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복수의 불장난 - 내 최고의 친구의 남편이 나에게 불륜을 제안했다: Chapter 31 - Chapter 40

240 Chapters

31 얼어붙은 폭풍

밴스의 시점큰 오두막의 문이 닫혔다. 안에는 밴스와 조비만 남았다. 벽난로에는 불이 타오르고 있었지만, 방 안은 이상할 만큼 차가웠다.밴스가 아내를 바라보았다.“네가 한 거지.”그의 목소리는 무덤덤했다.“방을 그렇게 예약한 것도 너고. 둘을 각자 다른 오두막에 넣은 것도 너야. 꽤 유치하고 못된 짓이었지.”조비의 얼굴이 굳었다.“그 사람 남편이니까, 밤에 그의 오두막으로 걸어가서 위로라도 해주려고 했던 거야?”조비는 밴스가 그 사실을 이렇게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다는 듯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다시 강한 표정을 만들어냈다.“당신은?”조비가 되물었다.“그녀 오두막은 혼자 떨어져 있잖아. 당신이 가서 위로해 줄 거야? 아니면 사실 위로가 필요한 건 당신이야?”“그럴 수도 있지.”밴스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았다.“적어도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는 확실히 알고 있으니까.”그 말은 조비가 예상하지 못했던 곳을 찔렀다.버티고 있던 표정이 무너졌다. 이번에는 억지로 만들어낸 눈물이 아니었다. 진짜 눈물이 눈가에 맺혔다.“당신은 나를 사랑한 적 없었어.”조비의 목소리가 떨렸다.“한 번도. 그런데 이제는 그녀를 바라보잖아. 내 친구였던 여자를. 당신은 그녀를 볼 때…… 마치—”“마치 뭐?”밴스가 말을 끊었다. 그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말해 봐, 조비.”그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네가 그녀의 남편과 그녀의 침대에서 함께했을 때, 그 여자가 어떤 기분일지는 생각했어?”밴스가 한 걸음 다가갔다.“그녀가 흘릴 눈물은 생각했나? 아니면 애초에 그녀가 존재한다는 것조차 생각하지 않았던 건가?”조비가 뒤로 물러났다.“당신에게 동정받으려고 하지 마.”밴스의 목소리는 차갑고 또렷했다.“그건 통하지 않아.”그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덧붙였다.“오히려 널 바보처럼 보이게 만들 뿐이야.”밴스는 몸을 돌려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조비는 벽난로 앞에 홀로 남았다.그녀는 임신한 여자였다. 돈도 많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Read more

32 그들처럼 되고 싶지 않아

이제 내가 주도권을 쥐고 있었다.나는 밴스를 구석으로 부축해 데려간 뒤 몸을 기대게 했다. 그리고 담요를 길게 찢어 그의 발목을 단단히 감쌌다.그는 내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입김이 허공에서 하얗게 흩어졌다.몇 시간이 흘렀다.바람은 계속 울부짖었다.기온은 점점 더 떨어졌다.나는 체온을 나누기 위해 그의 곁에 바짝 붙어 앉았다.낭만적인 의미는 아니었다.얼어 죽지 않기 위해서였다.어둠 속에서 지치고 몸까지 아프자, 모든 것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밴스는 소파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왔군.”그가 말했다.질문이 아니었다.마치 이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들렸다.“당신은 내 파트너니까.”내 목소리는 추위 때문에 낮게 잠겨 있었다.“이제는 그 이상인 것 같아.”그가 조용히 말했다.마치 자신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인정하는 것처럼.나는 일어나 작은 난로에 장작을 하나 더 넣었다.내 근육도 온통 쑤셨다.몸을 돌려 다시 밴스를 바라보는 순간, 발이 엉켰다.전혀 우아하지 않은 실수였다.순간 중심을 완전히 잃었다.나는 그대로 소파에 앉아 있던 밴스를 향해 넘어졌다.쿵!한 손으로 소파 등받이를 붙잡았다.무릎이 그의 멀쩡한 다리에 부딪혔다.그리고 내 얼굴이 그의 얼굴 가까이 떨어졌다.차갑게 얼어붙은 내 입술이 그의 입술을 스쳤다.1초도 되지 않는 순간이었다.피부와 피부가 닿은, 너무나 갑작스러운 사고였다.입안에는 그의 비누 향과 차가운 공기가 섞인 듯한 맛이 남았다.따뜻한 그의 입술과 까칠한 수염이 느껴졌다.나는 화들짝 몸을 뒤로 뺐다.숨이 목에 걸렸다.“미안해…… 미끄러졌어.”말을 멈췄다.밴스의 손이 이미 내 몸에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나를 밀어내는 손이 아니었다.오히려 나를 끌어당기는 손이었다.한 손은 내 허리를 단단히 감싸고 있었고, 다른 손은 내가 걸터앉은 그의 허벅지 가까이에서 내 엉덩이를 붙잡고 있었다.그는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어둡고 깊은 그의 눈이 내 눈을 정면으로 붙잡았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Read more

