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카일의 푸른 눈에 낯선 혼란이 번졌다. “누구지?” 세이아의 숨이 멎었다. 손은 여전히 맞잡혀 있었다. 체온도, 손가락의 감촉도, 조금 전까지 자신을 놓지 않겠다던 힘도 그대로였다. 그런데 카일의 눈 안에서 자신만 사라져 있었다. “…카일.” 세이아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카일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낯선 단어를 들은 사람처럼 자신의 가슴께를 내려다본 그가 천천히 되물었다. “그게 내 이름인가?” “맞아요.” 목 안쪽이 뜨겁게 조여 왔지만 세이아는 울지 않았다. 지금 무너져서는 안 됐다. “당신의 이름은 카일입니다. 카일 레온 에스트라드. 북부의 대공이고, 첫 번째 날개의 환생이자…….” 말끝이 흐려졌다. 무엇부터 설명해야 할까. 그가 누구인지, 무엇을 지켜 왔는지, 자신과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한 사람의 삶과 관계를 짧은 문장 몇 개로 되돌릴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카일이 물었다. 세이아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기억 속에는 이제 자신이 없다. 그렇다면 오히려 지금만큼은 숨길 이유도 없었다. 과거의 카일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도, 앞으로 어떤 마음을 선택할지도 잠시 내려놓았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자신의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세이아가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카일의 눈빛이 흔들렸다. 주변의 소리가 순간 멀어졌다. 성역을 뒤흔드는 굉음도, 아르젠의 웃음도, 이름을 잃고 혼란에 빠진 사람들의 목소리도. “당신이.” 카일이 천천히 되물었다. “나를 좋아한다고?” “네.” 세이아는 피하지 않았다. “많이 좋아합니다.” 보랏빛 계약 문양이 희미하게 빛났다. 아르젠의 힘에 거의 지워져 가던 문양이었다. 그러나 세이아가 자신의 마음을 직접 입 밖으로 꺼낸 순간, 아주 미약하게나마 다시 살아났다. 카일이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이것도 당신과 이어진 건가?” “네. 저와 이어진 계약입니다.” “내가 선택한 건가?” 이번에는 세이아가
Zuletzt aktualisiert : 2026-09-03 Mehr le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