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윤슬은 공책이 접히지 않도록 가방 안쪽에 넣었다. 우주는 지퍼를 끝까지 올린 뒤 큰 거울을 한 번 더 보았다.
“내 머리도 똑같아?”
“누구랑.”
“사진.”
윤슬은 아이의 점퍼 깃을 펴 주었다.
“너는 네 머리지.”
우주는 정수리를 만져 보고 문 앞으로 갔다. 윤슬이 불을 끄자 거울도 어두워졌다. 모서리 뒤에 꽂힌 사진은 밖에서 보이지 않았다.
“엄마, 빨리.”
윤슬은 가방을 들고 아이 곁으로 갔다. 문을 잠그는 동안 우주는 발끝으로 바닥의 작은 돌을 밀었다. 골목 맞은편에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윤슬은 열쇠를 가방 깊숙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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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8일 토요일, 마지막 파마 손님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목은 괜찮으세요?”
“네. 오늘은 우주가 조용하네.”
“그림 그리느라 그래요.”
윤슬은 샴푸대 물을 손등에 받아 온도를 맞췄다. 구석 책상에서 우주가 종이를 뒤집었다. 조금 전까지 파란색으로 칠하던 면이 바닥 쪽으로 갔다.
“엄마, 다 했어.”
“조금만 기다려. 머리 헹구고.”
“다리도 기다려?”
우주는 의자 아래로 발을 내밀었다. 파란 운동화 앞코가 번갈아 들렸다 내려갔다.
손님이 웃자 윤슬도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다리도.”
물을 끄고 수건으로 머리를 감싼 뒤 손님을 거울 앞으로 모셨다. 우주는 그동안 종이 가장자리를 한 번 더 칠했다. 윤슬은 머리의 물기를 닦다가 유리문 너머로 철구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철구는 식당 앞을 쓸고 있었다. 빗자루를 벽에 세운 뒤 골목 가장자리에 있던 축구공을 발 안쪽으로 굴렸다.
우주의 운동화가 멈췄다.
“엄마.”
“봤어.”
“조금만.”
윤슬은 손목시계를 보고 맞은편을 살폈다. 저녁 손님이 오기 전이라 골목은 한산했다.
“문 앞에서 기다려. 엄마가 볼 때 건너.”
우주는 가방 옆의 점퍼를 가져왔다. 팔을 넣고 지퍼까지 혼자 올린 다음 문 안에 섰다. 윤슬이 문을 열어 주자 철구가 고개를 들었다.
“철구 씨, 잠깐 같이 있어 줄 수 있어요?”
“네. 저도 곧 들어가야 해서요.”
“차 오면 바로 들어오고.”
우주는 양쪽을 보고 길을 건넜다. 철구가 공을 발밑에 세워 놓고 기다렸다. 윤슬은 문을 닫은 뒤 손님의 머리를 말리면서 거울로 골목을 보았다.
우주는 공부터 차지 않고 운동화 끈을 내려다봤다. 철구가 무릎을 굽혀 풀린 매듭을 묶어 주었다. 끈 끝이 길게 남자 한 번 더 접어 묶었다.
“엄마, 두 번 했어!”
문이 닫혀 목소리가 조금 작게 들렸다. 윤슬은 거울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공은 두 사람 사이를 짧게 오갔다. 철구는 세게 차지 않고 발바닥으로 멈췄다가 밀어 주었다. 우주는 공이 올 때마다 두 발을 벌리고 기다렸다. 막상 발끝에 닿으면 공보다 몸이 먼저 흔들렸다.
손님이 거울 속 골목을 보며 말했다.
“같이 놀아 주는 사람이 생겼네.”
윤슬은 말없이 머리끝을 빗었다. 마른 곳과 아직 젖은 곳을 손가락으로 나누고 바람을 한 번 더 보냈다.
그때 우주가 공을 조금 세게 찼다.
공은 철구 옆을 지나 모과나무 밑동에 부딪쳤다. 방향이 바뀌면서 식당 유리문 쪽으로 굴렀다. 우주가 쫓아가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
이든이 한 발을 내밀었다. 운동화 밑창 아래에서 공이 멈췄다.
“셰프님 골키퍼!”
철구의 목소리에 손님까지 웃었다.
우주는 문 앞에 서서 이든의 발을 들여다봤다.
“손 안 써?”
이든이 고개를 숙여 무슨 말을 했다. 윤슬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우주는 곧 두 팔을 벌리고 철구 앞에 섰다.
