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저주받은 성녀 회귀하다: Chapter 31 - Chapter 40

62 Chapters

31화. 레이먼드의 사정

31화. 레이먼드의 사정두 사람이 나란히 앉은 지 얼마쯤 지났을까, 아드리안이 문득 창밖을 바라보며 낮게 입을 열었다."테오를 왜 황궁에 데리고 오는지,""……레이먼드에 대해, 궁금하지 않나."셀레스티아는 순간 그를 돌아보았다.⁃ 갑자기, 왜."궁금합니다. 왜, 갑자기 그 얘기를.""테오를 볼 때마다, 그대가— 이상한 얼굴을 하니까.""……제가요?""그래. 아이를 보면서도, 어딘가 안쓰러워하는 얼굴이었다."셀레스티아는 그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자신이 예지력이나 예감이 높지만 알아차리는 이는 드믈었다.⁃ 이런 것까지, 놓치지 않으시는구나."……테오가, 뭔가 사정이 있습니까."아드리안은 잠시 침묵하다가, 낮게 답했다."레이먼드의 형 부부가, 재작년에 세상을 떠났다.""……""세계수 오염이 심해지면서, 북부 변경에 마물이 대거 창궐한 적이 있었지. 그때, 레이먼드의 형이— 지역 수비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갔다."셀레스티아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그 전투에서, 형과 형수, 그리고 아버지까지— 전부 돌아오지 못했다.""……아버지까지요?""은퇴한 기사였는데, 아들이 위험하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갑옷을 챙겨 나갔다더군."아드리안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무거운 결이 배어 있었다."어머니는, 그보다 먼저— 레이먼드가 어릴 때 기사로 복무하다 순직했다고 들었다."셀레스티아는 순간 숨을 삼켰다.⁃ 그럼, 레이먼드에게 남은 가족이—"그렇게 해서, 레이먼드에게 남은 가족은— 자기 자신과, 테오뿐이다."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셀레스티아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그래서, 자주 데리고 나오는 거였군요.""테오를, 혼자 저택에 둘 수는 없다더군. 유모를 붙여두긴 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자기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셀레스티아는 문득, 처음 테오를 만났던 날— 집무실 구석에서 심심한 얼굴로 바닥을 차던 그 모습이 떠올랐다.⁃ 그 아이도, 이미 한 번— 큰 상실을 겪었던 거구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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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화. 작은 소동

32화. 작은 소동다음 날 오전, 황후궁은 예상치 못한 소동으로 시끄러웠다."마마님! 큰일이에요!"마사가 다급히 뛰어 들어왔다."무슨 일입니까.""저기, 정원 쪽에서— 테오 도련님이, 갑자기 사라지셨대요!"셀레스티아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사라지다니요. 오늘, 여기 오기로 했었습니까?""네! 레이먼드 경이 잠깐 자리 비우신 사이에, 혼자 정원을 돌아다니시다가— 지금 어디 계신지 아무도 모른다고!"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녀는 애써 놀란 마음을 진정해보았다.⁃ 침착하자.⁃ 황궁 안이야. 위험할 만한 곳은 한정되어 있어."경비병들은요?""지금 다들 찾고 있는데, 아직 못 찾았대요!"셀레스티아는 곧바로 겉옷을 걸치며 밖으로 나섰다."저도 함께 찾겠습니다."정원으로 향하는 길, 그녀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테오의 성향을 떠올렸다.⁃ 호기심 많고, 활발한 아이야. 아마— 뭔가에 홀려서, 정해진 길을 벗어났겠지.⁃ 그렇다면, 어디로 갔을까.그녀는 문득, 이전에 테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마마님, 저 예전에 폐하 서고에서 신기한 그림책 본 적 있어요! 용 그림이 진짜 많았어요!"⁃ 서고.셀레스티아는 곧바로 방향을 틀어, 황궁 서고로 향했다.높은 책장들 사이를 지나, 그녀는 익숙한 구역— 언젠가 아드리안과 함께 『태초의 계약사』를 찾았던 그 서가로 향했다.그리고 그곳에서, 예상대로— 테오가 바닥에 쪼그려 앉아, 낡은 그림책 하나를 신나게 들여다보고 있었다."테오."발소리도 듣지 못할 만큼 그림책에 푹 빠져 있던 테오는,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어? 마마님!""저, 저 여기서 그냥, 그림책이 너무 신기해서……""테오를, 다들, 걱정하고 있었어요."셀레스티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그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혼자 이렇게 돌아다니면, 위험합니다.""죄송해요……"테오가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그녀는 마음이 약해져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었다."괜찮아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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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화. 그림책 읽어주는 시간

