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저주받은 성녀 회귀하다: Chapter 41 - Chapter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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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잠든 옆모습

41화. 잠든 옆모습셀레스티아는 잠깐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았는데, 창밖은 이미 붉은 노을로 물들어 있었다.⁃ ……저녁인가.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아침보다는 몸이 한결 가벼웠다. 손목의 검붉은 문양은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통증은 없었다.주위를 둘러보던 그녀의 시선이, 문득 침대 옆 의자에 멈췄다.⁃ ……폐하?아드리안이었다. 서류 몇 장을 무릎 위에 올려둔 채, 팔걸이에 몸을 살짝 기댄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평소의 집무복을 그대로 걸친 채였다. 단추 하나 풀지 않은, 흐트러짐 없는 옷차림. 그러나 정작 그 안의 사람은, 완전히 지쳐 무너져 있었다.⁃ 언제부터, 이러고 계셨던 거지.셀레스티아는 숨소리조차 조심하며,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늘 절제되고 서늘하던 얼굴이, 잠든 지금은— 훨씬 앳돼 보였다. 미간에 옅게 잡혀 있던 주름도, 지금만큼은 살짝 풀어져 있었다.⁃ 이런 얼굴은, 처음 보네.그녀는 조용히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내려섰다. 다리에 아직 힘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지만, 천천히 걸을 정도는 됐다.그녀는 근처에 있던 무릎 담요를 집어 들어, 그의 어깨 위에 조심스럽게 덮어주었다."……음."아드리안이 낮게 뒤척였다. 셀레스티아는 순간 손을 멈추고 숨을 죽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고른 숨소리로 돌아갔다.⁃ 다행이다.그녀는 그 옆에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아, 그의 무릎 위에 놓인 서류를 슬쩍 내려다보았다. 북부 조사단 보고서, 대책 회의 관련 문서들— 손끝에 잉크가 살짝 묻어 있는 걸 보니, 잠들기 직전까지 만년필을 놓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온종일, 이걸 붙잡고 계셨겠지.⁃ 나 때문에.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손등을 아주 가볍게 쓸어내렸다. 손끝에 남은 잉크 자국이, 마치 그가 짊어진 무게처럼 느껴졌다."……미련한 사람."그녀는 낮게 중얼거렸다. 다정함을 가장한 원망이었다.그 순간, 아드리안의 눈꺼풀이 천천히 떠졌다."……셀레스티아?""깨우려던 건 아니었는데."그가 몸을 바로 세우려다, 목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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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황후궁 정원 산책길에서

42화. 황후궁 정원 산책길에서 두 사람은 황후궁 정원을 천천히 거닐었다. 저녁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고, 노을빛이 나뭇잎 사이로 부드럽게 스며들고 있었다."……오랜만이네요. 이렇게 나란히 걷는 거."셀레스티아가 옅게 웃으며 말했다."무리하는 건 아니겠지.""괜찮다니까요. 자꾸 그렇게 물어보시니까, 오히려 더—"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그녀의 다리에서 순간 힘이 풀렸다."……어."몸이 옆으로 기우는 순간, 아드리안이 재빨리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 그러나 완전히 균형을 잃은 그녀를 지탱하기엔 부족했는지, 그는 그대로—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품 안에 완전히 안았다."……폐하!"심장이 순간 쿵, 하고 크게 뛰었다. 놀라서인지, 아니면— 갑자기 가까워진 그 거리 때문인지, 셀레스티아 스스로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거봐라. 괜찮다더니.""이,이건, 진짜 잠깐 헛디딘 것뿐입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녀의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다. 코앞에서 느껴지는 그의 숨결, 그리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금빛 눈동자— 그 모든 것이, 낙하할 때의 놀람보다 훨씬 더 크게 그녀를 흔들고 있었다."그런 걸, 무리라고 하는 거다."아드리안 역시, 겉으로는 담담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전혀 다른 상태였다. 품 안에 안긴 그녀의 무게, 그리고 자신의 가슴께에 맞닿은 그녀의 온기에— 심장이 이상하리만치 크게 뛰고 있었다.⁃ ……왜, 이렇게.그는 애써 그 두근거림을 무시하며, 그녀를 안은 채 근처 벤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셀레스티아는 그의 품 안에서 얼굴이 화끈거리는 걸 느끼며 작게 항의했다."내려주세요. 다리에, 다시 힘 들어왔습니다.""조금만, 이대로.""……왜요.""그냥."그는 짧게 답하며, 그녀를 조심스럽게 벤치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팔은 쉽게 풀지 않은 채, 여전히 그녀를 감싸듯 곁에 바짝 붙어 앉았다.그 거리가, 평소보다 훨씬 가까웠다. 셀레스티아는 그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심장이 또 한 번 크게 뛰는 걸 느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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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안절부절

