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당신의 밤에 들어가겠습니다: Kapitel 11 – Kapitel 20

41 Kapitel

당신을 선택한 것은 나였다

검은 창이 떨어졌다.카일의 가슴을 향해.“카일!”세이아가 손을 뻗었다.하지만 목소리는 붉은 바다에 삼켜졌다.거리는 조금도 좁혀지지 않았다.오히려 붉은 파도가 거세게 일어나 세이아의 몸을 더 깊은 곳으로 끌어내렸다.카일은 검은 사슬에 묶인 채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등 뒤에 펼쳐진 은빛 날개는 수십 개의 사슬에 꿰뚫려 있었다.움직일 때마다 은빛 깃털이 빛가루처럼 흩어졌다.그리고.그의 심장 바로 앞.검은 창끝이 멈춰 있었다.“…안 돼.”세이아가 이를 악물었다.그 순간.카일이 고개를 들었다.수천 개의 사슬.붉은 바다.검은 안개.그 모든 것 사이에서도 푸른 눈동자는 정확하게 세이아를 찾아냈다.입술이 움직였다.소리는 들리지 않았다.하지만 계약을 통해 감정이 밀려왔다.두려움.분노.고통.그리고 그 모든 것보다 선명한 하나.괜찮아.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순간에도.카일은 세이아부터 안심시키고 있었다.세이아의 가슴이 뜨겁게 조여 왔다.‘괜찮을 리 없잖아요.’정말.끝까지 이 남자는.세이아는 손등을 움켜쥐었다.은빛 날개와 보랏빛 심장이 이어진 계약 문양이 강하게 빛났다.쿵.카일의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쿵.쿵.살아 있었다.아직.그렇다면 충분했다.세이아는 눈을 감았다.이곳은 현실이 아니었다.테오르의 영혼 안쪽.꿈과 기억.신력이 뒤엉켜 만들어진 세계.그렇다면.현실의 법칙까지 따를 이유는 없었다.“멈춰.”세이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순간.붉은 바다가 굳었다.파도가 멈추고.검은 사슬이 정지했다.카일의 심장을 향하던 검은 창 역시 허공에서 멎었다.세이아가 숨을 내쉬었다.그러나.아주 조금씩.창끝이 움직였다.“…뭐야.”한 치.또 한 치.세이아가 붙잡은 시간을 밀어내며.검은 창이 카일의 심장을 향해 내려갔다.『역시 아직 불완전하군요.』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붉은 바다 전체에서 들려왔다.세이아가 고개를 들었다.바다 위.은빛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여자가 서 있었다.새하얀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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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심장의 이름

빛이 없었다.소리도.바람도.아무것도.세이아는 자신이 눈을 뜨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몸이 끝없이 아래로 가라앉는 감각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손끝도 움직이지 않는다.숨을 쉬려 해도 가슴은 움직이지 않았다.마치 살아 있는 몸을 잃고.의식만 이곳에 떨어진 것처럼.‘카일.’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의 이름이었다.그러나.대답이 없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느껴졌다.계약으로 연결된 심장 박동.자신의 가슴 안에서 두 번째 심장처럼 뛰던 카일의 생명.그런데 지금은.아무것도 없었다.“…….”두려움이 밀려왔다.가슴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하지만 세이아는 곧 이를 악물었다.안 된다.여기는 세 번째 봉인.신의 기억과 죄.죽음과 소멸.오래전에 버려진 감정들이 뒤엉켜 만들어진 장소였다.두려움에 휘둘리는 순간.그 감정 자체가 이곳의 먹이가 될 수 있었다.세이아는 보이지 않는 눈을 감았다.더 깊이.자신의 안쪽으로 의식을 가라앉혔다.‘계약은 없어지지 않았어.’첫 번째 날개와 맺은 계약은 단순한 마법이 아니다.카일은 자신의 이름과 생명.남아 있는 시간까지 세이아에게 맹세했다.공간 하나가 있다고 끊어질 연결이 아니었다.그렇다면.느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누군가.사이를 막고 있는 것이다.세이아는 자신의 심장에 집중했다.쿵.아주 작게.박동이 느껴졌다.자신의 심장.그보다 조금 깊은 곳.쿵.붉은 심장이 뛰었다.세 번째 심장.그리고.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검은 깃털처럼 작은 빛 하나가 떨리고 있었다.테오르.그의 영혼은 여전히 세이아 안에 남아 있었다.하지만.카일은 없었다.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다시 두려움이 올라왔다.세이아가 이를 악물었다.“아니야.”없어진 것이 아니다.떨어져 있을 뿐이다.“카일.”처음에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그러나.이름을 부른다는 행위 자체에 힘이 실렸다.보랏빛 파문이 어둠 속으로 번져 나갔다.한 번.또 한 번.“카일.”이번에는.목소리가 나왔다.아주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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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것이었던 적은 없습니다