33화. 그림책 읽어주는 시간며칠 뒤, 셀레스티아는 약속했던 대로 테오와 함께 서고에서 그 그림책을 빌려왔다."오늘은, 제가 읽어드릴게요."집무실 한편의 작은 소파에 자리를 잡으며, 그녀가 말했다. 테오는 신이 나서 그녀의 무릎 위로 폴짝 올라앉았다."진짜요? 좋아요!"아드리안은 책상에서 서류를 정리하는 척했지만, 시선은 이미 그쪽으로 완전히 넘어가 있었다.셀레스티아는 낡은 그림책의 첫 장을 넘기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먼 옛날, 하늘 끝에 살던 용이 있었습니다. 그 용은, 세상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졌지만— 늘 혼자였습니다."테오는 그녀의 품에 폭 안긴 채, 눈을 반짝이며 그림을 들여다보았다."왜 혼자였어요?""다들, 그 힘을 두려워했거든요."셀레스티아는 잠시 책장을 넘기며 계속 읽었다."어느 날, 용은 한 인간을 만났습니다. 그 인간은, 용의 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손을 내밀었습니다.""우와.""그렇게 둘은, 서로를 지키기로 약속했습니다. 용은 인간을 위해 힘을 빌려주고, 인간은 용의 곁을 지켰습니다."책장 속 삽화에는, 커다란 황금빛 용과 그 곁에 나란히 선 사람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셀레스티아는 문득 손을 멈췄다.⁃ 이거, 태초의 계약사에서 봤던 내용과— 비슷한데.⁃ 단순한 동화가 아니라, 어쩌면— 그 신화를 아이들 눈높이로 풀어쓴 건가."마마님? 왜 멈추셨어요?""아, 아니에요."그녀는 애써 표정을 가다듬으며 다시 책장을 넘겼다."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용과 인간의 약속은— 대대로 이어지는 나라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끝.""에이, 벌써 끝이에요?"테오가 아쉬운 얼굴로 물었다."다음 이야기는 없어요?""글쎄요. 다음 권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네요."셀레스티아는 그렇게 답하며 책을 덮었다. 테오는 여전히 그녀의 품에 기댄 채, 스르르 눈을 감기 시작했다."……졸려요……""자도 괜찮아요."그녀는 부드럽게 테오의 등을 토닥이며, 작은 목소리로 자장가처럼 흥얼거렸다. 신전에 있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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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화. 단둘의 저녁

34화. 단둘의 저녁테오가 잠에서 깨어 레이먼드에게 돌아간 뒤, 셀레스티아는 집무실에 남아 흩어진 그림책을 정리하고 있었다."오늘 저녁은."아드리안이 서류를 마저 정리하며 물었다."마사와 함께 드실 겁니까?""글쎄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그럼."그가 짧게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오늘은, 나와 먹지."셀레스티아는 순간 손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갑자기요?""이유가 필요한가.""보통은, 있으시던데요.""오늘은, 그냥— 그대에게 그러고 싶어서다."담담한 말투였지만, 그 안에는 평소와는 다른 솔직함이 담겨 있었다. 셀레스티아는 그 말에 옅게 웃었다."좋습니다."그날 저녁, 두 사람은 지난번처럼 황제의 개인 식당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녀들의 부산스러운 준비도, 격식 차린 예복도 없었다. 그저, 평소 입던 옷 그대로였다."……오늘은, 마사가 드레스를 안 골라줬네요."셀레스티아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내가, 미리 말해뒀다. 오늘은 편하게 오라고.""……신경을, 쓰셨군요.""그 정도는, 당연한 거다."작은 식탁 위에는, 단출하지만 정갈한 음식들이 놓여 있었다. 촛불 하나가 조용히 흔들리며, 두 사람 사이를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오늘, 테오가 잠든 모습을 보니— 문득 생각이 났다."아드리안이 포크를 들며 말했다."무슨 생각이요.""이런 저녁을, 자주 갖지 못했다는 것."셀레스티아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저희, 자주 함께 식사하지 않았습니까?""그건, 대체로— 누군가와 함께였지. 연회거나, 다과회거나.""……그렇군요.""이렇게, 단둘이서만— 이렇게 조용히 앉아 있는 건, 오랜만이다."셀레스티아는 그 말에 문득 첫 저녁 식사가 떠올랐다. 마사가 잔뜩 신경 써서 골라준 드레스, 서로 어색하게 앉아 있던 그 순간."……그때보다, 훨씬 편해졌네요.""그때라니.""처음, 함께 저녁을 먹었을 때요. 그땐 정말— 침묵이 무겁게 느껴졌었는데."아드리안은 옅게 웃었다."그랬지. 그대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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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황태후의 초대장

