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 서고에 번진 검은 먹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여덟이라는 숫자 옆에 뒤늦게 덧붙은 열둘, 그리고 그 둘 사이에서 한동안 번지다 멈춘 먹자국만이 오래된 장부의 거짓을 드러내고 있었다. 처음부터 돌 네 점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 장부 위에 ‘사라진 네 점’을 만들어냈다. 그 허구를 진실처럼 믿게 된 사람들이 전국에서 비슷한 돌을 찾아 한양으로 모았고, 그렇게 옛 창고에는 본래 서로 떨어져 있어야 했을 경계석 파편들이 오랜 세월 한곳에 쌓였다.윤정헌은 그 사실을 깨달은 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관직에서 쫓겨나게 된 일도 결국 그 거짓 숫자에서 시작됐다. 당시 자신은 분명 실물 여덟 점과 장부 열두 점의 차이를 지적했지만, 사람들은 네 점이 사라졌다는 전제부터 의심하지 않았다. 사라진 네 점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고, 관리 책임자가 누구냐고 따졌으며, 결국 그 네 점을 찾지 못한 책임을 누군가에게 씌워야 했다.그런데.처음부터 없었다.왕도 같은 생각에 닿은 듯, 오래된 장부를 내려다보다 낮게 말했다.“사라진 물건을 찾은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던 물건을 찾느라 나라가 움직였군.”윤정헌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 과정에서 전국의 비슷한 돌이 한양으로 올라왔을 가능성이 큽니다.”“그리고 한곳에 모였고.”“예.”왕의 시선이 회색 중심석으로 향했다. 조금 전까지 돌 안쪽에서 움직이던 검은 점은 다시 잠잠해져 있었지만, 이제 그 고요함조차 안심할 수 없었다.“그러면 저것이 우리에게 직접 돌을 가져다 놓은 게 아니군.”윤정헌은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아마도 그렇습니다. 저 존재가 처음부터 사람의 손을 대신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움직일 만한 이유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큽니다.”왕의 눈빛이 서늘해졌다.“없는 네 점.”“예.”“그 네 점 때문에 사람들이 다른 돌들을 찾았고.”“예.”“찾아온 돌들이 다시 이상을 만들었으며.”“그 이상을 숨기려 장부가 바뀌었고.”윤정헌이 뒤를 이었다.“그 장부 때문에 또 다른 사
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13 Leer má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