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스턴트우먼 세자빈이 되다.: Chapter 21 - Chapter 30

121 Chapters

21. 장부에 없는 이름

“가족이 어디 있지?”채원의 질문에 박칠성이 고개를 저었다.“모릅니다.”“누가 데려갔어?”“제가 윤 대감 댁에 들어가기 전날이었습니다. 빚을 갚아주겠다고 해서 따라갔는데, 처와 아이를 다른 곳으로 데려갔습니다.”“그 뒤로 본 적은?”“없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아이가 쓰던 물건만 보여줬습니다. 말을 듣지 않으면 다시는 못 볼 거라고 했습니다.”채원이 장부를 가리켰다.“그 사람이 조필규야?”박칠성의 시선이 수결로 향했다.이번에는 부정하지 않았다.“예.”백건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조필규가 윤 대감의 집에 들어가라고 시켰나?”“예.”“무기를 창고에 넣은 것도 조필규가 시켰고?”“저는 무기를 옮기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창고 문을 열고 그 안에 무기가 있다고 말하라는 지시만 받았습니다.”“군사들은?”“윤 대감의 명을 기다리는 자들이라고 외우라고 했습니다.”백건이 바로 물었다.“김태겸이 시킨 일이냐?”박칠성은 고개를 저었다.“병조판서 대감의 이름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 저는 조 나리에게만 명령을 받았습니다.”결국 다시 조필규였다.장부도, 수레를 지킨 자들의 진술도, 박칠성의 증언도 모두 같은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하지만 그 뒤에 김태겸이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었다.이운이 박칠성에게 물었다.“의금부에서 증언한 날짜는 기억하느냐?”“초아흐레였습니다.”“윤 대감 집 창고에서 무기를 처음 본 날은?”“그 전날입니다.”백건이 장부를 넘겼다.채원은 그가 찾아낸 기록을 확인했다.윤정명 집 서쪽 창고. 무기 삼십 자루.그 옆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채원의 시선이 멈췄다.“다시 말해봐.”박칠성이 눈을 들었다.“무엇을 말입니까?”“창고에서 무기를 본 날.”“초여드레입니다.”채원은 장부를 돌려 이운과 백건에게 보였다.“무기가 윤 대감 집으로 들어간 건 초아흐레예요.”백건이 날짜를 확인했다.박칠성이 의금부에서 증언한 날과 같았다.박칠성의 주장대로라면 그는 초여드레에 이미 창고에 쌓인 무기를 봤다.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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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목숨값

한도겸은 방문이 열려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이운이 가장 믿었던 사람인 만큼 함부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방문 밖에는 이운이 직접 고른 호위 둘이 지키고 있었다.채원과 이운이 들어서자 그제야 한도겸이 고개를 들었다.“조필규에게 속고 있다는 말이 무슨 뜻이지?”채원이 먼저 물었다.한도겸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이운을 바라봤다.“빈궁마마와 단둘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그럴 일은 없다. 할 말이 있다면 여기서 해라.”“저하께서 함께 계시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내 앞에서는 할 수 없는 말이냐?”한도겸이 고개를 숙였다.“저하께서는 저를 믿어주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믿음을 저버렸으니 이제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먼저 의심하실 겁니다. 그래서 빈궁마마를 뵙자고 청했습니다.”“빈궁이라면 네 말을 믿을 것 같았느냐?”“아닙니다. 마마께서는 처음부터 저를 의심하셨습니다. 그러니 제 말을 믿기보다 제가 드리는 정보가 쓸 만한지를 판단하실 겁니다.”이운은 더 묻지 않았다. 한도겸 역시 그의 눈을 마주 보지 못했다.채원은 한도겸 앞에 앉았다.“저하께서 나가실 필요는 없어. 대신 질문은 내가 할 거야.”한도겸은 잠시 망설인 뒤 고개를 숙였다.“조필규의 장부를 찾으셨습니까?”채원은 대답하지 않았다.“찾으셨군요.”“네가 여기 갇힌 뒤에 벌어진 일이야. 어떻게 알았지?”“저하께서 윤 대감 사건을 조사하실 때 가장 오래 찾으신 것이 조필규의 장부였습니다.박칠성이 잡혔다면 장부도 함께 움직였을 거라 생각했습니다.”“박칠성이 잡힌 건 어떻게 알았고?”한도겸의 시선이 닫힌 문으로 향했다.“오늘 동궁의 움직임이 평소와 달랐습니다. 호위들의 발소리가 늘었고 박 의녀가 약재를 더 가져오게 했습니다.다친 사람을 데려오셨다면 지금 상황에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람은 박칠성입니다.”방 안에 갇힌 채로 동궁의 움직임을 읽어낸 것이다.“그래서 조필규에게 속고 있다는 건 무슨 뜻이지?”“그 장부에는 병조판서의 이름이 없을 겁니다.”“조필규는 자기 이름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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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같은 인질

