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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형수는 내게만 허락돼: Chapter 171 - Chapter 180

195 Chapters

제171화. 그 방은 안 돼

“그거 지금 당장 치워.”유건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서윤의 휴대전화였다. 화면에는 저택 2층 복도가 떠 있었고, 오래전 자신과 세령이 쓰던 방문에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식탁에서 의자를 빼앗지 못한 여자가 이번에는 침실 위치를 표시해두었다. 두 사람이 저택을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왜요? 집 구경 좀 하겠다는데 무슨 큰일이라도 나요?”서윤은 화면을 끄기는커녕 사진을 확대했다. 손끝이 문손잡이 위에 멈췄다. 유건은 그 방문을 보는 순간, 세령이 이혼을 결정하고 짐을 정리하던 날을 떠올렸다. 옷걸이가 비어가는 소리와 서랍을 닫던 손길. 붙잡을 말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그가 꺼냈던 말은 자신의 억울함뿐이었다. 서윤은 그런 사정을 모른 채 손잡이의 모양이 예쁘다며 웃고 있었다.“거긴 안 돼.”“어머, 아직도 세령 씨 성역이에요? 식탁 의자도 안 되고, 향수도 안 되고, 이제는 방까지 안 된다고요?”“세령이 때문만은 아니야. 내가 살던 방이야. 내 허락도 안 받고 왜 위치부터 찾아?”“앞으로 우리가 진지해지면 저도 이 집 드나들 텐데요. 동선 정도는 알아야죠.”유건은 그 말이 불편했다. 결혼을 약속한 적도 없는데 서윤은 이미 식탁과 방의 주인이 될 순서를 짜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낼 날을 상상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떠난 자리를 하나씩 확보하는 건 전혀 달랐다. 유건은 베개 방향조차 자기 취향부터 고집했던 때를 떠올렸다. 이제 와 그 방을 자기 것이라 말하기도 민망했다.식당에 남아 있던 혜란은 직원이 치운 빈 의자 자리를 바라보다 둘의 대화를 들었다. 손님을 초대해놓고 갈등을 막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그녀를 다시 성급하게 만들고 있었다.“방이 보고 싶다는 게 그렇게 잘못이니?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곳이잖아.”“어머니, 안 쓰는 방이라고 아무나 열어줘도 되는 건 아니에요.”“내 집에서 방 하나 보여주는 것도 안 되니?”“보여주려면 최소한 저한테 먼저 물으셨어야죠.”서윤은 기다렸다는 듯 혜란 곁으로 옮겨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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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그 문을 열지 마

“전 그 문 여는 거 싫습니다.”유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혜란이 2층 복도 조명을 켰다. 식당에서 밀려난 의자 하나가 이제는 침실 문으로 바뀌었다. 서윤은 계단 첫 칸에 구두를 올린 채 고개만 돌렸다. 누가 봐도 올라갈 준비를 끝낸 사람이었다.“유건아, 구경만 하겠다는 거잖니. 네 물건엔 손대지 말라고 했어.”“제 물건만 있는 방이 아니었습니다. 세령이가 살던 곳이기도 해요.”“세령이한테도 물어봤어.”“어머니가 결정하시라고 했지, 들어가도 된다고 했습니까?”혜란의 입술이 다물렸다. 세령은 제 이름을 핑계로 문을 열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혜란은 이미 직원에게 열쇠를 가져오라고 시킨 뒤였다. 태겸의 편지를 숨길 때처럼, 손님 앞에서 자기 결정을 바꾸는 것이 더 두려웠다. 서윤은 어색해진 틈을 놓치지 않았다.“저 때문에 싸우실 필요 없어요. 안 보여주시면 되죠. 다만 유건 씨가 어떤 방에서 살았는지 궁금했을 뿐이에요.”“그럼 사진으로 봐.”“사진까지 찾아보면 또 세령 씨 흉내 낸다고 하실 거잖아요.”“네가 원하는 게 나와 사는 미래라면 우리 둘이 살 집을 보면 돼. 왜 굳이 내가 이혼한 방이어야 하는데?”“그럼 유건 씨는 옛날 방이 그렇게 아까워요? 저한테 보여주기 싫을 만큼?”“아까운 건 방이 아니라, 네가 나보다 세령이 흔적을 더 궁금해한다는 사실이야.”유건은 그녀를 봤다. 불과 며칠 전 서윤은 세령의 결혼사진을 촬영업체에 보내놓고 참고만 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전시장에서 세령의 옷과 향까지 따라 했다. 자신은 우연이라고 믿으려 했다. 하지만 문손잡이에 표시해둔 빨간 동그라미만큼은 설명이 필요했다.“그 사진, 어디서 났어?”“어머님이 집 소개해주실 때요.”“난 이 집 사진을 서윤 씨한테 보낸 적 없어.” 혜란이 말했다.서윤의 손이 난간에서 떨어졌다.“그럼 유건 씨 휴대전화에서 봤나 봐요. 저도 정확히는 기억 안 나요.”“내 휴대전화엔 2층 복도 사진 없어.”“아니, 기억이 좀 헷갈린다는 말도 못 해요? 집에 처음 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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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남의 흔적 전시회

