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저주받은 성녀 회귀하다: Chapter 21 - Chapter 30

62 Chapters

21화. 서고 데이트

21화. 서고 데이트발작이 있은 지 며칠 뒤, 셀레스티아는 평소보다 이른 아침 집무실을 찾았다.⁃ 오늘은, 확인해야 할 게 있어.⁃ 그날 밤 이후로, 자꾸만 그 순간이 떠올라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으니까."폐하."서류에 파묻혀 있던 아드리안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를 발견하자, 그의 표정이 순간 옅게 풀어졌다."……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부탁이 하나 있습니다.""말해라.""오늘, 저와 함께 서고에 가주시겠습니까."아드리안이 순간 펜을 멈췄다."……서고라면, 전에도 함께 간 적이 있는데.""이번엔 다릅니다."셀레스티아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제가 찾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리고— 폐하께서도, 함께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뭘 찾는데.""광기와 성력에 대한, 오래된 기록입니다."아드리안의 눈매가 좁아졌다."……갑자기, 왜.""그날 밤, 제 성력이 폐하의 발작을 가라앉혔습니다. 그런데 정작, 왜 그게 가능한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그녀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폐하께서도,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계약 당시, 제 저주를 완화할 방법이 있다고 확신하셨던 그 근거가—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사실은, 이유가 하나 더 있어.⁃ 그날 밤, 폐하 품 안에서 느꼈던 그 안도감이— 대체 어디서 온 건지, 나도 알고 싶으니까.그 속내는 굳이 입 밖에 내지 않았다.아드리안은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낮게 답했다."……오래된 문헌에서, 얼핏 본 기록이 있었을 뿐이다. 정확한 출처는 나도 모른다.""그럼 더더욱, 함께 찾아봐야겠군요."셀레스티아는 옅게 미소 지었다."저 혼자보다는, 폐하와 함께가 훨씬 빠를 테니까요."아드리안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결국 서류를 내려놓았다."……알겠다."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황궁 서고로 향했다.높은 천장까지 빼곡히 들어찬 책장들 사이로, 오후의 햇살이 조용히 쏟아지고 있었다. 걸음을 옮기는 내내, 셀레스티아는 문득 이상한 편안함을 느꼈다.⁃ 이상하다. 정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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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움직이는 체스판

22화. 움직이는 체스판서고를 나선 뒤, 아드리안은 곧바로 레이먼드를 불렀다."『태초의 계약사』의 열람 기록을 전부 가져와라. 최근 반년 치로.""……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찢긴 페이지가 있었다."레이먼드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황실 서고 최심부의 자료가요? 그건 열람 권한을 가진 사람이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만.""그러니 확인해야지."셀레스티아는 그 대화를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다.⁃ 열람 권한이 제한되어 있다면— 범위는 좁혀지겠군.⁃ 그리고 그 좁은 범위 안에, 분명 그 이름이 있을 거야.잠시 후, 레이먼드가 낡은 장부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열람 기록입니다. 지난 반년간, 이 서가에 출입한 인물은 총 세 명뿐입니다."아드리안이 장부를 넘겨받아 살폈다. 셀레스티아도 옆에서 함께 들여다보았다.첫 번째 이름은 궁정 사서. 두 번째는 황실 역사학자. 그리고 세 번째—"북부 마탑주, 키리안 노스페라."셀레스티아의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역시.아드리안의 손끝이 그 이름 위에서 멈췄다. 표정은 담담했지만, 손등에 드러난 힘줄이 그의 속내를 말해주고 있었다."……날짜를 보십시오."셀레스티아가 조용히 짚었다."열람 날짜가, 저희가 계약을 맺은 지 사흘 뒤입니다.""그게 무슨 의미인지.""제가 제국에 왔다는 소식이 퍼지자마자, 곧바로 이 기록을 뒤졌다는 뜻이죠."아드리안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처음부터, 노리고 있었다는 건가.""단정하기는 이릅니다."셀레스티아는 신중하게 답했다.⁃ 감정적으로 판단하면 안 돼.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하지만 적어도— 그가, 제 저주와 폐하의 광기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그날 테라스에서, 그자가 그대의 저주를 언급했었지."아드리안이 낮게 중얼거렸다."처음 만난 자리에서,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꺼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이미 오래전부터, 조사해왔다는 뜻이겠죠."셀레스티아는 장부를 다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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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몰래 한 산책

