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내를 다시 탐하기 시작했다: Chapter 91 - Chapter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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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화. 여기 있잖아요

잠깐의 정적 끝에, 진희가 픽 웃었다. 당황한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아직. 결혼할 때 연락할게.”“아, 그런 거야? 그치, 내가 모를 리가 없지.”준혁이 납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미래 쪽으로 시선을 옮기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아, 네…… 안녕하세요.”미래는 순간 당황했지만, 애써 침착하게 고개를 숙였다. 준혁은 별다른 의심 없이 웃는 얼굴로 다시 진희를 돌아봤다.“병원은 어때, 잘 돼?”진희가 묻자, 준혁이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응, 이제 좀 자리 잡았지. 개업하고 첫 일 년이 진짜 힘들잖아.”“다행이네.”짧은 대화가 오갔다. 미래는 그 옆에서 조용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진희의 옆모습을 보며, 그제야 조금씩 긴장이 풀렸다.“다음엔 미리 연락하고 와. 밥이라도 같이 먹게.”“그래, 그러자.”준혁이 마지막으로 미래를 향해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그럼 잘 놀다 가세요. 다음에 또 뵐게요.”“네…….”준혁이 매장 안쪽으로 사라지자,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미래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놀랐죠?”진희가 미안한 듯 물었다.“조금요.”“미안해요. 여기서 아는 친구를 만날 줄은 몰랐어요.”“아니에요.”미래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어 보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우리가…… 연인으로, 아니, 부부로 보였어.당황스러우면서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진희 옆에 자연스럽게 서 있던 자신이, 누군가의 눈에는 그의 사람으로 보였다는 사실. 그 말을 듣는 순간 든 감정이 부끄러움보다 설렘에 가까웠다는 걸, 미래는 부인할 수 없었다.미래는 그 마음을 애써 눌러두며, 슬쩍 진희 쪽을 보았다.계산을 마친 두 사람이 새 운동화를 신고 매장을 나섰다. 미래는 괜스레 발끝으로 바닥을 톡톡 두드려 보았다.“운동화 고마워요. 잘 신을게요.”“저도 오늘 고마워요.”미래가 고개를 갸웃했다.“네? 뭐가요?”진희가 어깨를 으쓱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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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화. L.O.V.E

“여보세요.”[사모님, 어디세요? 점심때가 한참 지났는데 안 오셔서요.]미래는 순간 시계를 확인했다. 어느새 1시 반이 다 되어 있었다.“어…… 저 좀 멀리 나와 있어요.”[아…… 네. 그럼 잘 다녀오세요.]전화를 끊은 미래는 멍하니 휴대폰을 바라보았다.꿈에서 깬 듯, 현실의 무게가 서늘하게 차 안으로 스며들었다. 아침 8시 반에 시작된 이 꿈같은 시간이,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그래, 내 자리는 여기가 아니지.미래는 애써 입가에 미소를 그려 넣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아이들의 엄마로, 누군가의 아내로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이 몇 시간만은, 그저 한 여자로 이 사람과 마주 앉아 웃을 수 있어서 정말로 행복했다.“이모님이세요?”진희가 물었다.미래는 대답 대신 시계를 보았다. 그 얼굴에 짧게 스친 근심을, 진희는 놓치지 않았다.“이 시간에 남이섬 갔다가 오면, 저녁 늦게 되겠는데요.”“그러네요…….”아쉬움 짙은 정적이 흘렀다. 진희는 핸들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함께 있고 싶은데.진희는 미래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그녀의 표정에 현실을 마주한 쓸쓸함이 찰나 스쳐 지나갔다. 마음이 아릿해졌다. 미래가 혹여 죄책감을 느끼거나 마음이 무거워질까 봐, 덜컥 겁이 났다.오늘 하루는, 미래 씨에게 오롯이 선물 같은 시간이었으면 좋겠어. 내 아쉬움 때문에 그 예쁜 웃음이 사라지게 할 순 없으니까.진희가 애써 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그럼 남이섬은 다음에 올까요?”“네.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요.”미래가 아쉬움을 꾹꾹 눌러 담은 미소로 대답했다. 진희는 순순히 핸들을 꺾어 방향을 돌렸다.서울로 향하는 길. 차 안의 공기가 아까보다 한결 차분해졌다.“그럼 남은 드라이브, 어떻게 재밌게 해드릴까요? 음악 뭐 좋아하세요?”“저 올드팝 좋아하는데, 혹시 아세요?”“그럼요. 저도 좋아하는걸요.”진희가 익숙하게 버튼을 누르자, 저장해 둔 플레이리스트에서 곡 하나가 흘러나왔다. 부드러운 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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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화. 집에 있었던거 아니야?