43화. 안절부절산책 다음 날부터, 아드리안의 행동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폐하, 저 잠깐 서고에 다녀오겠습니다.""혼자서?""네. 책 몇 권만 확인하고 올 겁니다.""……같이 가지.""업무 중이시잖아요.""이 정도는, 잠깐 미뤄도 된다."셀레스티아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또, 이러신다.지난 이틀 사이, 그는 그녀가 어디를 가든— 반드시 함께하려 했다. 서고에 갈 때도, 정원을 걸을 때도, 심지어 마사와 다과를 마실 때조차 슬쩍 그 근처를 맴돌았다."저, 서고 계단 정도는 혼자 오를 수 있습니다.""그 계단에서, 지난번에 넘어질 뻔했었지.""그건 정원에서였고, 계단이 아니었습니다.""……비슷한 거다."결국 아드리안은 서류를 옆으로 밀어두고, 그녀를 따라나섰다.서고로 향하는 길, 셀레스티아가 책장 앞에서 살짝 발끝을 세우려 하자— 그가 곧바로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잡았다."……괜찮습니다. 아직 손도 안 뻗었는데요.""뻗으려고 했잖나.""그야, 책을 꺼내려면—""내가 꺼내주겠다.""……이러다, 제가 손가락 하나 까딱 못 하게 되는 거 아닙니까."아드리안은 그 말에 잠시 멈칫했다가, 낮게 답했다."그 정도로, 안전한 게 낫다."셀레스티아는 결국 옅게 한숨을 내쉬며, 그가 대신 책을 꺼내도록 두었다.⁃ 걱정하시는 건, 알겠는데.⁃ 이 정도까지일 줄은.그날 오후, 마사와 함께 정원 벤치에 앉아 있을 때도— 아드리안은 회의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폐하, 오셨어요?"마사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지나가던 길이다.""이 근처엔, 지나갈 일이 없으실 텐데요."셀레스티아가 옅게 웃으며 지적하자, 아드리안은 헛기침을 하며 슬쩍 시선을 돌렸다.마사는 그 모습을 보며, 슬며시 셀레스티아 쪽으로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마마님, 요즘 폐하가 좀, 심하게 챙기시는 것 같지 않아요?""……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보기 좋긴 한데, 마마님도 좀 답답하시겠어요."셀레스티아는 옅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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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눈치챈 사람

44화. 눈치챈 사람다음 날 아침, 레이먼드가 조심스럽게 아드리안의 집무실을 찾았다."폐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말해라.""어의에게서, 따로 보고를 받았습니다."아드리안의 손이 순간 멈췄다."……무슨 보고.""황후 마마님의 상태에 대해서입니다."레이먼드는 목소리를 한층 낮췄다."겉으로는 회복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성력의 근간이 되는 기력이, 눈에 띄게 저하되고 있다고 합니다."아드리안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그런데 왜, 지금까지 나한테 보고가 없었지.""마마님께서, 직접 함구를 요청하셨다고 합니다."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드리안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역시.⁃ 어제, 그 안색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었어."……얼마나, 심각한 건가.""당장 위험한 수준은 아니라고 합니다. 다만—"레이먼드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이대로 방치하면, 서서히— 회복이 더뎌지다 못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고 합니다."아드리안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그의 시선이, 저 멀리 황후궁 쪽을 향했다.⁃ 나한테는, 괜찮다고 했으면서.⁃ 그렇게, 계속— 혼자 짊어지려고만 하는군."폐하.""……""어떻게 하시겠습니까."아드리안은 오랫동안 침묵하다가, 낮게 답했다."직접, 가보겠다."그는 곧바로 집무실을 나섰다. 황후궁으로 향하는 걸음이, 평소보다 훨씬 빨랐다.한편, 셀레스티아는 침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손목의 문양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그녀는, 문득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유독 더 피곤하네.그때, 노크도 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폐하?"아드리안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표정에는, 평소보다 훨씬 짙은 긴장이 서려 있었다."레이먼드에게, 들었다."셀레스티아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뭘 말씀이십니까.""어의에게 함구를 요청했다는 것. 그리고— 그대의 상태가,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것도."그녀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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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매일의 약속

