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계적인 록스타 남친이 나만 바라본다 (실버라인): Chapter 61 - Chapter 70

120 Chapters

61화- 뉴욕, 첫 무대

백스테이지 공기는 묘하게 건조했다.환풍기 소리가 낮게 깔려 있었고, 어딘가에서 케이블이 바닥을 긁는 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렸다.스태프들이 오가며 짧게 말을 주고받았다.“10분 전입니다.”줄리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손에 쥔 기타 넥을 한번 쓸어내렸다.손끝에 익숙한 거친 감촉이 닿았다.늘 쓰던 기타였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더 무겁게 느껴졌다.객석은 아직 조명이 완전히 꺼지지 않은 상태였다.사람들이 천천히, 계속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좌석 사이로 점점 빈틈이 사라져갔다.노아가 커튼 틈으로 슬쩍 밖을 보고 돌아왔다.“…꽤 찼다.”마커스가 물었다.“얼마나.”노아가 바로 답했다.“거의 다.”둘 사이가 순간 조용해졌다.누구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지만 그게 더 현실감 있었다.그때 무대 매니저가 다가왔다.“10분 남았습니다.”“인트로 영상 바로 나갑니다.”“첫 곡 끝나고 멘트 길게 가지 마세요.”빠르게,정확하게.마커스가 고개를 끄덕이고 무대를 다시 둘러봤다.관객석 앞줄, VIP석 쪽에 레이첼이 보였다.그녀는 좌석에 기대 선 채 시선은 그대로 무대를 향해 있었다.마커스와 눈이 마주쳤다.레이첼이 작게 손을 들어 보였다.조명이 한 번 깜빡였다.무대 쪽에서 낮은 베이스 사운드가 울렸다.관객석이 반응하기 시작했다.작게,그리고 점점 크게.“야.”노아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간다.”줄리안은 눈을 한번 감았다.아주 짧은 순간이었다.뉴욕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스쳤다.처음 곡을 만들던 작업실,아무도 듣지 않던 데모,늦은 밤 혼자 음악을 틀어보던 시간들.그리고 지금까지.줄리안은 다시 눈을 떴다.마커스가 먼저 움직였다.“가자.”무대 위로 올라가는 계단은 생각보다 짧았다.세 걸음, 네 걸음. 그게 전부였다.그 순간, 빛이 터졌다.눈이 잠깐 멀었다.객석이 통째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그리고 곧 객석에서 함성 소리가 밀려왔다.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몸으로 밀려오는 압력 같았다.실버라인은 각자 자리에 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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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가지 않은 선택

공연이 끝난 뒤였다.사람들이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었다.무대 쪽에서 들리던 소리도 점점 멀어졌다.스태프들이 오가며 다음 이동을 준비하고 있었고,그 사이에서 누군가가 줄리안을 불렀다.“줄리안.”고개를 들자 마커스였다.“버스 나간다.”줄리안은 이미 기타를 정리한 상태였다.노아는 먼저 나갔고,다른 스태프들도 하나둘 빠지고 있었다.그는 고개를 끄덕였다.“…금방 갈게.”마커스가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3분.”그리고 그대로 돌아섰다.시간이 많지 않았다.줄리안은 잠시 멈췄다.시선이 한 번 돌아갔다.커튼 옆, 조명이 닿지 않는 자리에 애리가 서 있었다.아까와 같은 자리였다.줄리안은 그대로 애리 쪽으로 향했다.걸음은 조금 빨라져 있었다.둘 사이가 가까워지자, 줄리안이 애리 앞에서 멈췄다.“…나 가야 해.”그가 먼저 말했다.애리는 눈을 들었다.“…벌써?”그녀가 천천히 되물었다.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아주 조금 느려져 있었다.“이렇게 시간이 없을 줄은 나도 생각 못 했어.”줄리안이 낮게 말했다.잠시 정적이 흘렀다.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온 거, 후회는 안 해.”그러자 줄리안이 작게 웃었다.“정말?”애리가 바로 답했다.“응. 오늘 줄리안, 멋있었어.”말이 끝나자마자 공기가 순간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줄리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대신 그대로 애리를 바라보다가 먼저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았다.갑작스러운 움직임은 아니었다.망설임도 없었다.애리는 말없이 그의 품 안에 안겼다.손이 천천히 등을 붙잡았다.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까운 거리였다.둘은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잠시 후,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이 조금 떨어졌다.줄리안 쪽이 아주 약간 늦었다.“…진짜 가야 해.”그는 조용히 말했다.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둘의 시선이 마주쳤지만 누구도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결국 먼저 돌아선 건 줄리안이었다.줄리안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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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금발의 방문자