단지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차는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두 사람은 차가 완전히 멈출 때까지도 손을 놓지 않았다. 차가 정지하고 나서야, 맞잡은 손이 아쉬움을 남긴 채 스르르 떨어졌다.미래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방금까지 남아 있던 온기가, 손끝에서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오늘 즐거웠어요.”진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담백했지만, 그 말에 담긴 여운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손이 떠난 자리가 생각보다 크게 느껴졌다. 원하던 걸 다 가진 하루였는데, 이상하게도 허탈함이 먼저 밀려왔다. 몇 걸음만 걸어 들어가면, 이 사람은 다시 아이들의 엄마로, 누군가의 아내로 돌아갈 것이다. 그 사실이 손끝의 온기가 식어가는 속도만큼이나 선명했다.데려가고 싶다.진희의 집은 고작 몇 걸음 떨어진 옆 동이었다. 이 사람을 데리고 그곳으로 가서, 문을 잠그고,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서 단둘이 있고 싶었다.진희는 핸들을 움켜쥔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을 주었다. 온몸의 신경이 오직 미래를 향해 곤두서는 게, 스스로도 낯설고 아찔할 정도였다.살면서 누군가를 이토록 간절하게 원해본 적이 있었나.미래는 애써 옅게 웃어 보였다.그 한마디 안에 하루 종일 눌러왔던 마음이 다 담겨 있다는 걸 알았다. 차 문을 열고 내리면서도,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집으로 걸어 들어가는 짧은 길 위에서, 미래는 오늘 하루를 되짚어 보았다. 슬리퍼를 신고 수영장을 나선 일, 막국수를 먹다 소리 내 웃던 일, 운동화를 신겨주던 그의 손. 별것 아닌 하루였는데, 오늘만큼 온전히 웃었던 날이 없었던 것 같았다.나, 오늘 진짜 행복했다.그 생각이 드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뜨끔했다. 이런 말을 떠올려도 되는 사람이 아닌데. 남편이 있고 아이가 둘이나 있는 사람이, 이런 하루에 이렇게까지 마음을 빼앗겨도 되는 걸까.그런데 죄책감보다 먼저 남는 건 다른 감정이었다. 결혼하고 나서, 아니 어쩌면 그 전부터도, 이렇게 이유 없이 마음이 편안했던 적이 있었나.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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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화.바닐라 콘

악의 없는 일상적인 말이었다.그런데 오늘따라, 그 말이 미래의 마음 안쪽을 서늘하게 건드렸다. 무언가 짧게 대꾸하려던 미래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그냥 삼켰다.“저녁 준비할게요.”미래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정례가 정갈하게 손질해바닐라 콘 둔 재료들 위로, 애써 손을 바쁘게 움직였다. 무언가에 온전히 집중하지 않으면, 자꾸만 오늘 하루가 틈을 비집고 들어올 것 같았다.저녁 식탁에 마주 앉아서도, 미래는 성웅과 쉽게 눈을 맞추지 못했다. 반찬을 덜어주고, 국을 뜨고, 짧은 대화에 짧게 대답하면서도, 시선은 자꾸만 접시 위로, 창밖의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오늘 많이 피곤해 보이네.”성웅이 물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아, 아니에요. 낮잠을 오래 자서 그런가 봐요.”미래는 얼른 웃어 보였지만, 그 미소가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번지지 않는다는 걸 스스로도 알았다.그때 현관문이 열렸다.“엄마! 저 왔어요!”진원이 가방을 벗어 던지듯 내려놓으며 뛰어 들어왔다.“엄마, 저 오늘 단원평가 우리 반에서 1등 했어요!”“어머, 정말?”미래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원은 이미 성웅에게 달려가 안겼다.“아빠~”“어이구, 우리 아들.”성웅이 진원을 안아 올리며 웃었다.“우리 진원이 아주 잘했네. 지금 수학 뭐 배워?”