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51 - Chapitre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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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사내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버렸어]

파르교산 입구. 소문대로 산 초입부터 음산하기 짝이 없는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나는 대공가 하녀 시절 이곳에 대한 흉흉한 소문을 누구보다 많이 들었던 사람이었다. 늘 할 로드는 이 파르교산이 대공가를 지켜주고, 다른 귀족들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이유는 바아르의 핏줄이 이 산을 지배한다는 전설 때문이었다. 드래곤의 피가 이어진 캔돔가의 남자들.24살까지 불규칙적으로 가끔씩 발작을 하고, 이성을 잃을 정도로 짐승처럼 날뛰며 칼을 휘두르고 주변의 그 무엇도 거슬리면 다 베어 버리는 흉포함을 지닌 그이지만.함부로 마수들이 그들에게 접근조차 못하는 강력한 마력 때문에 두려워한다는 이야기를 항상 들었었기에 나 역시도 선대 대공과 바아르를 경외했었다.과연 이곳의 주인인 바아르는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 무시무시한 산을 그리 제 집 드나들듯 다닌단 말인지.가끔 라이신도 데리고 갔다 왔다는 이야기도 꽤 들었었다. 몇 걸음 안쪽으로 발을 내딛자, 그것이 강대한 결계 탓인지 아니면 자연적인 공간의 뒤틀림 때문인지 순식간에 물속에 들어온 것처럼 공기층이 묵직하고 축축하게 변하는 기분이 들었다.시야가 온통 검은 안개에 막혀 눈에 보이는 것이 거의 없자, 나는 서둘러 손끝에 환한 마법의 빛을 피워 올렸다. 그제야 겨우 앞이 훤하게 밝아지며 가시거리가 확보되었다. 산의 아주 초입인데도 이 정도라니, 절로 가슴이 쪼그라들었다.바스락, 크르르르······.그때, 검은 안개 너머에서 기괴하고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어머! 아린!""크하하, 마수가 드디어 나타났군!"아처린은 겁을 먹기는커녕 오히려 신이 난 표정으로 검을 쥔 손에 황금빛 오러를 화려하게 불어넣었다. 찬란한 금빛이 안개를 찢었지만, 맞은편에서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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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전부 잊고 소년의 모습으로 멈춰주길]

저택으로 돌아온 라이신은 침상에 누워서도 내내 가슴을 매섭게 짓누르는 기이한 의문을 도무지 떨쳐낼 수가 없었다.불과 얼마 전에도 이 결계가 높기로 소문난 캔돔가의 저택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던 침입자가 있었는데.오늘 파르교산 깊은 곳에서 체감했던 그 묵직한 진동은 무엇이란 말인지. 마수조차 감히 얼씬거리지 못하고 드래곤의 피를 지닌 자들만이 호령한다던 그 무시무시한 험지에서, 마치 대지의 뼈대를 흔드는 듯한 정체불명의 마력 파동이 느껴진 라이신은 불길한 예감에 한숨만 흘렀다.연이어 터져 나오는 이 기묘하고 불쾌한 징조들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그녀는 제 곁에서 나른하게 숨을 내쉬는 바아르의 단단한 가슴에 지그시 이마를 기대며 나직하게 물었다."전하, 아무래도 이상해요. 얼마 전 저택을 휘젓고 간 침입자도 그렇고, 오늘 파르교산 깊은 곳에서 느껴졌던 그 소름 끼치는 진동도 그렇고······. 정말 아무 일도 아닌 게 맞을까요?"그러자 바아르는 별것 아니라는 듯 콧방귀를 픽 뀌더니, 피곤이 서린 매혹적인 눈매를 슬쩍 내리깔며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라이신. 파르교산의 수림이 워낙 기괴하고 마기가 짙은 곳이다 보니 가끔 마수들끼리 영역 싸움을 벌이다 지축이 흔들리기도 하는 법이야. 사람의 짓이라 한들, 지형도 모른 채 무작정 쳐들어온 겁 없는 잔챙이 모험가이거나, 호기심만 과해서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 도르하르의 얼간이 마법사 나부랭이겠지."바아르는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이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고, 라이신을 제 품에 꼭 안은 채 조용히 침대로 이끌었다.그 뒤로 바아르는 걱정 말고 편히 쉬라고 전했다.라이신은 그의 가슴에 뺨을 댄 채 조심스럽게 제 손을 내리어 아랫배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한때 자신을 지켜주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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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나의 레이디를 위해 강해져야 해]