이든이 공을 철구 쪽으로 밀어 준 뒤 유리문을 닫았다. 우주가 벌린 팔이 축 처졌다가 다시 올라갔다. 윤슬은 그 모습을 보며 손님의 머리끝을 손바닥 위에 받쳤다.
“이쪽은 이렇게 넘기시면 돼요.”
손님이 고개를 좌우로 돌려 확인했다. 윤슬은 목덜미에 남은 물기를 닦고 덮개를 풀었다.
계산을 마친 손님이 나가자 우주는 공을 안고 문 앞까지 따라왔다.
“엄마, 나 한 번 막았어.”
“봤어.”
“발로.”
“공은 형한테 주고 와.”
우주는 철구에게 공을 돌려주었다. 철구가 손을 털며 식당으로 들어가자 아이도 미용실 문을 열었다. 운동화 끈은 여전히 단단히 묶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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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이 수건을 모으는 동안 우주는 책상에 앉아 그림일기 공책을 꺼냈다.
종이 위에 둥근 공을 그리다가 지우개를 찾았다. 책상 아래까지 들여다봤지만 없었다. 윤슬은 바닥을 쓸며 의자 다리 뒤에 떨어진 지우개를 주웠다.
“발 밑에 있었어.”
“나 밟았어?”
“아니. 의자가 밟았네.”
우주는 지우개에 난 눌린 자국을 손톱으로 만졌다.
“의자는 무거워.”
“그러니까 물건은 책상 위에 둬.”
윤슬이 쓰레받기를 비우고 돌아왔을 때 우주는 유리문 앞에 서 있었다. 맞은편 카운터에서 이든이 손을 들어 아이를 불렀다.
윤슬은 문을 조금 열었다.
“왜?”
이든이 작은 쟁반을 가리켰다.
“수프. 가져가.”
“나 아직 정리 중이야.”
“우주 줘도 돼?”
우주가 윤슬을 올려다봤다. 윤슬은 식당까지의 빈 길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뜨거우면 들지 말고.”
“응.”
아이는 길을 건너 유리문을 밀었다. 윤슬은 미용실 문을 잡은 채 맞은편을 보았다.
열린 부엌에서 이든이 냄비를 저었다. 국자가 바닥을 느리게 돌고, 뚜껑을 열어 놓은 자리로 김이 올랐다. 버터와 익은 양파 냄새가 골목을 넘어왔다.
이든은 그릇을 채운 뒤 넓은 뚜껑을 덮었다. 그 아래 접시를 받치고 작은 쟁반 가운데 놓았다. 우주가 손을 뻗자 쟁반 양쪽을 짚어 보였다.
아이는 두 손으로 잡았다. 이든이 한쪽 모서리를 놓지 않고 아이가 제대로 들었는지 살폈다.
철구가 유리문을 열어 주었다. 우주가 문턱을 넘자 곁에서 함께 길을 건넜다. 윤슬은 아이가 미용실 안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쟁반 아래로 손을 넣었다.
“아저씨가 엄마 거래.”
“무겁지 않았어?”
“조금. 배가 무거워.”
우주는 둥근 그릇을 내려다봤다. 철구가 웃으며 식당으로 돌아갔다.
윤슬은 쟁반을 빈 의자 옆 선반에 놓았다. 뚜껑 가장자리를 들자 김이 손등 가까이 올라왔다. 우주가 코를 가까이 대려 해서 그릇을 조금 뒤로 옮겼다.
“뜨거워.”
“엄마가 불어.”
윤슬은 뚜껑을 뒤집어 놓았다. 짙은 빛의 수프 위에 잘 익은 양파가 조금 보였다. 숟가락은 작은 천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7년 전, 이든이 처음 양파 수프를 내주던 날에도 천 위에 숟가락이 있었다.
“아직 내 가게도 아닌데.”
이든은 작은 냄비를 식탁 끝에 내려놓고 윤슬 앞에 그릇을 밀었다.
윤슬은 한 숟가락을 먹고 뜨거운 입을 손으로 가렸다.
“네 가게 열면 첫 접시는 내가 먹는다.”
“알았어.”
이든은 빈 그릇을 치우지 않고 윤슬이 다시 숟가락을 들 때까지 기다렸다.
“엄마, 안 먹어?”
우주의 손이 윤슬의 옷자락에 닿았다.
