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내를 다시 탐하기 시작했다: Chapter 101 - Chapter 110

211 Chapters

101화. 첫 번째 단추

집에 들어서자, 평소보다 일찍 돌아온 진원이 현관에서 가방을 뒤지고 있었다.“엄마, 오늘 친구네서 자고 와도 돼? 다들 슬립오버 한대.”미래는 떨리는 손을 감추며 덤덤하게 세면도구를 챙겨주었다. 진원이 11층 친구네로 내려가고 현관문이 닫히자, 집 안에 완전한 적막이 내려앉았다.정례도, 성웅도, 아이들도 없는 집.미래는 거실 한가운데 한참을 서 있었다.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따뜻한 물줄기가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다.물방울이 어깨를 타고 쇄골로, 다시 목덜미로 흘러내릴 때마다 기묘한 전율이 일었다. 조금 전 그의 입술이 머물렀던 자리였다. 귓바퀴, 감긴 눈꺼풀, 목덜미를 감싸 쥐던 손.입술에는 아직 그의 맛이 남아 있었다.한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손을 내리지 않던 사람. 목덜미를 쥔 손이 떨리고 있었는데도, 끝내 참던 사람.이제 미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그의 입술이, 그의 손길이, 그가 자신을 바라보던 그 눈빛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가슴 한복판에서부터 타오르기 시작한 갈증이, 이제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미래는 물을 잠갔다.머리도 제대로 말리지 못한 채, 셔츠 한 장과 겉옷을 걸쳤다. 거울 속의 여자를 보지 않으려 애쓰며, 현관을 나섰다.6월의 밤공기는 적당히 서늘했다. 그런데도 온몸이 뜨거웠다.엘리베이터에 올라 45층을 눌렀다. 숫자가 하나씩 올라갔다. 숫자가 바뀔 때마다 심장이 조여왔다.정전된 어둠 속에서 처음 그의 품에 쓰러졌던 엘리베이터. 망고를 보며 웃던 엘리베이터. 젖은 머리로 0.5초를 마주쳤던 엘리베이터.그 모든 엘리베이터가, 이 순간으로 오기 위한 것이었던 것만 같았다.45층.미래는 떨리는 손끝으로 초인종을 눌렀다.띵동.맑고 짧은 호출음이 고요한 복도를 흔들었다.잠시 후, 묵직한 도어록 해제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미래 씨?”진희의 눈동자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크게 흔들렸다.막 샤워를 마친 참이었다. 젖은 머리칼 끝에서 물방울이 맺혀 쇄골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가운 하나만 걸친 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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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복숭아

두 번째 단추가 풀렸다.진희는 서두르지 않았다. 단추 하나를 풀 때마다, 그는 미래의 눈을 보았다. 그리고 미래가 눈을 피하지 않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다음 단추로 손을 옮겼다.세 번째. 네 번째.셔츠 원피스의 앞섶이 천천히 벌어졌다.그 사이로, 하얀 레이스가 드러났다.진희의 손이 멈췄다.수영장에서 보았다고 생각했다. 물살을 가르던 어깨, 수영복 위로 드러나던 곡선. 빗속에서 젖은 셔츠 너머로, 헐렁한 옷자락 사이로, 이미 다 짐작하고 있다고 믿었다.아니었다.얇은 레이스 위로, 넘치듯 피어난 가슴이 숨을 쉴 때마다 부드럽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잘 익은 복숭아처럼, 탐스럽고 풍만했다.진희는 숨을 쉬는 법을 잊었다.수많은 사람의 몸을 보아온 의사였다. 그런데 지금, 그는 처음으로 누군가의 몸 앞에서 손끝이 떨렸다.마지막 단추가 풀렸다.셔츠 원피스가 어깨를 타고 스르륵 미끄러져, 미래의 무릎 위로 내려앉았다.진희가 손을 뻗어, 그녀의 등 뒤로 팔을 돌렸다. 가슴이 맞닿을 듯 가까워졌다. 그의 손끝이 후크를 찾았다.작은 소리와 함께, 레이스가 풀렸다.가려져 있던 복숭아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듯 부드럽게 출렁였다. 그 끝은 이미 부풀 대로 부풀어, 붉게 피어 있었다.미래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17년 동안, 이렇게 오래 누군가에게 바라봐진 적이 없었다. 이렇게 숨을 멈춘 채로, 이렇게 떨리는 눈으로.미래가 손을 뻗었다.진희의 가운 끈에 손끝이 닿았다. 매듭이 풀리고, 가운이 그의 어깨에서 흘러내렸다.이번엔 미래가 바라볼 차례였다.램프 불빛 아래, 그의 몸이 드러났다. 길고 매끄러운 선. 넓은 어깨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단단한 근육. 물살을 가르며 다듬어진 몸이었다.성웅의 몸이 떠올랐다. 철저한 관리로 다져진, 묵직하고 단단한 몸. 17년 동안 익숙했던, 늘 위에서 그녀를 덮어오던 몸.그런데 지금 눈앞의 이 몸은 달랐다.젊고 뜨거웠다. 그리고 그 몸이, 지금 그녀 앞에서 떨리고 있었다. 그녀를 기다리며.진희가 다가왔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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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같은 깊이로