4월 말이 되었다.시험이 끝난 뒤라 교실 분위기는 확실히 느슨해져 있었다.수업은 이어지고 있었지만,진도를 새로 나가기보다는 이미 배운 내용을 정리하는 시간이 많아졌다.앞쪽에서 채점된 시험지를 나눠주기 시작했다.이름이 불릴 때마다 학생들이 앞으로 나갔다 돌아왔다.자리에 앉자마자 점수를 확인하는 모습이 이어졌다.“너 몇 점 나왔어?”“아, 망했다 진짜…”“생각보다 괜찮은데?”작은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섞였다.애리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자리에서 일어났다.시험지를 받아 들고 아무 말 없이 돌아왔다.자리에 앉아서 종이를 한 번 내려다봤다.점수는 예상한 범위 안이었다.틀린 문제도 어디서 틀렸는지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이었다.종이를 접었다.그때, 옆자리에서 친구가 몸을 기울였다.“어때?”애리는 짧게 대답했다.“괜찮아.”“또 그거지?”그 말에 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그냥 시험지를 문제집 사이에 끼워 넣었다.“맨날 그쪽이잖아.”친구가 가볍게 덧붙였다.“상위권.”애리는 문제집을 펼친 채 펜을 들었다.“그냥 본 거야.”친구는 더 묻지 않았고, 교실 안에는 다시 종이 넘기는 소리만 이어졌다.수업이 끝나고 복도로 나왔을 때였다.게시판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시험 결과 관련 공지였다.몇몇 학생들이 벽에 붙은 이름표를 보며 떠들기 시작했다.“애리 또 있네.”“미쳤다.”“진짜 안 내려가네.”애리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그대로 지나갔다.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이미 알고 있는 결과였다.***5월이 가까워지면서 학교 분위기는 더 가벼워졌다.복도에서는 자연스럽게 프롬 얘기가 오갔고,누가 누구랑 가는지에 대한 대화도 끊이지 않았다.점심시간의 식당은 평소보다 더 시끄러웠다.애리는 자리에 앉아 친구들 얘기를 듣고 있었지만, 대화에 끼어들지는 않았다.앞에 놓인 음식도 거의 손대지 않은 상태였다.옆자리에서 누군가 물었다.“너는 누구랑 가?”애리가 고개를 들었다.“…프롬?”“응.”애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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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갈 필요는 없었는데

다음날 학교 복도였다.여학생 여러 명이 한쪽에 모여 있었다.“기사 봤어?”“응. 그 배우. 크리스티 러너.”앞에 서 있던 애가 말했다.“또 갔다던데.”“몇 번을 가는 거야.”“세 번은 넘은 거 같던데.”그러자 누군가 웃으면서 말했다.“근데 누구 보러 가는 거냐.”“그러게. 마커스?”“노아?”몇 마디가 가볍게 오갔다.“아니지.”한 명이 말을 끊었다.“줄리안이지, 이건.”그때 옆에서 바로 말렸다.“야.”고개가 돌아갔다.애리가 그쪽을 지나가고 있었다.몇 명이 동시에 애리 쪽을 봤다.방금까지 떠들던 애들도 말을 줄였다.애리는 멈추지 않고 계단 쪽으로 내려갔다.굳이 다시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어제 이미 다 봤다.교실에 들어간 애리는 자리에 앉아 책을 꺼냈다.그리고 곧바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처음에는 평소처럼 읽혔다.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같은 줄만 계속 눈에 들어왔다.기사 속 사진이 다시 떠올랐다.애리는 작게 숨을 내쉰 뒤 다시 펜을 움직였다.***며칠 뒤, 주말이었다.맨해튼의 스터디룸 안에는 이미 몇 명이 앉아 있었다.조용한 분위기였다.각자 노트북이나 프린트를 펼쳐놓고 있었다.애리는 창가 쪽 자리에 앉았다.프린트와 노트가 가지런히 펼쳐져 있었고,펜 끝은 일정한 속도로 움직였다.문장을 읽고 정리한 뒤 다시 다음 줄로 넘어갔다.그때 문이 열리고 지율이 들어왔다.애리는 고개를 들었다.“왔네요?”지율이 묻자 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네.”자리에 앉으면서 가방을 내려놓았다.노트를 꺼내고 그가 말했다.“시험 어땠어요?”애리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답했다.“괜찮았어요.”지율이 웃었다.“그건 항상 그렇잖아요.”애리는 별 반응 없이 페이지를 넘겼다.지율이 말을 이었다.“이번 시험 잘 봤다던데.”애리는 펜을 움직이며 말했다.“그냥 하던 대로 한 거죠.”그러자 그가 그녀를 보며 다시 말을 걸었다.“꾸준하네요.”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교실 안에는 페이지 넘기는 소리만 들렸다.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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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상관없어