윤슬은 숟가락을 집었다. 수프를 조금 떠서 입에 넣자 아이가 턱을 들어 얼굴을 살폈다.
“뜨거워?”
“응.”
“내가 들었는데.”
“쟁반은 덜 뜨겁지.”
우주는 자기 손바닥을 펴 보았다. 윤슬은 한 숟가락을 더 떠서 천천히 불었다. 남은 수프를 다시 덮으려는데 아이가 책상을 가리켰다.
“거기서 먹어. 내가 옆으로 갈게.”
우주 자리에는 크레파스가 늘어서 있었다. 아이는 공책을 가방 위로 옮기고 크레파스도 한쪽에 모았다. 윤슬은 쟁반을 작은 책상에 놓았다.
우주는 의자를 내주고 옆에 서 있었다.
“너는 앉아.”
“엄마 앉아. 엄마 거잖아.”
윤슬은 아이의 작은 의자에 앉았다. 무릎이 책상 아래에 다 들어가지 않아 몸을 조금 비켜야 했다. 우주는 그게 우스운지 입을 벌리고 웃었다.
“엄마 다리가 남아.”
“책상이 작아서 그래.”
“내 다리는 다 들어가.”
우주가 옆에서 무릎을 굽혀 보여 주었다. 윤슬은 아이가 책상 모서리에 부딪치지 않도록 팔을 뻗었다. 우주는 손에 닿기 전에 몸을 세웠다.
“안 박았어.”
“알아.”
윤슬은 수프를 끝까지 먹었다. 숟가락으로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나자 우주가 맞은편을 돌아봤다.
“아저씨한테 다 먹었다고 해?”
“엄마가 그릇 줄 때 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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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슬은 그릇을 깨끗이 씻었다. 뚜껑과 받침 접시도 물기를 닦아 쟁반에 올렸다.
우주는 자기 자리에서 크레파스를 넣었다. 파란색만 길이가 짧아 상자 안에서 돌아다녔다. 아이는 빈칸에 지우개를 넣어 막은 뒤 뚜껑을 닫았다.
“엄마, 이렇게 하면 안 굴러.”
“잘했네. 공책도 넣어.”
윤슬은 쟁반을 들고 뒷문으로 갔다. 문 옆에 잠깐 놓아 두고 빨래 바구니를 안으로 들일 생각이었다.
문을 열자 이든이 골목을 돌아오는 중이었다. 식당 앞에서부터 왔는지 빈손이었다. 윤슬이 쟁반을 내밀었다.
“다 먹었어.”
이든은 그릇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씻었네.”
“얼마야.”
“안 받아.”
윤슬은 쟁반을 거두지 않았다.
“계속 이러면 안 먹어.”
이든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골목 쪽으로 몸을 조금 비켜 서더니 천천히 말했다.
“알았어. 다음부터 받을게.”
“오늘 것도.”
“그럼 7,000원.”
윤슬은 가위집 옆의 주머니를 짚었다. 지갑은 안쪽 선반에 있었다. 쟁반부터 건네려고 두 손으로 바로 잡았다.
이든이 받침 아래로 손을 넣었다.
그릇이 한쪽으로 기울어 윤슬이 모서리를 붙들었다. 그 손끝에 이든의 손가락이 닿았다. 둘 다 쟁반을 놓지 않았다.
윤슬은 먼저 손을 뗐다.
이든이 쟁반을 자기 쪽으로 당겼다. 숟가락이 접시에 부딪쳐 작은 소리를 냈다. 윤슬은 손바닥을 옷 옆선에 한 번 문지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 돌아왔을 때도 이든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윤슬은 쟁반의 마른 귀퉁이에 돈을 놓았다.
이든이 접시를 조금 옮겨 돈이 미끄러지지 않게 눌렀다. 그 손을 보다가 윤슬은 뒷문 손잡이를 잡았다.
“나 닫아야 해.”
“응.”
이든은 문이 움직일 만큼 물러났다. 윤슬은 쟁반을 든 손이 문에 닿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닫았다.
우주가 가방을 멘 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 다 먹었다고 했어?”
“했어.”
“아저씨가 뭐래?”
윤슬은 잠깐 문손잡이를 내려다봤다.
“그릇 씻었네, 그러더라.”
우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밥 말고 그릇을 봤네.”
