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표님, 계약 아내가 떠났습니다!: Chapter 11 - Chapter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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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재회

데미안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그의 시선이 시엔나의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를 훑어내렸다. 긴 머리를 정갈하게 묶은 그녀의 얼굴에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더하는 옅은 화장이 얹혀 있었고, 허리를 곧게 편 자태에서는 당당한 자신감이 흘러넘치고 있었다."대표님?"길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멈춰 선 상사를 향해 비서가 어색하게 불렀다.데미안은 비서를 완전히 무시했다. 뒤따르던 수십 명의 임원진의 의아한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데미안은 발걸음을 돌려 시엔나가 서 있는 부스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시엔나는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데미안이 진열대 바로 앞에 다다르자, 시엔나는 치마 앞에서 손을 꽉 쥐었다가 이내 고개를 들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비즈니스용 미소를 지어 보였다."안녕하십니까, 블랙웰 고객님. 피부 관리에 필요한 제품이나 혹시 동료분을 위한 선물을 찾으시나요?"마치 일반 고객을 대하듯 지극히 프로페셔널한 톤으로 시엔나가 인사를 건넸다.데미안의 가슴속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낯선 감정의 파도—경악과 분노, 그리고 지금 시엔나가 하는 행동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짙은 거부감이 섞인 감정이 밀려들며 그의 턱관절이 경련하듯 굳어졌다."이게 무슨 짓이지, 시엔나?"데미안이 억누른 목소리로 물었다. 낮고 깊은 음성에 추궁하는 듯한 압박감이 짙게 실려 있었다.시엔나는 눈동자 하나 떨지 않은 채 완벽한 미소를 유지했다."근무 중입니다, 고객님. 이 제품은 저희 브랜드의 신상 스킨케어—""지금 당장 나와 같이 가."데미안이 말을 단칼에 잘라버렸다. 시엔나를 쇼핑몰의 인파 속에서 끌고 나가기 위해 그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향해 뻗어졌다.시엔나는 본능적으로 한 걸음 물러섰고, 데미안의 손길을 피하기 위해 손을 뒤로 숨기기까지 했다."죄송합니다, 블랙웰 고객님."시엔나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지만 더없이 단호했다."지금은 제 근무 시간입니다. 저희 제품을 구매할 의향이 없으시다면, 제 영업 공간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협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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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일렁이는 초조함

성큼성큼 내딛는 데미안의 긴 걸음이 임원 전용 복도를 가로질러 집무실로 향했다.그는 앞을 막아선 거대한 목재 문을 거칠게 밀어젖힌 뒤, 온 공간에 울려 퍼질 정도로 쿵 소리를 내며 문을 닫아걸었다.데미안은 입고 있던 검은색 재킷을 벗어 소파 위로 던져버렸다. 그의 거친 손길이 갑자기 목을 죄어오는 듯 답답하게 느껴지는 넥타이를 풀어 헤쳤다.집무실을 가로질러 걸어간 그는 수도의 마천루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통유리창 앞에 돌처럼 서서 멈춰 섰다.그의 시선은 저 아래 도로의 복잡한 풍경을 향해 있었지만, 머릿속은 온통 아까 뷰티 부스에서 보았던 그 여자의 잔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 미소.데미안은 턱관절이 경련할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언론의 카메라 앞에서 그의 아내로서 옆을 지켰던 1년 동안, 시엔나는 늘 경직되고 순종적이며 자제심으로 가득 찬 비즈니스용 미소만을 지어 보였었다. 자신의 위치와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여자의 미소.하지만 아까 쇼핑몰을 지나치는 방문객들에게 보여준 시엔나의 미소는… 너무나 자유롭게 피어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올라간 입꼬리와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유로운 반짝임은, 같은 지붕 아래에서 365일을 함께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습이었다."길거리에 서서 물건이나 팔고 있으면서… 어떻게 그런 미소를 지을 수가 있지?"적막한 집무실 안에서 데미안의 낮고 차가운 중얼거림이 울렸다.유리 탁자 가장자리를 쥔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며 마디가 하얗게 질려갔다.용납할 수 없는 거부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왔다. 시엔나는 '블랙웰'이라는 거대한 울타리 없이도, 디자이너가 만든 화려한 드레스 없이도, 그리고 자신의 존재가 곁에 없이도 훨씬 더 행복해 보였다.그 사실이 데미안의 오만한 자존심 가장 깊숙한 곳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꿰뚫었다.그가 분노에 찬 시선으로 멍하니 서 있을 때, 규칙적인 문 두드림 소리가 데미안의 어지러운 상상을 깨뜨렸다.데미안은 돌아보지 않았다.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프로젝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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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인정하고 싶지 않은 진실