35화. 황태후의 초대장다음 날 아침, 황후궁에 또 한 번 예상치 못한 방문객이 찾아왔다."마마님! 황태후궁에서 또 사람이 왔어요!"마사가 다급한 얼굴로 뛰어 들어왔다. 셀레스티아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담담히 물었다."이번엔, 무슨 용건입니까.""그게— 다과회가 아니라, 이번엔 '가족 만찬'에 초대하고 싶다고 하시네요.""가족 만찬이요?""네! 황태후 마마님, 폐하, 그리고 마마님까지— 셋이서 함께 식사하자는 거예요."셀레스티아의 눈빛이 순간 진지해졌다.⁃ 다과회 이후로, 다시 접촉을 시도하는군.⁃ 그것도 이번엔, 폐하까지 함께."언제로 정해졌습니까.""사흘 뒤 저녁이래요."셀레스티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난번엔, 나 혼자 상대했지. 이번엔 폐하도 함께라면— 노림수가 다를 거야.⁃ 아마도, 우리 둘 사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으신 거겠지.그날 오후, 그녀는 곧바로 아드리안을 찾아 이 소식을 전했다."가족 만찬이라니."아드리안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거절할 수는 없는 겁니까?""명분상, 거절하기는 어렵다. 황실의 웃어른이 청하는 자리니까.""……그럼, 가야겠군요.""불편하지 않겠나."셀레스티아는 옅게 웃었다."불편이야, 이미 익숙합니다.""……""게다가— 지난번보다는, 훨씬 낫겠죠. 이번엔, 저 혼자가 아니니까요."아드리안은 그 말에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렇다면, 걱정할 필요 없다.""뭘 말씀입니까.""이번엔, 내가 있다."셀레스티아는 그 말에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이렇게, 든든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주시네."……든든하네요.""당연한 거다."사흘 뒤, 두 사람은 함께 황태후궁으로 향했다. 마차 안에서, 셀레스티아는 조용히 마음을 다잡았다.⁃ 지난번엔, 나 혼자 판을 읽어야 했지.⁃ 이번엔, 둘이서 함께야."긴장되나."아드리안이 물었다."조금은요.""……손, 잡아줄까."셀레스티아는 순간 웃음이 났다."만찬장 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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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화. 황태후가 아는 것

36화. 황태후가 아는 것셀레스티아는 황태후의 말에 순간 숨을 고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황태후 마마께서는, 키리안에 대해— 무엇을 알고 계십니까."황태후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오랫동안 묵혀온 무언가를 꺼내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자의 어머니를, 내가 알고 있었어요."아드리안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어머니라니요.""선황제의 후궁이었던, 마족의 피를 이은 여인이었지요."황태후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오래된 씁쓸함이 배어 있었다."그 아이가 태어난 뒤, 황실은— 그 존재를 철저히 숨겼어요. 마족의 피가 섞인 황족이라니,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으니까."셀레스티아는 그 말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빠르게 정보를 정리했다.⁃ 키리안의 어머니가, 마족의 피를 이었다고.⁃ 그럼 정말로— 그는, 드래곤과 마족의 피가 공존하는 존재라는 건가."그 여인은, 결국— 궁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고 들었어요.""……키리안은요."아드리안이 낮게 물었다."신분을 숨긴 채, 외가 쪽에서 자랐다고 알고 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뛰어난 마법 재능으로— 북부 마탑에서 두각을 나타냈다더군요."황태후는 잠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낮게 덧붙였다."그 아이가, 황실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지요."셀레스티아는 그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머니를 잃고, 신분도 숨긴 채 자라야 했던 아이.⁃ 원망할 이유는, 충분하겠구나."……그런데, 왜 지금 이 얘기를 저희에게 하시는 겁니까."아드리안이 물었다.황태후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용히 답했다."최근 들어, 그자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는 보고를 받았어요.""어떤 식으로요.""북부에서, 은밀히 세력을 규합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어요. 그리고—"황태후의 시선이 셀레스티아에게로 향했다."황후, 그대에게— 유독 관심이 많다는 것도."셀레스티아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미, 그것까지도 파악하고 계셨구나."……무슨 의도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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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갑작스런 발작

