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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허락한 바람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101 - チャプター 110

126 チャプター

제101화 왜 예원이었어

아크온 건축사사무소 앞.재헌의 걸음이 유리문 앞에서 한 차례 멈췄다.지난번에는 권시혁을 직접 찾아가려다 끝내 걸음을 멈췄었다.그 뒤 재헌이 택한 것은 대면이 아니라 권시혁의 과거를 확인하는 일이었다.이번에는 돌아서지 않았다.재헌은 약속도 없이 유리문 손잡이를 당기고 안으로 들어섰다.구두 굽 소리가 텅 빈 복도를 울렸다.사무실 안쪽, 넓은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시혁이 고개를 들었다.허공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정면으로 부딪쳤다.불쑥 들이닥친 방문객을 확인하고도 시혁은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차재헌 씨."건조하고 낮게 울리는 음성.재헌은 대답하지 않았다.시혁은 펜에서 손을 뗐다.아직 자리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재헌이 책상 맞은편까지 걸어오는 동안에도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재헌 역시 상대에게 고정된 시선을 먼저 거두지 않았다.책상 하나를 사이에 둔 채, 두 사람의 팽팽한 침묵만 길어졌다.재헌은 넥타이를 한 번 끌어내리며 시혁의 얼굴을 쏘아보았다.시혁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냈다."네 아버지 이름을 봤어."재헌의 첫 마디가 적막을 찢었다.시혁의 손이 책상 위 도면 끝에서 미세하게 멈칫했다.재헌이 시선을 고정한 채로 한 마디를 덧붙였다."7년 전 기록에서."그제야 시혁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의자가 뒤로 조금 밀리는 마찰음이 사무실 안을 울렸다.재헌은 시혁이 완전히 일어설 때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시혁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내려놓은 펜 옆에서, 도면 가장자리를 짚고 있던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안으로 접혀 들어갔다.시혁은 서두르지 않고 입술을 다문 채 서 있었다.재헌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 오래 머물렀다."내 서명도 거기 있었고."재헌이 낮게 덧붙였다.시혁의 시선이 잠시 재헌의 어깨 부근으로 낮아졌다가, 다시 그의 눈동자로 돌아왔다."무슨 말을 하려는 겁니까."마침내 시혁이 입을 열었다.낮고 단단한 목소리였다.재헌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의 시선이 책상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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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당신 때문이 아닙니다

"예원에게 왜 접근했어?"재헌의 서늘한 질문이 텅 빈 사무실 안에 떨어졌다.유리문 너머로 희미한 불빛이 새어 들어와 대치하고 있는 두 남자의 굳은 얼굴을 비췄다.시혁은 책상 너머에 선 재헌의 짙은 적의를 정면으로 받으면서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그는 재헌의 날 선 도발에 당황하거나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서두르지 않고,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시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예원 씨를 이용한 적 없습니다."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짧은 대답이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재헌의 턱선에 벼락같이 힘이 들어갔다.재헌은 시혁의 표정을 차갑게 훑어 내렸다.시혁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건가."재헌이 책상 쪽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네 아버지 일도 알고 있었잖아. 7년 전 일 때문에 네가 무슨 원한을 품었든, 내가 누군지도 알고 있었겠지.그런데 왜 하필 문예원이야."재헌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조소가 묻어났다.사무실 안의 공기가 숨 막히게 얼어붙을 듯 차가워졌다.시혁은 여전히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그는 재헌의 강한 압박에 흥분하여 목소리를 높이거나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아주 건조한 사실들만을 잘라내어 덤덤히 던지기 시작했다."예원 씨한테 당신 정보를 요구한 적 없습니다."재헌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시혁을 쏘아보았다.시혁의 흔들림 없는 말이 곧바로 이어졌다."그 사람한테서 사건에 필요한 걸 받아낸 적도 없고요."시혁의 목소리는 어떤 변명도 섞이지 않은 채 차분하게 이어졌다.재헌은 시혁의 태도에 입술을 비틀었다."요구하지 않았다고 이용하지 않은 게 되는 건 아니지."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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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그 말을 믿어?

