جميع فصول : الفصل -الفصل 50

83 فصول

41화. 무엄하다

세 번째는 스무 날 뒤였다.그동안 나는 연습했다. 우스운 일이었지만, 했다. 로비 한가운데 서서, 아무도 없는 서가를 향해.천천히 걷기. 뒷짐 진 사람의 속도로. 한 걸음, 멈추고, 한 걸음.처음엔 어색했다. 뒷짐을 지니 어깨가 뒤로 젖혀졌다. 걸음이 저절로 느려졌다. 몸이 조금 무거워졌다. 무거운 걸음은 넘어지지 않았다.소리 내지 않기. 달려들지 않기.로비 바닥에 떨어진 것들부터 치웠다. 발에 걸릴 만한 것은 전부 서가에 꽂았다. 넘어졌던 자리는 두 번 쓸었다. 로비에서 열람실로 올라가는 계단도 한 칸씩 살폈다.그리고 말하기. 무슨 말을 할지. 이 년 넘게 혼잣말만 했다. 사람에게 건넬 말을 잊었다. 나는 첫마디를 수십 번 고쳤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우진이라고 합니다. 여기 머무는 사람입니다. 말씀 좀 여쭤도 될까요.입으로 연습했다. 수십 번. 로비 소파 앞에서, 식은 찻잔 앞에서.혼잣말과는 달랐다. 혼잣말은 대답을 기다리지 않는다. 이건 대답을 기다리는 말이었다. 말을 하고 나서 입을 다물고 기다리는 시간까지 연습했다. 그 사이에 상대가 무어라 할지는 몰라서, 그 자리는 비워 두었다.스무 날째 아침. 나는 열람실 창가 자리에 있었다. 해인이 앉던 자리. 로비에 너무 오래 있어서, 그날은 강가 씨의 노트를 들고 잠깐 올라왔다.창가 자리는 여전히 네모난 빛 아래 있었다. 해인은 여기서 책을 읽다가 재미있는 대목이 나오면 손가락으로 줄을 짚고 나를 불렀다. 우진 씨, 이거 봐. 나는 그 목소리를 아직 가지고 있었다.그리고 들렸다."……계십니까."같은 목소리였다. 낮고, 조금 쉰.가까웠다. 이번엔 아래층이 아니었다. 이 층이었다. 열람실 어딘가.나는 노트를 덮었다. 천천히. 의자를 밀었다. 소리 나지 않게. 일어섰다.노트 표지의 가죽이 손바닥에 달라붙었다. 땀 때문이었다. 나는 노트를 책상 가운데로 조금 밀어 두었다. 떨어지지 않게.서가 사이를 걸었다. 연습한 대로. 한 걸음, 멈추고, 한 걸음. 숨을 고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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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예

그 사람은 열람실 긴 책상 앞 의자에 앉았다.내가 매일 앉던 의자였다. 나는 그 의자를 빼 드렸다. 두 손으로. 등받이를 잡고 조금 뒤로 당겨서, 앉기 편하게. 해인의 아버지께 처음 인사드리러 갔던 날 그렇게 했다. 상견례 자리에서.그 사람은 앉으며 곤룡포 자락을 한 손으로 정리했다. 뒷짐을 풀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얹었다. 책상 위에 한문 고전 번역본을 내려놓았다.비단 자락이 의자 다리를 스치며 사르륵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열람실 안에 잠깐 머물렀다. 나는 그 소리가 다 가라앉을 때까지 숨을 참았다.나는 맞은편에 앉지 않았다. 서 있었다. 한 걸음 떨어져서. 눈은 가슴께에."앉거라.""……예."나는 맞은편 의자를 조금 비스듬히 빼서, 정면을 피해 앉았다. 등을 곧게 폈다. 손을 무릎에 얹었다. 그 사람처럼.등받이에 등을 대지 않았다. 신입 때 부장님 앞에서 그렇게 앉았다. 상견례 자리에서도. 허리가 곧 뻐근해졌다. 뻐근한 것이 이상하게 편했다. 몸이 할 일을 아는 것 같아서.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그 사람은 책상 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늘어놓은 것들. 검은 노트 기록 4. 강가 씨의 가죽 노트. 옥편, 산스크리트 입문, 일본어 교재, 수학 교과서. 볼펜 여러 자루와 지우개 가루. 창에서 떨어지는 네모난 빛.나는 갑자기 그 책상이 부끄러웠다. 지우개 가루를 치우지 않았다. 볼펜 뚜껑 하나가 굴러다녔다. 손을 뻗어 치우고 싶었다. 참았다. 그 사람이 보는 중이었다.그리고 필사 씨의 노트. 실로 묶은.실이 누렇게 바랜 노트였다. 내가 이 년 동안 가장 많이 펼친 노트. 모서리가 내 손때로 거뭇해져 있었다.그 사람의 손이 필사 씨의 노트 위에서 멈췄다. 만지지는 않았다. 손을 그 위에 가만히 대고 있다가, 거두었다."이 글은 네 것이 아니구나.""예. 저보다 먼저 이곳에 머물렀던 분의 것입니다. 이름은 모릅니다. 제가 필사 씨라고 부릅니다.""필사라."그 사람이 그 말을 한 번 굴려 보았다. 붓 필, 베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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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소리를 담는 그릇

