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가지 마, 내 허락 없이: Chapter 41 - Chapter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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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41화.“대표님. 언제 오셨어요?”“한참 됐습니다.”“정말요? 죄송해요. 몰랐어요.”“괜찮습니다. 은별 씨 목소리 들으며 나름대로 힐링하고 있었으니까요.”은별이 그의 말에 얼굴을 붉혔다. 조용히 읽는다고 읽었는데 다 들렸나 보다.“은별 씨.”“네. 대표님.”“굿즈 나온 거 보셨나요?”“네. 그렇지 않아도 좀 전에 구경했는데 너무 예쁘게 잘 나왔더라고요. 디자인이 너무 예뻐서 놀랐어요.”“생각보다 반응이 좋습니다. 은별 씨 아이디어가 적중했어요.”“…네?”“이 손수건.”정후가 제 왼쪽 가슴에 있는 행커치프를 꺼내어 그녀 앞에 살랑살랑 흔들었다.그러고 보니 굿즈로 판매 중인 손수건과 그의 행커치프가 동일했다.은별이 짐짓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아, 다행이에요. 감사합니다.”“감사는 제가 해야죠. 손수건이 행커치프로 써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서. 다 은별 씨 덕분입니다.”정후가 주는 칭찬은 언제나 그녀를 기분 좋게 했다.은별도 정후를 칭찬해 주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솟아올랐다.“도트 문양 행커치프를 보자마자, 대표님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그래요? 음. 그런 칭찬 듣기 좋네요. 은별 씨, 시간 괜찮으면 우리 커피 한잔할까요?”“네, 전 좋아요.”은별이 정후의 제안에 망설이지 않고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이 행사장을 벗어나 근처 카페로 향했다.테이블 위에 에스프레소 두 잔이 놓였다.오랜만에 신선한 커피를 본 은별의 눈이 반짝거렸다. 이내 따뜻한 에스프레소가 그녀의 입안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은별 씨.”“네, 대표님.”“여기.”정후가 포켓에 꽂아놓았던 행커치프를 다시 꺼내어 은별에게 건넸다.“이건, 왜….”은별이 얼떨결에 행커치프를 받아들고 이유를 알 수 없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크레마가 입가에 묻었네요. 티슈보다는 손수건.”“아, 네. 감사합니다.”칠칠치 못한 모습을 정후에게 보인 것 같아 은별이 당황해하며 손수건으로 입가를 닦았다.그 순간 손수건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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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42화.“아, 재훈이 재산 관리를 저희 아버지가 하세요. 그런데 이번에 오피스텔을 계약했다고 해서요. 그것도 매매로. 그래서 전 두 사람이 이사하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보네요.”이게 도통 무슨 소리인지 은별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녀의 이사 소식이 아니라는 거였다.그런데 정재훈이 오피스텔을 계약했다고?왜… 무엇 때문에?하긴, 이런 의문도 우스웠다.평소 그가 가장 열심히 하는 시나리오 작업에는 관심조차 없었으면서, 갑자기 오피스텔 계약에 관심이라니.도둑이 제 발 저린다더니, 고은별이 딱 그 모습이었다.“은별 씨도 모르고 있는 일인가 본데 제가 괜한 말을 했네요. 저도 자세히는 모르니 너무 신경 쓰지는 마세요. 투자였을 수도 있고요. 재훈이한테는 그런 투자, 흔한 일이니까요.”사장은 놀라며 반문하는 은별을 보며 괜한 소리를 했나 싶어 말을 마무리 지었다.그리고 그도 바빴다. 이모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부랴부랴 온 것이다.한 달을 넘기기 어렵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들었었다.그동안 재훈에게 이모를 만나보길 설득했지만, 재훈은 박힌 돌처럼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동생의 상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엄마가 아닌가.