휴대전화 화면이 밝아지며 익숙한 이름 세 글자가 떠올랐다.차재헌.예원은 잠시 화면을 내려다보았다.화면이 꺼졌다가, 채 몇 초가 지나지 않아 다시 진동이 울렸다.집요한 연락이었다.예원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만나서 할 얘기가 있어."다짜고짜 본론부터 치고 들어오는 재헌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랐다.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지만, 묘하게 날이 서 있었다.예원은 거절하려다, 그 이질적인 목소리의 무게를 읽고 잠시 입을 다물었다.결국 두 사람은 근처의 조용한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재헌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지만 눈빛만큼은 어느 때보다 형형했다."권시혁에 대해 확인한 게 있어."재헌이 자리에 앉자마자 던진 첫 마디였다.예원의 미간이 좁아졌다."또 조사했어?"계약서에는 교제 상대 조사뿐 아니라 접촉도 명시적으로 금지돼 있었다.예원의 목소리에 짙은 불쾌감이 묻어났지만, 재헌은 물러서지 않았다."이번엔 내가 직접 만났어."예원의 눈이 커졌다.재헌은 이번에는 뒷조사에서 멈추지 않고 직접 그 선까지 넘었다.화가 치밀기 전에, 재헌이 자신의 약속을 깨면서까지 왜 이렇게까지 움직였는지 알 수 없는 불안이 먼저 예원의 심장을 스쳤다.재헌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였다."권시혁 아버지가 7년 전 그 사건에 얽혀 있었어. 그리고 그 기록에 내 서명도 있었고."예원은 7년 전 재개발 사건과 권시혁의 가족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었다.하지만 재헌의 서명이 그 기록에 남아 있다는 말은 처음 듣는 것이었다."아버지 사건은 알아."예원의 시선이 재헌에게 머물렀다."당신 서명이 거기 있었다는 건 처음 듣지만.""그 사건을 안다고?"재헌의 눈매가 굳어졌다.재헌이 권시혁의 이름에 보여온 반응을 예원은 이미 여러 번 봤다.그의 말에 날 선 감정이 섞여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했다."그럼 그 자식이, 나한테 접근하려고 널 이용했다는 것도 알아?"재헌의 목소리에 짙은 의심이 섞여들기 시작했다.예원은 재헌의 말에서 확인된 사실과 그의 추측을 분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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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좋은 인연은 아닙니다

"권시혁 씨. 당신과 차재헌, 7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어요?"전화기 너머가 잠잠해졌다.미세한 백색소음만이 귓가를 맴돌았다.예원은 먼저 말을 덧붙이거나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짧지도, 그렇다고 한없이 길지도 않은 침묵이 흘렀다.잠시 뒤, 가라앉은 시혁의 목소리가 넘어왔다."좋은 인연은 아닙니다."악연.그 담담한 인정은 재헌의 경고가 아주 틀리지는 않았음을 증명했다."그건 알아요."예원의 단호한 대답에 수화기 너머의 숨소리가 미세하게 멈췄다."아버지 일도, 차재헌이 그 일과 무관하지 않았다는 것도 알아요."예원은 탁자 위에 올려둔 손끝을 가볍게 말아 쥐었다."내가 묻는 건 그 다음이에요. 내가 모르는 게 더 있냐고 묻고 있잖아요."과거 사건의 전말을 다시 듣자고 건 전화가 아니었다.재헌의 억지스러운 해석을 걷어내고, 시혁이 쥐고 있는 사실의 크기를 확인해야 했다.다시 짧은 정적이 내려앉았다.예원이 아는 시혁은 대답을 꾸며내느라 침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하지만 이번에는 평소보다 답이 늦었다."아버지 일 이후."마침내 시혁이 입을 열었다."차재헌 씨가 그 사건에 어디까지 얽혀 있었는지 확인했습니다."확인.예원의 미간이 좁아졌다."확인했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7년 전 일과 관련된 기록들을 찾아봤다는 뜻입니다.""차재헌이 당신 아버지 일을 전부 만든 거라고 생각했어요?""아닙니다."시혁의 대답은 빨랐다.감정에 치우쳐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특유의 건조함이 배어 있었다."그 일을 전부 만든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도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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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처음 만난 뒤

