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모두 있는 데서 끝내자.”서윤은 고가 조명 작품의 결제 화면을 열고 배송 담당자에게 말했다. 받는 사람은 한세령, 장소는 그녀의 작업실. 그리고 발신인 명의에는 자신의 이름 대신 ‘문유건’을 적었다. 서윤은 액자도, 옷도 원하는 결과를 주지 못하자 이번에는 남자의 이름을 이용하기로 했다.“카드도 같이 넣을까요?”“넣으세요. 누가 보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요.”직원이 가격이 적힌 주문서를 다시 확인했다. 전시용 조명 한 점을 사기에는 지나치게 큰 금액이었다. 서윤은 영수증만 자기 연락처로 보내달라고 했다. 배송업체는 주문자가 지정한 선물용 발신인 문구를 그대로 인쇄할 뿐이었다. 서윤은 결제 연락처가 남는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받는 사람이 보는 건 송장과 카드뿐이었다. 먼저 소문을 퍼뜨리고 나면 나중에 해명해도 늦는다는 계산이었다. 그녀가 노리는 건 작품이 아니라, 세령의 작업실에 유건의 이름이 걸리는 순간이었다.다음 날 오전, 세령의 작업실은 새 전시 설치를 위한 재료로 가득했다. 긴 작업대 위에는 천 견본과 도면이 겹쳐 있었고, 미래는 벽면 치수를 재느라 바닥에 무릎을 대고 있었다. 세령은 조명 위치를 고치며 손목에 붙은 연필 가루를 털었다. 그때 문 앞에 배송 차량이 멈췄다.“한세령 님 앞으로 특수 배송 왔습니다. 수령 확인 부탁드립니다.”직원 둘이 두꺼운 보호 상자로 감싼 대형 물건을 들여왔다. 상자에는 파손 주의 표시가 여러 장 붙어 있었다. 예약한 재료와 다른 규격에 세령은 작업 도면부터 살폈다. 손수레가 들어오자 직원은 부딪힐까 봐 사다리를 옆으로 밀었다. 누군가의 선물 때문에 세령이 계획한 작업 순서가 틀어지기 시작했다.“저희가 주문한 게 아닌데요?”배송 담당자는 태블릿 화면을 보여줬다. 물품명은 한정 제작 조명 작품, 수령인은 한세령. 발신인란에는 ‘문유건’이 적혀 있었다.미래가 세령의 얼굴을 바라봤다.“유건 씨가 보냈다고요? 혹시 연락받으셨어요?”“아니. 연락도 없었고, 이런 걸 부탁한 적도 없어.”“그
Last Updated : 2026-10-2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