재훈은 아닌 척하지만, 그가 엄마를 많이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이모와 이모부가 헤어질 때, 이모는 재훈을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재훈이 이모가 아닌 이모부를 선택했다.이유야 어찌됐든 다른 남자와 외도한 이모를 따라가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이모와 이모부는 사랑으로 결혼한 사이가 아니었다.한때 이모부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했었다. 그때 이모를 소속사 배우로 만났었다.이모가 배우로서 막 성장하려던 때, 어쩌다 재훈을 임신하게 되었다.그 원망이 이모부에게 가는 것은 이모로서는 당연하였는지도 모른다.결혼과 출산 후 다시 연예계에 복귀했지만, 이모는 이미 사람들에게 잊힌 한물간 배우에 불과했으니까.그렇다고 이모가 재훈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제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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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43화.은별이 손님방에서 뒤척이며 잠을 청했지만, 낯선 곳에서 쉽사리 잠이 올 리가 없었다.그리고 조금 전 거실에서 나눈 선주와의 대화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은별아, 그럼 재훈 씨한테는 뭐라고 말할 거야? 이렇게 무작정 나온다고 끝날 관계가 아니잖아.”“영화제 끝나고 오면 말해야지. 집에서 만날 생각은 없어. 밖에서 볼래.”“만나서 뭐라고 얘기할 건데?”“거짓말이었다고. 사랑한다는 말, 거짓말이었다고 말할 거야.”“너…, 재훈 씨에 대해 여전히 사랑 아닌 거 맞아?”“글쎄.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난 재훈이를 사랑하는 거겠지.”“너, 재훈 씨 이해해보려고 노력해 본 적도 없잖아.”“맞아…. 그런데 선주야,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토록 이기적인 내가 재훈이 옆에 있다고 과연 재훈이가 행복할까? 난… 아니라고 생각해.”“그건, 네 생각이지. 재훈 씨는 행복할 수도 있어.”“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언젠가는 지칠 거야. 그리고 우리는 또, 똑같은 상황들을 반복하겠지.”“피하기만 하지 말고, 부딪혀 볼 생각은 없어? 너를, 재훈 씨한테 더 보여줄 생각은 없냐는 거야.”“선주야, 나… 그럴 용기가 없어.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남자한테 나를 다 드러내고 싶지는 않아.”“하아….”선주가 두 사람의 관계에 답답해하며 긴 한숨을 쉬었다.은별 또한 무수한 상처 가운데 살아왔던 친구다.기태의 빈자리를 어린 남자 재훈에게 무턱대고 내준 경솔함의 대가가 이런 어려운 사랑이라면, 차라리 기태를 따라 프랑스에 가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하지만 은별은 기태를 따라갈 용기도, 재훈에게 자신의 상처를 드러낼 용기도 없는 친구였다.선주는 그런 친구가 답답하면서도 마냥 안쓰러웠다.사랑에 우선순위가 있다면, 은별은 지금 누굴 사랑해야 하는 것일까.“은별아.”“응.”“넌, 너를 사랑하니?”“…뭐?”“난, 네가 무엇보다 널, 사랑했으면 좋겠어. ”“….”은별의 입에서 곧장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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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44화.곤히 자는 은별을 정후가 가만히 응시했다.지난 가을, 북카페 정원에서 장미꽃 향기를 맡으며 살포시 웃던 은별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때를 생각하니 정후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하지만 정후는 은별을 향한 마음을 쉽사리 키울 수 없었다.고은별과 함께할 동화 프로젝트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내년 상반기 작업도 빠르게 진행될 예정이었다.이제 막 본격적으로 시작된 중요한 프로젝트인데, 은별을 향한 사적인 호감이 공적인 비전을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더 이상의 감정은 호르몬의 과다 분출로 인한 비정상적인 사고일 뿐이다.