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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엄마 옆에 아저씨가 있어

ผู้เขียน: Jino
last update วันที่เผยแพร่: 2026-10-18 21:22:04

윤슬은 공책을 받아 마지막 글자까지 읽었다. 우주는 연필 끝으로 파스타 그림 옆을 톡톡 두드렸다.

“당근 안 그렸어.”

“봤어.”

“먹은 것만 그렸어.”

윤슬은 공책을 식탁 안쪽으로 밀어 놓았다. 뒤집어 둔 영수증이 공책 아래에 조금 가렸다. 우주는 의자에서 내려오다가 그 종이를 보고 다시 손을 뻗었다.

“그것도 붙일까?”

“왜?”

“당근 안 주는 거.”

윤슬은 영수증을 집어 지갑에 넣었다.

“안 붙여도 알아.”

우주는 지갑이 닫히는 것을 보고 욕실로 갔다. 물을 틀기 전에 치약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늘 놓는 컵 안에 있다고 답하고 나서야 윤슬은 식탁 위 공책을 덮었다.

▷

3월 25일 수요일, 우주는 하원하자마자 미용실 구석의 작은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윤슬은 아이가 벗어 놓은 점퍼를 걸고 운동화 끈을 살폈다. 한쪽 매듭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이거 밟겠다.”

“안 밟았어.”

“지금까지는.”

윤슬이 끈을 짧게 묶어 주자 우주는 발을 한 번 들었다 놓았다. 곧바로 책상에 앉을 줄 알았는데 큰 거울 앞으로 갔다.

“엄마, 내 머리 여기 떴어.”

정수리의 머리카락 몇 가닥이 위로 서 있었다. 윤슬은 물을 조금 묻힌 손으로 눌러 주려다가 멈췄다. 손님에게 쓰던 빗을 먼저 씻어야 했다.

“빗 씻고 해 줄게. 기다려.”

우주는 거울 앞에 남았다. 윤슬이 세면대에서 빗을 헹구는 동안 아이는 몸을 왼쪽으로 기울였다가 오른쪽으로 옮겼다.

“옆으로 가도 있어.”

“머리가?”

“응. 뒤로 가면 안 보여.”

“뒤로 가도 붙어 있어.”

우주가 거울 가장자리를 잡고 발뒤꿈치를 들었다. 윤슬은 수건으로 빗의 물기를 닦다가 아이 손끝에 걸린 종이를 보았다.

거울 모서리 뒤에서 누렇게 바랜 사진 끝이 나와 있었다. 우주는 종이를 당기다가 잘 빠지지 않자 손가락을 바꾸어 잡았다.

“우주, 그건…….”

사진이 먼저 빠졌다.

우주는 두 손으로 사진을 펴고 고개를 숙였다. 윤슬은 젖은 빗을 선반에 놓았다. 아이가 그림을 볼 때처럼 사진을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가 조금 멀리 뗐다.

“엄마야?”

골목 가운데 두 사람이 서 있었다. 모과나무와 가게 문까지 한꺼번에 들어간 사진이라 얼굴은 작았다. 윤슬은 사진 속 자기 어깨에 닿은 머리끝부터 보았다.

“응.”

“머리 안 묶었네.”

우주의 손가락이 사진 위를 움직였다. 윤슬의 머리를 짚던 손끝이 옆 사람에게 갔다.

“엄마 옆에 아저씨가 있어.”

윤슬은 아이 앞에 손을 내밀었다.

“엄마 옛날 친구.”

우주는 사진을 주지 않고 다시 들여다봤다.

“접시 아저씨?”

“얼굴이 작아서 잘 안 보이지.”

“머리는 보여.”

윤슬은 사진의 빈 가장자리를 잡았다. 우주는 손을 놓으면서도 그쪽을 보고 있었다.

“아저씨도 엄마한테 머리 깎았어?”

“옛날에는.”

“나 태어나기 전에?”

“응.”

우주는 자기 머리 위를 만졌다.

“그럼 엄청 옛날이네.”

윤슬은 사진을 예약 장부 사이에 끼웠다. 종이 끝이 밖으로 나오지 않게 손바닥으로 눌렀다.

“너는 머리 눌러 줄까?”

“조금만. 다 누르면 작아져.”

윤슬은 깨끗한 빗에 물을 묻혀 솟은 머리카락만 빗었다. 우주는 턱을 들고 거울을 보다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안 떠.”