45화. 매일의 약속그날 이후로, 아드리안은 정말로 매일 아침— 셀레스티아의 상태를 직접 확인하러 왔다."오늘은, 좀 어떤가.""……매일 이렇게 물으실 겁니까?""약속했잖나."셀레스티아는 결국 옅게 웃으며 순순히 답했다."오늘은,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어제보다는요.""손목은."그녀는 소매를 살짝 걷어 보였다. 검붉은 문양은 여전했지만, 색이 아주 조금— 옅어진 것처럼 보였다."……기분 탓인가."아드리안이 그 문양을 유심히 살피며 물었다."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아주 살짝이지만.""어의는, 뭐라던가.""성력이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완전히 없어질지는— 아직 모른다고."아드리안은 그 대답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렸다."……계속, 지켜보겠다.""매일 아침마다요?""그래.""업무는, 괜찮으십니까.""이 정도는, 아침 인사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셀레스티아는 그 뻔뻔한 대답에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인사치고는, 너무 진지하신데요.""진지한 인사도 있는 거다."그날 오후, 마사가 다과를 준비하며 슬쩍 물었다."마마님, 요즘 폐하가— 정말 많이 달라지셨어요.""그렇습니까.""네! 예전엔 그렇게 냉랭하셨던 분이, 이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마님 안부를 물으신다니까요."셀레스티아는 그 말에 옅게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부담스러우세요?"마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아니요."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오히려— 이상하게, 든든합니다."전생에는, 누군가 이렇게까지 자신의 상태를 신경 써준 적이 없었다. 몸이 조금씩 망가져 가는 걸 알아챈 사람도, 걱정해준 사람도— 결국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매일— 확인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그녀는 문득 손목의 문양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이 흔적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이 사람은, 계속— 이렇게 곁에 있어 줄까.그날 저녁, 아드리안이 다시 황후궁을 찾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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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손목의 변화

46화. 손목의 변화며칠 뒤, 늦은 밤— 셀레스티아는 손목의 이질감에 잠에서 깼다.⁃ ……어?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검붉은 문양이— 옅게 빛나고 있었다."……이건."그녀는 황급히 옆에서 자고 있던 아드리안을 흔들어 깨웠다."폐하. 잠시, 일어나 보세요.""……무슨 일이지."아드리안이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키다가, 그녀의 손목을 보고는 순간 완전히 잠에서 깼다."……빛나고 있잖나.""방금, 이질감이 느껴져서 깼는데— 보니까 이랬습니다."두 사람은 그 빛을 유심히 살폈다. 은은한 검붉은 빛이, 마치 맥박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옅어졌다 밝아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통증은.""없습니다. 그냥, 뭔가— 반응하고 있는 느낌입니다."아드리안은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목을 감싸 쥐었다. 그 순간, 빛이 아주 살짝 더 밝아졌다."……!""방금, 폐하가 만지시니까— 더 밝아졌습니다."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이건, 우연이 아니야.셀레스티아는 순간 머릿속으로 빠르게 생각을 정리했다.⁃ 폐하의 손이 닿으면 반응한다는 건— 이게, 단순한 오염의 흔적이 아니라.⁃ 뭔가, 서로를 연결하는 매개체일 수도 있어."……서고에서, 봤던 그 구절."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같은 근원에서 갈라져 나온 정화의 힘'이라던— 그 문장 말입니다."아드리안의 눈빛이 순간 진지해졌다."……이게, 그 근원과 관련이 있다는 건가.""확신할 순 없지만, 가능성은 있습니다."셀레스티아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다른 손을, 그의 손등 위에 겹쳤다.빛이 한층 더 밝아졌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낯선 이미지 하나가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갔다.높이 솟은 나무, 그 아래 마주 선 두 사람의 그림자."……어?""왜 그러나.""방금, 뭔가— 보였습니다.""뭐가 보였나.""나무요. 아주 커다란— 세계수 같은 나무. 그리고 그 아래, 두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아드리안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누구였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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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찢긴 페이지를 찾아서

