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아내를 다시 탐하기 시작했다: Kapitel 61 – Kapitel 70

211 Kapitel

61. 우린, 그것만 맞아

서윤이 준비물을 두고 간 걸 알고, 미래는 서둘러 학교 경비실에 갖다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지하 마트에 들렀다.목이 칼칼하다는 정례 대신 직접 끓일 아구매운탕 거리를 담고, 진원이가 먹고 싶다던 LA갈비 코너로 갔다. 마침 프라임 LA갈비가 할인 중이라 평소보다 넉넉하게 카트에 담았다. 유제품 코너에서는 늘 먹던 보르디에 버터와 요거트를 챙겼고, 견과류 코너에서는 갓 볶은 땅콩과 아몬드, 호두, 피스타치오를 종류별로 담았다.신혼 때는 미래가 직접 장을 보고 요리를 도맡았다. 성웅이 좋아하는 메뉴로 정성껏 저녁을 차려놓고, 그가 퇴근할 시간이면 늘 흐트러짐 없는 차림으로 현관에서 그를 맞았다.그 습관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다만 그 모든 정성을 받아주던 사람의 마음이 달라졌을 뿐.어젯밤 성웅과 나눈 몸의 온도가 아직 어딘가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몸이 아무리 달아올라도 마음 편히 기대어 쉴 수 없는 남자가 바로 남편이라는 사실이, 미래를 매 순간 지독하게 외롭게 만들었다.오후가 되어서야 겨우 한숨 돌렸다.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텍사스가 지금 몇 시인지 손가락을 꼽으며 계산해 봤다. 그곳은 새벽이었다.미래는 고심 끝에 다정한 문자를 보냈다.[성웅 씨, 텍사스 새벽이겠네요. 푹 자요.]얼마 지나지 않아 답이 왔다.[나 지금 새벽까지 회의 중. 오늘은 안 될 것 같아.]미래는 그 문자를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이게 뭔가, 싶었다.그저 잘 자라고 인사를 건넨 것뿐이었다. 여느 부부들처럼 다정하게 한마디 나누고 싶었던 것뿐인데, 박성웅에게 그 문자는 또 다른 신호로 읽힌 모양이었다.어젯밤에는 수화기 너머로 그렇게 호흡을 섞어놓고, 오늘은 또 이렇게 황당하게 어긋났다.17년을 함께 살았다. 그런데도 이 남자는 여전히 어려웠다. 그리고 동시에, 여전히 세상에서 몸이 제일 잘 맞는 남자였다.그 명백한 불균형이 서글펐다.늦은 오후, 조용하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제시카였다.“미래야!”“응. 왜 그렇게 신났어?”“줄기세포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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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세 번째, 귀 뒤

“원장님, 다음 환자분 베드로 안내해 드렸어요.”간호사의 차분한 음성이 진료실 안을 울렸다. 진희는 차트 모니터에 떠 있는 세 글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안미래]그 이름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차갑게 가라앉아 있던 진료실의 공기가 순식간에 희박해지는 기분이었다.진희는 자기도 모르게 가운 주머니 속의 손을 움켜쥐었다. 손끝이 찌릿할 만큼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지금까지 그는 이성적이고 차분한 의사였다. 환자를 마주하기 전에 긴장해 본 적도, 사적인 감정으로 평정을 잃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저 커튼 너머에 누워 있는 지금, 가슴이 이질적인 온도로 거세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쿵. 쿵. 쿵.고요한 진료실 안에 오직 제 심장 소리만 커다란 시계추처럼 울렸다. 호흡을 가다듬으려 할수록, 반항하듯 더 가파르게 뛰었다.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유진희.스스로를 다잡으며 흐르는 찬물에 손을 씻었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눈빛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그날 밤 꿈속에서 본 얼굴이, 여전히 머릿속을 헤집어 놓고 있었다. 