"나에 대해 조사했어요?"침묵은 길지 않았다.하지만 수화기 너머의 시혁이 입을 열기까지의 짧은 순간 동안 예원의 심장 박동은 차갑게 얼어붙는 듯했다."확인했습니다."조사라는 모호하고 넓은 단어 대신 돌아온 것은, 훨씬 좁고 구체적인 '확인'이라는 말이었다.예원은 그 차이를 놓치지 않았다.하지만 그 단어가 주는 파장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뭘요.""처음 만난 뒤, 예원 씨가 누구인지."예원의 숨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했다.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내가 차재헌 아내라는 걸?""네."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시혁은 부정하거나 변명하지 않았다.예원의 입술이 굳어졌다.머릿속이 빠르게 회전했다.자신이 누구인지 확인했다면, 그 시작점은 대체 언제였을까."그럼 처음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니었어요?"예원의 목소리에는 희미한 긴장이 배어 있었다.만약 비가 내리던 그날 밤의 첫 만남조차 계획된 것이었다면, 지금까지 시혁이 보여준 모든 행동의 진정성을 의심해야 했다."아닙니다."시혁의 대답은 이번에는 빨랐다.목소리에도 단호한 힘이 실려 있었다."그날 만난 건 우연이었습니다."예원은 작게 숨을 내쉬었다.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치워진 느낌이었다.거짓이 아니었다.시혁과 처음 마주친 순간만큼은 온전한 우연이었다.재헌의 말처럼 처음부터 자신을 이용할 속셈으로 쳐둔 덫은 아니었던 것이다.하지만 그 안도로 끝나기엔, 시혁이 스스로 인정한 사실의 무게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첫 만남은 우연이었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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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대답하지 못한 질문

"그게 전부예요?"이번에는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예원은 수화기 너머의 침묵을 응시하듯 호흡을 멈췄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시혁은 예원이 던진 질문을 외면하지 않았다.첫 만남이 우연이었는지.자신이 차재헌의 아내라는 사실을 확인했는지.그리고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는지.대답이 조금 늦어질 때가 있어도, 그는 끝내 질문을 피하지 않고 사실을 인정했다.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전화기 너머에서는 낮고 규칙적인 숨소리만 들려올 뿐, 어떤 긍정도 부정도 돌아오지 않았다.예원은 침을 삼켰다.그녀가 시혁에게 완벽한 해명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예원은 단지, '네, 전부입니다.'라는 그 짧고 명확한 한마디를 기다렸는지도 몰랐다.하지만 그 한마디조차 오지 않았다."……예원 씨."긴 침묵을 깨고 마침내 시혁의 목소리가 들렸다.평소보다 호흡이 짧았고,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예원은 시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하지만 시혁이 예원의 이름을 부른 뒤에도, 다음 말은 끝내 이어지지 않았다.예원의 손끝이 차갑게 식어갔다.침묵이 진실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었다.예원은 똑똑한 사람이었다.단순히 대답이 늦어진다는 이유만으로 시혁이 엄청난 비밀을 숨기고 있다고 단정 짓거나, 그가 처음부터 자신을 철저히 속였다고 유죄를 선고하지는 않았다.그렇다고 이 무거운 침묵만으로 무엇이 더 남아 있다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하지만 '전부입니다'라는 대답이 끝내 오지 않았다는 사실만은 지워지지 않았다.조금 전까지 어떤 방어막도 없이 대답을 내어놓던 사람이 유독 '그게 전부냐'는 질문 앞에서 멈춰 섰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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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당신 판단대로