백건은 수레를 몰았던 자들을 따로 불러 조사하고 있었다.장부를 적은 사람을 찾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다른 사람들은 장부에 대해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지만, 한 사내는 상자를 볼 때마다 시선을 피했다.“이름이 뭐지?”“최만석입니다.”“장부를 네가 적었나?”“그저 글씨만 썼습니다. 조 나리께서 부르는 대로 받아 적었을 뿐입니다.”백건이 무기 반입 날짜가 적힌 장을 펼쳤다.“이 날짜가 맞느냐?”최만석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채원이 그의 앞에 장부를 내려놓았다.“틀렸다면 지금 말해. 다른 기록과 맞춰본 뒤 거짓말인 게 드러나면 그때는 네 말을 다시 들을 이유가 없어.”최만석이 장부의 날짜를 확인했다.“맞습니다.”“어떻게 기억하지?”“그날 수레 바퀴가 부러졌습니다. 무기를 옮기던 길에 수레 하나가 진창에 빠졌고, 바퀴를 고치느라 반나절을 보냈습니다.”이운이 물었다.“어디에서 수리했지?”“북한산 아래 대장간입니다.”“대장장이의 이름은?”“이름은 모릅니다. 왼손 손가락이 두 개 없는 늙은이였습니다.”백건은 곧바로 호위를 불러 대장간의 위치와 장인을 확인하게 했다.채원은 최만석에게 다시 물었다.“군량은 언제 받았어?”“수레가 출발하기 전날입니다.”“그 기록도 남아 있나?”“군량 장부가 따로 있습니다. 천막 안 궤짝에 보관했는데 수레에는 싣지 않았습니다.”북한산 군영을 비우는 과정에서 그대로 남겨졌거나 이미 없앴을 가능성이 컸다.“그 장부를 적은 사람도 당신이야?”“예.”“기억나는 내용은?”“정확한 수량은 전부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초아흐레 아침에 군량 열다섯 섬을 내줬습니다. 그날 수레가 출발했습니다.”박칠성이 윤가의 창고에서 무기를 봤다고 주장한 것은 초여드레였다.그런데 무기를 실은 수레는 다음 날 아침까지 북한산에 있었다.채원이 물었다.“무기를 어디에 내렸지?”“윤 대감 댁 서쪽 담장 가까운 창고입니다.”아버님.채원은 머릿속에서 호칭을 바로잡았다.아직도 다른 사람이 윤정명을 부르는 말을 듣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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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초아흐레

