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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사님, 선을 넘으셨습니다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21 - チャプター 30

59 チャプター

당신은 나를 언제부터 알고 있었습니까

헬레나 이브의 오래된 프로필 사진이 회의실 모니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유리는 그 얼굴을 오래 바라봤다. 짙은 갈색 머리를 단정하게 넘긴 오십 대 초반의 여성, 정면을 바라보는 회색 눈, 거의 웃지 않았는데도 차갑다기보다는 고요한 인상을 주는 얼굴. 메종 르비에 파리 본사의 전 R&D 디렉터이자 한때 업계에서 이름을 알렸던 조향사. 2년 전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워크숍 직후 회사를 떠났고, 현재는 아르데르와 르비에 양쪽을 거래처로 둔 컨설팅 회사의 공동 창업자.그리고 어쩌면.KJ-04 테스트에서 예정에 없던 접촉을 했던 H.Y.재헌에게 가장 큰 체향 변화를 일으킨 사람.“저 사람을 제가 안다고요?”유리가 물었다.재헌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유리를 안다는 말이 아니었다. 조금 전 그가 말한 건 헬레나가 가까이 왔을 때 느꼈던 이상한 익숙함이 지금 생각하면 유리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감각과 비슷했다는 것이었다.향이 아니라.느낌.유리는 그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비슷하다는 게 정확히 뭐예요?”“설명하기 어렵습니다.”“향은 아니고?”“네.”“말투?”“아닙니다.”“얼굴은 당연히 아니고.”“네.”“그럼 뭐가 비슷해요?”재헌이 잠시 생각했다.“사람을 보는 방식.”유리의 눈썹이 조금 움직였다.“저 사람이 재헌 씨를 어떻게 봤는데요?”“사람보다.”그는 2년 전의 기억을 더듬듯 천천히 말했다.“뭔가를 확인하는 것처럼 봤습니다.”유리의 입술이 다물어졌다.그건.자신도 많이 듣는 말이었다.사람을 보면 향부터 생각한다.피부 온도.옷에 남은 세제.머리카락에 밴 샴푸.손목에 남은 향수.그리고 체향.특히 새로운 향을 발견하면 상대가 누구인지보다 먼저 원인을 궁금해한다.재헌을 처음 만난 날도 그랬다.그가 총괄이사라서가 아니었다.향이 이상해서.그래서 손목을 달라고 했고.거기서 안 나니까 목 가까이 갔고.결국 넥타이까지 잡아당겼다.유리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저 사람도 그랬어요?”“비슷했습니다.”“어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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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해석자

유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에도 어머니가 보내온 사진을 몇 번이나 다시 열어봤다. 택시 창밖으로 지나가는 불빛도, 휴대전화 위로 연달아 뜨는 회사 메시지도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래된 종이는 누렇게 바래 있었고 모서리는 닳아 있었지만, 그 위에 적힌 문장은 선명했다.관계 반응을 향으로 변환하려면 두 사람이 필요하다.반응하는 사람.그리고 그 반응을 언어로 알아듣는 사람.그 아래 헬레나 이브의 필체로 보이는 영어 문장.If we cannot find the interpreter, we wait.해석자를 찾지 못한다면 기다린다.그리고 사진 끝에 반쯤 잘린 또 하나의 문장.The first interpreter was already found.첫 번째 해석자는 이미 찾았다.유리는 그 문장 아래에 적힌 어머니의 이름을 계속 바라봤다.Han Seo-yeon.우연이라고 생각하려고 했다. 첫 번째 해석자가 어머니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같은 페이지에 이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결해서는 안 된다. 지난 며칠 동안 자신들이 가장 많이 배운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흔적은 오히려 한 번 더 의심해야 한다.그런데도 심장이 가라앉지 않았다.어머니가 헬레나와 함께 일했다.향을 느끼는 사람들의 언어를 분석했다.헬레나가 ‘관계의 향’이라는 연구를 시작하자 반대했고, 결국 연구에서 나왔다.그리고 17년 뒤.그 딸인 한유리가.헬레나가 2년 전 발견했던 권재헌의 체향을 향수로 완성했다.너무 많은 것이 이어져 있었다.휴대전화가 진동했다.권재헌유리는 화면을 보다가 전화를 받았다.“네.”[집 가는 중입니까.]“응.”회사 밖이라서 자연스럽게 말이 짧아졌다.[어디쯤.]“거의 다 왔어요.”잠시.재헌이 물었다.[혼자입니까.]유리는 창밖을 봤다.“택시 기사님 계시는데.”[그 뜻 아닌 거 알잖습니까.]조금 웃음이 났다.“혼자 맞아요.”[도착하면 연락하십시오.]“재헌 씨.”[네.]“엄마가 보내준 사진 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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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기다린 건 내가 아니야