다시 오마, 는 한 달 뒤였다.그 한 달 동안 나는 준비했다. 이번엔 연습이 아니라 준비를.로비의 찻잔. 첫날 그 사람이 남기고 간 흰 사기 찻잔. 식은 차가 그대로 담겨 있던. 나는 그 찻잔을 조심스럽게 씻었다. 내 손에 들어오는 순간 내 것이 될까 봐 망설였다. 그래도 씻었다. 다시 오시면 새 차를 드려야 하니까.찻잔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물을 흘려 씻자 식은 차가 빠져나가며 연한 풀 냄새가 잠깐 올라왔다. 오래 거기 담겨 있던 차였다. 나는 마른 수건으로 찻잔 안쪽을 두 번 닦았다. 굽 밑까지.도서관 지하 식당 찬장에서 녹차 티백을 찾았다. 편의점에서 가져온 생수를 냄비에 끓였다. 물을 조금 식혀서, 찻잔에 붓고, 티백을 담갔다. 연습 삼아. 연한 녹색이 우러났다. 그 사람의 것과 비슷한 색.처음 우린 차는 너무 썼다. 물이 뜨거웠다. 두 번째는 너무 싱거웠다. 티백을 금방 건졌다. 세 번째에야 색이 비슷해졌다. 해인은 녹차를 팔팔 끓는 물에 우리면 안 된다고 했었다. 나는 그 말을 이제야 써먹었다.그리고 나는 서아의 기록을 다시 펼쳤다.백오십 쪽. 그 뒤로 더 적어서 이백 쪽이 넘었다. 서아의 모든 것을 글자로. 소리 없이.종이를 넘기면 볼펜 자국이 뒷장까지 도드라져 있었다. 처음 적을 때 얼마나 세게 눌러 썼는지. 손끝으로 쓸면 글자가 만져졌다.그 사람이 말한 것. 소리를 그대로 담을 그릇.나는 서아의 말을 적을 때 늘 이렇게 썼다. "찍." "냥이 출근." "엄마 빠이." 표준어로, 반듯하게. 서아가 한 말의 뜻을 적었다. 그런데 서아가 낸 소리는 적지 않았다.서아는 "찍"이라고 하지 않았다. 입술을 쭉 내밀고 "찌익"에 가깝게, 끝을 올려서. 그걸 나는 기억했다. 소리는 잃었지만, 입 모양과 길이와 올라가는 끝은 기억했다. 글자로 적어 두었으니까.찍찍이를 붙일 때마다 서아는 내 손을 내려다보며 그 소리를 냈다. 소리가 나기도 전에 입술부터 내밀었다. 그 입술이 먼저 떠올랐다. 소리는 떠오르지 않았다.그렇다면 그 기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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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다시 오마

