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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내 생일은 9월이야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8 21:21:57

윤슬은 팔에 걸린 수건을 접어 의자 등받이에 놓았다. 공책 속 파란 사람 둘은 손을 들고 있었다. 한 사람의 팔이 다른 사람보다 길었다.

방 안에서 우주가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윤슬은 공책을 덮지 않은 채 문 앞까지 갔다. 아이는 이불을 발로 밀어 놓고 자고 있었다. 이불을 다시 덮어 주자 우주가 손을 턱 밑으로 가져갔다.

윤슬은 잠깐 그 손을 보다가 방문을 조금 당겨 놓았다.

▷

3월 21일 토요일 오후, 미용실에는 빈 의자가 없었다.

윤슬은 샴푸를 마친 손님의 머리에 수건을 둘렀다. 다른 의자에서는 파마를 한 손님이 잡지를 넘기고 있었다. 드라이어 소리에 책장 넘기는 소리는 묻혔다.

구석의 작은 책상에는 우주와 탁 할머니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의자 대신 낮은 보조 의자를 당겨 앉았고, 우주는 크레파스를 바닥에 떨어뜨릴 때마다 몸을 숙였다.

“그것 좀 통에 담아 놓고 쓰렴.”

“파랑이 자꾸 굴러가.”

“네가 밀었으니까 굴러가지.”

“조금 밀었어.”

탁 할머니가 발 옆에 떨어진 크레파스를 주워 주었다. 우주는 받아서 책상 가운데 놓고 손바닥으로 막았다.

“이제 못 가.”

윤슬은 거울로 그 모습을 보고 드라이어 바람을 낮췄다.

“할머니, 불편하시면 집에 가 계세요. 우주는 여기 있어도 돼요.”

“괜찮아. 기다리는 동안 뜨개질하면 되지.”

할머니는 무릎 위에 올려놓은 실을 풀었다. 우주가 바늘 끝을 보다가 자기 연필을 들었다.

“나는 두 개면 못 써.”

“할머니도 연필은 하나로 쓰지.”

“그럼 그건 왜 두 개야?”

“하나로는 이게 안 돼.”

탁 할머니가 뜨개질하던 것을 조금 들어 보였다. 우주는 구멍 사이로 손가락을 넣으려다가 할머니가 고개를 젓자 손을 거뒀다.

윤슬은 손님의 머리를 말리고 거울을 기울여 뒤쪽을 보여 주었다. 손님이 조금만 더 짧게 해 달라고 했다. 가위를 꺼내 끝을 다듬는 동안 전화가 울렸다.

“할머니, 전화 좀 받아 주시겠어요?”

탁 할머니는 뜨개질을 내려놓고 수화기를 들었다.

“윤슬 미용실입니다. 그래, 그래. 지금 머리 하고 있어요.”

할머니가 전화를 건네자 윤슬은 가위를 가위집에 넣었다. 예약 장부를 펼치고 빈 시간을 짚었다. 통화를 마친 뒤에는 기다리던 손님의 파마 상태를 확인했다.

우주는 책상에서 발을 흔들고 있었다.

“엄마, 나 다 그렸어.”

“잠깐만. 엄마 이것만 보고.”

“지금 봐?”

“이것만 하고.”

윤슬은 손님의 머리에서 파마 막대 하나를 풀었다. 거울 아래로 보이는 우주의 운동화가 서로 부딪쳤다. 탁 할머니가 다시 실을 집어 들며 아이에게 종이를 내밀어 보라고 했다.

“할머니가 먼저 보자.”

우주는 종이를 돌렸다. 윤슬은 손님에게 고개를 조금 들어 달라고 말한 뒤 샴푸대의 물을 틀었다.

그때까지는 우주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손님을 샴푸대에 눕히고 물 온도를 맞추는 동안 가게 문에 달린 작은 종이 울렸다. 윤슬은 문 쪽을 보지 못한 채 말했다.

“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대답이 없었다. 물을 끄고 수건을 가져오다가 비어 있는 구석을 보았다.

우주의 의자가 뒤로 빠져 있었다.

탁 할머니는 턱을 조금 숙인 채 앉아 있었다. 뜨개바늘을 쥔 손이 무릎에 내려와 있고, 실 뭉치는 발 옆에 놓여 있었다.

“할머니.”

윤슬이 다가가 어깨를 가볍게 건드렸다.

“우주 어디 갔어요?”

할머니가 눈을 뜨고 책상부터 보았다.

