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일곱 살 아들의 아빠가 돌아왔다 / 7화.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뭘 세

Share

7화.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뭘 세

Author: Jino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10-18 21:22:17

윤슬은 공책을 덮어 가방 옆에 놓았다. 예약 장부에는 다음 토요일 오후가 한 칸 비어 있었다. 우주 머리를 깎으려고 남겨 둔 자리였다.

방 안에서 이불 끌어당기는 소리가 났다. 윤슬은 장부를 닫고 아이 곁으로 갔다. 베개 아래에 눌린 머리카락을 빼 주자 우주가 잠결에 고개를 돌렸다. 귀를 덮은 머리끝이 손등을 간질였다.

▷

4월 4일 토요일, 우주는 미용실 의자 앞에서 두 발을 붙이고 섰다.

“다음에.”

윤슬은 아이 목에 두를 작은 수건을 펴 들었다.

“오늘 하기로 했잖아.”

“내일.”

“내일도 머리는 깎아야지.”

우주는 귀를 양손으로 덮었다. 머리카락까지 눌려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왔다.

윤슬은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췄다.

“귀 안 자르는 거 알지?”

“아는데.”

“그럼 앉자.”

“싫은 건 알아도 싫어.”

윤슬은 펴 놓은 수건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예약한 손님이 늦는다는 연락을 해 와서 잠깐 틈이 났다. 그사이에 끝낼 생각이었지만 우주는 의자 가까이에도 가지 않았다.

“머리가 눈 찌르잖아.”

“눈 감으면 돼.”

우주가 눈을 꼭 감았다. 그러고는 한쪽만 살짝 뜨고 윤슬의 손을 살폈다.

가위는 아직 허리 가위집에 있었다.

“엄마, 조금만 잘라.”

“응. 조금만.”

“조금보다 더 조금.”

“먼저 앉아 봐.”

윤슬은 아이를 안아 의자 위에 놓았다. 높이를 맞추려고 받침을 올리고 덮개를 펼치자 우주의 턱이 벌써 가슴 쪽으로 내려갔다.

지난번에도 이 자리에서 울었다. 목에 머리카락이 붙는다고 울고, 털어 주려고 덮개를 풀면 아직 안 끝났느냐고 울었다. 윤슬은 오늘 쓸 수건을 두 장 준비해 두었다.

“목에 안 들어가게 할게.”

우주는 수건을 두른 목을 만졌다.

“여기 다 막아.”

“막았어.”

“뒤도.”

윤슬은 목덜미 쪽을 한 번 더 접었다. 우주가 고개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만 덮개를 여미고 빗을 꺼냈다.

빗살이 앞머리를 지나기도 전에 아이의 어깨가 올라갔다.

“아직 안 잘랐어.”

“지금 자르잖아.”

“빗는 거야.”

우주의 입이 벌어졌다. 윤슬은 가위를 꺼내려던 손을 멈추고 거울 앞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우주. 엄마 봐.”

아이는 거울 속 윤슬을 보지 않았다. 덮개 아래에서 무릎을 접었다 펴더니 입술을 꼭 눌렀다. 눈가에 물기가 차올랐다.

그때 유리문이 열렸다.

이든이 문턱 안에 멈춰 섰다. 우주의 얼굴을 보고, 윤슬이 내려놓은 빗을 보았다.

“머리 깎아?”

우주는 대답 대신 덮개를 들어 얼굴을 가리려 했다.

윤슬이 아이 손을 가볍게 막았다.

“손님 없는 시간이야?”

“응. 잠깐 쉬어.”

이든은 문을 닫고 의자 가까이 왔다. 우주는 덮개 위로 눈만 내놓았다.

“아저씨는 안 깎아?”

“나는 깎았어.”

“또 길어.”

“길면 또 깎아야지.”

우주의 눈이 윤슬 쪽으로 돌아왔다. 윤슬은 빗을 손바닥에 놓고 기다렸다.

이든이 빈 의자를 조금 끌어와 우주 앞에 앉았다. 큰 무릎이 덮개 끝에 닿지 않도록 의자를 뒤로 물렸다.

“손 잡아 줄까?”

우주는 덮개 아래에서 한 손을 내밀었다가 다시 감췄다.

“끝날 때까지?”

“응.”

“안 가?”

“다 깎을 때까지 여기 있을게.”

윤슬은 이든의 얼굴을 보았다. 이든은 우주가 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아이가 왼손을 내밀었다. 이든이 손바닥을 받쳐 잡자 우주는 손가락을 하나씩 구부려 보았다.