시린 달빛이 통창 너머로 쏟아지던 밤, 침대 끝에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던 꿈속의 여인.그 꿈의 잔상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오늘 그녀가 이곳에 와 있었다.진희는 마른침을 삼키며 라텍스 장갑을 끼려다 살며시 내려 놓았다. 터질 것 같은 가슴을 하얀 가운 속에 깊이 감춘 채, 그는 시술실의 커튼을 천천히 젖혔다.아늑한 미등만 켜진 시술실 안이었다.미래는 하얀 시술 베드 위에 조용히 누워 있었다.“안미래 님, 오늘은 줄기세포 엑소좀 시술이세요.”“네.”유진희가 머리맡으로 다가와 목 뒤에 작은 베개를 조심스럽게 받쳤다. 정중하고도 다정한 손길이었다.미래는 눈을 감았다.눈꺼풀 위로 조명이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위로, 수연의 목소리가 불쑥 끼어들었다.학생 때부터 여자가 끊긴 적이 없었는데.이 다정한 손길도, 이 조심스러운 목소리도. 원래 누구에게나 이런 걸까. 이 시술 베드에 누웠던 수많은 여자들에게도,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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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다 너무 예쁘……

숨 막히게 얽혀 있던 시선 속에서, 먼저 눈길을 거둔 건 미래였다.뺨에 은근한 열기를 띤 채 미래가 고개를 살짝 돌리자, 진희는 그제야 멈추었던 숨을 조용히 삼키며 시술 기구를 손에 쥐었다.진희의 손길은 평소보다 훨씬 조심스럽고 정성스러웠다. 손끝 하나하나에는 깨지기 쉬운 귀한 것을 어루만지는 듯한 온도가 실려 있었다.“조금 따끔하실 수 있어요.”아늑한 시술실 안으로 진희의 낮은 목소리가 잔잔하게 퍼졌다.“불편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세요.”아주 일상적인 의사의 말일 뿐이었다. 하지만 미래의 귀에는 그 음성이 묘하게 낮고 다정하게 감겨와, 시술을 받는 내내 가슴 한구석이 자꾸만 덜컥거렸다.시술이 끝나고 미래가 먼저 대기실로 나간 뒤, 진희는 진료실에 홀로 남았다.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늘 완벽하게 유지하던 진희의 얼굴이 단숨에 무너졌다. 그는 라텍스 장갑을 거칠게 벗어 쓰레기통에 던지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미래의 살결을 만지던 손끝이 여전히 화끈거려,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세면대 거울 속 자신의 눈빛은 완전히 통제를 잃고 있었다. 고작 환자 한 명 앞에서 이토록 평정심을 잃다니. 스스로에 대한 당혹감과 그날 밤 꿈의 잔상이 겹쳐 오며, 진희는 아랫입술을 짓씹었다.하지만 이성은 감정을 이기지 못했다.그대로 돌아가 버렸을 미래를 생각하자, 가슴 한구석이 이상할 정도로 서늘해졌다.벌써 가 버렸을까 봐.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초조함이 진희를 덮쳤다. 결국 그는 제 안의 브레이크를 놓아버린 채 진료실 문을 열고 로비로 향했다. 다급한 걸음 사이로 가운 자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진희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한 곳만을 찾았다.저 멀리 소파 근처, 제시카와 함께 서 있는 미래의 뒷모습이 눈에 걸려들었다.아직 가지 않았다는 안도감. 그리고 그녀를 다시 눈에 담자마자 또다시 멋대로 뛰기 시작하는 심장.진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두 사람에게로 걸음을 옮겼다.대표원장에게 색소 치료를 마치고 나와 미래와 합류했던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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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손댈 곳이 없습니다.