정후는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렇다면 지금 해야 할 일은, 고은별을 깨우는 것이다.너무 오랜 시간, 특히 늦은 밤에.호감 있는 이성과 좁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은 이성적 사고를 깨뜨리기에는 딱 좋은 상황이니까.“은별 씨?”“….”“은별 씨?”재차 불러도 일어나지 않는 은별을 보며 정후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흔들어 깨웠다.“은별 씨, 집에 다 왔습니다. 그만, 일어날까요?”그제야 은별이 깜짝 놀라며 감긴 눈꺼풀을 올렸다.“아…! 죄, 죄송합니다. 대표님! 제가 너무 잤나 봐요….”은별은 정후가 저를 흔들어 깨웠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다.회식 때 술을 한잔했다고 하나, 취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내 집처럼 잘 수가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차 안에서.그녀가 민망함에 달아오르는 뺨을 손으로 감추며 고개를 숙였다.“괜찮습니다. 제가 편하니 그렇게 깊이 잤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일하는 사이에 불편하면 안 되죠.”“그, 그렇게 생각해 주셔서 감사해요. 어? 그런데 대표님, 여긴…!”은별은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을 보고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여긴, 은별 씨 집 앞인데 뭐가, 잘못됐나요?”“아…, 아뇨.”하….정후의 차를 타자마자 선주의 집 주소를 알려줬어야 했었다.제 사정을 모르는 정후는 당연히 이곳이 목적지인 줄 알았을 것이다.자신이 눈을 뜨고 있었더라면 중간에라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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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45화.갑작스러운 임신으로 사랑 없이 결혼한 재훈의 부모님.끊이지 않던 가정불화 뒤 이어진 엄마의 외도.그로인해 오랫동안 엄마를 보고 살지 않았다는 이야기.몇 년 전 화병으로 돌아가신 재훈의 아빠, 그리고 암에 걸려 돌아가신 엄마.한동안 이어진 가슴 아픈 이야기에 은별의 눈가가 붉게 젖어 들었다.난, 이런 삶을 산 아이에게… 대체 뭘 한 거지?그의 상처를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않고 징징거린다, 투정 부린다, 힘들다, 지친다, 모진 말만 쏟아부었던 자신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은별 씨.”“…네.”“재훈이, 불쌍한 놈입니다.”“죄송해요. 제가 그동안 재훈이한테 너무 관심이 없었어요.”“사실, 재훈이 형으로서 은별 씨가 밉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런데 재훈이도 같이 사는 동안 은별 씨한테 이런 말을 안 했다는 건, 제 상처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그런데 혹시, 짐작 가는 곳 없으세요? 재훈이가 있을 만한 곳 말입니다.”“아, 네. 재훈이랑은 거의 집에서만 같이 지내서….”그 순간, 은별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장면이 있었다.욕실에 쓰러져 있던 재훈을 발견했던 순간이 번뜩이며 떠올랐다.삽시간에 밀려드는 극심한 공포감에 은별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갔다.그러곤 지체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병원 출입문을 향해 쏜살같이 뛰쳐나갔다.“은별 씨!”뒤에서 카페 사장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대답할 새가 없었다.고은별 머릿속에는 온통 정재훈뿐이었다.***3일 전.영화제가 한창인 날.바람은 차가웠으나 날씨는 억수로 좋은 그런 날이었다.재훈이 건물 옥상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입에 문 채 파란 하늘을 잠시 올려다보았다.하늘을 지나가는 비행기가 흰 선을 만들며 더 높이 올라가던 그때, 사촌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어, 형. 무슨 일이야?”