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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los capítulos de 다시 고른 낭군: Capítulo 11 - Capítul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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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1화 [매듭] - 2 -

사내가 마지못해 인정했다. 씩 웃던 낯빛을 거두고, 앉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죽이란 말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도구는 어디서 났나.""직접 준비했습니다. 그쪽은 흔적 남을 물건은 주지 않습니다.""그럼 받은 것은."사내가 잠시 뜸을 들였다."……옷하고, 패하고, 시각하고, 설 자리입니다."이겸의 눈이 가늘어졌다."호위패를 받았나.""받았습니다. 옷도 같이요. 어디로 들어가서 어느 쪽으로 도는지도 들었고요. 저는 들은 대로만 걸었습니다.""그것을 준 자가 누구냐.""모릅니다. 얼굴 가린 자였습니다.""그자가 영안궁 안 사람인가.""그건 아닐 겁니다." 사내가 답했다. "안에 있는 자면 저를 쓸 까닭이 없지요. 다만 안에 아는 자가 있으니 그런 것까지 알았겠지요. 누군지는 저한테 말해주지 않습니다."서리는 바닥에 늘어놓인 물건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입을 열었다."기절시켜도 안 되었던 겁니까."사내의 시선이 서리에게로 옮겨갔다."……예?""여기 어디에도, 사람을 재우는 약은 없군요." 서리가 물건들을 가리켰다. "이런 일에는 보통 정신을 흐리는 약부터 챙기지 않나요."사내는 잠시 서리를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흘렸다."쓰지 말라 했습니다." 사내가 답했다. "깨어 있는 채로 데려오라고요. 정신 흐린 꼴도 안 되고, 상처 하나 내도 값을 못 받는다 했습니다. 왜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러라니까 그런 거죠.""그자와는 어떻게 닿나." 이겸이 다시 물었다."표식이 뜹니다." 사내가 손끝으로 허공에 문양을 그려 보였다. 서리는 그 형상을 눈에 새겼다. 어느 가문의 것인지는 짐작이 가지 않았다."어디에 있나.""그때그때 다릅니다. 제가 다니는 길목 어딘가에 나 있어요. 어디에 할지는 저쪽이 정합니다. 그게 보이면 일이 들어온 거고, 안 보이면 그냥 지나가는 겁니다.""보고 나면.""가서 만납니다.""어디서."사내가 이번에는 답하지 않았다."선금은 얼마였나."사내는 잠시 망설이다가 액수를 말했다. 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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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화 [살아남은 값] - 1 -

물그릇은 그대로 놓여 있었다.사내는 그것을 오래 바라보았다.일을 그르치면 값을 못 받는다. 그건 처음부터 알고 하는 일이었다. 접선이 끊기고, 다음 일이 들어오지 않고, 그 바닥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사라진 자들을 몇 봤다.거기까지는 셈에 들어 있었다.붙잡힌 뒤에 사람을 들여보내는 건 아니었다."저를 죽이려고 여기까지 사람을 넣었단 말입니까."사내가 낮게 물었다. 대답을 바라는 물음은 아니었다.이겸은 답하지 않았다."제가 뭘 압니까."사내가 제 무릎께를 내려다봤다."의뢰한 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중간에서 주고받은 자 이름도 모릅니다. 얼굴도 제대로 못 봤고요. 저는 그냥 시키는 대로 들어왔다 나가는 놈입니다. 그런 놈을 굳이……"말끝이 흐려졌다.그러다 사내의 눈이 다시 물그릇 쪽으로 돌아갔다.모른다고 생각한 건 자기 쪽이었다.저쪽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저쪽이 보기에, 이 안에 무언가 위험한 것이 들어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사내 자신도 몰랐다."