บททั้งหมดของ 너와 다시 출발선에 섰다: บทที่ 21 - บทที่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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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도와 달라는 말의 무게

대한장애인체육회의 공식 등기 문자가 도착한 이후, 차도현의 하루는 분초 단위로 쪼개졌다.4월 25일 이천선수촌 메디컬 센터에서 열릴 파라 육상 국가대표 선발전 공식 스포츠 등급 분류(Classification) 심사.그 자리에 제출해야 할 의학 서류와 경기 기록지는 수십 장에 달했다.세계 파라 육상(WPA) 규정에 따른 시각장애 등급 기준은 엄격했다.T11 트랙 경기에서는 시각 조건을 맞추기 위한 차광 장비와 가이드 러너가 필요했다. 도현은 경기 규정과 별개로, 자신의 시력 상태가 등급 기준에 해당하는지부터 평가받아야 했다.대학병원 안과의 골드만 시야 검사(Goldmann Perimetry) 판독지, 망막 단층 촬영(OCT) 단면도, 그리고 유전성 망막색소변성증(RP) 확진 유전자 검사 결과서까지.중심 시력까지 손상된 도현에게 흰 종이의 빽빽한 글씨는 형태로 잡히지 않았다. 한 장씩 누구에게 읽어달라고 맡기기 전에, 파일로 받을 수 있는 자료부터 요청했다.하지만 도현은 전생처럼 무력하게 방황하지 않았다.기숙사 방에 틀어박혀 술을 마시며 채아가 모든 서류를 대신 읽어주고 정리해 주기만을 기다리던 나약한 과거는 버렸다.전생에서 채아는 도현의 관공서 양식과 병원 진단서를 대리 작성하느라 밤을 새웠고, 그 탓에 손목 건초염을 달고 살았었다.그 끔찍한 착취를 이번 생에서 반복할 수는 없었다.도현은 태블릿의 고대비 화면 낭독 프로그램(스크린 리더)을 능숙하게 켰다.기계음으로 흘러나오는 서류 항목들을 이어폰으로 들으며, 빠진 서류가 없는지 메모장에 음성 명령으로 꼼꼼히 체크해 나갔다."항목 3번, 최근 6개월 이내 시야각 측정 검사지 첨부 완료. 항목 4번, 안저 촬영 원본 CD 등록 완료."스포츠 등급은 병명 하나나 좁아진 시야만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도현은 교정시력과 시야 검사 자료를 모두 제출해 분류관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안내를 다시 확인했다. 자신이 받을 등급을 서류 단계에서 미리 확정할 수는 없었다.대학병원 안과에서 발급받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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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화. T11 — 새로운 이름표

"너 도현이 전담 매니저로 공식 합류해라. 훈련 일정 챙기고 병원 수발 좀 들어줘. 원정 잡무 맡아주면, 내가 나중에 후원금 들어올 때 용돈 두둑이 챙겨줄 테니까."차진우의 입에서 흘러나온 그 뻔뻔한 제안을 듣는 순간, 채아의 입꼬리에 서늘한 실소가 걸렸다.전생에서 스물한 살의 채아를 7년 동안 옭아맸던 바로 그 악마의 속삭임.선배를 돕는 착한 후배라는 프레임을 씌워 온갖 잡무와 병원 수발을 떠넘기고, 뒤로는 4,800만 원에 달하는 후원금과 활동비를 가로챘던 사기꾼 에이전트.채아의 눈동자가 얼음장처럼 차갑게 식어 들어갔다."진우 오빠."채아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착각이 지나치시네요. 전 차도현 선수의 수발이나 드는 무급 매니저가 아니에요. 서한체대 육상부 100미터 스프린터 윤채아입니다."진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뭐?"채아가 한 걸음 다가서며 차갑게 쏘아붙였다."용돈 몇 푼 쥐여주면 제 청춘과 선수 생명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셨어요? 전 제 100미터 기록을 깨기 위해 트랙을 달리는 선수예요. 남의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제 인생을 낭비할 생각은 1초도 없어요."예상치 못한 단호한 거절에 진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평소 고분고분하던 후배가 서슬 퍼런 눈으로 쏘아붙이자, 진우의 입에서 비열한 인신공격이 터져 나왔다."야, 윤채아. 