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은은 마차 안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현관 앞에 선 하인들의 얼굴이 빠르게 멀어졌다.당황. 불안. 그리고 어쩔 줄 모르는 눈빛.누군가는 곧 비비안에게 달려갈 것이고, 누군가는 카이든에게 보고할 것이다.하지만 늦었다.이미 마차는 움직이고 있었다.바퀴가 자갈길을 밟았다. 로세트 저택의 정문이 가까워졌다. 문지기들은 마차를 확인하고 허둥지둥 문을 열었다.베른은 말을 탄 채 뒤따르고 있었다. 정하은은 커튼을 조금 걷었다.로세트 저택은 밖에서 보니 더 컸다. 높은 담장, 넓은 정원, 줄지어 선 창고 건물, 상단 사무동, 마차길, 경비 초소.그 모든 것이 하나의 작은 도시처럼 움직이고 있었다.돈이 만든 성이었다.그리고 그 성 안에서 이벨리아 로세트는 방 하나에 갇혀 있다.우스운 일이다.정하은은 손끝으로 마차 창틀을 가볍게 두드렸다.내부에는 편이 없다. 로세트의 벽 안에서 그녀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감시와 침묵뿐이다.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밖으로 나가야 한다.정치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부에서 밀리면 외부 세력을 끌어온다. 내 편이 없으면 상대의 적을 찾는다.적의 적이라면 최소한 같은 방향으로 칼을 겨눌 수는 있다.로세트가 남부 최대 상단이라면, 로세트에게 눌린 사람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그들을 찾아야 했다.마차가 정문을 빠져나갔다.풍경이 바뀌었다.정원과 대리석 길이 사라지고, 넓은 도로와 창고들이 나타났다. 로세트 문장이 새겨진 마차들이 오갔고, 짐꾼들이 상자를 나르고 있었다.봉인된 화물, 두꺼운 밧줄, 휘어진 나무 수레, 소리를 지르는 점원들.저택 안에서는 맡을 수 없었던 냄새도 밀려왔다.땀. 먼지. 짐승 냄새. 젖은 나무. 소금기. 그리고 돈 냄새.정하은은 그 냄새를 싫어하지 않았다.정치판에서도 돈은 늘 냄새를 남겼다. 다만 그곳의 돈은 향수와 양복, 고급 술 냄새에 가려져 있었을 뿐이다.이곳의 돈은 훨씬 노골적이었다.“아가씨.”도라가 조심스럽게 불렀다.정하은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말해.”“정말
Last Updated : 2026-08-30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