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빙의자는 억울한 죽음을 거부한다: Chapter 111 - Chapter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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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화: 진주 대첩 2

"일어나세요! 제발요!""이 나쁜 놈아! 죽으면 가만 안 둬! 내 돈 다 갚고 죽어!""대장님! 눈 좀 뜨십쇼!"시끄러웠다.암흑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아내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딸아이의 목소리도 아니었다.하지만 그 목소리들에는, 내가 평생 듣고 싶어 했던 '온기'가 담겨 있었다.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나를 필요로 하고, 나를 위해 울어주는 목소리들.'아...'따뜻하다.가슴의 통증보다, 누군가가 내 손을 꽉 잡고 있는 그 느낌이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나는 눈을 떠야 했다.저기서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이번 생은, 혼자가 아니니까."으음..."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눈부신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움직였다! 대장님이 깨어나셨다!"최가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시야가 흐릿하다가 점차 선명해졌다.천장. 낯선 천장... 이 아니다. 담양 객주의 천장이 아니라, 진주성 관아의 천장이었다.그리고 내 주위를 둘러싼 얼굴들.눈이 퉁퉁 부어 붕어처럼 된 미령이.머리는 산발을 하고 화장이 다 번진 서백설.수염이 더부룩하게 자라 퀭한 나대용.그리고 콧물을 흘리며 웃고 있는 최가와 익호군 녀석들."아저씨!""이 인간아!"미령이와 서백설이 동시에 내 가슴팍으로 무너졌다."아, 아파... 거긴 뚫린 데야...""시끄러워요! 뚫리긴 뭐가 뚫려요! 근육이 다 막아줬구만!"서백설이 울면서 내 가슴을 팡팡 쳤다. 아팠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다행이오. 정말 다행이오. 자네가 안 깨어나면 내가 저승까지 쫓아가려 했소."나대용이 내 손을 잡고 흔들었다."제가 그렇게 쉽게 갑니까. 밥값은 해야죠."나는 쉰 목소리로 농담을 던졌다.모두가 웃었다.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나는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전생의 가족에게 받지 못했던 관심과 사랑.그것을 나는 이 난세의 한복판에서, 피를 나눈 적도 없는 이 사람들에게서 받고 있었다.'이게... 진짜 가족이구나.'가슴 한구석이 묵직하게 채워지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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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화: 전후 처리와 주식회사 익호의 확장 1

진주성 전투가 끝나고 며칠 뒤.우리는 전리품을 챙겨 담양으로 복귀하고 있었다."대장님. 진짜 죽다 살아났습니다."수레를 밀던 최가가 땀을 닦으며 말했다. 녀석도 온몸이 상처투성이였지만, 표정만은 밝았다."그래. 고생했다."나는 문득 녀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처음엔 동네 양아치였는데, 어느새 내 등을 맡길 수 있는 전우가 되어 있었다. 생사를 함께 넘나들었는데 이름도 모른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야, 최가야.""예?""맨날 최가, 최가 불렀지 이름을 물어본 적이 없네. 이제 우리 식군데 이름은 알아야지. 본명이 뭐냐?"최가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제 이름 말입니까? 좀... 촌스러운디요.""괜찮아. 말해 봐.""불암(佛岩)입니다. 최불암.""......"나는 가던 걸음을 멈췄다."뭐? 뭐라구?""불암이라니까요. 부처님 불(佛) 자에, 바위 암(岩) 자. 