네가 들어오면 내가 운영하기도 편하고 도현이도 안심하잖아. 선수 생활이 몇 년이나 갈 것 같아? 이런 자리도 줄 때 잡는 거야."채아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오히려 입꼬리를 시원하게 말아 올리며 차갑게 쏘아붙였다."그럼 정식으로 사람을 뽑으세요. 저는 그 자리 필요 없어요. 제 훈련 시간은 제 거예요. 다시 이런 부탁은 하지 마세요."채아는 미련 없이 뒤돌아서서 라커룸 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문이 닫히자 진우의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휴대폰을 꺼냈다가, 지켜보는 후배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라커룸 복도를 지나가던 동기 이진희와 후배들이 걸음을 멈추고 채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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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화. 11.41 — 첫 번째 벽

5월 12일 일요일 오전 8시,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초여름의 싱그러운 아침 햇살이 거대한 스타디움의 붉은 몬도 트랙 위로 눈부시게 쏟아져 내렸다.전국 40여 개 대학에서 선발된 최고 기량의 엘리트 스프린터들이 워밍업 주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공기 중에는 멘톨 파스 냄새와 고무 스파이크 마찰음, 그리고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가 팽팽한 긴장감으로 응축되어 있었다.관중석 상단에는 각 대학 육상부의 대형 현수막들이 나부꼈고, 피니시 라인 주변에는 실업팀 스카우트들과 국가대표 코칭스태프들이 초시계와 비디오카메라를 든 채 매서운 눈빛으로 주로를 주시하고 있었다.제53회 전국 춘계 대학 육상 선수권 대회.채아의 주종목인 여자 대학부 100미터 예선과 400미터 계주 예선이 바로 오늘 열리는 날이었다.그리고 공교롭게도 같은 날 오전 9시, 서한체대 보조 트랙에서는 차도현의 WPA T11 공식 선발전 대비 100미터 2차 실전 평가전이 잡혀 있었다.전생의 스물한 살 채아였다면 주저 없이 잠실행 버스를 포기했을 것이었다.도현이 불안해할까 봐, 눈먼 그가 주로를 이탈해 넘어질까 봐 제 대회는 안중에도 없이 서한체대 트랙에 남아 붉은 테더를 쥐고 발목을 갈아 넣었을 터였다.자신의 선발전 신청서를 마정호와 최수아에게 도둑맞고도, 눈먼 선배를 수발들어야 한다는 죄책감과 동정심에 짓눌려 제 출발선을 스스로 걷어찼던 바보 같은 청춘.출전 명단을 다시 열어보았다. 이번에는 윤채아가 있었다. 채아는 화면을 끄고 휴대폰을 가방 안쪽에 넣었다. 경기장에 도착할 때까지는 더 확인하지 않기로 했다.그리고 전생의 도현 역시 채아의 희생을 당연하게 누리며 그녀의 손목을 놓아주지 않았었다.하지만 오늘 아침, 기숙사 앞 플라타너스 가로수길 아래에서 도현은 채아의 손을 잡는 대신 단단한 보냉병과 정갈한 도시락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보냉병 안에는 얼음이 찰랑이는 전해질 음료가 가득 차 있었고, 도시락통에는 바나나와 탄수화물 에너지 젤이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도현의 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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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마지막 30미터의 대답