예쁘다는 단어가 입술 끝까지 튀어나오려는 것을, 진희는 간신히 붙잡아 삼켰다.“……다 너무 좋으셔서, 손댈 곳이 전혀 없습니다.”제시카라는 제3자 앞에서, 그것도 유부녀인 환자를 향해 이토록 노골적인 진심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워야 정상이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브레이크가 풀려버린 자신의 모습이 이제는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제시카가 미래의 어깨를 으쓱하며 깔깔 웃었다.“어머머, 미래야, 너 좋겠다? 유 원장님이 넌 얼굴에 고칠 게 하나도 없대잖니.”미래는 터질 것처럼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두근거림이 가라앉지 않았다.하지만 진희는 달랐다. 제시카의 짓궂은 농담도, 주변의 시선도 이제는 아무런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미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진희는 그 젖은 눈동자를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했다.미소조차 짓지 않았다. 그저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깊은 시선으로, 오직 미래의 눈동자만을 응시할 뿐이었다. 마치 이 세상에 단둘만 존재하는 것처럼. 그 시선 안에 미래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붙잡아 두겠다는 듯한 노골적인 갈망이었다.그 숨 막히는 침묵을 가장 먼저 알아챈 건, 역시나 눈치 빠른 제시카였다.늘 이성적이고 차갑던 유진희도, 겁 많고 조심스럽던 안미래도, 이제는 서로의 마음을 눈빛으로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받아내고 있었다.어라, 이것 봐라……? 이젠 대놓고 눈으로 연애를 하시겠다?제시카의 레이더에 두 사람의 아슬아슬한 비밀이 완전히 걸려들었지만, 진희는 여전히 미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숨겨야 한다는 브레이크가 풀려버린 남자의 대담한 시선이, 진료실의 공기를 아슬아슬하게 물들이고 있었다.며칠 뒤, 피트니스 센터였다.피티 선생님이 운동 자세를 꼼꼼히 봐주며 감탄했다.“안미래 님은 하체 근육이 갈수록 더 탄탄해지시는 것 같아요. 어떻게 저보다 하체가 더 좋으세요? 스쿼트 자세도 너무 완벽하시고요.”미래가 뺨에 맺힌 땀을 훔치며 수줍게 웃었다.“저번에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단백질 파우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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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사모님

응급실 대기실은 시끄러웠다.사람들이 계속 드나드는데도 정례를 부르는 소리는 없었다. 세 시간째였다. 의자에 기대 손을 받친 정례는 점점 말이 줄어들었다. 지혈하려 덧댄 거즈가 금세 다시 붉게 배어들었다.초조해진 미래는 휴대폰을 꺼냈다. 아는 성형외과 몇 군데에 전화를 돌렸지만, 지금 당장 봉합은 어렵다는 대답뿐이었다. 마지막으로 서윤이 친구 지민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지민 어머니, 우리 이모가 손을 많이 다쳤는데 세브란스에서 너무 오래 기다리고 있어서요. 혹시 지민 아버님 병원에서 봉합이 될까요?”“아이고. 우리 지민 아빠 지금 중국 출장 가서 내일까지 병원에 없어요. 월드베스트스킨 거기 피부과 전문의 많잖아요. 거기 전화해 봐요.”전화를 끊고서야 미래의 머릿속에 섬광처럼 유진희가 떠올랐다.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월드베스트스킨에 전화를 걸었다. 직원이 잠깐 확인하더니, 지금 바로 오라고 했다.미래는 정례를 다시 일으켜 부축했다. 차로 옮기는 동안, 피를 많이 흘린 탓인지 정례의 걸음이 눈에 띄게 느려져 있었다.진료 시간이 끝난 월드베스트스킨의 내부는 고요했다.하지만 유진희는 하얀 가운을 입은 채 진료실 안을 끝없이 서성이고 있었다. 조금 전 데스크에서 전해 들은 말 때문이었다.안미래 님 전화인데요, 손을 많이 다쳐서 지금 응급실이래요. 봉합 가능하시냐고.미래 씨가 다친 건가. 얼마나 깊게 찢어졌길래 응급실까지.손이라는 단어에 꽂힌 진희의 머릿속은 이미 최악의 상황들로 뒤엉켜 있었다. 평소의 냉철함은 온데간데없었다. 시계를 볼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렸고, 1분 1초가 끝없이 늘어지는 것만 같았다. 입술이 바짝 마른 채, 병원 입구만 뚫어지게 바라보던 참이었다.마침내 문이 열리고 미래가 들어섰다.