다음 날 오전, 미온개발 회의실.예원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긴 테이블 맞은편에는 이미 권시혁이 앉아 있었다.지난 통화 이후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예원의 시선이 잠시 허공에서 시혁과 얽혔다.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사적인 눈인사나 안부도 오가지 않았다.예원은 시선을 거두고 자리에 앉아 랩톱을 열었다.전날 끝내 답을 듣지 못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서늘한 거리감은 두 사람 사이의 공기를 무겁게 채우고 있었다."시작하시죠."예원의 건조한 목소리로 회의가 시작되었다.오늘의 안건은 루센 프로젝트의 핵심 공간에 대한 갑작스러운 변경 요구였다.브랜드 방향성을 재조정하면서, 아크온이 상당 부분 진행한 설계안을 다시 손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일정이 너무 촉박합니다."미온개발 측 실무진 중 한 명이 난색을 표했다."지금 이 부분을 수정하려면 아크온 쪽에서 다시 작업해야 합니다. 전체 후속 일정까지 밀릴 수밖에 없고요. 핵심 공간이긴 하지만, 기존 안으로 가도 무리는 없습니다."회의실의 분위기는 점차 '기존안 유지'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예원은 테이블 위에 펼쳐진 도면과 브랜드 가이드라인을 번갈아 확인했다.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갔다."수정하겠습니다."예원의 단호한 목소리가 회의실의 웅성거림을 잘라냈다."이대로 승인하지 않겠습니다. 일정을 잃더라도 지금 고치는 게 맞습니다.""문 PM님. 하지만 이건 아크온에 적지 않은 재작업을 요구하는 사안입니다. .무리하게 바꿀 필요가 있을까요?""루센의 핵심 브랜드 경험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지금 타협하고 넘어가면, 오픈 이후 운영 단계에서 반드시 다시 손대야 합니다. 결국 비용과 시간 손실이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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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아직 그의 아내

"문예원."복도 끝, 그곳에 차재헌이 서 있었다.회의실 문밖에 서 있는 남자를 확인한 순간, 예원은 시혁을 향해 열려던 입을 굳게 다물었다.재헌의 시선이 느릿하게 회의실 안쪽을 스쳤다.방금 전까지 아슬아슬한 긴장이 맴돌던 공간에 예원과 시혁이 단둘이 남아 있는 자리였다."여기서 다 보네."재헌의 목소리는 평온했다.그는 굳이 안으로 들어와 언성을 높이거나 두 사람의 관계를 사납게 추궁하지 않았다.단지 열린 문틈 사이로 두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여유로운 태도였다.그날 오후, 미온개발 본사 라운지에서 열린 루센 프로젝트 대외 관계자 간담회.예원은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PM 자격으로, 시혁은 파트너사인 아크온의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자리였다.재헌도 외부 초청 인사로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공식적인 행사의 공기는 부드러웠고 사람들의 대화는 활기찼으나, 예원에게는 발밑이 서서히 옥죄어 오는 듯한 묘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두 분이 원래 아시는 사이셨습니까?"업계 관계자 중 한 명이 예원과 나란히 서게 된 재헌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재헌이 아주 자연스럽게 예원을 돌아보았다."네."잠시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었다."제 아내입니다."관계자의 얼굴에 가벼운 놀라움과 호의적인 미소가 번졌다.부부의 동반 참석에 던지는 지극히 평범하고 상식적인 반응이었다.누군가는 가볍게 덕담을 건네며 두 사람의 사이를 축하하기도 했다.예원의 숨이 턱 막혔다.재헌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별거와 외부 교제를 허용한 계약은 여전히 두 사람에게 유효했다.다만 이곳 사람들은 그 계약의 존재를 몰랐다.그들에게 예원은 법적으로 여전히 차재헌의 아내였다.사적으로는 스스로 다른 선택을 내렸음에도,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여전히 법적인 혼인의 굴레가 그녀의 현재를 덮어버리고 있었다.하지만 예원은 불편한 호칭에 짓눌려 고개를 숙이거나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억지로 관계를 부정하며 소란을 만드는 대신, 곧바로 상대의 눈을 마주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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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화낼 자격