아버지가 부처님 바위처럼 단단하게 크라고 지어주셨답니다."최불암.전생의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그 이름. 국민 아버지.이 험악하게 생긴 산적 놈 이름이 그분과 동명이인이라니."왜 그러십니까? 이상합니까?""아니... 아주 좋은 이름이다. 튼튼해 보이고 좋네. 너랑 딱이다."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묘한 친근감이 들었다. 전생의 추억이 겹쳐지며, 이 녀석이 더 각별하게 느껴졌다."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최가야."이름은 알았지만, 부르던 게 편했다. 녀석도 그게 더 익숙한 눈치였다."예! 맡겨만 주십쇼! 호남의 바위가 되겠습니다!"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11월의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지만, 마음만은 훈훈했다.-1592년 11월.겨울 냄새가 났다.코끝이 시린 바람이 불어왔지만, 담양 객주의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아니, 오히려 지난여름보다 더 뜨거워져 있었다."장군님! 제발 저희를 거두어 주십시오!""먹다 남은 밥이라도 좋습니다! 일만 시켜주시면 뭐든 하겠습니다!"대문 밖은 아수라장이었다.진주 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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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화: 전후 처리와 주식회사 익호의 확장 2

대부분이 흙 묻은 옷을 입은 농사짓던 사람들. 빈손으로 온 그들의 손이 눈에 들어왔다."백설아.""네?""저 사람들, 내년 봄 되면 뭐 먹고살아?""글쎄요... 다시 고향 가서 농사지어야죠. 근데 농기구고 뭐고 다 뺏겨서 맨손으로 땅을 파야 할 판인데... 당장 호미 하나가 없어서 난리래요."말을 하던 서백설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는 고철 더미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설마...?"나는 씨익 웃었다."칼을 녹여서 보습(쟁기 끝날)을 만든다. 멋지지 않냐?""......!!""저 쇠들, 다 정철이야. 강도 하나는 끝내준다고. 저걸로 호미 만들고 낫 만들면, 밭 갈다가 바위를 만나도 바위가 깨질걸?"서백설의 머릿속에서 숫자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대박이다... 이거 대박이에요! 지금 대장간마다 쇠가 없어서 농기구 품귀 현상이 났는데!""근데 그냥 주면 안 돼.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까져.""그럼요. 팔아야죠. 아니, 파는 건 낼 돈이 없을 테니까..."서백설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임대! 빌려주는 거예요. 농기구를 빌려주고, 내년 가을 추수 때 곡식으로 받는 거죠. 이자는 싸게 쳐서."역시.하나를 던져주면 열을 물어오는 여자다.단순한 자선사업이 아니라, 미래의 식량을 확보하는 투자였다."나대용 형씨! 일거리 생겼습니다!"내가 소리치자 대장간에서 나대용이 튀어나왔다."또 뭐요! 나 좀 쉽시다! 현무 수리하느라 허리가 휘어질 지경이오!""쉬는 건 나중에 하시고요. 이번엔 무기 말고 농기구 좀 만듭시다.""농기구? 내가 천하의 귀선 제작자인데, 고작 호미나 만들라는 거요?"나대용이 발끈했지만, 내가 쇠무덤을 가리키며 말했다."이거 다 왜놈들 무기 녹여서 만드는 겁니다. 사람 죽이던 흉기로 우리 땅 살리는 도구 만드는 거죠. 의미 있지 않습니까? 저 역시 거들겠습니다."나대용의 표정이 풀어졌다."크으... 그 말, 맘에 드는구려. 살생의 업보를 생명의 업으로 씻는다라. 좋소! 내 세상에서 제일 튼튼한 호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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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화: 전후 처리와 주식회사 익호의 확장 3