그날 오후, 북한산 아래 대장간으로 갔던 호위가 돌아왔다.“대장간은 비어 있었습니다. 이웃에 물으니 어젯밤 늙은 장인이 짐도 챙기지 못한 채 사라졌다고 합니다.”이운이 바로 물었다.“스스로 떠난 흔적이었나?”“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문 안쪽에서 피를 발견했습니다.”장부의 날짜를 확인해줄 사람이 한발 먼저 사라졌다.하지만 호위는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검게 그을린 장부 한 권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가장자리는 불에 타 너덜너덜했지만, 안쪽 몇 장은 남아 있었다.“대장간 화로에서 찾았습니다. 누군가 급히 태우다 말고 달아난 모양입니다.”백건이 장부를 조심스럽게 펼쳤다.수레바퀴를 수리한 날짜와, 수레를 맡긴 자의 이름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초아흐레.옆에는 조필규의 수결과 같은 표식이 남아 있었다.장부에 적힌 날짜, 최만석의 진술, 대장간에 타다남은 장부의 수리 기록이 모두 같은 날을 가리켰다.채원은 탁자 위에 놓인 증거들을 보다가 문득 한숨이 나올 뻔했다.휴대폰 한 대만 있었어도 전부 사진부터 찍어놨을 텐데.사진 한 장이면 끝날 일을 누가 보고, 누가 만지고, 어디에 보관했는지까지 일일이 기록해야 했다. 하지만 없는 물건을 아쉬워해봐야 생길 리 없었다.“장부들을 따로 보관해야 합니다.”이운이 물었다.“한곳에 두지 않겠다는 거냐?”“한곳에 뒀다가 없어지면 전부 끝나잖아요. 장부는 저하께서 가지고 계시고, 대장간 장부는 최 상궁에게 맡기는 게 좋겠습니다.”“동궁 안에서 누군가 증거를 없앨 거라고 보는군.”“한도겸이 저하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아직 다른 사람이 없다고 확신할 수 없잖아요.”이운은 반박하지 않았다.채원은 확인한 증거를 옮기기 전에 누가 발견했고, 누가 가져왔으며, 누구에게 넘겼는지까지 기록하게 했다.“이것도 적어주세요. 장부를 열어본 사람과 다시 봉한 사람도 전부요.”백건이 채원을 봤다.“그런 것까지 필요합니까?”“나중에 우리가 장부를 바꿔치기했다고 나오면 그때 가서 아니라고 해봐야 소용없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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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독이 든 천

박칠성은 침상 위에서 식은땀에 젖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박 의녀가 상처를 덮었던 천을 걷어내자 검게 변한 살갗 위로 진물이 배어 나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을 알아보던 박칠성은 이제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했다.“상처에 바른 약부터 모두 걷어내야 합니다. 설이야, 따뜻한 물을 더 가져오너라.”설이가 대야를 들고 나가자 채원이 침상 가까이 다가갔다. 박 의녀가 걷어낸 천에서는 약 냄새와 다른 쓴내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처음 치료했을 때도 상처가 이랬습니까?”“아닙니다. 깊게 베이기는 했지만 살의 색은 깨끗했습니다.”“그 뒤에 약을 다시 바른 사람은요?”박 의녀가 바로 대답했다.“저뿐입니다.”이운이 치료 도구가 놓인 상을 살폈다.“약은 누가 가져왔습니까?”“제가 처방을 적어 보냈고 의녀 하나가 약방에서 받아왔습니다. 달이는 동안에도 제가 곁에 있었습니다.”“상처에 댄 천도 직접 준비했고요?”“삶아서 말려둔 것을 가져왔습니다.”박 의녀가 피와 약으로 젖은 천을 펼쳤다. 안쪽 한 귀퉁이에만 검은 얼룩이 남아 있었다. 피가 번진 자리와는 모양부터 달랐다.“이 부분은 이상합니다. 처음에는 이런 것이 없었습니다.”채원은 약그릇과 물, 남은 천을 차례로 확인했다.“지금부터 이 방에 있는 건 아무것도 버리지 마세요. 약그릇도, 쓴 천도 그대로 두고요.”이운은 바로 문을 열어 호위를 불렀다.“박칠성을 지킨 자들을 모두 따로 세워라.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게 하고, 교대 순서도 확인해.”호위가 물러나자 박 의녀가 상처를 씻기 시작했다.박칠성이 몸을 비틀자 채원이 침상 끝을 움켜쥔 그의 손을 눌렀다.“버텨. 가족 찾는다고 해놓고 먼저 죽으면 안 되잖아.”박칠성의 입술이 겨우 움직였다.“아이…….”“찾고 있어.”살아 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일을 안심시키려고 꾸며낼 생각은 없었다.검게 변한 약을 걷어내던 박 의녀가 다시 새 약을 준비할 무렵 최 상궁이 들어왔다. 그 뒤에는 박칠성의 방을 지키던 호위 셋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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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같은 약재 창고