“가방에 물통 꺼내 놔.”

아이가 책상으로 돌아간 뒤 윤슬은 예약 장부를 선반 아래에 넣었다. 거울 모서리 뒤에는 사진이 빠진 만큼 먼지가 남아 있었다. 마른 수건으로 그 자리를 닦자 손끝에 가느다란 회색 선이 묻었다.

▷

고선우는 문을 열면서부터 맞은편을 돌아봤다.

“아니 그게 아니라, 우주 엄마는 알고 있었어요?”

윤슬은 의자를 돌려 놓았다.

“뭘요?”

“저 집 사장님이요. 그냥 동네에 처음 가게 낸 분이 아니더라고요.”

선우는 큰 가방을 의자 옆 고리에 걸었다. 거울로 자기 머리를 살피며 옆머리를 잡아당겼다.

“여기는 조금만 자르고, 뒤는 지난번처럼 해 주세요.”

“네.”

윤슬은 목에 수건을 두르고 덮개를 펼쳤다. 선우의 긴 머리를 빗으로 나누어 집게로 고정하자 말이 다시 이어졌다.

“바다 건너 큰 식당에 있었대요. 손님도 엄청 많이 오는 데였대요.”

“고개 조금만 내려 주세요.”

“아, 네. 그런데 왜 이런 작은 골목에 왔을까요?”

윤슬은 목덜미에 닿은 머리끝을 잘랐다. 가위가 닫힐 때마다 덮개 위로 머리카락이 떨어졌다.

“가게 자리 마음에 들었나 보죠.”

“안에 봤어요? 부엌이 다 보이던데. 저는 남이 보는 데서는 손이 더 꼬이거든요.”

선우가 덮개 밖으로 손을 내밀어 자기 앞머리를 만지려 했다. 윤슬은 손을 안으로 넣어 달라고 하고 옆머리를 빗었다.

“우주는 벌써 먹어 봤다면서요.”

책상에서 종이를 접던 우주가 고개를 들었다.

“파스타.”

“맛있어?”

“길어.”

선우가 웃었다.

“지호도 데려가 봐야겠네. 우주는 뭐가 제일 맛있었어?”

우주는 잠깐 입술을 오므렸다.

“빵도.”

“빵이랑 파스타?”

“물도 줬어.”

“물은 어디서나 주잖아.”

“엄마는 내가 따라.”

윤슬은 선우의 머리를 빗으로 받쳤다. 거울 속 우주가 종이를 반으로 접고 손톱으로 접힌 자리를 눌렀다. 맞은편에서는 철구가 문 앞에 나와 걸레를 털고 있었다.

선우는 그쪽을 보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탁 할머니도 저 총각 괜찮다고 하시던데.”

“할머니 보셨어요?”

“아까 빌라 앞에서요. 오늘은 기운이 없으시더라고요. 감기라면서요.”

윤슬의 가위가 잠깐 멎었다. 아침에 우주를 데리고 내려올 때 할머니는 목이 조금 잠겼다고만 했다. 아이를 봐 주지 못하겠다고 해서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바로 미용실로 데려왔다.

“제가 끝나고 가 봐야겠네요.”

“머리 천천히 해 주세요. 뒤에 튀어나오는 데 없게.”

“네. 고개만 조금 더 내려 주세요.”

윤슬은 다시 가위를 움직였다. 선우가 바다 건너 식당 이야기를 더 했지만, 이든에게 직접 들은 말은 하나도 없었다. 누구에게 들었느냐고 묻는 대신 잘린 머리끝을 빗으로 털었다.

▷

선우가 나간 뒤 윤슬은 탁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짧은 기침이 들렸다. 윤슬은 쓸어 모은 머리카락을 쓰레받기에 담다가 빗자루를 세워 놓았다.

“할머니, 저녁 드셨어요?”

“아직. 좀 있다 먹으려고.”

“제가 끝나고 갈게요.”

“오지 마. 우주 감기 옮는다.”

“문 앞에만 두고 갈게요.”

“맞은편 총각이 뭘 가져온다고 했어.”

윤슬은 유리문 쪽을 보았다.

“접시 사장이요?”

“그래. 선우 엄마랑 얘기하는 걸 들었나 봐. 따뜻한 거 먹어야 한다고 그러네.”