“아저씨 손 커.”

“네 손은 작고.”

“많이 깎아서?”

이든의 입가가 조금 움직였다.

“많이 자라서.”

우주는 잡힌 손을 내려다보느라 턱을 숙였다. 윤슬은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턱 조금만 올려.”

이든이 잡은 손을 조금 높이 들었다. 우주가 손을 따라 고개를 올렸다.

윤슬은 그 틈에 앞머리를 빗었다.

▷

가위가 처음 닫힐 때 우주의 눈이 꼭 감겼다.

윤슬은 잘린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받아 덮개 아래쪽에 내려놓았다. 얼굴로 떨어지는 것이 없자 아이가 한쪽 눈을 떴다.

“잘랐어?”

“응.”

“벌써?”

“앞에 조금.”

우주는 다른 눈도 떴다. 거울 속 앞머리를 보고 눈썹을 들어 올렸다.

“눈 안 찌르네.”

“옆에도 할게.”

“귀는 여기 있어.”

우주가 잡히지 않은 손으로 귀를 가리켰다.

“엄마도 알아.”

윤슬은 빗으로 귀 위의 머리카락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 사이에 끼운 머리끝을 자를 동안 이든은 아이의 손을 놓지 않았다.

우주의 발끝이 의자 아래에서 몇 번 움직였다. 파란 운동화 앞코가 이든의 신발에 닿기 직전에 멈췄다.

“발도 가만히.”

윤슬의 말에 우주가 발을 쭉 폈다가 다시 모았다.

“손만 가만히 하면 안 돼?”

“몸이 움직이면 머리도 움직여.”

“머리만 두고 싶다.”

이든이 아이의 손등을 엄지로 한 번 눌렀다.

“조금 남았어.”

윤슬은 거울을 보며 양쪽 길이를 맞췄다. 우주가 입을 벌리고 웃어서 잠깐 가위를 멈춰야 했다. 울음을 달래느라 멈추는 것이 아닌 건 처음이었다.

그때 문밖에서 지호가 유리에 손바닥을 붙였다.

선우가 뒤따라 문을 열었다.

“우주 깎고 있었네. 우리도 지금 괜찮아요?”

윤슬은 예약 장부 쪽을 보고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네. 조금 기다리시면 돼요.”

지호는 가방을 엄마에게 맡기고 우주 옆으로 다가왔다. 윤슬이 한 손으로 빈 의자를 가리켰다.

“거기서 봐 줘. 가위 쓰고 있어서.”

지호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두 다리가 앞뒤로 흔들렸다.

우주가 거울로 지호를 보았다.

“나 안 울었어.”

“왜?”

“손 잡았어.”

우주는 이든과 잡은 손을 조금 들어 보였다. 이든이 함께 들어 주었다가 천천히 내렸다.

지호는 자기 손을 폈다가 쥐었다.

“나도 안 울어.”

“나도 이제 안 울어.”

윤슬은 대답 대신 우주의 머리를 조금 옆으로 돌렸다. 목덜미를 정리하고 부드러운 솔로 귀 뒤의 머리카락을 털었다.

우주는 간지러운지 어깨를 올렸지만 손을 빼지는 않았다.

“거기 있어?”

“머리카락? 다 털었어.”

“한 개도?”

윤슬은 수건을 풀기 전 목 언저리를 다시 살폈다.

“응. 이제 일어나도 돼.”

우주는 바로 내려오지 않았다. 이든과 잡은 손을 보고, 거울 속 자기 머리를 보았다.

“진짜 끝?”

“끝.”

그제야 손을 놓았다.

이든의 손바닥 가운데에 아이가 잡고 있던 자리가 조금 붉어져 있었다. 윤슬은 덮개를 털어 머리카락을 한데 모았다. 우주는 목에 둘렀던 수건을 만지며 의자에서 내려왔다.

“엄마, 눈물 안 났어.”

“응. 안 났네.”

“수건 남았네.”

윤슬은 준비해 둔 두 번째 수건을 접어 선반에 놓았다.

“다음에 쓰면 되지.”

우주가 그 수건을 한 번 더 보고 자기 자리로 갔다. 걸어가는 동안 손으로 머리를 만지느라 발이 조금 느렸다.

▷

지호는 의자에 앉자마자 거울 속 우주를 가리켰다.

“우주랑 똑같이 깎아 줘요.”

선우가 아이의 정수리를 눌러 방향을 바로 했다.

“길이는 좀 남겨도 돼요. 얘가 머리를 묶겠다고 아침부터 끈을 찾더라고요.”

