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저주받은 성녀 회귀하다: Chapter 11 - Chapter 20

61 Chapters

11화. 어색한 동행

11화. 어색한 동행 정원 산책이 끝난 후로, 이상한 일이 하나 생겼다.아드리안이, 며칠에 한 번씩 이유 없이 그녀를 찾기 시작한 것이었다."폐하께서 오늘도 마마님과 함께 오찬을 드시고 싶다 하십니다."레이먼드가 전언을 전할 때마다, 마사는 옆에서 소리 없이 손뼉을 치며 입 모양으로 환호했다.⁃ 이게 대체 몇 번째지.셀레스티아는 속으로 손가락을 꼽아보았다. 정원 산책 이후로 벌써 세 번째였다.오찬 한 번, 온실에서의 티타임 한 번, 그리고 오늘.⁃ 뭔가 목적이 있는 게 분명해.그녀는 여전히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려 애썼다. 황제가 이렇게 자주, 그것도 아무런 명분 없이 사람을 찾는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분명 뭔가— 정치적인, 혹은 계약과 관련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성력의 안정성을 확인하려는 걸까. 아니면 황태후파를 견제할 명분이 필요한 걸까.그녀는 매번 그럴듯한 가설을 세웠지만, 매번 만남이 끝날 때쯤엔 그 가설이 전부 무너져 있었다.아드리안은 단 한 번도 정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계약과 관련된 언급도 전혀 없었다. 그저— 함께 걷고, 함께 책을 보고, 이따금 시답잖은 대화를 나눌 뿐이었다.⁃ 목적 없는 행동은,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법이야.그날의 만남 장소는 서고였다. 황궁 안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서고는, 높은 천장까지 빼곡히 들어찬 책장들로 이루어져 있었다.낡은 종이와 먼지 냄새가 은은하게 감돌았고, 창을 통해 들어오는 오후 햇살이 책장 사이사이로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아드리안은 그 그림자들 사이, 가장 안쪽 서가 앞에 서서 책을 뒤적이고 있었다.평소 집무실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딱딱하게 정돈된 제복 대신, 소매를 살짝 걷어 올린 편한 차림이었다."오셨습니까, 폐하.""왔군."그는 짧게 답하며, 손에 들고 있던 책 한 권을 그녀에게 내밀었다.손끝이 스치지 않도록, 아주 약간의 거리를 두고 건네는 것이 눈에 띄었다."이거.""……이게 뭡니까?"셀레스티아는 표지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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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첫 균열

12화. 첫 균열 서고에서 돌아온 날 밤, 셀레스티아는 침대에 누워서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시선 둘 곳을 찾는 손짓, 붉어진 귀, 어색한 헛기침.낮의 장면들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정치판이었다면 이미 몇 번이고 결론을 내렸을 신호들이었다. 그런데 유독 이 사람 앞에서만, 그녀의 판단력은 이상하리만치 헛돌고 있었다.⁃ 아니야. 애초에 이런 걸 분석하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야.그녀는 애써 이불을 뒤집어쓰며 생각을 접었다.---다음 날 아침, 셀레스티아는 여느 때처럼 황후 수업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마사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이 눈에 띄었다."마사님, 무슨 일 있으세요?""아……. 아니에요, 마마님. 아무것도 아니에요."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책장을 넘기는 손가락도, 평소보다 한 박자씩 늦었다.⁃ 저건, 뭔가를 숨기고 있을 때의 몸짓이야.셀레스티아는 순간 정치판을 읽던 날카로운 감각으로 돌아왔다.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는 그 감각이, 오랜만에 완전히 제 것으로 작동하고 있었다."마사님. 숨기실 필요 없습니다. 제게 도움이 될 일이라면 더더욱."마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목소리를 낮췄다."실은…… 어제, 황태후궁 쪽 시녀 하나가 저한테 넌지시 묻더라고요. 마마님이 폐하와 자주 만나시는 게, 황후 자리를 굳히려는 수작이 아니냐고요."셀레스티아의 눈빛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황태후파.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군."정확히 어떤 식으로 물었습니까.""그냥…… 떠보는 식이었어요. 그런데 말투가 곱지 않았어요. 마치 마마님을 견제하는 것처럼."셀레스티아는 잠시 눈을 감고, 지금껏 조각조각 주워들었던 정보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짜 맞추기 시작했다.⁃ 황태후궁이라. 폐하의 친모도 아닌데, 저렇게까지 예민하게 반응한다는 건—신전 도서관에서 언뜻 주워들었던 소문, 그리고 이곳에 온 뒤 마사와 시녀들에게서 조금씩 얻어낸 이야기들이 하나씩 맞물렸다.지금의 황태후는 아드리안의 생모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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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역이용

