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여덟 시 사십 분.백림유통 전략기획팀 사무실에 들어서자 몇 걸음 떨어진 책상에 민서라가 앉아 있었다.어젯밤 실크 잠옷을 입고 내 남편의 품에 안겨 있던 여자가 오늘은 단정한 블라우스에 사원증을 걸고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과장님, 좋은 아침이에요.”어젯밤 현우를 ‘오빠’라고 부르던 간드러진 목소리는 흔적도 없었다. 서라가 서류를 내밀었다.“어제 말씀하신 자료 수정했어요.”첫 장부터 예상 매출 산출식이 잘못돼 있었다.“민서라 씨. 전년 대비 증가율 다시 계산하세요. 이 숫자로 들어가면 뒤에 손익까지 전부 틀어져요.”“네, 과장님.”얌전히 돌아가는 모습은 지난 몇 달 동안 내가 가르쳐 온 인턴 그대로였다. 보고서 작성법을 알려주고 야근할 때면 밥까지 챙겨 먹였던 아이.그 아이가 지금 내 남편의 아이를 품고 있었다.옆자리 직원이 서라에게 커피를 건넸다.“서라 씨, 커피 마실래요?”“감사합니다.”아무도 모른다.저 아이가 대표의 아이를 가졌다는 것도, 어젯밤 내 집에서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는 것도.“과장님, 오늘 옷 예쁘네요. 어제랑 완전히 다른데요?”팀 막내의 말에 재킷을 정리하던 손이 멈칫했다.“아침에 일이 좀 있었어요.”모니터를 켜는데 파티션 너머 서라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시선이 내 재킷에서 블라우스, 구두까지 훑고 내려갔다.그리고 웃었다.오전 아홉 시.전략회의가 시작됐다.현우가 들어오자 잡담이 끊겼다. 그의 시선이 가장 먼저 내 낯선 재킷과 블라우스를 훑었다가 서라에게 향했다.“한 과장, 시작해.”화면에 분기 실적표를 띄웠다.“현재 매출은 목표 대비 92퍼센트입니다. 오프라인 세 개 지점의 손실폭이 예상보다 큽니다. 온라인 부문으로 예산을 재배치하는 편이 효율적입니다.”영업본부장이 이의를 제기했지만 준비한 수치를 보여주자 입을 다물었다.그때 서라가 갑자기 입을 막았다.“읍…….”얼굴이 하얗게 질렸다.현우가 먼저 몸을 기울였다.“괜찮아?”회의실이 조용해졌다.대표가 인턴에게 하기에는 지나치게
Last Updated : 2026-09-20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