키요르 캔돔 제국력 1년, 5월의 마지막 날 오후.절기상 여름의 입구에 들어서며 기온이 무섭게 치솟기 시작했고, 제국 전역에는 또다시 불길한 가뭄의 그림자가 슬금슬금 스멀거리고 있었다.라이신과 바아르가 혼인식을 치른 지도 어느덧 두 달이라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화산 폭발로 멸망의 위기에 처한 제국을 구하고, 카이우스를 키요리타 지하 감옥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구출해 낸 공신 라이신.황제는 라이신에게 결혼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가르남 영지를 정식 공작령이라 선포하고 그녀에게 무려 ‘공작’이라는 파격적인 작위를 내렸다.그러나 구(舊) 레투니카 제국의 엄격한 법률상, 엄연히 남편이 존재하는 여인이 단독으로 영지 경영권을 쥐고 공작위에 오르는 예는 전무했다. 매일 소식지에서는 이 문제가 다뤄져 제국 곳곳으로 퍼지게 되었다.[가르남 영지, 공식적인 작위와 공작령 선포는 아직까지 귀족들의 반대가······.][과연 키요르 캔돔 제국은 여성의 권리를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 세간의 이목 집중.][카이우스 대공의 초대 황제로서의 정통성과 추진력, 가르남 영지 사태로 시험대에 올라.][구 레투니카 황제파 고위 귀족들, 캔돔가의 파격적인 독단에 집단 반발 조짐.][은둔 중인 레투니카의 황녀와 황태자, 이대로 키요르 캔돔가에 전권을 넘긴 채 수면 아래에 머물 것인가]정책이란 모름지기 찬반양론의 거센 풍랑을 동반하기 마련이었다.황궁 알현실에서 정무 회의가 열릴 때마다 대신들은 카이우스를 사방에서 압박했고, 라이신에게 내린 공작 작위와 가르남 영지를 즉각 회수하라는 탄원서가 매일같이 빗발쳤다.'남편이 있고 훗날 자식까지 얻을 여인이 어찌 독자적으로 영지를 다스린단 말인가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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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호기심 때문에 숨이 막혀]

아처린은 서늘한 나무 그늘 밑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죽 주머니에 마법으로 차가운 물을 생성해 마시며 이마에 맺힌 땀을 천천히 훔쳐냈다. 그리고 바닷가 모래사장 쪽으로 육중한 발걸음을 옮겨오는 수백 명의 사내들을 조용히 눈을 차갑게 빛내며 살폈다.멀리서 걸어오는 모양새만 보아도 사내들의 체격은 하나같이 꽤 건장했고, 일렬로 줄을 맞춰 걸어오는 자세 역시 흐트러짐 없이 반듯한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단단하게 단련된 근육과 몸에 배어 있는 규칙적인 절도.'기사단인가? 오호, 이거 운이 좋군.'아처린의 입꼬리가 호기심으로 살짝 올라갔다. 비록 기억은 전부 잃어버렸지만, 오러 감각을 되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그였기에 다른 이들은 과연 어떻게 몸을 풀고 어떤 방식으로 힘을 기르는지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이 페르도트 백작령은 거친 해안가를 끼고 있는 영지였다. 외세의 침입이나 해적, 혹은 바다에서 출몰하는 마수의 위협이 잦을 수밖에 없는 지형이었기에, 영지를 수호하는 기사단 역시 기강이 해이하지 않고 상당히 실전 지향적이며 강할 것이라 예상되었다.비록 제국 정치나 귀족들의 이름에 관한 구체적인 상식은 전혀 없는 아처린이었지만, 기사들의 칼칼한 기세와 정돈된 진형만 보고도 대충 이 영지의 분위기와 수장의 무시무시한 역량을 본능적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발이 푹푹 꺼지는 험난한 모래사장을 질주하는 훈련은 하체 힘을 키우고 체력을 극대화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탁월한 법이었다. 거친 숨을 내쉬며 모래사장에 도열한 기사들은 순식간에 땀방울을 흘리며 격렬한 기본 검술과 체력 수련에 들어갔다.한참 동안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던 수련이 일단락되자, 땀에 듬뿍 젖은 기사단 한 무리가 서로 팔을 휘두르면서 저마다 한마디씩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후우, 벌써 더워 죽겠네. 올해도 설마 작년처럼 가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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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무심한 척, 그래도 신경쓰여]

