بيت / 로맨스 / 이혼 전 금욕주의 / Chapter 61 -الفصل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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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재하는 한동안 손을 거두지 않았다. 손등에 닿는 온도가 미지근했다.미열이었다.이 정도로 회사를 쉴 사람은 아니었다. 내일도 평소처럼 일어나 출근할 게 뻔했다.그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아프면 쉬면 될 일을 굳이 평소처럼 해내려 드는 것도 하루 이틀 본 게 아니었다.재하는 서인의 이마에서 손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방을 나가기 전 침대 위를 한 번 더 봤지만 서인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그대로 문을 닫았다.***아침 식탁에 마주 앉은 서인은 평소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출근 준비를 마친 차림에 화장도, 머리도 평소 그대로였다.재하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두통은요.”“괜찮아요.”“약은 챙겼어요?”“네. 좀 이상하면 또 먹으려고요.”“그래요.”재하는 커피잔을 다시 들었다.서인은 아침을 평소보다 적게 먹었다. 달걀에는 거의 손도 대지 않았고 토스트도 반쯤 남겼다. 커피 역시 몇 모금 마시다 그대로였다.멀쩡하다는 사람치고는 형편없었다.그래도 더 먹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식사를 마친 재하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가죠.”어젯밤 말한 대로 오늘은 같이 출근하기로 했다.차가 출발하자마자 서인은 휴대전화를 꺼냈다. 밤사이 들어온 메일을 빠르게 확인하더니 곧 한성 재무팀에 전화를 걸었다.“그 자료는 오전 중으로 다시 주세요. 매각 일정도 같이요.”몇 가지를 더 확인한 뒤 통화를 끊었다.서인은 곧바로 다음 메일을 열었다. 화면을 내리던 손이 멈추고 다시 위로 올라갔다. 첨부 파일 하나를 열어 한참 들여다보다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재하는 옆에서 태블릿을 켰다.차가 한성그룹 본사 진입로로 들어서자 서인이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었다.“다녀올게요.”“점심 잘 챙겨 먹어요.”“네.”기사가 뒷문을 열었다.서인이 몸을 돌리려는 순간 재하가 덧붙였다.“아프면 연락해요.”서인이 멈췄다.“네?”“연락하라고요. 아프면.”“……재하 씨한테요?”재하는 태블릿에서 눈을 들었다.“그럼 누구한테 해요.”서인이 잠시 그를 바라봤다.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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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재하를 태운 차가 차고로 들어설 때, 맞은편에서 검은 세단 한 대가 빠져나왔다.손목시계를 확인하니 여덟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서인이 평소보다 일찍 들어온 모양이었다.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자 아래층은 조용했다. 재하는 곧장 위층으로 올라가 서인의 방문을 두 번 두드렸다.대답이 없었다. 한 번 더 노크하고 기다리자 그제야 안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네.”문을 열자 서인은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재킷만 벗어 의자에 걸어뒀을 뿐 블라우스와 슬랙스는 출근할 때 그대로였고, 가방도 침대 옆에 내려놓은 채였다. 들어오자마자 누운 모양이었다.“언제 왔어요?”“한 시간쯤 됐어요.”“일찍 왔네.”“네.”아침에 봤을 때보다 안색이 더 좋지 않았다. 재하는 침대 가까이 다가가 서인의 얼굴을 한번 살폈다.“저녁은요.”“아직요.”“먹고 싶은 건 없어요?”“별로요.”“사거리에서 파는 평양냉면이라도 사 올까요?”그제야 서인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갑자기요?”“그거 좋아하잖아.”서인은 잠깐 생각해보는 듯하더니 고개를 저었다.“됐어요.”