“어? 여기 있었는데.”

윤슬은 책상 아래와 화장실 문을 차례로 확인했다. 우주의 가방은 걸려 있었지만 파란 운동화는 보이지 않았다.

“아이고, 내가 깜빡했네.”

할머니가 일어나려다 무릎의 뜨개질을 붙잡았다. 윤슬은 문 앞으로 갔다. 유리 너머 맞은편 식당의 카운터 끝에 작은 검은 머리가 보였다.

우주였다.

윤슬은 문손잡이를 잡은 채 한 번 숨을 내쉬었다.

“맞은편에 있어요.”

“내가 데려올게.”

“제가 갈게요. 손님한테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해 주세요.”

윤슬은 가위집을 풀지도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골목 양쪽을 살핀 뒤 빠르게 건넜다. 스무 걸음이 되기도 전에 식당 유리문을 밀었다.

▷

우주는 높은 의자에 앉아 두 발을 한쪽 가로대에 올려놓고 있었다.

앞에는 작은 빈 접시와 포크가 놓여 있었다. 카운터 안쪽에서 이든이 팬 손잡이를 잡고 있었고, 식탁 두 곳에는 손님이 앉아 있었다.

“백우주.”

우주의 어깨가 올라갔다. 아이가 고개를 돌렸다.

“엄마.”

“어디 갈 때는 말하고 가야지.”

“말했어.”

“누구한테.”

“탁 할머니한테.”

윤슬은 아이 앞에 섰다.

“할머니가 대답했어?”

우주는 입을 다물었다. 발끝이 가로대에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갔다.

“안 했어.”

“그럼 말한 걸 못 들으셨을 수도 있잖아.”

“눈 감고 있었어.”

“그럴 땐 깨우거나 엄마한테 와야 해.”

우주는 카운터 위 포크를 손가락으로 밀었다.

“엄마는 잠깐만 했잖아.”

윤슬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허리에 찬 가위집을 안쪽으로 돌려 놓고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그래도 기다려야 해. 엄마가 너 없어서 놀랐어.”

“혼자 안 올게.”

“길도 혼자 건너지 마.”

“응.”

이든이 불을 낮추고 돌아섰다. 손에 묻은 물기를 닦은 뒤 카운터 가까이 왔다.

“내가 데려온 거 아니야. 제 발로 왔어. 그래도 미안.”

윤슬은 열린 부엌과 우주의 빈 접시를 번갈아 보았다.

“언제 왔어?”

“조금 전. 너 일하는 중이라고 해서 끝나면 데려다주려고 했어.”

“엄마 손이 두 개 다 바빴어.”

우주가 덧붙였다. 윤슬은 아이 앞으로 밀려 있던 포크를 바로 놓았다.

이든이 카운터 바깥으로 나와 의자를 하나 당겼다.

“앉아. 파스타 거의 됐어.”

“가게에 손님 있어.”

“담는 동안만.”

윤슬은 앉지 않았다. 대신 우주가 올려놓은 발이 의자 가로대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안쪽으로 옮겨 주었다.

팬에서 토마토 소스가 작게 끓었다. 이든은 길게 늘어진 면을 팬에 넣고 집게로 들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붉은 소스가 면 사이에 묻었다. 팬 바닥을 긁는 소리 뒤로 버터 냄새가 났다.

이든이 작은 접시에 파스타를 돌려 담았다. 면 끝이 접시 밖으로 넘어가자 집게로 다시 안에 넣었다. 작은 당근 조각 몇 개도 함께 올라갔다.

우주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거 다 이어져 있어?”

“아니. 여러 가닥이야.”

“끝은 어디야?”

“먹다 보면 나와.”

이든이 접시를 놓고 포크를 아이 쪽으로 돌려 주었다. 우주는 포크로 면을 찔렀다. 곧장 들려고 하자 면이 길게 늘어졌다.

“돌려서 먹어.”

윤슬이 말했다.

우주는 손목을 돌리다가 접시까지 움직이자 반대 손으로 접시를 붙잡았다.

“이것도 돌아.”

이든이 작은 숟가락을 옆에 놓았다.

“여기 받치고 해 봐.”

우주가 숟가락 위에서 포크를 돌렸다. 면이 조금 감겼다. 입에 넣고 나서는 남은 한 가닥을 입술로 끌어 올렸다.