“내 앞에서 다시 말해봐요. 이걸 누가 진열하라고 했죠?”유건은 화장대 위에 늘어선 물건들을 보자마자 방문을 닫지도 못했다. 세령이 첫 전시를 열었을 때 받은 손바닥만 한 유리 액자, 빛바랜 초대장, 사용하던 도자기 접시가 흰 천 위에 간격까지 맞춰 놓여 있었다. 어젯밤 그는 그 상자를 따로 보관해 세령에게 돌려주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 누군가가 남의 추억을 전시품으로 만들어놓았다.서윤은 창가에서 사진을 찍다가 휴대전화를 내렸다.“정리한 거예요. 먼지 쌓인 채 두면 아깝잖아요.”“어제 분명히 손대지 말라고 했어.”“저도 손대기 싫었죠. 그런데 직원분이 꺼내놓으셨는걸요?”방 안에는 익숙한 세제 냄새 대신 서윤이 쓰기 시작한 흰 꽃 향이 맴돌았다. 창문은 닫혀 있었고, 거울을 덮었던 천은 바닥에 접혀 있었다. 유건은 손가락으로 화장대의 빈자리를 짚었다. 세령은 처음 전시를 마친 밤, 잠이 오지 않는다며 저 액자를 협탁에 놓고 몇 번이고 들여다봤다. 그때 유건은 피곤하다며 먼저 불을 껐다. 기억조차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사람이 이제 물건 하나를 지키겠다고 서 있는 꼴이 우스웠다.전날 서윤이 보낸 ‘방을 열어달라’는 문자를 받은 직원은 아침에 혜란에게 보여주었다. 혜란은 남은 물건을 확인해 세령에게 돌려보내라는 뜻으로 직원과 함께 잠깐 문을 열었다. 그 틈에 서윤이 따라 들어왔고, 직원이 보관 상자를 가지러 나간 사이 물건들의 자리를 바꾼 것이었다. 혜란은 아래층에서 손님 전화를 받고 있었다.“누가 허락했습니까?” 유건이 직원에게 물었다.“사모님께선 보관품 확인만 지시하셨습니다. 서윤 님이 배열을 바꾸고 촬영하시는 건 허락받지 못했습니다.”서윤의 웃음이 멎었다.“아까는 직원분이 꺼내놨다면서.”“꺼내드린 건 상자뿐입니다.”직원은 아침에 확인용으로 찍어둔 사진을 보여주었다. 닫힌 상자 두 개와 덮개가 씌워진 화장대가 찍혀 있었다. 그 뒤 사진에는 내용물이 천 위에 늘어섰다. 누구도 서윤의 휴대전화를 빼앗지 않았다. 직원이 직접 보관 상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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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훔친 추억