평소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음식이었다. 재하는 누워 있는 서인을 잠깐 내려다보다가 말했다.“아프면 연락하라니까.”서인이 재하를 한번 쳐다봤다.“……까먹었어요.”“빈말 아니었는데.”마주친 시선을 먼저 피한 건 서인이었다.“진짜 까먹은 거예요.”“그래요.”재하는 더 묻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쉬어요.”열한 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재하는 거실 소파에 앉아 남은 자료를 보고 있었다. 위층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자 곧 계단 쪽으로 느린 발소리가 이어졌다.서인이 난간을 짚은 채 내려오고 있었다.“안 잤어요?”“자다가 깼어요. 물 마시고 싶어서.”몇 계단 내려오던 서인이 걸음을 멈췄다.“왜 그래요.”“좀 추워서.”집 안은 춥지 않았다. 재하는 보던 자료를 내려놓고 계단을 올라가 서인 앞에 섰다. 가까이에서 보니 눈가가 열에 젖어 있었고, 뺨에는 아까 없던 붉은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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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금요일 저녁, 서인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했다.하루를 쉬고 출근한 덕인지 몸은 거의 회복되어 있었다. 오후까지 남아 있던 두통도 퇴근할 무렵에는 사라졌고, 집에 도착했을 때는 며칠 만에 제대로 된 저녁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재하는 거실에 있었다. 소파 한쪽에 앉아 태블릿을 보고 있던 재하가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왔어요?”“네.”“몸은요.”“괜찮아요.”재하는 대답 대신 서인의 얼굴을 한번 훑어봤다.서인은 주방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딱히 찾는 것도 없으면서 안쪽까지 한번 들여다보다가 문을 닫으려는데,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재하 씨.”“네.”“그 평양냉면.”재하가 태블릿에서 눈을 들었다.“왜요.”“아직 유효해요?”재하는 서인을 한번 보더니 태블릿을 내려놓았다.“다 나았나 보네.”“나았다니까요.”“사 올게요.”재하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서인이 고개를 저었다.“가서 먹고 올래요?”“그러든가.”재하는 소파에 두었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화면을 몇 번 눌렀다.“뭐 해요?”“차 대기시켜 놓으려고.”서인은 창밖을 한번 봤다. 해가 진 뒤였지만 하늘은 맑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보니 밖도 그리 덥지는 않을 것 같았다. 사거리까지라면 멀지도 않았다.“날씨도 좋은데 걸어갔다 올래요?”휴대전화를 보던 재하의 손이 멈췄다.“걸어서?”“네. 가까우니까.”재하가 서인을 봤다.“괜찮겠어요?”“저 이제 환자 아니라니까요.”“어제까지만 해도 열이 안 떨어졌잖아요.”“그래서 안 갈 거예요?”재하는 잠시 서인을 보다가 켜져 있던 휴대전화 화면을 껐다.“누가 안 간대요.”***밖으로 나오니 생각했던 것보다 날이 좋았다.낮보다 선선해진 바람이 불 때마다 가로수 잎이 가볍게 흔들렸다. 길을 따라 켜진 가로등 불빛이 인도 위로 드문드문 번지는 가운데 늦은 시간이라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둘은 나란히 사거리 쪽으로 걸었다.차로 오갈 때는 금방 지나치던 길이었다.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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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토요일은 모처럼 별일 없는 하루였다.서인은 늦은 오전부터 밀린 업무를 집에서 처리했고, 재하도 대부분의 시간을 서재에서 보냈다. 저녁 무렵 잠깐 마주쳐 함께 식사한 것 말고는 평소와 다를 것도 없었다.그렇게 별일 없이 토요일이 지나고, 다음 날 아침이 됐다.외출 준비를 마친 서인이 시간을 확인하니 아홉 시 오십 분이었다. 가방을 챙겨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재하는 먼저 나와 있었다.