?”무색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순간 아이가 비명을 삼키며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두 사람의 사랑이 안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세이아를 보면 카일의 마음이 뛰었고, 카일을 보면 세이아의 마음이 반응했다. 그 사이에서 정작 아이 자신의 감정은 점점 작아졌다.“나는…….”작은 몸이 휘청거렸다.“나는 어디 있어?”노아가 곧바로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벨이 본능적으로

  • 당신의 밤에 들어가겠습니다   물려받은 사랑은 네 것이 아니다

    쿵——!아이의 심장이 울렸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몸에서 나왔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거대한 박동이었다. 황실 성역 전체가 흔들리고, 기둥을 타고 가느다란 균열이 번졌으며, 바닥에 새겨진 수많은 이름이 일제히 빛났다. 그러나 그 한가운데 있는 세이아와 카일은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아이의 손이 닿아 있던 두 사람의 가슴 위로 검은 문장이 뿌리처럼 퍼지고 있었다.『첫 번째 계승이 완료되었습니다.』그리고 그 아래, 두 번째 문장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첫 번째 보호자를 죽이고― 그들의 선택을 물려받는다.』세이아의 보랏빛 눈에서 서서히 빛이 사라졌다. 카일의 손에서는 루미에르가 미끄러졌다. 챙——. 은빛 검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세이아!”에드윈이 가장 먼저 달려들었다. 그러나 세이아에게 닿기도 전에 아이의 등에서 투명한 날개가 거칠게 펼쳐졌다. 보이지 않는 충격이 폭발하며 에드윈을 밀어냈고, 그의 몸이 기둥에 부딪히는 순간 보랏빛 보호막이 산산이 깨졌다. 엘리아와 네이라가 동시에 움직여 쓰러지는 그를 받아냈다.“아버지!”헤르미아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은빛 힘을 끌어올려 세이아와 카일의 가슴을 뒤덮은 문장에 손을 뻗었지만, 이번에는 아이의 등 반대편에서 검은 날개가 튀어나왔다. 날개 끝이 칼날처럼 휘둘러졌고, 헤르미아가 급히 장막을 펼쳤다. 쾅! 충격에 그녀의 몸이 몇 걸음이나 뒤로 밀려났다.“건드리지 마.”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모두가 멈췄다. 조금 전까지 ‘헤르미아’와 ‘노아’, ‘리안’을 하나씩 배워 가던 아기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어린아이의 음성은 맞았지만, 그 아래에 여러 겹의 울림이 포개져 있었다. 세이아의 부드러운 음색과 카일의 낮은 목소리, 오르페온을 닮은 차가운 울림, 그리고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낯선 목소리까지.“지금…….”아이의 양쪽 눈이 번갈아 빛났다. 한쪽은 보랏빛, 다른 한쪽은 푸른빛이었다.“두 번째 계승이 시작됐으니까.”그러나 말을 마친 아이의 얼