47화. 찢긴 페이지를 찾아서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은 약속대로 함께 서고를 찾았다."오늘은, 발판 근처에도 가지 마라.""……아직도 그 얘기십니까.""그대는, 한 번 넘어질 뻔한 이력이 있으니까."셀레스티아는 작게 한숨을 쉬면서도, 입가에는 옅은 웃음이 걸려 있었다.⁃ 이 사람, 정말 한결같네. 두 사람은 『태초의 계약사』가 있던 서가 앞에 섰다. 찢긴 페이지의 흔적은 여전히 그대로였다."이 페이지의 뜯겨 나간 부분이 어디로 갔는지가 관건입니다.""키리안이 가져갔다면, 이미 그의 손에 있겠지.""그렇다면 같은 내용이, 혹시 이 책이 다른 곳에 사본으로 남아 있을 가능성은요."아드리안이 순간 그녀를 바라보았다."……사본.""이렇게 중요한 건국 기록이라면, 한 권만 만들었을 리 없습니다. 어딘가에, 분명히 필사본이 있을 겁니다.""황실 기록관, 혹은—"그가 말을 멈췄다. 셀레스티아가 고개를 갸웃했다."혹은요?""……성국."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그곳에 서가는 이 세상의 모든 기록이 저장되는 곳.⁃ 성국.⁃ 성국….이라 ⁃ 내가 떠나온, 그리고 한 번 죽은 곳.셀레스티아의 표정이 아주 잠깐, 굳었다. 아드리안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가기 싫은가.""아니, 싫다기보다는."그녀는 잠시 말을 고르다가 답했다."그곳엔, 좋은 기억이 없어서요.""그럼 가지 않아도 된다.""하지만, 답이 거기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그래도."아드리안이 낮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그대가 내키지 않는 길이라면, 다른 방법을 먼저 찾겠다."셀레스티아는 그 말에 아릿하게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머릿속에서는 냉정한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 북부 오염은 지금도 번지고 있고.⁃ 결국엔, 돌아가야 할 곳이야."일단, 황실 기록관부터 확인해보죠.""그래."두 사람은 서고를 나와 기록관으로 향했다. 그곳의 늙은 기록관이 장부를 뒤적이다가, 의외의 사실을 알려주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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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성국으로 가는 길

48화. 성국으로 가는 길그날 밤, 셀레스티아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성국.그 두 글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화형대의 열기와 광장의 사람들의 야유하는 함성, 대신관의 무표정한 얼굴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선명했다."……잠이 안 오나."침대 옆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드리안이었다. 요즘 그는 그녀가 잠들 때까지 곁을 지키다 돌아가곤 했다."폐하야말로, 안 주무십니까.""그대가 자야, 나도 가지.""……그런 규칙은 어디서 나온 겁니까.""방금 만들었다."셀레스티아는 작게 웃었다. 그러다 웃음을 거두고, 천장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아무래도 성국에 가야 할 것 같습니다.""……기록관의 말 때문인가.""네. 필사본이 거기 있다면, 가장 빨리 찾는 방법은…직접 가는 게 가장 빠릅니다."아드리안은 한참 말이 없다가 낮게 물었다."정말, 괜찮겠나.""괜찮지 않을지도 모릅니다."그녀는 솔직하게 답했다."하지만 이번엔, 혼자 가는 게 아니니까요.""……이번엔, 내가 같이 있으니까.""아마도…제국의 황제가 성국에 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그럼 어려운 일을 하지."셀레스티아는 순간 말문이 막혀 당황한 듯 눈이 커지면서 이불 끝을 만지작거렸다.심장이 이렇게 떨려도 되는걸까? ⁃ 그저 계약일 뿐인데… ⁃ 이 사람은, 정말.⁃ 그런 말을 어떻게 이렇게 쉽게."……그럼, 정식 방문 절차를 밟아야겠네요. 명분은 세계수 오염 및 마물 공동 대응 협의로 하면 됩니다.""역시, 그대는 이럴 때 빠르군.""아무래도 전생에 배운 거라서요."말해놓고 그녀는 흠칫했다. 그러나 아드리안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받았다."그 이야기는, 준비가 되면 해라. 언제든.""……네."며칠 뒤, 성국 방문단이 꾸려졌다. 레이먼드가 호위를 맡았고, 마사는 눈물을 글썽이며 짐을 챙겼다."마마님, 꼭 무사히 돌아오셔야 해요. 쿠키 구워놓고 기다릴게요!""탄 쿠키라도요?""네! 탄 쿠키라도요!"셀레스티아는 웃으며 마사의 손을 잡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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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대신관의 미소