“그걸 네 마음대로 결정해?”세령은 서윤이 움켜쥔 유리 액자를 바라봤다. 자신이 첫 전시를 끝낸 날 받아 들었던 초대장이 액자 속에 끼워져 있었다. 옛 침실 한가운데서 남편의 새 연인이 그걸 들고 울고 있었다.“제가 무슨 짓을 했다고 이렇게 몰아붙이세요? 먼지 털어서 예쁘게 놓아드렸잖아요.”서윤은 액자를 가슴께로 당겼다. 모서리가 손바닥에 눌릴 만큼 세게 쥐었으면서, 세령이 조금 다가서자 겁먹은 듯 한 걸음 물러났다. 화장대에는 초대장과 접시가 나열돼 있었다. 낯선 광경이었다.“내가 왜 찾아왔는지는 어머님께 들었죠? 물건 가지러 왔어요. 액자부터 주세요.”“왜 꼭 제가 훔친 것처럼 말씀하세요? 유건 씨도 계신데.”유건이 서윤 쪽으로 다가섰다.“서윤아, 그만하고 돌려줘. 애초에 건드리지 말랬잖아.”“너도 더 설명하지 마.”세령이 유건을 막았다.“돌려받을 사람은 나야. 네가 대신 용서하거나 합의할 일이 아니라고.”유건은 뻗었던 손을 거뒀다. 혜란은 방문에 선 채 입술을 깨물었다. 어제 직접 직원에게 보관품을 확인하라고 했지만, 서윤이 만지는 걸 막지 못한 책임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세령은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며 자신의 말을 덜 날카롭게 고치지 않았다. 혜란이 손수건을 만지작거리다 말했다.“내가 보관을 잘못했구나. 미안하다, 세령아.”“사과는 들었어요. 하지만 오늘 제가 챙기지 않으면 또 누군가 제 물건을 만지겠죠. 이번에는 직접 확인하고 갈게요.”세령은 서윤을 똑바로 바라봤다.“제일 웃긴 게 뭔지 알아요? 이건 결혼사진도 아니에요. 내가 유건이 만나기 전에 밤새 준비한 전시 초대장이에요. 그날 내 이름으로 손님들을 처음 맞았고, 그 뒤에야 저 액자를 만들었어요.”그날 새벽 전시장 바닥에는 포장지와 잘린 케이블 타이가 널려 있었다. 세령은 조명 하나가 어긋나 다시 사다리를 올라갔고, 손톱 사이에 검은 먼지가 낀 채 첫 손님을 맞았다. 그 작은 액자는 수고했다고 자신에게 처음 건넨 선물이었다. 남편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산 물건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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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신혼방 선언

“그럼 이제 이 방, 새로 꾸며도 되는 거 아닌가요?”세령의 물건이 담긴 주머니가 계단 아래로 사라지자마자, 서윤은 침실 벽에 벽지 견본을 갖다 댔다. 화장대 위에는 방금까지 액자가 놓였던 사각형의 먼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유건은 그 자국을 내려다보다 서윤의 손에서 견본을 거둬들였다.“남의 물건 빼고 나니까 이젠 방까지 가지려고?”“남이라뇨. 당신 방이잖아요. 저랑 미래를 생각한다면서요.”“미래를 생각하자는 말이 세령이 살던 방부터 고치자는 뜻은 아니었어.”서윤은 벽지 끝을 붙잡았다. 종이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가 났다. 새로 고른 색은 옅은 회백색이었다. 옛 침실 사진 속 벽과 비슷한 톤이었지만 서윤은 오히려 전혀 다른 방이 될 거라고 주장했다. 그녀의 휴대전화에는 침대 방향과 화장대 위치를 표시한 도면까지 저장돼 있었다.“세령 씨 물건은 가져갔잖아요. 이제 미련 가질 이유도 없으면서 왜 그래요?”“미련이 아니라 허락의 문제야. 그리고 난 너랑 결혼하기로 약속한 적 없어.”그 말이 떨어지자 서윤의 손에서 벽지 견본이 미끄러졌다. 그녀는 눈물을 보이기보다 허리를 굽혀 종이를 주웠다. 눈빛은 조금 전 세령 앞에서 흐느끼던 때와 달랐다.“그럼 지금까지 저 만난 건 뭐예요? 전처한테 잘 보이려고 데려다닌 들러리예요?”“좋아. 모두 있는 데서 끝내자. 어머니가 방을 열어준 일이니까 어머니 앞에서도 말할게.”유건은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서윤은 잠시 굳어 있다가 견본과 휴대전화를 움켜쥐고 뒤따랐다. 응접실에서는 혜란이 세령의 물건을 확인한 직원과 이야기를 마치고 있었다. 정혁은 소파에서 신문을 접었다. 저택 안에 다시 그 방 이야기가 내려오자 혜란의 낯빛이 굳었다.“어머니, 저 방은 앞으로 누구에게도 구경시키지 마세요. 정리할 필요가 생기면 제가 하겠습니다.”“네가 이렇게 싫어할 줄은 몰랐다.”“어제 싫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도 문을 여셨잖아요.”혜란은 반박하지 못했다. 서윤이 앞으로 나오며 접은 견본을 펼쳤다.“전 유건 씨랑 진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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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전처를 입었다