33  우리가 짊어진 유령

그날 아침, 아침 식사 자리의 분위기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나는 테이블에 앉아 식어가는 커피잔을 손에 쥔 채 그 모습을 지켜봤다.제인은 모든 것을 제대로 하고 있었다.조비가 앉을 의자를 빼주고, 그녀가 물을 달라고 하기 전에 먼저 따라주고, 그녀가 말을 하면 몸을 기울여 귀를 기울였다.하지만 그 모든 행동이 억지로 하는 것처럼 보였다.마치 누군가가 써준 대본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처럼.밴스는 테이블 상석에 앉아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아니, 읽는 척하고 있었다.그의 시선은 계속 위로 올라가며 방 안을 훑었다.말없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이번 출장을 위해 자금을 지원한 해링턴 가문의 젊은 후계자, 리암 해링턴은 노르웨이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여기 목공예가 정말 대단하네요.”그는 감탄하며 말했지만, 시선은 제인과 조비 사이를 오가다가 밴스에게로 향했다.관찰하고 있었다.배우고 있었다.다음 움직임을 결정하기 전에 판을 읽는 사람처럼.조비가 배 위에 손을 올렸다.그리고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제인이 순식간에 그녀 곁으로 다가갔다.“괜찮아?”“그냥 아기 때문이야.”조비가 부드럽게 대답했다.“벌써 발로 차나 봐.”커피잔을 쥔 내 손에 힘이 들어갔다.너무 이른 시기였다.나는 알고 있었다.제인과 아이를 가지려고 했을 때 관련 책을 거의 전부 읽었으니까.하지만 제인은 그걸 기억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나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잔이 받침에 부딪히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울렸다.“사실은.”내 목소리는 평평했다.“지금은 발로 차기에는 너무 일러. 아직 아기가 그렇게 클 때가 아니야.”테이블 위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조비의 미소가 흔들렸다.“그래도 뭔가 느껴졌어.”“가스겠지.”나는 담담하게 말했다.“아마 가스일 거야.”제인이 조비를 바라봤다.조비의 얼굴이 붉어졌다.리암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번갈아 바라봤다.그 순간 밴스의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정말 잠깐이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Read more

34 커서가 깜빡이게 두자

밴스의 시점그날 오후 회의는 통제된 지루함의 연속이었다.숫자.그래프.그리고 또 숫자.밴스는 테이블 상석에 앉아 펜으로 메모 여백에 정확한 선을 그어가며 내용을 정리하고 있었다.그는 데이터가 만들어내는 단조로움에서 위안을 찾는 법을 배웠다.데이터는 깔끔했다.예측할 수 있었다.그리고 절대 배신하지 않았다.맞은편에는 네리사가 앉아 있었다.그는 그녀를 직접 보지 않아도 그녀가 힘들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방 안의 공기가 달라진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오후 내내 집중하지 못했다.시선이 자꾸 다른 곳으로 향했고, 집중력이 흐트러졌다.밴스는 그걸 알아챘다.물론 알아챘다.공원에서 있었던 일 이후부터였다.제인 때문이었다.그리고 그때 밴스는 그것을 보았다.갑자기 그녀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손이 배를 누르는 모습.너무나 무의식적인 행동이라 그녀 자신조차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밴스는 그 행동을 알고 있었다.병원에서 이미 보았던 모습이었다.그는 관찰을 멈추지 않는 자신의 머릿속 한구석에 그것을 기록해 두었다.펜 끝이 멈췄다.고통.그 단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날카롭고 불편했다.그는 네리사가 양해를 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그녀가 너무 빠르게 회의실을 나가는 것도 지켜봤다.그리고 문이 그녀의 뒤에서 닫히는 것까지.그는 자리에 남아 있어야 했다.이 회의는 중요했다.리암 해링턴이 지켜보고 있었고, 그 젊은 남자의 가족은 이 프로젝트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고려해야 할 것이 많았다.그는 CEO였다.그저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는 없었다.그런데 이미 몸이 먼저 일어나 있었다.“실례하겠습니다.”그의 목소리는 평평했다.질문을 불러일으킬 만한 감정은 조금도 담기지 않았다.“현장 책임자와 확인할 일이 있습니다.”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다.사람들은 거의 고개조차 들지 않았다.리암은 눈앞의 서류를 살펴보느라 바빴고, 조비는 리암을 살피느라 바빴다.제인은 네리사가 방금 나간 문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Read more