11초 41.자신의 공인 최고 기록을 깼음에도 불구하고, 결승선 너머 믹스트존을 빠져나오는 채아의 표정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전광판 맨 꼭대기에 박힌 강하은의 11초 38이라는 숫자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전생의 기억에만 의존하던 안일함이 뒤통수를 후려친 기분이었다.스물한 살의 봄, 강하은은 대학 입학 직후 과도한 동계 훈련으로 햄스트링이 파열되어 1년을 통째로 쉬었었다.하지만 이번 생의 강하은은 부상 없이 출전했다. 채아가 아는 건 그 사실뿐이었다. 준비 과정이 무엇 때문에 달라졌는지는 강하은에게 듣지 않고서는 알 수 없었다.‘내 기억과 달라. 그때 없던 상대라고 해서 이번에도 없을 줄 알았어.’채아는 주먹을 꽉 쥐었다.그때, 쿨다운 주로를 지나가던 강하은이 채아를 흘깃 바라보며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선배님, 스타트는 진짜 빠르시네요. 그런데 후반 30미터에서 피치가 좀 죽으시는 것 같아요."도발이라기보다는 오만한 천재의 건조한 관찰에 가까웠다.강하은은 가볍게 목례를 하더니 대기실 쪽으로 유유히 걸어갔다.믹스트존을 빠져나오는 길목에서 스포츠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가 강하은을 향해 쏟아졌다."강하은 선수! 예선 11초 38, 대학부 데뷔전부터 대회 신기록에 근접했습니다! 결승 전략은 무엇입니까?""예선은 몸 풀기였습니다. 결승에서는 11초 2대까지 당겨서 대회 신기록을 깨겠습니다."당돌하고 자신만만한 신예의 인터뷰가 장내 스피커를 통해 복도에 쩌렁쩌렁 울렸다.채아는 입술을 깨물며 대기실 문을 열었다.자존심이 날카롭게 긁혀 나갔지만, 채아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곧장 벤치에 앉았다.선수 대기실 구석 벤치.채아는 태블릿을 켜고 서민경 코치 대행이 실시간으로 전송해 준 예선 1조의 초고속 카메라 분석 영상을 재생했다.240프레임 슬로모션 화면 속에서 두 사람의 주법 차이가 극명하게 갈렸다.서 코치 대행에게 받은 태블릿에는 구간별 최고 시속 데이터가 정밀하게 찍혀 있었다.강하은의 60~80미터 구간 시속은 무려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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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화. 11.28 — 내 이름의 금메달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 몬도 트랙 4레인.출발 신호를 알리는 전자 부저음이 거대한 스타디움의 정적을 날카롭게 깨뜨렸다."여자 대학부 100미터 결승, 각 레인 선수 제자리에."장내 심판의 엄숙한 구령과 함께 채아는 스타팅 블록에 천천히 양발을 얹었다.오른쪽 5레인에는 174센티미터의 압도적인 피지컬을 자랑하는 한국체대의 괴물 신예 강하은이 서 있었다.준결승 기록은 강하은 11초 34, 윤채아 11초 35.단 0.01초 차이로 갈린 두 여왕의 물러설 수 없는 진검승부였다.주변의 2레인, 3레인, 6레인에도 각 대학을 대표하는 4학년 엘리트 스프린터들이 포진해 있었지만, 경기장의 모든 공기는 4레인과 5레인 사이로 팽팽하게 집중되어 있었다.관중석 상단에는 서한체대와 한국체대의 대형 응원 현수막이 맞닿아 펄럭였고, 피니시 라인 부근에는 실업팀 스카우트들과 국가대표 코칭스태프들이 일제히 초시계와 비디오카메라를 쥐고 숨을 죽였다.결승선 주변에는 각 대학의 응원단이 북을 두드리며 함성을 질렀고, 결승 주로의 붉은 몬도 우레탄은 한낮의 열기로 달아올라 있었다.심판들이 전광판의 풍속계를 최종 점검했다.[Wind: +0.8m/s (공인 유효 풍속)]완벽한 조건이었다. 바람조차 두 사람의 진검승부를 축복하고 있었다.채아는 스타팅 블록의 페달을 발뒤꿈치로 툭툭 치며 미세한 각도를 맞췄다.0.01초로 승패가 갈리는 단거리의 세계였다. 채아는 블록을 조금 옮겨 발바닥이 페달에 닿는 위치부터 다시 확인했다.스타디움 위로 쏟아지는 5월의 햇살은 눈이 시리도록 뜨거웠다.저 멀리 관중석 맨 앞자리 난간에 선글라스를 낀 차도현이 서 있었다.그의 곁에는 가이드 러너 한태준이 함께 서서 트랙의 4레인을 묵묵히 응시하고 있었다.도현은 장내 방송을 놓치지 않으려 귀를 기울였다. 태준이 채아가 블록을 맞추고 있다고 짧게 설명해주었다.채아는 결승선 너머의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깊게 심호흡을 했다.남의 어둠을 대신 짊어지느라 제 출발선을 도둑맞았던 전생의 비극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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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테더 없는 토요일