집무실 안의 공기가 점점 더 팽팽하게 조여들었다.시몬 블랙웰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아들을 노려보았다. 중년 남성의 얼굴은 너무나 단단하고 차가웠으며, 굳게 다문 턱선과 날카로운 눈빛에서는 짙은 불쾌함의 아우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하지만 그 위압적인 표정 뒤에 숨겨진 시몬의 진심은, 결코 시엔나를 미워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굳은 엄격함은 그저 수십 년간 블랙웰 그룹을 이끌어오며 몸에 밴 자연스러운 본성에 불과했다."왜 말이 없느냐, 데미안?"시몬이 다시 물었다. 그의 낮고 묵직한 음성이 집무실 벽 사이로 정적을 깨며 울렸다."시엔나가 정말로 네 집을 떠난 것이 맞느냐고 물었다."데미안이 나지막하게 코웃음을 쳤다. 그는 팔짱을 낀 채, 다시 감정을 싹 지워낸 차가운 표정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네."데미안이 짧고 건조하게 답했다."이번 주를 끝으로 저희 계약 기간 1년이 만료되었습니다. 시엔나는 초기 합의 사항에 따라 본래 살던 집으로 돌아갔을 뿐입니다."시몬은 눈을 가늘게 뜨며 아들의 얼굴에 떠오른 가짜 평정심을 살폈다."그래서, 정말로 아이를 그냥 보내주었다는 말이냐?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놓아주었단 말이지?""저희는 비즈니스를 바탕으로 서약을 맺었던 겁니다, 아버지."데미안이 퉁명스럽고 거부감 가득한 톤으로 말을 단칼에 잘라버렸다."그 여자는 어머니의 유산을 되찾기 위한 법적·재정적 도움이 필요했고, 저는 이사회에서 입지를 consolidar(공고히)하기 위해 결혼이라는 신분이 필요했습니다. 서로의 목적은 이미 달성했습니다. 연장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시몬은 즉시 반박하지 않았다. 노신사는 두꺼운 나무 지팡이 손잡이 위에 억센 손가락을 규칙적으로 두드렸다.탁… 탁… 탁…적막한 방 안에 일정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네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다행이구나."시몬이 서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하지만 그 '계약 만료'의 여파가 이미 네 회사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데미안."데미안의 미간이 날카롭게 일그러졌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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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장: 오랜 인연과의 재회

그날 오후, 쇼핑몰 복도는 여전히 지나다니는 방문객들로 붐비고 있었다.시엔나는 뷰티 제품 진열대 뒤에 허리를 곧게 펴고 서서, 이전 손님을 응대한 뒤 조금 흐트러진 팜플렛들을 정돈했다.관자놀이에 얇게 땀방울이 맺혔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여전히 다정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하지만 그 미소 뒤편으로, 시엔나의 머릿속은 여전히 데미안이 내뱉은 말들로 복잡했다. '왜'라는 의문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었다.'데미안은 왜 이혼 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은 걸까? 아니면… 그냥 나한테 거짓말을 한 걸까?'부스 앞을 지나치는 손님이 잠시 끊긴 사이, 시엔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데미안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드워드 변호사에게서도 아직 이혼 절차 진행 상황에 대한 아무런 연락이 없었기 때문이다.오늘 오후에는 직접 에드워드를 찾아가 데미안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보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시엔나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갑자기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시엔나?"따뜻하고 익숙한 바리톤 음성에 시엔나의 고개가 소리가 난 쪽으로 돌아갔다.부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차분한 밝은 회색 캐주얼 슈트를 차려입은 키 큰 남자가 서 있었다. 잘생긴 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경악이 서려 있었다."줄리안?"시엔나가 나지막이 흠칫하며, 눈을 가늘게 뜨고 눈앞의 남자를 확인했다.줄리안 머서(Julian Mercer)—머서 건설의 소유주이자, 블랙웰 가문의 가장 강력한 비즈니스 라이벌. 친근한 성품 뒤에 거대한 야망을 품은 서른둘의 이 남자는, 시엔나가 입고 있는 '뷰티 어드바이저' 유니폼을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흘끔거리며 바라보았다.줄리안은 시엔나의 대학 동기였다. 학년은 달랐지만 같은 전공을 공부했던 사이였다."내 눈을 보고도 믿기지가 않네."줄리안이 깊은 의구심이 서린 톤으로 입을 열었다."상층에서 고객과 점심 약속이 있어서 들렀다가, 문득 아래를 봤는데 네가 여기 서 있는 게 보이지 뭐야."시엔나는 베이지색 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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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데미안을 찾아가다