……하나 여쭙겠습니다."사내가 고개를 들었다."제가 오늘 이 물을 마셨으면, 그쪽에서는 그걸로 끝이었겠지요.""그랬겠지.""그럼 저는 여기서 값을 다시 받아야겠군요."이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오늘은 여기까지 하지.""내일은 제가 먼저 말하겠습니다."사내가 그 등에 대고 말했다."밤에 좀 생각해볼 것이 있어서요."—이튿날 아침, 백우가 다시 명부를 들고 왔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주군. 어제 물을 나른 자를 찾았습니다만—"백우가 잠시 뜸을 들였다."이미 자리에 없었습니다.""차복 때와 같은 수법인가.""아닙니다. 이번엔 이름을 지어내지 않았습니다. 원래 물 담당인 하인이 있는데, 그자에게 급한 전갈이 왔다며 자리를 비우게 했습니다. 그 틈에 다른 자가 들어와, 그 하인의 이름을 대고 물을 날랐습니다."이겸의 눈이 가늘어졌다."그 하인 이름을 댈 수 있으려면.""예. 영안궁 안에서, 누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를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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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화 [살아남은 값] - 2 -

심문이 끝난 뒤, 세 사람은 다시 명부를 펼쳐놓고 앉았다."명부는 계속 맞춰보고 있습니다만,"백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가려낼 실마리가 마땅치 않습니다. 안에서 길을 내주는 자가 있다는 것 말고는.""그자를 어떻게 가려낼 겁니까."서리가 물었다."동선이 겹치는 자들부터 하나씩 줄여가는 수밖에 없습니다."백우가 답했다."다만 그러려면 시간이 걸립니다.""시간을 줄일 방법이 있다면."이겸이 말했다."누가 흘렸는지보다, 누가 알아낼 수 있었는지부터 좁혀야겠지."서리는 잠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입을 열었다."사람을 바꿔 끼우는 수법이, 조금 낯익습니다."이겸의 시선이 서리에게로 향했다."이런 건 살림을 아는 자의 솜씨예요. 어느 시각에 누가 어디를 지나는지, 그건 경비를 서는 자보다 안살림을 도는 사람이 더 잘 압니다."서리가 손끝으로 상 위에 선을 그어 보였다."교대를 하나 비우려면 그 자리에 누가 있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물을 나르는 자를 바꿔 끼우려면 그날 누가 그 일을 맡았는지를 알아야 하지요. 그 둘은 다른 자리에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호위 쪽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호위 쪽이면 제 조가 아닌 곳의 물 담당까지는 모릅니다."서리가 답했다."사람을 붙이고 빼는 것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자리여야 합니다. 그런 자리는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백우가 명부를 다시 끌어당겼다."안살림 쪽 전갈을 내려보내는 자리라면……""명부를 고친 자부터 다시 짚어라."이겸이 말했다."그자는 전갈을 받고 적었을 뿐이다. 그 전갈이 어디서 왔는지를 따라 올라가."—전갈은 사람을 거쳐 왔다고 했다. 그 사람을 찾는 데 하루가 걸렸다. 찾고 보니 그자 역시 전달만 했다. 그 위로 한 번 더 올라갔다.거기서 이름이 하나 나왔다."손영달입니다."백우가 이겸 앞에 기록을 펼쳤다."영안궁에서 삼 년 가까이 일했습니다. 안살림 쪽 일을 봤고, 사람 오가는 것을 정리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교대가 바뀌는 전갈을 내려보낼 만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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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4화 [거둔 손 ] - 1 -