춘계 대회가 끝난 첫 번째 토요일 오후 2시, 혜화동 대학로 거리.초여름의 싱그러운 녹음이 마로니에 공원의 붉은 벽돌길 위로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주말을 맞은 인파로 북적이는 마로니에 공원 앞 시계탑 벤치에 차도현이 단정한 린넨 셔츠와 슬랙스 차림으로 앉아 있었다.늘 땀에 젖은 트레이닝복만 입던 도현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눈부시게 단정한 청년의 실루엣이었다.도현은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 스마트폰의 보행 경로를 안내하는 음성 지도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혜화역 2번 출구 엘리베이터 위치, 점자 블록 동선, 그리고 사전에 예약해 둔 레스토랑의 계단 턱 높이까지.도현은 시각 장애 판정을 받은 이후 처음으로 혼자 대중교통을 타고 이곳까지 이동해 왔다.이틀 동안 경로를 확인했고, 역에서는 엘리베이터 방향을 직원에게 물었다. 도착한 뒤에도 긴장이 남아 셔츠 소매를 두 번이나 접었다 폈다. 채아가 오기 전에는 진정하고 싶었다."차도현 선배!"맑고 경쾌한 목소리와 함께 가벼운 발소리가 다가왔다.도현이 고개를 들자 은은한 비누 향기가 바람을 타고 번졌다.채아는 하늘색 반팔 셔츠 원피스를 입고 밝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스파이크와 운동복을 벗어던진 채아의 모습은 트랙 위의 매서운 야수가 아니라, 영락없이 화사한 스물한 살의 여대생이었다.도현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번졌다."일찍 왔네, 채아야.""선배 사복 입은 거 처음 봐요. 맨날 땀복만 보다가 셔츠 입으니까 육상 선수가 아니라 잡지 모델 같네요."채아가 장난스럽게 웃자 도현이 쑥스러운 듯 귓바퀴를 붉혔다."네 목소리도 오늘은 좀 다르다. 훈련할 때처럼 재촉 안 하네."두 사람은 사전에 예약해 둔 조용한 골목 안쪽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향했다.채아는 도현의 팔을 억지로 붙잡거나 과도하게 이끌지 않았다.도현이 하얀 케인과 발끝 감각으로 차분하게 턱을 넘을 수 있도록, 그저 반 보 옆에서 나란히 걸음을 맞출 뿐이었다.레스토랑 안에는 은은한 재즈 음악이 흐르고 있었고, 창밖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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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화. 한 장의 사진, 두 개의 거짓말

월요일 아침, 서한체육대학교 캠퍼스는 이른 시간부터 벌집을 쑤셔놓은 듯 발칵 뒤집혀 있었다.본관 앞을 오가는 학생들과 운동부 선수들이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번졌다. 체육관 입구에 들어서는 채아의 등 뒤로 따가운 시선들이 꽂혀 내렸다.포털 사이트 스포츠 연예 섹션 1위에 굵고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박혀 있었다.[단독] '육상 국가대표' 차도현, 희귀 실명 질환으로 은퇴 위기?[충격] 망막색소변성증 판정 숨기고 활동…… 후배 육상 선수와의 은밀한 데이트 포착!기사 하단에는 지난 주말 대학가 골목길에서 사복 차림으로 손을 잡고 걷고 있던 도현과 채아의 사진이 모자이크도 없이 적나라하게 박혀 있었다.'서한체대 육상부 간판스타 차도현(22)이 중심 시력을 상실해 가는 유전성 망막 질환을 앓고 있으며, 최근 비밀리에 시각장애 스포츠 등급을 신청한 것으로 확인되었다.''한 체육계 관계자에 따르면, 차도현은 최근 춘계 대회에서 우승한 단거리 유망주 윤채아(21)와 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훈련 지원과 개인 비서 명목으로 거액의 금전이 오간 정황이 포착되었다고 전했다.'기사를 읽어 내리는 채아의 눈동자가 차갑게 얼어붙었다.'체육계 관계자…… 차진우.'도현의 사촌 에이전트 차진우가 위탁 계약 해지 통보에 앙심을 품고 악의적으로 언론에 정보를 유출한 것이 분명했다.도현의 병명을 숨겨 후원금을 횡령하려다 실패하자, 도현의 시각장애를 자극적인 가십거리로 팔아넘겨 파멸시키려는 추악한 발악이었다."채아야, 이거 봤어?"기숙사 로비로 달려온 동기 이진희가 사색이 된 얼굴로 스마트폰을 내밀었다."아침부터 포털에 기사 도배되고 에브리타임이랑 육상 커뮤니티 난리 났어. 마정호 감독님이 너랑 도현 선배 지금 당장 감독실로 오라고 소집 통보했어.""알고 있어, 진희야."채아는 깊은 숨을 들이마시며 가방을 고쳐 멨다.전생의 채아였다면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공포에 질려 눈물을 흘리며 "선배를 지켜야 해, 내가 다 뒤집어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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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화. 누구의 계좌인가