“그거 지금 당장 치워.”세령이 가리킨 건 차서윤의 원피스가 아니라 전시장 입구를 가로막은 휴대전화 삼각대였다. 개막 전 시사회에 초대한 관람객들이 들어오는 통로에서 서윤은 카메라 높이를 맞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고개를 드는 순간 세령의 손끝이 멈췄다.크림색 원피스, 짙은 재킷, 한쪽으로 꽂은 진주 머리핀. 구두 앞코와 소매를 접은 폭까지 4년 전 자신의 사진과 같았다. 서윤이 업체에 보냈던 의상 제작 주문이 실제 옷이 되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세령이 전남편의 집에서 되찾아온 건 첫 전시의 액자였는데, 서윤이 훔쳐 입은 건 그보다 더 오래된 결혼식 대기실의 모습이었다. 사진 속에서 유건이 목걸이를 고쳐주느라 기다리는 동안, 세령이 잠깐 어깨를 움츠렸던 장면까지 기억났다. 서윤은 그 사진을 어디서 구했는지 이미 충분히 보여준 여자였다. 우연히 쇼윈도에서 같은 옷을 고른 사람이라고 믿을 이유가 없었다.“통행로에서 촬영하시면 안 됩니다.” 미래가 안내판을 가리켰다.“금방 찍고 치울게요. 이렇게 예쁘게 입고 왔는데 한 장 정도는 괜찮잖아요.”서윤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눈길을 즐기듯 재킷 앞섶을 매만졌다. 사진 촬영을 맡은 행사 직원이 삼각대를 옮기려 하자 오히려 휴대전화가 떨어질까 봐 손을 뻗었다. 세령은 직원에게 다른 관람객부터 안내해 달라고 하고 서윤 앞에 섰다.“옷은 마음대로 입으세요. 하지만 여긴 제 전시예요. 촬영하려면 정해진 구역을 쓰시고요.”“옷을 벗으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당신 옷장까지 관리할 만큼 한가하지 않거든요.”한쪽 벽에는 세령이 밤을 새워 조정한 조명과 직물 작품이 놓여 있었다. 지난번 향수 때문에 관람을 제한했던 구역도 겨우 복구한 참이었다. 오늘은 작품 설명을 맡은 작가와 협력업체가 모두 모이는 날이었다. 서윤이 원하는 사진을 찍어주느라 입구를 비워두면 예정된 입장 시간이 어긋날 수 있었다. 옷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이 하루를 또 내줄 생각은 없었다. 서윤이 삼각대를 치운 뒤에야 직원들이 멈췄던 입장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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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화. 얼굴만 바꾼 여자

“옷만 베낀 게 아니네요. 사람까지 따라 찍으려는 거예요?”백하진의 말에 촬영 직원의 손이 멈췄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오래전 세령의 사진이 떠 있었다. 크림색 원피스의 소매를 접은 폭과 진주 머리핀의 방향, 어깨를 비스듬히 돌린 각도까지 눈앞의 서윤과 같았다. 바로 옆에 선 유건만 사진에서 빠져 있었다. 관람객 몇 명이 촬영 구역을 지나가다가 발을 늦췄다. 직원이 촬영을 준비하며 화면 위에 맞춰놓은 격자선에는 머리핀 끝과 손목 위치가 딱 들어맞았다. 사진 속 남자의 자리를 비워둔 채 같은 구도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기묘했다. 직원은 부탁받은 대로 카메라를 잡고 있었을 뿐이었다.“그걸 왜 비교하세요?” 서윤이 휴대전화를 낚아채듯 받아 들었다. “그냥 예쁜 자세라 참고한 건데.”하진은 한 발 물러났다. “직원분께 사람까지 따라 찍으라는 요청인지 여쭤본 거예요. 제가 잘못 들은 건가 해서요.”“그런 말 안 했어요. 옷이 마음에 들어서 비슷하게 입었을 뿐이에요.”직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두 손을 모았다. “아까 손님께서 원본이랑 어깨 높이하고 고개 각도를 같게 해달라고 하셨어요. 촬영 전에 화면으로 직접 짚어주셨고요.”서윤은 입술을 달싹였다. 세령은 조금 떨어진 전시벽 앞에서 작품 설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자기 옛 사진이 낯선 사람들의 시선에 올려진 광경보다 먼저 화가 난 것은, 그동안 하지 말라고 했던 일을 서윤이 또 다른 방식으로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식당에서는 자리, 저택에서는 의자와 침실, 이제는 행사장의 촬영 구역이었다. 전시 안내를 받으려던 관람객까지 잠깐 걸음을 멈춰야 했다. 세령은 사람들이 자신과 서윤을 번갈아 볼 때마다 뒤에 전시된 작품들이 배경으로 밀려나는 게 싫었다. 남의 얼굴 하나 따라 하겠다고 찾아온 사람 때문에 정작 오늘 소개할 작가들의 이름은 뒤로 밀리고 있었다.“서윤 씨. 오늘 이 사진을 들고 오신 이유부터 말해요.”“좋아하는 스타일을 참고한 거라니까요. 세령 씨가 입었던 옷은 남들이 못 입어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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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화. 베낀 건 너야