13화. 역이용 집무실을 나서던 셀레스티아는,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렇게 만남을 줄이는 게, 정말로 최선일까.⁃ 아니.⁃ 황태후파가 노리는 건, 내가 폐하와 가까워지는 것 자체가 아니야.⁃ 내가 "통제 불가능한 변수"로 보이는 거야.⁃ 몸을 사리면— 오히려 약점 잡았다고 여기겠지.⁃ 그렇다면.그녀는 다시 발걸음을 돌렸다.그러나 문고리를 잡은 손이, 아주 잠깐 멈칫했다.⁃ ……왜 갑자기 이렇게, 심장이 뛰는 거지.정치적 판단이라고 몇 번이나 되뇌었지만, 그 판단 뒤에 숨은 작은 조바심까지는 애써 모른 척했다."폐하. 다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레이먼드가 놀란 얼굴로 문을 열어주었다. 아드리안도 눈썹을 들어 올렸다."그새……생각이 바뀌었나."목소리에 옅은 기대가 스쳤다. 아주 미세해서, 본인조차 눈치채지 못했을 만큼."예. 제안을 철회하겠습니다.""뭘.""만남을 줄이자는 제안이요."아드리안이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 손짓이 평소보다 조금 빨랐다."대신, 공식적인 자리를 만드시죠.""……무슨 뜻이지."그의 목소리에서, 경계와 안도가 동시에 묻어났다."저희 관계가 의심받는 건, 은밀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아예 공개하면 됩니다.""공개혼 확인 행보를 하자는 건가.""정확합니다.""그리고?""함께 공식 석상에 서고, 오염 문제도 함께 논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겁니다. 그러면 황태후궁도 저를 이 나라의 '침입자'가 아니라 '협력자'로 다시 봐야 하겠죠."아드리안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서류를 내려놓던 손이, 어느새 책상 모서리를 가볍게 쥐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물러서려던 사람이 맞나.⁃ 그리고, 이 여자는— 대체 왜 이렇게까지, 나를 위해서까지 판을 짜는 거지.그 물음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괜찮은 생각이군."목소리는 평소와 같았지만, 그 눈빛만은 아주 조금, 부드러워져 있었다...."다만.""뭔가.""앞으로는 지금보다 더 자주 만나셔야 합니다. 공식적으로도, 비공식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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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첫 공식 자리

14화. 첫 공식 자리셀레스티아의 제안이 있은 지 사흘 뒤, 황궁에서는 오랜만에 외국 사절을 맞이하는 소규모 연회가 열렸다."마마님, 오늘이 바로 그날이에요!"마사는 아침부터 잔뜩 상기된 얼굴로 드레스를 골랐다."공식적으로 폐하와 함께 서시는 첫 자리라고요! 이 옷, 아니 저 옷—""마사님. 진정하세요.""진정이 안 되죠! 이건 제 인생 최대의 이벤트라고요!"⁃ 정작 당사자인 저보다 더 흥분하신 것 같은데.셀레스티아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순순히 시녀들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준비를 마치고 연회장으로 향하는 길, 그녀는 속으로 오늘의 목적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오늘의 핵심은 하나. 자연스러움.⁃ 지나치게 다정해도 안 되고, 지나치게 사무적이어도 안 돼. 딱, 신뢰하는 부부처럼만.연회장 입구에서, 아드리안이 먼저 와 있었다. 평소의 집무복이 아닌, 금실로 수놓은 예복 차림이었다."오셨습니까, 폐하.""……왔군."그는 짧게 답했지만, 시선이 그녀에게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셀리스티아의 예복도 아드리안과 맞춘듯 금실로 수놓아져 있는 드레스차림이였다.⁃ 저 표정은—셀레스티아는 순간 분석에 들어갔다.⁃ 놀란 건가? 아니면 뭔가 불편한 점이라도?"드레스가 이상합니까?""아니다.""그럼 왜 그렇게 보십니까."아드리안은 잠시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잘 어울린다는 뜻이다.""아."셀레스티아는 그 짧은 대답에, 순간 무슨 말을 이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 이런 상황에선, 뭐라고 답해야 정치적으로 자연스러운 거지.⁃ "감사합니다"인가, 아니면 그냥 웃어야 하나.⁃ 협상 자리라면 이미 몇 마디나 준비해뒀을 텐데, 이런 건 대체 어느 교본에도 안 나와.결국 그녀는 그냥 옅게 미소를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행히, 그 정도면 충분했던 모양이었다."자, 그럼 들어가시죠."그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계약의 상징이었던, 그 손이었다.아드리안은 잠시 그 손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자신의 손을 겹쳤다. 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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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이복형제