“많이 불편하시면 말씀하세요.”

“그래, 그래. 너는 손님 봐.”

전화를 끊자 우주가 자기 물통을 들고 왔다.

“탁 할머니 아파?”

“감기 드셨어.”

“그럼 오늘 못 가?”

“응. 오늘은 여기서 엄마랑 있어.”

우주는 물통 뚜껑을 돌리다 윤슬에게 내밀었다. 윤슬은 뚜껑을 열고 남은 물을 비웠다. 깨끗한 물을 채워 주자 아이는 책상에 올려놓고 문밖을 살폈다.

“아저씨가 가?”

맞은편 카운터에 이든이 작은 용기를 놓고 있었다. 윤슬은 다음 예약 시간까지 남은 것을 확인한 뒤 우주에게 점퍼를 입혔다.

“길 건너기 전에 서.”

“양쪽.”

“응.”

우주는 문 앞에서 먼저 멈췄다. 윤슬이 옆에 설 때까지 기다렸다가 손을 잡았다.

식당에는 아직 손님이 없었다. 철구가 식탁을 닦고 있었고, 열린 부엌 안에서 이든은 냄비 뚜껑을 들어 올렸다.

이든은 긴 국자로 바닥부터 천천히 저었다. 익은 양파가 국자 가장자리에 걸렸다가 다시 냄비 안으로 흘러내렸다. 따뜻한 버터 냄새가 카운터까지 닿았다.

“할머니 드릴 거야?”

윤슬이 묻자 이든은 고개를 들었다.

“응. 양파 수프.”

“전화하셨어?”

“번호 몰라. 아까 빌라 앞에서 뵀어.”

이든은 수프를 용기에 담았다. 가장자리에 흐른 것을 깨끗한 천으로 닦고 뚜껑을 닫았다. 구운 빵도 칼로 잘라 따로 담았다.

우주가 카운터 아래에서 발끝을 들었다.

“탁 할머니 이가 작아.”

“빵 작게 자를까?”

“응. 나는 크게.”

“이건 할머니 거야.”

우주는 용기 두 개를 번갈아 봤다.

“그럼 다 작게.”

이든은 빵을 한 번 더 잘랐다. 윤슬은 아이의 점퍼 지퍼가 턱에 닿지 않도록 조금 내렸다.

“그릇은 내가 가져다줄게.”

“안 돌려줘도 되는 거야.”

이든은 두 용기를 봉투에 나란히 넣었다.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바닥을 펴고 손잡이를 잡았다.

“혹시 더 필요한 거 있으실까?”

윤슬은 잠깐 생각하다 말했다.

“문 열 때 조금 기다려. 무릎이 안 좋아서 빨리 못 나오셔.”

“알았어.”

“계단 앞이 좁아. 거기 놓지 말고.”

“안에 놓을게.”

철구가 닦던 식탁에서 고개를 들었다.

“셰프님, 다녀오세요. 제가 볼게요.”

윤슬은 우주와 먼저 미용실로 돌아왔다. 잠시 뒤 이든이 봉투를 들고 골목 끝으로 걸어갔다.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비켜 섰다. 상대가 봉투를 가리키자 빌라 쪽을 짚었다.

윤슬은 유리문 안쪽의 손자국을 닦았다. 우주가 자기 손바닥을 대 보려다가 윤슬을 보고 얼른 내렸다.

“나 안 만졌어.”

“지금 만지려고 했지.”

“크기만 보려고.”

윤슬은 수건을 내려놓고 아이의 손을 자기 손 위에 얹었다. 우주는 손가락 끝을 맞추다가 길이가 다르자 아래로 미끄러뜨렸다.

“엄마 손은 언제 작아져?”

“안 작아져.”

“그럼 내가 커져야 돼?”

“그렇지.”

우주는 손을 떼고 책상으로 갔다. 윤슬은 한동안 문 앞에 서 있다가 빗자루를 마저 들었다.

▷

저녁 일곱 시가 조금 지나 마지막 손님이 나갔다.

우주는 책상에 엎드려 그림일기 공책을 펼쳐 놓고 있었다. 쓰는 것보다 지우는 데 시간이 더 걸렸다. 윤슬이 바닥을 쓸 때마다 발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엄마, 옛날은 어떻게 써?”