“한세령 씨는 무슨 유행까지 독점하셨어요?”서윤의 고함에 전시장 안내를 받던 관람객들이 일제히 돌아봤다. 세령은 대꾸부터 하지 않았다. 서윤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에는 여전히 4년 전 결혼식 사진이 켜져 있었다. 사진 속 자신과 지금 서윤의 옷깃, 머리핀, 손을 모은 위치가 정확히 겹쳤다. 아무리 비슷한 옷이 유행하더라도 그날의 손동작까지 유행할 수는 없었다.“내 앞에서 다시 말해봐요. 내가 당신더러 그 옷 벗으랬어요, 아니면 내 사진으로 자세까지 맞춰 찍지 말랬어요?”“뭐가 다른데요? 결국 내가 뭘 입든 트집 잡겠다는 거잖아요.”서윤은 일부러 목소리를 더 키웠다. 카메라 앞에 서 있던 촬영 직원이 삼각대를 접으려다 멈췄고, 설명회 진행표를 들고 있던 미래가 입구 쪽 관람객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오늘 작품을 소개받으러 온 손님들이 전처와 새 여자친구의 말싸움까지 구경할 의무는 없었다. 세령은 자신의 등 뒤에 걸린 직물 작품을 한 번 확인했다. 준비 기간 내내 조명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섬유를 골라냈는데, 서윤이 카메라를 고집하는 동안 그 앞을 지나는 동선이 또 막혀 있었다.“옷은 마음대로 입어요. 내 개인 사진을 행사 촬영 지시서로 쓰지 말라는 거죠. 이해하기 그렇게 어려워요?”“세령 씨만 그 색 입을 수 있어요? 머리핀도 똑같은 거 파는데?”그때 하진이 촬영 직원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제가 아까 원본 화면 봤어요. 직원분께 어깨를 사진처럼 돌려달라고 요청하셨죠?”“전 예뻐 보이게 찍어달라고만 했어요.”촬영 직원은 고개를 저었다. “휴대전화로 참고사진 보여주시면서 턱 각도와 손 위치를 같게 맞춰달라고 하셨습니다. 아까 제가 맞는지 재확인했고요.”서윤은 그를 노려봤다. “손님이 원하는 대로 찍어주면 됐지, 왜 남의 말을 옮겨요?”“방금 본인이 그런 말 안 했다고 해서 바로잡은 거예요.” 하진의 말투는 담담했다. “옷이 같은 것과 사진을 재현하라고 주문한 건 다른 일이잖아요.”이도는 곁에 선 하진을 보더니 입술을 비틀었다. “와, 오늘 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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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화. 네 미련을 입었어