미래는 그의 숨이 점점 가빠지는 걸 느꼈다.허리를 붙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고, 목울대가 크게 오르내렸다. 이제 곧 끝이 오겠구나. 미래는 그렇게 생각하며 리듬을 조금 늦췄다.그런데.끝이 오지 않았다.오히려 그녀 안에서, 그의 열기가 더 단단하게 차올랐다. 식기는커녕, 방금 전보다 더 뜨겁고 더 깊게.미래의 눈이 동그래졌다.진희가 그런 그녀를 올려다보며, 낮게 웃었다. 땀에 젖은 이마 아래로, 아직 한참 남았다는 듯한 눈빛이었다.그가 몸을 일으켰다.미래의 허리를 감싸 안고, 천천히 그녀를 침대 위에 엎드리게 했다. 부드럽게, 그러나 망설임 없이.그가 미래의 두 손을 잡아, 머리 위로 길게 뻗게 했다. 그리고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제 손가락을 하나씩 밀어 넣었다.깍지였다.그의 가슴이 그녀의 등에 빈틈없이 닿았다. 젖은 피부와 피부가 맞붙었다. 목덜미에 그의 뜨거운 숨이 쏟아졌다.미래는 숨을 삼켰다.깍지 낀 손. 언젠가 다른 밤에도, 이렇게 손가락이 얽힌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손가락 사이를 채운 손은, 전혀 다른 온도였다.진희가 뒤에서, 다시 그녀 안으로 들어왔다.“아……!”미래의 목소리가 크게 터졌다.이 자세는 모든 것이 더 깊었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그녀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닿았다. 등 뒤로 전해지는 그의 무게와, 깍지 낀 손에 실리는 힘과, 귓가에 쏟아지는 거친 숨이 한꺼번에 그녀를 덮쳤다.진희의 움직임이 점점 격해졌다.더 깊이. 더 빠르게.“미래 씨…….”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깍지 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미래도 그 손을 터질 듯 움켜쥐었다.“진희 씨…… 아…… 아……!”숨이 엉켰다. 땀에 젖은 몸이 미끄러지며 서로를 더 깊이 찾았다. 방 안에는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와 서로를 부르는 이름만 가득했다.미래의 온몸이 팽팽하게 당겨졌다.몸 안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가 차올랐다. 발끝에서 시작된 떨림이 허벅지를 타고, 허리를 타고, 가슴까지 번져 올라왔다. 참을 수가 없었다. 참고 싶지도 않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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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화. 후애