윤슬은 아이의 입가를 닦아 주려고 가위집 옆 주머니를 뒤졌다. 손수건은 미용실에 둔 가방 안에 있었다. 이든이 냅킨 통을 가까이 밀었다.

“고마워.”

말을 하고 나서 윤슬은 냅킨만 보았다.

우주가 두 번째로 면을 감다가 당근을 발견했다. 포크 끝으로 조각을 밀어 접시 가장자리에 놓았다. 다른 조각도 찾아 나란히 붙였다.

“그것도 먹어.”

“주황색이 너무 많아.”

“몇 개 없잖아.”

“여기 세 개.”

우주가 포크로 하나씩 짚었다. 면 아래에서 하나를 더 찾아낸 뒤 고개를 들었다.

“네 개야.”

이든은 아무 말 없이 작은 빈 접시를 가져왔다. 우주가 가장자리에 모아 둔 당근을 숟가락으로 옮겨 담았다. 소스에 묻힌 작은 조각 하나까지 걷어 내고 빈 접시를 부엌 안쪽에 놓았다.

윤슬은 아이에게 포크를 들라고 턱짓했다.

“오늘만이야.”

우주는 대답 대신 면을 감았다. 이번에는 포크가 입까지 가는 동안 풀리지 않았다.

부엌 안쪽에서 커다란 체격의 젊은 남자가 구운 빵을 접시에 옮기고 있었다. 모자를 쓴 채 고개를 내밀더니 우주의 접시를 보고 웃었다.

“셰프님 애 좋아하시네요.”

이든이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입을 다물고 빵 접시부터 들었다. 윤슬 옆을 지나며 조금 전보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나갈게요.”

우주가 입에 든 것을 삼키고 물었다.

“아저씨도 셰프야?”

“나는 막내 요리사. 방철구.”

“막내면 작아야 되는데.”

철구가 자기 배를 내려다봤다. 식탁에서 손님이 웃는 소리가 났다.

“작은 건 나이고, 큰 건 몸이지.”

“이름이 철구이야?”

“철구. 뒤에 이는 안 붙어.”

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철구이 형.”

철구가 다시 설명하려다가 이든이 가리킨 식탁을 보고 접시를 들고 갔다.

윤슬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미용실 손님을 더 기다리게 할 수 없었다.

“우주, 천천히 먹고 엄마랑 가.”

“나 조금밖에 안 남았어.”

우주가 접시를 내려다보다가 이든을 보았다. 토마토 소스가 묻은 포크를 들고 갑자기 말했다.

“내 생일은 9월이야.”

이든은 팬을 내려놓던 손을 멈췄다.

“9월?”

“9월 12일. 그날 일곱 살 돼.”

윤슬은 냅킨을 접다가 아이를 보았다.

“너 지금도 일곱 살이야.”

“생일 안 했는데?”

“어린이집에서도 일곱 살 반이잖아.”

우주는 잠깐 생각하더니 면 하나를 포크로 눌렀다.

“그럼 생일은 그냥 해?”

“하지.”

“초도?”

“응.”

우주는 그제야 남은 면을 감았다. 이든은 카운터 옆에 놓인 주문서 한 장을 뒤집었다. 펜으로 짧게 적은 글씨가 윤슬 쪽에서도 보였다.

『9월 12일』

“왜 써?”

우주가 물었다.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안 쓰면 까먹어?”

“그럴 수 있지.”

“엄마는 안 써도 알아.”

윤슬은 접은 냅킨을 우주의 입가에 댔다.

“엄마니까.”

이든은 펜 뚜껑을 닫았다. 주문서를 다른 종이 밑으로 밀어 넣은 뒤 우주의 물컵을 채웠다.

윤슬은 아이가 물을 마시는 동안 지갑을 꺼냈다.

“얼마야.”

“안 내도 돼.”

“먹었잖아.”

“정식으로 판 거 아니야. 조금 덜어 준 거야.”

윤슬은 벽에 걸린 메뉴판을 보았다. 토마토 파스타 가격 아래로 다른 음식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지갑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

“그럼 이것만 받아.”

“윤슬.”

윤슬은 지폐를 카운터에 놓았다. 냅킨 통 아래에 끝을 조금 끼워 넣고 우주를 의자에서 내려 주었다.

“밥 먹였으면 됐어.”

우주는 의자에서 내려와 빈 접시를 보았다.

“다 먹었어.”

“인사해.”

“잘 먹었어.”

이든이 의자를 안쪽으로 밀었다.