지율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노트북 화면에는 과제가 열려 있었지만 집중은 오래 가지 않았다.그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무심코 화면을 봤다가 손이 멈췄다.애리였다.[프롬, 다른 학교 학생도 가도 되는 거예요?]지율은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카페에서 헤어진 뒤에도 애리가 먼저 연락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그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가능해요.]보내고 나서 애리 이름이 떠 있는 메시지창만 한동안 바라봤다.카페에서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줄리안이 신경 쓸 테니까.”충동적으로 던진 말은 아니었다.애리가 그 말을 쉽게 넘기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런데 이상하게, 말을 꺼낸 뒤부터는 자신 역시 그 문장을 계속 떠올리고 있었다.지율은 작게 숨을 내쉰 뒤 휴대폰을 내려놓았다.애리가 정말 프롬에 올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그래도 적어도 고민은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지율은 다시 휴대폰 화면을 켰다.새 메시지는 아직 없었다.그는 화면을 내려다보다가 작게 웃었다.원래 애리는 쉽게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그런 애리가 먼저 프롬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는 건, 완전히 관심이 없는 건 아니라는 뜻 같았다.***밤 11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전화가 울렸다.줄리안이었다.애리는 화면을 한 번 보고, 바로 받았다.“어.”줄리안 목소리였다.뒤가 아직 조금 시끄러웠다.사람들 말소리, 장비 부딪히는 소리, 멀리서 웃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공연이 완전히 끝난 분위기는 아니었다.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줄리안이 먼저 말했다.“문자 봤어.”애리는 가만히 있었다. 크리스티 얘기라는 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그런 거 아니야.”그가 먼저 말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애리는 핸드폰을 더 가까이 붙이며 조용히 물었다. “그럼 뭐야?”줄리안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뒤에서 누가 불렀다.“야, 줄리안.”그러자 그가 고개를 돌렸다. 소리가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왔다.“…그냥.”줄리안은 짧게 끊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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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갈게요

일요일 늦은 오후였다.핸드폰이 울렸다.책상 앞에 앉아 있던 애리는 화면을 내려봤다.레이첼이었다.전화를 받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나 어디 가는 길인데.”레이첼이 말을 이었다.“너 얼굴 좀 보고 가려고.”애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집 앞이야.”“잠깐 나와.”통화는 금방 끊겼다.애리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겉옷을 걸친 뒤 집 밖으로 나갔다.집 앞에는 레이첼이 차 옆에 서 있었다.애리를 보자 가볍게 손을 들었다.“나왔네.”애리가 고개를 끄덕였다.“언니.”레이첼이 먼저 말했다.“요즘 줄리안 통화 길게 안 되지?”“…네.”레이첼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다 그래.”“잘 되기 시작하면 더 바빠지고.”“시간도 없어지고, 신경 쓸 것도 많아지고.”숨을 한 번 고른 뒤 레이첼이 말을 이었다.“그래서 더 서운해져.”애리는 시선을 내린 채 가만히 듣고 있었다.“붙잡는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더라.”그녀는 손끝만 가볍게 만지작거렸다.레이첼이 어깨를 가볍게 으쓱했다.“그래서 나는 그냥 따라가려고.”그 말에 애리가 고개를 들었다.“네?”“이번 투어.”“웬만하면 계속 같이 움직일 거야.”애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계속 같이 움직인다는 말이 조금 부럽게 들렸다.“여기 있어도 똑같아.”“어차피 계속 신경 쓰일 거면, 차라리 옆에 있는 게 나아.”레이첼이 잠시 웃었다. “나는 지금은 그럴 수 있으니까.“애리는 시선을 다시 내렸다. “…네.”잠깐 침묵이 흐르고 애리가 입술을 한 번 누른 뒤,천천히 말을 꺼냈다. “…언니.”“응.”“저…”레이첼은 조용히 기다렸다.애리가 다시 입을 열었다.“…맨해튼 쪽 학교 프롬에 초대받았는데요.”“갈까 말까 고민 중이에요.”레이첼은 바로 답하지 않고 애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가.”애리는 예상하지 못한 듯 눈을 깜빡였다.레이첼이 말을 이었다.“그거 간다고 해서 달라질 사이면.”숨을 짧게 내쉬었다.“어차피 오래 못 가.”애리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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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신경 좀 쓰여

