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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불온한 정착: Chapter 181 - Chapter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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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화

강수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얼마나 먼 미래를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사라에게조차 그런 약속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 처음부터 한곳에 머무는 여자가 아니었고, 누군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제 삶의 방향을 바꾸는 사람도 아니었다.그래서 강수는 사라에게 끝을 정해달라고 한 적도 없었다.다만 떠나려 할 때마다 붙잡았다.“사라가 허락하는 데까지.”서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뭐?”“걔가 가는 데까지.”짧고 낮은 대답이었다.서희는 한동안 강수를 바라봤다. 평생 함께하겠다거나 사라와 새 가정을 꾸리겠다는 말보다 이상하게 더 깊게 박혔다.차강수는 원래 누군가의 허락을 구하는 남자가 아니었다.원하는 게 있으면 가졌고, 결정하면 움직였다. 회사에서도, 자신의 세계에서도 다른 사람이 강수의 방향을 정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그런 남자가 사라에게만 선택권을 두고 있었다.“사라가 떠난다고 하면?”강수의 턱이 미세하게 굳었다.“잡아.”“그래도 간다고 하면?”잠깐의 침묵이 흘렀다.“또 잡아.”서희의 입술이 떨렸다.“끝까지?”강수는 더 대답하지 않았다.그러나 서희는 이미 충분히 들었다.사라가 강수에게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 이제는 굳이 사랑이라는 단어로 확인할 필요조차 없었다. 낮에 봤던 행동도, 조금 전 자신이 집이 어디냐고 물었을 때 사람의 이름부터 대답했던 것도 전부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그러면서 나랑은 안 헤어지겠다는 거야?”강수의 시선이 무겁게 내려앉았다.“그 말 안 했어.”서희가 숨을 멈췄다.강수는 더 붙이지 않았다.서희가 헤어질 생각이 없다고 말했을 때 자신은 알겠다고 하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에 시간을 준 것뿐이었다.그 차이를 서희도 뒤늦게 알아차렸다.“그럼 당신은…….”말끝이 흐려졌다.“나랑 헤어질 생각이야?”이번에는 침묵이 길었다.강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의 생활을 영원히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서희에게 남편으로 돌아왔다가 다시 사라가 있는 집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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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화

강수는 대답하지 못했다.서희가 사라를 만나면 안 되는 이유를 말로 꺼내는 순간, 자신이 누구부터 보호하려 하고 있는지가 너무 선명해질 것 같았다. 서희가 사라를 해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강수는 서희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화가 난다고 상대에게 함부로 상처를 주거나 감정을 쏟아내는 여자가 아니었다.그런데도 싫었다.서희가 사라를 찾아가는 것도, 둘이 마주 앉아 자신 때문에 상처를 주고받는 것도.무엇보다 사라가 어떤 얼굴을 할지 알고 싶지 않았다.강수가 굳은 얼굴로 서 있는 사이, 바지 주머니 안에서 짧은 진동이 울렸다.이 시간에 연락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휴대전화를 꺼내 화면을 확인한 강수의 눈이 멈췄다.사라메시지가 연달아 올라와 있었다.초코볼이 손에 안 닿아!곧바로 하나가 더 왔다.의자 해도 왜 안 닿는지 이유를 말해볼래?강수의 미간이 좁아졌다.며칠 전 일이 바로 떠올랐다.저녁을 먹고도 뭔가 먹고 싶다며 주방을 뒤지던 사라가 초코볼 한 봉지를 발견했었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하나씩 집어 먹기 시작하더니 손이 한 번도 쉬지 않았다. 처음에는 내버려뒀던 강수도 봉지가 절반 가까이 비었을 때 결국 옆으로 손을 뻗었다.사라는 순순히 주지 않았다.봉지를 품에 끌어안고 몸까지 반대쪽으로 틀었다.“내 거야.”“그만 먹어.”“싫어.”“내놔.”“내가 샀거든?”강수는 대꾸하지 않고 봉지를 빼앗았다. 체격 차이가 워낙 커 사라가 두 팔로 붙잡고 버텨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반 봉지쯤 남은 초코볼을 든 채 일어난 강수를 사라가 소파에서 올려다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진짜 뺏어?”“어.”“나 스물다섯 살이야.”“알아.”“스물다섯 살 성인의 간식을 왜 오빠가 뺏어?”강수는 그대로 주방으로 갔다.뒤에서 사라가 따라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평범한 찬장에 넣어두면 다시 찾아 먹을 게 뻔했다. 잠시 주방을 둘러본 강수는 가장 높은 수납장 문을 열어 안쪽 깊숙한 곳에 봉지를 올려놓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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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화