"깨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그리 움직인단 말이냐.""그리 전해 들었습니다.""어디까지 닿았다더냐.""명부를 고친 자까지는 이미 확인한 듯합니다. 그 위로 올라오는 중이라 합니다.""그 위는.""손영달입니다."왕후의 바늘이 천을 한 번 통과했다."지금은 어디 있지.""그날로 빠졌습니다. 거처도 비웠고, 영안궁 쪽에서 찾아갔을 때는 이미 없었다 합니다.""그럼 거기서 끊기겠구나."바늘이 한 땀 더 지나간 뒤에야, 손이 다시 멈췄다."더는 손대지 마라.""예.""쓰던 길은 닫고, 사람을 물려라. 통행표는 전부 회수하고, 연락하던 자들도 자리를 바꿔라.""회수가 어려운 것도 있습니다. 이미 밖으로 나간 것은—""나간 것은 두어라. 지금 거둬들이려 하면 그것부터 눈에 띈다."왕후가 실을 한 번 당겼다."영안궁과 닿았던 자들은—""당분간 숨겨두어라."왕후가 수틀을 다시 들며 말했다."말단은 버려도 좋다. 죽이지는 말고.""포로는 어찌할까요.""그냥 두어라."상궁이 잠시 고개를 들었다."입을 열면—""열어봐야 아는 것이 없다."왕후가 답했다."한 번 손을 댔다가 실패했으니, 또 손을 대면 그것이 답이 된다. 저쪽은 지금 그 답을 기다리고 있을 게다."상궁은 고개를 숙인 뒤 물러갔다.왕후는 다시 바늘을 놀리기 시작했다. 방 안에는 실이 천을 통과하는 소리만 남았다.—같은 날 아침, 영안궁이었다.서리는 서안 아래에 넣어두었던 종이를 다시 꺼냈다.세 번째로 그린 것이었다. 밤에 볼 때보다 선이 거칠어 보였지만, 모양은 그대로였다."감씨.""예, 마님.""이것을 본 적이 있느냐."감씨가 종이를 받아 들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방향을 한 번 돌려 보기도 했다."……처음 봅니다.""어느 가문 것인지도 짐작이 가지 않고.""제가 아는 문장은 아닙니다."감씨가 종이를 도로 내려놓았다."그런데 이게 문장 같지가 않습니다. 가문 것이라면 이렇게 단순하게 쓰지 않지요. 이건 뭐랄까, 보고 알아보기만 하면 되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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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화 [거둔 손 ] - 2 -

"부인은 아직 영안궁에 있고.""그렇습니다. 나가셨다는 말은 없습니다.""둘이 함께 사람을 만난다고 했나.""어제도 그리 들었습니다."이헌은 그 대답을 곱씹었다. 서리의 지목은 애초에 진심일 리 없었다. 저를 향한 시위, 혹은 순간의 치기. 죽어가는 자를 고른 것도 그래서라 여겼다. 오래 갈 것 없는 혼인— 한때의 시위로 끝날 일이었다.그런데 그자가 깨어났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서둘러 물리겠다는 청이 와야 했다. 영안공 쪽에서도, 제 뜻과 무관하게 맺어진 혼인을 붙들 이유가 없었다.하지만 둘 다 움직이지 않았다.'체면 때문이겠지.' 이헌은 그렇게 생각했다가, 곧 스스로 그 생각을 지웠다. 체면만으로 왕실의 연락까지 함께 가려 받을 이유는 없었다.'영안공이 서가의 것을 탐내는 건가.'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겸은 왕의 아우이자, 전공만으로도 이미 제 몫의 권세를 가진 자였다. 왕위를 넘볼 뜻이라도 품지 않은 이상, 굳이 서가의 재산과 가신까지 탐낼 이유가 없었다.'그렇다면 왕실이 결정을 미루고 있는 건가.'그것도 아니었다. 물릴 뜻이 없다는 건, 최소한 서리 쪽에서는 분명한 태도였다.이헌은 붓을 다시 종이에 대었다. 어느 쪽으로 갖다 붙여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결국 붓끝에 힘이 들어갔고, 얇은 종이 한 귀퉁이가 먹물에 젖어 찢어졌다.내관을 물린 뒤, 이헌은 낮게 혼잣말을 했다."병상에서 맺어진 혼인이, 오래갈 리 없다."누구에게랄 것도 없는 말이었다.그 말을 뱉고 나서야, 서리가 이겸의 곁에 있다는 사실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아주 짧은 잔상 하나가 스쳤다. 계단 위, 돌아서는 여인의 뒷모습.이헌은 짜증스럽게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잔상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요즘 잠을 잘못 자서 그런가.'이헌은 그렇게 넘기고, 다시 붓을 들었다.—백종길이 영안궁에 든 것은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외부인의 출입이 드러나지 않도록, 백우가 직접 뒷문으로 그를 들였다. 후원 쪽 별당으로 드는 동안 노인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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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화 [빗장] - 1 -