검은 셔츠에 짙은색 재킷을 걸쳤고 넥타이는 하지 않았다. 서인이 마지막 계단을 내려오자 보고 있던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갈까요?”“네.”두 사람이 함께 집을 나섰다. 현관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던 서인은 주차된 차를 보고 걸음을 조금 늦췄다. 평소 타던 의전 차량이 아니라 재하의 개인 차였다.재하가 운전석 문을 열었다.“직접 운전해요?”“네.”“기사님은요?”“오늘은 안 불렀어요.”재하가 차에 올라타며 덧붙였다.“산길에서 또 멀미할까 봐.”결혼하고 처음 어머니의 기일에 함께 갔던 해에는 기사가 운전했다. 산길에 들어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인이 차를 세워달라고 했고, 그다음 해부터 재하는 이곳에 올 때면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서인은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맸다.컵홀더에는 생수병이 하나 놓여 있었고, 그 옆에는 작은 약 상자와 노란 포장의 레몬 사탕 몇 알이 있었다. 서인은 그중 약 상자를 집어 들었다.“이건 뭐예요?”“멀미약. 지금 먹어요.”서인은 별말 없이 상자를 열어 한 알을 꺼내 물과 함께 삼켰다. 생수병을 내려놓자 이번에는 재하가 레몬 사탕 하나를 건넸다.“이건 왜요?”“서비스.”서인이 피식 웃으며 받아 들었다.노란 포장을 벗겨 사탕을 입에 넣자 새콤한 맛이 먼저 퍼졌다. 재하가 차를 출발시킬 때 대시보드의 시계는 막 열 시를 넘어가고 있었다.일요일 오전이라 도로는 비교적 한산했다. 막히는 구간 없이 서울을 벗어나자 창밖으로 이어지던 높은 건물도 조금씩 드물어졌다.서인은 한동안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지만 멀미약을 먹은 탓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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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래쪽에서 사람 발소리가 들렸다. 서인이 먼저 고개를 돌렸다. 계단을 올라온 한정호는 평소보다 편한 차림이었다. 짙은 셔츠 위에 얇은 재킷을 걸쳤고, 뒤따라오던 기사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 “많이 기다렸니.” “아뇨. 저희도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한정호는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 묘비 쪽을 바라봤다. 시선이 그 앞에 놓인 꽃에 잠시 머물렀다. “꽃이 예쁘네.” “재하 씨가 골랐대요.” 한정호가 재하를 봤다. “자네가?” “네.” 한정호는 별말 없이 다시 꽃을 바라보다 묘비 앞으로 걸어갔다. 재하가 미리 가져온 상자를 열었다. 한정호가 손을 내밀자 필요한 것을 먼저 건넸고, 서인도 옆에 앉아 남은 것들을 꺼냈다. 누가 뭘 해야 하는지 따로 말할 필요는 없었다. 몇 해째 같은 날, 같은 자리에서 반복해 온 일이었다. 준비를 마친 뒤 세 사람은 묘비 앞에 섰다. 한정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한동안 묘비를 바라봤다. 서인도 말없이 그 옆을 지켰고, 재하는 두 사람보다 반걸음 뒤에 서 있었다. 산 아래에서 불어온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었다. 조금 전 재하가 놓아둔 꽃잎이 바람을 따라 작게 떨렸다. 한정호가 먼저 몸을 돌린 건 한참 뒤였다. “가자.” 세 사람은 묘소를 나섰다. 올라왔던 돌계단에 닿자 재하가 먼저 아래로 내려갔다. 서인이 굽 높은 구두로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재하는 한두 단 아래를 유지했다. 올라올 때와 달리 손을 내밀지는 않았다. 대신 서인이 마지막 계단을 내려올 때까지 앞서가지도 않았다. 묘역에서 멀지 않은 한정식집은 올해도 한산했다. 예약해 둔 별실로 들어가자 직원이 익숙하게 세 사람을 맞았다. “올해도 오셨네요.” 한정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따로 자리를 정할 것도 없이 앉았다. 잠시 뒤 차가 놓이고 직원이 오늘 상차림을 설명했다. “오늘 생선은 뭡니까.” “조기구이로 준비됩니다.” 