-재훈아…. 이모, 오늘 넘기기가 힘드시대. 당장 병원으로 와.“…!”툭.재훈의 손에 들린 핸드폰이 땅바닥으로 수직 낙하했다.충격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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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46화.제발 재훈이가 무사히 안에 있기를.‘은별아….’제 이름을 부르며 어린아이처럼 저를 붙잡고 엉엉 울어주기를.“흐흐흑. 재훈아… 문 좀 열어줘. 제발 문 좀 열어줘.”은별이 현관문 앞에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다.비밀번호가 바뀌었다는 건, 재훈이 집 안에 있다는 의미이자, 그가 고은별을 거부한다는 뜻.이런 상황을 결코 바랐던 것은 아닌데….내일 너를 만나 모든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고, 네 안에 있는 어린아이를 들여다보려 했는데. 그리고 내 안에 어린아이를 보여주려 했는데….내가 너무 늦은 것일까?재훈아, 늦지 않았다면 나에게 기회를 주면 안 될까?너를 안아줄 기회를 줘.나를 보여줄 기회를 줘.쾅! 쾅! 쾅!은별은 굳어버린 그의 심장을 두드리듯 현관문을 세차게 두드렸다.“재훈아! 재훈아! 흐흐흑. 재훈아….”철컹.하! 문이 열렸다.은별은 안도하며 제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재빨리 훔쳐냈다.정재훈을 제대로 보고 싶었다. 그가 멀쩡한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샅샅이 훑으리라.“누가 죽었어? 왜 울고 난리야. 시끄럽게.”“재, 재훈아….”퀭한 눈을 한 정재훈이 현관문에 몸을 기댄 채 고은별을 삐뚜름히 내려다보고 있었다.은별을 향한 차디찬 그의 눈빛은 한겨울 밤바람보다도 더 차갑게 느껴졌다.“고성방가로 신고 들어오겠네. 남의 집에 무슨 일이야?”“재, 재훈아. 너, 괜찮아…?”재훈을 본 안도감에 은별은 그의 얼굴을 감싸기 위해 떨리는 손을 뻗었다.탁!“만지지 마.”재훈이 은별의 손을 매몰차게 쳐냈다.은별은 재훈의 반응에 너무 놀란 나머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만 벙긋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고은별 씨, 그렇게 쳐다보면 내가 ‘얼씨구나 어서 들어오세요’ 할 줄 알았나 보지?”“재훈아….”“당신 발로 나간 집이야. 정재훈 싫다고 당신 발로 나간 집이라고. 그리고 이젠, 나도 고은별 싫어.”“아, 아니야! 나 너 싫어서 나간 거 아니야!”“캐리어에 짐까지 다 싸서 간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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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47화.엘리베이터 안의 닫힘 버튼을 누르려는 그보다, 엘리베이터 밖의 열림 버튼을 누른 은별의 행동이 다행히도 빨랐다.은별이 재훈의 눈치를 살피며 엘리베이터에 탔다.문이 닫히고 두 사람만 있는 공간.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이 좁은 공간이 적막했다.그 적막을 깨고 은별이 먼저 입을 열었다.“재훈아, 괜찮… 니?”거대한 목석처럼 서 있는 재훈을 올려다보며 은별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피식. 그가 그렇게 웃었다.가소롭다는 듯, 웃기지도 않는다는 듯.그 서늘한 미소에 은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가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어디 가?”“데이트.”“…!”일 초의 망설임 없이 재훈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은별이 눈을 크게 떴다.대답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그의 대답이 그녀를 몹시도 신경 쓰이게 했다.데, 데이트라니….은별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리며 미간을 좁혔다.누구랑?누구랑 데이트하길래 저렇게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가는 것일까.그것도 밤을 향해 달려가는 이 시간에 말이다.저와 함께 살 때는 차려입는다는 것이 기껏해야 카페 사장한테 빌려 입은 셔츠가 다였었다.한데 지금 정재훈의 모습은….