"대장님. 문제가 생겼습니다."며칠 뒤, 최가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찾아왔다."왜. 쇠가 떨어졌냐?""아닙니다. 사람이... 너무 많이 옵니다.""사람?""익호군에 입대하겠다는 지원자가 천 명을 넘었습니다. 객주 마당에 발 디딜 틈도 없습니다요.""천 명...?"나는 턱을 쓰다듬었다.현재 익호군 정예 병력은 약 1,000명. 여기서 더 늘리면 식량도 감당이 안 되고, 지휘 체계가 꼬인다. 오합지졸만 늘어나면 기동성만 떨어질 뿐이다.그렇다고 돌려보낼 수도 없다. 제 발로 찾아온 호랑이 새끼들을 쫓아내는 건 바보짓이다. 저들도 살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온 가장들일 텐데.'어쩐다.'전생의 기억을 더듬었다.현대 군대. 효율적인 병력 운용.상비군과... 그래, 그거다."아."무릎을 쳤다."미령아! 지도 가져와라!"미령이가 얼른 지도를 펼쳤다. 호남 지도가 한눈에 들어왔다.나는 붓을 들어 담양, 진주, 나주를 연결하는 선을 그었다. 거대한 삼각형."잘 들어라. 우리는 이제부터 '익호 삼각지대'를 만든다.""삼각지대요?"최가와 간부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지금 있는 1,000명은 '정예군'이다. 너희는 여기서 먹고 자면서 훈련만 해. 언제든 출동할 수 있게."나는 밖에서 대기 중인 지원자들을 가리켰다."그리고 저 밖에게 온 사람들은 '향토 예비군'으로 편성한다.""예비군이 뭡니까?""평소에는 고향에 가서 농사짓고 생업에 종사해. 대신, 한 달에 한 번씩 여기 모여서 훈련받고, 비상 걸리면 낫이랑 호미 던지고 창 들고 뛰어오는 거야.""오... 그거 말 됩니까? 전쟁 나면 다 도망가지 않겠습니까?"최가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나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아니. 도망 안 가.""어째서요?""그리고 저 양반들, 우리 익호군 그늘 아래서 겨우 자리 잡고 농사짓기 시작했어. 땀 흘려 일군 땅이랑 곡식이 아까워서라도 도망 안 가. 아니, 못 가지. 자기 밥그릇 지키려면 싸워야 하니까."지킬 것이 있는 자는 강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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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화: 떼놈들이 몰려온다 1

1592년 12월.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었다.담양의 아침은 쌀쌀했다. 입김이 하얗게 피어오르는 연병장에서 익호군 3,000명이 구보를 뛰고 있었다."하나, 둘! 하나, 둘!"지축을 울리는 발소리.정예병 1,000명과 예비군 2,000명이 합쳐진 위용은 대단했다. 녀석들은 더 이상 오합지졸이 아니었다. 진주성 전투를 겪으며 눈빛이 달라졌고, 농기구 대신 지급받은 창과 조총을 다루는 솜씨가 제법 매서웠다."대장님. 애들 기합이 아주 바짝 들었습니다."최가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밥값은 해야지. 겨울이라 농사도 없는데 놀리면 쓰나."나는 뜨끈한 유자차를 마시며 훈련을 지켜봤다.평화로웠다. 왜군들은 남해안 쪽에 틀어박혀 꼼짝도 안 하고 있고, 호남은 철통같은 방어 태세를 갖췄다. 이대로 겨울만 잘 넘기면 내년 봄엔 반격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하지만,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대장님! 큰일 났습니다!"미령이가 사색이 되어 달려왔다. 녀석의 손에는 남원 쪽에서 온 급보가 들려 있었다."왜 그래? 왜놈들이 또 쳐들어왔어?""아뇨. 왜놈이 아니라... 떼놈들이에요."올 것이 왔군."이여송 제독이 이끄는 명나라 원군 선발대, 그중 일부가... 남원까지 내려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대요!"명나라.조선을 구원하러 온다는 천조국(天朝國)의 군대.하지만 내 기억 속의 명군은, 왜군만큼이나 골치 아픈 존재였다.그들은 우리를 '속국' 취급하며 거드름을 피웠고, 보급이 늦어지면 조선 관리를 구타하거나 민가를 약탈하는 짓거리도 서슴지 않았다."뭐라고 하는데?""술과 고기, 그리고 여자를 내놓으라고 한답니다. 안 주면 집을 부수고 사람을 때린다고..."미령이의 목소리가 떨렸다."남원 현감이 말려봤지만 소용없대요. 오히려 '대국(大國)의 장수에게 대든다'며 맞을 뻔했답니다."빠드득.내 주먹에서 소리가 났다.구원군? 웃기고 있네. 이건 그냥 또 다른 도적 떼다."최가야.""예, 대장님!""애들 집합시켜. 50명만 추려라. 덩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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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화: 떼놈들이 몰려온다 2