체육지원처 대회의실의 블라인드 틈새로 정오의 따가운 햇살이 비쳐 들었다.본관 정문 앞에는 아침 일찍부터 몰려든 취재진과 방송 카메라 플래시가 번뜩이고 있었다.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을 뒤덮은 악의적인 찌라시 기사 때문이었다.[단독] 차도현의 눈먼 사랑? 후배 Y선수, 수천만 원 훈련비 요구 의혹…… 지인 메신저 대화 폭로캠퍼스 안은 수군거림과 호기심 어린 시선들로 들끓었다.전생이었다면 채아는 머릿속이 새하얘진 채 방 안에 틀어박혀 울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선배 곁에 있어서 선배를 망치는 걸까'라는 자책감에 질식하며, 세상의 비난을 홀로 뒤집어썼을 터였다.하지만 지금의 채아는 달랐다.서민경 코치의 안내를 받으며 회의실로 향하는 채아의 걸음걸이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훈련 일지와 통장 사본, 경찰청 접수증을 단단히 챙겨 든 손끝이 서늘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지금 여기서 답할 필요는 없어. 질문은 모아서 받고, 확인한 내용만 얘기하자. 힘들면 내가 옆에서 끊어줄 테니까.""네, 코치님. 준비 다 끝냈어요."채아는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출발선을 지키기 위해선 어떤 진흙탕 싸움도 피하지 않을 각오였다.회의실 원목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차도현의 메인 후원사인 대기업 스포츠 브랜드 '아펙스 코리아' 마케팅 총괄팀장과 사내 법무팀 변호사 두 명이 굳은 표정으로 마주 앉아 있었다.테이블 위에는 사촌 에이전트 차진우가 후원사에 긴급 제출했다는 40페이지짜리 정산 감사 보고서가 놓여 있었다.'선수의 심신미약 상태를 악용한 후배 선수의 부당한 금전 편취 및 계약 위반 정황 보고.'보고서 표지에 박힌 자극적인 문구를 전해 들은 도현의 턱선이 서늘하게 굳어졌다.아펙스 마케팅팀장이 헛기침을 하며 서류철을 톡톡 두드렸다."차도현 선수. 우리 브랜드는 지난 3년간 차 선수의 성실함과 투지를 믿고 매년 수억 원대의 훈련비와 전용 장비를 전폭적으로 지원해 왔습니다. 그런데 시각 질환을 숨긴 것도 모자라, 후배 선수에게 거액의 훈련 지원금을 빼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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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화. 마이크는 선수의 손에

화요일 오전 9시 50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대기실.두꺼운 방음문 너머로 수백 명의 취재진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방송사 중계 카메라의 삼각대가 바닥을 긁는 소리와 플래시 충전음이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거울 앞에 선 차도현은 단정한 검은색 수트의 옷깃을 조용히 바로잡았다.눈을 가린 짙은 선글라스 너머로 미세하게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주먹을 쥔 손가락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곁에 서 있던 가이드 러너 한태준이 도현의 넓은 어깨를 툭 쳤다."긴장하지 마, 도현아. 네가 트랙에서 흘린 땀은 우리가 알잖아. 내가 옆에 있을 테니까, 준비한 얘기부터 차근차근 해."