윤슬은 빗자루를 벽에 기대고 글자를 가르쳐 주었다. 우주는 연필로 천천히 따라 쓰더니 공책을 팔로 가렸다.

“아직 보지 마.”

“다 쓰면 보여 줘.”

윤슬은 사용한 수건을 바구니에 모았다. 뒷문 밖에 둔 빨랫감을 가져오려고 문을 열었을 때 이든이 두 걸음쯤 떨어져 서 있었다.

손에는 작은 빈 봉투가 들려 있었다.

“할머니 드셨어?”

“응. 빵도 조금.”

“고마워.”

이든은 봉투를 접었다. 부엌에서 쓰던 종이봉투라 접힌 자리에 기름 자국이 조금 남아 있었다.

“우주가 문 열어 달라고 따라 나올까 봐 이쪽으로 왔어.”

윤슬은 뒤를 돌아봤다. 우주는 공책 위에 고개를 숙인 채였다. 윤슬은 뒷문을 조금 당겨 놓고 문턱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인데.”

이든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손의 봉투를 더 작게 접었다가 멈췄다.

“나 안 갈 거야. 여기서 살 거야.”

윤슬은 빨래 바구니 손잡이를 잡았다.

“네 가게 일이지.”

“윤슬.”

“잘 들었어.”

문으로 돌아가려는데 이든이 길을 막지는 않고 몸만 조금 돌렸다.

“가게 뒤에 방 있어. 다른 데 구할 생각도 없어.”

“나한테 그걸 왜 말해.”

이든이 접은 봉투를 주머니에 넣었다. 윤슬은 손잡이에서 손을 떼고 앞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여기 사는 거 알아도 됐잖아.”

“몰랐어.”

“알아. 너는 몰랐겠지.”

말끝이 짧아졌다. 이든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맞은편 식당의 문이 열리며 철구가 손님을 맞는 소리가 들렸다.

윤슬은 그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바구니 안의 수건을 눌렀다.

“너 그때 왜 연락 안 했어.”

이든의 손이 주머니 밖으로 나왔다.

“너도 안 했잖아.”

“약속이었잖아.”

“그러니까.”

윤슬은 이든을 보았다. 이든은 이번에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바구니 손잡이를 세우던 손이 멈췄다.

“연락 안 하기로 한 것만 지켰네.”

이든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른 건.”

“못 지켰어.”

윤슬은 바구니를 문 안쪽에 들여놓았다. 손바닥에 눌린 자국이 붉었다. 손을 펴 보다가 가위집 옆에 붙은 짧은 머리카락을 떼어 냈다.

이든은 그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네가 여기 있는 건 가게 열고 알았어. 머리 깎으러 갔을 때 들은 게 다야.”

“그래.”

“가게는 여기 계속 할 거야.”

“손님 왔어. 들어가.”

이든이 식당 쪽을 돌아봤다. 유리문 너머로 철구가 메뉴판을 건네고 있었다. 다시 윤슬 쪽을 보고도 잠깐 발을 떼지 않았다.

윤슬은 문손잡이를 잡았다.

“나는 우주 데리고 가야 해.”

“알았어.”

이든은 한 걸음 물러났다. 윤슬이 문을 당기려는 순간 돌아서던 이든이 멈췄다.

“너한테 물을 게 하나 있는데, 아직 안 물을게.”

윤슬의 손이 손잡이에 그대로 남았다.

“뭔데.”

이든은 잠깐 윤슬 뒤쪽을 보았다. 문틈 안으로 우주의 책상 끝이 보였다.

“지금은 안 물을게.”

윤슬은 더 묻지 않았다. 이든이 골목을 건너는 것을 본 뒤 문을 닫았다. 걸쇠를 내리는 소리가 작은 가게 안에서 또렷하게 났다.

우주는 공책을 덮고 점퍼를 가져왔다.

“엄마, 나 지퍼.”

“잠깐만.”

윤슬은 선반 아래에서 예약 장부를 꺼냈다. 사진은 아까 끼운 자리에 있었다. 모서리가 접히지 않도록 빼낸 뒤 큰 거울 앞으로 갔다.

우주가 점퍼를 입으며 따라왔다.

“다시 숨겨?”

“넣어 두는 거야.”

“나는 안 보여.”

“엄마는 어디 있는지 알아.”