15화. 이복형제 연회가 끝나갈 무렵, 셀레스티아는 잠시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테라스로 나왔다.밤바람이 제법 선선했다. 연회장 안의 열기와 수많은 시선에서 벗어나니, 그제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면 충분해.그녀는 난간에 기대어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달빛 아래, 조용한 밤공기가 낮 동안의 긴장을 조금씩 풀어주고 있었다.⁃ 첫 공식 자리치고는, 나쁘지 않았어.그녀는 방금까지의 연회를 머릿속으로 복기했다. 귀족들의 반응, 노귀족의 덕담, 그리고 아드리안의 그 어색한 미소까지. 계산했던 그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뭔가 석연치가 않지.그 이유를 짚어내기도 전에, 문득 등 뒤가 서늘해졌다.⁃ ……누군가 있어.인기척은 없었다. 발소리도, 옷깃 스치는 소리도 없었다. 그러나 성녀로서 갈고닦은 감각이, 낯선 시선이 자신에게 닿아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이 느낌, 낯설지 않아.전생의 기억 어딘가에서, 비슷한 감각을 느낀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기억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고, 안개처럼 흩어졌다."오늘 자리, 꽤 인상 깊었습니다."바로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셀레스티아는 순간 숨을 삼키며 재빨리 몸을 돌렸다.테라스 어귀, 아니—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 은빛에 가까운 회흑색 머리카락과 자수정빛 눈동자를 가진 남자가 서 있었다. 옅은 미소를 띤 채였다.⁃ 언제부터 저기 있었던 거지. 분명 방금까지 아무도 없었는데."실례가 많았습니다. 갑자기 말을 걸어서.""……누구시죠?"셀레스티아는 곧바로 경계 태세로 전환했다. 표정은 여전히 온화했지만, 속으로는 빠르게 상대를 훑어보고 있었다.⁃ 복장은 북부 마탑주. 그런데— 저 태도는, 단순한 마법사의 것이 아니야.⁃ 저 기척을 완전히 숨기고 다가올 수 있는 사람이라니.⁃ 방심하면 안 돼.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과는, 격이 다른 상대야."키리안 노스페라라고 합니다. 북부 마탑을 맡고 있습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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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그 둘의 온기

16화. 그 둘의 온기그 고요를 깨트린 건, 갑작스러운 발소리였다. 이번에는 분명한 발소리였다— 그러나 그 발소리가 유독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저건, 누군가 뛰고 있는 소리야.셀레스티아는 순간 본능적으로 자세를 바로 했다. 궁 안에서 저렇게 다급히 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여기서 뭐 하고 있나."아드리안이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와는 다른 날카로움이 배어 있었다. 숨을 고르는 기색조차 감추지 못한 채, 그가 성큼 다가왔다. 예복 자락이 아직도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뛰어오신 건가.⁃ 대체 얼마나 급하게 오신 거지. 연회장에서 여기까지,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그가 가까워지는 순간, 셀레스티아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나— 아드리안의 등 뒤로 반쯤 몸을 숨겼다.⁃ ……뭐 하는 거야, 나.머리로 판단할 새도 없이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었다. 키리안이라는 존재에게서 느낀 정체 모를 위화감이, 이성보다 앞서 그녀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이런 본능적인 반응은, 나답지 않은데.전생과 회귀를 통틀어, 누군가에게 이렇게 무방비하게 몸을 숨긴 적은 없었다. 화형대 위에서조차, 그녀는 끝까지 홀로 서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 아드리안의 등 뒤라는 자리가 이상하리만치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이상해. 정말 이상해.⁃ 나는, 아무에게도 기대지 않기로 했었는데.그 낯선 행동에, 아드리안이 순간 흠칫하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서늘하게 굳어 있던 그의 눈빛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지금, 나한테 숨은 건가.심장이 이상한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키리안을 향해 곤두섰던 경계심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동요였다.그는 곧바로 시선을 키리안에게로 돌렸지만, 입가에는 미처 감추지 못한 옅은 웃음이 걸려 있었다. 방금 전까지의 서늘함과는 전혀 다른, 뜻밖의 부드러운 웃음이었다.그러면서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등 뒤에 있던 그녀의 손을 자연스럽게 찾아 잡았다. 시선은 여전히 키리안을 향한 채였다.⁃ 이렇게 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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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황태후의 움직임