도현의 법률 대리인인 강 변호사 역시 두꺼운 서류철을 갈무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 차진우 씨의 사설 대포폰 가상 계정 생성 IP와 계좌 추적 영장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아펙스 코리아 측에서도 법무팀 명의의 공식 지지 성명서를 회견에 맞춰 전달해 왔습니다. 완벽하게 준비되었습니다."도현이 깊게 숨을 들이켰다."가자."오전 10시 정각, 대기실 문이 열리고 도현이 회견장 단상 위로 성큼성큼 걸어 올라왔다.수십 대의 방송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번뜩이는 백색광 속에서도 도현은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마이크 앞에 섰다.웅성거리던 장내가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가라앉았다.도현이 마이크를 향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안녕하십니까. 단거리 육상 선수 차도현입니다."낮고 차분한 중저음이 스피커를 타고 회견장 구석구석으로 번져 나갔다."최근 언론에 보도된 저의 건강 상태와 사적인 논란에 대해, 당사자인 제가 직접 진실을 밝히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제 몸의 상태와 선수로서의 진로는 그 누구의 왜곡된 대변이 아닌, 오직 저 자신의 목소리로 밝히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도현은 단상 스크린에 한국대학병원의 의학 진단서를 띄웠다."저는 망막색소변성증을 앓고 있습니다. 주변 시야뿐 아니라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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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노을 아래 남겨둔 말

며칠 뒤, 서울 수서경찰서 경제범죄수사팀 앞.검은 마스크를 푹 눌러쓴 차진우가 수사관들의 손에 이끌려 호송차로 향하고 있었다. 횡령 및 업무상 배임, 정보통신망법상 허위사실 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신청된 사전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전격 발부된 것이었다.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가운데, 진우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도망치듯 얼굴을 가렸다.도현의 망막 질환을 약점 잡아 치료비를 가로채고, 조작된 대포폰 가짜 메신저로 채아를 파멸시키려 했던 파렴치한 사기꾼의 말로는 비참했다. 대학 커뮤니티 에브리타임과 포털 뉴스에는 채아를 향한 비난 대신, 사기꾼 에이전트의 구속 소식과 함께 두 선수를 향한 응원의 글들이 줄을 이었다.동시에 서한체육대학교 총장 직속 감사실에서도 단호한 처분이 내려졌다. 마정호 감독은 감사실 회의실 책상 앞에 불려 가 서늘한 처분 통지서를 받아 들었다."마정호 감독. 최수아 선수의 스파이크 훼손 사건을 무마하려 한 직권남용과, 차진우의 허위 언론 플레이를 알고도 묵인·방조한 사실이 특별 감사를 통해 모두 확인되었습니다. 징계위원회 결정에 따라 감봉 3개월 및 육상부 선수 지도 및 엔트리 전결권을 전면 박탈합니다."감사실장의 냉정한 선고에 마 감독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더 이상 항변할 명분은 없었다.체육관 로비 게시판에는 윤채아 선수의 명예 회복과 차도현 선수의 T11 국가대표 도전을 전폭 지지한다는 학교 본부의 공식 공고문이 내걸렸다.선수 지도와 출전 결재는 서민경 코치에게 일원화되었다. 채아는 게시된 공고를 사진으로 남겼다. 누가 책임지고 답해야 하는지, 이번에는 이름이 분명하게 적혀 있었다.***도현은 강 변호사의 법률 사무소에서 새로운 표준 선수 매니지먼트 계약서에 자필 서명을 남겼다.과거 사촌 진우에게 백지위임했던 계약의 효력과 대리권은 정리되었다. 원본은 이후 책임을 묻는 데 필요해 법률 사무소에 보관했다.새 계약서는 결정권과 대리 업무의 범위를 나눠 적었다. 도현은 항목을 읽어주는 음성을 멈추고, 본인 확인 없이 바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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