첫 번째 봉인이 무너졌다.콰아아아아앙——!검은 균열이 라시드 성 중앙 예배당의 천장을 찢으며 솟구쳤다.하늘을 뒤덮은 먹구름 아래.달빛마저 거대한 날개에 삼켜졌다.균열 너머.열두 장의 검은 날개를 펼친 남자가 왕좌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굳은 피처럼 어두운 붉은 갑옷.머리 위로 휘어진 검은 뿔.그리고.얼굴의 절반을 가린 금빛 가면.가면 아래 드러난 입술이 천천히 휘었다.『내 신부를 데리러 왔다.』순간.화아악——!“윽……!”세이아가 손등을 움켜쥐었다.검은 왕관 문양이 불에 덴 것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문양의 끝에서 뻗어 나온 붉은 실 하나가.균열을 가로질러.왕좌 위 남자의 심장까지 이어져 있었다.쿵.세이아가 숨을 삼켰다.쿵.다시 한번.자신의 것이 아닌 박동이 가슴 안쪽 깊은 곳에서 울렸다.자신의 심장.레하의 붉은 심장.테오르의 영혼을 감싼 작은 심장 조각.그리고.하나가 더 있었다.검고.차갑고.끝없이 굶주린 심장.쿵.네 번째 박동.“…….”시야가 붉게 물들었다.순간.낯선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치기 시작했다.검은 하늘.불타는 신전.피로 물든 새하얀 드레스.누군가의 손을 잡은 여자.자신이었다.아니.헤르미아였다.남자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맞잡은 손등에는.지금 세이아에게 새겨진 것과 똑같은 검은 왕관 문양이 있었다.“세이아.”낮은 목소리.카일의 손이 세이아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았다.파앗!은빛 마력이 검은 왕관 위로 덮였다.치이익——.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그러나.문양은 없어지지 않았다.오히려.붉은 실이 더욱 짙어졌다.카일의 얼굴이 싸늘하게 식었다.“이걸 끊어.”『무리다.』세이아의 안에서 레하가 대답했다.카일의 시선이 세이아의 붉게 물든 한쪽 눈으로 향했다.“네가 레하인가.”세이아의 입술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였다.『그래.』“방법을 말해.”『저건 계약이 아니야.』“그럼.”카일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뭐지?”잠시.레하가 대답하지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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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같이 선택한다

