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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다시 고른 낭군: Chapter 111 - Chapter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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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1화 [여섯 대] - 2 -

그다음 며칠 동안 사람들이 각자 나갔다 들어왔다.들어오는 것은 대개 당장 쓸모를 알 수 없는 말이었다.누가 누구와 틀어졌다는 것, 어느 창고가 값을 올렸다는 것.삼 년 전 일을 묻자 기억이 다 달랐다.같은 해에 있었던 일을 두고 어떤 이는 봄이라 했고 어떤 이는 가을이라 했다.안기현이 그것을 다 받아 적었다."이런 것도 적습니까.""적어두거라.""어디에 쓰시려고요.""지금은 모른다."서리가 답했다."나중에 무엇이 필요할지 모르니까."낮이 조금씩 짧아지고 있었다.아직 볕은 남아 있었는데, 저녁이 되면 마당이 금세 어두워졌다.—동가에서 사람이 온 것은 엿새 뒤였다.수레 여섯 대가 마당으로 들어왔다.인계하러 온 자는 예를 반듯하게 갖추었다.차림도 깔끔했고 말끝도 공손했다."영안공께서 회복하셨다 들었습니다.""예.""서가에도 다시 활기가 도니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입니다."서리는 이어진 두 말을 속으로 한 번 되짚었다.영안공이 회복하셨다, 그래서 서가에 활기가 돈다.그 두 마디가 그렇게 이어져 있었다.서리가 그 말을 들으며 수레 쪽으로 걸어갔다."빌려 간 수레도 이제 돌려드릴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은 없었다.삼 년이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살펴보겠습니다."서리가 그렇게만 답했다.백종길이 한 대씩 확인했다.바퀴와 굴대를 보고, 짐칸 바닥을 두드려 보았다.한 대는 바퀴를 갈아 끼운 자리가 새것이었고, 한 대는 굴대가 닳아 있었다.여섯 대가 같은 데서 같이 쓰인 것 같지는 않았다.백종길이 짐칸 안쪽 결구를 손으로 짚어 보고 나서 고개를 들었다."여섯 대 맞습니다. 짐칸 짜는 법이 저희 것입니다.""서가 표는요.""셋에는 남아 있고, 셋은 지워졌습니다."인계하러 온 자가 그 말에 웃었다."오래 쓰다 보면 그리 됩니다.""그렇겠지요."서리가 답했다.그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지워진 까닭을 캐물을 수도 있었다. 언제 지웠느냐고 따질 수도 있었다.그러면 오늘 이 자리에서 답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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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2화 [겉과 속] - 1 -

수레는 마당에 여섯 대가 나란히 서 있었다.아이들을 마당 안까지 들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일곱이 들어와 수레 사이를 천천히 지났다. 만지지는 않았다.제일 작은 아이가 세 번째 수레 앞에서 멈췄다."이거예요.""확실하냐?""여기가 깨졌어요."아이가 바퀴 아래쪽을 가리켰다. 테두리 한 곳이 손톱만큼 떨어져 나가 있었다."나올 때 이게 돌아가는 걸 봤습니다. 돌 때마다 소리가 좀 달랐고요."서리가 그 자리를 들여다봤다.다른 다섯 대에는 그런 자국이 없었다."다른 것과 헷갈리지는 않았고.""저건 하루에 몇 번씩 봤습니다."아이가 답했다."나흘을 봤는데, 저것만 거기서 나왔어요."그 수레는 서가 표식이 지워진 세 대 가운데 하나였다.—그 이튿날이었다.서리는 그 수레를 다시 보러 나갔다.표식이 있던 자리는 대패로 밀려 있었다.나뭇결이 그 자리만 얕게 파였고, 결을 따라 만져보면 어디까지 밀었는지가 손끝에 걸렸다.깨끗하게 지운 솜씨였다.빌려 간 사실을 감추려던 것이라면 여섯 대를 다 지웠을 것이었다.세 대는 그대로 두었다."이 수레만 다른 데 썼다는 뜻이군요."안기현이 옆에서 그렇게 말했다."