프롬에 가기로 결정하고 나서 며칠이 금방 지나갔다.애리는 따로 드레스를 사지 않았다. 굳이 새로 살 이유도 없었고, 시간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옷장을 열고 한참을 뒤지던 손이 한쪽에서 멈췄다.작년 프롬 때 입었던 검은색 드레스였다.그 드레스는 아직도 옷장 안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애리는 잠시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옷걸이째 꺼냈다.“…괜찮겠지.”작게 중얼거린 뒤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옷걸이를 빼려던 손이 한 번 멈췄다.“…어차피.”애리는 혼잣말처럼 덧붙였다.“이거 본 사람도 없을 테니까.”말하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애리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드레스를 내려다봤다. 손끝으로 천을 한 번 쓸자, 부드러운 감촉이 손가락 아래로 미끄러졌다.그 순간 작년 프롬 날의 장면이 떠올랐다.조명 아래에서 웅성거리던 소리. 사람들 사이로 번지던 웃음. 그리고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던 줄리안.“…잠깐만요.”체육관이 조금씩 조용해졌다.그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정확히 애리가 서 있던 쪽이었다.“나 졸업해도,”말이 짧게 끊겼다.“…애리 건드리면 끝까지 쫓아갑니다.”순간 정적이 흘렀다.그리고 누군가 먼저 웃었고, 그걸 계기로 함성이 터졌다.그런데 줄리안은 바로 웃지 않았다.시선은 여전히 애리에게 머물러 있었다.거기까지 떠올리고 나서야 애리는 고개를 들었다. 손은 어느새 드레스 위에 멈춰 있었다.그녀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드레스를 다시 펼쳐 보니 주름은 거의 없었다. 그대로 입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애리는 옷을 들고 거울 앞으로 갔다. 몸에 가볍게 대보고 어깨선과 길이를 확인했다.나쁘지 않았다.오히려 생각보다 괜찮았다.거울 속의 자신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조금 더 조용해 보였다.애리는 거울을 보며 아주 작게 말했다.“…가네.”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래도 그렇게 한 번 말하고 나니, 정말 가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프롬 전날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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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어긋난 자리

프롬 당일이었다.초인종이 울리자 거실에 있던 아버지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내가 나갈게.”현관문이 열리고 지율이 서 있었다.검은 재킷에 셔츠까지 단정하게 갖춰 입은 모습이었다.“안녕하세요.”지율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아버지는 그를 한 번 훑어본 뒤 바로 웃었다.“왔구나.”문을 더 열어주면서 안으로 들였다.“들어와.”지율은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간단한 거예요.”아버지가 그걸 받았다.“이런 걸 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앉아.”지율은 소파에 앉았다. 자세는 반듯했고 등을 깊게 기대지는 않았다.아버지도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잠시 조용한 공기가 흐른 뒤, 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냈다.“맨해튼까지 간다면서.”“네.”“호텔에서 한다고 들었는데.”“월도프 아스토리아입니다.”유명한 호텔 이름이 나오자 아버지가 작게 웃었다.“좋은 데네.”시선이 다시 지율에게 향했다.“전공은 확정했어?”“법 쪽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하버드지?”“네.”짧은 대답이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대단하네.”지율도 따라 작게 웃었다.“아직 가봐야 알죠.”억지로 겸손한 척하는 느낌은 없었다.오히려 그래서 더 자연스러웠다.그때 위층에서 발소리가 들렸다.계단을 따라 천천히 내려오는 소리에 거실에 있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위를 바라봤다.검은색 드레스를 입은 애리가 내려오고 있었다.드레스의 디자인은 단순했지만 선이 깔끔했다.허리선도 자연스럽게 떨어졌고, 과하게 꾸민 느낌은 없었다.애리는 마지막 계단을 내려온 뒤 거실을 한 번 둘러봤다.그러다 지율과 눈이 마주쳤다.아주 짧은 순간이었다.지율은 아무 말 없이 애리를 바라봤다. 시선은 길지 않았어도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먼저 입을 연 건 아버지였다.“예쁘네.”애리가 시선을 옮겼다.“…그냥 있는 거 입은 거야.”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아버지는 웃었다.“그래도.”그때 주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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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그냥 물어