윤슬은 가위집을 풀어 선반에 놓았다. 작은 손목시계 아래로 물기가 조금 남아 있었다. 수건으로 닦고 가방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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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하자 우주는 운동화부터 벗었다. 두 번 묶인 끈이 잘 풀리지 않아 윤슬이 무릎을 굽혔다.
“철구이 형이 꽉 했어.”
“안 풀리라고.”
“지금은 풀려야 돼.”
윤슬은 매듭 하나를 당겨 느슨하게 만들었다. 우주가 나머지를 풀고 신발을 나란히 놓았다.
“엄마, 배고파.”
“손 씻고 와. 금방 할게.”
윤슬은 점퍼를 벗어 걸고 부엌으로 갔다. 우주가 먹을 양파 수프를 데우려고 냄비를 꺼냈다. 남은 양파를 도마 위에 올리고 겉껍질을 벗겼다.
칼끝이 양파를 반으로 갈랐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났다. 우주가 비누를 놓쳤는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한 번 들렸다. 윤슬은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양파를 내려다봤다.
얇게 썬 조각이 도마에 눕고, 그다음 조각이 칼 옆에 붙었다.
눈앞이 잠깐 흐려졌다. 윤슬은 칼을 내려놓았다. 손목 안쪽으로 눈 밑을 눌렀지만 물기가 턱 가까이까지 내려왔다.
양파를 썰던 손을 씻고 수건을 집었다. 얼굴을 짧게 눌러 닦은 다음 냄비를 불 위에 올렸다.
우주가 젖은 손을 들고 부엌 입구에 섰다.
“엄마가 울었어?”
윤슬은 아이 얼굴을 보았다.
“아니야, 양파야.”
우주는 도마 위의 양파를 내려다봤다.
“얘가?”
“응.”
“눈에 들어갔어?”
“손부터 닦자.”
윤슬은 마른 수건을 아이에게 건넸다. 우주는 손가락 사이까지 문지르고 다시 도마를 보았다.
“작게 잘라. 눈에 못 들어가게.”
윤슬은 입술을 조금 다물었다가 풀었다.
“앉아 있어. 곧 줄게.”
우주가 식탁 의자에 올라갔다. 윤슬은 냄비에 양파를 넣고 나무 주걱으로 저었다. 아이는 더 묻지 않고 물컵을 자기 앞으로 당겼다.
수프를 먹는 동안 우주는 골키퍼 이야기를 했다. 철구가 찬 공은 막았는데 자기가 찬 공은 나무가 막았다고 했다.
“나무도 골키퍼야.”
윤슬은 아이의 그릇을 조금 안쪽으로 밀어 주었다.
“그럼 다음엔 나무 없는 쪽에서 해.”
“왜?”
“공이 어디로 갈지 모르니까.”
우주는 숟가락을 멈추고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는 안 비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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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잠든 뒤 윤슬은 식탁에 남은 컵을 치웠다.
방문은 조금 열어 두었다. 이불 밖으로 나온 아이의 발을 덮어 주고 나와 부엌 불만 켰다. 도마는 씻어 세워 놓았고 양파 껍질도 버렸다.
윤슬은 벽에 걸린 달력을 한 장 넘겼다.
4월 25일에 어린이집 봄 소풍 안내를 적어 두었다. 가방에서 펜을 꺼내 그 날짜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선이 끊긴 자리를 다시 이어 둥글게 닫았다.
‘그 전에 말하자. 저 사람이 남을 사람인지 보고.’
펜 뚜껑을 닫고도 달력 앞에 조금 더 서 있었다. 그러다 미용실 예약 장부를 꺼냈다. 다음 토요일 예약 옆에 우주 머리를 깎을 자리를 비워 두었다.
식탁 위에는 아이가 저녁에 쓴 공책이 펼쳐져 있었다. 둥근 양파 옆에 파란색 눈물이 그려져 있었다. 윤슬은 종이 끝을 눌러 편 뒤 마지막 줄을 읽었다.