한정호가 재하 쪽을 한번 봤다. “권 서방 건 병어로 바꿔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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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월요일 아침이었다. 한성그룹 본사까지 두 블록을 남겨뒀을 때 서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위기대응 TF 단체방이었다. [금일 한성그룹 관련 주요 보도 공유드립니다.] 그 아래로 기사 링크가 연달아 올라와 있었다. [유동성 위기 한성그룹, 우진이 구원투수로 나서나] [한성-우진 이촌동 공동개발 급물살…‘사위 지원’ 현실화되나] 서인은 첫 번째 기사를 열었다. 한성의 유동성 위기와 자산 매각, 채권단 협상에 이어 이촌동 공동사업에 대한 내용이 길게 이어졌다. 여기까지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기사는 두 그룹의 혼맥 관계를 언급하며 이번 공동사업을 사실상의 우진그룹 지원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한성그룹 한정호 회장의 장녀 한서인과 우진그룹 권재하 대표가 결혼한 지 약 3년. 그 아래에는 결혼식 당시 찍힌 사진까지 붙어 있었다. 서인의 손가락이 멈췄다. 사진 속 자신은 지금보다 머리가 조금 길었다. 재하는 검은 턱시도 차림으로 그 옆에 서 있었다. 어제도 옆에 있던 사람이었다. 어머니 묘소까지 직접 운전했고, 아버지와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같은 차를 탔고, 결국 같은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자 사진 속 재하는 한성을 살릴 사위가 되어 있었다. 서인은 기사를 닫고 바로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홍보팀 출근했죠?” “네, 상무님.” “관련 기사 전부 정리해서 올려주세요. 최초 보도 매체 확인하고요.” “네.” “우진 지원설이 어디서 시작됐는지도 확인해 봐요.” 통화를 끝낼 무렵 차가 한성그룹 본사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오전 아홉 시가 되기도 전에 홍보팀에서 정리한 자료가 올라왔다. 최초 보도는 오전 일곱 시가 조금 넘어서였다. 두 시간도 되지 않아 경제지와 온라인 매체를 중심으로 비슷한 기사가 빠르게 늘어난 상태였다. “정정보도 요청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홍보실장이 말했다. “유동성 문제나 이촌동 공동사업 자체는 사실이고, 우진 측 지원 가능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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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대표님.” 재하는 보고 있던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 비서가 태블릿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한성 관련해서 아침부터 기사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화면에는 한성그룹과 우진그룹, 그리고 권재하까지 익숙한 이름들이 나란히 떠 있었다. 재하는 가장 위에 있는 기사를 눌렀다. [유동성 위기 한성그룹, 우진이 구원투수로 나서나] 내용은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성의 유동성 위기와 자산 매각, 채권단 협상에 이어 이촌동 공동사업까지 이미 알려진 사실을 차례로 엮어놓고, 마지막에는 우진의 지원 가능성을 붙여놨다. 재하는 화면을 내리다 중간쯤에서 손을 멈췄다. 결혼식 사진이었다. 한서인과 자신이 나란히 서 있는, 삼 년 전 결혼식 날 찍힌 사진. 결혼 전에도 한서인을 몇 번 본 적은 있었다. 양가가 함께한 식사 자리도 있었고, 결혼과 관련된 일정을 조율하면서 마주친 적도 있었다. 다만 오래 마주할 일은 없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한성그룹 한정호 회장의 장녀이자 앞으로 결혼하게 될 여자. 