"화났어요?"질문은 짧고 직설적이었다.행사장 한구석, 수많은 사람의 대화 소리와 은은한 음악 소리가 보이지 않는 장막처럼 두 사람을 에워싸고 있었다.예원은 피하지 않고 시혁의 눈을 마주 보았다.모두가 자신을 차재헌의 아내로 바라보던 그 밝고 소란스러운 공간에서, 예원이 유일하게 대답을 요구하는 사람은 권시혁이었다.이번에는 긴 침묵이 이어지지 않았다.시혁이 천천히 시선을 내리며 낮게 입을 열었다."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습니다."건조하지만 분명한 인정이었다.아무렇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애써 감정을 포장하지 않은 대답.그 짧은 문장 속에 담긴 무게가 예원의 귓가를 스쳤다.질투.혹은 그와 비슷한 결의 묵직한 불편함이었다.예원은 그의 대답을 곱씹으며 다시 물었다."그런데 왜 아무 말도 안 했어요?"시혁은 재헌의 소개를 듣고도 예원에게 다가오지 않았다.그렇다고 지금 와서 불편함을 쏟아내지도 않았다.시혁의 시선이 잠시 행사장 너머를 향했다가 다시 예원에게 돌아왔다."그 사람은 아직 예원 씨 남편이니까요.""알아요."예원의 즉각적인 대답에 시혁의 눈동자가 한층 더 깊게 가라앉았다."그 사실을 제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잖습니까."틀린 말이 아니었다.예원이 사적으로 어떤 선택을 내렸든, 별거와 외부 교제를 허용한 계약이 존재하든, 공식적인 서류상 그녀는 여전히 차재헌의 아내였다.시혁은 그 굳건한 현실의 굴레를 부정하거나 억지로 부수려 들지 않았다."제가 화를 낼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자격.그 단어가 예원의 호흡을 아주 미세하게 멈춰 세웠다.예원은 시혁의 단단한 얼굴을 가만히 살폈다.그 말은 자신이 아무런 법적 권리가 없으니 체념하겠다는 식의 비겁한 자기비하가 아니었다.감정이 없다는 뜻은 더더욱 아니었다.오히려 그것은 철저한 통제와 절제에 가까웠다."그렇다고 당신이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처럼 굴 필요는 없잖아요."예원의 목소리에 아주 희미한 파동이 일었다.시혁은 대답 대신 잠시 시선을 내리깔았다.그의 크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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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하지 않기로 한 말

"자격을 준다면요?"질문은 낮았지만,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선명하게 공기를 갈랐다.시혁의 눈동자가 순간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이내 깊게 가라앉았다.그는 예원의 도발적이고 주체적인 초대를 피하거나 적당히 넘기지 않았다.얽힌 시선 사이로 숨 막히는 긴장이 무겁게 내려앉았다."그 말."시혁의 목소리가 억눌린 듯 갈라졌다."가볍게 듣고 싶지 않습니다.""가볍게 한 말 아니에요."예원은 물러서지 않았다.시혁이 조심스레 선을 긋고 서 있다면, 자신이 먼저 그 선을 지워줄 생각이었다.하지만 시혁은 예원이 내어준 자리를 덥석 차지하며 성급하게 다가오지 않았다."예원 씨가 제게 어떤 자격을 주려는 건지 압니다."그의 시선이 예원의 입술 끝에 잠시 머물렀다가 다시 짙은 눈을 향해 올라왔다."하지만 제가 바라는 건, 단지 질투하고 화를 내도 된다는 허락만은 아닙니다."예원의 심장 박동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질투를 표현할 권리, 그 이상을 원한다는 선언이었다."그럼 뭔데요?"시혁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그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예원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두 사람이 처음 관계의 규칙을 정할 때, 명시적으로 합의했던 단 하나의 금지어가 있었다.'사랑한다는 말은 아직 하지 맙시다.'그때는 그 말 없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재헌과 맺은 180일 계약과 얽힌 현실 속에서, 오히려 그 단어를 배제하는 것이 서로를 안전하게 지키는 방어막이라고 여겼다.감정의 끝을 확인하지 않는 선에서 머무르는 것.그것이 스스로 다치지 않는 방식이었다.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안전선이라 믿었던 그 규칙이 이제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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