진희는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미래의 손은 멀쩡했다. 그녀가 부축하고 있는 건 나이 든 여인이었다.미래가 아니라는 안도감. 그리고 피로 물든 거즈를 보는 순간 차오르는 의사로서의 본능이, 진희의 눈빛을 빠르게 바꾸어 놓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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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이 목소리였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미래가 눈을 떠 부엌으로 나와 보니, 정례가 불편한 손으로 갈비찜과 딸기잼, 딸기청을 다 만들어놓은 뒤였다.“이모, 나랑 같이 해야지. 언제 했어요.”“어제 병원 갔다 와서 일찍 잤더니, 너무 일찍 눈이 떠져서 다 해놨지.”“손 조심해야 하는데 왜 해요.”“일거리 있으면 내가 못 쉬어. 쉬려고 다 한 거야.”정례가 달콤한 냄새가 진동하는 식탁 위의 투명한 통들을 정리하며 조심스럽게 말했다.“이 갈비찜이랑 딸기잼, 딸기청, 그리고 봄에 담근 생강청 좀, 어제 유진희 원장님한테 드려도 될까요? 재료비는 내가 낼게요.”정례는 늘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빚지지 않으려 계산이 정확했다.“됐어, 이모. 이모가 재료비 얘기할 때마다 내가 속상해.”“내가 미안해서 그렇지.”“이모, 그런 걱정 하지 말고 다치지나 마요. 나 어제 너무 놀랐잖아.”미래는 정례가 정성스레 싸놓은 딸기잼과 딸기청, 생강청 병, 그리고 아직 온기가 남은 갈비찜 보온통을 가방에 챙겨 들고 병원으로 향했다.하지만 데스크에 도착하자 직원이 난감한 얼굴로 말했다.“원장님 오늘 휴일이세요.”“아.”미래가 손에 든 무거운 가방을 내려다보았다.“갈비찜 때문에 어떡하지…….”“언니?”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출근하던 김수연이었다.“어머, 언니가 여기 웬일이에요?”미래가 어젯밤 일을 짧게 설명하자, 수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어머, 이모님 괜찮으세요? 삼촌이 꿰매드렸구나. 근데 삼촌 오늘 휴진이라 집에 있어요.”수연이 혀를 끌끌 찼다.“아침에 전화했더니 목소리가 완전 다 죽어가더라고요. 몸살 났다고, 나 죽어, 나 죽어 하면서. 몸살 아주 제대로 걸렸나 봐요.”수연이 미래의 가방을 흘깃 보더니 눈을 반짝였다.“잘됐다. 언니, 이거 삼촌 갖다줘요. 아플 때 이런 거 받으면 엄청 좋아할걸요? 혼자 살아서 아파도 챙겨주는 사람도 없는데.”수연이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톡톡 눌렀다.“번호 보내드릴게요. 집도 우리 동 바로 앞이에요. A동 45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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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가지 말아요

“원장님!”미래는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툭 떨어뜨리며 본능적으로 그를 받아 안았다.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미래는 두 발에 힘을 주고 버텼다. 한쪽 팔로 그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고, 다른 손으로 그의 팔을 제 어깨에 둘렀다.“원장님, 정신 차리세요. 조금만, 조금만 걸어요.”진희가 겨우 눈을 뜨고 발을 떼었다. 반쯤 의식이 흐려진 채로, 온몸의 무게를 미래의 어깨에 기댄 채였다.그가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뜨거운 숨이 미래의 목덜미에 닿았다. 셔츠 너머로 전해지는 체온이 데일 듯이 뜨거웠다.침실까지의 거리가 평소보다 몇 배는 멀게 느껴졌다. 겨우 침대에 그를 눕혔다.미래는 떨리는 손을 뻗어 그의 이마에 가만히 대보았다.데일 듯이 뜨거웠다.“원장님. 들리세요?”대답은 없었다. 고열에 짓눌린 거친 숨소리만 방 안을 채웠다.미래는 잠깐 그 자리에 서서 방 안을 둘러보았다. 꾸민 듯 안 꾸민 듯, 자기 취향이 선명한 사람의 공간이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공간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비 오던 그날, 저 현관문 너머의 작은 로비 소파에 앉아 그를 기다렸었다. 그때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지금은 그 문 안쪽에 서 있었다.