최 상궁이 나인 하나를 데리고 들어왔다.나인은 양팔을 붙잡힌 채였고, 입고 있던 옥색 저고리의 고름은 반쯤 풀려 있었다.최 상궁은 아무 말 없이 작은 보퉁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안에는 벗어 숨긴 연분홍 저고리와 청색 실이 없는 천이 들어 있었다.그 아래에서는 검은 가루를 싼 종이까지 나왔다.“세탁간 화덕에 태우려던 것을 잡았습니다.”채원은 바닥에 엎드린 나인을 봤다.“누가 시켰지?”“아무도 시키지 않았습니다.”“그럼 박칠성에게 개인적인 원한이라도 있었어?”나인은 대답하지 않았다.채원은 잠시 그녀를 보다가 질문을 바꿨다.“가족을 잡아갔나?”나인의 어깨가 움직였다.박칠성과 최만석에게 했던 것과 같은 방법이었다.“네가 입을 다물면 일을 시킨 사람이 널 살려둘 이유가 없어. 박칠성을 죽이지 못했으니 실패한 책임까지 네게 돌리겠지.”“말하면 더 빨리 죽습니다.”“그래서 지금 가족부터 찾으러 갔어.”나인이 고개를 들었다.채원은 그 반응을 보고 물었다.“도성 동쪽 약재 창고. 네 가족도 거기 있지?”나인은 대답하지 못했다.채원은 더 확인하려 들지 않았다.“독은 누가 건넸어?”“얼굴은 모릅니다. 동궁 밖 우물가 돌 밑에 두고 갔습니다.”“명령은 어떻게 받았고?”“자시에 한 번 같은 곳에 쪽지가 놓입니다.”채원은 최 상궁을 돌아봤다.“이 아이가 잡힌 건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세요. 오늘 밤 쪽지를 가져가는 사람이 올 겁니다.”나인이 끌려나간 뒤 채원은 독이 든 종이와 천을 따로 싸서 보관하게 했다.조필규의 장부.박칠성의 거짓 증언.그리고 이제는 동궁 안에서 사용된 독까지 있었다.문제는 어느 것도 아직 김태겸의 이름을 직접 가리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시간이 지나면서 박칠성의 숨은 조금씩 고르게 변했다. 박 의녀는 여전히 곁에서 상태를 확인했다.동이 틀 무렵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백건이 먼저 방으로 들어왔다. 소매에는 마른 피가 묻어 있었다.“찾았습니다.”박칠성의 감긴 눈이 움직였다.“정문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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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귀비전으로 가는 길

“가짜 답을 보내야 합니다.”백건이 채원을 봤다.“무슨 내용을 보내실 생각입니까?”“박칠성이 죽었다고 하죠.”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채원은 탁자 위에 놓인 장부를 가리켰다.“장부도 오늘 대전으로 옮긴다고 쓰고요.”이운이 먼저 뜻을 알아챘다.“박칠성이 죽었다면 증언은 사라진다. 하지만 장부가 대전으로 들어간다면 조필규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판단하겠군.”“장부를 없애야 한다면 서두를 겁니다. 지금까지 하던 방식대로라면, 쪽지를 가져가는 사람도 그 사실을 누군가에게 보고하겠죠.”백건이 물었다.“그자가 조필규에게 직접 가지 않으면요?”“그래도 괜찮아요.”채원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조필규에게 가기 전 다른 사람을 거친다면, 그 사람도 확인하면 됩니다. 지금 필요한 건 장부를 빼앗으러 올 사람을 잡는 게 아니에요. 누가 이 일을 알고 움직이는지 보는 거죠.”이운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상대가 장부를 직접 빼앗으러 움직일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확신할 필요는 없습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장부가 대전으로 들어간다고 믿게 될 테고, 움직이면 그 길을 따라가면 돼요.”채원은 나인이 받았다는 쪽지와 비슷한 크기의 종이를 가져오게 했다.원래 쪽지를 사진으로 남겨 비교할 수만 있어도 훨씬 편했을 것이다.하지만 이 시대에는 종이의 크기와 접힌 방향, 글씨가 놓인 자리까지 사람이 기억해서 맞춰야 했다.최 상궁이 나인이 남긴 진술을 다시 떠올렸다.“받은 쪽지는 읽은 뒤 태웠다고 했습니다. 답이 있으면 동궁 뒤편 우물가의 돌 밑에 두라는 말만 들었고요.”“그곳에서 누가 가져가는지는 몰랐습니까?”“예. 나인도 늘 밤이 깊은 뒤 쪽지를 두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다음 날이면 종이가 없어졌고요.”채원은 고개를 끄덕였다.나인은 자신이 누구와 연락하는지도 모른 채 이용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나인을 붙잡은 것만으로는 끝낼 수 없었다.쪽지를 가져가는 사람.그 사람이 향하는 곳.이번에는 그 둘을 확인해야 했다.채원은 종이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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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왕명