그 사람은 그 뒤로 네 번 더 왔다.한 달에 한 번쯤. 어떤 때는 보름 만에, 어떤 때는 두 달 만에. 오실 때마다 "계십니까" 하고 부르셨다. 나는 그 목소리를 들으면 하던 일을 내려놓고, 천천히 걸어가서, 허리를 숙였다.나는 날을 세지 않게 되었다. 그 사람이 언제 오실지 셈하지 않았다. 셈하면 기다리게 되고, 기다리면 하루가 길어졌다. 대신 아침마다 차를 우렸다.차를 우려 드렸다. 늘 맛이 없다고 하셨다. 늘 따뜻하다고 하셨다.나는 그 두 마디를 기다리게 되었다. 맛은 없구나. 그래도 따뜻하다. 그 말을 들으면, 이번에도 오셨구나 싶었다.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까지 매번 같았다.머무시는 시간은 매번 달랐다. 차 한 잔을 마실 동안일 때도 있었고, 한나절일 때도 있었다. 오래 머무신 날은 그 사람의 표정이 — 내 눈은 여전히 얼굴까지 올라가지 못했지만 — 목소리가 달랐다. 무언가를 오래 붙잡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그런 날에는 서가에서 국어학 책을 뽑아 오래 읽으셨다. 훈민정음 해설서를. 자신이 아직 다 만들지 않은 글자의 해설서를.나는 그걸 곁에서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그 사람이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일정하지 않았다. 몇 장을 빠르게 넘기다가, 한 쪽에서 오래 멈추셨다. 손가락으로 한 글자를 따라 허공에 획을 그어 보셨다. 가로, 세로, 점. 나는 숨을 죽이고 그 손끝을 보았다.그 사람은 해설서를 읽다가 가끔 소리를 내어 웃으셨다. 한 번은 해례본 풀이의 한 대목을 짚으며 말씀하셨다."뒷날 사람들은 과인이 이리 깊이 생각한 줄 아는구나.""아니었습니까.""아니었다. 밤마다 막혔다. 그러다 여기 오면 조금 풀렸다. 그뿐이다."그리고 해설서를 덮으셨다. 조금 쑥스러운 목소리로.나는 웃음을 참았다.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들킬까 봐 고개를 더 숙였다. 그 쑥스러운 목소리가, 해인이 자기가 만든 음식을 칭찬받았을 때의 목소리와 조금 닮아 있었다.나는 그 말을 듣고 오래 생각했다. 위대한 일은 밤마다 막히는 일이었다. 막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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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석판

그 사람이 오지 않게 된 뒤로, 나는 녹차를 계속 우렸다.누구를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 아침이 그렇게 시작되는 게 좋았다. 물을 끓이고, 조금 식히고, 티백을 담그고, 연한 녹색이 번지는 걸 보는 것. 점검표 일곱 칸 앞에 한 칸이 더 생긴 셈이었다. 적지는 않았다. 몸이 먼저 했다.그리고 그 사람이 한 말을 생각했다. 다른 이들도 들를 것이다. 과인만 지나가는 것이 아니니.그 말은 맞았다.다섯 달째 되던 어느 오후였다. 나는 열람실 창가 자리에서 수론 입문 책을 붙들고 있었다. 일 년 넘게 붙든 책이었다. 여백의 연필 수식은 이제 절반쯤 읽혔다. 8을 쪼개면 스물두 가지. 9는 서른. 10은 마흔둘. 손으로 셌다. 틀리고, 다시 세고.그러다 소리를 들었다.딸깍.작고 단단한 소리였다. 돌이 돌에 닿는 소리. 아니, 조금 달랐다. 돌 위에 무언가를 긋는 소리. 딸깍, 스윽. 딸깍, 스윽.열람실 안쪽이었다. 화이트보드가 있는 벽 쪽.나는 책을 덮었다. 천천히. 의자를 뒤로 밀었다. 소리 나지 않게. 일어섰다.뛰지 않았다. 그 사람에게 배운 대로. 한 걸음, 멈추고, 한 걸음.화이트보드 앞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바닥에. 책상다리를 하고. 등을 조금 구부린 채로.흰 옷이었다. 헐렁한 흰 천을 몸에 두르고, 그 위에 짙은 색 윗옷을 걸쳤다. 머리에는 흰 천을 둥글게 감아 쓴 것 같았다. 맨발이었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아 있었다.그 사람의 무릎 위에 검은 판이 하나 놓여 있었다. 책 한 권 크기의. 테두리가 나무로 된. 석판이었다. 옛날 초등학교 교실 사진에서나 본. 분필 대신 뾰족한 돌 조각 같은 걸로 쓰는.딸깍, 스윽.그 사람은 석판에 뭔가를 쓰고 있었다. 빠르게. 쓰다가 멈추고, 팔꿈치를 석판에 대고 문질러 지웠다. 흰 옷의 팔꿈치가 회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다시 썼다.나는 두 걸음 떨어진 곳에서 멈췄다.허리를 숙였다. 깊이. 눈은 그 사람의 손께에 두었다."처음 뵙겠습니다."영어로 말했다. 이 년 넘게 혼자 배운 영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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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유배

