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계적인 록스타 남친이 나만 바라본다 (실버라인): Chapter 51 - Chapter 60

120 Chapters

51화- 들어온다

1월의 공기는 차갑지만, 학교 안의 분위기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겨울방학이 끝나고 복도가 다시 채워졌다.사물함 앞에는 새 시간표를 들여다보는 학생들이 모여 있었고, 체육관 쪽에서는 농구공 튀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누군가는 두꺼운 패딩을 벗지 않은 채 서 있었고,다른 누군가는 방학 동안 바뀐 얘기를 쏟아내고 있었다.애리는 교문을 지나며 장갑을 벗었다.손끝에 남아 있는 찬 기운을 털어내듯 가볍게 손을 움직였다.그때 앞서 가던 여자애 둘이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애리, 들었어?”애리가 고개를 돌렸다.“뭘.”“실버라인.”말을 꺼낸 애가 숨을 한 번 고르고 이어 말했다.“1위 찍었대.”애리는 바로 반응하지 않았다.“어디서?”“빌보드.”옆에 있던 다른 애가 끼어들었다.“아침 라디오에서 나왔어. 진짜라던데.”“아까 컴퓨터실에서 확인한 애도 있대.”“미쳤다, 진짜.”말들이 겹쳤다.이건 농담처럼 흘리는 얘기가 아니었다.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표정이 크게 변한 것도 아니었다.그냥 한 번 더 물었다.“…진짜야?”“응.”이번에는 바로 답이 돌아왔다.“지금 난리야.”앞쪽에서 누군가 급하게 뛰어오며 말했다.“야, 뉴스 떴어.”숨이 조금 가쁜 상태였다.손에 쥔 휴대폰을 그대로 들어 보였다.“문자로 왔어.”주변 애들이 한 번에 몰렸다.작은 화면 안에 짧은 문장이 떠 있었다.[Silverline tops Billboard Hot 100]딱 한 줄이었다.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간단했다.“와…”누군가 낮게 말했다.애리는 그 화면을 바라봤다.글자를 한 번 훑고 지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한 글자씩 확인했다.이름.순서.틀린 데가 없었다.잠시 후, 휴대폰이 다시 내려갔다.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이미 다음 얘기로 넘어가는 애들도 있었고, 아직 믿기지 않는다는 애들도 있었다.애리는 가만히 서 있었다.그리고 천천히 가방 끈을 고쳐 잡았다.그때였다.주머니 안에서 진동이 울렸다.애리는 걸음을 멈추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Read more

52화- 지금은요

차 안이었다.창밖은 아직 어두웠다.가로등 불빛이 유리창을 따라 길게 흘러갔다.노아가 뒷좌석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몇 시야 지금?”앞자리에서 대답이 돌아왔다.“다섯 시 반.”빌보드 1위 이후에 붙은 매니저, 톰 해리스였다.짧은 머리에 두꺼운 패딩을 입은 채 조수석에 앉아 블랙베리를 확인하고 있었다.“오늘 방송 여섯 개야.”노아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미쳤네.”마커스는 아무 말 없이 일정표를 보고 있었다.스케줄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방송, 인터뷰, 라디오.시간 간격이 거의 없었다.“첫 번째가 뭐죠?”마커스가 물었다.“굿모닝 아메리카.”톰 해리스는 블랙베리를 확인한 채 답했다.“생방.”노아가 눈을 떴다.“어! 아침 방송을 우리가 나간다고?”“나간다.”그는 빫게 말했다.“준비는요?”“대본 있어.”마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질문은?”“기본적인 거.”블랙베리 화면을 넘기며 말을 이었다.“1위 소감, 팀 소개, 다음 계획.”노아가 피식 웃었다.“뻔하네.”“뻔하게 해야 돼.”이번에는 마커스가 말했다.“괜히 튀지 말고.”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줄리안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유리창에 비친 얼굴이 어둡게 겹쳐 있었다.차가 천천히 속도를 줄이고 건물 앞에 멈췄다.“도착.”톰 해리스가 말했다.차문이 열리자 차가운 공기가 안으로 밀려들었다.대기실은 이미 분주했다.스태프들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헤어 도구들이 정리되어 있었다.“여기 앉으세요.”누군가 자리를 가리켰다.노아가 먼저 앉았다.“와.”거울을 보며 말했다.“이거 진짜네.”마커스는 바로 옆에 앉았다.“시간 없어요.”스타일리스트가 말했다.“바로 들어갈게요.”손이 빠르게 움직였다.머리를 정리하고, 옷을 고치고, 마이크를 체크했다.줄리안은 말없이 앉아 있었다.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한 번 바라봤다.낯설지는 않았지만 조금 달라 보였다.“준비되셨죠?”스태프가 물었다.마커스가 먼저 일어났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Read more