세이아는 검은 심장을 움켜쥐었다.쿵.작은 심장이 손바닥 안에서 거칠게 뛰었다.제르칸의 몸은 이미 균열 안쪽으로 물러났지만, 그의 힘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세이아의 손 안에 남은 검은 심장.그리고 손등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붉은 흔적.아직 끝나지 않았다.“지금입니다.”테오르가 외쳤다.검은 창이 허공을 갈랐다.붉은 실이 끊어진 자리마다 검은 균열이 드러났다.북부의 땅과 숲.도시와 주민.잠들어 있는 병사들에게까지 이어져 있던 수천 개의 가느다란 연결선.제르칸이 인간계의 생명을 빨아들이던 통로였다.“제가 남은 연결을 지우겠습니다.”테오르가 창을 움켜쥐었다.카일은 균열 앞을 막아섰다.“남은 군대는 내가 처리한다.”세이아가 검은 심장을 내려다보았다.“저는 봉인을 다시 세우겠습니다.”첫 번째 봉인은 이미 절반 이상 무너져 있었다.봉인을 이루던 열두 개의 기둥 중 아홉 개가 부서졌고, 남은 세 개마저 금이 가고 있었다.단순히 문을 닫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이번에는.제르칸이 안쪽에서 다시 문을 열 수 없도록 해야 했다.새로운 중심이 필요했다.그리고.그 중심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세이아의 손 안에서 뛰고 있었다.쿵.『그걸 쓰려는 거야?』레하의 목소리가 들렸다.“다른 방법이 있습니까?”『있어.』“말해 보세요.”짧은 침묵.『제르칸을 죽이는 것.』세이아는 대답하지 않았다.『왜?』레하가 차갑게 웃었다.『못 하겠어?』“죽이는 것이 가장 쉬운 해결책처럼 보일 때는.”세이아는 손안의 심장을 바라봤다.“대개 다른 대가가 숨어 있습니다.”『그자는 신들을 먹고 세계를 무너뜨렸어.』“압니다.”『헤르미아를 가두고 네 심장에 자신의 조각까지 박았지.』“그것도 압니다.”『그런데도 살려 두겠다고?』“살려 두려는 게 아닙니다.”『그럼?』세이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균열 너머.어둠 속에 제르칸의 기척이 느껴졌다.끈질기고.무겁고.끝내 놓지 못하는 사람처럼.“선택하게 두는 겁니다.”『그자가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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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소중한 기억

“계약을 시작하겠습니다.”세이아의 선언과 동시에.콰아아아아앙——!첫 번째 봉인 전체가 눈부신 빛에 잠겼다.보랏빛.은빛.그리고 검은빛.세 사람의 힘이 뒤엉키며 무너진 봉인의 틈을 타고 번져 나갔다.균열 너머.제르칸의 열두 장의 검은 날개가 한꺼번에 펼쳐졌다.『결국 그 선택인가.』낮은 목소리가 라시드 성 전체를 울렸다.『또 나를 가두려는군.』세이아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제르칸의 검은 심장이 떠 있었다.쿵.한 번.쿵.두 번.심장이 뛸 때마다 검은 기운이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었다.마치.다시 세이아의 몸속으로 돌아가려는 것처럼.카일의 손이 더욱 강하게 그녀의 손을 감쌌다.“세이아.”“네.”“마지막으로 묻겠다.”세이아가 그를 바라봤다.푸른 눈동자 안에.숨길 생각조차 없는 두려움이 있었다.“정말 할 수 있나?”세이아는 잠시 말이 없었다.그러다.아주 작게 웃었다.“저를 못 믿으십니까?”카일의 대답은 즉시 돌아왔다.“믿는다.”세이아의 눈이 조금 커졌다.“그런데 왜.”“믿어서 더 무섭다.”낮은 목소리.카일은 세이아의 손을 놓지 않았다.“네가 할 수 있다는 걸 알아.”그가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이마와 이마가 맞닿았다.뜨거운 숨이 섞였다.“그리고.”카일이 눈을 감았다.“할 수 있으면 반드시 한다는 것도 알아.”“전하.”“그래서 막고 싶은 거다.”세이아의 가슴이 조여 왔다.그는 세이아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었다.오히려.믿고 있었다.너무 믿어서.그녀라면 결국 자신이 감당해야 할 위험까지 기꺼이 짊어질 것을 알고 있었다.그리고.그 선택을 빼앗고 싶지 않아서.자신의 두려움과 싸우고 있었다.세이아는 천천히 카일의 손등을 쓸었다.“그럼.”손가락을 깊이 얽었다.“함께해 주세요.”카일이 눈을 떴다.“싫다고 하면?”“혼자 합니다.”“그럴 줄 알았다.”짧은 웃음.체념인지.분노인지.사랑인지.이제는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섞인 웃음이었다.“비겁하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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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지 못해도 다시