  • 당신의 밤에 들어가겠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생명

    “나도…… 살고 싶어.”아렌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처음에는 누구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테오르의 제2날개 핵 곁에서 희미하게 떠 있던 회색 의식이 불규칙하게 떨렸다. 몸도, 온전한 핵도, 과거에 자신을 이루었던 힘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 한마디만큼은 이전보다 분명했다. 누군가를 대신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도, 테오르의 자리를 빼앗아야만 남을 수 있는 가짜도 아닌, 자신의 이름을 가진 존재가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원하고 있었다.세이아는 아렌에게 손을 뻗으려다가 멈췄다. 손으로 붙잡을 수 있는 형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 앞에 천천히 앉아 시선을 맞추듯 고개를 숙였다.“다시 말씀해 주세요.”회색 빛이 흔들렸다.“……꼭 다시 말해야 해?”“네.”“왜?”“제가 제대로 듣고 싶어서요.”한동안 침묵하던 아렌이 마침내 말했다.“살고 싶어.”이번에는 누구도 잘못 들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제2날개의 핵이 크게 울렸다. 테오르가 숨을 들이켰고, 그의 가슴에서 퍼져 나온 빛이 아렌을 향해 움직였다. 카일이 즉시 루미에르를 들어 둘 사이를 막으려 했지만, 테오르가 먼저 손을 들었다.“잠깐.”“핵이 저쪽으로 움직인다.”“알아.”“네 몸을 유지하는 핵이다.”테오르는 잠시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다가 아렌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자신의 얼굴을 하고 태어났고, 자신의 기억을 흉내 냈으며, 한때는 자신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도록 만들어졌던 존재. 그러나 지금 그에게는 얼굴조차 남지 않았다. 그럼에도 테오르는 전보다 더 확실하게 아렌을 구별할 수 있었다.“내 몸을 저 녀석에게 주겠다는 말은 하지 마.”세이아가 눈을 깜빡였다.“아직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습니다.”“할 것 같은 얼굴이었어.”“제가 언제요?”“지금.”세이아가 억울한 얼굴을 하자 카일이 옆에서 낮게 덧붙였다.“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카일까지 왜 그러십니까?”“전적이 많아서.”세이아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입을 다물었다. 반박하기 어려웠다

  • 당신의 밤에 들어가겠습니다   당신 혼자 결정할 수 없게

    카일의 손끝이 은빛으로 흩어지고 있었다.“카일.”세이아가 그의 손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손가락 하나가 이미 빛이 되어 사라졌고, 남은 손마저 점점 투명해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놓치지 않겠다며 단단하게 붙잡던 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리 힘을 주어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빛밖에는 잡히지 않았다.“괜찮아.”“괜찮지 않습니다.”“이번에는 나도 인정해야겠군.”카일이 자신의 손을 한번 내려다봤다. 입가에는 여전히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푸른 눈만큼은 웃지 않았다.“정말 조금 위험해.”“조금이 아니잖습니까. 그리고 농담할 때도 아닙니다.”“당신이 울 것 같아서.”“안 웁니다.”“이미 울고 있는데.”그 말을 듣고서야 세이아는 자신의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이 눈물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급히 닦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창조의 힘을 끌어올리려 했지만, 가슴에서 힘이 움직이는 순간 오르페온의 은빛 계약이 반응했다. 금빛과 보랏빛이 섞인 빛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꿈도, 시간도, 이름도, 창조도. 오르페온은 그 모든 것의 기원이 자신이라고 주장했고, 적어도 지금 펼쳐진 계약 안에서는 힘을 사용할수록 그의 ‘회수’에 휘말리는 것처럼 보였다.어떻게 해야 하지.힘을 사용하지 않으면 카일이 사라진다. 힘을 사용하면 오르페온의 계약에 먹힌다. 어느 쪽이든 그가 정해 둔 답이었다.“세이아.”카일의 목소리가 들렸다.“말하지 마세요.”“들어.”“싫습니다.”“당신이 자주 하는 말이군.”“카일.”“그러니까 나도 한 번쯤은 끝까지 말하게 해 줘.”카일이 남은 손을 들어 세이아의 뺨에 댔다. 이미 감각이 거의 남지 않은 손인지 손길이 어색했다. 그래도 세이아는 그 손바닥에 얼굴을 기댔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손이 사라진 뒤에도 그 온도를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오래 붙들고 싶었다.“내가 없어져도.”“그런 말 하지 마세요.”“끝까지 들어.”푸른 눈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내가 없어지는 건 당신 선택이 아니야