『엄마가 양파 때문에 울었다. 그럼 양파를 안 먹으면 된다.』
(6화 끝)
우주는 사진이 없는 장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여기는 나중에 넣어?”“응. 또 찍으면.”“나 안 잘 때 찍어.”윤슬은 아이 손 밑에서 투명한 주머니를 펴 주었다. 우주는 빈 칸을 하나씩 짚다가 앨범을 덮었다. 아침을 먹으러 가면서도 의자는 식탁 끝에 그대로 두었다.윤슬은 의자를 안으로 밀려다 멈췄다. 두 사람이 앉아 쓰던 식탁에는 의자가 하나 더 있었다. 우주 가방을 놓거나 빨래를 잠깐 걸쳐 두던 자리였다.의자에 걸린 수건만 걷어 빨래 바구니에 넣었다.▷4월 25일 토요일 아침, 우주는 미용실 거울 앞에서 모자를 고쳐 썼다.파란 챙을 눈썹까지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윤슬이 가방에 물병을 넣는 동안에도 고개를 옆으로 돌려 보았다.“엄마, 나 안 보여?”“다 보여.”“눈은?”“챙 때문에 조금.”우주는 모자를 뒤로 돌려 썼다. 거울 속에서 눈이 다 보이자 입을 벌리고 웃었다.윤슬은 예약 장부를 다시 확인했다. 오전 예약 두 칸 사이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마지막 손님의 파마가 끝나는 시간을 손목시계로 세어 본 뒤 장부를 덮었다.“엄마는 조금 늦게 가. 아저씨랑 먼저 가 있어.”“얼마나?”“점심 먹기 전에는 갈 거야.”“그럼 빵 남길게.”“네 것은 다 먹어.”“엄마는?”“엄마 것도 있어.”말을 마치자 유리문 밖으로 이든이 보였다. 앞치마 대신 얇
우주는 유리문을 놓고도 한 번 더 뒤를 돌아봤다. 이든이 다시 칼을 든 것을 보고서야 윤슬 옆으로 붙었다.“엄마, 아저씨는 맨날 저기서 자?”“가게 뒤에 방이 있어.”“빵 옆에서?”“빵은 부엌에 있고.”우주는 가방 끈을 끌어 올렸다. 윤슬은 아이 어깨에서 뒤집힌 끈을 펴 주고 빌라 쪽으로 걸었다. 우주는 모과나무를 지날 때까지 식당 창을 두 번 더 봤다.▷4월 18일 토요일, 윤슬은 마지막 손님의 목에 붙은 머리카락을 털었다.거울 아래에는 우주가 그린 종이가 놓여 있었다. 파란 지붕 밑에 네모난 창이 세 개였다. 실제 집에는 없는 큰 창도 하나 그려져 있었다.“이건 어디야?”손님이 나간 뒤 윤슬이 물었다.“우리 집.”“창이 이렇게 많아?”“내 방에 하나 더.”“왜?”“아저씨네 보게.”윤슬은 빗에 낀 머리카락을 빼다가 손을 멈췄다. 빌라에서는 맞은편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우주는 그걸 모르지 않으면서 창을 하나 더 그렸다.“집에서는 잘 자면 돼.”“나 잘 자.”“아침에는 누가 깨워도 눈 안 뜨잖아.”“눈도 자는 거야.”윤슬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우주는 대답을 잘했다고 여겼는지 종이 아래에 자기 이름을 크게 썼다.미용실 바닥을 쓸고 수건을 세탁 바구니에 담았을 때, 맞은편에서 철구가 손을 흔들었다. 우주가 문 앞으로 달려갔다가 윤슬을 돌아봤다.
윤슬은 대답 대신 빵이 든 통을 우주 쪽으로 밀었다. 우주는 수프를 한 숟가락 떠서 불고, 윤슬 앞에도 빵 한 조각을 놓았다.“엄마도 먹어.”“먹고 있어.”“더.”윤슬은 아이가 놓아 준 빵을 집었다. 예약 장부 옆 영수증이 열린 문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뒤집혔다. 윤슬은 빈 통으로 한쪽 끝을 눌러 두었다.▷토요일 예약 장부에는 빈 줄이 거의 없었다.윤슬은 손님 머리에 파마 약을 바르고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샴푸대에는 씻어야 할 수건이 쌓여 있었고, 다음 손님은 창가 의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4월 11일. 장부 위에 적힌 날짜 옆으로 하원 시간이 작게 쓰여 있었다.탁 할머니는 아침에 허리가 뻐근하다며 오늘은 계단을 덜 오르겠다고 했다. 윤슬은 우주를 데려다주고 돌아올 시간을 비워 두었지만, 앞 손님의 염색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많이 남았어요?”