진희가 미래의 등 위로 포개어지듯 무너졌다.거두어낸 그의 마지막 열기가, 그녀의 허리 위로 뜨겁게 흘렀다.깍지는 풀리지 않았다.두 사람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거친 숨소리만 방 안을 채웠다. 그의 심장이 그녀의 등을 통해 쿵, 쿵 울렸다. 그녀의 심장도 같은 속도로 뛰고 있었다.진희가 그녀의 목덜미에 이마를 묻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그 자리에 입을 맞췄다.한참 뒤에야, 깍지가 풀렸다.진희가 협탁 위의 수건을 집어, 그녀의 허리를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서두르지 않는 손길이었다. 그리고 미래의 몸을 천천히 돌려, 자신의 품 안으로 쏙 끌어당겼다.미래의 작은 몸이 그의 품 안에 꼭 맞게 안겼다.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희는 그녀를 안은 채, 땀에 젖어 흐트러진 머리칼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그의 손끝이 닿을 때마다 미래는 눈을 감고, 그 감촉에 몸을 완전히 맡겼다. 맞닿은 가슴과 가슴 사이로, 아직 가라앉지 않은 두 심장이 서로를 두드렸다.진희는 품 안에서 색색거리는 그녀의 숨소리를 들으며, 조금 전까지의 시간을 되짚었다.섹스라는 행위 그 자체보다,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눈을 맞추던 그녀의 얼굴이 뇌리에 깊게 박혀 있었다.관능적인 몸 때문만이 아니었다. 풍만한 곡선과 매끄러운 피부, 그 황홀한 자태가 그의 욕망을 끝없이 자극했던 건 물론이었다. 하지만 진희를 진정으로 미치게 만든 건, 그 몸 위에 겹쳐진 그녀의 얼굴이었다.붉게 상기된 채, 솔직하게 신음을 내뱉던 그 얼굴. 섹시하면서도 사랑스러운 그 표정. 그 얼굴을 떠올리기만 해도, 깊은 사랑과 소유욕이 동시에 밀려왔다.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진희의 손이 그녀의 머리칼에서 내려와, 어깨를 지나, 가슴에 닿았다.아주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방금 전의 열기와는 전혀 다른 손길이었다. 무언가를 원해서가 아니라, 그저 아끼고 싶어서. 손바닥 전체로 그 온기를 천천히 쓸어내렸다.그리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댔다.혀끝이 귓바퀴를 따라 살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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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화. 암체어

욕실 문이 닫히고, 물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진희는 침실을 나와 거실로 걸어갔다. 창가의 램프 하나를 켜자, 은은한 주황빛이 거실을 부드럽게 채웠다.그는 거실 한쪽에 놓인 뱅앤올룹슨 앞에 섰다. 잠시 망설이다가,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낮고 느린 음악이 거실에 조용히 번져 나갔다.욕실의 물소리가 그쳤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미래가 나왔다. 젖은 머리칼을 대충 넘긴 채, 그가 건넨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한참 커서, 소매가 손등을 덮고 깃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려 있었다.진희는 그 모습에 잠깐 숨을 멈췄다.제 가운을 입은 그녀였다. 제 비누 향을 입은 그녀였다.미래가 음악 소리에 거실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를 발견하고, 수줍게 웃었다.진희가 다가갔다.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가뿐히 안아 들었다.“어…….”미래가 놀라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진희는 그녀를 안은 채 거실을 가로질러, 통창 앞에 놓인 암체어로 걸어갔다.그리고 그녀를 품에 안은 채, 그대로 앉았다.미래가 그의 무릎 위에, 그의 가슴에 등을 기대고 앉게 되었다. 커다란 가운에 폭 싸인 채로, 그의 품 안에 쏙.통창 너머로 밤의 양재천이 내려다보였다. 강을 따라 이어진 가로등 불빛이 까만 수면 위에서 흔들리고 있었다.음악이 낮게 흘렀다.진희의 한 손이 미래의 젖은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손가락이 머리칼 사이로 천천히 미끄러져 내려가고, 다시 올라오고. 그 느린 리듬에 맞춰, 미래의 숨도 천천히 가라앉았다.다른 한 손은 헐렁한 가운 깃 사이로 스며들었다.그녀의 가슴에 닿았다. 감싸 쥐었다가, 천천히 쓸어내렸다. 손바닥이 그 곡선을 따라 미끄러지고, 다시 올라와 머물렀다. 원하는 게 아니라, 확인하는 손길이었다. 이 사람이 정말 자신의 품 안에 있다는 걸.미래는 눈을 감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그가 그녀의 관자놀이에 입을 맞췄다. 귓가에, 뺨에, 목덜미에. 한 번씩, 아주 천천히.음악이 바뀌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바뀌었다.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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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늘 그랬듯이, 통보