"도성 외곽, 하가의 창고에서 쓰는 사패입니다."백종길이 종이에서 눈을 떼며 말했다. 별당에는 서리와 이겸, 백우가 함께 자리해 있었다."정식 가문 문장은 아닙니다. 물건과 사람의 출입을 가르는 표식이지요. 예전에 군량과 마필을 대던 시절, 도성 창고들과 거래하며 익힌 겁니다.""하가에 대해 아시는 건 얼마나 됩니까."서리가 물었다."직접 오간 적은 없습니다."백종길이 신중하게 답했다."다만 그 창고와 거래하던 상단 몇은 압니다. 서가에 마초를 대던 박가 객주가, 하가 쪽 창고에도 물건을 넣었을 겁니다. 그 밑에 수레꾼 패도 여럿이고요.""벼슬이 낮은 집안이라 들었는데.""그리 들었을 뿐입니다."백종길이 선을 그었다."직접 확인한 바는 아니니, 아는 것과 짐작은 나눠 아뢰어야지요."서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히 가르는 태도가, 오히려 믿음이 갔다."그 거래처들은 지금 어떻습니까."백종길이 잠시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예전에 서가와 닿아 있던 데가 스물쯤 됩니다. 그중에 문을 닫은 곳이 넷이고, 주인이 바뀐 곳이 대여섯입니다.""바뀐 곳은.""새 주인이 누구 밑으로 들어갔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서가가 기운 뒤에 다른 집안으로 옮겨 앉은 데도 있을 테니까요."백종길이 종이 한 장을 끌어다 이름을 적어 내려갔다."그런 데는 이번에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저쪽에 소식이 먼저 갑니다.""남는 곳은 몇입니까.""예전 사람이 그대로 있는 데가 예닐곱쯤입니다."백종길이 적은 것 중 셋에 표를 했다."그중에서도 하가 창고까지 닿는 곳은 박가 객주 하나입니다. 마초를 대던 집인데, 주인이 그대롭니다. 나이가 저보다 조금 아래고요.""그 연이 지금도 닿습니까.""닿긴 합니다만……"백종길이 잠시 말끝을 흐렸다."서가에서 먼저 사람을 보낸 지는 오래됐습니다. 대감마님과 마님, 도련님들이 가시고 나서는, 저도 앞에 나설 처지가 아니었으니까요.""그 연을, 다시 이어주십시오."서리가 말했다."박가 객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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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7화 [빗장] - 2 -

제 17화 [빗장] - 2 -답이 온 것은 이틀 뒤였다.박가 객주는 서찰을 들려 보낸 자를 통해 날짜와 자리를 정해 왔다. 백종길이 그 자리에 나갔고, 돌아온 것은 저물녘이었다."뵙고 왔습니다."백종길이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어떠셨습니까.""반가워는 하더군요."말끝이 조금 눌려 있었다."다만 곧바로 그러마고는 하지 않았습니다."서리가 그 말을 받았다."무엇을 물었습니까.""영안공부인의 뜻이 맞느냐고 먼저 물었습니다."백종길이 잠시 뜸을 들였다."그다음에는, 영안궁에서도 아는 일이냐고 물었고요."예전에는 그런 것을 묻지 않았다.서가에서 왔다고 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무엇이 필요한지만 말하면 되었고, 뒤에 누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자리는 없었다.묻는 쪽은 늘 서가였다.백종길은 그 자리에서 잠깐 대답을 골랐다.목패를 품에서 꺼내 보이지는 않았다. 꺼내 보였어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었다."그래서 뭐라 답하셨습니까.""부인의 뜻이 맞고, 영안궁에서도 아는 일이라 했습니다."백종길이 답했다."그랬더니 그 사람이, 영안공께서는 아직 그러시지 않느냐고 하더군요."서리가 고개를 들었다."깨어나신 것을 모르더군요."