붉게 물들어가는 뉘엿뉘엿한 붉은 노을빛이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빌딩의 유리벽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근무 시간을 마친 시엔나는 데미안과의 혼인 계약 및 이혼을 담당했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점심 무렵부터 머릿속을 짓눌러온 불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시엔나는 단단한 발걸음으로 에드워드의 법률 사무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목재 인테리어와 두꺼운 법률 서적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는 집무실 안에서, 언제나 단정하고 차분한 차림새의 서른다섯 변호사 에드워드가 시엔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데미안의 절친한 친구이자 이번 이혼 서류 절차를 담당하게 된 변호사로서, 에드워드는 늘 그렇듯 프로페셔널한 태도를 유지했다. "시엔나, 어서 와요. 앉으세요." 에드워드가 책상 맞은편 의자를 가리키며 따뜻하게 인사를 건븸었다. "혹시 무슨 중요한 할 말이라도 있나요?" 시엔나는 천천히 의자에 몸을 묻었다. 그녀는 진지한 눈빛으로 에드워드를 바라보며 쓸데없는 인사치레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로 했다. "에드워드, 한 가지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요." 시엔나가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와 데미안의 이혼 서류에 관한 건이에요. 데미안이 서명한 서류를 당신에게 제출했나요?" 볼펜을 집어 들려던 에드워드의 손길이 멈칫했다. 그는 다소 놀란 표정으로 시엔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짧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엔나… 아직이에요." 에드워드가 나지막한 한숨과 함께 대답했다. "데미안은 지금까지도 서명된 서류를 저에게 넘겨주지 않았어요." 시엔나는 흠칫 놀랐다. 그 고백이 그녀의 가슴을 강하게 쳤다. 낮에 부스에서 데미안이 내뱉었던 말—아직 이혼 서류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그 말은, 단순히 그녀를 흔들기 위한 협박이나 거짓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왜죠?" 시엔나가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처음 합의했던 조건은 명확했어요. 1년의 계약 기간은 끝났고, 우리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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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여전히 거부하는 마음

응접실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팽팽하게 조여들었다. 숨이 막힐 듯한 적막이 공기를 삼켰고, 오직 벽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만이 정적을 깨뜨릴 뿐이었다. 에드워드는 전혀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수년간 온갖 인간 군상을 상대해 온 변호사답게, 그는 그저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으며 경계와 방어기제로 가득 찬 데미안의 검은 눈동자를 똑바로 사로잡았다. "이미 알고 있다면 길게 돌려 말하지 않겠네, 데미안." 에드워드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은근한 힘이 실려 있었다. "시엔나가 오늘 오후에 내 사무실로 찾아왔었어. 1년 전 자네들이 맺은 합의에 대해 법적인 확실함을 원했을 뿐이지." 데미안이 냉소적인 실소를 터뜨리며 가슴 앞에 팔짱을 낀 채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그 여자, 정말 참을성이 없군." 데미안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시엔나'라는 이름이 내뱉어지는 순간 가슴속 깊은 곳에서 어떤 울림이 일렁였다. "이 집을 나간 지 며칠이나 됐다고, 마치 내가 도망이라도 칠까 봐 자네한테 달려간 건가." "도망친 게 아니라 제 권리를 요구한 걸세, 데미안." 에드워드가 응수하며 날카로운 탐색의 시선으로 친구를 쏘아보았다. "이혼 서류는 자네들이 작성한 합의안 초안대로 이미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어. 모든 조항에 합의가 끝났지. 자네가 할 일은 그저 서명을 하고 나에게 서류를 넘겨주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말해보게… 대체 왜 서류를 잡고 있는 건가?" 데미안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유리 탁자에 반사되는 조명 빛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산 분배에 관한 몇몇 조항을 아직 재검토하지 못했어." 데미안이 지어낸 티가 역력한 공식적인 핑계를 대며 둘러댔다. "회사 일로 너무 바빠서 말이야.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 "사소한 일?" 에드워드가 한쪽 눈썹을 올려 세우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데미안, 우리가 알고 지낸 지 하루이틀이 아니야. 자네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철저하고 효율적인 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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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전 여친

