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가 연필을 내려놓자 윤슬은 공책 아래에 깔린 가족 그림을 빼냈다. 종이 귀퉁이에 파란색이 조금 묻어 있었다. 엄지로 문질렀지만 지워지지 않았다.“엄마, 귀 빨간 거 봤어?”“봤어.”“두 개 다 빨개.”우주는 공책을 들어 보여 주고는 하품했다. 윤슬은 연필을 크레파스 통 옆에 놓았다.“이제 자자.”“그림은?”“여기 둘게.”가족 그림은 공책 밑에 넣지 않았다. 식탁 끝에 따로 놓고 우주의 손을 잡았다. 아이는 방에 들어가면서도 고개를 돌려 종이를 보았다.윤슬은 우주를 눕힌 뒤 식탁으로 돌아왔다. 공책을 덮고 크레파스 뚜껑을 닫았다. 가족 그림을 어디에 둘지 잠깐 망설이다가 냉장고 옆에 붙였다.오른쪽 빈자리까지 종이가 반듯하게 펴졌다.▷3월 17일 화요일 아침, 윤슬은 세탁을 마친 앞치마를 바구니에서 꺼냈다.우주가 전날 그림을 그리며 묻힌 초록색 자국이 주머니 밑에 남아 있었다. 물을 묻혀 문질렀을 때는 옅어지는 듯했는데, 빨고 나니 오히려 더 또렷해 보였다.“엄마, 없어졌어?”우주가 베란다 문턱에 발을 걸치고 물었다.“조금 남았네.”“내가 그린 거니까 놔둬.”“앞치마에 그리는 거 아니야.”“종이가 작았어.”윤슬은 남색 천을 펼쳤다. 목에 거는 끈은 우주에게 맞게 짧게 묶여 있었고, 허리 끈은 몇 번을 둘러도 남았다. 주머니 한쪽에는 오래전에 실밥을 덧댄 자리가 있었다.우주는 젖은 앞치마 밑으로 손을 내밀었다.“오늘 못 입어?”“저녁이면 마를 거야.”“그럼 오늘 그림은 저녁에 그려.”“어린이집에서도 그리잖아.”“이거 입으면 안 묻어.”윤슬은 앞치마를 빨랫줄에 걸고 양쪽 어깨에 집게를 꽂았다. 천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바구니 안으로 들어갔다. 우주는 손바닥에 떨어진 한 방울을 바지에 닦았다.“그림은 안 묻고 물은 묻네.”“손 닦고 가방 가져와.”우주가 방으로 달려갔다. 윤슬은 앞치마 주머니를 한 번 펴 주었다. 젖은 천이 손가락에 붙었다가 떨어졌다.바구니를 정리하고 나오니 우주가 파란 운동화를 신은 채 기
Última actualización : 2026-10-18 Leer má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