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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허락한 바람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81 - チャプター 90

126 チャプター

제81화 권시혁은 안 돼

"당신이 가장 듣기 싫은 대답이 맞아."예원의 마지막 말이 떨어졌다.재헌의 손끝이 테이블 가장자리에서 멈췄다.조금 전까지 하얗게 힘이 들어가 있던 손가락이 천천히 풀렸다가 다시 굽혀지기를 반복했다.그의 굳게 닫힌 입술 사이로는 아무런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대답이 떨어진 뒤, 먼저 시선을 피한 사람은 예원이 아니었다.재헌의 시선이 테이블 한쪽으로 비껴갔다.늘 정연하게 이어지던 반박도, 상대의 틈을 파고들던 질문도 이번에는 나오지 않았다.입술이 한 번 열렸다가 닫혔고, 굳은 턱이 미세하게 움직였다.예원은 그런 재헌을 말없이 바라봤다.조금 전까지 집요하게 답을 재촉하던 사람이 처음으로 다음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기나긴 정적 끝에 재헌의 갈라진 목소리가 낮게 떨려 나왔다."……실수였어?"예원은 그 한마디를 듣고 잠시 그를 바라봤다.'실수'라는 단어는 그 밤에서 자신의 선택을 지워버리는 말처럼 들렸다.분위기에 휩쓸렸거나 우연히 벌어진 일이었다면, 재헌에게는 지금의 현실을 조금 덜 선명하게 받아들일 여지가 생길지도 몰랐다.실수였다고 말하면, 적어도 그 밤을 예원의 의지와 분리해 생각할 여지는 남을지도 몰랐다.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그 밤을 우연이나 착오로 밀어 넣는 순간, 자신이 스스로 고른 선택까지 지워지는 셈이었다.예원은 재헌이 받아들이기 쉬운 거짓말을 골라주기 위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아니."예원의 대답은 짧았다.그 한마디 뒤로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재헌은 물잔 쪽으로 손을 옮겼다가 끝내 들지 않았다.손가락만 잔 가장자리에 잠시 닿았다가 떨어졌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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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무슨 자격으로

"권시혁은 안 돼."재헌의 억눌린 금지 선언이 공기를 무겁게 갈랐다.그러나 예원의 표정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놀라움도, 분노도 없는 서늘할 만큼 담담한 반응이었다."왜?"예원의 질문은 짧았다.그 한마디 뒤로 오히려 정적이 더 팽팽해졌다.재헌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고, 굳은 입술만 한 번 움직였다."그 남자는, 안 돼.""그러니까 이유를 말해.왜 안 되는데.""당신이 그 사람을 얼마나 안다고.그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기나 해?"간신히 짜낸 재헌의 대답은 옹색했다.예원에게는 그 질문이 권시혁에게서 어떻게든 문제를 찾아내려는 말처럼 들렸다.하지만 방금 전 재헌이 검색으로 확인한 것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건조한 공개 이력뿐이었다.지금 그가 권시혁을 만나면 안 된다고 말할 만한 구체적인 이유는 단 한 가지도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그건 내가 판단해.""문예원.""아니면 권시혁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다른 남자를 선택한 게 싫은 거야?"예원의 날카로운 직구에 재헌의 어깨가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짧게 들이마신 숨이 전보다 거칠게 새어 나왔다.예원은 그런 재헌을 가만히 응시하며 다시 한번 쐐기를 박았다."만나고 싶으면 만나라고 했던 사람, 당신이야.""…….""당신이 먼저 나한테 자유롭게 만나라고 했잖아."과거의 차재헌은 분명 그렇게 말했다.감시나 간섭은 하지 않겠다고, 당신도 만날 사람이 있다면 만나보라고.돌이켜보면 그 말은 이상할 만큼 가벼웠다.정말 자신이 다른 남자를 만나고, 그 남자를 직접 선택하는 상황까지 재헌이 그때 고려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다만 지금 눈앞의 재헌은, 자신이 내어준 자유가 실제로 눈앞에 나타나자 처음과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내가 정말로 누굴 만날 줄은 몰랐으니까?"예원은 대답을 기다렸다.재헌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지만 입술만 굳게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예원에게는 처음의 허락이 얼마나 가벼웠는지가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실제로 자신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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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곧 아니야