“제가 내놓을 기억은.”세이아의 손끝에서 보랏빛 빛이 천천히 떠올랐다.죽음의 강 전체가 조용해졌다.수천만 개의 영혼이 흐르는 물결조차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카일은 세이아를 바라보고 있었다.차갑고.낯선 눈으로.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의 손을 놓지 않겠다던 사람.그런데 지금은.자신이 왜 세이아를 바라보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얼굴이었다.“…….”세이아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아프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기억 하나를 잃었다는 사실보다.그 기억을 잃은 사람이.자신을 모른다는 사실이 더 아팠다.그러나.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았다.죽음의 사자가 낫을 들어 올렸다.『선택해라.』강의 끝.테오르가 탄 작은 배가.새하얀 안개에 거의 닿고 있었다.세이아는 눈을 감았다.가장 소중한 기억.수많은 장면이 떠올랐다.어린 시절.처음 꿈속에서 사람을 만났던 날.아버지에게 혼났던 날.어머니가 웃으며 머리를 빗어 주던 밤.알테르가 자수정 귀걸이를 건네던 순간.그리고.카일.꿈속의 꽃밭.은빛 날개.피 묻은 손.자신을 바라보던 푸른 눈.하지만.그 모든 것보다.가슴을 더 깊게 파고드는 기억이 하나 있었다.붉은 하늘.무너지는 세계.카일과 자신의 손등에서 완전한 날개 문양이 빛나던 순간.그리고.그가 말했다.『나, 카일 레온 에스트라드는.』세이아의 가슴이 아프게 뛰었다.『내 이름과 생명.』맞잡은 손.『그리고 남은 모든 시간을.』푸른 눈동자.두려우면서도.그럼에도 절대 물러서지 않았던 눈.『세이아 트리비아에게 바친다.』그 순간.세이아는 처음으로 깨달았다.자신이 보호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한 사람이.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을 정도로.자신을 선택했다는 것을.그리고.세이아 역시 그를 선택했다.『저 역시.』그의 손을 잡으며.『전하의 이름과 생명.』손가락을 깊게 얽으며.『그리고 남은 시간을 받아들이겠습니다.』두 문양이 하나로 이어졌다.그때.세이아는 카일을 사랑한다고.처음으로 인정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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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는데도 당신이 우는 건 싫다

라시드 성의 새벽은 소란스러웠다.밤새 잠들어 있던 병사들이 하나둘 눈을 떴고.무너진 외벽에는 임시 방어막이 세워졌다.마법사들은 첫 번째 봉인의 잔재를 수습했으며.기사들은 수도로 향할 원정대를 준비하고 있었다.말발굽 소리.갑옷이 부딪치는 소리.부상자들의 신음.살아남았다는 안도와.또 다른 싸움이 시작될 것이라는 불안이 뒤섞인 새벽이었다.세이아는 성의 가장 높은 탑에 서서 북부를 내려다보았다.밤은 지났지만.하늘은 아직 잿빛이었다.먼 산맥 위로 검은 구름이 길게 걸려 있었다.첫 번째 봉인은 닫혔다.제르칸은 다시 봉인되었다.잠들었던 병사들도 깨어났다.끝나야 했다.하지만 세이아는 알고 있었다.끝난 것이 아니다.오히려.누군가가 기다리던 문이 이제야 열린 것에 가까웠다.『드디어 길이 열렸군.』황제의 편지가 도착했을 때.자신의 안에서 들렸던 목소리.그리고 금빛 눈.세이아는 천천히 가슴 위에 손을 올렸다.레하의 붉은 기척이 느껴졌다.테오르의 영혼도 아주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하지만.그 금빛 눈의 주인은 찾을 수 없었다.마치 세이아가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만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누구죠?”세이아가 낮게 물었다.대답은 없었다.“듣고 있는 거 알아요.”차가운 새벽바람만 열린 창문 사이로 스며들었다.그때.레하가 세이아의 안에서 움직였다.『누구에게 말하는 거지?』“당신은 못 들었습니까?”『무엇을?』“금빛 눈.”레하의 기척이 순간 멎었다.『금빛 눈이라니?』“황제의 편지가 도착했을 때.”세이아는 기억을 더듬었다.“제 안에서 누군가가 말했습니다.”『나는 듣지 못했어.』“테오르는요?”잠시 침묵이 흘렀다.테오르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훨씬 희미했다.『저도 듣지 못했습니다.』세이아의 표정이 굳었다.테오르의 영혼은 아직 형태조차 갖추지 못했다.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힘을 소모하고 있었다.그런데.레하도.테오르도 듣지 못했다.오직 자신에게만 들린 목소리.“그럼 제 환청일 수도 있겠네요.”『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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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훔쳐 간 아이