백종길이 말했다."제가 그 자리에서 말했습니다. 이미 일어나셔서 영안궁 일을 직접 보고 계시다고요.""믿던가요.""처음에는 안 믿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거짓말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백종길이 짧게 웃었다."차를 두 번 더 채우고 나서야 말이 달라졌습니다.""그자가 몸을 사린 것을 나쁘게 보지는 마십시오."백종길이 덧붙였다."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지금 서가가 어떤 자리인지는 도성 사람이면 다 압니다. 영안공과 혼례하셨다는 것도 알고, 그 집이 지금 어떤 형편인지도 어림잡고 있고요.""그렇겠지요."서리가 답했다.목소리에 상한 기색은 없었다."서가의 이름만으로 문이 열리던 때는 지났습니다. 그건 저도 압니다.""……""지금 제게 있는 것으로 열면 됩니다."영안공부인이라는 자리도, 깨어난 이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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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화 [부채] - 1 -

두 사람은 혼인 후 처음으로 함께 입궁했다.정식으로 왕께 인사를 올리는 자리였다. 이겸의 회복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겠다며, 왕은 벌써 몇 차례나 입궁을 재촉해왔다. 이겸은 몸이 아직 여의치 않다는 핑계로 미뤄왔지만, 더는 미룰 수 없는 자리였다.궁인들의 시선이 두 사람을 스쳤다. 석 달을 죽어가던 왕족과, 그를 골라 낭군으로 삼은 여인. 궁 안을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낯선 조합이었다. 서리는 그 시선들을 굳이 피하지 않고 지나쳤다.—정전 안은 서늘했다.이겸이 먼저 예를 올렸고, 서리가 그 뒤를 따랐다."영안공 이겸, 부인 서리. 폐하를 뵙습니다."왕의 시선이 이겸에게 먼저 머물렀다. 석 달을 누워 있던 사람이 제 발로 서 있었다. 얼굴에 아직 핏기가 덜 돌았으나, 등은 곧았다."살아 돌아왔구나.""염려 끼쳐 송구합니다.""염려는 짐만 한 것이 아니다."왕의 시선이 서리에게로 옮겨갔다."영안공부인이라.""예, 폐하.""곁을 지켰다 들었다.""의관들이 애썼습니다. 저는 곁에 있었을 뿐입니다."왕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영안공의 몸이 아직 온전치 않을 것이다. 안에서 살피거라.""명심하겠습니다."그것으로 공식적인 인사는 끝났다.왕이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영안공은 잠시 남거라."서리가 물러날 때, 이겸이 그 등을 잠깐 눈으로 좇았다.—전각 밖으로 나오자 볕이 눈을 찔렀다.내관 하나가 다가와 기다릴 자리를 안내하려 했으나, 서리는 사양했다."뜰이나 걷겠습니다."봄빛이 이제 막 완연해지는 계절이었다.서리는 회랑을 따라 걸었다.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생각한 적이 없었다. 셋째 기둥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회랑이 끊기고, 거기서 돌계단 다섯을 내려가면 후원이었다.발이 먼저 그쪽으로 향했다.—왕후였던 시절의 서리는 이 후원을 자주 걸었다.왕의 처소와 왕후궁은 멀지 않았다.처음에는 그것이 좋다고 생각했다.마음만 먹으면 걸어서 닿는 거리였다. 아침에 문안을 올리고, 저녁에 한 번 더 들러도 무리가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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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화 [부채] - 2 -