“지금은 우주처럼.”

지호가 거울을 보며 말했다.

윤슬은 웃고 빗을 들었다.

“그럼 앞머리부터.”

우주는 작은 책상 앞에 앉아 공책을 펼쳤다. 이든은 비어 있는 의자에 잠깐 더 앉았다. 윤슬이 지호의 머리를 자르는 동안 두 사람의 모습이 거울 한쪽에 들어왔다.

우주가 왼손으로 파란 크레파스를 집었다. 공책에 둥근 얼굴을 그리고 머리 부분을 짧게 칠했다.

이든이 그 손을 보았다.

“왼손으로 그리는구나.”

“밥도.”

우주는 크레파스를 든 채 숟가락으로 뜨는 흉내를 냈다.

이든이 자기 왼손을 펴 보였다.

“나도 왼손이야.”

“알아. 아저씨가 말했어.”

“그랬지.”

“아저씨가 빵도 잘랐어.”

윤슬은 맞은편에서 보았던 열린 부엌을 떠올리지 않고도 볼 수 있었다. 미용실 유리문 너머, 철구가 카운터 위의 빵을 옮기고 있었다. 조금 전 이든이 자르고 나온 빵인지 일정한 두께로 놓여 있었다.

우주는 이든의 손을 자기 손 옆에 댔다. 손가락 끝을 맞추려다 손목을 앞으로 밀었다.

“나는 여기까지네.”

“더 자랄 거야.”

“아저씨만큼?”

“그건 더 자라 봐야 알아.”

우주는 손을 거두고 크레파스를 다시 잡았다.

“내 생일은 9월이야.”

윤슬은 빗을 멈추지 않았다. 아이는 요즘 생일 이야기를 자주 했다. 지호의 생일이 먼저 지나가서인지, 자기 차례가 아직 멀었다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했다.

“9월 12일에 일곱 살 돼.”

윤슬이 잘린 머리카락을 손가락에서 털었다.

“지금도 일곱 살이지. 생일이 9월 12일인 거고.”

우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생일엔?”

“생일 축하하는 거지.”

“또?”

“응. 또.”

우주는 만족한 듯 공책 모서리에 동그라미를 하나 더 그렸다.

“많이 남았어?”

이든이 바로 답하지 않았다.

윤슬은 거울로 이든을 보았다. 아이의 손 옆에 놓였던 큰 손이 무릎 위로 내려가 있었다.

엄지가 접혔다.

이든의 입술이 소리 없이 움직이다가 아주 작게 말이 새어 나왔다.

“아홉.”

다음 손가락이 접혔다.

“열.”

윤슬은 지호의 앞머리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가위를 닫았다.

“열하나.”

가위 끝에 붙은 짧은 머리카락이 떨어졌다.

“열둘.”

이든의 손이 멈췄다.

접히지 않은 손가락 하나가 무릎 위에 남아 있었다. 고개는 공책 쪽으로 향해 있었지만 눈은 조금 아래에 머물렀다. 입가에 남아 있던 웃음도 없어졌다.

윤슬은 가위를 든 손을 내렸다.

‘12월.’

지호가 고개를 돌리려 해서 윤슬은 손바닥으로 정수리를 가볍게 짚었다.

“앞에 봐 줘.”

우주가 의자에서 몸을 기울였다.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뭘 세?”

이든은 접었던 손가락을 천천히 폈다.

“날짜.”

“내 생일?”

이든이 고개를 들었다.

“응.”

“손으로 세면 빨리 와?”

“아니. 기다려야 와.”

우주는 크레파스를 내려놓고 자기 손가락을 폈다. 한 손을 세고 다른 손도 세더니 두 손을 무릎 위에 놓았다.

“나는 열 개야.”

이든은 아이가 편 손을 보고 있었다.

윤슬은 빗으로 지호의 머리를 다시 넘겼다. 한 번 빗은 자리를 다시 빗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 손을 멈췄다.

이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 볼게.”

우주가 공책을 들어 보였다.

“아저씨도 그렸어.”

종이에는 짧은 머리의 아이 옆에 손이 큰 사람이 있었다. 손가락이 길게 뻗어 공책 가장자리까지 닿았다.

이든은 몸을 숙여 그림을 보았다.

“손이 크네.”

“아저씨 거니까.”

“그러네.”

이든은 윤슬 쪽을 보았다. 윤슬도 거울이 아닌 문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말은 없었다.