“어.”대답은 너무 빨랐다.생각할 시간도 필요하지 않았다는 듯 떨어진 한마디에 오히려 서희가 말을 잃었다. 조금이라도 망설이거나, 오늘만은 여기 있겠다고 할 줄 알았던 기대가 없었다면 거짓말이었다.강수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이미 돌아갈 곳을 정해둔 사람처럼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주방에서 몸을 돌렸다. 그 움직임을 바라보던 서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침실 쪽으로 향했다.“……짐은?”강수가 멈췄다.“안 챙겨?”“필요 없어.”“옷도 있잖아.”“됐어.”정말 그뿐이었다.강수에게 이 집에 남아 있는 물건은 이제 꼭 필요한 것들이 아니었다. 자주 입는 셔츠와 양복은 이미 사라와 지내는 집에 있었고, 시계와 구두, 업무에 필요한 서류까지 하나둘 옮겨간 지 오래였다. 처음부터 계획하고 짐을 뺀 것은 아니었다.하룻밤 자고 출근하기 위해 셔츠를 가져다 놓았다.다음에는 구두가 생겼고, 며칠 뒤에는 양복이 걸렸다. 집에서도 처리할 일이 있다는 이유로 서류를 가져다 놓으면서 사라에게 주겠다고 했던 방 하나가 자신의 서재가 됐다.그러다 어느 순간 그곳에서 생활하기 위해 이 집으로 물건을 가지러 올 필요가 없어졌다.없는 게 필요하면 새로 사면 그만이었다.강수에게 돈으로 다시 살 수 있는 물건들은 애초에 붙잡고 있을 이유가 되지 못했다.서희의 눈이 천천히 흔들렸다.“아예 거기서 살고 있었구나.”강수는 부정하지 않았다.낮에 두 사람을 봤을 때부터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강수의 입을 통해 확인하는 것은 전혀 달랐다.사라에게 집을 사줬다.그 집에 강수의 옷이 있다.생활에 필요한 물건도 있다.그리고 오늘 밤에도 다시 그곳으로 간다.그 사실들을 하나씩 이어놓자 ‘만난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모양이 만들어졌다.둘은 이미 함께 살고 있었다.서희는 자신의 앞을 지나 현관으로 향하는 강수를 바라봤다.이상하게도 강수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강수 자신도 그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편했다.서희가 상처받는 것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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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화

강수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서희가 원하는 건 주소 하나였다. 알려주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이미 관계도 들켰고, 따로 지내는 집이 있다는 사실까지 말한 뒤였다. 그러나 그곳의 위치를 알려주는 건 강수에게 전혀 다른 문제였다.그 집에는 사라가 있었다.자신이 돌아가는 곳이었고, 지난 일 년 동안 두 사람의 생활이 차곡차곡 쌓인 공간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높은 수납장 앞에서 초코볼을 내려놓으라며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여자까지.강수가 짧게 말했다.“나중에.”서희의 미간이 좁아졌다.“왜 나중에?”강수는 대답하지 않았다.“주소 하나 알려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오늘은 안 돼.”“왜?”또 침묵이었다.서희는 그 침묵을 바라보다 입술을 깨물었다. 아까부터 똑같았다. 사라를 만나겠다고 하면 안 된다고 했고, 집을 알려달라고 하면 대답을 피했다.자신에게서 사라를 감추기 위해서가 아니었다.이제는 감출 것도 없었다.지키고 있는 거였다.그 생각이 드는 순간 서희의 얼굴이 굳었다.“알겠어.”강수의 눈이 움직였다.서희는 소파 위에 놓아둔 자신의 휴대전화를 집었다.“오빠가 말 안 해주면 사라한테 물어보면 되지.”강수의 눈빛이 단번에 가라앉았다.“하지 마.”서희는 이미 연락처를 찾고 있었다.“왜? 사라는 내 친구야. 내가 사라한테 전화하는 것까지 오빠 허락받아야 해?”“김서희.”낮게 떨어진 이름에도 서희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사라와는 오랫동안 친구였다. 전화번호를 찾을 필요조차 없었다. 최근 통화 목록에도 이름이 남아 있었다.서희가 그대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연결음이 울렸다.한 번.두 번.강수가 움직였다.몇 걸음 되지 않는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서희가 반응하기도 전에 큰 손이 휴대전화를 가져갔다.“오빠!”강수는 화면을 확인하고 그대로 통화를 종료했다.사라가 받기 전이었다.거실에 정적이 내려앉았다.서희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강수를 바라봤다.“지금 뭐 하는 거야?”강수는 휴대전화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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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화