블랙웰 가문의 본가. 본가의 분위기는 평소보다 훨씬 더 화기애애하고 생기가 넘쳤다. 웅장한 거실 안, 베아트리체는 엘레나와 함께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방금 막 도착한 특별한 손님을 맞이하며 두 여자의 입가에서는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비비안 베넷(Vivian Bennett)—데미안의 전 여자친구가 그들 맞은편에 우아하게 앉아 있었다. 파스텔 톤의 고급스러운 캐주얼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태도는 더없이 달콤하고 교양 있었다. 거실 한가운데 놓인 유리 탁자 위에는 금빛 리본으로 포장된 선물 상자들이 몇 개 올려져 있었다. "어머, 비비안… 파리에서 뭐 하러 이런 선물까지 힘들게 챙겨왔니." 베아트리체는 입가를 넓게 벌려 미소를 지으며, 비비안이 가져온 실크 기념품 상자를 다정하게 문질렀다. "힘들긴요, 베아트리체 숙모님." 비비안이 부드러운 목소리와 대단히 정중한 말투로 응수했다. "숙모님이 프랑스 특산 실크 스카프를 정말 좋아하신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엘레나는 이 한정판 향수 컬렉션을 아주 좋아하고요.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일부러 준비했어요." 엘레나는 눈을 반짝이며 손에 든 향수 병을 품에 안았다. "비비안, 역시 언니가 우리 취향을 제일 잘 안다니까! 집안 분위기만 차갑게 만들고 민폐만 피우던 누구랑은 차원이 다르네." 비비안은 오른손에 든 찻잔 입술 테두리를 왼손 검지 손가락으로 가만히 문지르며, 모르는 척 미간을 찌푸렸다. "누구?… 시엔나 씨 말하는 거야?" 시엔나의 이름이 나오자, 방금 전까지 따뜻했던 베아트리체의 표정이 순식간에 냉소적으로 일그러졌다. "그 여자 이야기는 더 이상 꺼내지도 마라, 비비안." 베아트리체가 차가운 톤으로 말했다. " 어차피 데미안과 시엔나의 관계는 끝났으니까." 비비안이 살짝 흠칫했다. 그녀는 마치 생전 처음 듣는 가장 충격적인 소식이라도 접한 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입을 살짝 벌렸다. "네?… 끝났다니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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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장: 첫 만남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버스 정류장에서 내린 후,시엔나는 얼굴을 스치는 밤바람을 느끼며 어머니의 유산인 옛집을 향해 걸어갔다.한적해지기 시작한 인도 위로 시엔나의 발걸음이 천천히 이어졌다.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그녀가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도록 길을 밝혀주고 있었다.하지만 길모퉁이에 들어서자 시엔나의 발걸음이 문득 멈춰 섰다.그녀의 시선이 현재 자신의 왼편에 위치한 오래된 나무 의자에 꽂혔다. 세월의 흐름에 색이 바랜 의자였지만, 시엔나에게 그 모퉁이는 너무나 생생한 기억을 간직한 공간이었다.그녀의 정신이 순간 과거로 끌려 들어가며, 정확히 1년 전의 기억 속으로 던져졌다.1년 전.폭우가 쉬지 않고 도시를 쏟아부었다. 칠흑 같은 밤하늘을 갈라놓는 벼락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시엔나는 젖은 나무 의자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옷을 뚫고 들어오는 차가운 빗물 때문이 아니라, 방금 막 그녀의 삶을 집어삼킨 절망 때문에 온몸이 격렬하게 떨려왔다.새어머니와 아버지라는 사람들이 돌아가신 어머니의 집 소유권 서류를 담보로 대출을 받는 바람에, 며칠 뒤면 은행 경매로 넘어가게 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볼을 적시는 빗물과 섞여 시엔나의 눈물이 굵게 떨어졌다. 그녀는 홀로 남겨졌다는 외로움과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절망감, 그리고 어머니의 유일하고 Precious한 추억을 지킬 힘이 전혀 없다는 무력감에 휩싸여 있었다.쏟아지는 폭우와 온몸을 삼킨 절망 속에서, 눈부신 헤드라이트 불빛이 어둠을 갈라놓았다.검은색 고급 세단 한 대가 그녀가 앉아 있는 의자 바로 앞에 멈춰 섰다.차 문이 열렸다. 훤칠하고 당당한 체구의 남자가 커다란 검은 우산을 펼쳐 들고 차에서 내렸다. 완벽하게 맞춤 재단된 검은 슈트 차림의 남자는 우산으로 폭우를 가리며 걸음을 옮겼다.데미안 블랙웰.남자가 가까이 걸어왔다. 그의 화려한 구두가 보도블록 위의 빗물을 튕겨냈다.데미안은 시엔나의 바로 앞에 멈춰 서서, 자신이 들고 있던 우산으로 그녀를 빗줄기로부터 막아주었다.시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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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장: 오만에 가려진 허무