“저 지금 수1 들어갔어요!”“수1? 초등학교 6학년이 벌써?”성웅이 눈을 크게 뜨며 웃었다.“아빠는 수1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배운 것 같은데. 우리 진원이 대단하네.”진원이 으쓱하며 자리에 앉았다. 성웅이 미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6학년이 수1이면 너무 이른 거 아니야?”“서윤이는 5학년 때 시작했어요. 진원이는 몇 달 좀 늦게 들어간 거예요.”미래는 숟가락을 뜨며 사실만 답했다.성웅이 잠깐 미래를 쳐다보았다. 무언가 짧게 걸리는 듯한 얼굴이었다. 아들이 1등을 해왔는데, 아내에게서 나온 말은 그저 사실 확인뿐이었다. 잘했다는 말도, 기특하다는 말도 없었다.성웅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다시 진원을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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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화. 신발장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돌아오자, 진원이 신나게 봉투를 열었다.“바닐라랑 초코 맞죠?”식탁에 둘러앉아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 동안, 진원은 학원에서 있었던 일을 종알종알 늘어놓았다. 성웅이 웃으며 맞장구를 쳤고, 미래도 옆에서 조용히 웃었다.“이제 다 먹었으면 얼른 들어가서 공부해. 내일 시험이라며.”“네!”진원이 마지막 한 입을 크게 떠먹고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정례도 뒷정리를 마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집 안이 조용해졌다.“미래야, 위스키 한 잔만 부탁해.”서재 쪽에서 성웅의 목소리가 들렸다. 미래는 잔에 얼음을 넣고 위스키를 따라 서재로 향했다.문을 열자, 성웅은 이미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미국 지사.”입 모양으로 짧게 말한 성웅이 손짓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앉아서 기다리라는 뜻이었다.미래는 잔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소파에 앉았다. 성웅은 빠르고 사무적인 영어로 통화를 이어갔다.창밖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오늘 하루가, 유난히 길었다.성웅이 전화를 끊었다. 미래가 일어나 잔을 들고 그에게 다가갔다.“여기요.”성웅이 잔을 받아 들며, 다른 손으로 미래의 허리를 감쌌다.“오늘은 처리할 일이 좀 있어서. 먼저 자.”그가 미래의 가슴께에 잠깐 얼굴을 묻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손끝으로 미래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수영은 아침에 했다며.”“……네.”“그럼 수영 말고는? 오늘 또 뭐 했어?”미래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막국숫집, 나이키 매장, 맥도날드, 신호등 앞의 깍지. 입을 열면 그중 하나라도 새어 나올 것 같았다.“……그게 다예요. 들어와서 계속 잤어요.”성웅이 미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웃었다.“잘했네. 말 잘 듣네.”성웅이 미래의 턱을 놓아주었다. 다시 의자를 돌려, 책상 위 서류로 시선을 옮겼다.미래는 조용히 서재 문을 닫고 나왔다.복도를 걷는 동안, 턱을 잡던 성웅의 손끝 감촉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런데 그 감촉은 금세 흐려지고, 다른 장면이 떠올랐다.운동화 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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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화. 저도 즐거웠어요