그 다른 데가 그 창고겠지."서리가 손을 뗐다."창고를 누가 빌렸는지는 뒤로 미룹니다.""먼저 볼 것이 있으십니까.""거기 무엇이 들어가고 무엇이 나오는지부터 봅니다."서리가 답했다."이름은 갈면 그만입니다. 드나드는 것은 못 갈지요.""빌린 자를 캐면 그쪽에서 먼저 압니다."서리가 덧붙였다."그자를 찾아가 물으면, 그날로 창고가 비겠지요. 하가 때처럼요."—수레를 보고 들어오니 이겸이 나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며칠 자리를 비웁니다.""북계 일이십니까.""그건 아니고, 다녀온 뒤로 밀린 것이 많습니다. 문서가 쌓여 있어서요."이겸이 말고삐를 잡다가 뒤를 돌아보았다."언백우.""예, 주군.""당분간 부인을 보좌해라."백우가 잠시 이겸을 보았다."저는 주군을 따라야 하는데요?""내가 문서 보는 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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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3화 [겉과 속] - 2 -

백종길을 부른 것은 그다음이었다."포대를 가는 창고가 있습니까.""있습니다."백종길이 곧바로 답했다."멀리 가는 물건은 대개 한 번 다시 묶습니다. 산지에서 온 포대는 길에서 상하기도 하고, 받는 쪽 셈에 맞춰 나눠야 할 때도 있으니까요.""그럼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군요.""그것만 보면 그렇습니다."백종길이 잠시 뜸을 들였다."다만 다시 묶는 자리는 대개 받는 쪽 가까이에 둡니다. 도성 한복판에서 다시 묶어서 다시 싣고 나가면, 품만 두 번 드니까요.""여기는 도성입니다.""예.""그럼 왜 여기서 묶습니까?""다시 묶는 것 말고도, 풀어야 할 까닭이 있다는 말이겠지요."백종길이 답했다."장부에는 그 자리가 안 남습니다. 어디서 받아 어디로 넘겼는지만 적히지, 중간에 한 번 풀었다는 것은 적지 않으니까요.""포대를 가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포대를 가는 김에 다른 것을 한다면 여기서 해야 합니다. 산지에서도 안 되고, 받는 데서도 안 되니까요."방 안이 조용해졌다.중개를 하던 자를 다시 부른 것은 그 뒤였다."저자 북쪽 창고에서 나온 물건을 받아보신 적이 있습니까."그자가 잠시 생각했다."받기는 여러 번 받았습니다. 그 전에 어느 산지에서 들어온 것인지까지는 모르고요.""산지를 적은 것은 있었습니까.""적혀 있었습니다. 포대에 찍혀서 왔으니까요.""그것이 맞는지 확인해보신 적은.""그건 안 합니다."그자가 답했다."찍혀 있으면 그런 줄 압니다. 그걸 일일이 까볼 것 같으면 장사가 안 되지요.""쌀이 나쁘다는 말이 나온 적은 없습니까."그자가 잠시 말이 없었다."북쪽에서 몇 번 말이 올라오긴 했습니다. 이번 것은 씻을 것이 많더라고요. 쭉정이가 섞였다고도 하고.""자주였습니까.""자주는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은 어느 해나 한두 번씩 있으니까요.""그때는 어찌 넘어갔습니까.""길이 머니 그럴 수도 있다고들 했지요. 비를 맞았거나, 오래 묵었거나."그자가 어깨를 으쓱였다."수량이 맞고 날짜가 맞으면 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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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4화 [목소리] - 1 -