53화- 그 말의 이후

다음 날이었다.교실 안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시끄러웠고, 누군가는 웃고 있었고, 누군가는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애리.”옆자리에서 말했다.“어제 봤어?”애리가 고개를 들었다.“…뭐.”“MTV.”여자애가 웃었다.“지금은요~.”여자애가 장난처럼 따라 하자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애리는 아무렇지 않게 책장을 넘겼다.“아, 그거.”그리고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내가 그렇게 말하라고 한 거야.”순간 주변이 잠시 조용해졌다.“진짜?”애리가 어깨를 으쓱했다.“인터뷰는 원래 그렇게 정리해야 돼. 괜히 이상하게 말했다가 더 커지니까.”예상보다 담담한 반응에 누군가 감탄하듯 말했다.“오.”“관리하네.”애리는 별다른 대답 없이 다시 책으로 시선을 내렸다.***집이었다.애리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침대에 앉아 휴대폰을 들었다.한동안 화면만 내려다보다가 메시지창을 열었다.[어제 인터뷰 봤어]잠시 멈췄던 손가락이 다시 움직였다.[지금은요?]메시지를 보내고도 화면을 바로 끄지 못했다.답장은 오지 않았다.애리는 결국 휴대폰을 뒤집어 놓았다.하지만 다음 날이 될 때까지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방송국이었다.대기실 문이 계속 열렸다 닫혔다 했고 사람들도 쉴 새 없이 드나들었다.“다음 바로 들어갑니다.”스태프가 말하고 지나갔다.노아가 소파에 몸을 던지듯 앉았다.“야… 이거 언제 끝나냐.”마커스가 물을 한 모금 넘겼다.“아직 멀었어.”노아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미쳤다.”줄리안은 말없이 벽에 기대 서 있었다.그때 손에 들려 있던 휴대폰이 짧게 울렸다.그는 화면을 확인하다가 잠깐 멈췄다.애리였다.[어제 인터뷰 봤어][지금은요?]문장을 읽은 채로 손가락이 잠시 멈춰 있었다.그 순간 노아 목소리가 옆에서 터졌다.“바로 들어간다!”“줄리안.”이번에는 마커스였다.줄리안이 고개를 들었다.“…이따 할게.”거의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그는 화면을 끄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그리고 그 뒤로는, 다시 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Read more