“그걸 네 마음대로 결정해?”유건의 얼굴이 굳었다. 서윤은 방금 자신이 내뱉은 말을 거두지 않았다. 한세령의 옷과 표정까지 따라 해야 사랑받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고백. 전시장 한가운데서 터진 그 말은 유건이 숨기고 싶었던 후회까지 구경거리로 만들어버렸다.“그럼 아니라고 해봐요. 세령 씨가 입었던 옷을 내가 입으니까 당신, 아까 한참 쳐다봤잖아요.”“놀라서 본 거야. 네가 왜 그 사람처럼 서 있는지 이해가 안 돼서.”“거짓말. 내가 좋아하는 옷 입었을 땐 그렇게 오래 본 적 없으면서.”유건은 서윤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를 봤다. 화면 속 세령은 지금보다 앳됐고, 사진 한쪽에는 자신이 서 있었다. 결혼식 날 세령이 웃던 표정이 아니라, 그때 그녀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자기 모습이 거슬렸다. 지나간 관계를 돌아보는 건 당연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회를 현재의 연인에게 떠넘길 권리도, 현재의 연인이 전처를 흉내 낼 이유도 될 수 없었다.유건은 예전에 세령이 골라준 넥타이를 매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는 잘 어울리느냐는 물음에도 건성으로 대답했으면서, 이제 남이 따라 입은 원피스 앞에서야 옛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서윤의 말이 잔인하게 들리는 이유는 일부가 사실이어서였다. 그렇다고 그 사실을 핑계로 지금의 여자를 모욕하거나 옛 아내를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내가 세령이한테 잘못한 건 맞아. 그걸 후회해. 그런데 그 후회를 네가 왜 입고 다녀?”“보세요. 결국 그 여자 얘기잖아요!”서윤이 목소리를 높이자 안내대에서 프로그램을 받아 가던 사람들이 돌아봤다. 이도는 그들의 시선을 가리기 위해 관람 동선 쪽으로 몸을 옮겼고, 하진은 전시 해설을 기다리던 손님들에게 작품 소개가 곧 시작된다고 알렸다. 세령은 진행표를 미래에게 넘긴 뒤 두 사람 앞으로 걸어왔다. 구경꾼처럼 서 있을 생각도, 전남편의 고백을 듣느라 자신의 행사를 중단할 생각도 없었다.“둘이 싸울 거면 밖에서 하세요. 여기 전시장이에요.”“세령 씨는 좋겠네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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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선물에 적힌 남자

“좋아, 모두 있는 데서 끝내자.”서윤은 고가 조명 작품의 결제 화면을 열고 배송 담당자에게 말했다. 받는 사람은 한세령, 장소는 그녀의 작업실. 그리고 발신인 명의에는 자신의 이름 대신 ‘문유건’을 적었다. 서윤은 액자도, 옷도 원하는 결과를 주지 못하자 이번에는 남자의 이름을 이용하기로 했다.“카드도 같이 넣을까요?”“넣으세요. 누가 보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요.”직원이 가격이 적힌 주문서를 다시 확인했다. 전시용 조명 한 점을 사기에는 지나치게 큰 금액이었다. 서윤은 영수증만 자기 연락처로 보내달라고 했다. 배송업체는 주문자가 지정한 선물용 발신인 문구를 그대로 인쇄할 뿐이었다. 서윤은 결제 연락처가 남는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받는 사람이 보는 건 송장과 카드뿐이었다. 먼저 소문을 퍼뜨리고 나면 나중에 해명해도 늦는다는 계산이었다. 그녀가 노리는 건 작품이 아니라, 세령의 작업실에 유건의 이름이 걸리는 순간이었다.다음 날 오전, 세령의 작업실은 새 전시 설치를 위한 재료로 가득했다. 긴 작업대 위에는 천 견본과 도면이 겹쳐 있었고, 미래는 벽면 치수를 재느라 바닥에 무릎을 대고 있었다. 세령은 조명 위치를 고치며 손목에 붙은 연필 가루를 털었다. 그때 문 앞에 배송 차량이 멈췄다.“한세령 님 앞으로 특수 배송 왔습니다. 수령 확인 부탁드립니다.”직원 둘이 두꺼운 보호 상자로 감싼 대형 물건을 들여왔다. 상자에는 파손 주의 표시가 여러 장 붙어 있었다. 예약한 재료와 다른 규격에 세령은 작업 도면부터 살폈다. 손수레가 들어오자 직원은 부딪힐까 봐 사다리를 옆으로 밀었다. 누군가의 선물 때문에 세령이 계획한 작업 순서가 틀어지기 시작했다.“저희가 주문한 게 아닌데요?”배송 담당자는 태블릿 화면을 보여줬다. 물품명은 한정 제작 조명 작품, 수령인은 한세령. 발신인란에는 ‘문유건’이 적혀 있었다.미래가 세령의 얼굴을 바라봤다.“유건 씨가 보냈다고요? 혹시 연락받으셨어요?”“아니. 연락도 없었고, 이런 걸 부탁한 적도 없어.”“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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