37화. 갑작스런 발작그날 밤, 셀레스티아는 이상한 예감에 다시 눈을 떴다.⁃ ……또, 이 느낌.지난번 발작 때와 똑같은, 설명할 수 없는 위화감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겉옷을 걸치기도 전에 문 쪽으로 향했다.⁃ 이번엔, 더 빨리 가야 해.아니나 다를까, 복도 저편에서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외침이 들려왔다."황후 마마님!"레이먼드였다. 그의 얼굴은 지난번보다 더 창백했다."폐하께서— 이번엔, 좀 더 심하십니다!"셀레스티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어디 계십니까!""침소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다릅니다.""다르다니요?""눈동자가, 붉은 걸 넘어서— 거의 검붉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몸에서— 이상한 균열 같은 것이."셀레스티아는 그 말에 순간 걸음을 멈췄다.⁃ 균열. 그건, 키리안의 힘과—⁃ 설마, 오늘 황태후궁에서 있었던 일과 관련이 있는 건가.그녀는 더 이상 생각할 겨를 없이 뛰기 시작했다.침소에 다다르자, 문 앞을 지키던 근위기사들이 하나같이 겁에 질린 얼굴로 서 있었다. 문 안쪽에서는, 지난번보다 훨씬 낮고 거친 신음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비키세요.""마마님, 이번엔 정말 위험합니다! 폐하의 몸에서— 이상한 기운이……!""비키라고 했습니다."그녀의 단호한 목소리에, 기사들이 어쩔 수 없이 물러섰다. 셀레스티아는 곧바로 문을 열어젖혔다.방 안 풍경은, 지난번보다 훨씬 처참했다. 가구들이 완전히 부서져 있었고, 벽에는 깊게 긁힌 자국이 남아 있었다.그리고 그 중심에— 아드리안이 있었다.무릎을 꿇은 채, 온몸을 떨고 있었다. 눈동자는 붉다 못해 검붉게 물들어 있었고, 팔과 목덜미에는— 마치 균열이 간 것처럼, 검붉은 문양이 번지고 있었다.⁃ 저건.셀레스티아는 순간 숨을 삼켰다.⁃ 키리안의 힘과, 똑같은 패턴이야."……오지, 마."아드리안이 신음하듯 내뱉었다. 목소리조차, 지난번보다 훨씬 낮고 뒤틀려 있었다."이번엔…… 다르다. 위험해."셀레스티아는 그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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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화. 그이의 품에 안긴 채로

38화. 그이의 품에 안긴 채로섬광이 잦아든 순간, 셀레스티아의 몸이 힘없이 기울었다.⁃ ……어.의식이 흐릿해지는 와중에도, 그녀는 마지막까지 손끝의 빛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그러나 몸이 먼저, 한계를 알렸다."셀레스티아!"아드리안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검붉게 물들었던 눈동자가, 순식간에 원래의 금빛으로 돌아와 있었다.그는 힘이 빠져 쓰러지는 그녀를, 반사적으로 온몸을 던져 받아 안았다."……셀레스티아. 정신 차려."그녀는 그의 품 안에서, 힘겹게 눈을 떴다."……폐하는……""나는, 괜찮다."아드리안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그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힌 것만 같았다.방금까지 자신을 잠식했던 광기와 오염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그러니, 그대가— 대체 왜, 이렇게까지."셀레스티아는 옅게 웃으려 했지만, 입술을 움직일 힘조차 없었다."……돌아오셨잖아요.""……""그거면, 됐습니다."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셀레스티아!"아드리안이 다급히 그녀를 부축해 안았다. 문 앞에 있던 레이먼드가 즉시 뛰어 들어왔다."폐하! 괜찮으십니까?!""나는 괜찮다. 그보다— 어의를, 당장 불러라!""예!"레이먼드가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드리안은 그녀를 조심스럽게 안아 든 채, 침대로 옮겼다."……셀레스티아."그는 낮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창백해진 얼굴, 힘없이 늘어진 손끝. 손끝에는, 성력을 과하게 쓴 흔적이 검붉게 남아 있었다.⁃ 이 정도로, 무리를 했다는 건가.⁃ 나 때문에.그는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손끝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왜, 그렇게까지 무모했나."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 말에는, 원망보다— 훨씬 짙은 두려움이 배어 있었다.잠시 후, 어의가 황급히 도착했다. 진맥을 짚던 그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졌다."어떤가."아드리안이 낮게 물었다."……성력을 과하게 소진하신 것 같습니다.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십니다만—"어의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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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화. 손목의 흔적