23화. 몰래 한 산책서고 사건 이후, 아드리안은 부쩍 더 자주 황후궁을 찾았다."오늘은 또 무슨 핑계십니까."셀레스티아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핑계라니. 순수한 계약자의 안부 확인이다.""어제도 오셨는데요.""어제와 오늘은 다른 날이다.""그런 논리가 어디 있습니까.""방금, 내가 만들었다."셀레스티아는 순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 사람, 이제 아예 뻔뻔해지기로 한 모양이네."오늘은, 뭐 하실 겁니까.""산책.""또요?""이번엔 다르다."아드리안이 창밖을 가리켰다."오늘은, 궁 밖으로."셀레스티아의 눈이 살짝 커졌다."궁 밖이요?""황도 외곽에, 작은 호수가 있다. 경치가 나쁘지 않지.""경호는……""최소한으로만. 신분도 숨기고."셀레스티아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이런 제안을 먼저 하실 줄은 몰랐는데."거절할 이유가 없네요."두 사람은 평범한 귀족 부부처럼 변장을 하고, 간소한 마차를 타고 궁을 나섰다. 호위는 레이먼드 한 명뿐이었다."……이런 옷차림도, 나쁘지 않으시네요."셀레스티아가 수수한 옷차림의 아드리안을 살피며 말했다. 화려한 예복 대신, 평범한 여행자용 외투를 걸친 그는— 어딘가 낯설고, 그래서 더 눈에 띄었다."그런가.""네. 훨씬— 편안해 보이십니다.""그대도."아드리안이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그렇게 입으니, 어디 평범한 마을 아가씨 같군.""평범한 마을 아가씨치고는, 너무 잘생긴 남편을 뒀지만요.""……"아드리안은 순간 말문이 막힌 듯,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 반응에, 셀레스티아는 속으로 조용히 웃었다.⁃ 방금, 내가 이겼다.호수는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잔잔한 물결 위로 오후 햇살이 부서지고, 주변에는 야생화들이 드문드문 피어 있었다."여긴, 자주 오십니까?""아니. 어릴 때, 딱 한 번."아드리안이 호숫가에 서서 먼 곳을 바라보았다."……누구와 오셨습니까.""기억이, 잘 안 난다."그의 목소리에 옅은 씁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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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작은 균열의 그림자

24화. 작은 균열의 그림자호숫가에서 돌아온 다음 날, 셀레스티아는 평소처럼 황후 수업을 받고 있었다."마마님, 오늘은 무역 조약 관련 서류를 좀 봐주셔야 할 것 같아요."마사가 두꺼운 서류 뭉치를 안고 들어오며 말했다."무역 조약이요?""네! 최근에 남부 상단들이랑 관세 문제로 좀 시끄럽다더라고요. 폐하께서 마마님 의견도 듣고 싶으시대요."셀레스티아는 서류를 펼치며 옅게 웃었다.⁃ 이런 것까지 나눠주시다니.⁃ 정말로, 계약자 이상으로 대해주시는구나.그녀가 서류를 검토하던 중, 마사가 문득 목소리를 낮췄다."마마님, 근데— 요즘 궁 안에 좀 이상한 소문이 돌아요.""소문이요?""북부 마탑주님이, 최근 들어 황도에 자주 오신대요. 원래는 몇 달에 한 번 올까 말까였는데."셀레스티아의 손이 순간 멈췄다.⁃ 키리안이, 자주 온다고."이유는요?""그건 모르겠어요. 그냥— 공식적으로는 학술 교류라던가 뭐라던가."⁃ 학술 교류라. 편리한 핑계네."마마님,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세요?""……아닙니다. 그냥, 궁금해서요."그날 오후, 셀레스티아는 아드리안의 집무실을 찾았다."레이먼드가 조사한 건, 어떻게 됐습니까.""별다른 건 없다."아드리안이 서류를 내려놓으며 답했다."키리안의 최근 행적은 딱히 수상할 게 없어. 마탑 업무, 학회 참석, 그 정도.""그런데, 요즘 황도 방문 빈도가 늘었다고 들었습니다."아드리안의 눈매가 좁아졌다."……그건 나도 몰랐군. 어디서 들었나.""마사에게서요. 시녀들 사이에 도는 소문이라고 합니다.""확인해보지."셀레스티아는 잠시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직접 만나보는 건 어떻습니까."아드리안이 순간 그녀를 바라보았다."……위험할 수 있다.""압니다. 하지만— 계속 뒤에서 살피기만 하면, 상대가 뭘 준비하는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그자가 노리는 게, 정확히 그대일 수도 있다.""그러니까 더더욱, 제가 나서야죠."셀레스티아는 담담히 답했다."먼저 움직이는 쪽이, 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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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마탑주의 알현

