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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화 [살아남은 값] - 1 -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24 00:23:37

물그릇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사내는 그것을 오래 바라보았다.

일을 그르치면 값을 못 받는다. 그건 처음부터 알고 하는 일이었다. 접선이 끊기고, 다음 일이 들어오지 않고, 그 바닥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사라진 자들을 몇 봤다.

거기까지는 셈에 들어 있었다.

붙잡힌 뒤에 사람을 들여보내는 건 아니었다.

"저를 죽이려고 여기까지 사람을 넣었단 말입니까."

사내가 낮게 물었다. 대답을 바라는 물음은 아니었다.

이겸은 답하지 않았다.

"제가 뭘 압니까."

사내가 제 무릎께를 내려다봤다.

"의뢰한 자가 누군지도 모르고, 중간에서 주고받은 자 이름도 모릅니다. 얼굴도 제대로 못 봤고요. 저는 그냥 시키는 대로 들어왔다 나가는 놈입니다. 그런 놈을 굳이……"

말끝이 흐려졌다.

그러다 사내의 눈이 다시 물그릇 쪽으로 돌아갔다.

모른다고 생각한 건 자기 쪽이었다.

저쪽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저쪽이 보기에, 이 안에 무언가 위험한 것이 들어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사내 자신도 몰랐다.

"……하나 여쭙겠습니다."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제가 오늘 이 물을 마셨으면, 그쪽에서는 그걸로 끝이었겠지요."

"그랬겠지."

"그럼 저는 여기서 값을 다시 받아야겠군요."

이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내일은 제가 먼저 말하겠습니다."

사내가 그 등에 대고 말했다.

"밤에 좀 생각해볼 것이 있어서요."

—

이튿날 아침, 백우가 다시 명부를 들고 왔다. 표정이 굳어 있었다.

"주군. 어제 물을 나른 자를 찾았습니다만—"

백우가 잠시 뜸을 들였다.

"이미 자리에 없었습니다."

"차복 때와 같은 수법인가."

"아닙니다. 이번엔 이름을 지어내지 않았습니다. 원래 물 담당인 하인이 있는데, 그자에게 급한 전갈이 왔다며 자리를 비우게 했습니다. 그 틈에 다른 자가 들어와, 그 하인의 이름을 대고 물을 날랐습니다."

이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하인 이름을 댈 수 있으려면."

"예. 영안궁 안에서, 누가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를 아는 자여야 합니다."

"본 사람은."

"셋입니다. 다들 물그릇을 든 자가 지나가는 걸 봤다고 하는데, 얼굴을 말해보라 하니 아무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습니다."

"복장은."

"평범했다고 합니다. 특별히 눈에 띈 게 없었다고요." 백우가 명부를 내려다봤다. "물을 나르는 자를 유심히 보는 사람은 없습니다."

"셋의 말이 서로 어긋나는 데는."

"없습니다. 어긋날 만큼 본 것이 없어서요."

—

포로는 어제보다 자세가 달라져 있었다. 결박은 그대로였지만, 등을 벽에 기댄 채 앉아 있었다.

"물을 가져온 자 얼굴은 봤나."

사내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는 못 봤습니다. 물만 내려놓고 나갔습니다.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진 않았고요."

"기억나는 게 하나도 없나."

"없습니다. 그냥 물 나르는 놈인 줄 알았지요."

사내가 짧게 웃었다. 웃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제가 이러고 있는 거 아닙니까."

이겸은 그 말을 받지 않았다.

"어제 하지 않은 말이 있나."

"있습니다."

사내가 곧바로 답했다.

"어제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서 안 한 것들이 있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고요."

"말해보게."

"중개인 손 말입니다."

사내가 제 손을 내려다봤다.

"얼굴은 가렸어도 손은 못 가리더군요. 굳은살이 여기, 이쪽에 박혀 있었습니다."

사내가 자신의 검지와 중지 사이를 짚어 보였다.

"칼을 잡는 손은 아니었습니다. 손가락 마디에, 붓을 오래 쥔 흔적이 있었죠."

이겸도 서리도 그 말에 바로 대꾸하지 않았다. 붙잡아둘 만한 조각이었지만, 지금 당장 무엇과 이어질지는 알 수 없었다.

"어제는 왜 말하지 않았나."

"그게 뭐 대단한 겁니까."

사내가 어깨를 으쓱였다.

"손에 굳은살 있는 놈이 한둘도 아니고요. 어제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지금은 제가 뭘 알고 있는지 저도 모르겠으니까요."

"몇 번이나 만났나."

"이번 일까지 세 번입니다."

"매번 같은 자였나."

"목소리는 같았습니다. 얼굴은 늘 가리고 있었고요."

"몸집은."

"보통이었습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고요."

사내가 잠시 생각하다 덧붙였다.

"지금 떠올려보려니 그것도 잘 안 잡힙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세 번이나 봤는데."

"말이 많은 자였나."

"아닙니다. 필요한 것만 말합니다."

사내가 덧붙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달랐습니다."

이겸의 시선이 들렸다.

"평소에는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오라, 그 정도입니다. 이번에는 영안궁 안 이야기를 꽤 했습니다. 어느 문으로 들어가서 어느 쪽으로 돌고, 몇 시에 누가 어디 서 있는지까지요."

"그걸 어떻게 안다고 하던가."

"그런 건 안 묻습니다."

사내가 답했다.

"다만 종이를 보고 읽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외우고 있는 사람처럼 말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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