17화. 황태후의 움직임연회 다음 날 아침, 황후궁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로 소란스러웠다."마마님! 이것 좀 보세요!"마사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며, 신문 한 장을 흔들어 보였다."궁정 소식지에, 어젯밤 연회 이야기가 실렸어요!"셀레스티아는 아침햇살에 눈을 비비며 신문을 받아 들었다. 큼지막한 삽화 아래, 이런 제목이 적혀 있었다.『얼음 폐하, 녹다』⁃ ……제목 한번 노골적이네.⁃ 그런데 왜, 저 제목을 보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간질거리는 거지.그녀는 스스로도 낯선 그 반응에, 잠시 신문을 내려다보는 눈빛이 흔들렸다."기사 내용은요?""'일각에서는 두 분의 관계가 단순한 정략혼을 넘어선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그게 다예요?""아뇨! 더 있어요!""그만, 그만 읽으세요, 마사님.""아직 제일 재밌는 부분이—""그만.""……네."⁃ 재밌는 부분이라니. 재밌을 게 뭐가 있어.⁃ ……있나?그녀는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하지 못한 채, 애써 신문을 접었다.그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마마님! 황태후궁에서 사람이 왔습니다!"방 안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들이세요."곧, 단정한 차림의 중년 여인이 들어와 정중히 예를 갖췄다."황태후 마마님께서, 오늘 오후 다과회에 황후 마마님을 초대하고 싶다 하십니다."⁃ 올 것이 왔군.방금 전까지 마음 한구석을 간질이던 낯선 감정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익숙한 긴장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좋아. 이런 종류의 긴장이라면, 훨씬 편해."영광입니다. 그리 전해주세요."사자가 물러가자, 마사의 얼굴이 새하얘졌다."마마님! 황태후 마마님 다과회는— 그 유명한 그거잖아요! 우, 우아한 압박 면접!""압박 면접이요.""네! 겉으론 다과회, 속으론 완전 살벌!"셀레스티아는 찻잔을 들며 옅게 웃었다."마침 잘됐네요.""……마마님, 지금 신나 보이세요?""아니요.""완전 신나 보이시는데요.""기분 탓입니다."⁃ 사실, 조금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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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시녀들과 티타임

18화. 시녀들과 티타임황태후궁에서 돌아온 다음 날, 셀레스티아는 오랜만에 여유로운 오후를 맞았다."마마님! 오늘은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어요!"마사가 상기된 얼굴로 다과상을 차리며 말했다."특별한 자리요?""네! 사실, 황후궁에서 일하는 시녀들 중에 아직 마마님께 정식으로 인사드리지 못한 아이들이 많거든요. 다들 마마님을 뵙고 싶어 한 지 오래됐어요."곧, 응접실 문이 열리고 앳된 얼굴의 시녀들이 하나둘 조심스럽게 들어섰다."이쪽부터 소개해드릴게요! 세탁실 담당 리나, 화단 관리하는 유리, 주방 보조 밀라, 자수방의 노아, 그리고 시종 보조로 새로 들어온 에스텔이에요."다섯 명이 나란히 서서 차례로 고개를 숙였다. 다들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마마님을, 처음 뵙습니다.""뵙고 싶었어요. 정말로요."셀레스티아는 그 낯선 얼굴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부드럽게 답했다."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그 말 한마디에, 시녀들의 얼굴에 긴장이 살짝 풀렸다."마마님, 저희가 준비한 게 있어요."리나가 조심스럽게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뚜껑을 열자, 삐뚤빼뚤한 모양의 쿠키가 가득 담겨 있었다. 어떤 건 타서 거뭇했고, 어떤 건 설탕이 너무 많이 뿌려져 있었다."저희끼리 밤새 구웠어요. 처음 만들어보는 거라 모양이 영……""맛은 보장 못 해요. 그래도 꼭 마마님께 드리고 싶어서."셀레스티아는 그 상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런 걸, 나한테.전생에는 사람들이 바친 것은 늘 감사와 찬양, 혹은 두려움 섞인 공물이었다. 이렇게 서투르고, 못생기고, 그러면서도 순수한 마음이 담긴 것을 받아본 기억은 없었다."……감사합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쿠키 하나를 집어 들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조금 탔지만, 그런대로 달콤했다."맛있네요.""저, 정말요?""거짓말 아닙니다."리나의 눈시울이 순간 붉어졌다."다행이에요…… 사실 저희, 마마님 뵙기 전부터 너무 긴장해서요.""왜 그렇게 긴장하셨습니까."옆에 있던 유리가 조심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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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화. 갑작스러운 광기