세 번째 손님은 편지를 쓰고 있었다.S.R.이 다녀가고 두 달쯤 지난 날이었다. 나는 2층 어문 자료실에서 한문 공부를 하다가, 옆 서가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를 들었다. 사락. 내 손 밑의 종이가 아니었다.이제는 놀라지 않았다. 아니, 놀랐다. 심장은 여전히 크게 뛰었다. 다만 몸이 먼저 달려 나가지 않았다. 나는 붓펜을 내려놓고, 숨을 한 번 고르고, 일어섰다.옆 서가는 농업과 의학 책이 꽂힌 곳이었다. 그 서가 끝의 작은 열람 책상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옅은 쪽빛 도포였다. 오래 입어 색이 빠진. 소맷부리가 해져 실밥이 나와 있었다. 머리엔 검은 갓. 갓끈이 턱 아래 단정히 매여 있었다. 세종의 옷처럼 빛나는 데가 하나도 없었다. 선비의 옷이었다. 그것도 가난한.그 사람은 책상에 종이를 펴고 쓰고 있었다. 붓이 아니라, 도서관 볼펜으로. 볼펜을 붓처럼 곧게 세워 쥐고. 글씨가 빽빽했다. 한 장을 채우고, 옆에 놓고, 새 장을 폈다. 옆에는 농업 책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비료와 거름에 관한.볼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났다. 빠르고 고르게. 망설이는 데가 없었다.나는 서가 끝에서 허리를 숙였다."처음 뵙겠습니다. 이우진이라고 합니다. 이곳에 머무는 사람입니다."볼펜이 멈췄다.그 사람이 몸을 조금 돌렸다. 나는 눈을 그 사람의 손께에 두었다. 손이 거칠었다. 선비의 손 같지 않았다. 흙이 묻었던 자국이 손톱 끝에 옅게 남아 있었다."머무는 이라."목소리가 맑았다. 세종보다 가볍고 빨랐다. 말끝이 조금 들려서, 무엇이든 궁금해하는 사람 같았다."그 말을 들은 적이 있소. 여러 해 전 이곳에 들렀을 때, 관아 서고의 선비가 그리 말하더이다. 자기는 머무는 이라고."필사 씨."그분은 떠나셨습니다.""그런가."그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볼펜을 내려놓고,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았다."그 선비는 나를 보고 반가워하더니, 곧 슬퍼하였소. 내가 지나가는 이라는 걸 알고. 나도 처지가 딱하여 오래 말을 나누지 못했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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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매미 소리

이 세상에는 매미가 없다.삼 년 가까이 여름을 났다. 창밖의 빛은 늘 같은 아침 빛이었지만, 내 몸은 계절을 셌다. 저쪽 세상에서 여름이 왔을 날들. 에어컨 대신 바닥에 누워 땀을 식히던 날들. 그런데 매미 소리는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가로수의 매미들은 8시 53분에 멈춰 있었다. 날개를 반쯤 편 채로. 울음의 한가운데에서.그래서 나는 그 소리가 무슨 소리인지 한참 몰랐다.맴— 맴—아니, 그런 소리가 아니었다. 사람의 목소리였다. 낮게, 입 안에서 굴리는.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しずかさや……しずかさや……"고요함이여…… 고요함이여……3층 열람실 창가였다. 해인이 앉던 자리. 그 자리 옆, 벽에 붙은 내 하이쿠와 벚꽃 그림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검은 옷이었다. 승복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소매가 짧고 헐렁한. 허리에 끈을 동여맸다. 머리는 짧게 밀었다. 등에 작은 보따리. 한 손에 대나무 지팡이. 발에는 짚신. 짚신 끝이 해지고 흙이 말라붙어 있었다. 먼 길을 걸어온 발이었다.그 사람은 벽의 벚꽃 그림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쓴 엉망인 하이쿠를.이 년이 지나도 / 같은 아침 같은 빛 / 나는 다르다.한글로 쓴. 그 옆에 일본어로 옮겨 적은. 문법이 틀린.나는 서가 끝에 섰다. 허리를 숙였다.일본어를 골랐다. 벚꽃 씨의 노트로 배운 일본어. 삼 년 가까이 입 밖에 낸 적이 거의 없는."はじめまして。イ・ウジンと申します。ここに……とどまる者です。"처음 뵙겠습니다. 이우진이라고 합니다. 이곳에 머무는 자입니다.그 사람이 돌아섰다. 나는 눈을 그 사람의 지팡이 손잡이께에 두었다. 대나무 마디가 손때에 반들반들했다."とどまる者。"머무는 자.목소리가 가늘고 맑았다. 조금 쉬어 있었다. 먼 길에서 먼지를 마신 목.나는 벚꽃 씨의 노트를 떠올렸다. 삐뚤빼뚤 옮겨 적으며 외운 문장들. 그걸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들려준 참이었다. 발음이 맞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사람이 알아들었다는 것만 알았다.그 사람이 벽을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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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오만한 학자