거울 속 손님이 물었다.“조금만 더요. 안쪽부터 확인할게요.”윤슬은 머리카락 한 가닥을 풀어 보았다. 시간을 줄이려고 서두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다시 말아 고정하고 손을 씻었다.맞은편 유리문 너머로 철구가 빈 접시를 들고 움직였다. 이든은 카운터 끝에 놓인 주문서를 보고 있었다.윤슬은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아직 번호를 묻지 않았다.기다리는 손님에게 잠깐 양해를 구하고 문을 열었다. 골목으로 나오자 이든이 고개를 들었다. 윤슬은 건너지 않고 손으로 오라고 했다.이든은 철구에게 짧게 말을 건넨 뒤 가게 밖으로 나왔다.“무슨 일 있어?”윤슬은 앞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오늘 하원만.”이든이 미용실 안을 한 번 보았다. 창가 손님이 잡지를 넘겼고, 파마 기계의 짧은 소리가 문밖까지 들렸다.“할게.”“4시 반. 모과 어린이집.”“알아. 길은 우주가 알려 줬어.”“선생님한테는 내가 전화할게. 네가 간다고.”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윤슬은 가위집에서 빠져나온 빗을 안으로 밀었다. 부탁은 끝났는데 손이 다른 일을 찾았다.“바쁘면 말해. 내가 손님한테 양해 구하고 가면 돼
윤슬은 받은 빗을 선반 위에 놓았다. 빗살이 아래로 가게 놓았다가 다시 뒤집었다.맞은편 의자에 앉은 이든은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평소 손님을 앉히던 자리였다. 윤슬은 의자 높이를 낮추는 발판을 밟으려다 발을 거뒀다.“불편하면 뒤로 조금 밀어.”“괜찮아.”이든의 무릎과 윤슬의 무릎 사이에 바닥 타일의 줄이 놓여 있었다. 윤슬은 그 줄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뭐부터 듣고 싶어?”이든이 입을 열기까지 조금 걸렸다.“언제 알았어.”“네가 떠나고, 다음 달.”윤슬은 귀 뒤로 넘긴 앞머리를 다시 눌렀다.“1월 둘째 주였어. 8주라고 하더라.”이든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움직였다. 날짜를 세지는 않았다. 바지에 생긴 주름을 펴다가 손을 멈췄다.“혼자 갔어?”“응.”“그때도 혼자 살았잖아.”“살고 있었지.”윤슬은 의자 끝에 놓인 수건을 집었다. 손님 목에 둘렀다가 세탁하려고 빼 두었다. 접힌 자리가 어긋나 있어 모서리를 맞췄다.“전화할까 했어. 병원 나와서.”이든이 윤슬을 보았다.“안 했어.”“왜.”“말하면 돌아올 거잖아.”윤슬은 수건을 무릎에 내려놓았다.“연수고 뭐고, 다 두고 올 사람이었으니까.”이든은 대답하지 않았다. 의자 팔걸이를 잡았던 손이 천천히 풀렸다.“안 왔을 거라고는 못 하겠어.”“알아.”“그래도 알았어야 했어.”윤슬은 수건 모서리에서 손을 뗐다.“응. 그건 알아.”더 보탤 말은 없었다.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놓고 소식을 전하면, 이든은 돌아올 테니까. 그걸 알고도 말하지 않은 것은 윤슬이었다.“우리 붙잡지 않기로 했잖아. 연락도 하지 않기로.”“했지.”“3년 뒤 겨울에 둘 다 혼자면 다시 보기로 했고.”이든의 시선이 선반 위 빗에 잠깐 머물렀다.“그때 말하려고 했어. 네가 돌아오면.”윤슬은 무릎 위 수건을 한 번 더 접었다. 더 작게 접을 필요는 없었는데 손이 멈추지 않았다.“그때는 우주도 같이 데리고 나갈 수 있겠다 싶었어.”“골목에 왔어?”“세 번.”짧게 답하자