“내 이름을 훔쳐 간 아이.”투명한 관 속 여인의 목소리는 낮고 맑았다.오랜 잠에서 막 깨어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또렷했다.그녀가 눈을 뜨는 순간.황실 성역 전체가 숨을 멈췄다.우우웅―금빛 제단을 감싸고 있던 마법진이 일제히 빛났다.바닥에 새겨진 고대 문양들이 살아 있는 뱀처럼 꿈틀거렸고.성역을 지탱하던 기둥마다 금빛 선이 타고 올라갔다.에드윈 트리비아 백작은 피 묻은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철컥.손목을 감고 있던 검은 사슬이 거칠게 흔들렸다.하지만 에드윈은 고통 따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투명한 관만 바라보았다.세이아와 똑같은 얼굴.눈매도.코와 입술의 모양도.가늘고 흰 손가락마저 닮았다.그러나.분위기는 전혀 달랐다.세이아가 따뜻한 빛을 품고 있다면.관 속의 여인은.빛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람의 모습을 흉내 낸 것 같았다.인간이라기보다.태어나기 전의 신에 가까운 존재.새하얀 머리카락이 물결처럼 관 안에 퍼져 있었다.이마에 새겨진 황금빛 태양 문양은 느리게 회전하고 있었다.황제의 몸을 빌린 아르젠이 만족스럽게 웃었다.“드디어 눈을 떴군.”여인의 금빛 눈이 그에게 향했다.“아르젠.”반가움도.두려움도 없었다.그저 이름을 확인하는 무심한 목소리.아르젠의 미소가 깊어졌다.“내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나?”“모른다.”“수천 년이다.”“그 정도의 시간은 의미가 없다.”아르젠의 미소가 미세하게 굳었다.여인은 더 이상 그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금빛 눈이 에드윈에게 닿았다.“저 인간은 누구지?”“세이아 트리비아의 아버지다.”세이아.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여인의 눈동자가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그 아이의 아버지.”에드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사슬이 손목의 살을 파고들었다.붉은 피가 손끝을 타고 떨어졌다.그래도 에드윈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내 딸을 아는가?”여인은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관 안에서 천천히 손을 들었다.하얀 손바닥이 투명한 벽에 닿았다.금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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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보다 먼저 시작된 선택