"내가 네 남편이니까."재헌의 말이 테이블 위로 무겁게 떨어졌다.예원은 한동안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조금 전까지 수없이 바뀌던 이유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제 남은 것은 그 원초적이고 이기적인 한마디뿐이었다."곧 아니게 된다."예원은 길게 생각하지 않았다.찰나의 망설임조차 묻어있지 않은, 서늘하리만큼 즉각적인 대답이었다."뭐?""당신은 곧 내 남편 아니게 될 사람이잖아."재헌의 굳게 다물려 있던 입술이 순간 벌어졌다.반사적으로 무언가 말을 내뱉으려던 그의 목울대가 크게 한 번 움직였을 뿐, 어떤 반박도 곧바로 이어지지 못했다.'남편.'예원에게도 그 단어가 거짓은 아니었다.아직 법적으로 두 사람은 부부였다.하지만 동시에 그 관계에는 이미 끝나는 날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었다.재헌이 방금 권리처럼 꺼내 든 그 신분은 영원히 유지되는 자리가 아니었다."아직은……."한참 만에 나온 목소리는 조금 전보다 낮고 위태롭게 갈라져 있었다."아직은, 내 아내야."예원은 그 말에서 유독 '아직'이라는 단어가 오래 남는 것을 느꼈다."그래.아직은."재헌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예원은 그 짧은 반응을 놓치지 않았다.조금 전까지 권리처럼 단단했던 '남편'이라는 말이 이제는 끝나는 날짜를 품은 단어로 바뀐 듯했다.예원은 그 '아직'을 굳이 지워주지 않았다.지금 이 순간 재헌이 자신의 남편이라는 사실과, 그 관계가 이미 끝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은 동시에 참이었다.두 사람은 그 끝을 모른 채 걷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날짜를 정했고, 조건을 적었고, 서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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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내 일에 손대지 마

"권시혁이랑 일하는 것도, 계속할 거야?"예원의 눈매가 미세하게 굳어졌다."일이 왜 여기서 나와?""루센 PM이 협력사 대표랑 그런 관계인데,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해?"재헌의 목소리는 제법 차갑고 단정했다.조금 전까지 이어지던 사적인 질문과는 결이 달라져 있었다.예원에게는 갑자기 대화의 언어를 업무 쪽으로 바꾼 것처럼 들렸다.이해충돌이라는 말 자체는 낯설지 않았다.하지만 그것을 문제 삼는 사람이 회사 담당자도, 프로젝트 관계자도 아닌 차재헌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예원에게는 그 변화가 낯설 만큼 선명했다.조금 전까지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던 대화가 이제는 업무의 언어로 바뀌어 있었다.재헌이 왜 방향을 틀었는지 예원이 대신 단정할 필요는 없었다.다만 그 질문이 자신의 사생활을 넘어 일까지 향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문제가 생기면 회사 절차대로 내가 책임져.""아크온을 빼."재헌이 단도직입적으로 요구했다.그 말에 예원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뭐?""꼭 권시혁이어야 할 이유는 없잖아."예원은 잠시 재헌을 바라봤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는 업무상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그런데 그 다음에 나온 결론은 철저한 검토나 보고가 아니라, 곧바로 아크온을 빼라는 일방적인 요구였다.예원에게는 그 두 문장 사이의 간격이 지나치게 선명했다.공정성을 확인하자는 말과 특정 협력사를 없애자는 말은 결코 같은 뜻이 아니었다.예원은 그 요구를 듣고서야 질문의 끝이 어디를 향하는지 분명히 보였다.이해충돌을 확인하자는 데서 멈추지 않고 특정 협력사를 빼라고 요구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단순한 우려만으로 들리지 않았다."사적인 이유로 협력사를 바꾸지는 않아.""사적인 문제가 아니야. 명백한 이해충돌이잖아.""아크온 안은 내가 직접 반려한 적도 있어. 수정안이 들어왔을 때도 다른 안이랑 똑같이 검토했고."예원은 그 사실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아크온의 첫 안이 기준에 맞지 않았을 때 예원은 망설임 없이 직접 반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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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대신하지 않는 사람

