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 53분이었어."내가 말했다. 아주 낮게. 서아의 머리 너머로.해인이 나를 보았다. 가로등 불빛에 반쯤 보이는 얼굴로."어린이집 앞. 서아가 유리에 손바닥 붙이고 들어간 다음. 골목 나와서 세 걸음, 네 걸음. 머릿속에서 쿵 소리가 났어. 천둥 같은. 그리고 무서웠어. 이유 없이. 뒤에 뭐가 있는 것 같아서.""……""돌아봤어."창밖에서 눈이 내렸다. 가로등 아래로."아무도 없었어. 원장 선생님도, 아이들도, 길에 있던 사람들도. 비둘기가 공중에 멈춰 있었어. 누가 떨어뜨린 커피가 쏟아지다가 굳어 있었어. 소리가 없었어. 내 숨소리 말고는."해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아의 이마에 얹은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세상이 멈춰 있었어. 8시 53분에. 나만 빼고."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몰랐다.해인이 말했다. 하나도 빼지 말고. 그런데 사 년은 하나도 빼지 않고 말하기엔 너무 길었다. 천오백 날. 그 하루하루를 다 말하면, 서아가 깨고, 해가 뜨고, 다시 질 것이다.그래서 순서대로 했다. 품질관리팀 이 대리가 불량 보고서를 쓰듯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집에 갔다고 했다. 도어락이 안 열려서 비상키로. 식탁에 식빵 봉지가 그대로 있었다고. 서아 식판에 밥풀이.해인의 손가락이 조금 움직였다.벽에 금을 그었다고 했다. 거실 벽. 서아 키 눈금 옆에. 곰돌이 머리 위에. 잠을 한 번 자면 하루라고 정하고."……곰돌이 머리 위에."해인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거실 벽에 그 곰돌이 스티커가 있었다. 서아 돌 때 해인이 붙인."응. 거기. 금 하나, 둘. 처음엔 셌어.""몇 개까지.""집 벽엔 육십 몇 개. 그다음엔 도서관 벽에
Last Updated : 2026-10-2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