강수는 돌아보지 않은 채 현관 앞에 서 있었다.조금 전 서희의 물음에 있다고 답한 뒤에도 더 말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아직 꺼내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 왜 하필 오늘 사라와 연락하는 걸 막는지 서희에게는 알 수 없는 것투성이였지만 강수는 입을 닫았다. 설명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면 누구에게도 억지로 말을 꺼내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때 서희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가 울렸다.전화였다.서희가 화면을 내려다봤다가 그대로 굳었다.민사라조금 전 자신에게서 걸려왔다 끊긴 전화를 확인한 모양이었다.강수의 시선도 화면에 닿았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이번에는 서희가 먼저 통화 버튼을 눌렀다.“여보세요.”[서희야?]사라의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밝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너 아까 전화했지? 나 잠깐 화장실 갔다 와서 못 받았어.]서희의 입술이 굳었다.오랫동안 들어온 친구의 목소리였다. 만나자고 할 때도, 맛있는 걸 발견했다고 호들갑을 떨 때도, 여행지에서 뜬금없이 전화해 보고 싶다고 할 때도 늘 저랬다.그런데 이제는 알고 있었다.저 목소리의 주인이 자신의 남편과 일 년 가까이 만나고 있다는 걸.“사라야.”[응.]서희가 강수를 바라봤다.“너 지금 어디—”말이 끝나기 전에 강수가 움직였다.몇 걸음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큰 손이 서희의 휴대전화를 빼앗았고, 강수는 곧바로 통화를 종료했다.“오빠!”거기서 끝이 아니었다.강수는 측면 버튼을 길게 눌렀다.화면이 완전히 꺼졌다.서희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를 올려다봤다.“전화까지 꺼?”강수는 휴대전화를 돌려주지 않았다.표정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얼굴에 남아 있던 감정이 깨끗하게 사라졌다.강수는 화가 날수록 조용해졌다.목소리를 높이거나 같은 말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한번 경고한 뒤에도 상대가 선을 넘으면 그다음에는 말보다 행동이 먼저였다.지금도 그랬다.“건드리지 마.”낮게 떨어진 목소리에 서희의 움직임이 멎었다.“뭘?”“사라.”서희의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졌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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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화

강수는 더 머물지 않았다.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서희의 휴대전화는 전원이 꺼진 채였고, 거실에는 조금 전까지 오간 말들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강수는 차 키를 쥔 채 현관으로 향했다. 이 집에서 챙길 것도, 다시 확인할 것도 없었다.서희 역시 붙잡지 않았다.다만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현관까지 몇 걸음 남지 않았을 때 강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강수의 발이 멈췄다.화면을 확인했다.사라서희도 보았다.강수는 잠시 화면을 내려다보다 전화를 받았다.“어.”[오빠.]사라의 목소리가 들렸다.아까 초코볼을 내려달라고 보채던 때와는 조금 달랐다. 밝기는 했지만 어딘가 신경이 쓰이는 듯했다.[무슨 일 있어?]강수의 눈이 서희에게 향했다.[서희 전화가 안 돼.]역시 그것 때문이었다.사라는 조금 전 서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자신에게 걸려왔다가 끊어진 전화가 마음에 걸려 연락했는데 이번에는 아예 전원이 꺼져 있으니 이상하게 생각한 모양이었다.[아까 전화 왔는데 내가 못 받았거든. 다시 했더니 갑자기 끊기고, 지금은 폰도 꺼져 있어.]강수는 말이 없었다.[서희한테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지?]그 목소리에는 의심보다 걱정이 먼저 묻어 있었다.사라는 아직 아무것도 몰랐다.오늘 점심 식당에서 서희가 자신들을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는 것도, 지금 강수가 어디에 와 있는지도, 두 사람의 관계가 이미 서희에게 드러났다는 사실도.강수는 굳이 옆을 보지 않았다.“아무 일도 없어.”[진짜?]“어.”[근데 왜 전화가 꺼져 있어? 서희 원래 폰 잘 안 끄잖아.]강수의 턱이 미세하게 굳었다.사라답게 질문은 금방 하나 더 붙었다.[오빠 혹시 서희랑 같이 있어?]잠깐의 침묵.“어.”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이번에는 사라도 바로 다음 질문을 하지 않았다.강수는 그 짧은 침묵을 끊었다.“지금 가.”[우리 집으로?]“어.”사라의 목소리가 조금 풀렸다.[알았어. 그럼 초코볼도 내려줘.]강수의 눈매가 아주 조금 느슨해졌다.“의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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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화

