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북후부의 예물함이 서씨 집 대문을 넘은 것은 사흘 뒤였다.붉은 보자기로 싼 함이 하나둘 마당에 내려질 때마다 구경하던 이웃들이 수군거렸다. 함을 지고 온 행렬 맨 앞에 선 사람 때문이었다.“저분이 후부 큰공자님이래.”“다리를 다쳤다더니, 지팡이를 짚어도 풍채가 저리 좋을 수가.”검은 도포 자락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렸다. 햇빛 아래 드러난 옆얼굴은 희고 반듯했고, 곧게 선 어깨는 행렬의 누구보다 넓었다. 하녀들이 물동이를 든 채 멈춰 서서 돌아가는 것을 잊었다.서문백이 대청 앞까지 나와 그를 맞았다. 무겸이 허리를 숙이자 서문백은 한참 그를 바라보았다.딸의 입에서 이 사내의 이름을 처음 들었던 날, 서문백은 그것을 믿지 않으려 했다. 무천과의 혼담이 정리되기 전까지는 없는 말로 여기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 그 사내가 예물함을 앞세우고 제 집 마당에 서 있었다.“들어오게.”서문백의 목소리는 전보다 한결 부드러웠다.그 시각, 예령은 안채 깊숙한 방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침방에서 온 여인이 그녀의 허리에 마지막 매듭을 짓고 있었다.“숨 한 번만 참으세요, 아가씨.”짙은 붉은 비단이 몸을 감쌌다. 비단 가게에서 무겸이 그녀의 어깨에 대 보며 골라 준 빛깔이었다. 너무 어둡지 않으냐는 물음에 그는 아니라고, 잘 어울린다고 했다. ‘내가 볼 것이잖소’라고. 소매 끝과 옷깃에는 금실로 수놓은 꽃이 이어져 있었다.연화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가 입을 막았다.“세상에…….”침방 여인도 바늘을 쥔 채 한참 말이 없었다. 희고 갸름한 얼굴이 붉은빛을 받아 한결 환해 보였고, 길고 맑은 눈매 끝이 비단 빛에 물들어 있었다.“이 옷을 입고 서시면, 신랑 되실 분이 걸음을 못 떼실 겁니다.”예령은 거울 속 자신을 오래 들여다보았다.전생에도 붉은 혼례복을 입었다. 그 옷을 입고 맞은 첫날밤, 무천은 내상을 핑계로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다. 이번 생에 무천이 몰래 지어 둔 혼례복은 지하의 신방에서 불길 속에 사라졌다.그리고 지금 입은 이 옷은, 처음부
Last Updated : 2026-09-26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