본 적 없는 고급 셔츠에 핏 좋은 슬랙스, 그 아래 명품로고가 선명한 로퍼와 마지막으로 세련된 캐시미어 코트까지.거기다 헤어스타일은 또 어떠한가.정재훈에게 저런 재주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숍에서 만진 것처럼 멋스럽게 정돈된 헤어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안경과 너무 잘 어울렸다.지금 당장 런웨이를 걸어도 이상하지 않을 완벽한 모델, 그 자체였다.어느새 낯설어진 재훈의 모습을 은별이 어색한 듯 멍한 얼굴로 눈에 담았다.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재훈은 주차장을 향해 걸음을 빨리했다. 그의 뒤를 따르느라 은별의 발이 바빴다.얼마 가지 않아 재훈의 차가 보였다. 그런데 재훈이 그 차를 지나쳐 갔다.“재훈아, 네 차 여기…!”삑!은별의 말이 차 잠금 해제 소리에 묻혔다.근처에 있던 고급 스포츠카가 라이트를 번쩍였다. 재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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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48화.불만 가득한 표정에 아니꼬운 어린 여자의 눈빛이 은별을 향하고 있었다.“길 좀 비켜주세요. 그렇게 막고 계시면 어떡해요. 우리 오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라고요!”우리 오빠? 오빠는 무슨. 우리 재훈이거든!아무 말 안 하고 좋게 인계받으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은별이 가슴께로 팔짱을 끼고 어린 여자를 똑같이 아니꼽게 쳐다보았다.“너, 누구니?”“네?”어린 여자는 다짜고짜 반말을 뱉어내는 은별의 기세에 눌려 그제야 눈에 힘을 풀었다.“너 누군데 우리 재훈이 여기까지 데려다준 거냐고.”“뭐, 뭐야…. 오, 오빠랑은 어떻게 아세요? 혹시, 누나세요?”뭐? 누나? 아니거든! 애인이거든!은별이 어린 여자를 향해 말하려는 순간.“무슨 일이야?”언제부터 눈을 뜨고 있었는지 재훈이 은별을 똑바로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어? 오빠! 정신 좀 들어?”“어.”재훈이 어린 여자에게 기댔던 몸을 바로 일으켜 세웠다.그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은별에 눈에 새기듯 들어왔다.“근데, 오빠. 이 여자분 누구야?”어린 여자가 재훈과 은별을 번갈아 보며 궁금한 듯 물었다.잠깐의 침묵이 세 사람 사이에 흘렀다.그 침묵을 재훈이 깼다.“스토커.”“와, 미친! 완전 소름!”‘스토커’라는 말에 어린 여자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이 구역 미친년을 보듯 은별을 쳐다봤다.“신경 쓰지 말고, 가자.”조금 전까지 몸도 못 가눴던 사람이 맞나 싶게 재훈은 어린 여자의 어깨를 확 끌어안았다. 이내 망설임 없이 은별을 지나쳐 집으로 향했다.은별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어안이 벙벙해져 왔다.뭐, 뭐, 스토커?하! 스토커라니! 말도 안 된다!정재훈이 고은별의 스토커면 스토커였지, 고은별이 언제 정재훈한테 스토커 짓을 했었나!한데 그녀의 입에서 곧장 ‘내가 무슨 스토커야!’라는 반박이 나오질 않았다.그도 그럴 것이, 2주가 넘게 정재훈의 집 앞에 아침, 저녁으로 나타나 문을 두드리며 제발 열어달라 애원했었다.받지도 않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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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49화.재훈은 그녀가 집에 들어왔든지 말든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평상시 하던 대로 옷을 하나씩 벗으며 소파 위에 툭툭 던졌다.분명 호기롭게 들어온 집인데 은별은 아직 현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불과 얼마 전까지 자신이 살던 집의 모습이 아니었다.“이게… 다 뭐야….”그녀가 사용했던 아이보리톤 소파는 어디 가고 블랙의 커다란 가죽 소파가 거실을 한가득 차지하고 있었다.그리고 소파 맞은편에는 영화관 스크린을 방불케 하는 초대형 스크린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낯설게 변한 집 내부의 모습에 은별이 주춤거리며 멍하니 서 있자, 어느새 상의를 다 탈의한 재훈이 답답한 눈빛으로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들어올 거면 들어오고, 나갈 거면 나가. 