25화. 마탑주의 알현다음 날, 황궁 알현실에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셀레스티아는 아드리안의 옆자리, 황후로서의 자리에 앉아 그 순간을 기다렸다.⁃ 침착하게.⁃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드러내게 만들어야 해.곧, 문이 열리고 키리안이 들어섰다. 평소의 여유로운 미소를 띤 채, 그는 정중히 예를 갖췄다."폐하를 뵙습니다. 그리고— 황후 마마님도, 함께 계셨군요.""보고할 게 있다고 들었다."아드리안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평소보다 더 냉랭한 기색이 실려 있었다."예. 최근 북부 지역에서, 세계수 오염의 이상 징후를 발견했습니다."키리안이 품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오염의 확산 속도가, 예년보다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연스러운 확산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부추기는 듯한 패턴으로요."셀레스티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 정보, 사실일까. 아니면—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끌어들이려는 미끼일까."증거는."아드리안이 짧게 물었다."여기 있습니다."키리안이 두루마리를 펼쳐 보였다. 정교한 지도 위에, 오염 확산 경로가 표시되어 있었다."이 패턴을 보면— 오염이 퍼지는 방향이, 마치 누군가 특정 경로를 '유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셀레스티아는 그 지도를 유심히 살폈다.⁃ 확실히, 자연스러운 확산 패턴은 아니야.⁃ 그런데 이걸, 왜 굳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거지."마탑주께서는."셀레스티아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이 정보를, 왜 저희에게 알려주시는 겁니까."키리안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옮겨갔다. 옅은 미소가 걸린 채였다."황후 마마님께서도, 세계수의 오염과 무관하지 않은 분이시니까요.""제 성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정확합니다."그의 대답은 지나치게 매끄러웠다.⁃ 준비된 답변이야. 이미 예상했던 질문이라는 듯이."이대로 방치하면, 조만간 대규모 오염 확산이 일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결국—""제 힘이, 다시 필요해질 거라는 뜻이겠군요."셀레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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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기다림의 무게

26화. 기다림의 무게그날 이후로, 아드리안은 정말로 아무것도 캐묻지 않았다.⁃ 정말로, 나를, 기다려주시는구나.셀레스티아는 그 사실이, 오히려 더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모든 것을 캐물었다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곁에 있어 주시니까— 이게 더,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지는 이 마음은 뭘까그녀는 황후궁 창가에 앉아, 저물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말한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정말로,⁃ "저는 이미 한 번 죽었습니다. 세계수를 구한 대가로, 이미 화형대에서요." 이렇게?⁃ 그다음은. "그러니 이번 생에는 아무도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폐하 때문에 그 다짐이 자꾸 흔들립니다." 이것까지, 다 말해야 하나.그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하게 조여왔다.⁃ 만약, 믿지 않으시면.⁃ 아니, 믿는다 해도— 그다음엔.⁃ 회귀했다는 걸 안 순간, 이 사람도— 나를 다르게 보게 되지 않을까.⁃ 계산적이고, 비밀이 많고, 언제 또 무엇을 숨기고 있을지 쓸쓸하고 외로운 아무도 모르는 존재로.그녀는 문득 씁쓸하게 웃었다.⁃ 우습다. 인간을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내가, 이제는— 그렇게 믿어달라고, 그렇게 바라고 있다니.그때, 문밖에서 낯익은 발소리가 들렸다. 노크 소리와 함께, 아드리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들어가도 되나.""……예."문이 열리고, 아드리안이 들어섰다. 평소처럼 담담한 얼굴이었지만, 그 손에는 낯선 것이 들려 있었다."이건……""북부에서, 조사단이 가져온 것 중 일부다."그가 내민 것은, 작은 압화가 든 유리 장식품이었다. 옅은 푸른 빛이 나는 하늘빛 꽃이 곱게 눌려 있었다."보고서와 별개로, 조사단이 그대에게 전해달라더군. 북부 지역 특산품이라고."셀레스티아는 그 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성국 북부의 꽃이잖아.⁃ 예전에, 서고에서 선물 받았던 그 꽃과 같은."……감사합니다."그녀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그 순간, 손끝이 아주 살짝 떨리고 있다는 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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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몰랐던 얼굴