현관문이 닫혔다.서희는 거실 한가운데 선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집 안이 갑자기 너무 조용해졌다. 조금 전까지 강수가 서 있던 자리도,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의 휴대전화도 그대로인데 사람 하나 빠져나갔을 뿐인 공간이 낯설 만큼 텅 비어 보였다.멍했다.오늘 점심부터 지금까지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벌어졌다.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갔다가 우연히 강수와 사라를 봤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는 것부터 사라가 강수에게 입을 맞추는 순간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집으로 돌아와 기다렸고,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들어온 남편에게 하나씩 물었다.반지는 어디 있느냐고.사라와 무슨 사이냐고.언제부터였느냐고.그리고 대답을 들었다.작년부터.자신과 결혼생활을 이어오는 동안 거의 일 년을 만났다.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둘이 따로 지내는 집이 있었다. 강수의 옷과 물건은 이미 그곳에 있었고, 조금 전에는 이 집에 남아 있는 것을 챙길 필요조차 없다는 사람처럼 몸만 빠져나갔다.서희의 시선이 꺼진 휴대전화로 내려갔다.사라에게 전화하려던 자신을 막았다.전화기를 빼앗고.통화를 끊고.전원까지 껐다.그러고는 사라가 기다리는 곳으로 갔다.서희의 눈가가 서서히 일그러졌다.처음에는 아팠다.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생각했다. 언제부터 강수의 마음이 달라졌는지, 자신이 놓친 게 무엇이었는지, 사라에게 있고 자신에게는 없는 것이 무엇인지까지.그런데 가만히 생각할수록 이상했다.왜 자신이 여기서 혼자 울고 있어야 하는지.왜 자신만 기다려야 하는지.서희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잠깐만.”누구에게 하는 말도 아니었다.입 밖으로 나온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툭 끊어졌다.사라는 자신의 친구였다.가장 좋아했던 친구.강수와 결혼한 것도 알고 있었고, 자신이 얼마나 남편을 사랑하는지도 알고 있었다.강수는 자신의 남편이었다.그런 두 사람이 일 년 가까이 자신만 모르는 관계를 이어왔다.집까지 마련해서.함께 살면서.그런데 정작 모든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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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화

지하 주차장을 빠져나온 강수는 곧장 청담동으로 향했다.차 안은 조용했다. 라디오도 켜지 않았고, 평소처럼 한 손으로 핸들을 잡은 채 앞만 봤다. 조금 전까지 서희와 마주 앉아 있었던 시간이 그대로 머릿속에 남아 있었지만 얼굴에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았다.더는 숨길 수 없게 된 건 오히려 단순했다.서희가 알았다.자신과 사라의 관계도, 그게 작년부터 이어졌다는 것도, 따로 지내는 집이 있다는 사실까지.이제 남은 건 사라에게 말하는 일이었다.오늘 있었던 일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다만 서희의 감정이 가장 격해진 순간에 두 사람을 마주 세울 생각도 없었다. 자신이 먼저 정리할 것이 있었고, 사라에게도 자신이 직접 말해야 했다.신호가 바뀌었다.차가 다시 움직였다.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전화가 울렸다.강수는 차량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어.”[오빠, 어디야?]“가는 중.”[얼마나 걸려?]강수가 내비게이션을 한번 봤다.“십 분.”[그럼 오는 길에 편의점 들러.]“왜.”사라는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딸기우유랑 그냥 우유 사 와.]강수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둘 다?”[응.]“왜.”[딸기우유는 내가 먹을 거고.]잠시 뜸을 들인 사라가 아주 당연하게 덧붙였다.[그냥 우유는 초코볼에 타 먹게.]강수의 턱이 굳었다.며칠 전 소파에서 초코볼 한 봉지를 품에 안고 쉴 새 없이 집어 먹던 사라가 떠올랐다. 절반쯤 남았을 때 겨우 빼앗아 가장 높은 수납장 안쪽에 올려놓았는데, 기어코 찾아낸 것도 모자라 이제 우유에 말아 먹겠다는 소리였다.“안 돼.”[왜?]“많이 먹었어.”[며칠 전이잖아.]“그래도.”[내 초코볼인데?]강수는 대꾸하지 않았다.전화기 너머로 사라가 작게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아니, 생각할수록 이상하네. 내가 내 돈 주고 산 초코볼을 오빠가 뺏어서 내가 못 닿는 데 올려놨잖아. 이건 횡포 아니야?]“시끄러워.”[그리고 우유에 말아 먹으면 맛있어.]“안 궁금해.”[오빠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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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화