다음 날 아침, 데미안의 저택.단정한 검은색 포멀 슈트 차림의 데미안이 식당으로 들어서며 식탁 의자에 몸을 묻었다.조안나는 즉시 따뜻한 아침 식사와 커피를 테이블 위에 올린 뒤, 데미안의 식사를 보조하기 위해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원목 식탁 위에는 희미하게 김을 피워 올리는 블랙커피 한 잔과 정갈하게 차려진 아침 식사 한 접시가 놓여 있었다.하지만 데미안은 수저를 집어 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남자는 그저 멍한 눈빛으로 정면의 커피 잔을 똑바로 노려볼 뿐이었다. 코끝을 스치는 커피 향부터가 잘못되어 있었다—지난 1년 동안 매일 아침 그의 혀를 사로잡았던 그 완벽한 비율이 아니었다.식탁 위에 차려진 접시들조차 생경하게 느껴졌다. 출근하기 전 언제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준비해 두던 시엔나의 손길과 온기는 어디에도 없었다.식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조안나는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데미안이 음식을 단 한 모금도 대지 않은 채 돌처럼 굳어 있자, 그녀의 목덜미에 식은땀이 맺혔다."저… 죄송합니다, 데미안 도련님…."조안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말을 건븸었다."혹시 커피나 식사가 입에 맞지 않으십니까? 아니면… 도련님 취향에 맞춰 다른 메뉴로 다시 준비해 드릴까요?"데미안은 대답하지 않았다.숨이 막힐 듯한 적막이 순식간에 식당 전체를 얼려버렸다.조안나의 제안에 단 한 마디 대꾸도, 반응도 없이, 데미안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절도 있는 동작으로 재킷 옷매무새를 다듬은 뒤, 그 화려한 아침 식사를 손 하나 대지 않은 채 남겨두고 성큼성큼 식당을 벗어났다.조안나는 안절부절못하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안주인이 떠난 뒤 더욱 차갑게 식어가는 집안의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며.차고로 향하는 복도에 데미안의 구두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세단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올라탄 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문을 닫았다.그가 시동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 재킷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요란하게 진동했다. 휴대폰을 꺼내 든 데미안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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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장: 다른 남자

시엔나는 여전히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질문을 몇 초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그녀는 입술을 깊게 말아 물었다. 잠시 고민하던 시엔나는 오랜 친구에게 자신의 거처를 굳이 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녀의 손가락이 다시 움직이며 답장을 찍어 내려갔다.[나 지금 돌아가신 우리 엄마 옛날 집에 살고 있어, 줄리안.]시엔나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줄리안에게 사는 곳을 알려준 자신의 결정이 과연 맞았던 걸까?하지만 알려주지 않았더라도 줄리안이라면 분명 알아챘을 것이다.시엔나가 휴대폰을 식탁 위에 내려놓기도 전에, 화면 가득 줄리안의 이름이 뜨며 전화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시엔나는 살짝 놀랐지만 이내 초록색 통화 버튼을 옆으로 밀었다."여보세요, 줄리안?"전화를 받으며 시엔나가 나지막하게 불렀다."시엔나."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줄리안의 중저음 목소리는 감미롭고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다."방금 답장 읽었어. 혹시 오늘 아침에 내가 집 앞으로 가서 출근길에 태워다 줘도 될까?"시엔나는 흠칫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제안에 그녀의 눈썹이 찌푸러지며 미간이 좁혀졌다."나를 데리러 온다고?"시엔나가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물었다."줄리안, 지금 한창 출근길 러시 아워 아니야? 아침 일찍 너희 회사로 가봐야 하는 거 아니고?"수화기 건너편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어 줄리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그냥 해본 말이 아니야, 시엔나. 정말偶然하게도 방금 머서 건설의 새 건설 프로젝트 현장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이었거든. 네 집 쪽이랑 얼마 안 떨어져 있어. 겨우 몇백 미터 거리야."시엔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녀의 기억이 어머니의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상업 지구 쪽으로 향했다. 확실히 그곳은 도로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지역이었다.줄리안의 설명은 앞뒤가 맞아떨어졌고, 그녀의 마음속에 남아 있던 어색함도 천천히 사라져 갔다."아, 그랬구나…."시엔나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정말 거기에 있었던 거 맞지? 그냥 둘러댄 핑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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