다음 날 오후, 루센의 공식 업무 미팅이 끝난 직후였다.관계자들이 모두 빠져나간 미팅룸에 예원과 시혁 두 사람만이 남았다.예원은 노트북을 닫은 뒤에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어젯밤 재헌이 한 말 가운데 시혁에게 전해야 할 것은 많지 않았다.부부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남편이라는 명분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는 굳이 시혁에게 설명할 일이 아니었다.다만 아크온을 프로젝트에서 빼라는 요구와, 회사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는 통보는 달랐다.그건 이제 사적인 싸움으로만 묻어둘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어제 남편이 아크온의 프로젝트 참여를 문제 삼았어요."군더더기 없이 건조한 전달이었다.서류를 정리하던 시혁의 손이 멈췄다."어떤 식으로요.""이해충돌이라고 하더군요. 아크온을 빼라는 요구도 있었고."시혁은 곧바로 미간을 찌푸리거나 재헌을 비난하는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그의 시선은 차분하게 예원을 향했다."회사 쪽에 실제로 연락했습니까?""아직은요. 일단 못하게 막았어요.""알겠습니다."짧고 간결한 대답이었다.시혁은 더 이상 어제의 감정적인 대화들이나 재헌의 무례함에 대해 파고들지 않았다."그래도 아크온이 관련된 문제라, 알아두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공식적인 문제 제기가 들어오면 아크온 쪽에서도 준비가 필요할 테니까요."예원은 테이블 위에 남은 아크온 수정안을 한 번 내려다봤다.처음 반려했던 사유도, 수정안을 다시 검토한 과정도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만약 회사가 이해충돌 여부를 공식적으로 확인하겠다고 한다면 그 자료부터 내놓으면 됐다.적어도 자신이 감정 때문에 기준을 바꾼 적은 없다는 점만큼은 설명할 수 있었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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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제가 하겠습니다

루센 중간 프레젠테이션을 불과 두 시간 앞둔 오후였다.미온개발 프로젝트룸은 어느 때보다 차분했지만, 예원의 눈은 모니터 위에서 날카롭게 움직이고 있었다.예원은 최종 취합된 발표 자료를 한 장씩 넘기다 일순간 마우스를 쥐고 있던 손을 멈췄다.아크온의 최신 수정안이 반영된 14페이지와, 그 뒤로 이어지는 브랜드 전략 수치를 담은 15페이지의 흐름이 서로 맞물리지 않고 어긋나 있었다."이 페이지, 최신 버전 수정안 아니에요."예원의 목소리에 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모니터로 향했다.예원의 지적대로, 공간 동선 변경 사항은 제대로 반영되었으나 그와 연결되어야 할 브랜드 메시지와 핵심 고객 경험 수치가 여전히 이전 설계안을 기준으로 작성되어 있었다."어떡하죠? 지금 전체 자료 다시 취합해서 수정하기에는 시간이……."한 팀원의 당혹스러운 목소리가 프로젝트룸의 공기를 순식간에 흔들었다.각 파트 담당자들이 각자의 영역에만 집중하다 마지막 통합 단계에서 놓쳐버린 오류였다.이대로 발표가 진행된다면, 예상 질문 단 하나에 프로젝트 전체의 논리가 흔들릴 수 있는 치명적인 구멍이었다."아니요. 전체를 건드릴 필요는 없어요."예원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프로젝트룸의 혼란을 잘라냈다.그녀는 흔들림 없이 화면을 주시했다."설계 변경 자체는 제대로 들어갔어요. 고객 동선이 바뀐 뒤 브랜드 전략 연결 페이지가 구버전인 게 문제입니다. 문제는 딱 이 세 장이에요. 이것만 다시 맞추면 됩니다."예원은 문제를 거대하게 부풀리는 대신 빠르고 정확하게 범위를 특정해 냈다."대리님은 수정안 수치 다시 한번 크로스 체크해 주세요. 주임님은 기존 동선 관련 예상 질문 리스트에서 해당 항목 빼주시고요. 최신 도면 교체랑 전체 논리 순서는 제가 다시 잡겠습니다."그녀의 입에서 명확한 지시가 떨어지자 흩어졌던 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제자리를 찾았다.예원은 모니터로 시선을 고정한 채, 아크온에서 전달받았던 최신 도면의 핵심 변경 사항과 브랜드 전략을 다시 하나로 연결하기 시작했다.손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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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문예원입니다