혼자였다.와인 잔을 채우고, 진희는 텔레비전 소리를 아예 꺼버렸다. 어차피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반병쯤 비웠을 때, 진희는 제 오른손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그곳에 미래의 온기가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착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는 손을 폈다 쥐었다 하며 그 감각을 몇 번이고 조심스럽게 확인했다.참았던 시간이 얼마였더라.계산해 본 적은 없었다. 다만 꽤 오래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처음 그 사람이 눈에 들어왔을 때부터,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물었다. 이건 안 되는 거라고. 상대는 유부녀고, 아이가 둘이고, 자신은 지금껏 선을 넘는 일 없이 늘 이성적으로 살아온 사람이었으니까.그런데 오늘, 그 손을 잡았다.잡으면서도 알고 있었다. 되돌릴 수 없는 선이라는 걸. 손을 잡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켜온 거리 따위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는 걸.이상한 건, 두려움보다 안도감이 더 컸다는 점이었다. 오랫동안 참아온 숨을 이제야 뱉어낸 것 같은 해방감.진희는 와인을 한 모금 삼켰다. 씁쓸한 여운이 목을 타고 길게 내려갔다.괜찮을까.자신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었다. 손을 잡은 순간, 그 사람도 같은 마음이었을까. 찰나의 감정에 이끌려 나중에 후회하게 되는 건 아닐까. 그런 염려가 자꾸만 뒤따라왔다.이제 와서 안 잡은 셈 칠 수도 없었다.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였다. 이 마음에 온전히 책임을 지는 것.진희는 오래도록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었다. 서른일곱 해를 살아오는 동안 늘 이성이 앞섰던 사람이었다.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온 마음으로 그려본 적이 있었나.와인 병을 거의 다 비웠을 무렵, 진희는 망설임 없이 휴대폰을 들었다.[오늘 덕분에 즐거웠어요.]짧은 문장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은 결코 짧지 않았다. 전송 버튼을 누르는 손끝에 주저함은 없었다. 이미 마음을 정한 사람의 확신이었다.진희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답장이 오기까지의 그 잠깐이, 오늘 하루 중 가장 길게 느껴졌다.그 문자가 도착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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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화. 꿈과 현실 사이

성웅은 빈 잔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술기운에 뺨이 발그레하게 물든 채 잠든 미래에게로 다가갔다.침대 곁에 앉아, 그녀의 입술에 가만히 입을 맞췄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그 순간, 미래는 꿈을 꾸고 있었다.꿈속에서 그녀는 진희와 함께였다. 서늘하고도 따뜻한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닿아 있었다. 늘 갈망해 왔던, 오롯이 자신만을 향한 입맞춤이었다.미래는 눈을 반쯤 뜬 채, 잠결에 그 목을 끌어안았다. 스스로 입술을 열고, 더 깊이 끌어당겼다.“아…….”억눌린 숨이 새어 나왔다. 평소와는 다른 아찔한 열기가 그녀를 덮쳤다. 미래는 꿈이라는 걸 알지 못한 채, 진희가 자신을 안고 있다고 믿었다.성웅은 술에 취한 아내가 오늘따라 먼저 다가오는 것이라 생각했다. 흡족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번졌다.입술을 떼지 않은 채, 성웅이 미래의 슬립 끈을 천천히 내렸다. 부드러운 실크가 어깨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갔다.드러난 가슴은, 술기운과 열기에 한층 더 풍만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 끝은 수줍은 꽃처럼, 붉게 피어 있었다.성웅의 숨이 깊어졌다.그의 손이 미래의 가슴을 가득 감싸 쥐었다. 그리고 입술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왔다. 