재헌은 정말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왔다.회의실 문이 열렸을 때 유리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법무팀과 보안팀 직원들은 헬레나가 보낸 메일의 원본 헤더와 서버 경로를 확인하고 있었고, 세아는 유리 옆에 앉아 있으면서도 좀처럼 말을 걸지 못했다. 유리는 모니터에 떠 있는 두 문장을 몇 번째 읽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I have waited a very long time to meet you properly.This time, I hope no one takes you away before we finish.제대로 만나기 위해 아주 오래 기다렸다.이번에는 우리가 끝내기 전에 아무도 너를 데려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문장 자체만 떼어놓고 보면 범죄라고 부를 만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랫동안 눈여겨본 후배 조향사에게 선배가 보낼 수도 있는 말이었다. 함께 일해보고 싶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유리는 이제 그 문장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열일곱 해 전, 헬레나는 한서연을 첫 번째 ‘해석자’로 봤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타나는 반응을 향으로 바꾸려 했다. 한서연이 연구를 떠난 뒤에도 포기하지 않았고, 2년 전에는 마침내 ‘반응하는 사람’에 가까운 권재헌을 발견했다. 그리고 4개월 전, 한서연의 딸인 한유리를 다시 찾았다.재헌은 들어오자마자 유리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법무팀장을 먼저 보고 현재 상황을 확인했고, 자신이 직접 증거를 다루지 않겠다는 원칙도 그대로 지켰다. 그러고 나서야 유리 맞은편에 앉았다.“괜찮습니까?”유리는 대답 대신 모니터를 가리켰다.“봤어요?”“오는 길에 보고받았습니다.”“어떻게 생각해요?”재헌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유리가 원하는 게 총괄이사의 판단인지 남자친구의 감정인지 구분하려는 얼굴이었다. 유리는 그걸 알아차리고 먼저 말했다.“둘 다.”그제야 재헌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총괄이사로서는 이 메일 하나만으로 헬레나 이브가 포뮬러 유출의 주체라고 판단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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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은 실험할 수 없습니다

Do you really believe people choose for themselves?정말로.사람이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니?유리는 화면에 떠오른 문장을 한동안 바라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빠르게 움직이던 실시간 접근 로그가 멈춰 있었다. 상대는 도망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숨길 생각조차 없는 듯했다. 2년 전 파리 글로벌 워크숍에서 만들어진 뒤 폐기됐어야 할 공동 계정, GLOBAL_FORMULATION_SHARED. 그 계정으로 한유리의 인터뷰 포트폴리오에 접근한 누군가가 유리가 넣어둔 문장을 읽었고, 곧바로 새로운 파일을 만들어 답을 남겼다.세아가 영상통화 너머에서 숨을 죽였다.“선배, 보안팀에서 세션 끊을까요?”“아니.”유리는 짧게 대답했다.“아직.”“근데 저쪽에서 우리가 보고 있다는 걸 알 수도 있어요.”“알 거야.”유리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저건 실수가 아니었다. 숨어서 자료만 훔쳐보던 사람이 우연히 파일을 만든 것도 아니다. RESPONSE_TO_HY. 제목부터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 만든 파일이었다.HY.한유리.Han Yuri.혹은.Helena Yves.같은 이니셜.그 사실이 유리를 더 불편하게 했다.“파일 수정 권한 차단하지 말고, 대신 복사랑 다운로드만 막을 수 있어?”세아가 옆에 있는 보안팀에게 물었다. 잠시 키보드 소리가 들렸다.“가능하대요. 지금 세션을 격리된 미러 환경으로 넘길 수 있대요.”“그렇게 해.”“선배.”“응.”“답하려고요?”유리는 그제야 세아를 봤다.“아니.”“그럼요?”“보게 두려고.”상대가 원하는 건 반응이었다. 유리가 놀라는지, 화를 내는지, 대화를 시도하는지. 지금까지의 패턴이 정말 ‘관찰’이었다면 저 문장도 같은 목적일 가능성이 높았다.유리는 노트북에서 손을 뗐다.“내가 답하면 저 사람이 원하는 대로 되는 거야.”“근데 가만히 있으면.”“그것도 반응이지.”유리는 인정했다.무엇을 해도.상대는 의미를 붙일 수 있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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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성공 사례