왕후궁 쪽에서 사람 소리가 났다.여럿이었고, 웃음이 섞여 있었다.저쪽은 왕후궁 방향이었다.곧 회랑 저편에서 여인 넷이 걸어 나왔다.가운데 선 여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유백색 저고리에 연분홍 치마, 소매 끝에는 이제 막 벙그는 백목련이 곱게 수놓여 있었다. 화려하다기보다는, 어디 한 군데 흠잡을 데 없이 단정하게 완성된 인상이었다.지나가던 궁녀가 그 여인을 보고 먼저 허리를 숙였다."목 아가씨, 오셨습니까.""오랜만이구나. 네 어미는 좀 나으셨느냐.""예, 덕분에요."서로의 걸음이 가까워지자 양쪽 다 자연스럽게 멈췄다.일행 중 하나가 서리를 보고 눈을 깜빡였다."처음 뵙는 분 같은데, 누구신지요."가운데 선 여인이 먼저 예를 갖췄다."목가 연이라고 합니다.""서가 리입니다."잠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그러다 왼쪽의 여인이 작게 소리를 냈다."서가 리…… 혹시, 영안공부인 아니십니까.""어머."여인들이 서로를 한 번씩 보았다. 이름은 익히 들었으나 얼굴은 처음이라는 반응이었다.목연도 그제야 서리를 다시 보았다. 방금 전까지는 처음 보는 여인이었다."진작 알아뵙지 못해 송구합니다."오른쪽의 여인이 급히 예를 갖췄다."괜찮습니다.""그런데 영안공부인께서는 어찌 혼자 계세요.""폐하께서 영안공을 잠시 남기셔서요. 기다리는 동안 후원을 걷고 있었습니다.""그럼 오늘 영안공께서도 함께 입궁하신 건가요.""예."여인들 사이에 잠깐 말이 끊겼다."많이 나으셨나 봐요."왼쪽의 여인이 조심스레 물었다."많이 나아지셨습니다.""저는 아직 자리에 계신 줄만 알았어요. 함께 입궁하셨다기에 놀랐습니다.""저도 그리 알았는데, 그럼 이제 거동도—""어머, 한 분씩 물으셔야지요."목연이 부채를 살짝 들어 보였다. 웃음기 있는 목소리였고, 나무라는 기색은 없었는데 말이 그 자리에서 멎었다."오늘 처음 입궁하셨는데 영안공 이야기만 여쭤보면, 정작 궁 구경도 못 하시겠어요.""아, 그렇네요.""송구합니다."서리는 그
last updateÚltima actualización : 202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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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화 [손] - 1 -

서리가 물러난 뒤, 전각 안에는 왕과 이겸, 둘뿐이었다.왕은 문이 닫힌 뒤에도 한동안 이겸을 바라보았다. 예복의 목깃이 전보다 헐거워 보였다."많이 야위었구나."이겸이 다시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형님."왕은 고개를 숙인 아우를 내려다보다가 옆자리를 가리켰다."인사는 아까 받았다. 이리 앉거라."이겸은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곧바로 몸이 펴지지 않아 잠깐 멈췄다. 왕이 자리에서 몸을 기울였으나, 이겸이 먼저 허리를 세웠다."괜찮습니다.""앉은 뒤에 해도 될 말이다."이겸은 잠시 그 자리를 보다가 맞은편에 앉았다. 왕은 잔을 하나 당겨 차를 따랐다."탕약은 아직 먹느냐.""예."왕은 찻주전자를 내려놓고, 차를 따른 잔을 이겸 쪽으로 밀었다.이겸은 잔을 들기 전에 그 손을 잠깐 바라보았다.오래전에도 저 손이 제 앞에 내밀어진 적이 있었다.—그날 아침, 늘 이겸을 깨우던 시종이 오지 않았다.대신 들어온 자는 씻을 물을 내려놓고 옷을 꺼냈다. 띠를 매는 손이 익숙하지 않아 두 번이나 풀었다.이겸은 그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물었다."어제 있던 사람은 어디 갔느냐.""다른 곳으로 배속되었다고 들었습니다.""어디로.""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아침상을 물린 뒤 이겸은 행랑까지 가서 다시 물었다.돌아온 답은 비슷했다. 배속이 바뀌었다는 말뿐이었다. 어디로 갔느냐고 물으면 담당자에게 물으라 했고, 짐은 이미 빠져 있었다.어제 저녁에도 그 사람은 이겸의 곁에 있었다.소매 끝이 뜯어진 것을 보고 내일 갈아입을 옷을 따로 꺼내두겠다 했다. 다른 데로 간다는 말은 없었다.이겸은 처소 앞까지 갔다가 발을 돌렸다.빈 전각 뒤편에는 담과 나무 사이로 좁은 자리가 있었다. 회랑에서 내려다봐도 잘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이겸은 그곳에 앉아 무릎을 끌어당겼다.종종 이곳에 숨곤 했다. 그럴 때마다 시종은 한참 뒤에라도 그를 찾아냈다.흙바닥에 작은 돌 하나가 박혀 있었다.손톱으로 가장자리를 파내자 돌이 빠졌다. 이겸은 그것을 손안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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