처음 들어온 집인데도, 이미 와본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기 훨씬 전부터, 어딘가 다른 곳에서 비슷한 것들을 좋아하며 닮은 결로 살아온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그토록 짧은 시간 안에, 이 사람 앞이 편해졌던 걸까.일단 물이 필요했다.부엌으로 가서 대접과 수건을 찾았다. 낯선 집인데도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대접에 찬물을 가득 받고, 깨끗한 수건을 챙겨 침실로 돌아왔다.그때였다.창밖이 눈에 띄게 어두워지더니, 하늘이 뚫린 듯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거센 폭우가 한낮의 해를 삼켰고, 방 안은 순식간에 밤처럼 캄캄해졌다.미래는 거실의 키 큰 스탠드를 켜고, 침대 곁의 램프를 하나 켰다. 은은한 주황빛이 푸르스름한 어둠을 부드럽게 밝혔다. 밖은 세찬 빗소리로 가득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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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까다로운 환자

미래는 그 손을 빼내지 못한 채,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속삭였다.“원장님, 혹시 무슨 바이러스 같은 거에 감염돼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아무래도 저랑 같이 큰 병원에 가보시는 게…….”손목을 감싼 그의 손끝이 터무니없이 뜨거워서, 마음이 더 조급해진 탓이었다.그런 미래를 올려다보던 진희의 입술 끝에 나지막한 웃음이 걸렸다.“감기도 바이러스인걸요.”진희는 낮게 잠긴 목소리로 속삭이며 미래의 눈을 바라보았다. 열기로 가득 찬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천천히 훑어 내렸다.매일 꿈에서나 그리던 여자를…… 내 집, 내 방에서 이렇게 마음껏 봐도 되는 걸까.열병 속에서도, 진희는 눈앞의 그녀가 꿈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했다. 이 여자가 사랑스러워 미칠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이 가녀린 몸을 품에 안고 싶었고, 빗소리와 램프 불빛 아래 단둘이 갇힌 이 순간이 영원히 멈추기를 바랐다.반면, 미래는 가슴이 아려왔다.병원에서 누구보다 듬직하고 완벽하던 남자가, 제 앞에서 이렇게 무너져 고작 “가지 말아요”라며 붙잡다니.이건 그저 몸이 아파서 부린 투정일까. 아니면…… 감히 짐작해서는 안 되는,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이유일까.머릿속은 죄책감으로 뒤엉켰지만, 혼자 앓고 있는 그를 두고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런데…… 내 심장은 왜 이렇게 뛰는 거야.주황빛 조명 아래,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진득하게 얽혀들었다.띠리릭, 띠리릭, 삐빅―.도어록 비밀번호가 눌리는 기계음이 고요한 집 안에 날카롭게 울렸다. 뒤이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익숙한 목소리가 거실을 타고 흘러들었다.“삼촌~! 안에 있어?”김수연이었다.미래의 온몸의 피가 순간 얼어붙었다. 들켰다는 공포가 덮쳐와, 미래는 잡힌 손목을 빼내려 허둥댔다.하지만 진희는 달랐다.발소리가 안방 쪽으로 가까워지는 그 아슬아슬한 순간에도, 그는 손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허둥대는 미래의 손목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두 사람의 손을 그대로 이불 속으로 밀어 넣었다.균형을 잃은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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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열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언니, 이제 삼촌 푹 자게 두고 우리도 나가요. 비가 더 많이 오네.”정리를 마친 수연이 미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가방을 챙겨 들었다. 미래는 삐걱거리는 몸을 일으켰다. 현관으로 향하는 순간까지도, 등 뒤로 꽂히는 진희의 시선이 척추를 타고 뜨겁게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다.현관문이 닫히고 나서야, 그 열병 같은 공간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띵―.