귀비전의 내관은 쪽지를 소매에 넣고 곧바로 안으로 사라졌다.멀찍이서 지켜보던 백건의 사람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뒤를 더 밟으려면 귀비전의 문을 넘어야 했다. 그 순간부터 미행이 아니라 침입이 된다.그는 내관의 얼굴과 옷차림만 기억해 동궁으로 돌아왔다.“귀비전의 최 내관입니다. 귀비마마의 심부름을 오래 맡아온 자입니다.”백건의 보고를 들은 이운이 물었다.“쪽지를 직접 받는 것은 보았느냐?”“분명히 보았습니다. 하지만 안에서 누구에게 넘겼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채원은 탁자 위에 놓인 명패와 약재 창고의 장부를 차례로 봤다.박칠성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은 나인. 나인에게 지시를 전한 쪽지. 그 답을 가져간 귀비전 내관.길은 귀비전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내관이 제멋대로 한 일이라고 버티면 귀비에게 바로 닿지는 못한다.“최 내관을 지금 잡으면 안 됩니다.”백건이 고개를 기울였다.“그자가 쪽지를 없애면 어쩌려고요?”“이미 없앴을 거예요. 붙잡아도 빈손일 가능성이 큽니다.”“그럼 그대로 둡니까?”“자기가 들키지 않았다고 믿게 해야 다시 움직이죠.”채원이 나인을 가둔 방문을 바라봤다.“답신이 믿을 만했는지 확인하려 들 겁니다. 박칠성이 정말 죽었는지, 장부가 언제 어디로 나가는지 알아내려고요.”이운은 호위에게 최 내관을 멀리서 지켜보되 접촉하는 사람까지 기록하라고 명했다.명령이 끝나기도 전에 동궁 바깥에서 내관의 목소리가 들렸다.“전하의 교지가 도착했습니다.”방 안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이운이 밖으로 나가자 채원도 뒤를 따랐다. 안쪽 뜰에는 대전 내관이 붉은 보자기에 싼 교지를 받쳐 들고 서 있었다.이운이 예를 갖추자 내관이 교지를 펼쳤다.“동궁이 역모 사건의 증인과 관련 문서를 사사로이 거두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해가 지기 전까지 사람과 문서를 모두 의금부에 넘기라.”채원은 귀비전 내관이 쪽지를 받아간 시간을 떠올렸다. 아직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았다.귀비는 장부가 대전으로 간다는 거짓말을 믿었다. 그리고 장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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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빈 수레