“이번에는.” 헤르미아의 보랏빛 눈이 세이아의 심장을 향했다. “네가 누구인지 알려 줄게.” 그 순간. 멈춰 있던 금빛 태양이 눈을 떴다. 콰아아앙―! 검은 바다가 요동쳤다. 하늘을 뒤덮은 금빛이 거대한 눈동자처럼 갈라지며 세이아를 내려다보았다. 아르젠. 그가 이곳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헤르미아는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전장 속에서 오직 그녀만이 세이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이아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당신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억입니까?” “일부는.” 헤르미아가 대답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보랏빛 심장 위로 번져 있던 금빛 균열이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었다. “일부는 아니야.” “무슨 뜻이죠?” “여기에는 기억만 남은 게 아니니까.” 헤르미아의 시선이 하늘의 금빛 태양을 향했다. “아르젠이 숨겨 둔 진실도 있어.” 세이아의 표정이 굳었다. “무슨 진실입니까?” 헤르미아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멈춰 있는 첫 번째 날개를 바라보았다. 피에 젖은 은빛 날개. 부러진 검. 그리고 자신을 살리기 위해 죽음이라는 선택마저 거부했던 남자. 한참 뒤. 헤르미아가 말했다. “카일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어.” 세이아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방금…….” “알아.” 헤르미아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렇게 보였겠지.” “그럼…….” “그가 사랑한 건.” 헤르미아의 보랏빛 눈이 세이아에게 돌아왔다. “내 안에 있던 너야.” 세이아는 말을 잃었다. 한동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무슨 뜻입니까?” 헤르미아가 손을 뻗었다. 보랏빛 빛이 손끝에서 흘러나와 두 사람 사이에 길을 만들었다. 그 안에서 수많은 장면이 흘렀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혼. 이름조차 갖지 못한 작은 빛. 그리고 그 빛을 품고 있던 거대한 보랏빛 심장. “세이아는 내 이름이 아니야.” 세이아의 숨이 멎었다. “그 이름은.” 헤르미아가 말했다. “태어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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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선택받았다고 믿었다

카일의 손등에 금빛 문양이 떠올랐다.세이아와 이어진 보랏빛 계약 문양 바로 옆이었다. 황금빛 원 안에 작은 별 하나가 박힌 형태로, 갑자기 생겨난 흔적이라기보다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자연스러웠다.엘리아가 밤마다 투명한 관 안에서 바라보았고, 마침내 자신의 이름으로 선택한 바로 그 별.카일은 천천히 손등을 들어 올렸다. 은빛 마력을 조금 흘려 보았지만 문양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황금빛 선이 희미하게 맥박치며 그의 힘에 응답했다.“이건…….”그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세이아와 엘리아 역시 같은 문양을 바라보고 있었다.세이아의 가슴이 조용히 조여 왔다.조금 전 그들에게 흘러들어 온 장면은 너무 선명했다. 아직 첫 번째 날개가 되기 전의 어린 카일, 금빛 정원, 그리고 새하얀 머리카락의 소녀에게 손을 내밀던 모습.너를 찾으러 올게.반드시.기억을 잃은 지금의 카일조차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했다.“처음 선택했던 사람.”엘리아가 다시 중얼거렸다.금빛 눈동자에는 혼란과 기쁨이 동시에 떠올라 있었다. 이제 막 이름을 얻고, 이제 막 자신의 감정을 알아가기 시작한 사람에게 그 기억은 너무 강렬했다.하지만 카일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나는 기억하지 못한다.”“그래도 문양이 남아 있어.”엘리아의 시선이 그의 손등을 떠나지 않았다.“우리는 계약했어.”계약.세이아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이상하게 그 단어가 아팠다.자신과 카일 사이의 계약은 해제하기로 했다. 과거에 사랑했던 자신들이 내린 선택으로 지금의 카일까지 묶어 두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오래된 계약이 갑자기 나타났다. 카일 자신조차 몰랐던 약속이며, 엘리아는 자신이 그에게 처음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말했다.그렇다면 자신은 무엇일까.헤르미아 안에서 태어나기를 기다리던 존재.카일이 전생에서부터 알 수 없는 기척을 느꼈다는 사람.그러나 엘리아 역시 자신의 반쪽이었다. 같은 뿌리에서 갈라진 존재라면, 과거의
last updateZuletzt aktualisiert : 202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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