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0시, 서울 한남동 서경그룹 회장 집무실.시후는 병원에서 돌아온 뒤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은서는 그가 혼자 있을 시간을 주되, 어디 있는지 알 수 있도록 같은 공간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의 움직임을 함께 기록했던 수첩은 가방에 넣어 두었다.아버지의 마지막 얼굴에 대해 묻지 않았다. 대신 물을 마셨는지, 잠깐 눈을 붙이고 싶은지 물었다. 시후는 둘 다 괜찮다고 했다가, 한참 뒤 물을 달라고 했다.시후는 컵을 받으면서 빈손을 내려다봤다. 새벽에는 들고 있던 휴대폰조차 놓지 못했던 손이었다. 은서는 옆의 서류를 치워 컵 놓을 자리를 만들었다. 지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함께 앉아 있을 수 있었다.시후가 물을 마시는 동안 은서는 다른 것을 묻지 않았다. 괜찮다고 했던 남자가 먼저 입을 연 참이었다. 조금 뒤 무슨 부탁을 더 하더라도, 지금처럼 들어주면 될 것 같았다.유언집행자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시후는 셔츠 소매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은서는 함께 들을지 다시 확인했다. 그가 옆에 있어 달라고 하자 의자를 가까이 가져왔다.공증을 담당한 변호사와 유언집행자가 테이블 위에 故 강문혁 명예회장의 친필 사죄문과 최종 유언 공증서를 엄숙히 펼쳐놓았다. 시후와 은서가 나란히 앉아 서류를 응시했다. 글씨의 크기가 일정하지 않았고, 몇 군데는 잉크가 번져 있었다. 은서는 흐릿한 부분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마지막 필체를 읽었다.— [내 아들 시후, 그리고 죄 없는 딸 은서에게. 10년 전, 가문의 체면과 방산 합작의 탐욕에 눈이 멀어 조수현의 독살 음모를 알면서도 묵인했고, 은서를 억지 위장 입양으로 옭아매었던 내 추악한 죄악을 뼈저리게 참회한다. 너희 두 사람 앞에 죽어서도 무릎을 꿇고 사죄하마. 내 명의의 남은 서경 지분과 사재 3,000억 원 전액을 은서의 재단과 태어날 쌍둥이에게 유증한다.]서류를 읽어 내려가던 은서의
Last Updated : 2026-10-06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