27화. 몰랐던 얼굴그날 오후, 셀레스티아는 우연히 아드리안의 집무실 앞을 지나다가, 낯선 광경을 목격했다.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그 틈으로— 아드리안이 어린아이 하나를 무릎에 앉힌 채, 서툴게 뭔가를 그려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건.그녀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았다."폐하, 이거 용 맞아요?"아이가 그림을 가리키며 물었다."……비슷하다.""안 비슷한데. 다리가 이상해요.""……그런가."아드리안은 진지하게 다시 붓을 들었다. 평소의 절제되고 서늘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어딘가 곤란한 기색이 역력했다.셀레스티아는 결국 참지 못하고, 살며시 문을 열었다."……누구십니까?"그녀가 묻자, 아드리안이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셀레스티아.""이 아이는요?""레이먼드의 조카다. 잠시 맡아달라고 부탁받았다."아이가 셀레스티아를 발견하고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이분은 누구세요?""황후 마마시다."아드리안이 답했다. 아이는 순간 깜짝 놀라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려 했다."괜찮습니다. 편하게 있어도 돼요."셀레스티아가 부드럽게 웃으며 아이를 다시 앉혔다. 그리고 그림을 슬쩍 내려다보았다."……이거, 폐하가 그리신 겁니까?""그렇다.""생각보다, 그림에는 소질이 없으시네요.""……"아드리안은 순간 말문이 막힌 듯, 헛기침을 했다. 아이가 옆에서 키득거렸다."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둘이서, 나를 놀리는 건가.""그럴 리가요."셀레스티아는 웃음을 참으며 옆자리에 앉았다."제가 도와드릴까요?""……그대도, 그림을 그릴 줄 아나.""신전에서, 성화를 베끼는 수업이 있었습니다. 용은, 자신 있습니다."그녀는 붓을 받아 들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용의 형태를 잡아나갔다. 아이가 그 모습을 눈을 반짝이며 지켜보았다."우와, 진짜 잘 그리신다!""……"아드리안은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낮게 중얼거렸다."의외의 재주로군.""의외라니요. 저도, 폐하가 모르시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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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업무 중 훼방

28화. 업무 중 훼방다음 날, 셀레스티아는 다시 아드리안의 집무실을 찾았다. 어제 그 아이가, 오늘도 잠시 맡겨졌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폐하, 저 왔습니다."문을 열자, 아드리안이 서류 더미 사이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 발치에는, 어제 그 아이가 심심한 얼굴로 바닥에 앉아 있었다."……마마님!"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벌떡 일어났다."오늘도 오셨네요!""오늘은 조금 한가해서요."셀레스티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참, 제가 아직 이름을 못 물어봤네요.""……"아이가 순간 부끄러운 듯 몸을 배배 꼬았다."이름, 말해도 돼요?""당연하죠.""……테오예요.""테오."셀레스티아는 그 이름을 다정하게 되뇌며 웃었다."좋은 이름이네요."테오의 얼굴이 순식간에 발그레해졌다."마마님이 불러주시니까, 이상하게 더 좋은 이름 같아요.""애가 벌써부터 입만 살았군."아드리안이 서류를 넘기며 낮게 중얼거렸다."삼촌 닮았나 봅니다."셀레스티아가 웃으며 받아쳤다."……"아드리안은 대답 대신 헛기침을 했다. 테오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폐하는, 바쁘십니까?""오늘은, 밀린 결재가 많다.""그럼 테오는요?""……어쩔 수 없이, 여기 앉혀뒀다."그의 시선이 의자 옆 작은 방석을 가리켰다. 테오가 심심해서 발끝으로 바닥을 툭툭 차고 있었다.셀레스티아는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결심한 듯 소매를 걷었다."제가, 놀아드릴게요.""……그럴 필요까지는.""괜찮습니다. 폐하는, 업무를 보세요."그녀는 자연스럽게 테오 옆에 앉았다."자, 뭐 하고 놀까요, 테오.""음…… 마마님, 술래잡기 아세요?""여기서는, 좀 곤란할 것 같은데요.""그럼 끝말잇기는요!""좋습니다."아드리안은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지만, 귀는 이미 두 사람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있었다."먼저 할게요! 용!""용…… 기사.""사자!""자라.""라면!""……라면이라니, 그게 뭡니까.""저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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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셋이서, 둘이서