당시에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결혼식 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식이 시작되기 전, 재하는 양가 어른들에게 인사를 마치고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신부대기실 문이 열려 있었고,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사이로 흰 드레스 자락이 먼저 보였다. 재하는 별생각 없이 그쪽을 봤다. 한서인이 안에 앉아 있었다. 평소와 달리 머리를 모두 올려 묶고 있었다. 드러난 목선 아래로 장식이 거의 없는 흰 드레스가 이어졌고, 그 위로 어깨와 쇄골이 반듯하게 드러나 있었다. 조금 전까지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었는지 입가에는 웃음기가 남아 있었다. 서인이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재하의 걸음이 멈췄다. “왔어요?” “네.” 눈이 마주치자 서인이 조금 웃었다. 평소에는 차갑게 떨어지던 눈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눈꼬리에 옅은 웃음이 걸렸고, 붉은 입술 끝도 따라 올라갔다. 몇 번이나 본 얼굴인데 그날따라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재하는 잠시 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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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이 조건까지 조정하는 건 어렵습니다.” 우진 측 담당자의 말에 서인은 앞에 놓인 자료를 내려다봤다. 맞은편에 앉은 재하는 아직 별말이 없었다. 회의가 시작된 뒤로 대부분의 설명은 실무진에게 맡긴 채 필요한 부분에만 몇 번 질문했을 뿐이었다. 한성 측 담당 임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 “기존 조건으로는 한성 측 부담이 너무 큽니다. 현재 자금 집행 계획까지 고려하면 추가 사업비 부담 비율은 조정이 필요합니다.” 재하가 자료에서 눈을 들었다. “그 조건은 받아들이겠습니다.” 한성 쪽에서 빠르게 시선이 오갔다. “추가 사업비는 우진이 더 부담하죠.” 생각보다 쉽게 나온 답이었다. 재하는 다음 장을 넘겼다. “대신 지분은 조정해야 합니다.” “대표님, 지분까지 조정되면 저희 쪽에서는 실익이 많이 줄어듭니다.” “알고 있습니다.” 한성 측 임원이 한 번 더 말을 보탰다. “추가 사업비에 관한 조건만 수정하고 지분은 기존대로 유지하는 방향으로 검토해주시면—” “그건 어렵습니다.” 재하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았다. “우진이 비용을 더 부담하는데 한성 지분까지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으니까요.” 한성 쪽에서도 더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서인은 펜 끝으로 자료 한쪽을 짚었다. 이럴 줄 알았다. 아버지가 처음 수정안을 내밀었을 때도 같은 생각이었다. 권재하가 이걸 모를 리 없다고. 회의가 다시 이어졌다. 몇 가지 조건이 오갔고 양쪽 실무진이 수치를 확인했다. 한성에서 가져온 안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도, 전부 잘린 것도 아니었다. 재하는 상대가 말하는 동안 좀처럼 끼어들지 않았다. 끝까지 듣고 필요한 숫자를 확인한 뒤 결정을 내렸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였고, 아닌 건 잘랐다. 애매하게 미루는 일도 없었다. 서인에게는 익숙한 모습이었다. 결혼 전부터 권재하가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있었다. 우진의 후계자라는 이름만으로 지금 자리에 앉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결혼한 뒤에는 더 자주 봤다. 수많은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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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차가 한강변을 따라 달렸다. 서인은 뒷좌석에 기대 창밖을 보고 있었다. 퇴근 시간대라 도로가 제법 막혔다. 붉은 브레이크등이 길게 늘어서다 조금 움직이고, 다시 멈췄다. 휴대전화에는 오늘 회의 이후 오간 메일이 몇 통 더 쌓여 있었다. 수정안을 확인하고 담당자에게 간단히 답을 보냈다. 