35 메아리

밴스의 시점서재에 홀로 앉은 밴스는 자신이 보낸 메시지를 바라보고 있었다.개인적인 감정은 중요하지 않아.그는 평생을 그 원칙 위에 세워왔다.그런데 방금 자신이 한 행동은 그 원칙과 정반대였다.아내도 아닌 여자를 위해 의사를 준비했다.그녀의 눈에서 자신이 이름 붙이기를 거부해 온 무언가와 닮은 고통을 보았다는 이유만으로.전략이었다.그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네리사는 프로젝트에 중요한 인물이었다.안정적인 리더십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인력이 필요했다.그녀의 건강을 챙기는 것은 투자였다.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하지만 병원에서의 일이 떠올랐다.그 후 집으로 돌아오던 조용한 차 안도.그리고 조비가 단 한 번도 자신에게 괜찮냐고 묻지 않았던 것도.조비가 물었던 것은 오직 그것이 그들의 이미지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뿐이었다.그는 네리사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이 그녀에게 경계를 상기시키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어쩌면 자신에게 다시 상기시키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경계.프로페셔널함.계약이 먼저라는 사실.그런데도 그는 휴대폰을 켜둔 채 책상 위에 놓았다.소리는 최대로 높여두었다.혹시 그녀가 답장할지도 몰랐다.혹시 의사가 필요할지도 몰랐다.혹시.다른 오두막에서는 네리사가 침대에 앉아 있었다.한 손에는 온열 패치를 들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제인은 직접 왔다.두 번이나.밴스는 의사를 보냈다.하지만 거리를 둔 채로.네리사는 휴대폰을 바라봤다.밴스에게 답장하기 위한 입력창에서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밖에서는 제인의 오두막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복도 건너편에서는 밴스의 방 아래로 새어 나오는 불빛이 아직도 켜져 있었다.네리사는 타이핑하기 시작했다.확인했습니다.잠시 바라보다가 지웠다.다시 입력했다.프로페셔널하게 행동할게요. 의사를 보내줘서 고마워요.이번에도 지웠다.커서는 계속 깜빡였다.마치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네리사는 결국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답장은 하지 않았다.적어도 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0
Read more

36 개인적인 감정

노년의 여성을 집까지 데려다준 조비는 과장된 다정함을 한껏 보여준 뒤 일행에게 돌아왔다.그녀의 미소는 눈부실 만큼 환했다.본능적으로 가장 먼저 밴스를 찾았다.지금도 여전히 남편의 인정을 바라고 있었다.그녀의 시선이 밴스에게 닿았다.그리고 그가 네리사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저 흘끗 본 것이 아니었다.무심코 관찰한 것도 아니었다.바라보고 있었다.그런 시선은 조비가 7년간의 결혼 생활 동안 밴스에게서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그 시선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었다.바라보는 상대가 중요하다는 것.조비의 미소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하지만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표정을 다듬었다.그리고 제인이 조금 뒤에서 따라오는 가운데 일행에게 걸어갔다.“정말 다정한 분이었어요!”조비가 큰 소리로 말했다.“우리한테 커피를 대접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믿어져요?”제인이 따라잡으며 미소 지었다.“할머니 생각이 났어.”네리사가 그의 눈을 마주쳤다.“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그분이 힘들어하는 걸 알아봤잖아. 예전에도 늘 그랬어.”별것 아닌 말이었다.하지만 그 말은 제인에게 깊이 닿았다.그의 미소가 달라졌다.습관적인 미소가 아니라 조금 더 진짜 같은 미소였다.“너도 알아봤잖아. 다만 내가 먼저 움직이지 않았을 뿐이지.”그가 잠시 말을 멈췄다.“넌 원래 늘 그랬잖아. 내가 먼저 달려가면 한참 뒤에 따라왔어.”고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져 온 오래된 농담이었다.네리사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누군가는 네가 절벽에서 뛰어내리지 않게 지켜봐야 했으니까.”“내가 뛰어내렸을 때는 누군가가 잡아줘야 했고.”그 순간은 그곳에 그대로 매달렸다.위태롭고.예상하지 못했고.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것처럼.이번에는 밴스가 그녀를 바라보지 않았다.하지만 조용히 듣고 있었다.아주 주의 깊게.그리고 조비는 그것을 알아챘다.밴스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다는 것을.무엇이 더 그녀를 불편하게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자신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Read more