나는 피하지 않았다.미숙이를 들어 올려 칼날을 막았다.​깡!​맑은 소리가 객주를 울렸다.내 팔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반면, 왕필의 손은 찌릿한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힘은 좋네. 근데 기술이 없어."​나는 미숙이를 쳐내며 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꺼져!"​왕필이 발길질을 했지만, 나는 그 다리를 잡아채고는 그대로 들어 올렸다.​"으억!"​놈의 몸이 허공에 붕 떴다.나는 놈을 쌀자루 돌리듯 빙글빙글 돌렸다.​"으아아악! 어지러워! 살려줘!"​천하의 대국 장수가 공중그네를 타며 비명을 지르는 꼴이라니.주변에 있던 명나라 병사들은 입을 딱 벌리고 구경만 했다. 감히 끼어들 엄두를 못 내는 눈치였다.​"잘 가라."​나는 놈을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와장창!​나무 창살이 박살 나며 놈이 마당으로 굴러떨어졌다.​"다음 타자?"​나는 나머지 장수들을 둘러보았다.​"쉐이? (누구?)"​나는 미숙이를 그윽하게 한 번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수화기처럼 귀에 갖다 대고 중얼거렸다."응? 미숙아, 뭐라고? 안 다진 지 오래라 한 놈만 다져보면 안 되겠냐고? 그럴까? 응?"말해놓고 보니 내 안의 본능이 깨어나는 것 같다.아... 손맛이 그립다.아... 미친 척하고 한 놈만 다져볼까.히번득!내 광기 어린 1인극에 기세등등하던 놈들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내 눈을 피하며 슬금슬금 뒷걸음질 쳤다.​"오해하지 마시오! 저... 저놈이 술이 과해서 실수를 했습니다!"​부장으로 보이는 자가 황급히 변명했다.​"실수? 우리 주모 뺨 때린 것도 실수냐?"나는 구석에서 울고 있는 주모를 가리켰다. 뺨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사과해. 무릎 꿇고.""무, 무릎이라니요! 명나라 장수에게 그건...""안 해? 그럼 너도 날려줘?"내가 미숙이를 들어 올리자, 놈들이 화들짝 놀라며 주모 앞에 넙죽 엎드렸다."자,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미안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주모는 어리둥절해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윙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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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화: 대국(大國)의 장수 vs 조선의 항우 1

깡! 깡! 깡!경쾌한 망치질 소리가 담양 객주의 아침을 깨웠다.나는 대장간 화덕 앞에서 웃통을 벗어 던진 채 쇠를 두드리고 있었다.내 망치 아래서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는, 어제 명나라 놈들에게서 뺏어온 무기들이었다."이야, 역시 대국 물건이라 그런지 쇠 질은 좋네."나는 언월도였던 쇳덩이를 호미 형태로 펴내며 감탄했다. 놈들이 백성들을 위협하던 칼날이, 이제는 땅을 파는 보습이 되어가고 있었다."대장님! 호미 100개 추가요!"최가가 신이 나서 완성된 호미를 날랐다.객주 앞에는 농기구를 빌려 가려는 농민들의 줄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아이고,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을지..."​호미를 받아 든 노인이 눈물을 글썽였다.​"갚긴 뭘 갚습니까. 나중에 쌀농사 잘 지어서 이자 쳐서 돌려주시면 됩니다."​대부분의 가난한 농민들은 그렇게 외상 장부에 이름을 올리고 물건을 받아 갔다. 하지만 개중에는 사정이 다른 이들도 있었다.​"이보시오! 나는 줄 서기 싫소! 여기 닷 냥을 낼 테니 저 튼튼해 보이는 쇠스랑 먼저 주시오!"