54화- 결정

다음 날이었다.집 안은 조용했다.부모님은 외출 중이었고, 거실 불도 꺼져 있었다.애리는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았다.한동안 서 있다가, 천천히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의자를 당겨 앉은 뒤 노트북을 켰다.부팅 화면이 올라오는 동안 자연스럽게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휴대폰이었다.애리는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켰다.어제와 똑같았다.답장은 아직 없었다.괜히 메시지함을 다시 열어봤지만, 새로 온 문자는 없었다.애리는 결국 휴대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이번에는 뒤집지 않았다.화면이 보이는 쪽 그대로 두었다.노트북 화면이 켜졌다.빈 화면 위에서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다.애리는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며칠 전 일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교실에서 들리던 웃음소리와“지금은요.”짧게 이어졌던 그 말.어제의 장면도 겹쳐졌다.지율의 한 마디,“여자친구 입장에서는.”애리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그리고 마우스를 움직였다.검색창이 열렸다.잠시 손이 멈췄다가, 익숙한 단어를 천천히 입력했다.아이비리그.예일.관련 페이지가 바로 화면에 올라왔다.예전에도 몇 번 본 적 있는 사이트였다.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느낌이 달랐다.예전에는 그냥 막연한 가능성처럼 느껴졌다면, 이번에는 훨씬 현실적으로 다가왔다.입시 일정,지원 조건,에세이.화면에는 학교에서 몇 번씩 들어본 단어들이 줄줄이 떠 있었다.SAT,추천서,활동 기록.익숙한 단어들이었지만, 이렇게 직접 하나씩 찾아보는 건 처음이었다.애리는 스크롤을 천천히 내렸다.예전에는 뉴욕대 쪽을 먼저 찾아봤다.학교 분위기도 좋았고, 맨해튼과 가까운 것도 마음에 들었다.그리고 그 이유 안에는 줄리안도 있었다.애리는 손을 멈췄다.다른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뉴욕.줄리안.두 단어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하지만 이번에는 오래 흔들리지 않았다.애리는 메모장을 열었다.‘예일 준비’짧게 적은 뒤, 그 아래에 하나씩 덧붙이기 시작했다.필요한 것들.앞으로 해야 할 것들.글이 아래로 차곡차곡 쌓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Read more

55화- 다른 위치 (시즌 1 마지막)

1월 중순이었다.겨울은 한가운데였지만, 실버라인에게 계절은 이미 의미가 없었다.시간은 완전히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단 한 번의 기록 이후였다.빌보드 1위.그 숫자 하나가 모든 걸 바꿔 놓았다.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횟수가 달라졌고, 방송 섭외의 순서가 바뀌었고, 무대의 크기가 달라졌다.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방식이 바뀌었다.이제는 설명할 필요가 없는 이름이었다.투어는 그 변화 위에서 시작되고 있었다.이번에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규모였다.11월, 작은 클럽들을 돌며 직접 확인했던 반응.그건 시작에 불과했다.지금은 이미 결과가 나온 상태였고, 이제는 그 결과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단계였다.전미 투어가 확정됐다.4월부터 시작되는 일정, 장장 네 달에 걸친 여정이었다.출발은 동부였다.뉴욕이 가장 먼저 이름을 올렸고, 그 다음으로 필라델피아와 보스턴, 워싱턴.그리고 디트로이트와 시카고가 이어졌다.동부에서 중부로 넘어가는 흐름이었다.이후 덴버, 피닉스, 마이애미, 내슈빌, 댈러스.그리고 마지막은 서부였다.시애틀, 샌디에이고, 샌프란시스코, 라스베이거스, 로스앤젤레스.미국을 가로지르는 하나의 긴 선.투어는 그렇게 구성되어 있었다.공연장은 더 이상 클럽이 아니었다.몇 천 석 규모의 홀, 어떤 도시는 아레나급으로 올라갔다.좌석의 높이가 달라졌고 무대를 바라보는 각도도 달라졌다.이제는 뒤쪽에서도 보이는 무대를 만들어야 했다.조명은 더 강해졌고, 음향은 더 넓게 퍼졌다.세 사람의 움직임도 그에 맞춰 바뀌고 있었다.무대 위에서의 거리, 동선, 시선. 모든 게 다시 설계되고 있었다.투어 준비는 무대 위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장비가 먼저 움직였다.스피커와 조명, 케이블과 앰프가 도시마다 이동해야 했다.빠지는 게 없는지 리스트를 기준으로 하나씩 확인이 들어갔다.무대 설치 시간도 미리 계산되어 있었다.도착하면 바로 세팅이 시작됐다.리허설을 거쳐 문이 열리고 공연이 이어지는 흐름이었다.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0
Read more