서희는 앞차와 거리를 두었다.너무 가까워지지 않도록 신호 하나 정도를 사이에 두면서도 검은 차를 시야에서 놓치지 않았다. 강수가 뒤를 확인하면 금방 들킬 것 같아 차선을 바꾸는 것도 조심스러웠다.다행히 강수는 자신이 따라오고 있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았다.얼마쯤 달렸을까.앞서가던 검은 차의 방향지시등이 켜졌다.서희는 긴장하며 속도를 늦췄다.강수의 차가 도로 옆 편의점 주차장으로 들어갔다.서희는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운 뒤 시동도 끄지 않은 채 운전석에 앉아 편의점 쪽을 바라봤다. 잠시 후 운전석 문이 열리고 강수가 내렸다.편의점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유리창 너머로 희미하게 보였다.서희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담배를 사러 들어간 건 아닐 것이다.강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그렇다면 뭔가 필요한 게 있는 모양이었다.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자동문이 열리고 강수가 나왔다.한 손에는 편의점 봉투가 들려 있었다.서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다.봉투가 완전히 불투명하지 않아 안에 든 것들이 어렴풋이 비쳤다. 우유처럼 보이는 팩이 있었고, 강수의 다른 손에는 봉투에 미처 넣지 않은 작은 병 하나가 들려 있었다.분홍색.서희의 눈이 멈췄다.딸기우유였다.너무 익숙해서 잘못 볼 수도 없었다.사라가 가장 좋아하는 것.학창 시절부터 그랬다. 매점에 가면 다른 음료를 한참 구경하다가도 결국 딸기우유를 골랐고, 성인이 된 뒤에도 편의점에 들어가면 습관처럼 하나씩 집어 들었다.서희도 수도 없이 사줬었다.사라 거구나.생각보다 먼저 알았다.조금 전 강수가 받았던 전화까지 떠올랐다.사라는 강수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수는 그 집으로 가는 길이었고, 굳이 차를 세워 편의점에 들렀다. 그러고는 사라가 좋아하는 딸기우유와 무언가가 든 봉투를 들고 나왔다.아마 사라가 사 오라고 했을 것이다.그런 생각이 들자 서희의 가슴 안쪽이 이상하게 조여들었다.거창한 선물도 아니었다.꽃도, 명품도 아니었다.고작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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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화

앞서가던 검은 차가 속도를 줄였다.서희도 자연스럽게 가속페달에서 발을 뗐다. 강수의 차는 청담동 안쪽으로 깊이 들어오더니 대로변을 벗어나 조용한 주택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익숙한 동네였다.자신도 청담동에 살고 있었으니까.하지만 이쪽으로 올 일은 거의 없었다. 높은 담장과 고급 빌라, 대형 평수 위주의 아파트들이 드문드문 자리한 조용한 구역이었다. 늦은 시간이어서 차량도 많지 않았다.그래서 더 조심해야 했다.서희는 거리를 조금 더 벌렸다.잠시 후 강수의 차가 한 아파트 입구 앞에서 멈췄다.서희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생각했던 것과 달랐다.사라 혼자 살 만한 작은 오피스텔도, 적당한 평수의 아파트도 아니었다. 멀리서 봐도 규모부터 달랐다. 동마다 세대 수가 많지 않았고, 넓게 떨어진 건물 사이로 조경과 진입로가 여유롭게 펼쳐져 있었다.작은 평수가 섞여 있는 곳도 아니었다.애초에 큰 평수들만 있는 고급 아파트였다.서희의 손이 핸들 위에서 굳었다.“……여기?”강수의 차가 입구를 통과했다.외부 차량이라면 확인 절차가 필요했지만 강수의 차는 멈추지도 않았다. 차단기가 자연스럽게 올라갔고, 익숙하게 안으로 들어갔다.처음 오는 사람의 움직임이 아니었다.당연했다.강수의 집이니까.서희는 곧바로 따라붙지 못하고 도로 가장자리에 차를 세웠다. 정면으로 따라 들어갔다가는 방문 목적부터 확인받을 게 뻔했다.운전석에 앉은 채 아파트를 올려다봤다.사라가 살고 있다.강수가 사준 집.그리고 강수 역시 사실상 그곳에서 살고 있었다.그 사실은 이미 들었다.그런데 직접 눈앞에서 보니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서희는 막연히 생각했었다.사라가 혼자 지내기 편한 집 하나를 마련해줬을 거라고. 강수에게 돈은 문제가 되지 않으니 좋은 집일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아파트 규모만 봐도 알 수 있었다.잠깐 머물라고 마련한 집이 아니었다.둘이 생활하기 위해 선택한 공간에 가까웠다.문득 강수의 말이 떠올랐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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