37 보고서

네리사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눈을 감을 때마다 빈터하운의 스타브 교회에서 보았던 제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무언가 아름다운 것을 설명할 때면 순수한 기쁨으로 빛나던 얼굴.그러다 벽 너머로 들려오던 그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전화로 누군가와 이야기하며 잔뜩 긴장하고 걱정하던 목소리.그리고 마지막으로 떠오른 것은 불가 옆에 서 있던 밴스였다. 낮고 차분했던 그의 목소리.“난 네가 그에게 밧줄을 던지지 않았으면 해.”새벽이 오기도 전에 네리사는 눈을 떴다.그녀는 한동안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었다.얇은 통나무 벽 너머에서 제인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서류를 넘기는 소리. 답답하다는 듯 내쉬는 한숨. 그리고 의자가 끌리는 소리와 함께 그가 자리에 앉았다.벌써 시작했어.네리사는 눈을 감았다.자기가 무엇과 맞서고 있는지도 모르면서.아침 회의는 롯지의 메인 회의실에서 열렸다.짙은 색 목재로 된 긴 테이블과, 얼어붙은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창문이 있는 방이었다.리암은 테이블 상석에 앉아 있었다. 아직 젊은 티가 남아 있었지만, 최대한 자신이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처럼 보이려 애쓰고 있었다.조비는 그의 옆에 앉아 가끔씩 자연스럽게 그의 팔에 손을 얹었다. 누군가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만드는, 지나치게 익숙한 동작이었다.밴스는 테이블 반대편 끝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은 열려 있었고, 얼굴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다.네리사는 가운데에 앉았다.제인은 그녀의 맞은편이었다.현장 관리자인 시그리드라는 이름의 노르웨이 여성이 빠른 걸음으로 들어와 서류철을 나누어 주었다.“예비 설계안 제출 기한은 오늘부터 열흘입니다.”그녀의 억양은 또렷했다.“모든 요구 사항은 설리번 씨가 서명한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4조는 지속 가능성 지표, 7조는 지역사회 통합 연구, 12조는 문화유산 규정 준수에 관한 자료를 다룹니다.”제인이 서류를 넘겼다.그러다 그의 표정이 변했다.“이 요구 사항들은…”그가 고개를 들었다.“여기 일부 자료는 현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Read more

38 압박감

저녁 식사는 조용했다.제인은 거의 먹지 않았다. 접시 위의 음식을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밀어놓기만 했다.조비는 제인을 힐끗 바라보다가 밴스를 보고, 다시 네리사를 바라보았다. 걱정과 의심이 얽힌 시선이 세 사람 사이를 오갔다.밴스는 평소처럼 침착하고 업무적인 태도를 유지하며 리암에게 할아버지가 프로젝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 물었다.네리사는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저녁 식사가 끝나자 그녀는 자신의 오두막으로 돌아왔다.책을 읽으려 했다.일을 하려고도 했다.하지만 생각은 계속 제인이 받은 서류철로 흘러갔다. 서류를 받아 들던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던 것, 내용을 이해하는 순간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가던 모습.읽지 않았구나.네리사는 눈을 감았다.제인은 항상 세부 조항을 읽지 않아. 신나서 서명하고, 어떻게든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하지. 지금까지 늘 그렇게 됐으니까.하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을 거야.벽 너머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왔다 갔다 걷는 발소리.무언가 떨어졌는지 낮게 욕하는 소리.네리사는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그녀는 코트를 걸치고 차가운 바깥으로 나갔다.롯지의 공용 공간은 커다란 벽난로와 책장, 그리고 손님들이 일을 펼쳐놓고 할 수 있도록 마련된 긴 테이블이 있는 넓은 방이었다.제인이 그곳에 있었다.그는 테이블에 홀로 앉아 있었다.주변에는 설계도와 출력물들이 널려 있었고, 노트북 화면에는 수많은 탭이 열려 있었다.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있었다. 계속 손으로 쓸어 넘긴 모양이었다.평소에는 거의 쓰지 않다가 몹시 지쳤을 때만 꺼내 쓰는 안경이 코끝에 걸쳐져 있었다.처음에는 네리사를 보지 못했다.그는 한 장의 문서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입술을 아주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눈썹은 깊게 찌푸려져 있었다.네리사는 문가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학교 다닐 때의 제인이었다.마감 직전이면 밤을 꼬박 새우고, 형편없는 커피와 고집스러운 끈기로 버티던 사람.모든 것이 불가능해 보이는 순간에도 절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Read more