시즌2. 56화- 지율

3월의 끝이었다.결과는 이미 나와 있었다.화면에 뜬 문장은 짧았고, 그 안에 필요한 건 전부 들어 있었다.지율은 한 번 더 읽은 뒤 그대로 창을 닫았다. 더 확인할 것도 없었다.책상 위에는 아직 정리하지 않은 노트 몇 장이 펼쳐져 있었고, 방 안은 조용했다.하버드.그 이름은 오래전부터 그의 목표였기에 크게 낯설지 않았다.놀랍지도 않았다.기뻐해야 하는 순간이라는 건 알았지만, 감정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오히려 모든 게 너무 예상한 흐름대로 흘러가서 실감이 늦게 오는 쪽에 가까웠다.핸드폰은 아직 조용했다. 축하 메시지가 들어오기 시작하면 답해야 할 사람도 많아질 거였다.지율은 그 전에 잠깐 숨을 돌리고 싶었다. 의자에 기대 앉아 천장을 한 번 올려다봤다가, 다시 시선을 내렸다.그때 이상하게 다른 장면이 먼저 떠올랐다.햄튼의 밤.처음엔 별 의미 없었다.그곳은 사람이 많았고 익숙한 종류의 자리였다. 어른들은 웃고 있었고 잔은 계속 부딪혔다.별장은 바다 바로 앞에 있었지만, 그 안의 분위기까지 가벼운 건 아니었다.지율은 그런 자리에 익숙했다. 적당히 인사하고 필요한 만큼만 대답한 뒤,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으면 되는 자리였다.그 안에서 애리를 봤다.처음엔 그냥 예쁘장한 애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였다.그런데 조금 이상했다.보통 그런 자리에서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분위기에 맞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적당히 시선을 주고, 대화를 이어갈 틈을 만든다.그런데 애리는 달랐다.사람들 쪽보다 자꾸 바다 쪽을 보고 있었고, 대답은 짧았고, 관심은 분명히 다른 데 가 있었다.지율은 그게 조금 신기했다.그래서 테라스까지 따라 나갔다.“여기 숨기 좋네요.”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별 뜻은 없었다.그런데 애리는 예상보다 더 분명했다. 맞춰줄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짧게 대답했고, 선을 흐리지도 않았다.말 놓지 마세요, 하고 잘라 말하던 순간에 지율은 속으로 한 번 웃었다.이런 타입이구나.흥미가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Read more

57화- 별 거 아닌 일

스터디가 있는 날이었다.날씨는 애매했다.완전히 따뜻해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시 추워진 것도 아니었다.겉옷을 벗기엔 이르고, 입고 있기엔 답답한 오후였다.애리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다.문을 열자 이미 몇 명이 와 있었다.책상 위에는 프린트가 반쯤 펼쳐져 있었다. 누군가는 음료 뚜껑을 열고 있었고, 누군가는 노트북을 켠 채 자료를 훑어보고 있었다.애리는 별말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익숙한 자리에 가방을 내려놓고, 노트를 꺼냈다.그때였다.“오늘 일찍 왔네요.”고개를 들자 지율이 보였다.그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었다.프린트는 이미 펼쳐져 있었고, 펜이 손가락 사이에서 천천히 한 번 돌아갔다.애리는 짧게 말하고는 자리에 앉았다.“그냥요.”지율은 더 묻지 않았다.가볍게 고개만 한 번 끄덕였다.애리는 괜히 노트를 펴는 손이 조금 느려진 걸 느꼈다.곧 사람들이 더 들어오기 시작했다.의자가 끌리는 소리.가방 내려놓는 소리.누군가 웃으면서 지난 주 과제 얘기를 꺼냈고, 다른 누군가는 또 한 번 지율 얘기를 꺼냈다.“근데 진짜 대박이긴 하다.”“그러니까.”“하버드 붙고도 여기 계속 나오는 거 보면 독해, 진짜.”애리는 프린트 한 장을 넘기다가 손을 멈췄다.시선은 내려가 있었고 듣지 않으려 해도 들리는 거리였다.지율은 별 반응이 없었다.그냥 펜 끝으로 종이 한쪽을 가볍게 눌렀다.누군가 장난처럼 말했다.“이제 우리랑 다른 사람 아냐?”그제야 지율이 고개를 들었다.“원래 달랐다는 뜻이면 인정.”그 말에 몇 명이 웃었다.말투는 가벼웠는데, 길게 이어질 틈은 주지 않는 대답이었다.“와, 성격 진짜.”“농담도 저렇게 하냐.”스터디 분위기가 금방 풀렸다.애리는 그제야 다시 프린트로 시선을 내렸다.그런데 조금 전 그 대답이 괜히 남았다.원래 달랐다는 뜻이면 인정.가볍게 넘긴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 선명했다.스터디가 시작되고 나서는 다들 금방 조용해졌다.오늘 자료는 두 가지였다.짧은 리딩 한 편과 에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Read more