  • 당신의 밤에 들어가겠습니다   기원은 끝을 정하지 않는다

    “드디어 찾았구나.”오르페온이 손을 내밀었다.“나의 마지막 창조자.”남쪽 폐허에서 열린 검은 문이 황실 성역의 공간을 가르며 완전히 벌어졌다. 그러나 문 너머에 펼쳐진 것은 무너진 신전도, 리안이 잠들어 있던 오래된 관도 아니었다. 끝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얀 궁전과 높게 솟은 기둥, 한 점의 얼룩도 허락하지 않는 바닥이 눈부신 빛 아래 이어져 있었다. 하늘은 지나치게 맑았고 정원에는 흰 꽃이 만개해 있었다. 얼핏 보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무것도 무너지지 않으며, 슬픔이라는 것조차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세계였다.그런데 세이아는 곧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바람이 없었다.기둥 사이에 피어난 꽃은 단 한 송이도 흔들리지 않았고, 하늘을 나는 새들은 정확히 같은 궤도를 반복해서 돌았다. 구름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햇빛이 비치는 각도도 변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살아 있는 것처럼 아름다웠지만, 그 무엇도 스스로 다음 순간을 선택하지 않았다.헤르미아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첫 번째 세계?”그녀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가 멈췄다. 은빛 눈에 혼란이 번졌다.“아니. 저곳이 정말…….”기억 속의 세계는 무너졌다. 수많은 신과 인간이 죽었고, 끝내 모든 것이 사라졌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너무나 익숙했다. 기억과 똑같아서 오히려 믿을 수 없었다.오르페온이 웃었다.“남아 있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구나.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으니.”세이아가 즉시 물었다.“저곳이 정말 당신들이 말하는 첫 번째 세계라는 증거가 있습니까?”오르페온의 은빛 눈이 그녀에게 향했다.“직접 보고도 믿지 못하는가?”“직접 본다고 해서 그것의 과거까지 알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보존된 일부일 수도 있고, 재현된 공간일 수도 있다. 누군가의 기억을 토대로 만들어진 세계일 가능성도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그들은 기억과 기록, 계약과 이름이 얼마든지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았다.오르페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

  • 당신의 밤에 들어가겠습니다   사랑받지 않아도 살아도 됩니다

    “싫다고 하면요?”아이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검은 방에는 잠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방의 벽에는 여전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가두고, 죽이고, 자신의 삶을 버렸던 장면들이 흐르고 있었지만 아이는 더 이상 그쪽을 보지 않았다. 보랏빛 눈동자는 오직 세이아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싫다고?”처음 들어 보는 말처럼 아이가 되물었다.“네.”세이아는 아이가 내민 손을 잡아 주지도, 그렇다고 밀어내지도 않았다. 선택해야 할 사람은 자신이었고, 그 선택을 받아들여야 할 사람은 아이였다.“제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떻게 할 겁니까?”아이의 얼굴이 천천히 굳었다.『거절은 존재하지 않는다.』가슴에 남아 있던 검은 계약이 즉시 대답했다. 아이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그 문장을 따라 말하면 됐다. 거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세이아는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랑할 때까지 이곳에 붙잡아 두면 된다고.그렇게 만들어졌다.그렇게 배웠다.그런데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그건…….”작은 손이 떨렸다.“안 돼.”“왜 안 됩니까?”“그러면…….”아이는 자신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사랑하는 신을 영원히 가둔다.』라는 문장이 심장 주위를 뱀처럼 감싸고 있었다. 세이아를 사랑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 이유라면, 세이아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순간 자신에게 무엇이 남는가.아이는 한참 뒤에야 겨우 말했다.“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잖아.”세이아의 눈빛이 흔들렸다.그제야 알았다.이 아이가 두려워하는 것은 단순한 거절이 아니었다.존재의 상실이었다.사랑받지 못하면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지 못하면 자신이라는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고 믿고 있었다. 그래서 세이아가 필요했다.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존재해도 된다는 증명을 세이아에게서 받아야 했기 때문에.“그래서.”아이가 다시 웃으려 했다. 하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계속 흘렀다.“둘만 남으면 괜찮아.”검은 사슬이 작은 몸을 더욱 단단하게 감쌌다.“다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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