“그래. 다음에는 엄마한테 말하고 와.”

“혼자 안 와.”

우주는 윤슬의 손을 잡았다. 아이의 손가락에 소스가 조금 묻어 있었다. 윤슬은 냅킨으로 닦아 주고 문을 열었다.

유리문이 닫히기 전에 이든이 말했다.

“길 건널 때 양쪽 보고.”

윤슬은 이미 양쪽을 살피고 있었다. 대답하지 않고 우주의 손을 조금 더 안쪽으로 당겼다.

▷

미용실로 돌아오자 탁 할머니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아이고, 우주야.”

우주가 윤슬의 손을 놓고 할머니 앞으로 갔다.

“탁 할머니, 나 파스타 먹었어.”

“할머니 깨우고 가지.”

“다음엔 깨울게.”

“그래, 그래. 할머니도 안 졸게.”

윤슬은 할머니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

“우주한테 얘기했어요. 괜찮아요.”

의자에 앉아 있던 손님에게 고개를 숙이고 다시 가위집을 바로 찼다. 손을 씻은 뒤 수건을 풀었다. 젖은 머리끝에서 물이 떨어지기 전에 새 수건으로 눌렀다.

거울 속 우주는 작은 책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조금 전 그린 종이를 할머니에게 보여 주더니 빈 부분에 무언가를 덧그렸다.

“이건 뭔데?”

“긴 거.”

“실이야?”

“파스타.”

할머니가 종이를 가까이 당겼다.

“할머니 뜨개실하고 닮았네.”

“먹으면 안 돼. 이건 종이야.”

윤슬은 드라이어를 켰다. 바람 소리가 우주의 다음 말을 덮었다. 거울 한쪽에는 맞은편 식당의 유리문이 비쳤다.

이든이 빈 접시를 들고 부엌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잠깐 보였다. 윤슬은 손님의 머리 끝을 빗으로 받치고 바람을 안쪽으로 넣었다.

늦은 오후에는 탁 할머니가 우주를 데리고 빌라로 먼저 갔다. 윤슬은 문 앞에서 아이 점퍼의 지퍼를 올려 주었다.

“할머니 손 꼭 잡아.”

우주가 할머니의 손을 들었다.

“잡았어.”

“엄마 끝나면 갈게.”

“오늘도 잠깐만?”

윤슬은 지퍼 끝에서 손을 뗐다.

“오늘은 좀 길어.”

“그럼 탁 할머니랑 있어.”

우주는 별다른 투정 없이 계단 쪽으로 걸었다. 할머니가 아이에게 뭐라고 하자 고개를 들고 웃었다.

윤슬은 가게로 들어와 다음 손님이 쓸 덮개를 펼쳤다. 구석 책상에는 그리다 만 파스타 그림이 남아 있었다. 종이 끝이 책상 밖으로 나오지 않게 밀어 넣었다.

▷

밤에는 우주의 점퍼 주머니에서 돈이 나왔다.

윤슬은 세탁할 옷을 모으다가 접힌 만 원짜리를 발견했다. 손가락 두 개로 지폐를 집어 들고 식탁에 앉은 우주를 보았다.

아이는 그림일기 공책에 긴 선을 그리고 있었다.

“우주, 이 돈 어디서 났어?”

우주가 고개를 들었다.

“접시 아저씨.”

“언제 줬어?”

“엄마 머리 말릴 때.”

“또 갔어?”

우주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저씨가 왔어. 문에서.”

윤슬은 지폐를 펼치려던 손을 멈췄다. 오후에 드라이어를 켜 놓았던 시간이 떠올랐다. 우주가 문 쪽을 가리킨 것 같았지만, 그때는 손님의 머리에 가려 문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뭐라고 하면서 줬어?”

“엄마 거라고. 집에서 드리라고.”

“그럼 엄마한테 줬어야지.”

“주머니에 넣었어.”

우주가 자기 바지 주머니를 만졌다.

“지금 줬잖아.”

윤슬은 의자를 당겨 앉았다. 만 원짜리는 두 번 접혀 있었다. 안쪽을 펴자 얇은 영수증이 함께 나왔다.

영수증 뒷면에 글씨가 적혀 있었다.

『다음엔 당근 뺄게.』

윤슬은 종이 귀퉁이를 잡았다. 카운터에서 당근을 걷어 내던 숟가락이 떠올랐다. 이든은 우주에게 더 먹어 보라는 말도, 왜 싫으냐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우주가 의자에서 몸을 내밀었다.