19화. 갑작스러운 광기그날 밤, 셀레스티아는 이상한 예감에 눈을 떴다.⁃ ……뭐지, 이 느낌.성력을 가진 자 특유의,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창밖을 살폈다. 아무 이상도 없었다. 그러나 그 불길한 감각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내 예감은, 늘 틀린 적이 없었는데.그 순간, 복도 저편에서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황후 마마님! 큰일 났습니다!"레이먼드였다. 평소의 침착함은 온데간데없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폐하께서— 발작을 일으키셨습니다!"셀레스티아의 심장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광기."어디 계십니까.""집무실입니다! 지금 아무도 접근을 못 하고 있어서……!"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잠옷 위에 겉옷 하나만 걸친 채였다.집무실 앞에 다다르자, 근위기사들이 문을 사이에 두고 겁에 질린 얼굴로 서 있었다. 문 안쪽에서는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 그리고 짐승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낮은 신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마마님! 위험합니다, 들어가시면—""비키세요.""하지만—""비키라고 했습니다."그녀의 목소리에 담긴 단호함에, 기사들이 주춤 물러섰다. 셀레스티아는 곧바로 문을 밀어젖혔다.방 안은 처참했다. 책장이 쓰러져 있었고, 서류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아드리안이 있었다.무릎을 꿇은 채,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평소의 금빛 눈동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 자리에는, 핏빛처럼 붉게 타오르는 눈동자만이 남아 있었다."……가까이, 오지 마."그가 신음하듯 내뱉었다. 목소리조차 평소와 달랐다. 짐승의 으르렁거림이 섞인, 뒤틀린 소리였다."위험해…… 지금은."셀레스티아는 그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마마님!"뒤에서 레이먼드가 다급히 불렀지만,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런데— 그보다 더 강한 게 있어.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아드리안의 앞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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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하룻밤 사이

20화. 하룻밤 사이다음 날 아침, 셀레스티아는 낯선 침대에서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주변을 둘러보니 익숙한 황후궁의 방이 아니었다. 훨씬 넓고, 묵직한 가구들로 채워진— 황제의 침소였다.⁃ 아.어젯밤의 기억이 순식간에 되살아났다.발작, 붉은 눈동자, 성력을 흘려보내던 순간, 그리고 그 품 안에서 잠들었던 기억까지.⁃ 설마, 정말로 여기서 잔 거야?그녀는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옷은 어젯밤 그대로였고,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일어났나."낮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창가에 서 있는 아드리안이 보였다. 평소의 집무복을 갖춰 입은 채, 이미 완전히 정신을 차린 모습이었다."폐하……. 저, 여기서 잔 겁니까?""그대가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제가요?""피곤해서 그런지, 도무지 놓아주질 않더군."셀레스티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그런 기억은, 전혀 없는데."……거짓말이시죠.""믿기 싫으면 마음대로."아드리안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스쳤다. 그러나 그 웃음도 잠시, 그는 곧 표정을 가라앉히며 그녀 쪽으로 다가왔다."몸은, 괜찮나.""……괜찮습니다.""손끝은."셀레스티아는 순간 손을 뒤로 슬쩍 숨겼다. 어젯밤 성력을 과하게 쓴 여파로, 손끝이 아직도 조금 저릿했다."괜찮다니까요.""보여줘.""……""보여달라고 했다."결국 그녀는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다. 아드리안은 그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고, 손끝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옅게 남은 붉은 자국이, 어젯밤 흘려보낸 성력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었다."……이렇게까지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그의 목소리에는 나무람보다, 걱정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필요했습니다.""왜."셀레스티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답했다."계약자가 위험한 상황이었으니까요.""……그것뿐인가.""……"그녀는 그 질문에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어젯밤, 그의 품 안에서 느꼈던 그 이상한 안도감이 다시 떠올랐다.⁃ 계약자라서, 그런 거였을까.⁃ 아니면—"셀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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