29화. 셋이서, 둘이서다음 날도, 테오는 어김없이 아드리안의 집무실을 찾았다."마마님, 오늘도 저랑 놀아주실 거죠?"문 앞에서부터 기대에 찬 눈으로 물어오는 테오를, 셀레스티아는 웃으며 맞아주었다."물론이죠.""삼촌!"테오가 레이먼드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레이먼드가 테오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서며, 정중히 예를 갖췄다."폐하, 황후 마마님. 오늘도 신세를 지게 됐습니다.""신세라니. 나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아드리안이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답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어제와는 확실히 다른 여유가 묻어 있었다.레이먼드는 그 대답에 순간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슬쩍, 셀레스티아와 아드리안을 번갈아 살폈다.⁃ ……응?테오는 이미 셀레스티아의 손을 잡고 방석 쪽으로 이끌고 있었다."마마님, 오늘은 카드놀이 해요! 제가 가져왔어요!""좋아요."셀레스티아가 테오와 함께 자리에 앉는 동안, 아드리안이 서류를 넘기던 손을 잠시 멈추고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소의 서늘한 눈빛과는 다른, 부드럽게 풀어진 시선이었다.레이먼드는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폐하께서, 저런 얼굴을 하시는구나.그는 문가에 선 채, 세 사람— 아니, 정확히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공기를 가만히 지켜보았다.셀레스티아가 카드를 나눠주며 뭔가 말하자, 아드리안이 서류를 완전히 내려놓고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테오가 신이 나서 카드를 뒤섞는 동안, 셀레스티아와 아드리안의 눈이 잠시 마주쳤다.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둘 사이에 오가는 그 짧은 눈빛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것 같았다.⁃ 이건, 제가 낄 자리가 아니군.레이먼드는 조용히 헛기침을 했다."폐하. 잠시, 밖에서 처리할 업무가 있어서— 제가 잠깐 자리를 비워도 되겠습니까.""……그래."아드리안이 여전히 시선은 카드 쪽에 둔 채 짧게 답했다. 평소라면 이유를 물었을 법도 한데, 지금은 그럴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테오는, 제가 이따 데리러 오겠습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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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곁에 있으면

30화. 곁에 있으면저녁 무렵, 레이먼드가 테오를 데리러 돌아왔다."오늘도, 신세 많았습니다.""별말씀을."셀레스티아가 웃으며 답하자, 테오가 아쉬운 얼굴로 그녀의 옷자락을 살짝 붙잡았다."마마님, 내일도 올 거예요?""레이먼드 경이 허락해주신다면요.""삼촌, 허락해줘요!"레이먼드는 그 말에 옅게 웃으며 테오의 손을 잡아끌었다."이러다 아주 눌러앉으시겠습니다.""안 될 것도 없지."아드리안이 서류를 정리하며 짧게 답했다. 레이먼드는 순간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아무 말 없이 목례를 하고 테오와 함께 물러갔다.문이 닫히자, 집무실 안에는 다시 두 사람만 남았다."……폐하, 마저 업무 보세요. 저는, 테오가 두고 간 놀이감들 좀 정리할게요."셀레스티아는 바닥에 흩어진 카드와 작은 장난감들을 하나씩 주워 담기 시작했다. 아드리안은 서류로 시선을 돌렸지만, 손끝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그는 슬쩍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물어가는 햇살 아래, 무릎을 꿇고 앉아 조용히 물건을 정리하는 그녀의 옆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셀레스티아.""네?"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아드리안은 잠시 망설이다가, 낮게 물었다."요즘, 표정이 한결 편해 보인다."셀레스티아는 그 말에 손을 멈추고, 옅게 웃었다."그런가요.""그래."그녀는 정리하던 장난감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조용히 답했다."……아마, 이곳이— 그렇게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이곳이라니. 황후궁 말인가.""그것도 있지만."셀레스티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솔직하게 말을 이었다."폐하 곁이요."아드리안의 손끝이 순간 멈췄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그런 말을,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건가.""아무렇지 않지는, 않습니다."셀레스티아가 살짝 웃으며 덧붙였다."사실, 말하고 나니— 지금 좀 떨립니다."아드리안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의 맞은편에, 조용히 바닥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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