박칠성은 동궁에 남겨 두기로 했다.죽었다는 거짓 정보를 흘린 이상, 지금 그를 의금부로 옮길 수는 없었다.박 의녀의 소견도 같았다. 허벅지의 상처와 열이 아직 가라앉지 않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최만석의 진술서와 장부, 명패만 의금부로 보내기로 했다. 최만석은 가족을 구했다는 말을 듣고도 선뜻 일어나지 못했다.“의금부로 가면 저는 죽습니다.”“그래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들어가게 할 겁니다.”“들어가는 걸 본 사람이 많아도, 안에서 죽으면 끝 아닙니까?”채원은 그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맞아. 그러니 살아 있으려면 네가 알고 있는 것을 지금 전부 남겨야 해.”최만석에게서 받아둔 진술은 한 부뿐이었다. 채원은 같은 내용을 세 사람에게 따로 받아 적게 했다. 최만석은 각 문서의 마지막에 손도장을 남겼다.“한 부는 중궁전에 보낼 겁니다. 당신이 의금부에서 말을 바꿔도 오늘 한 진술은 남아요.”최만석이 채원을 바라봤다.“제게 입을 다물 기회도 주지 않으시는군요.”“당신을 살리려면 돌아갈 길부터 없애야 하니까.”그가 한참 뒤 손도장을 찍었다.한도겸을 가둔 방에도 움직임이 전해졌다. 그는 의금부라는 말을 듣자 문을 두드렸다.“저하를 뵙게 해주십시오. 지금 보내시면 안 됩니다.”이운과 채원이 들어가자 한도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의금부의 어느 문으로 들이실 생각입니까?”“왕명이 내려온 것까지 어떻게 알았지?”“대전 내관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뒤로 문서함을 옮기는 소리도 났습니다.”갇힌 뒤에도 그는 동궁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귀로 모으고 있었다.“서문으로 들이지 마십시오.”“이유는?”“조필규의 사람이 의금부 서문을 맡고 있습니다.”“이름을 말해.”한도겸은 잠시 망설였다.“나장 윤복수입니다. 제가 넘긴 문서를 받아가던 자 중 하나입니다.”“그 위에 있는 사람은?”“모릅니다.”한도겸은 여전히 배후의 이름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의금부 안의 사람 하나를 포기했다. 자신의 정보가 아직 필요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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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대전의 부름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중궁전의 상궁이 동궁에 도착했다. 중전이 보낸 사람이었다.“중전마마께서 물품 목록을 받으셨습니다. 의금부에 들이는 물건을 직접 확인할 사람도 보내셨습니다.”귀비가 임금 곁을 막고 있는 동안 중전은 밖에서 움직였다.윤서아의 가문이 무너질 때는 나서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왕명을 거스르지 않고 증거를 지키는 쪽을 택했다.채원은 상궁에게 최만석의 진술서 한 부를 건넸다.“중전마마께 직접 전해주세요. 다른 사람의 손을 거치면 안 됩니다.”“그리하겠습니다.”상궁이 떠난 뒤에야 채원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장부가 사라져도 진술이 남고, 진술을 바꿔도 장부가 남는다. 어느 하나를 없애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게 만들었다.날이 어두워지기 전 이운이 돌아왔다.약속대로였다. 그러나 함께 떠났던 호위 하나의 이마에는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다친 사람이 있습니까?”“북문 앞에서 최만석의 가마를 세우려는 자들이 있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사람은 없다.”“최만석은요?”“의금부 안에 들였다. 중궁전에서 보낸 상궁과 대전의 서리 앞에서 진술서와 물건도 대조했다.”이운은 자신이 가지고 간 목록을 펼쳤다. 의금부 관리와 중궁전 상궁의 수결이 나란히 남아 있었다.“장부의 장수도 맞고 봉인도 그대로다. 오늘 밤 누가 손을 대면 의금부가 책임을 피할 수 없다.”첫 번째 고비는 넘겼다. 그러나 채원은 안심하지 않았다.“윤복수는 찾았습니까?”“서문 근무에서 빠져 있었다. 새벽에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나갔다더군.”“한도겸이 거짓말한 건 아니네요.”“윤복수를 빼낸 사람이 우리가 그 이름을 들었다는 사실까지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한도겸의 방을 지키는 호위는 교대하지 않았다. 물과 음식도 최 상궁이 직접 확인했다. 그가 밖으로 말을 전할 방법은 없어 보였다.그렇다면 윤복수를 피신시킨 사람은 한도겸과 별도로 움직이고 있었다.“빈 수레를 건드린 나장은요?”“의금부 뒤편의 민가로 들어갔다. 윤복수의 집이었다.”한도겸이 알려준 이름은 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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