클레어 모로.그 이름을 들은 순간 유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놀라서라기보다 머릿속에서 지금까지 흩어져 있던 정보들이 너무 빠르게 자리를 바꾸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헬레나 이브의 오래된 연구, 첫 번째 해석자였던 한서연, 실패한 매칭, 단 한 명뿐이었던 성공 사례, 그리고 조금 전 GLOBAL_FORMULATION_SHARED 계정이 인터뷰 패널 목록을 연 뒤 헬레나가 아니라 가장 먼저 확인했던 사람.클레어.유리를 파리 시니어 퍼퓨머 후보로 불러들인 사람.지금까지 유리는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클레어가 요청한 건 유리의 초기 개발 노트였고, 파리 인터뷰 역시 BORDERLINE이 내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뒤 진행된 정상적인 채용 절차처럼 보였다. 헬레나가 외부 자문으로 들어온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클레어는 오히려 그 과정에서 한 발 떨어진 정상적인 본사 책임자처럼 보였다.그런데.첫 번째 성공 사례가 클레어 모로였다.“엄마.”유리가 겨우 입을 열었다.“확실해?”[응.]“동명이인 아니고?”[아니야.]어머니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이번에는 망설임이 없었다.[클레어 모로. 그때는 스물몇 살이었어. 정확한 나이는 기억 안 나는데 아주 젊었어. 향수 업계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다고 했고.]유리는 눈을 감았다.“그 사람이 해석자였어?”[응.]“엄마 다음으로?”[정확히는 나를 대신한 게 아니었어.]유리의 눈이 다시 떠졌다.“무슨 뜻이야?”[헬레나는 사람마다 감각을 언어로 바꾸는 방식이 다르다고 생각했어. 나는 장면으로 설명했고, 클레어는.]어머니가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감정을 거리로 설명했어.]유리의 손끝이 굳었다.거리.또.그 단어.[좋은 향을 맡으면 좋다고 하지 않고 ‘조금 더 가까이 가고 싶은 향’이라고 했고, 싫은 향을 맡으면 ‘두 걸음 물러나고 싶은 향’이라고 했어. 헬레나는 그걸 굉장히 흥미로워했어.]“그래서 매칭했고.”[응.]“반응하는 사람이랑.”[응.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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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보다 먼저 남은 향

어머니가 보관하고 있던 향수병은 그날 밤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유리는 마음 같아서는 당장 본가로 달려가 유리병을 받아 들고 분석실로 향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열일곱 해 전 물건이었고, 만약 정말로 현재 사건과 연결되는 성분이 남아 있다면 그 순간부터 단순한 개인 소지품이 아니라 증거가 될 수 있었다. 어머니에게 병을 열지 말라고 한 뒤 법무팀에 먼저 연락했고, 다음 날 아침 독립 분석기관 직원이 직접 방문해 봉인된 상태로 수거하기로 했다.그 모든 절차를 끝내고 나니 새벽 한 시가 가까웠다.유리는 침대에 누워서도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여덟 살 때의 기억이 떠오를 것 같았지만, 정작 기억나는 건 거의 없었다. 작은 향수병이 예뻤다는 것, 어머니 옆에 낯선 외국인 여자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여자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맡게 했다는 것. 아이리스였다는 사실조차 어머니가 말해준 뒤에야 흐릿하게 연결됐을 뿐, 당시의 향을 지금 정확하게 기억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그런데 그게 오히려 무서웠다.기억하지 못하는데.몸은 기억할 수 있을까.열일곱 해 뒤 전혀 다른 사람의 목 가까이에서 같은 향을 맡았을 때, 머리는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감각만 먼저 반응할 수 있을까.유리는 눈을 떴다.그리고 곧바로 휴대전화를 집었다.메시지 창.권재헌.시간은 오전 1시 07분.보낼까 말까 고민하는데 먼저 메시지가 왔다.[안 자고 있죠.]유리는 눈을 깜빡였다.곧바로 답했다.[어떻게 알아요?][저도 안 자니까.]말도 안 되는 논리였다.유리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그게 무슨 상관인데.]잠시 뒤.[전화해도 됩니까.]유리는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신호가 가기도 전에 재헌이 받았다.[네.]“전화해도 되냐면서요.”[허락받기 전에 걸었군요.]“싫어요?”[아뇨.]그의 목소리가 낮게 들렸다.[좋습니다.]유리는 이불을 조금 끌어올렸다.“재헌 씨도 잠 안 와요?”[네.]“왜.”[오늘 제 몸에서 외부 향료가 검출됐다는 얘기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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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고른 사람