목덜미를 지나, 쇄골을 지나, 그 붉게 피어난 끝을 머금었다.“하아…….”미래의 손가락이 그의 머리칼 사이로 파고들었다.꿈속에서 그녀를 탐하는 건 여전히 그 사람이었다. 서늘하고 집요한 눈빛을 가진 남자. 오직 자신만을 원하는 입술.성웅의 손이 미래의 허리를 따라 내려가, 얇은 천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이미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성웅이 낮게 웃었다. 아내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원한 게 얼마 만인지 몰랐다. 그는 더 정성스럽게, 더 깊이 그녀의 가슴을 탐했다.그리고 아주 약하게, 이가 닿았다.미래의 몸이 순간 굳었다.연애 시절, 그녀가 장난처럼 조르던 것이었다. 조금만 깨물어달라고. 그러면 그 남자는 웃으며, 아프지 않을 만큼만 살짝 깨물어주곤 했다.이걸 아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뿐이었다.……어?미래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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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백허그

피부과 VIP 대기실, 안락한 소파에 민서맘과 유진맘이 나란히 앉았다.밖은 벌써 후끈한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지만, 병원 안은 시원하고 고요했다.“유진 언니, 저번에 말했던 그 줄기세포요. 확실히 효과 좋죠?”민서맘이 잡지를 넘기며 툭 던졌다.“응, 나도 이번에 처음 받아보는데 확실히 얼굴이 차오르는 느낌이야. 근데 민서 엄마는 벌써 할 필요 있어?”“아휴, 언니. 저도 벌써 얼굴이 꺼지고 있어요.”민서맘이 거울을 한 번 들여다보더니, 생각났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참, 어제 수영장에서 진원 엄마 봤는데요. 진짜 입이 떡 벌어지더라고요.”“어머, 왜?”유진맘이 눈을 반짝이며 몸을 돌렸다.“그냥 날씬한 게 아니에요. 뼈가 부러질 것처럼 가는데, 가슴이랑 힙은 엄청 크고, 허리는 짧고 잘록하고, 허벅지 근육도 장난 아니에요. 저 그런 몸매 처음 봐요.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진짜 관리를 독하게 하나 봐요.”민서맘이 입술을 삐죽였다.“애 둘 낳은 몸이 어떻게 그래요? 군살 하나 없고, 살결 하나 흐트러진 데가 없더라고요.”질투가 섞인 칭찬에, 유진맘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유진희 원장님이랑 같이 있더라고요. 둘이 은근히 친한가 봐요? 나가는 뒷모습이 꽤 다정해 보이던데.”“유 원장님이 원래 스윗하잖아. 환자들한테도 친절하고, 워낙 매너가 좋으니까.”민서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미묘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난 듯 목소리를 낮췄다.“근데 그거 알아요? 저녁에 진원 아빠도 잠깐 봤거든요. 잡지에서 볼 땐 그냥 깔끔한 줄 알았는데, 실물이 훨씬 잘생겼어요. 특히 키가…… 와, 진짜 깜짝 놀랐어요.”민서맘이 손으로 키를 어림하는 시늉을 했다.“185는 족히 돼 보이던데요? 유진희 원장님만 하더라니까요. 비율도 좋고. 우리 남편이랑은 차원이 달라요.”유진맘이 잡지를 덮으며 헛웃음을 쳤다.“참나, 부럽기도 하지. 펜트하우스 살지, 남편 잘생겼지, 애들 공부 잘하지. 거기에 그 몸매까지. 저렇게 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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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화. 첫키스