마음 같아서는 대충 얼버무리며 그저 남들의 일일 뿐이니 아무 상관도 없다고 빙빙 돌려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아슬아슬한 충동을 가까스로 눌러앉혔다.언젠가 모든 기억이 돌아올 아처린을 위해서라도 그럴 수는 없었다. 앞으로 유랑을 다니다 보면 그 역시 저잣거리에서 자연스럽게 듣게 될 소문들이 있을 테니 전부 무작정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거짓을 보탰다가 나중에 상충하는 진실을 듣게 된다면 그 파국은 더욱 감당하기 힘들 터였다.나는 조심스럽게 마른침을 넘기며 손가락을 가만히 쥐었다 폈다. 손바닥에 축축하게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뭐 지난번에도 설명한 것 같지만, 그래도 말해 줄게. 이 나라는 원래 레투니카 제국이었어. 그리고 지금은 캔돔 대공가가 황가가 된 상태고."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혹여 떨릴까 싶어 숨을 가다듬으며, 제국력 123년을 겨우 버텨낸 서사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본래 레투니카 제국 역시 도르하르 제국을 짓밟고 멸망시킨 뒤 세워진 나라라는 점, 그리고 작년 가을 황제가 서거하고 황태자마저 실종된 뒤, 황녀가 잠시 제국을 다스리다가 건강상의 이유로 자연스럽게 황권이 서열 3위였던 바아르에게 넘어간 과정까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지극히 건조하고 객관적인 설명이었으며, 철저히 역사적 사실만을 담은 안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려 애썼다.그 이야기를 듣는 아처린의 태도는 이상하리만치 무심하고 느긋했다.그는 턱을 괸 채 차가워진 음식을 젓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마치 옛날이야기나 남의 집 가십거리를 듣듯 흥미진진한 눈빛을 띨 뿐이었다. 그 무심한 표정을 바라보면서도 내 심장은 거세게 요동쳤다. "사람들은 라이신을 많이 언급하던데."어느 순간, 아처린이 별일 아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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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왜, 놀랐어?]

아처린은 검을 거두지 않은 채, 판초 모자 그늘 아래로 세이바로의 움직임을 쏘아보며 경계심을 바짝 곤두세웠다.그러나 호위 기사 세이바로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털털하게 허허 웃으며 다가왔다."페르도트 경의 기사단에 이렇게 홀로 밤을 새워 단련하는 훌륭한 자가 있었다니! 경의 이름은 무엇이라 부르면 되겠습니까?"화통하고 거침없는 목소리. 아처린은 시선을 아래로 내리깐 채, 무심하고 담담한 음성으로 대답을 건다."아린이라고 부르시오." "하하, 아린 경.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그리고 잠시 세이바로의 잘생기고 혈기 왕성한 얼굴을 물끄러미 마주하다가 낮게 덧붙였다."세이바로 경. 그대는 제국의 실세인 황태자비 전하의 전속 호위 기사라면 제법 높고 고귀한 지위일 텐데, 나에게 존대를 하다니. 신기하군."그 말에 세이바로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뒤로 쓱 쓸어 넘기며 특유의 호쾌한 어깨짓을 해 보였다."저는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인걸요! 하하! 그리고 아린, 그쪽도 대충 저보다 한두 살 위로 보이는데······ 벌써 오러를 스스로 터득하려 하다니, 장차 대단한 상급기사가 되실 분 같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어 그렇습니다."열여덟 살.세이바로의 천진난한 말에 아처린은 천천히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그러고 보니 기억을 잃은 이후, 자신이 몇 살인지, 어떤 신분이었는지조차 깊게 고민하거나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그래도 성인은 확실하오. 그런데······."아처린은 대충 나이를 얼버무리며 판초 모자를 고쳐 썼다. "······혹시 괜찮다면 오러를 다루는 노하우나 좀 알려주시오. 온몸의 마력이 어깨 근처에서 꽉 막혀 나가지 않는 기분이라." "오호!"세이바로는 눈을 반짝이며 제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단숨에 뽑아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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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서서히 스며드는 불길한 그림자]