106화 늘 그랬듯이, 통보"엄마?"서윤이 거실에 앉아 있었다.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미래는 애써 태연한 척 신발을 벗으며 물었다."어, 어… 서윤아. 오늘은 일찍 왔네? 엄마가 데리러 가려고 했는데...""응, 공부가 너무 안돼서. 그냥 일찍 자려고." 서윤이 가방을 챙기며 기지개를 켰다. "근데 엄마는 어디 갔다 왔어?"그 짧은 질문에, 미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어… 그냥, 친구 좀 만나고."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많이 피곤하지? 얼른 씻고 자."다행히 서윤은 더 캐묻지 않았다. 시험 스트레스로 지쳤는지,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자기 방으로 향했다."엄마, 나 내일 새벽 5시에 좀 깨워줘. 일찍 일어나서 마무리 좀 하게.""어, 그래……. 알겠어."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미래는 그 자리에 선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심장이 아직도 크게 뛰고 있었다. 방금 전 진희의 품에서 느꼈던 두근거림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친구 좀 만나고.'자신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뒤늦게 목에 걸렸다. 이렇게 쉽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거짓말이 나온다는 사실이 낯설었다.안방으로 들어온 미래는 알람을 맞췄다. 4시 30분, 4시 35분, 4시 40분. 한 번에 못 일어날까 봐, 5분 간격으로 몇 개를 더 맞췄다. 화면을 누르는 손끝이 아직도 옅게 떨리고 있었다.홈바에서 위스키를 꺼내 얼음 몇 개와 함께 잔에 따랐다. 텔레비전을 켰다. 금요일 밤 예능 프로그램이 시끌벅적하게 흘러나왔지만, 미래는 그 소리를 듣지 않았다.소파에 앉아 잔을 들고, 미래는 눈을 감았다.진희의 손끝이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던 감촉이 아직 생생했다. 그 커다란 손이 얼굴을 감싸던 온기도, 마지막 키스의 다정함도.'또 언제 만날 수 있나요.'그 말을 하던 진희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미래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마흔셋이나 먹고 이런 말 한마디에 마음이 요동칠 일인가 싶었다. 그런데 그게 싫지 않았다.문득 백미러로 봤던 진희의 모습이 떠올랐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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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좀 이상했어