클레어의 답장은 짧았다.Because I was trying to keep you away from him.그 사람에게서 당신을 떼어놓으려고 했으니까.유리는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클레어가 자신을 파리로 부른 이유는 꽤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BORDERLINE의 가능성을 봤고, 한유리라는 조향사의 감각을 높이 평가했으며, 헬레나가 다시 ‘해석자’를 찾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뒤 가까운 곳에서 보호하려 했을 수도 있었다.하지만.그 사람에게서.헬레나가 아니라.R-01.17년 전 클레어의 감정을 흔들었던 사람. 헬레나의 연구에 피험자인 척 들어왔지만 사실은 연구 자체를 알고 있었고, 클레어를 관찰하다 사고 직후 사라진 사람.그 사람이 어떻게.17년 뒤의 한유리와 연결되는가.유리는 바로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지금까지 상대가 던지는 문장 하나에 반응해 너무 많은 가설을 세웠다. 이번에는 클레어가 말하게 해야 했다.법무팀에 추가 면담을 요청하고, 줄리앙이 보낸 문서 원본과 클레어의 답장을 증거 보존한 뒤에야 유리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새벽 세 시가 넘었지만 이상할 정도로 정신은 맑았다.휴대전화가 진동했다.재헌.[아직 회사죠.]유리는 화면을 보다가 웃었다.[어떻게 알아요.]곧바로 답.[당신 집에 불이 꺼져 있습니다.]유리의 눈이 커졌다.바로 전화했다.“우리 집 앞이에요?”[네.]“왜요?”[오늘 늦는다고 해서 데리러 갔는데 안 나왔으니까.]“연락을 하지.”[집중하고 있을 것 같아서.]“그래서 그냥 기다렸어요?”[30분 정도.]유리는 눈을 감았다.이 사람은 가끔.이런 식이다.대단한 말을 하지 않는데.이상하게 마음을 건드린다.“회사예요.”[압니다.]“어떻게.”[방금 비서실 통해서 확인했습니다.]“그럼 왜 집에 있어요.”[지금 출발하려고 합니다.]유리는 피식 웃었다.“오지 마요.”잠깐.[왜.]목소리가 즉시 낮아졌다.유리는 그 반응이 조금 귀여워서 웃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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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 먼저 향을 추적했다

R-01이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지금까지 맞춰놓았던 퍼즐이 다시 한 번 무너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처음처럼 막막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리는 이상할 정도로 머리가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을 중심에 놓고 사건을 보면 누군가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모든 의미가 그 사람에게 쏠렸지만, 향을 중심에 놓으면 달랐다. 누가 맡았고, 누가 옮겼고, 어떤 기록에 남았으며, 어느 시점에 다시 나타났는지. 향에는 의도가 없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해도 시료가 지나온 경로까지 거짓말을 하지는 못했다.유리는 아직 통화 중인 세아에게 말했다.“내일 아침 출근하면 제일 먼저 R-01 샘플 원본 기록부터 찾아줘. 4개월 전 내가 맡은 것만 말고, 그 코드가 회사 시스템에 처음 등록된 시점까지.”[네. 그런데 선배.]“응.”[지금 몇 시인지 아시죠?]유리는 휴대전화 화면을 봤다. 오전 1시 26분.“……알아.”[저도 이제 알아요.]“미안.”[아니에요. 저도 궁금해서 잠 못 잘 것 같긴 한데.]세아가 하품을 삼키며 말했다.[그래도 선배는 주무세요. 내일 파리 인터뷰 포트폴리오 최종 검토도 있잖아요.]유리는 순간 멈췄다.사건에 빠져.또 잊을 뻔했다.파리.시니어 퍼퓨머 인터뷰.자기 커리어.“응. 잘게.”[진짜요?]“진짜.”[권 총괄님 옆에 계시죠?]유리의 눈이 커졌다.“어떻게 알아?”[선배 목소리가 좀 편해요.]유리는 저도 모르게 재헌을 봤다. 그는 무슨 대화인지 듣지 못한 채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너 요즘 쓸데없이 눈치가 늘었어.”[선배 때문에요.]“끊는다.”[좋은 밤 보내세요.]“윤세아.”전화가 먼저 끊겼다.유리는 어이가 없어서 화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재헌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지만 표정만으로 충분했다.“뭘 그렇게 봐요.”“윤세아 연구원이 뭐라고 했습니까.”“별말 안 했어요.”“그런 얼굴이 아닌데.”“무슨 얼굴.”“민망한 얼굴.”유리는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었다.“재헌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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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숨긴 샘플