군량고를 수색하려면 관의 힘을 빌려야 했다.서리가 가진 것은 닷새 동안 적어 둔 창고 출입 기록과 중개상의 말뿐이었다.그것만으로는 군의 창고 문을 열 수 없었다. 군납 장부가 조작되었을 수 있다는 혐의라면 달랐다.서리가 그 뜻을 적어 백우를 보냈고, 백우는 해가 한 뼘쯤 기운 뒤에 돌아왔다.손에 영안공의 목패 하나와 접힌 종이 한 장이 들려 있었다."주군께서 이것을 드리라 하셨습니다. 군납 장부에 의심이 있으니 들여다보라는 명입니다."종이에는 몇 줄 적혀 있지 않았다.북문 군량고의 문을 열라는 것과, 부인이 보라는 것은 무엇이든 보이라는 것.그 아래 한 줄이 더 있었다.- 해 지기 전에 돌아오십시오.서리는 그 줄을 조금 오래 보았다."직접 오시지는 않고요.""문서가 산처럼 쌓여 있어서, 오늘은 자리를 뜨기 어렵다 하셨습니다.""그렇겠지요."서리가 종이를 접어 소매에 넣었다.요 며칠 이겸은 아침 일찍 나가 밤늦게 들어왔다.들어와서도 서안 앞에 앉아 있었다. 얼굴을 본 것은 밥상을 마주할 때 잠깐씩이었다.그동안 서리 곁에는 백우가 있었다.백우는 모자람이 없었다. 말하기 전에 길을 열었고, 한 번 이른 것은 두 번 묻지 않았다.사람을 어디 둘지도, 언제 물릴지도 서리가 정하면 그대로 따랐다.일은 막힘없이 돌아갔다.그런데 걸어가다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옆을 보면, 한 걸음 뒤에 백우가 있었다.늘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 자리가 아니었다.서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따져보지 않았다.—북문 군량고는 성벽 안쪽에 붙어 있었다.창고를 맡은 자는 나이가 지긋한 군리였다.백우가 앞으로 나서 목패를 내보였다."영안공의 명이오. 군납 장부에 의심이 있어 들어온 물건을 확인하겠소."군리가 패를 두 손으로 받아 한참 들여다본 뒤에야 문을 열었다.백우 뒤에 선 서리를 보고는 조금 당황한 얼굴이었다."부인께서도 함께 보십니까.""최근에 들어온 것부터 보여주십시오. 쌀이면 됩니다."군리가 장부를 펼쳤다."달포 전에 들어온 것이 있습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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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5화 [목소리] - 2 -

창고 안은 아직 연기가 가시지 않아 매캐했다.사람들이 젖은 포대를 옮기고, 목인을 거두고, 무릎 꿇린 자들을 묶었다.여섯은 창고 밖 담벼락 아래에 앉혀졌다.서리는 목인이 놓여 있던 나무판 앞으로 갔다. 판 위에 먹이 번져 있었다.찍다 만 포대 하나가 옆에 놓여 있었다. 남쪽 곡창의 표식이었다.군량고 포대에 찍혀 있던 것과 같은 모양이었다.그것을 집어 들려는 순간이었다.뒤에서 무언가가 서리의 팔을 낚아챘다.몸이 뒤로 끌렸다. 등이 누군가의 가슴팍에 부딪쳤고, 차가운 것이 목에 닿았다.낫이었다."물러서!"쉰 목소리가 귓가에서 터졌다. 쌓인 포대 뒤에 숨어 있던 자였다.창고 안이 한순간에 멎었다."다가오면 벤다. 문 열어. 문 열어!"날이 목에 닿아 있었다. 숨을 쉴 때마다 서늘한 것이 살갗을 스쳤다.서리는 숨을 얕게 쉬었다.그자의 팔이 떨리고 있었다.오른손에 낫을 쥐었고, 왼팔로 서리의 어깨를 감았다. 무게가 왼발에 실려 있었다.날은 안쪽으로 굽어 있어, 이대로 당기면 목을 벨 것이고, 밀면 빗나갈 것이었다.오른발을 밟고 몸을 왼쪽으로 떨어뜨리면.그러면 날이 바깥으로 미끄러진다.서리가 발끝에 힘을 모았다.그 순간, 낫을 쥔 손목이 옆에서 붙들렸다.뼈가 꺾이는 소리가 났다.그자가 비명을 지르며 낫을 떨어뜨렸다.서리를 감고 있던 팔이 풀렸고, 몸이 앞으로 밀려났다.뒤에서 무언가가 바닥에 내리꽂히는 소리가 났다.서리는 휘청이며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섰다.몸이 먼저 돌아서며, 입이 먼저 열리려 했다."마님."목소리가 들렸다."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백우였다.백우가 한쪽 무릎으로 사내의 등을 누른 채 서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사내의 팔이 이상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서리는 그 얼굴을 한 번 보았다."……없습니다.""목을 좀 보겠습니다.""괜찮습니다. 닿기만 했습니다."서리가 목에 손을 대어보았다. 손끝에 피는 묻어나지 않았다.백우의 사람들이 사내를 끌고 나갔다.서리는 그 자리에 잠깐 서 있었다.방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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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6화 [길 밖] - 1 -