윤슬은 사진을 거울 모서리 뒤에 다시 꽂았다. 사진 속 두 사람의 머리부터 가려지고, 골목 바닥만 조금 남았다. 손끝으로 그것까지 밀어 넣었다.

‘그러니까. 약속 때문에 다 놓쳤지.’

우주가 점퍼 지퍼의 양쪽을 내밀었다. 윤슬은 무릎을 굽혀 지퍼를 맞췄다. 아이의 턱에 닿기 전에 손을 멈추고 가방을 챙겼다.

우주는 가방 안에 공책을 넣으려다 펼쳐서 윤슬에게 보여 주었다. 그림 속 두 사람은 머리 모양이 같았다.

『엄마 옛날 친구는 아저씨랑 머리가 똑같다. 엄마가 그렇게 깎았나.』

(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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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슬은 받은 빗을 선반 위에 놓았다. 빗살이 아래로 가게 놓았다가 다시 뒤집었다.맞은편 의자에 앉은 이든은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평소 손님을 앉히던 자리였다. 윤슬은 의자 높이를 낮추는 발판을 밟으려다 발을 거뒀다.“불편하면 뒤로 조금 밀어.”“괜찮아.”이든의 무릎과 윤슬의 무릎 사이에 바닥 타일의 줄이 놓여 있었다. 윤슬은 그 줄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뭐부터 듣고 싶어?”이든이 입을 열기까지 조금 걸렸다.“언제 알았어.”“네가 떠나고, 다음 달.”윤슬은 귀 뒤로 넘긴 앞머리를 다시 눌렀다.“1월 둘째 주였어. 8주라고 하더라.”이든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움직였다. 날짜를 세지는 않았다. 바지에 생긴 주름을 펴다가 손을 멈췄다.“혼자 갔어?”“응.”“그때도 혼자 살았잖아.”“살고 있었지.”윤슬은 의자 끝에 놓인 수건을 집었다. 손님 목에 둘렀다가 세탁하려고 빼 두었다. 접힌 자리가 어긋나 있어 모서리를 맞췄다.“전화할까 했어. 병원 나와서.”이든이 윤슬을 보았다.“안 했어.”“왜.”“말하면 돌아올 거잖아.”윤슬은 수건을 무릎에 내려놓았다.“연수고 뭐고, 다 두고 올 사람이었으니까.”이든은 대답하지 않았다. 의자 팔걸이를 잡았던 손이 천천히 풀렸다.“안 왔을 거라고는 못 하겠어.”“알아.”“그래도 알았어야 했어.”윤슬은 수건 모서리에서 손을 뗐다.“응. 그건 알아.”더 보탤 말은 없었다.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놓고 소식을 전하면, 이든은 돌아올 테니까. 그걸 알고도 말하지 않은 것은 윤슬이었다.“우리 붙잡지 않기로 했잖아. 연락도 하지 않기로.”“했지.”“3년 뒤 겨울에 둘 다 혼자면 다시 보기로 했고.”이든의 시선이 선반 위 빗에 잠깐 머물렀다.“그때 말하려고 했어. 네가 돌아오면.”윤슬은 무릎 위 수건을 한 번 더 접었다. 더 작게 접을 필요는 없었는데 손이 멈추지 않았다.“그때는 우주도 같이 데리고 나갈 수 있겠다 싶었어.”“골목에 왔어?”“세 번.”짧게 답하자