새벽 4시 30분, 35분, 40분… 그리고 5시.알람이 울리자 미래는 서윤을 깨웠다. 서윤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책상 앞에 앉았고, 미래는 그 모습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침대로 돌아가 눈을 붙였다.다시 눈을 뜬 건 8시였다.서윤의 방문을 열어 보니, 서윤은 여전히 책상 앞이었다. 자세 하나 바뀌지 않은 것 같았다."이따 정례 이모 오시니까, 그때까지는 엄마랑 둘이 먹어야 해. 나가서 먹을까, 아니면 엄마가 차려줄까?""나가서 먹고 싶은데……." 서윤이 펜을 굴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시간이 없잖아. 오늘도 할 거 많은데.""그럼 엄마가 파니니 사다 줄까?"서윤의 얼굴이 그제야 좀 풀렸다."어, 좋아. 나 풍기 파니니.""알았어."미래는 세수도 하지 못한 채 겉옷만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근처 브런치 가게에서 풍기 파니니와 서윤이 좋아하는 베이글 몇 개, 커피 두 잔을 챙겨 다시 아파트로 향했다.로비로 들어서던 참이었다."어, 언니!"출근하려던 수연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아, 네……." 미래는 짐을 고쳐 들며 어색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어디 다녀오세요?""아, 그냥… 빵 좀 사러요."대화는 그게 다였다. 수연이 뭔가 더 말을 걸려는 듯했지만, 미래는 짧게 목례만 하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수연은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봤다.'언니, 어디 아픈가.'평소와 뭔가 달랐다. 정확히 뭐가 다른지는 짚어낼 수 없었지만, 그 느낌만은 분명했다.집에 돌아온 미래는 냉장고에서 키위와 블루베리, 수박을 꺼내 접시에 담고 요거트도 곁들여 식탁에 올렸다."많이 먹어. 파니니만 먹으면 부족하잖아."서윤은 포크로 블루베리 몇 알을 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이번 기말고사 끝나면 한국 고등학교 시험은 이게 진짜 마지막이네."미래는 잠깐 손을 멈췄다."그러네.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다.""9월이면 벌써 보딩스쿨이야." 서윤이 요거트를 뜨며 말했다. "그래서 이번 시험 진짜 잘 봐야 하는데.""뭘 그렇게까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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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제주도

"나는 반가웠는데, 언니는 날 피하듯이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타더라고. 암튼 그랬어."진희는 커피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애써 감췄다."그래요?" 최대한 무심한 척 대꾸했다. "좀 바쁘셨나 보죠.""그런가." 수연이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진희는 손목시계를 확인하는 척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형수, 저 진료실 들어갑니다."원장실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뛰고 있었다.진료실 문을 닫고 홀로 남자, 진희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감았다.어젯밤이 파노라마처럼 밀려왔다. 미래의 잦아드는 숨결, 손끝에 닿았던 매끄러운 온기, 마지막 순간 머뭇거리듯 나눴던 다정한 키스까지.'보고 싶다.'겨우 몇 시간 지났을 뿐인데, 벌써 가슴 한구석이 아릿할 만큼 그리운 게 우스울 지경이었다.진희는 망설임 없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녀를 향한 마음을 감출 이유가 없었다.[잘 잤어요? 오늘도 보고 싶은, 긴 하루가 시작되었네요.]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진희는 짧게 숨을 골랐다. 첫 환자가 들어오기까지 남은 몇 분이, 유난히 달콤하게 느껴지는 아침이었다.미래는 거실 바닥에 캐리어를 펼쳐놓고 정신없이 짐을 싸고 있었다. 성웅 여벌 옷들과 골프채, 골프웨어, 진원이 숙제인 수학·영어 문제집까지 챙기느라 손길이 분주했다.그때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 액정을 확인한 미래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번졌다.[잘 잤어요? 오늘도 보고 싶은, 긴 하루가 시작되었네요.]미래는 짐을 싸던 손을 멈추고 답장을 적었다.[제가 그렇게 보고 싶어요?]답장은 곧바로 도착했다.[그럼요. 항상 그랬어요.][오늘은 뭐 하세요?]미래는 잠시 망설이다 짧게 답장을 보냈다.[저 오늘 제주도에 가게 됐어요.]전송 버튼을 누른 미래는 다시 캐리어로 돌아갔다.한편, 그 문장을 읽은 진희의 손끝이 멈췄다. 그는 짧은 문장을 두 번, 세 번 곱씹듯 읽었다.'제주도.'머리로는 이해했다. 남편과 함께 떠나는 가족 여행이라는 걸. 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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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어차피 강 건넌 거잖아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화면에 뜬 '제시카'라는 이름에, 미래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미래야"전화를 받자마자 제시카의 시원시원한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나 지금 완전 아쉬워 죽겠어. 너 못 보고 가서. 우리 명동도 못 갔잖아, 흑흑.""어, 너 지금 뉴욕이야?""도쿄에서 바로 뉴욕 왔어. 야, 나 서울 사람 다 됐나 봐. 몸이 완전 서울 시간이야."미래는 픽 웃으며 창밖을 내다봤다.잠시 사이를 두고, 제시카가 낮고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참, 너 유진희랑은 어때? 박성웅은 어떻고?"미래의 손끝이 잘게 떨렸다. 곧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수아야.""어?""나 할 말이 너무너무 많아."수화기 너머로 짧은 정적이 흘렀다. 평소와 다른 기류를 감지한 듯, 제시카의 목소리가 확 달라졌다."야…… 너 혹시 유진희랑 잤어?"미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작게 읊조렸다."수아야, 그렇게 됐어.""꺄아아아악!!!"귀가 먹먹할 정도의 비명에 미래는 휴대폰을 귀에서 살짝 떼어내야 했다. 한참을 소리 지르던 제시카가 겨우 숨을 고르고 물었다."그래서…… 좋았던 거지?"미래는 대답 대신 나직이 웃었다. 그 웃음은 말보다 훨씬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응, 좋았어……. 나 이래도 되는 거야? 안 되는 거지……?"제시카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미래는 그 침묵 속에서 친구가 무슨 말을 고르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내 제시카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야. 박성웅, 솔직히 결혼하고 몇 년도 안 돼서 변했잖아. 나 그 얘기 듣고 박성웅 진짜 맘에 안 들었어. 자기 맘대로 하고. 네가 박성웅 침대에만 있는 사람은 아니잖아."미래는 왈칵 차오르는 감정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일단, 유진희랑 좋았다면 나도 좋아." 제시카가 부드럽게 덧붙였다. "미래야, 어차피 강 건넌 거잖아.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하자."미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고마워, 수아야.""고맙긴." 제시카의 목소리가 다시 장난스럽게 풀렸다. "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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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완전 부부 같았어요