내일 오후로 잡힌 자산 매각 관련 회의 자료도 한 번 훑었다. 몇 장을 넘기다 다시 위로 올라갔다. 방금 읽은 숫자가 기억나지 않았다. 서인은 잠시 화면을 내려다보다 휴대전화를 껐다. 오늘따라 집중이 영 안 됐다. 피곤해서 그런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는 여전히 같은 구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여덟 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위층에서 내려오던 재하와 마주쳤다. 재하는 이미 옷을 갈아입은 뒤였다. 얇은 니트에 편한 바지 차림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맞은편에 앉아 있던 우진그룹 대표는 온데간데없었다. “왔어요?” “네.” “저녁은?” “아직이요.” “나도.” 재하가 먼저 주방 쪽으로 향했다. “같이 먹죠.” 서인은 가방을 내려놓다가 말했다. “네, 대표님.” 재하의 걸음이 잠깐 느려졌다. 뒤를 돌아본 재하와 눈이 마주쳤다. 서인은 입꼬리를 조금 올린 채 아무렇지 않게 가방을 정리했다. 재하가 피식 웃고 다시 돌아섰다. 서인도 방에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내려왔다. 저녁은 간단했다. 늦은 시간이기도 했고 둘 다 굳이 거창하게 차릴 생각은 없었다. 준비된 음식 몇 가지를 꺼내고 국을 데워 마주 앉았다. 서인은 몇 숟갈 먹다가 문득 말했다. “요즘 우리 저녁 자주 먹네요.” “그런가.” “네. 거의 매일 같이 먹은 것 같은데.” 재하는 별생각 없이 수저를 들었다. “부부 사이에 그게 대숩니까.” 서인의 손이 잠깐 멈췄다. 재하는 아무렇지 않게 식사를 계속했다. 부부 사이. 서인은 물컵을 들다 말고 그 말을 속으로 한 번 되짚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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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서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대로 몸을 숙여 재하의 입술을 물었다. 예고 없이 닿은 입술에 재하의 눈이 잠깐 흔들렸다. 그것도 잠시였다. 서인이 떨어지기도 전에 손이 허리를 감쌌다. 다시 맞닿은 입술이 깊게 엉켰다. 처음에는 재하에게도 여유가 있었다. 서인이 먼저 찾아온 게 재미있다는 듯 입술 사이로 낮게 웃기도 했다. 그런데 서인이 목에 팔을 감고 더 가까이 붙자 웃음기가 조금씩 사라졌다. 서인은 물러나지 않았다. 입술이 떨어지면 다시 쫓아갔고, 재하가 키스를 주도하려 들면 오히려 뒷목을 잡아 끌었다. 재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오늘 왜 이래요.” 입술이 잠깐 떨어졌다. 서인은 대답하지 않고 가까이에서 재하의 얼굴을 봤다. 젖은 머리칼 아래 드러난 이마부터 곧은 콧날, 조금 전까지 자신을 놀리던 입술까지. 오늘따라 이상하게 눈에 들어왔다. 재하의 엄지가 서인의 달아오른 뺨을 쓸었다. “서인 씨.” “몰라요.” “뭘 몰라.” “그냥 몰라요.” 짧은 대답에 재하가 웃었다. “찾아와 놓고 모른다 이거지.” 허리를 감은 팔에 힘이 들어가며 몸이 그대로 침대 위로 기울었다. 서인의 머리가 베개에 닿았다. 재하는 바로 덮쳐들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전보다 움직임이 느려졌다. 입술이 턱 아래를 지나 목으로 내려갔다. 잠옷 단추가 하나씩 풀리고, 서인의 손은 자연스럽게 재하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재하의 손바닥이 천천히 아래로 미끄러졌다. 속옷 안으로 파고든 손이 이미 흥분으로 젖어든 은밀한 부위를 지긋이 쓸고 문질렀다. 엄지가 부드러운 살을 짓누르듯 굴리자 참았던 숨이 터지고, 서인의 허리가 크게 들썩였다. “……재하 씨.” 재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일부러 애를 태우듯 손길만 느렸다. 젖은 사이를 따라 손가락이 진득하게 파고들었다가 빠져나오기를 반복하자, 서인은 견디다 못해 그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빨리…… 좀 빨리 해줘요.” 다급하게 흘러나온 목소리에 그제야 재하가 고개를 들었다. “많이 급해요?” 서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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