“뭐야?”

“다음에는 당근 빼 준대.”

“진짜?”

“응.”

“네 개 다?”

“아마.”

우주는 다시 공책 쪽으로 돌아앉았다. 긴 선 옆에 조그만 동그라미를 그렸다가 지우개로 지웠다.

윤슬은 돈을 펴서 지갑에 넣었다. 영수증도 넣으려다 식탁 위에 잠깐 내려놓았다.

“다음에도 먹으러 갈 거야?”

우주가 연필을 쥔 채 윤슬을 보았다.

“엄마한테 말하고.”

“물어보고.”

“그럼 물어볼게.”

아이는 연필 끝을 공책에 댔다. 윤슬은 영수증을 뒤집어 놓고 아이가 글씨를 쓰는 동안 기다렸다. 마지막 글자를 다 쓴 우주가 공책을 밀어 주었다.

『파스타는 길다. 당근은 안 먹었다. 아저씨가 봤다.』

(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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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슬은 받은 빗을 선반 위에 놓았다. 빗살이 아래로 가게 놓았다가 다시 뒤집었다.맞은편 의자에 앉은 이든은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평소 손님을 앉히던 자리였다. 윤슬은 의자 높이를 낮추는 발판을 밟으려다 발을 거뒀다.“불편하면 뒤로 조금 밀어.”“괜찮아.”이든의 무릎과 윤슬의 무릎 사이에 바닥 타일의 줄이 놓여 있었다. 윤슬은 그 줄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뭐부터 듣고 싶어?”이든이 입을 열기까지 조금 걸렸다.“언제 알았어.”“네가 떠나고, 다음 달.”윤슬은 귀 뒤로 넘긴 앞머리를 다시 눌렀다.“1월 둘째 주였어. 8주라고 하더라.”이든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움직였다. 날짜를 세지는 않았다. 바지에 생긴 주름을 펴다가 손을 멈췄다.“혼자 갔어?”“응.”“그때도 혼자 살았잖아.”“살고 있었지.”윤슬은 의자 끝에 놓인 수건을 집었다. 손님 목에 둘렀다가 세탁하려고 빼 두었다. 접힌 자리가 어긋나 있어 모서리를 맞췄다.“전화할까 했어. 병원 나와서.”이든이 윤슬을 보았다.“안 했어.”“왜.”“말하면 돌아올 거잖아.”윤슬은 수건을 무릎에 내려놓았다.“연수고 뭐고, 다 두고 올 사람이었으니까.”이든은 대답하지 않았다. 의자 팔걸이를 잡았던 손이 천천히 풀렸다.“안 왔을 거라고는 못 하겠어.”“알아.”“그래도 알았어야 했어.”윤슬은 수건 모서리에서 손을 뗐다.“응. 그건 알아.”더 보탤 말은 없었다.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놓고 소식을 전하면, 이든은 돌아올 테니까. 그걸 알고도 말하지 않은 것은 윤슬이었다.“우리 붙잡지 않기로 했잖아. 연락도 하지 않기로.”“했지.”“3년 뒤 겨울에 둘 다 혼자면 다시 보기로 했고.”이든의 시선이 선반 위 빗에 잠깐 머물렀다.“그때 말하려고 했어. 네가 돌아오면.”윤슬은 무릎 위 수건을 한 번 더 접었다. 더 작게 접을 필요는 없었는데 손이 멈추지 않았다.“그때는 우주도 같이 데리고 나갈 수 있겠다 싶었어.”“골목에 왔어?”“세 번.”짧게 답하자