다음 곡이 시작되려는 사이, 진희가 조용히 미래의 손을 잡았다.“잠깐 나갈까요?”진희가 미래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며 인파를 헤쳐 나갔다. 갑작스러운 손길에 미래의 심장이 다시 한번 크게 요동쳤다. 두 사람은 사람들 틈을 빠져나와 양재천 변 카페 앞에 섰다.“잠깐만요. 여기 2분만 서 있어요.”진희가 미래를 남겨두고 걸음을 옮겼다. 미래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익숙한 진희의 차가 카페 앞에 부드럽게 멈춰 섰다.차에 오른 미래를 향해 진희가 살며시 미소 지었다.목적지는 없었다. 두 사람은 약속이라도 한 듯, 무작정 서울의 밤을 달리기 시작했다.한참을 달리던 차는 이내 반포 한강공원에 닿았다. 늦은 밤의 한강은 낮보다 훨씬 고요했다. 진희가 편의점에 들러 캔커피 두 개를 사 들고 돌아왔다.“자, 여기요.”진희가 내민 레쓰비를 받아 든 미래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우리, 이거 정말 자주 마시네요?”그 말에는 커피 이상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자주 마주할 수 있어서 좋다는, 차마 직접 꺼내지 못한 고백이었다.두 사람은 나란히 강변을 걸었다. 굳이 손을 잡지는 않았지만, 걸음마다 닿을 듯 말 듯 스치는 팔과 손끝이 간지러운 긴장을 만들어냈다.벤치에 앉아 강바람을 맞았다. 진희가 강물을 바라보며 나직이 물었다.“미래 씨, 오늘 저녁은 시간 여유가 좀 되시나 봐요?”미래가 짐짓 능청스러운 얼굴로 대꾸했다.“원장님, 이제 물어보시는 거예요?”춘천으로 향하던 길에 진희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자,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웃음이 오갔다.사실 오늘 미래의 저녁은 완벽하게 비어 있었다. 서윤은 독서실에서 새벽 2시에나 돌아올 예정이었고, 진원은 학원과 줄넘기 특강까지 마치면 10시가 넘어야 귀가할 터였다. 정례는 가족 병문안으로 지방에 내려갔고, 성웅은 제주도로 1박 2일 골프를 떠났다.10시까지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오롯이 자신의 시간이었다.진희는 그 대답의 의미를 아는 듯, 더는 묻지 않았다. 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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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입술이 닿았다.그리고 그대로, 멈췄다.진희는 움직이지 않았다. 미래도 숨을 쉬지 못했다. 서로의 입술이 맞닿은 채, 1악장의 낮은 현악기 소리만 차 안을 천천히 흘렀다.진희가 아주 조금, 입술을 떼었다.눈을 떴다. 손가락 한 마디쯤 되는 거리에, 미래의 눈이 있었다.미래도 눈을 뜨고 있었다.어둠 속에서도 그 눈동자가 선명했다. 놀란 것도, 망설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를 보고 있었다. 지금 이 사람이 누구인지, 이 입술이 누구의 것인지, 똑똑히 새기려는 것처럼.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았다.진희가 다시 다가왔다.이번에는 미래의 아랫입술을 천천히 머금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귀한 것을 맛보듯, 아주 부드럽게. 레쓰비의 달콤 쌉싸름한 맛이 입술 끝에 남아 있었다.미래의 숨이 떨렸다.그가 다시 입술을 떼고, 눈을 맞췄다.이번엔 미래가 먼저였다.그녀가 입술을 열었다. 그리고 진희에게로 기울었다.진희의 혀가, 열린 입술 사이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서두르지 않았다. 문 앞에서 허락을 구하듯, 그녀의 혀끝을 아주 가볍게 스치고 물러났다.미래가 따라갔다.그녀의 혀가 그를 찾아왔다. 두 사람의 혀끝이 닿았다가, 미끄러지듯 얽혔다. 느리고, 깊고, 부드럽게.깊어졌다.진희의 손이 미래의 머리칼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긴 손가락이 부드러운 머리칼을 천천히 쓸어내리다가, 귓바퀴에 닿았다. 엄지가 귓불을 아주 느리게 어루만졌다.미래의 온몸에 전율이 번졌다.진희의 입술이 미래의 입술을 떠나, 감긴 눈꺼풀 위에 내려앉았다. 한쪽 눈, 그리고 다른 쪽 눈. 그리고 귀. 귓바퀴를 따라 아주 천천히, 뜨거운 숨과 함께.“하아…….”미래의 입술 사이로 숨이 새어 나왔다.그녀의 손도 그를 찾아 올라갔다. 그의 짧은 머리칼을 손끝으로 쓸어 넘기고, 단단한 귀를 가만히 매만졌다. 그가 자신에게 해주는 것을, 그대로 돌려주듯이.진희의 입술이 다시 그녀의 입술로 돌아왔다.두 사람은 서로의 머리칼을 쓰다듬고 귀를 어루만지며, 깊게, 아주 깊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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