회의실 전면 스크린에 루센의 첫 페이지가 띄워졌다.예원은 발표 리모컨을 손에 쥔 채 짧게 숨을 골랐다.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브랜드, 설계, 운영 등 각 파트 담당자들이 나누어 설명할 예정이었던 자료였다.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과정과 결론이 오롯이 문예원 한 사람의 몫이었다.예원은 정면을 향해 반듯하게 섰다."안녕하세요. 루센 프로젝트 PM 문예원입니다."단단하고 군더더기 없는 첫인사였다.발표가 시작되자 예원의 긴장감은 오히려 차분한 집중력으로 바뀌어갔다.그녀는 최신 설계 변경이 고객의 동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루센이 전하고자 하는 브랜드 경험과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막힘없이 설명해 나갔다.불과 몇 시간 전 발견되었던 설계안과 브랜드 전략 사이의 위태로운 간극은, 예원의 손을 거치며 오히려 프로젝트의 논리를 더 견고하게 뒷받침하는 핵심 근거로 탈바꿈해 있었다.마지막 슬라이드가 닫히고, 잠시 후 곧바로 예리한 질문이 날아들었다."설계 변경으로 고객 동선이 짧아졌는데, 기존에 제시한 체류 경험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습니까?"예원은 흔들림 없이 질문자를 바라보았다."이동 거리는 줄었지만, 핵심 체류 구간 자체가 삭제된 건 아닙니다."예원은 화면을 다시 한 장 되돌려 띄웠다."오히려 분산되어 있던 기존안보다 고객 접점이 세 구간으로 확실하게 집중됐습니다. 루센의 브랜드 경험은 물리적인 이동 시간이 아니라, 그 접점에서 무엇을 밀도 있게 경험하느냐를 기준으로 다시 설계했습니다.""그렇다면 설계 쪽에서는 그 세 구간의 체류 밀도를 높일 구체적인 구조적 방안이 있습니까?"질문은 곧바로 구조 세부와 수치의 영역으로 들어왔다.예원은 입을 열기 전 화면을 한 번 확인했다.브랜드 전략과 고객 경험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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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방은 따로입니다

루센 프로젝트의 첫 지방 현장 실사가 진행되는 날이었다.미온개발 쪽 실무자들과 아크온의 인력이 합류한 소규모 출장팀은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예원은 프로젝트 자료를 한 손에 든 채 넓은 공사 부지를 살폈다.고객 동선과 실제 부지의 간극을 확인하고 구조의 방향을 논의하는 동안, 시혁은 늘 그래왔듯 완벽한 파트너로서 그녀의 곁에서 호흡을 맞추었다."이쪽 입구를 조금 더 트는 편이 동선상 유리할 것 같습니다."예원의 지적에 시혁이 들고 있던 도면을 펼치며 바로 응수했다."그렇게 되면 후면부 브랜드 공간의 밀도가 떨어집니다.진입로 폭을 현행 유지하되 내부 시야를 여는 방식이 더 낫습니다.""검토해 보죠."짧고 건조한 실무적인 대화들이 오갔다.중간 프레젠테이션을 마친 뒤에도 업무 현장에서 둘의 관계는 달라지지 않았다.의견이 맞으면 받아들였고, 다르면 근거를 놓고 다시 부딪쳤다.어느 쪽도 사적인 관계를 이유로 상대의 판단을 쉽게 넘겨주지 않았다.현장을 걷던 예원이 펜이 떨어지려던 순간, 시혁이 말없이 손을 뻗어 그녀의 자료를 받쳐 주었다.예원은 흠칫 놀라거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대신 아주 자연스럽게 그 손길을 넘겨받아 다음 페이지를 짚었다.점심시간 식당을 고를 때도 두 사람은 굳이 서로의 취향을 묻지 않았다.식탁 위에는 늘 그렇듯 시혁이 먼저 예원 쪽으로 컵과 수저를 밀어두었고, 예원은 그것을 당연하게 사용했다.모든 것이 너무 자연스러웠다.손끝이 닿고, 시선이 마주치고, 서로의 필요를 먼저 알아채는 그 모든 순간들이.오후 늦게 차로 이동하던 중, 예원은 무심코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예전 같았으면 손끝 하나 스치는 것에도 잔뜩 날이 서고 긴장했을 텐데, 지금은 시혁이 자신의 곁에 있는 것이, 그의 손길이 닿는 것이 숨을 쉬듯 편안하고 익숙해져 있었다.누군가와 이토록 빠르게 가까워졌다는 사실보다, 그 가까움에 자신이 이미 완벽하게 길들어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다가왔다.이상하게도 피곤하지가 않았다.저녁 무렵, 현장 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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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8층