[그걸 어떻게 찾았어?]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유리는 오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부정하지 않았다. R-01이 무엇인지 되묻지도 않았고,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 짧은 한마디만으로 적어도 하나는 확실해졌다. 한서연은 R-01이 제네바의 세린 아카이브에 보관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유리는 눈앞의 문서를 다시 내려다봤다. Original Return Certificate. Client: Han Seo-yeon. 열일곱 해 전 발급된 반환 인증서. 그리고 4개월 전 누군가 그 인증서를 제시해 R-01을 출고시켰다.“찾은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유리야.]“엄마가 나한테 폐기했다고 했잖아.”전화 너머가 조용해졌다. 유리는 화를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어머니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숨긴 일이 있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클레어와 헬레나, 열일곱 해 전 연구에 관해서도 어머니는 유리가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많은 걸 말하지 않았다.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4개월 전 R-01이 다시 세상에 나왔고, 그 샘플은 한유리에게 전달됐다. 그리고 재헌을 처음 만난 날 그의 주변에서 그와 유사한 조성의 향이 검출됐다.“폐기한 거 아니지?”한참 뒤, 어머니가 대답했다.[원액은 폐기했어.]“그럼 제네바에 있는 건.”[대조 샘플.]유리는 미간을 눌렀다.“처음부터 설명해 줘.”[…….]“엄마.”목소리를 낮췄다.“이번에는 중간에 빼지 말고.”어머니가 길게 숨을 내쉬었다.[알았어.]그 대답을 듣고서야 유리는 의자에 제대로 앉았다. 재헌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통화 내용을 들으려고 가까이 오지도 않았고, 유리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 묻지도 않을 것이다.[열일곱 해 전에 클레어 사고가 난 뒤에 내가 헬레나한테 연구를 끝내자고 했어.]“응.”[헬레나도 처음에는 동의했어. 적어도 그때는.]그때는.유리는 그 말을 기억해 뒀다.[우리가 가지고 있던 R-01 원액은 전부 폐기했어. 사용 중이던 희석 샘플도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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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처음 만난 날은 바뀌지 않는다

Han Yuri — 5.유리는 화면에 떠 있는 숫자를 한참 바라보다가 아주 천천히 미간을 좁혔다. 방금 전까지는 자신과 재헌의 이름이 스물두 해 전 같은 프로그램 명단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머리가 복잡했지만, 이상하게도 숫자 하나가 눈에 걸렸다. 놀란 감정이 조금 가라앉자 조향할 때처럼 사소한 불일치가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잠깐만요.”클레어가 화면 너머에서 유리를 바라봤다.“왜요?”“이 기록이 스물두 해 전이라고 했죠?”“네.”“저 지금 서른이에요.”클레어의 표정이 멈췄다.유리는 화면의 숫자 5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스물두 해 전이면 저는 여덟 살이에요. 다섯 살이 아니라.”회의실 안이 조용해졌다. 가브리엘과 연결된 통화는 아직 끊지 않은 상태였고, 법무팀 직원들이 동시에 각자의 화면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너무 충격적인 발견처럼 보였던 참가자 명단에 처음으로 분명한 균열이 생겼다.가브리엘이 먼저 말했다.[원본을 다시 확인하겠습니다.]“아까는 기록이 있다고 확신했잖아요.”[제가 본 건 전산화된 참가자 데이터입니다.]“원본 종이가 아니고?”[네.]유리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또 데이터였다. 누군가가 옮겼고, 정리했고, 시스템을 바꾸면서 필드를 다시 붙인 자료. 이번 사건 내내 사람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갔던 것도 그런 자료들이었다.“그럼 Kwon Jaeheon — 12도 나이라고 확신할 수 없겠네요.”[그건 별도 필드에 생년 정보가 있습니다.]“제 건요?”가브리엘이 잠시 침묵했다.[없습니다.]“그럼 왜 5가 나이로 들어갔죠?”[확인하겠습니다.]유리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심장이 조금씩 원래 속도를 찾았다.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사실조차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자신이 다섯 살 때 재헌을 만났다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원본 확인 전까지는 아무 의미도 붙이지 않을게요.”클레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그게 맞습니다.”유리는 화면을 보며 덧붙였다.“그리고 가브리엘 씨.”[네.
last update最終更新日 : 2026-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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