39화. 손목의 흔적다음 날 아침, 셀레스티아는 낯선 무게감을 느끼며 눈을 떴다.⁃ ……몸이, 왜 이렇게.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웠다. 그녀는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익숙한 황제의 침소였다."……깼나."낮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침대 옆 의자에서 밤을 꼬박 새운 듯한 아드리안이 보였다. 눈 밑에 짙은 그늘이 져 있었다.밤새 한숨도 자지 못한 듯, 평소의 흐트러짐 없던 옷차림도 오늘만큼은 조금 구겨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을 신경 쓸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폐하, 밤새 여기 계셨습니까.""당연한 거다."그는 짧게 답하며, 그녀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열은 없었지만, 그 손길에는 조심스러운 걱정이 가득했다.⁃ 어젯밤, 저 손끝에서 빛이 터져 나오던 순간.⁃ 그리고 그대로, 힘없이 쓰러지던 그 몸.그 장면이 밤새 몇 번이고 눈앞에 되풀이됐다. 그는 그 기억을 애써 떨쳐내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몸은, 어떤가.""……무겁습니다. 그것 말고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셀레스티아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다, 문득 손목에서 낯선 위화감을 느꼈다."……어?"그녀는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옅지만 분명한— 검붉은 문양이 희미하게 새겨져 있었다. 마치 오래된 흉터처럼, 피부 안쪽에서부터 은은하게 비치는 자국이었다."이건……"아드리안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저건.⁃ 어젯밤, 내 몸에서 번지던 그 균열과— 똑같은 색이다.속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애써 담담한 얼굴을 유지하려 했지만, 손끝이 미세하게 굳는 것까지는 감추지 못했다."……언제부터, 이게.""모르겠습니다. 방금 본 겁니다."그녀는 조심스럽게 손목을 문질러보았다. 그러나 그 흔적은, 지워지지도 옅어지지도 않았다.⁃ 내가, 그녀를 이렇게 만든 건가.⁃ 내 몸에 있던 것이, 그대로 그녀에게— 옮겨간 거라면.그는 순간 목이 죄어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광기는 익숙했다. 오랜 세월 짊어져 온 저주였으니까. 그러나 그 대가를, 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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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화. 움직일 수 없는 몸

40화. 움직일 수 없는 몸"이제 움직여야 합니다."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셀레스티아, 아직 무리다.""이럴 때일수록, 가만히 있을 수는—"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침대에서 내려서던 다리가 순간 힘없이 풀렸다."……어."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는 순간, 아드리안이 재빨리 손을 뻗어 그녀를 받아 안았다. 그는 그대로,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두 팔로 완전히 안아 들었다."……폐하!""그러게, 무리라고 했다."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안에는 숨기지 못한 다급함이 배어 있었다. 팔에 닿는 그녀의 몸이, 생각보다 훨씬 가벼웠다.⁃ 이렇게, 가벼웠던가.⁃ 아니, 원래 이 정도였는데— 내가 몰랐던 건가."내려주세요. 걸을 수 있습니다.""방금, 못 걸었잖나.""그건, 잠깐 힘이 풀렸을 뿐입니다.""그러니까, 더더욱— 안 된다."아드리안은 그녀를 안은 채, 다시 침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짧은 몇 걸음 사이에도,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그녀의 창백한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어젯밤엔, 이 얼굴이— 더 창백했지.⁃ 다시는, 이런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은데."……레이먼드.""예, 폐하.""북부 건은, 곧바로 대신들을 소집해 논의하겠다. 우선, 준비해라.""알겠습니다."레이먼드는 그 광경— 황제가 황후를 공주님 안듯 안아 든 모습을 보며, 순간 옅은 미소를 참지 못했다. 그러나 곧, 아드리안의 표정에 서린 무거움을 눈치채고는— 그 미소를 조용히 거두었다.⁃ ……단순히, 다정해서 저러시는 게 아니구나.⁃ 정말로, 두려우신 거다.그는 조용히 목례를 하고 방을 나섰다.셀레스티아는 그의 품 안에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끼며 작게 항의했다."……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는데요.""필요하다.""주변에서 다 봅니다.""봐도 상관없다."아드리안은 담담하게 답하며, 그녀를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그러나 손을 떼는 순간까지도, 그 손길은 지나치리만치 조심스러웠다.⁃ 혹시라도, 또— 어딘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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