토요일 진료는 4시에 끝났다. 수연은 곧장 짐을 챙겨 여드름·아토피 학회가 열리는 컨벤션홀로 향했다.로비에 들어서자마자,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어, 준혁이 아니야?""수연 선배!" 준혁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그럼, 나야 잘 지내지. 너는 여전히 학회 열심히 다니네."두 사람은 로비 한쪽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병원 얘기, 요즘 유행하는 시술 얘기가 오가다가, 준혁이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참, 저 저번 주에 춘천에서 진희 잠깐 마주쳤어요. 애인이랑 왔더라고요."수연의 눈이 커졌다."진짜? 언제?""평일 낮이었어요. 저 춘천에서 개업했잖아요. 병원 동네 나이키 매장에서 딱 마주쳤지 뭐예요. 저도 되게 놀랐어요.""헐, 대박." 수연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유 원장이 드디어 여친 있다고 인정했거든! 근데 실물은 나도 아직 못 봤어. 그 사람인가?""아마 맞을 거예요."수연의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궁금증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혹시… 귀엽고 섹시해?"준혁이가 잠깐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어, 그런 것 같아요. 엄청 예쁘더라고요.""와……." 수연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역시. 우리 유 원장, 한다면 하네."'대체 어디서 그런 사람을 만난 거야.'수연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혼자 신기해했다. 진희가 늘 입버릇처럼 말하던 이상형, 귀엽고 섹시한 사람. 그 조건에 딱 맞는 사람을 정말로 만났다는 게 왠지 흐뭇하기까지 했다."근데 누군지는 진짜 안 알려주더라고, 나한테는." 수연이 입을 삐죽였다."근데 되게 잘 어울리더라고요." 준혁이가 웃으며 덧붙였다. "츄리닝 입고 딱 붙어 있는데, 저 처음엔 진짜 결혼한 줄 알았어요. 둘이 너무 잘 어울려서 완전 부부 같았거든요.""진짜? 그 정도야? 우리 유진희랑 잘 어울린다면 진짜 이쁘다는건데?""네, 완전요.""키는 어느정도야? 진짜 귀여운데 섹시한 여자가 어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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