​"내 마누라가 숨겨온 금가락지요! 이걸로 호미 두 자루랑 낫 한 자루 바로 살 수 있겠소?"​피난 올 때 챙겨온 패물이나 비상금을 꺼내 들고 '새치기'를 하려는 알부자들이나 급한 성격의 농군들이었다.​서백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어머, 고객님! 당연히 되죠. 현찰은 무조건 우대입니다! 불암아! 저분들 먼저 챙겨드려라!"​그녀는 현물로 들어온 은비녀와 금가락지를 챙겨, 발 빠르게 인근 상단을 돌며 쌀과 잡곡을 사들였다. 미래의 이자 놀이와 현재의 현금 확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솜씨였다.​서백설은 옆에서 두툼해진 장부를 튕기며 흐뭇해하고 있었다.​"현찰 내고 사가는 알짜배기 손님들 덕분에 현금 융통이 좀 되네요. 그 돈으로 곡식을 사들이고 있으니, 이대로면 봄까지 버틸 식량은 충분히 확보되겠어요. 당신, 의외로 살림꾼이라니까?"​"살림꾼은 무슨. 네가 악착같이 뜯어낸 거지."평화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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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화: 대국(大國)의 장수 vs 조선의 항우 2

"목소리 한번 크네. 남의 영업장에서 소란 피우지 말고 용건만 말하쇼.""뭐, 뭐라? 이 건방진...!"팽신은 내 태도에 기가 찬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나는 명나라 유격장군 팽신이다! 네놈이 훔쳐 간 무기와 갑옷을 내놓고, 내 부하들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훔쳐 가다니. 정당한 수리비와 청소비로 압류한 겁니다."나는 턱으로 대장간 쪽을 가리켰다."그리고 댁들 무기는 이미 호미가 돼서 밭 갈러 갔는데요?""......!!"팽신의 눈이 뒤집혔다.무인의 무기를 녹여서 호미를 만들었다? 이건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이, 이 오랑캐만도 못한 놈이! 죽어라!"팽신이 청룡언월도를 치켜들었다.80근(약 48kg) 정도?저걸 한 손으로 붕붕 돌리는 걸 보니 힘 하나는 장사였다."모두 비켜라! 내 손으로 이 놈의 머리통을 쪼개주마!"명나라 병사들이 환호하며 뒤로 물러났다. 익호군 녀석들도 긴장하며 나를 쳐다봤다."대장님... 저 놈 덩치가 장난 아닙니다. 조총으로 쏠까요?"최가가 속삭였다."아니. 놔둬."나는 미숙이를 손바닥에 탁탁 쳤다."저런 놈들은 말로 해선 안 들어. 몸의 대화를 원하시는 것 같은데, 해드려야지."나는 팽신 앞으로 걸어 나갔다."좋다. 덤벼라. 대신, 네가 지면 네 부하들 밥값까지 네가 내는 거다.""닥쳐라!"부웅-!팽신이 언월도를 휘둘렀다.공기를 찢는 파열음이 예사롭지 않았다. 단순한 힘뿐만 아니라 기술이 실린 일격이었다.내 눈에는 궤적이 보였다.위에서 아래로, 대각선으로 내려찍는 궤적.무겁고 느리다.나는 피하지 않았다.오른손에 든 흑단목 방망이, 미숙이를 들어 올렸다.콰앙!언월도의 날과 흑단목이 충돌했다.거대한 쇳덩이와 나무의 충돌이었지만, 부러지는 건 나무가 아니었다.불꽃이 튀고, 팽신의 손목이 튕겨 나갔다."으윽?!"팽신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자신의 온 힘을 실은 공격이, 고작 나무 방망이 하나에 막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힘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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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화: 대국(大國)의 장수 vs 조선의 항우 3