58화- 다른 밤

스터디가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는 공기가 생각보다 차가웠다.해는 이미 졌고, 건물 밖 인도에는 사람들로 적당한 흐름이 생겨 있었다.서두르는 발걸음, 짧게 울리는 차 경적, 모퉁이를 돌 때마다 스치는 바람.애리는 가방끈을 한 번 고쳐 잡고 천천히 길을 건넜다.그때 핸드폰이 짧게 울렸다.줄리안이었다.[끝나고 집에 가 있어.][나도 오늘은 빨리 끝내고 갈게.]애리는 화면을 내려다봤다.설명도 없고, 별다른 말도 없는 문자였다.그런데 이상하게 조금 전까지 머릿속에 남아 있던 것들이 잠시 멈췄다.애리는 답장을 길게 쓰지 않았다.[응.]그 한 글자만 보내고 핸드폰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발걸음 방향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지하철역까지 걷는 동안 애리는 별생각 없이 앞만 봤다.사람들 틈에 섞여 개찰구를 지나고 익숙한 노선도를 한 번 보고, 열차가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갔다.빈자리가 있었지만 앉지는 않았다.문 옆에 선 채 창에 비친 자기 모습을 흘깃 봤다가, 곧 시선을 돌렸다.가방 안쪽이 손끝에 닿았다.오늘 받은 프린트가 들어 있는 자리였다.손끝이 그 위에서 잠시 멈췄다가 다시 떨어졌다.열차는 익숙한 속도로 터널을 지나갔다.역 이름이 하나씩 지나갔고, 애리는 중간에 한 번도 핸드폰을 꺼내지 않았다.줄리안 집이 있는 블록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엘리베이터 안은 조용했다.애리는 층수가 바뀌는 숫자를 보다가 다시 시선을 내렸다.문이 열리고 복도가 나왔다.걸음을 멈추지 않고 현관 앞까지 갔다.비밀번호를 누르는 손놀림은 익숙했지만 약간의 망설임까지 사라진 건 아니었다.문이 열리자 조용한 실내가 먼저 보였다.불은 꺼져 있었다.애리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문을 닫고 한순간 그대로 서 있었다.줄리안이 없는 집은 익숙한데도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거실 한쪽에 기타 케이스가 기대어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잡지 한 권과 리모컨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소파 팔걸이 쪽에는 벗어 둔 후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Read more