서리가 이겸의 서재에 든 것은 창고를 치고 이틀이 지나서였다.서안 위에는 여전히 문서가 쌓여 있었다.왼쪽 더미는 북계에서 온 것이었고, 오른쪽 더미는 군량과 병부 쪽에서 올라온 것이었다.가운데 겨우 비워둔 자리에 이겸이 붓을 내려놓았다."앉으십시오."서리가 자리에 앉아 가져온 종이를 펼쳤다."창고 일로 왔습니다. 영안공의 명과 허가로 사람을 움직였으니, 결과는 아뢰어야지요."이겸이 고개를 끄덕였다.서리가 차례로 짚어 나갔다.창고 안에서 포대를 풀어 곡식을 섞고 다시 묶던 자리를 확인한 것.좋은 쌀 아래 묵은 쌀과 싸라기와 쭉정이를 깔아 넣었던 것.들이치자 안쪽에서 짚더미에 불을 놓았으나 크게 번지기 전에 잡은 것.안쪽 방에 갇혀 일하던 여섯을 꺼낸 것. 현장에 있던 자들을 묶어 넘긴 것."표식은 갇혀 있던 사람들이 찍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따로 드나드는 자가 찍었는데, 다들 왕 서방이라고만 불렀답니다.""그자는.""아직 모릅니다. 그날 밤 낫을 든 자가 그 사람인지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서리가 다음 장을 넘겼다."수레를 끌어간 자들은 동가 복색이었다고 합니다. 다만 그자들이 창고 안에서 무엇을 시킨 적은 없고, 실어 가기만 했다고요.""동가가 시켰다고 보십니까.""동가 사람이 드나들었다는 것까지는 압니다."서리가 답했다."누가 시켰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창고는 잡았지만, 창고를 움직인 손은 잡지 못했습니다."이겸은 그 말을 받지 않았다.서리가 보고하는 동안, 그의 눈은 종이보다 서리 쪽에 가 있었다.낫이 목에 닿았다고 했다. 백우에게 그 말을 들은 뒤로 이틀이 지났는데, 얼굴을 제대로 본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목덜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턱 아래에도, 옷깃이 닿는 자리에도 붉게 긁힌 자국 하나 없었다.이겸은 그것을 한 번 더 확인하고서야 눈을 조금 들었다.그 눈이 서리의 얼굴에 닿았다.양쪽 눈꼬리 아래에, 작은 점이 하나씩 있었다.늘 거기 있었을 것이었다. 다만 이만큼 오래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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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7화 [길 밖] - 2 -

지도 위의 점들이 궁성을 둘러싸고 있었다."경훤 왕자가 황제의 명을 거스른 흔적은 아직 없습니다."도은수가 말했다."다만 황제의 명을 따르는 동안, 도성의 요처가 하나씩 그 사람 손에 들어가고 있습니다."이겸은 지도를 한참 내려다보았다."황제를 지키고 있는 게 아니라, 황제에게 가는 길목마다 제 사람을 세워 두었군.""반역을 꾀한다고까지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알고 있다."이겸이 붓을 들어 지도 가장자리에 경훤의 이름을 적었다."우리는 계속 기다린다. 경천에게도, 경진에게도 손을 내밀지 않는다. 지금 이쪽이 움직이면 저쪽이 싸우다 말고 한 덩어리가 될 수 있으니.""예.""경훤은 따로 본다. 적으로 둘 것은 아니지만, 눈을 떼지 마라."—"그럼 저희는 이만—"도은성이 지도를 말아 들며 일어서려는데, 이겸이 서안 왼쪽의 문서 더미를 손으로 밀었다.더미가 쌍둥이 쪽으로 기울었다."북계에서 올라온 군량 기록이다. 병부 것과 맞춰 봐라."도은성이 서 있는 채로 그 더미를 내려다보았다."주군, 저희는 방금 도성에 닿았습니다.""알고 있다.""닷새를 말을 갈아타며 왔습니다.""그러니 앉아서 할 일을 주는 것이다."이겸이 오른쪽 더미도 마저 밀었다."이쪽은 훈련 보고와 인사다. 급한 것부터 추려서 올려라."도은수가 조용히 도로 자리에 앉았다. 도은성은 한참 서 있다가 도은수를 따라 앉았다."……폭거입니다."아주 작은 목소리였다.이겸은 들은 기색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며칠 만에 서안 앞이 비어 있었다.