그렇게 멍, 때리고 서 있지 말고.”그래, 고은별.조금 전 정재훈이 어린 여자와 함께 이 집에 발을 딛으려는 기막힌 꼴을 눈앞에서 목도하지 않았나.이왕 용기 낸 거 부딪혀보는 거야.은별은 바뀌어버린 현실을 직시하려는 듯 애써 두 눈에 힘을 주며, 신발을 벗고 거실로 성큼 들어섰다.아무리 마음먹고 들어온 집이라지만, 막상 들어오니 초조함에 그녀는 목이 탔다.그리고 제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옷을 벗고 있는 재훈이 너무 어색했다.몇 주 만에 보는 그의 맨몸이었다.은별이 새삼스레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다, 마른침을 삼키며 주방으로 향했다.이건 또 뭐지?주방에 있던 모든 식기가 낯설었다.예전에 쓰던 식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그릇이며, 컵이며, 심지어 수저, 젓가락까지.모두 황금 테를 두른 최고급 식기로 바뀌어 있었다.그녀가 놀란 마음을 뒤로하고 생수를 꺼내기 위해 팬트리를 열었다.“…!”평소 찬물을 마시지 않는 은별이다. 항상 생수를 팬트리에 보관했었는데, 생수가 단 한 병도 보이지 않았다.그녀가 바뀌어버린 위치에 어리둥절하며 잠깐 멈칫하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생수가 냉장고 안에 몽땅 들어가 있었다.하아….그렇지 않아도 밖에서 오랜 시간 오들오들 떨어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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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50화.불타는 고구마처럼 얼굴을 붉힌 채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던 고은별은 그야말로 귀여운 펭귄이었다.‘뚜, 뚜껑 따줘!’하하. 고은별 매력이 또 긴장하는 거지.일부러 천천히 걸어갔다.어디, 얼마나 얼굴이 더 새빨개지나 볼까?고은별 씨, 뭐 고개까지 숙이고 그래.당신이 그러면 내가 너무 참기 힘들잖아.당신이 이렇게 제 발로 들어올 줄 알았다면, 2주 동안 덜 힘들었을 텐데….그래도 힘들어한 보람이 있네.이렇게 고은별이랑 한집에 있잖아.엄마…. 혹시, 엄마가 준 선물이야?설마, 선물일까.아직 고은별은 날 사랑한다고 말하지도 않았잖아.재훈은 사라지지 않는 두통을 잠재우려 방을 나와 주방으로 향했다.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마셔댔다.“하아…, 씨.”여전히 두통은 가라앉을 기미가 없었다.재훈이 소파에서 자고 있는 은별에게 시선을 두었다.추운가. 은별이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자고 있었다.그가 그녀에게 발걸음을 옮겼다.깊은 잠을 자는지 인기척에도 미동이 없는 그녀다.스르륵. 재훈이 은별이 자는 소파에 몸을 기대며 바닥에 앉았다.새근. 새근. 새근.은별의 고른 숨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마치 자장가처럼.그가 잠시 눈을 감았다.두통이 다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몇 시간 뒤.‘헉! 지금이 몇 시지?’은별이 화들짝 놀라며 소파에서 일어났다.오늘 오전에 이정후 대표와 북카페에서 미팅이 잡혀 있었다.서둘러 시간을 확인한 은별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약속 시간까지 고작 1시간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간단하게 세안만 하고 가더라도 늦을 시간이었다. 심지어 이곳엔 자신의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펭귄과 같은 차림새로 이정후 대표를 만날 수는 없었다.“하아…. 어떡해.”은별이 난감함에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한숨을 내쉬었다.“땅 꺼지겠네.”“꺄악!”은별은 갑자기 들리는 말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비명 같은 소리를 질렀다.“왜 자꾸 소리는 지르고 난리세요?”재훈이 식탁에 앉아 물을 마시며 은별을 태연하게 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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