네 사람을 만나고 나서, 나는 조금 들떠 있었다.인정한다. 그때는 몰랐지만.세종, S.R., 귀양 간 선비, 짚신을 신은 사람. 넷 모두 내게 말을 걸어 주었다. 내가 예를 갖추자 받아 주었다. 내가 배운 말로 인사하자 알아들어 주었다. 내 서툰 하이쿠를 보고 거짓이 없다고 했고, 내 점검표의 한 줄을 아들들에게 보낼 편지에 넣겠다고 했다.삼 년 넘게 혼자였던 사람에게 그건 너무 큰 것이었다.나는 밤마다 검은 노트를 넘기며 그 날들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제법 괜찮은 사람이 되었구나. 말을 여러 개 하고, 수를 알고, 예를 알고. 다음 사람도 나를 반가워하겠지.그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그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다.다음 사람은 반가워하지 않았다.열람실 창가 긴 책상이었다. 내가 매일 수학을 하는 자리. 거기 누군가 앉아 있었다. 내 수학 교과서를 펼쳐 놓고.짙은 회색의 두꺼운 외투였다. 목까지 단추를 채운. 흰 칼라가 목을 감쌌다.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왔다. 손에는 깃펜을 쥐었다. 깃털이 달린 펜. 그리고 작은 잉크병을 책상 위에 놓고.그 사람은 내 교과서를 넘기고 있었다. 빠르게. 미분 단원. 적분 단원. 한 쪽을 넘길 때마다 손가락이 종이를 거칠게 튕겼다.나는 서가 끝에서 허리를 숙였다."Good afternoon. My name is Lee Woojin. I am the one who stays here."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이우진입니다. 이곳에 머무는 사람입니다.)그 사람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교과서만 넘겼다.나는 조금 기다렸다. 그리고 한 걸음 다가갔다.교과서의 펼쳐진 쪽이 보였다. 적분 기호. 그리고 그 옆에, 교과서 여백에, 내가 연필로 적어 둔 공식. 이 년 전 이 책으로 미분을 처음 배울 때, 머리에 넣으려고 적은. 뉴턴의 운동 법칙. F = ma.그 사람의 깃펜이 그 줄 위에서 멈췄다.그리고 나는, 가슴이 뛰는 대로, 말해 버렸다."That's yours, isn't it? S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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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물시계