59화- 꼭 와

주문한 음식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종이봉투에서 하나씩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 금방 식탁이 좁아졌다.플라스틱 용기 뚜껑에 맺힌 김,달큰한 소스 냄새,기름기 어린 볶음밥 냄새가 따뜻하게 퍼졌다.줄리안은 서랍에서 포크 두 개를 꺼내 하나를 애리 쪽으로 밀어주었다.“먹어.”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둘은 말없이 식탁에 앉았다.배가 고픈 건 맞았고, 막상 음식이 눈앞에 놓이니 그쪽으로 먼저 손이 갔다.애리는 볶음밥을 한 입 먹고 천천히 씹었다.줄리안은 치킨 상자를 열어 대충 한 조각을 집어 먹었다.조용한 시간은 짧게 이어졌다,.줄리안이 먼저 물었다.“공부는 잘 돼?”애리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포크 끝으로 볶음밥을 한 번 고르고, 물컵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그럭저럭.”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이었다.줄리안은 그 이상 재촉하지 않았다.그냥 작게 “음.” 하고 반응한 뒤 다시 포크를 들었다.애리는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그런데 이상하게, 오늘 스터디에서 들은 말들이 조용해진 식탁 위에서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결국 먼저 입을 연 건 애리였다.“지율 씨 하버드 붙었대.”줄리안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누구?”애리가 시선을 들었다.“지율 씨.”줄리안은 몇 초쯤 아무 말 없이 애리를 봤다.“어떻게 알아.”애리는 포크 끝으로 볶음밥을 한 번 건드렸다.“…스터디하면 다 알게 돼.”줄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구나.”담담한 목소리였다.줄리안은 더 묻지 않았고, 애리도 더 보태지 않았다.식탁 위에 짧은 정적이 한 번 내려앉았다.하지만 불편하진 않았다.오히려 서로 아는 것들이 많아서 생기는,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침묵에 가까웠다.잠시 후, 줄리안이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13일부터야.”애리가 고개를 들었다.“뭐가.”“투어.”그는 짧게 대답했다.“뉴욕 공연부터 시작.”애리는 날짜를 머릿속에 떠올렸다.지금이 4월 초니까, 생각보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얼마 안 남았네.”“응.”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Read more

60화- 시작 전

며칠 뒤였다.리허설장은 생각보다 훨씬 밝았다.객석은 비어 있었고 무대 위에는 케이블과 스탠드, 모니터 스피커가 반듯한 선처럼 놓여 있었다.천장 위 조명은 절반만 켜져 있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무대의 윤곽은 충분히 드러났다.첫 공연까지 남은 시간은 길지 않았다.4월 13일 뉴욕.모든 준비가 그 날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마커스는 무대 중앙 쪽에서 셋리스트 종이를 들고 스태프와 얘기하고 있었다.곡 순서 아래쪽에 적힌 메모를 한 번 보고, 멘트 들어가는 지점과 조명 큐를 다시 확인했다.“세 번째 곡 끝나고 멘트는 내가 받을게.”마커스가 말했다.“그다음 바로 넘어가면 흐름 안 끊겨.”아래에 있던 스태프가 고개를 끄덕였다.“오케이.”줄리안은 무대 앞쪽에서 자기 마이크 높이를 다시 맞추고 있었다.스탠드를 살짝 내려 보고, 손으로 한 번 더 잡아당긴 뒤 케이블이 발에 걸리지 않는지까지 확인했다.“줄리안, 두 번째 곡 끝나고는 앞으로 너무 안 나가도 돼.”마커스가 종이를 보며 말했다.“네 번째에서 더 써야 하니까.”줄리안은 시선만 들었다.“알아.”짧게 답하고 다시 제 위치를 봤다.노아가 반대편에서 웃었다.“쟤 오늘 또 예민하다.”마커스가 피식 웃었다.“오늘만?”줄리안이 바로 받아쳤다.“…둘 다 시끄러.”기분이 나쁜 목소리는 아니었다.그런데 가볍지도 않았다.노아는 베이스를 어깨에 건 채 무대 옆으로 걸어갔다.“봐. 맞잖아.”그때 무대 뒤쪽에서 드럼 소리가 짧게 울렸다.쿵.타.타탓.세션 드러머였다.이번 투어에는 드러머가 붙었다.정식 멤버는 아니었지만 공연 규모가 커진 만큼 라이브 사운드를 채우기 위해 필요한 자리였다.드럼 키트 뒤에 앉아 있던 남자가 킥 페달을 한 번 더 밟아 보고, 스네어 텐션을 확인한 뒤 스틱을 손가락 사이에서 굴렸다.움직임에 군더더기가 없었다.노아는 고개를 들었다.드럼 쪽이었다.잠깐, 드러머와 시선이 마주치자 노아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그대로 몇 걸음 더 가까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11
Read more
PREV
1
...
45678
...
12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