—이겸은 며칠째 미뤄 둔 시찰부터 돌기로 했다.말을 내라 이르고 나서면서 안채 쪽을 한 번 보았으나, 서리는 백우를 데리고 저자로 나가 있었다.이겸은 말머리를 북문으로 돌렸다.북문 초소 담당과 순찰을 맡은 군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병사 넷이 뒤를 따랐다."열흘에 한 번씩 돌라 했다.""예. 그 뒤로 한 번 돌았습니다."군관이 순찰 기록을 내밀었다. 날짜 아래 돈 자리와 본 것이 짤막하게 붙어 있었다.무너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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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8화 [안쪽] - 1 -

불은 병사 하나가 마른 솔가지를 묶어 만들었다.부싯돌을 두어 번 치자 가지에 불이 옮겨 붙었다. 군관이 그 불을 받아 들고 먼저 입구로 들어섰다."조심해라. 발밑부터 봐."이겸이 그 뒤를 따랐다.입구에서 몇 걸음은 사람 둘이 나란히 설 만했다.거기서 길이 한 번 왼쪽으로 꺾였고, 꺾인 자리 너머로 공간이 넓어졌다.불빛이 천장까지 닿았다. 서서 팔을 뻗어도 손끝이 닿지 않을 높이였다.바닥은 마른 흙과 모래였다. 벽 한쪽에 물이 흘러내린 자국이 희게 말라붙어 있었다."생각보다 넓습니다."군관이 불을 이리저리 비추며 안쪽까지 걸어 들어갔다."열 명은 비를 피하겠습니다. 밖에서는 안이 전혀 안 보이고요.""숨어들기에는 좋겠군.""예. 여기서 불만 안 피우면, 길 위에서는 누가 있는지 모릅니다."병사들이 벽을 두드려 보고, 바닥을 살피고, 안쪽 끝까지 불을 들이밀었다.막다른 곳이었다. 다른 데로 이어지는 구멍은 없었다."사람 든 흔적은 없습니다."이겸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넓어진 공간의 안쪽 벽 가까이에 서 있었다. 벽 아래에 허리께 높이로 바위가 턱처럼 튀어나와 있었다.이겸의 걸음이 거기서 멎었다.거친 바위였다. 누군가 앉았던 자리라면 닳아 있었을 텐데, 그런 것도 없었다.모서리가 날카로웠고, 위에는 흙먼지가 고르게 앉아 있었다.그런데 그 자리가 비어 있는 것 같지 않았다.누군가 거기 자주 앉아 있었던 것 같았다. 이렇게 서서 그 사람을 내려다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누구였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언제였는지도.이겸은 바위 턱을 보고 서 있었다."영안공."군관이 불러서야 고개를 돌렸다."다 보았습니다. 나가시겠습니까.""나가지."동굴 밖으로 나오자 해가 눈을 찔렀다. 이겸은 입구를 한 번 돌아보고 군관에게 일렀다."이 자리를 지도에 적어라. 길에서 몇 걸음, 어느 바위 뒤인지까지.""예.""순찰 길에 넣고, 돌 때마다 안까지 들여다봐라. 불 피운 자국이든 발자국이든, 사람이 든 흔적이 보이면 그날로 올려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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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9화 [안쪽] - 2 -

이헌은 한참 말이 없었다.지난번에 말하지 않은 것은 목연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이름을 입에 올리는 순간 그 물건이 무엇이 되는지를 알았기 때문이었다.그런데 그것을 찾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주인은 이미 죽었습니다."목연의 손이 무릎 위에서 멈췄다."임가의 딸, 아연입니다."목연도 아는 이름이었다. 반년 전 하룻밤 사이에 사라진 집안.얼마 전 그 식구들이 산에서 주검으로 나왔다는 말도 들었다.목연이 알고 있던 것은 오래된 귀한 손수건이었다.죽은 사람의 물건이었다."이번에는 제가 여쭙겠습니다."이헌이 말했다."그것을 어디서 얻으셨습니까."지난번에는 우연히 손에 들어왔다고만 했다.목연은 잠시 이헌을 마주 보았다. 그러고는 사실대로 말했다."저희 집 먼 방계의 사람이 떨어뜨린 것을 주웠습니다. 