  • 일곱 살 아들의 아빠가 돌아왔다   8화. 응

    우주가 골목 끝에서 한 번 더 손을 당겼다.“엄마, 여기 밝은 데.”빌라 입구의 등이 켜져 있었다. 아이는 불빛 아래로 먼저 발을 넣고 새로 짧아진 머리를 만졌다. 윤슬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현관에서 신발을 벗은 우주가 양손을 폈다.“아저씨는 뭘 기다려?”윤슬은 아이 점퍼의 지퍼를 내려 주었다.“언제?”“아까. 가게 앞에서.”점퍼 안쪽에 머리카락 하나가 남아 있었다. 윤슬은 손톱으로 집어 떼고 옷을 걸었다.“가게 문 닫고 있었겠지.”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고 욕실로 들어가 발판을 당겼다. 물 흐르는 소리가 난 뒤에도 윤슬은 현관에 서 있었다.가방 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선우가 보내 준 사진이 화면에 남아 있었다. 머리가 똑같아진 두 아이가 나란히 웃고 있었다.윤슬은 화면을 끄고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다.▷4월 8일 수요일 아침, 우주는 빌라 계단을 내려오며 가방 끈을 고쳐 멨다.“엄마, 이쪽.”아이가 모과나무 쪽으로 발을 돌렸다. 윤슬은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골목 바깥쪽을 가리켰다.“오늘은 저쪽으로 가자.”“또?”우주가 멈춰 섰다.그 길로 가면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접시 하나 앞을 지나게 됐다. 유리문 안에서 빵을 자르는 손이나 카운터를 닦는 이든의 등을 볼 수 있었다. 윤슬은 요 며칠 골목 어귀를 돌아서 다녔다.“여기도 길 있잖아.”“아저씨 집 앞에도 있어.”“알아.”“엄마는 왜 저 집 앞만 돌아가?”윤슬은 아이 가방에서 한쪽으로 기운 물통을 바로 넣었다. 뚜껑이 잘 잠겼는지 확인하고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엄마가 생각할 게 있어서.”우주가 윤슬의 얼굴을 올려다봤다.“걸으면서?”“응.”“그럼 천천히 가.”아이는 먼저 달려가지 않았다. 윤슬 옆에 붙어 작은 걸음으로 걸었다. 파란 운동화 앞코가 바닥의 금을 넘을 때마다 가방에 달린 고리가 흔들렸다.윤슬은 아이 손을 조금 느슨하게 잡았다.“우주는 빨리 가도 돼.”“손 잡았잖아.”우주가 잡힌 손을 들어 보였다. 윤슬은

  • 일곱 살 아들의 아빠가 돌아왔다   7화.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뭘 세

    윤슬은 공책을 덮어 가방 옆에 놓았다. 예약 장부에는 다음 토요일 오후가 한 칸 비어 있었다. 우주 머리를 깎으려고 남겨 둔 자리였다.방 안에서 이불 끌어당기는 소리가 났다. 윤슬은 장부를 닫고 아이 곁으로 갔다. 베개 아래에 눌린 머리카락을 빼 주자 우주가 잠결에 고개를 돌렸다. 귀를 덮은 머리끝이 손등을 간질였다.▷4월 4일 토요일, 우주는 미용실 의자 앞에서 두 발을 붙이고 섰다.“다음에.”윤슬은 아이 목에 두를 작은 수건을 펴 들었다.“오늘 하기로 했잖아.”“내일.”“내일도 머리는 깎아야지.”우주는 귀를 양손으로 덮었다. 머리카락까지 눌려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왔다.윤슬은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췄다.“귀 안 자르는 거 알지?”“아는데.”“그럼 앉자.”“싫은 건 알아도 싫어.”윤슬은 펴 놓은 수건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예약한 손님이 늦는다는 연락을 해 와서 잠깐 틈이 났다. 그사이에 끝낼 생각이었지만 우주는 의자 가까이에도 가지 않았다.“머리가 눈 찌르잖아.”“눈 감으면 돼.”우주가 눈을 꼭 감았다. 그러고는 한쪽만 살짝 뜨고 윤슬의 손을 살폈다.가위는 아직 허리 가위집에 있었다.“엄마, 조금만 잘라.”“응. 조금만.”“조금보다 더 조금.”“먼저 앉아 봐.”윤슬은 아이를 안아 의자 위에 놓았다. 높이를 맞추려고 받침을 올리고 덮개를 펼치자 우주의 턱이 벌써 가슴 쪽으로 내려갔다.지난번에도 이 자리에서 울었다. 목에 머리카락이 붙는다고 울고, 털어 주려고 덮개를 풀면 아직 안 끝났느냐고 울었다. 윤슬은 오늘 쓸 수건을 두 장 준비해 두었다.“목에 안 들어가게 할게.”우주는 수건을 두른 목을 만졌다.“여기 다 막아.”“막았어.”“뒤도.”윤슬은 목덜미 쪽을 한 번 더 접었다. 우주가 고개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만 덮개를 여미고 빗을 꺼냈다.빗살이 앞머리를 지나기도 전에 아이의 어깨가 올라갔다.“아직 안 잘랐어.”“지금 자르잖아.”“빗는 거야.”우주의 입이 벌어졌다. 윤슬은 가위를 꺼내려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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