애리는 열 시 반쯤 집에 들어왔다.현관문을 열자 불 꺼진 거실이 바로 보였다.집 안은 조용했다.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왔지만 굳이 불을 켜지는 않았다. 가방을 소파 위에 내려놓은 뒤 한동안 그대로 서 있었다.조금 전까지 음악이 끊이지 않던 공간에 있다가 돌아와서인지 집 안의 정적이 더 크게 느껴졌다.귀에는 아직도 프롬 음악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애리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 방으로 들어갔다.문을 닫고 나서 짧게 숨을 내쉬었다.그제야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다.검은 드레스 자락이 발목 근처에 걸려 있었다.애리는 머리를 고정하고 있던 핀부터 하나씩 빼냈다. 묶여 있던 머리카락이 천천히 아래로 흘러내렸다.잠깐 거울 앞에 멈춰 섰다가 곧 시선을 거뒀다.오늘 하루는 이상할 만큼 현실감이 없었다.드레스를 벗어 의자 위에 걸어두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에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몸은 피곤했는데 이상하게 바로 눕고 싶지는 않았다.애리는 한동안 손끝만 내려다보다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화면을 켠 뒤에도 바로 메시지를 보내지는 못했다.잠시 망설이다가 짧게 입력했다.[집에 왔어]줄리안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오히려 더 조용해진 기분이 들었다.지금 시간이면 바로 답이 올 리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래서 일부러 다시 확인하지 않았다.애리는 침대에 등을 기대고 천장을 바라봤다.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억지로 안 보려고 했는데도 결국 시계를 한 번 확인하고 말았다.열한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휴대폰은 다시 손에 들지 않고 옆에 내려뒀다.애리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문득 덴버가 떠올랐다.지금쯤이면 줄리안 공연이 한창일 시간이었다.“…별거 아니네.”작게 중얼거렸지만 생각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애리는 다시 눈을 감았다.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였다.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애리는 거의 바로 눈을 떴다.손이 먼저 움직였다.화면에 떠 있는 이름을 확인한 순간 애리는 그대로 시선을 멈췄다.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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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LA 도착

그날 이후,줄리안은 공연이 끝날 때마다 애리에게 전화를 했다.길게 이어질 때도 있었고,짧게 끝날 때도 있었다.그래도 끊기지는 않았다.애리는 더 이상 줄리안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다.관계를 확인하려 애쓰지도 않았고,먼저 기다리는 쪽에 서지도 않았다.그 정도면 충분했다.***그 사이에도 실버라인의 공연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대부분의 공연장은 매진이었다.라스베이거스에서는 실버라이너들이 커다란 배너를 들었고,피닉스에서는 줄리안의 이름이 객석을 채웠다.마커스와 노아를 찾는 목소리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사람들은 도시를 넘어 이동했고, 그들의 공연을 따라 움직였다.이제 실버라인은 단순한 밴드가 아니라,아이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그 흐름은 처음부터 댄이 의도했던 방향 그대로였다.그리고 그 끝은 7월 20일 금요일.LA 기아 포럼.투어의 마지막 공연이었다.가장 큰 무대였고,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일 자리였다.그날은 단순한 마지막 공연이 아니었다.시작 이후 가장 많은 시선이 그들에게 향하는 밤이었다.***7월이 시작됐고, 여름방학도 한창이었다.애리네 가족은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 중이었다.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냈다.“이번에 LA 좀 다녀올까 하는데.”애리는 별다른 반응 없이 밥을 먹었다.“큰아버지네도 한 번 들르고.”어머니가 웃으며 말했다.“진짜 오랜만이네요.”그제야 애리 손이 잠깐 멈췄다.“…언제 가는데요?”“다음 주.”애리는 머릿속으로 날짜를 계산했다.출발 날짜와 도착 날짜를 떠올리다가, 문득 LA 마지막 공연 일정이 겹친다는 걸 깨달았다.공교롭게도 시기가 딱 맞아떨어졌다잠시 고민하던 애리가 입을 열었다.“…나도 같이 갈게요.”어머니가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너도?”“응.”아버지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같이 가자.”애리는 조용히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더 설명하지는 않았다.그날 밤, 방 안은 조용했다.애리는 가방을 꺼내 침대 위에 올려두고 지퍼를 열었다.손을 올려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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