10층.안내판 위 숫자는 시혁의 방이 있는 층이었다.예원은 그 숫자에서 아주 천천히 시선을 거두고 반대편에 위치한 층수 버튼을 바라보았다.8층과 10층.두 개의 버튼에만 불이 들어와 있었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좁은 공간에 두 사람만 남았다.시혁은 층수 버튼 쪽에 섰고, 예원은 반대쪽 벽 가까이에 붙어 섰다.두 사람 사이에는 한 사람이 충분히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의 물리적인 여유가 있었다.그런데 예원에게는 이상하게도 그 거리가 낮의 현장이나 식사 자리에서보다 훨씬 좁게 느껴졌다."피곤합니까?"침묵을 깬 것은 시혁의 낮고 건조한 목소리였다."조금요.""가서 쉬십시오."더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그의 말은 8층에서 각자 헤어지는 것을 전제로 한 듯 지극히 자연스러웠다.내일 일정을 앞둔 파트너를 배려하는 완벽하게 공적인 인사였다.예원은 정면의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스테인리스 벽면에 흐릿하게 비친 두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나란히 서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에게 몸을 기울인 것도 아니었다.시혁은 제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고 예원 역시 벽 가까이에 그대로 서 있었다.그런데도 그 좁은 화면 안에 두 사람만 남아 있다는 사실이 이상할 만큼 선명했다.낮에는 여러 사람의 발소리와 수많은 질문들 사이에 섞여 있던 존재감이 지금은 피할 곳 없이 가까웠다.예원은 괜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그는 예원을 붙잡지 않았다.10층으로 오라거나, 잠시 같이 있자는 어떠한 제안도 없었다.그 무심하고 당연한 배려가 예원의 가슴 한구석을 묘하게 들쑤셨다.엘리베이터 특유의 조용한 기계음 사이로, 낮보다 훨씬 차분하게 가라앉은 시혁의 체향이 훅 밀려들었다.소매를 살짝 걷어 올린 팔이나 아주 미세하게 흐트러진 셔츠 칼라 같은, 출장의 끝자락에만 허락되는 그 약간의 흐트러짐이 예원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저 남자와 가까워지는 일이 어떤 감각인지, 그 단단한 몸과 맞닿을 때의 온도가 어떤 것인지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 문제였다.처음 보는 사람의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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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업무 시간 아니잖아요

예원은 내리지 않았다.문이 완전히 닫혔다.8층을 알리던 불빛이 센서와 함께 꺼지고, 안내판에 남은 것은 10층 버튼의 불빛 하나뿐이었다.엘리베이터가 다시 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8.9.10.짧은 상승의 시간 동안 시혁은 '왜 내리지 않았느냐'고 묻지 않았다.닫힘 버튼에서 손을 떼고 무심하게 앞을 향해 서 있을 뿐이었다.예원도 변명하지 않았다.실수나 착각이 아니었다.술기운도 없었다.방 번호를 착각한 것도 아니었다.자신의 방이 두 층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방금 전 스스로 그 문을 지나치는 쪽을 택했다.띵.10층이었다.문이 열리자 시혁이 먼저 걸음을 내디뎠다.그는 뒤돌아보거나 예원에게 손을 내밀어 이끌지 않았다.예원은 열린 문을 잠시 바라보다가, 자신의 발로 그 뒤를 따라 내렸다.아무도 끌고 가지 않았다.8층에서 내릴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있었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시 내려가는 버튼을 누를 수도 있었다.그런데도 예원은 계속 걸었다.시혁의 넓은 등을 시야에 담은 채, 고요한 호텔 복도를 밟고 나아갔다.객실 번호가 하나씩 지나갔다.예원은 가방 안에 자신의 8층 키카드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의식했다.지금이라도 돌아서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기 방으로 갈 수 있었다.내일 아침에는 다시 로비에서 만나 도면을 펼치면 됐다.그런데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이 길을 선택한 사람이 누구인지 예원 자신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시혁이 한 객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호텔 복도의 아득한 조명 아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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