엘리베이터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방이 거울로 둘러싸인 공간 속, 침묵을 먼저 깬 건 수연이었다. 수연이 미래의 손을 따뜻하게 맞잡았다.“언니, 오늘 진짜 고마웠어요. 문 열자마자 쓰러지는 사람 받아내느라 얼마나 놀랐어요. 우리 삼촌 다 나으면, 조만간 우리 집에서 와인 한잔해요. 우리 진수 씨한테 좋은 빈티지로 골라달라고 할게요.”수연의 해맑은 목소리가 거울 벽면에 부딪혀 잘게 부서졌다.“……아니에요, 수연 원장님. 당연한 일을 한 걸요.”미래는 애써 미소를 지었지만,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은 어딘지 수척해 보였다. 수연이 다정할수록 가슴을 찌르는 죄책감은 더 날카로워졌다.와인이라니.수연 앞에서, 진희를 마주하고도 아무렇지 않게 잔을 부딪칠 수 있을까.엘리베이터의 숫자가 바뀔 때마다 미래의 마음은 쿵쿵 내려앉았다. 빗소리가 차단된 사각의 공간 안에서, 미래는 손목에 남아 있는 그의 체온을 남몰래 곱씹었다.폭우를 뚫고 집에 돌아오자, 거실을 서성이던 정례가 미래를 반겼다.“사모님, 왜 이렇게 늦었어요? 원장님은 만나 뵈었어요?”미래는 젖은 우산을 털며, 숨을 고르고 덤덤하게 말했다.“원장님이 아파서 집에 계시더라고요. 전해드리고 오려는데 제 앞에서 픽 쓰러지셔서…… 지금까지 간호하다 왔어요. 아래층 수연 원장님이 와서 수액 놓는 거 보고 같이 나왔어요.”“어머, 세상에! 유 원장님이 쓰러지셨다고?”정례가 깜짝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이내 얼굴에 깊은 그늘이 드리웠다.“아이고, 이를 어째…… 다 나 때문이야. 내가 어제 늦게까지 붙잡고 있어서 원장님이 골병이 난 게 분명해. 의사 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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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보고 싶었어요

며칠 전 정례가 수술 부위 소독을 하러 병원에 다녀와서 말했다. 유 원장님이 갈비찜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고, 깍듯이 감사 인사를 하더라고. 다행히 그는 완전히 회복한 모양이었다.그 문자에는 끝내 답하지 못했다. 수연의 해맑은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미래는 그를 필사적으로 피해 다녔다.그렇게 일주일이 흐른 아침이었다.5월 중순의 푸른 하늘과 눈부신 햇살이 온 세상에 내려앉은, 유난히 청명한 날이었다. 미래는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휴대폰도 집에 두고 양재천을 따라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수면 위로 부서지는 햇살을 받으며 숨을 고르던 그때, 저 멀리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처음엔 스쳐 가는 행인인 줄 알았다. 하지만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꼿꼿한 걸음걸이와 듬직한 어깨선이 익숙하게 다가왔다.유진희였다.둘 다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거리를 좁혀갔다. 마침내 마주쳤을 때, 누구도 먼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길게 얽혀드는 시선. 말로 옮기면 위험해지는 마음을, 눈으로만 건네는 것 같았다.미래는 그 시선 앞에서 문득 가슴 한구석이 기묘해졌다.며칠 전 성웅에게서 짧은 문자가 왔었다. 일정이 길어져서 2주 더 있어야겠다고. 미래는 그 문자를 보고도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 남자와는 이렇게 오래, 깊게 눈을 마주쳐본 기억이 까마득했다. 관계를 시작할 때의 아주 잠깐을 제외하면, 성웅의 시선은 늘 다른 곳을 향해 있었으니까.그래서 지금, 자신만을 온전히 담아내는 이 눈빛이 유난히 특별했다.“몸은 좀 어떠세요?”결국 미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평소의 덤덤한 미소를 지으며.“이모가 원장님 다 회복하셨다던데, 정말 싹 나으셨나 봐요. 그때 감기 몸살 맞으셨던 거죠? 걱정 많이 했어요.”말을 뱉고 나서야 아차 싶었다. 의사 앞에서 감기 몸살이 맞느냐니. 하지만 진희는 그 서툰 연기와 순진한 다정함이 귀여워 죽겠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비켜요! 자전거 지나갑니다!”그 순간, 속도를 줄이지 않은 자전거 한 대가 두 사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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