49화. 대신관의 미소성국 대신전의 접견실은, 셀레스티아가 기억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높은 천장, 차가운 대리석 바닥, 그리고 벽마다 걸린 역대 성녀들의 초상화. 전생에 수없이 오갔던 그 공간이, 지금은 낯선 무대처럼 느껴졌다."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대신관이 자리를 권하며 웃었다. 사람 좋아 보이는 온화한 미소였지만, 셀레스티아의 눈에는 늘 기괴하게만 보였다."제국에서의 생활은, 불편함이 없으셨는지요. 성녀님이 떠나신 뒤로, 신전 아이들이 얼마나 서운해했는지 모릅니다.""감사합니다. 제국에서 과분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셀레스티아는 찻잔을 들며 담담하게 답했다.⁃ 저 미소, 그대로네.⁃ 나를 마녀로 몰아 마치 짐승 다루듯, 사람을 불에 태우라고 선고하던 그 순간에도, 저렇게 온화했었지.그녀는 속으로 천천히 숨을 골랐다. 찻잔을 든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지만, 아드리안이 탁자 아래에서 슬쩍 그녀의 손등을 스치듯 건드렸다. 그 짧은 온기에, 떨림이 가라앉았다."이번 방문의 목적은, 이전에 보낸 서신에서 밝힌 대로다."아드리안이 입을 열었다. 제국의 황제로서의 서늘한 얼굴이었다."세계수 오염 공동 대응 협의. 북부의 확산 속도가 심상치 않아서, 성국의 기록과 협력이 필요하다.""물론입니다, 폐하. 성국과 제국이 힘을 합친다면, 이보다 든든한 일이 없겠지요."대신관은 온화한 표정으로 손을 모으며 고개를 끄덕였다."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씀해 주십시오."셀레스티아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입을 열었다."실은, 신전 서고의 오래된 기록을 열람하고 싶습니다. 제국의 건국 신화와 관련된 필사본인데, 선대 황제께서 하사하신 『태초의 계약사』라는 책입니다."그 순간, 대신관의 미소가 아주 잠깐 굳었다. 눈 깜빡할 사이의 일이라, 놓쳤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짧은 변화였다.그러나 셀레스티아는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방금.⁃ 알고 있어. 그 책이 어디 있는지."……『태초의 계약사』 말씀이십니까."대신관이 다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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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서고의 그림자

50화. 서고의 그림자그날 밤, 신전은 깊은 정적에 잠겼다.셀레스티아는 손님방 창가에 서서, 달빛에 젖은 대신전의 지붕들을 내려다보았다.⁃ 분명, 며칠이라고 했지. 그 사이에 치우겠다는 뜻이야.⁃ 그렇다면, 오늘 밤이 가장 위험해."……정말 가려는 건가."등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드리안이었다."혼자 움직이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습니까. 같이 가요.""그건 당연하지.""다만, 통로가 좁습니다. 폐하는 입구에서 망을 봐주세요. 제가 안으로 들어가겠습니다.""……그건, 약속과 다르다.""안과 밖을 나눠서 함께 움직이는 겁니다. 이게 가장 안전해요."아드리안은 한참 그녀를 바라보다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부른다고 약속해라.""약속합니다."두 사람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셀레스티아는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사제들조차 잊은 낡은 통로를 따라 걸었다. 서고 심층부로 이어지는 비밀 계단 앞에서, 그녀는 발걸음을 멈췄다."여기서부터입니다. 저희 신호는 손뼉 두 번이에요.""……조심해라."그녀는 대답 대신 옅게 웃고, 계단을 내려갔다.심층 서고는 서늘하고 눅눅했다. 오래된 양피지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그런데 그 냄새 사이로, 이상한 기름 냄새가 섞여 있었다.⁃ ……이 냄새.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 안쪽 서가 근처에서, 희미한 불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불을 지르려는 거야.셀레스티아는 숨을 죽이고 서가 사이를 달렸다. 모퉁이를 돌자, 검은 사제복의 남자 둘이 서가 아래에 기름을 붓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뒤, 가장 안쪽 책장에 꽂힌 낡은 가죽 장정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태초의 계약사』.⁃ 저거야.그녀는 그림자 속에서 기다렸다. 남자들이 횃불을 집어 들려는 순간, 셀레스티아는 바닥에 놓인 청동 촛대를 걷어찼다."……누구냐!"남자들이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돌린 사이, 그녀는 반대편 통로로 뛰어들어 책장 사이를 가로질렀다. 손을 뻗어 책을 낚아채는 순간, 책이 놓여 있던 선반에서 낡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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