눈이 뒤집히고 입에서 거품이 나왔다.정적.객주 마당에 있던 500명의 명나라 기병들이 얼어붙었다.자신들이 믿던 최강의 장수가, 조선의 시골 무인에게 어린애처럼 던져졌다.나는 쓰러진 팽신의 가슴을 발로 밟았다."일어나. 밥 먹어야지."나는 미숙이로 놈의 뺨을 툭툭 쳤다.팽신이 쿨럭거리며 정신을 차렸다. 나를 올려다보는 놈의 눈빛이 변해 있었다.분노? 아니었다.그것은 압도적인 강자에 대한 공포, 그리고 경외심이었다.중국인들은 힘을 숭상한다.자신보다 약한 자는 짓밟지만,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는 철저히 복종한다. 그것이 대륙의 생존 법칙이었다.팽신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리고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따, 따거...(형님...)""......뭐?""제가 졌습니다! 대협의 무공에 감복했습니다!"팽신이 머리를 땅에 박았다. 뒤에 있던 명나라 병사들도 우르르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었다."따거를 뵙습니다!"갑작스러운 태세 전환에 내가 더 당황스러웠다."아니, 형님은 무슨. 우린 초면인데.""무림에서 강자는 곧 형님입니다! 부디 저의 무례를 용서해 주시고, 아우로 받아주십시오!"팽신이 울먹이며 매달렸다. 2미터 거구가 징징대니 징그러웠다.서백설이 옆에서 킥킥거렸다."축하해요, 대장님. 전국구 인맥 생기셨네.""시끄러워. 이걸 어쩐다..."나는 한숨을 쉬었다.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식충이들을 다 거둘 수도 없고."야, 팽신.""예! 형님!""너희들, 밥은 먹었냐?""아, 아직...""최가야! 연병장에서 끓고 있던 가마솥 통째로 실어와! 국밥 말아라, 500그릇!"익호군 3,000명의 아침을 책임지던 대형 가마솥들은 아직 식지 않은 상태였다. 훈련용으로 넉넉히 끓여둔 시래기국에 찬밥을 퍽퍽 말아 토렴해내자, 순식간에 500그릇의 국밥이 완성되었다.잠시 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이 명나라 병사들에게 돌려졌다. 놈들은 걸신들린 듯이 밥을 퍼먹었다."마이따! (맛있다!) 조선 밥 최고다!"팽신도 국밥을 원샷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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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화: 동장군(冬將軍)과 깔깔이 1

춥다.그냥 추운 게 아니라, 뼈마디가 시리고 영혼까지 얼어붙을 것 같았다.1593년 1월. 계사년(癸巳年)의 새해가 밝았지만, 태양은 빛을 잃었고 바람은 칼날이 되어 살을 저몄다.역사책에서 봤던 '소빙기'의 위용은 상상을 초월했다. 400년 뒤의 대한민국 겨울보다 훨씬, 지독하게 추웠다."으으으... 대장님... 콧물이 고드름이 됐습니다요..."보초를 서던 최가가 덜덜 떨며 들어왔다. 녀석의 수염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방금 교대하고 들어온 건데도 얼굴이 파랗게 질려 있었다."문 닫아! 바람 들어온다!"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소리쳤다.금강불괴? 웃기는 소리다. 칼은 안 박혀도 추위는 박히더라. 내복도 없고 보일러도 없는 이 시대의 겨울은, 그야말로 재앙이었다.객주 마당의 풍경은 처참했다.익호군 병사들은 삼삼오오 모닥불 주위에 모여 웅크리고 있었고, 피난민들은 얇은 베옷 하나로 서로의 체온에 의지해 버티고 있었다. 훈련이고 뭐고 다들 얼어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중이었다."동상 환자가 늘고 있어요. 발가락이 까맣게 변한 사람도 있고..."미령이가 울상을 지으며 보고했다. 그녀의 손도 빨갛게 트고 갈라져 있었다."솜옷은? 더 없냐?""다 떨어졌어요. 목화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예요. 있는 건 죄다 뜯어서 병자들 덮어줬는데도 모자라요."서백설이 한숨을 쉬며 화로에 손을 녹였다. 천하의 거상 서백설도,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솜 앞에서는 장사가 없었다.상황은 심각했다.이대로 가면 왜놈이랑 싸우기도 전에 추위에 얼어 죽게 생겼다. 활시위는 얼어서 당겨지지 않고, 창대는 차가워서 손에 쥐기도 힘들었다.나는 미숙이를 만지작거리며 고민에 잠겼다.추위를 막아야 한다.하지만 솜은 없다. 가죽도 부족하다.그렇다면 대체 무엇으로 이 칼바람을 막는단 말인가.'전생의 기억... 기억을 더듬어 보자.'대한민국 육군 병장 강철민.강원도 철원의 혹한기 훈련.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서 텐트를 치고 자던 그 시절.그때 우리를 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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