우주가 골목 끝에서 한 번 더 손을 당겼다.“엄마, 여기 밝은 데.”빌라 입구의 등이 켜져 있었다. 아이는 불빛 아래로 먼저 발을 넣고 새로 짧아진 머리를 만졌다. 윤슬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현관에서 신발을 벗은 우주가 양손을 폈다.“아저씨는 뭘 기다려?”윤슬은 아이 점퍼의 지퍼를 내려 주었다.“언제?”“아까. 가게 앞에서.”점퍼 안쪽에 머리카락 하나가 남아 있었다. 윤슬은 손톱으로 집어 떼고 옷을 걸었다.“가게 문 닫고 있었겠지.”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고 욕실로 들어가 발판을 당겼다. 물 흐르는 소리가 난 뒤에도 윤슬은 현관에 서 있었다.가방 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선우가 보내 준 사진이 화면에 남아 있었다. 머리가 똑같아진 두 아이가 나란히 웃고 있었다.윤슬은 화면을 끄고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다.▷4월 8일 수요일 아침, 우주는 빌라 계단을 내려오며 가방 끈을 고쳐 멨다.“엄마, 이쪽.”아이가 모과나무 쪽으로 발을 돌렸다. 윤슬은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골목 바깥쪽을 가리켰다.“오늘은 저쪽으로 가자.”“또?”우주가 멈춰 섰다.그 길로 가면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접시 하나 앞을 지나게 됐다. 유리문 안에서 빵을 자르는 손이나 카운터를 닦는 이든의 등을 볼 수 있었다. 윤슬은 요 며칠 골목 어귀를 돌아서 다녔다.“여기도 길 있잖아.”“아저씨 집 앞에도 있어.”“알아.”“엄마는 왜 저 집 앞만 돌아가?”윤슬은 아이 가방에서 한쪽으로 기운 물통을 바로 넣었다. 뚜껑이 잘 잠겼는지 확인하고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엄마가 생각할 게 있어서.”우주가 윤슬의 얼굴을 올려다봤다.“걸으면서?”“응.”“그럼 천천히 가.”아이는 먼저 달려가지 않았다. 윤슬 옆에 붙어 작은 걸음으로 걸었다. 파란 운동화 앞코가 바닥의 금을 넘을 때마다 가방에 달린 고리가 흔들렸다.윤슬은 아이 손을 조금 느슨하게 잡았다.“우주는 빨리 가도 돼.”“손 잡았잖아.”우주가 잡힌 손을 들어 보였다. 윤슬은
윤슬은 공책을 덮어 가방 옆에 놓았다. 예약 장부에는 다음 토요일 오후가 한 칸 비어 있었다. 우주 머리를 깎으려고 남겨 둔 자리였다.방 안에서 이불 끌어당기는 소리가 났다. 윤슬은 장부를 닫고 아이 곁으로 갔다. 베개 아래에 눌린 머리카락을 빼 주자 우주가 잠결에 고개를 돌렸다. 귀를 덮은 머리끝이 손등을 간질였다.▷4월 4일 토요일, 우주는 미용실 의자 앞에서 두 발을 붙이고 섰다.“다음에.”윤슬은 아이 목에 두를 작은 수건을 펴 들었다.“오늘 하기로 했잖아.”“내일.”“내일도 머리는 깎아야지.”우주는 귀를 양손으로 덮었다. 머리카락까지 눌려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왔다.윤슬은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췄다.“귀 안 자르는 거 알지?”“아는데.”“그럼 앉자.”“싫은 건 알아도 싫어.”윤슬은 펴 놓은 수건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예약한 손님이 늦는다는 연락을 해 와서 잠깐 틈이 났다. 그사이에 끝낼 생각이었지만 우주는 의자 가까이에도 가지 않았다.“머리가 눈 찌르잖아.”“눈 감으면 돼.”우주가 눈을 꼭 감았다. 그러고는 한쪽만 살짝 뜨고 윤슬의 손을 살폈다.가위는 아직 허리 가위집에 있었다.“엄마, 조금만 잘라.”“응. 조금만.”“조금보다 더 조금.”“먼저 앉아 봐.”윤슬은 아이를 안아 의자 위에 놓았다. 높이를 맞추려고 받침을 올리고 덮개를 펼치자 우주의 턱이 벌써 가슴 쪽으로 내려갔다.지난번에도 이 자리에서 울었다. 목에 머리카락이 붙는다고 울고, 털어 주려고 덮개를 풀면 아직 안 끝났느냐고 울었다. 윤슬은 오늘 쓸 수건을 두 장 준비해 두었다.“목에 안 들어가게 할게.”우주는 수건을 두른 목을 만졌다.“여기 다 막아.”“막았어.”“뒤도.”윤슬은 목덜미 쪽을 한 번 더 접었다. 우주가 고개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만 덮개를 여미고 빗을 꺼냈다.빗살이 앞머리를 지나기도 전에 아이의 어깨가 올라갔다.“아직 안 잘랐어.”“지금 자르잖아.”“빗는 거야.”우주의 입이 벌어졌다. 윤슬은 가위를 꺼내려던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