아버지 방 앞 회랑에서요."이헌의 얼굴이 굳었다."목가 방계.""예.""그 사람이 지금 그것을 찾고 있고요.""오늘도 그 자리에서 바닥을 보고 있었습니다."이헌은 찻잔을 내려다보았다.아연의 손수건이 어째서 목가 사람의 손에 있었는가.목연은 목연대로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죽은 사람의 물건을 어째서 집안사람이 품고 다녔는가.아버지는 그날 무엇을 태우라 한 것인가.그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이 일은 당분간 둘만 아는 것으로 하지요."이헌이 말했다."그리하겠습니다.""목 소저께서 곤란해지실 수도 있습니다.""압니다."목연이 답했다."그래도 모르고 있는 편이 더 곤란할 것 같습니다."이헌이 목연을 다시 보았다. 목연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돌아가는 가마 안에서 목연은 손을 무릎 위에 모으고 앉아 있었다.집에 닿으면 먼저 그 사람이 언제부터 아버지를 찾아왔는지부터 알아볼 생각이었다.아버지께 여쭙는 것은 그다음이었다.—영안궁 서재에서는 서리가 등잔을 두 개 켜 두고 있었다. 밤이 꽤 깊은 뒤였다.서안 위에 종이가 네 겹으로 펼쳐져 있었다.맨 위는 창고에서 거둔 쪽지들이었다. 판 밑에서 나온 것들이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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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0화 [사본] - 1 -

삼 년 전 장부를 몇 장 넘기지 않았을 때 서재 문이 열렸다.이겸이었다. 겉옷을 벗어 팔에 건 채 문턱에 서서 서안 위를 보았다."아직 안 주무셨습니까.""조금만 더 보려고요."이겸이 들어와 서안 맞은편에 앉았다.펼쳐진 장부 귀퉁이에 적힌 해를 보고, 그 옆에 밀어 둔 사 년 전 것을 보았다.무엇을 보고 있는지 묻지 않았다.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요즘은 왜 안 해주십니까."서리가 장부에서 눈을 들었다."어떤 걸 말입니까?""부르시는 거요."이겸이 말했다."창고 일 아뢰실 때도 영안공, 낮에 백우한테 저를 찾으실 때도 영안공이라 하셨다더군요. 다시 영안공이 되었습니다."서리가 잠시 이겸을 보았다.무엇을 말하는지 알았다. 마당에 볕이 남아 있던 날, 한 번 불렀던 말.그때 이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걸 여태 기억하고, 셈까지 하고 있었다.서리의 입가가 조금 풀렸다."알겠습니다, 서방님."이겸이 굳었다.앞에 두고 들을 말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얼굴이었다.청해 놓고 막상 들으니 어디에 둘지 모르는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서리는 그 얼굴을 한 번 더 보았다.그러고는 몸을 서안 너머로 조금 기울여, 이겸의 볼에 짧게 입을 맞췄다.이겸이 숨을 멈췄다.서리는 도로 자리에 앉았다. 장부를 끌어당기고, 넘기던 장을 찾아 손가락을 짚었다."팔월 스무날."서리가 장부를 읽기 시작했다."약재 서른 짐. 열나흘에 넘겨받기로 한 것이 엿새 늦어 이날 인계됐습니다."이겸은 아직 볼에 닿았던 자리를 그대로 두고 앉아 있었다."……예."한 박자 늦은 대답이었다."듣고 계십니까.""듣고 있습니다."이겸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서안 쪽으로 몸을 당겨 앉았다.서리는 장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입가만 조금 늦게 제자리로 돌아왔다.서리가 장부를 이겸 쪽으로 돌려놓았다."여기부터 보시면 됩니다."창고에 불이 나고 서가 수레 여섯 대가 동가로 간 것은 그 뒤, 시월의 일이었다.서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그보다 앞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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