39 도움

오두막으로 돌아온 네리사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벽 너머에서 제인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왔다 갔다 걷는 발소리.그러다 무언가 둔탁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친 걸지도 몰랐다.곧이어 억눌린 욕설이 들려왔다.네리사는 눈을 감았다.내가 그를 도우면 밴스를 배신하는 거야.돕지 않으면 예전의 나를 배신하는 거고.제인이 실패하면 모든 걸 잃어. 회사도, 명성도, 미래도.제인이 성공하면 프로젝트는 살아남아. 조비의 신뢰도도 지켜지고, 밴스의 계획은 실패해.몰래 도와주면 아무도 모를 거야.하지만 나는 알겠지.네리사는 병원에서 자신의 손을 잡아 주던 밴스를 떠올렸다.폭풍 속 대피소에서 자신에게 거의 입을 맞출 뻔했던 밴스.그리고 불가 옆에서 거칠게 말했던 그의 목소리.“누가 네 파트너인지 기억했으면 해.”그녀는 스타브 교회에서 열정으로 눈을 빛내던 제인을 생각했다.낯선 사람의 장을 들어 주던 제인.설계도와 서류가 뒤덮인 테이블 건너편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형편없었던 커피를 기억해 내고 웃던 제인.두 남자.네리사는 생각했다.서로 다른 두 가지 끌림.하나는 내가 아직 완전히 놓지 못한 과거에서 오고 있고, 다른 하나는 내가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현재에서 오고 있어.그리고 나는 둘 중 누구도 모르게 선택해야 해.네리사는 몸을 일으켰다.책상 위에 노트북이 있었다.계약서는 업무 드라이브에 저장되어 있었다. 몇 주 전, 처음 제인에게 계약서를 내밀었을 때 이미 열어 본 적이 있었다.그녀는 모든 조항을 알고 있었다.모든 기한을.모든 숨겨진 요구 사항을.그리고 제인이 정확히 무엇을 놓쳤는지도 알고 있었다.생각이 따라잡기도 전에 손가락이 먼저 움직였다.새 이메일을 열었다.익명 계정이었다.몇 달 전, 다른 용도로 만들어 둔 계정이었다.네리사는 한 줄을 입력했다.제12조에는 현지 지방자치단체의 문화유산 영향 평가서가 필요합니다. 담당자는 문화유산부의 카린 비요른스타드입니다. 이메일 주소는 k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Read more

40 도움의 비밀

사흘 후첫 번째 징후는 화요일 아침에 나타났다.밴스는 자신의 오두막에서 프로젝트 진행 상황을 검토하고 있었다. 그때 현장 관리자인 시그리드에게서 이메일이 도착했다.제목은 예비 설계안 제출 — 제4조 승인 완료였다.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메일을 열었다.제4조는 지속 가능성 지표에 관한 내용이었다. 계약 조건 중에서도 기술적으로 가장 복잡한 부분이었다. 제인이라면 이 부분만으로도 몇 주 동안 애를 먹어야 했다.밴스는 첨부된 자료를 열었다.제출 내용은…… 제법 괜찮았다.아니, 그 이상이었다.데이터는 깔끔했고, 방법론은 타당했다. 현지 기준 자료도 정확하게 인용되어 있었다.누군가 제대로 조사한 흔적이 분명했다.밴스는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흥미롭군.이틀 후롯지 식당에서 실무 점심 식사가 진행됐다.샌드위치와 커피를 앞에 두고, 시그리드가 다음 단계의 작업을 설명하고 있었다.제인은 테이블 가장 끝에 앉아 있었다.평소보다 말이 적었다.하지만 그의 모습에는 뭔가 달라진 점이 있었다.더 이상 완전히 무너져 있지 않았다.대신 집중하고 있었다.조비도 그것을 알아챘다.그녀는 제인을 몇 번이나 바라보며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었다.“계속 일만 하고 있어.”그녀가 리암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할 수 있다고 했잖아.”리암은 예의상 고개를 끄덕였지만,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할아버지와 통화한 뒤로 그는 전보다 훨씬 말이 적어져 있었다.네리사는 샌드위치를 먹었지만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그녀는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매일 밤 벽 너머에서 제인이 일하는 소리를 들으며 깨어 있었고, 매일 아침이면 익명 이메일 계정을 확인했다.혹시 자신의 흔적이 추적된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지금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시그리드의 설명이 잠시 끊긴 순간, 제인이 손을 들었다.“제7조에 대해 질문이 있습니다. 지역사회 통합 연구 부분이요.”그가 인쇄한 문서를 꺼냈다.“요구 사항에는 ‘지역 이해관계자 참여 절차’라고 되어 있습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21
Read more
PREV
123456
...
24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