키요르 캔돔력 1년 6월 1일, 깊은 밤.은은한 달빛이 기품 있게 떨어지는 테라스 테이블 위로, 따스한 김을 올리는 차 두 잔이 놓여 있었다. 자정이 가까워진 시간이었지만, 바아르와 라이신은 바로 잠자리에 드는 대신 은은한 차 향을 나누며 나란히 앉아 있었다.마침내 여름이 시작되는 날이었다.제국의 대지에 다시 무더위와 함께 가뭄의 기운이 맴돌기 시작했고, 황궁 정원의 오색찬란한 꽃들 역시 조금씩 목이 말라 수분을 갈구하는 시기였다. 바아르는 제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라이신을 바라보았다."내가 정원에 물 마법을 좀 뿌려두긴 했는데······ 지하 우물의 물까지 수위를 끌어올린 건 너 맞지, 라이신?" "아주 조금 마력을 보태 채워두었을 뿐이에요, 전하."라이신의 수줍은 대답에 바아르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이내 걱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의 손을 꼭 감싸 쥐었다."마법은 가급적 쓰지 말라고 그리 당부했건만. 또 무리한 건 아니겠지?" "정말 아주 조금만 썼어요."늘 제 건강과 안위를 첫 번째로 두며 세심하게 보살펴주는 바아르였다.그의 다정한 온기를 느끼고 있노라면, 하루하루가 이토록 평화롭고 행복해도 되는 것인지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질 정도였다.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옛 시절 남장을 하고 하녀로 살아내던 험난했던 날들을 떠올리면 지금의 매 순간은 감히 꿈조차 꾸지 못했던 기적과도 같았다."바아르 전하······ 요즘 무슨 일 없으시죠?"라이신의 나긋한 질문에 바아르는 그녀의 손등에 가만히 입을 맞추며 낮게 읊조렸다."행복해서 되려 불안해질 지경이라고나 할까."그 불안의 근원이 무엇인지, 라이신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과분하게 행복한 순간 항상 시련이 다가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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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아침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황궁 정원.라이신은 조용히 정원을 거닐며 목이 말라 있던 오색찬란한 꽃들에게 차분히 물을 내어주고 있었다. 물방울이 꽃잎에 맺혀 반짝였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온통 지난밤 침실 문을 두드렸던 세이바로의 충격적인 보고로 가득 차 있었다.꽃잎 위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라이신은 제 뒤를 묵묵히 호위하고 선 세이바로의 말을 몇 번이고 곰곰이 반추했다.붉은 머리의 아처린 황태자와 똑같이 생긴 사내가, 해변에 영지를 둔 페르도트 백작가의 기사단이 머무는 곳에서 홀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사실 진짜 황태자라면 거기서 그럴 리가 없는데.'세이바로는 지난밤 숨을 헐떡이며 정체 모를 사내의 용모를 똑똑히 진술했었다."어둠 속이긴 했으나, 그 독보적인 붉은 머리칼과 서늘하도록 아름다운 용모는 제가 도저히 알아보지 못할 수가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대신 소년처럼 어려 보였죠."생각이 거기에 도달하자 라이신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톱니바퀴가 쿵 소리를 내며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만약 그가 죽은 것이 아니라, 과거 세실리에가 키요리타 깊숙한 황궁 지하 미궁에 비밀리에 가둬 두었지만 탈출한 것이라면?미궁 속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가 치유받고, 그 과정에서 어떤 계기로 무너지는 잔해 속에서 죽지 않고 탈출에 성공한 것이라고 본다면 전부 설명이 되었다. 그리고 그 엄청난 충격과 마력의 반작용으로 인해 외모와 기억도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었다.'그 오만한 황태자 아처린이 살아있다니.'모든 조각이 맞춰지자 가슴 깊은 곳에서 정체 모를 소름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라이신은 마력으로 정원에 물을 주던 것을 가만히 멈추고, 천천히 몸을 돌려 세이바로를 향했다. 그리고 나긋하게 다시 질문을 이어나갔다."세이바로 경. 혹시 그곳에서 만난 아처린 황태자로 추정되는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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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뜨거운 해변가에서 은밀하게]