  • 일곱 살 아들의 아빠가 돌아왔다   8화. 응

    우주가 골목 끝에서 한 번 더 손을 당겼다.“엄마, 여기 밝은 데.”빌라 입구의 등이 켜져 있었다. 아이는 불빛 아래로 먼저 발을 넣고 새로 짧아진 머리를 만졌다. 윤슬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현관에서 신발을 벗은 우주가 양손을 폈다.“아저씨는 뭘 기다려?”윤슬은 아이 점퍼의 지퍼를 내려 주었다.“언제?”“아까. 가게 앞에서.”점퍼 안쪽에 머리카락 하나가 남아 있었다. 윤슬은 손톱으로 집어 떼고 옷을 걸었다.“가게 문 닫고 있었겠지.”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고 욕실로 들어가 발판을 당겼다. 물 흐르는 소리가 난 뒤에도 윤슬은 현관에 서 있었다.가방 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선우가 보내 준 사진이 화면에 남아 있었다. 머리가 똑같아진 두 아이가 나란히 웃고 있었다.윤슬은 화면을 끄고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다.▷4월 8일 수요일 아침, 우주는 빌라 계단을 내려오며 가방 끈을 고쳐 멨다.“엄마, 이쪽.”아이가 모과나무 쪽으로 발을 돌렸다. 윤슬은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골목 바깥쪽을 가리켰다.“오늘은 저쪽으로 가자.”“또?”우주가 멈춰 섰다.그 길로 가면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접시 하나 앞을 지나게 됐다. 유리문 안에서 빵을 자르는 손이나 카운터를 닦는 이든의 등을 볼 수 있었다. 윤슬은 요 며칠 골목 어귀를 돌아서 다녔다.“여기도 길 있잖아.”“아저씨 집 앞에도 있어.”“알아.”“엄마는 왜 저 집 앞만 돌아가?”윤슬은 아이 가방에서 한쪽으로 기운 물통을 바로 넣었다. 뚜껑이 잘 잠겼는지 확인하고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엄마가 생각할 게 있어서.”우주가 윤슬의 얼굴을 올려다봤다.“걸으면서?”“응.”“그럼 천천히 가.”아이는 먼저 달려가지 않았다. 윤슬 옆에 붙어 작은 걸음으로 걸었다. 파란 운동화 앞코가 바닥의 금을 넘을 때마다 가방에 달린 고리가 흔들렸다.윤슬은 아이 손을 조금 느슨하게 잡았다.“우주는 빨리 가도 돼.”“손 잡았잖아.”우주가 잡힌 손을 들어 보였다. 윤슬은

  • 일곱 살 아들의 아빠가 돌아왔다   7화.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뭘 세

    윤슬은 공책을 덮어 가방 옆에 놓았다. 예약 장부에는 다음 토요일 오후가 한 칸 비어 있었다. 우주 머리를 깎으려고 남겨 둔 자리였다.방 안에서 이불 끌어당기는 소리가 났다. 윤슬은 장부를 닫고 아이 곁으로 갔다. 베개 아래에 눌린 머리카락을 빼 주자 우주가 잠결에 고개를 돌렸다. 귀를 덮은 머리끝이 손등을 간질였다.▷4월 4일 토요일, 우주는 미용실 의자 앞에서 두 발을 붙이고 섰다.“다음에.”윤슬은 아이 목에 두를 작은 수건을 펴 들었다.“오늘 하기로 했잖아.”“내일.”“내일도 머리는 깎아야지.”우주는 귀를 양손으로 덮었다. 머리카락까지 눌려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왔다.윤슬은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췄다.“귀 안 자르는 거 알지?”“아는데.”“그럼 앉자.”“싫은 건 알아도 싫어.”윤슬은 펴 놓은 수건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예약한 손님이 늦는다는 연락을 해 와서 잠깐 틈이 났다. 그사이에 끝낼 생각이었지만 우주는 의자 가까이에도 가지 않았다.“머리가 눈 찌르잖아.”“눈 감으면 돼.”우주가 눈을 꼭 감았다. 그러고는 한쪽만 살짝 뜨고 윤슬의 손을 살폈다.가위는 아직 허리 가위집에 있었다.“엄마, 조금만 잘라.”“응. 조금만.”“조금보다 더 조금.”“먼저 앉아 봐.”윤슬은 아이를 안아 의자 위에 놓았다. 높이를 맞추려고 받침을 올리고 덮개를 펼치자 우주의 턱이 벌써 가슴 쪽으로 내려갔다.지난번에도 이 자리에서 울었다. 목에 머리카락이 붙는다고 울고, 털어 주려고 덮개를 풀면 아직 안 끝났느냐고 울었다. 윤슬은 오늘 쓸 수건을 두 장 준비해 두었다.“목에 안 들어가게 할게.”우주는 수건을 두른 목을 만졌다.“여기 다 막아.”“막았어.”“뒤도.”윤슬은 목덜미 쪽을 한 번 더 접었다. 우주가 고개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만 덮개를 여미고 빗을 꺼냈다.빗살이 앞머리를 지나기도 전에 아이의 어깨가 올라갔다.“아직 안 잘랐어.”“지금 자르잖아.”“빗는 거야.”우주의 입이 벌어졌다. 윤슬은 가위를 꺼내려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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