그 사람은 도서관 지하 기계실에 있었다.나는 그 문을 삼 년 넘게 한 번도 열지 않았다. 열 이유가 없었다. 보일러, 배전반, 환기 설비. 전부 멈춘 것들이었다. 이 세상에서 전기로 도는 것은 아무것도 돌지 않았다.그날 지하 식당에서 녹차 티백을 꺼내다가, 복도 끝에서 쇠붙이 소리를 들었다.탁. 탁. 끼익.철문이었다. 기계실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내가 연 적이 없는.나는 티백을 주머니에 넣고 걸어갔다. 천천히. 문 앞에서 멈추고,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지 않고, 먼저 말했다."계십니까."세종이 늘 그렇게 부르셨다. 나는 삼 년 만에 처음으로 그 말을 남에게 했다.안에서 쇠붙이 소리가 멈췄다."……예, 예. 있소이다."목소리가 황급했다. 조금 낮고, 조금 떨리는. 뭔가를 하다 들킨 사람 같았다.나는 문을 조금 더 열고 들어섰다. 허리를 숙였다."놀라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이우진이라고 합니다. 이곳에 머무는 사람입니다."기계실은 어두웠다. 비상등 몇 개가 켜진 채로 멈춰 있었다. 그 푸르스름한 빛 속에 한 사람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보일러 옆, 커다란 배관 밸브 앞에.무명옷이었다.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붙이고. 허리춤에 가죽 주머니를 찼다. 주머니에서 끌과 작은 망치 자루가 삐져나와 있었다. 머리는 상투를 틀고 수건을 동여맸다. 갓을 쓰지 않았다.그 사람은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나보다 더 깊이."아이고, 쇤네가 무례를… 주인 계신 집인 줄 모르고."쇤네.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멍해졌다. 역사 드라마에서 종이나 머슴이 쓰던 말."아닙니다. 여기 주인은 없습니다. 저도 머물기만 할 뿐이에요. 편히 계세요."그 사람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의 걷어붙인 팔을 보았다. 팔뚝에 오래된 화상 자국이 여러 개였다. 쇠를 달구는 일을 하는 사람의 팔."무엇을 보고 계셨어요?"그 사람이 머뭇거리다가 밸브를 가리켰다."이것이… 물이 지나는 길을 여닫는 것이지요? 손잡이를 돌리면 안에 있는 마개가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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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흐르는 물

항아리는 도서관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전통 그릇 가게에서 구했다.옹기였다. 크기가 다른 것 넷. 가장 큰 것은 내 허리께까지 왔다. 가게 앞 수레에 싣고 멈춘 거리를 끌고 왔다. 멈춘 버스 옆을, 멈춘 사람이 없는 횡단보도를. 수레 바퀴 소리가 몇 걸음 앞에서 삼켜졌다.관은 철물점에서 구했다. 구리관. 손으로 휘어지는 굵기. 송곳, 줄, 쇠톱, 손으로 돌리는 드릴, 버니어 캘리퍼스. 캘리퍼스를 손에 쥐었을 때 나는 조금 웃었다. 삼 년 만이었다. 영점을 맞추고, 눈금을 읽었다. 손이 기억하고 있었다.그리고 만들기 시작했다.처음 한 달은 틀리는 달이었다.옹기에 구멍을 뚫다가 둘을 깼다. 금이 가면서 조각이 공중에 멈췄다. 내 손이 쥐고 있던 드릴만 떨어졌다. 다시 가게에 가서 새 옹기를 가져왔다. 가게 계산대에 메모를 남겼다. 옹기 여섯 개 가져갑니다. 둘은 깼습니다. 죄송합니다. 이우진.구멍을 뚫는 법을 새로 익혔다. 물을 조금씩 적셔 가며, 드릴을 천천히, 힘을 빼고. 도자기 공예 책을 빌려 와 읽었다. 도서관에는 없는 게 없었다.두 번째 달은 맞추는 달이었다.쇠를 다루는 그 사람의 그림을 베낀 검은 노트를 열람실 긴 책상에 펴 두고, 치수 하나하나를 캘리퍼스로 확인했다. 맨 위 항아리의 구멍은 지름 3밀리미터. 두 번째 항아리는 2.5. 세 번째는 2. 물이 층층이 내려오며 떨어지는 속도가 점점 고르게 되도록. 그 사람이 말했다. 물이 너무 빨리 떨어지면 잣대가 춤을 춥니다.구리관을 잘라 이음매를 줄로 갈았다. 관과 관이 맞닿는 면이 거울처럼 매끈해질 때까지. 맞닿은 틈으로 빛이 새지 않을 때까지. 품질관리팀에서 배관 부품을 검사하던 눈으로. 불합격, 다시. 불합격, 다시.맨 아래 긴 통은 굵은 대나무를 구했다. 꽃집 앞에 장식으로 세워 둔. 속을 파내고, 안을 사포로 갈았다. 잣대는 얇은 나무 막대. 아래에 코르크를 달아 물에 뜨게. 막대에 눈금을 새겼다. 커터칼로, 1센티미터마다. 하나하나 캘리퍼스로 재서.그리고 로비에 세웠다.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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