[전 레투니카 황실의 보좌관 출신 범죄자 피르닉스를 잡아들여][알고보니 구 레투니카 제국 시절 황제 지지 귀족 가문과 황태자 지지 귀족들을 찾아다닌 것으로 밝혀져][캔돔 황궁 지하에 피르닉스는 다시 투옥되어. 과연 캔돔 제국 이후 카이우스 황제는 반역자를 어찌 처분할 지 관심이 쏠려][현재 피르닉스는 황태자가 살아 있기에 캔돔 제국은 정통성에 문제가 많다고 주장해]제국 곳곳의 흉흉한 소식으로 소식지 마다 일제히 며칠 내내 그 이야기만 가득했다. 더운 여름날, 그로부터 며칠이 흘렀다.나는 저잣거리에서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계속 내려앉을 듯한 기분이라 조용한 해변으로 향했다. 그곳에 커다란 나무 아래 천막을 치고 아예 자리를 잡게 되었다.제국의 해변가는 여전히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었지만, 커다란 해안 나무가 만들어 낸 무성한 그늘 아래는 꽤 시원한 해풍이 불어 평화롭고 즐거운 시간을 누리게 되었다.그늘 아래 차분히 앉아 시원한 음료를 마시던 나는, 해변가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검을 휘두르는 아처린을 물끄러미 지켜 보았다.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아처린은 상의를 벗어 던진 채였다. 잘게 쪼개진 단단한 상체 근육과 땀방울이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다. 그저 평범한 옷가지 하나만 걸치고 수련할 뿐인데도, 몸 깊은 곳에서 풍겨 나오는 제국 황태자 특유의 고귀함과 위용은 어디 가지 않았다.매일같이 정진한 덕분인지 그의 체격은 갈수록 늠름해졌고, 힘의 밀도 또한 눈에 띄게 차올라 있었다.'어쩌지, 사람들이 곧 알아볼 텐데. 그나마······ 원래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여 다행이지만. '늘 가까이에서 보기만 해서 그냥 대단한 황태자라고 선입견을 갖고 봐서 그런지 몰라도, 이렇게 멀리 부감해 보니 확실히 그는 나이보다 더 어려 보였다. 소년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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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뜨거운 체온이 경고를 날리다]

섀도우 루타스 캔돔 백작가의 가주이자, 라이신의 양오라버니인 사내.바아르의 어두운 지령을 받아 제국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은밀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자가 지금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섀도우는 마법과 검술, 그리고 살수로서의 모든 능력에 통달하여 제국 황실의 그림자로 불리는 살아있는 병기였다.바로 그자가 내 눈앞에서 피어오른 짙은 검은 연기 속에서 정적을 깨고 존재를 드러내려 하였다.나는 순식간에 온몸의 피가 밑바닥으로 싹 빠져나가는 충격에 사로잡혀, 전신이 단단히 굳어버린 채 섀도우를 마주했다. 손에 쥐고 있던 레이피어의 자루를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리도록 꽉 감싸 쥐었지만, 그와 나의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절대적인 실력의 격차가 존재했다. 등줄기를 타고 얼음물 같은 식은땀이 차갑게 흘러내렸다.나의 지독한 경계심을 읽었는지, 섀도우는 나지막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걱정 마라. 투명화 및 차단 마법을 겹겹이 둘러두었으니, 저 멀리선 우리의 모습도, 소리도 전혀 보이지 않을 것이다."섀도우는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고 이곳까지 찾아온 것일까. 그의 정보망이 어디까지 미치고 있었던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만약 바아르의 명을 받고 나를 당장 처단하거나, 제국의 위협이라 판단했다면, 이미 내 목숨은 끊어놓았을 터였다. 현재 본래의 마력과 오러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채 무방비하게 누워있는 아처린을 제거하는 것 역시, 섀도우라는 사내에게는 그저 손쉬운 시간문제일 뿐이었다.나는 바짝 졸아붙은 목구멍을 가까스로 가다듬으며, 떨림을 숨긴 채 나지막하게 질문을 건넸다."섀도우 경······ 저에게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나의 질문에 섀도우는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검은 연기의 기운을 두른 그가 천천히 고개를 저어 보이더니, 서늘하면서도 지친 눈빛으로 나를 지그시
last updateDernière mise à jour :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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