이든이 먼저 문손잡이를 잡았다. 밖으로 나간 뒤에도 문을 바로 놓지 않고 천천히 닫았다. 우주는 손을 흔들다가 공책에 손가락을 하나 더 그렸다.

윤슬은 지호의 목덜미에 붙은 머리카락을 털었다.

▷

선우는 두 아이를 큰 거울 앞에 나란히 세웠다.

“여기 봐. 둘이 똑같네.”

우주는 지호의 머리를 만지려 했고 지호는 우주의 머리를 만지려 했다. 두 손이 중간에서 부딪쳤다.

“사진부터 찍자.”

선우가 휴대전화를 들었다.

우주는 양손을 옆구리에 붙였다. 지호도 따라 했다. 둘은 거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느라 선우 쪽을 보지 않았다.

윤슬이 거울 옆으로 비켜 섰다.

“엄마들 봐야지.”

아이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선우가 그 틈에 사진을 찍고 화면을 내려다봤다.

“우주 엄마한테도 보내 줄게요.”

우주는 사진보다 지호의 앞머리에 관심이 많았다.

“너도 눈 안 찔러?”

지호가 눈을 크게 떴다.

“안 찔러.”

“나도.”

두 아이가 눈을 뜬 채 서로를 보고 버텼다. 먼저 눈을 감은 건 지호였다. 우주가 웃자 윤슬은 아이의 어깨에 묻은 머리카락 한 올을 떼었다.

선우와 지호가 나간 뒤 우주는 작은 책상으로 돌아왔다. 윤슬은 바닥을 쓸고 받침을 닦았다.

의자 밑에서 짧은 머리카락이 빗자루에 모였다. 우주가 의자를 뒤로 빼며 그걸 보았다.

“내 거야?”

“지호 것도 섞였어.”

“똑같이 잘라서 몰라?”

“응.”

우주는 새로 짧아진 머리를 만졌다.

“그럼 같이 버려.”

윤슬은 쓰레받기를 비웠다. 허리를 펴고 보니 아이의 귀가 온전히 드러나 있었다. 늘 귀 뒤에 걸리던 머리카락이 없어서 얼굴이 조금 달라 보였다.

휴대전화가 한 번 울렸다. 선우가 보낸 사진이었다.

윤슬은 화면을 키웠다. 우주는 두 손을 옆구리에 붙인 채 웃고 있었다. 머리를 깎은 날 찍은 사진 중에 눈가가 붉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

“엄마, 나도 봐.”

윤슬이 화면을 낮춰 주자 우주가 자기 얼굴을 손끝으로 짚었다.

“눈물 없어.”

“그러네.”

“아저씨한테도 보여 줘.”

윤슬은 화면을 끄지 못한 채 잠깐 들고 있었다.

“다음에 오면.”

우주는 고개를 끄덕이고 공책으로 돌아갔다. 윤슬은 휴대전화를 예약 장부 옆에 내려놓았다.

▷

마지막 손님의 머리를 말리고 나니 문밖이 어두웠다.

우주는 탁 할머니 집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와 자기 자리에 앉아 있었다. 윤슬은 아이가 끼운 단추를 풀어 점퍼를 벗기고 정리를 마쳤다. 밀린 수건을 빨고 샴푸대까지 닦자 맞은편 식당에서도 손님이 나왔다.

열린 문 사이로 빵 굽는 냄새가 잠깐 들어왔다. 이든은 부엌에서 남은 빵을 자르고 있었다. 왼손의 칼이 도마에 닿을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다.

윤슬은 닦던 거울에서 손을 뗐다.

이든이 칼을 놓고 문 쪽을 보았다. 윤슬은 젖은 천을 접어 샴푸대 옆에 걸었다.

우주가 가방 지퍼를 올렸다.

“엄마, 가자.”

“응. 점퍼 입어.”

아이는 점퍼를 입으며 거울 앞으로 갔다. 턱을 들고 양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뒤에도 잘랐어?”

“잘랐지.”

“뒤는 못 보네.”

윤슬은 작은 손거울을 꺼내 아이 뒤에 들었다. 우주가 큰 거울 속 작은 거울을 찾느라 몸을 움직였다.

“가만히 있어야 보여.”

“아, 찾았다.”

우주는 짧아진 목덜미를 보고 손으로 만졌다.

“뒤도 나네.”

윤슬은 손거울을 내려놓고 아이의 지퍼를 올려 주었다.

불을 끄고 문을 잠글 때 맞은편 간판도 꺼졌다. 우주가 문 앞의 작은 턱을 내려와 기다렸다.

윤슬은 열쇠를 가방에 넣고 아이 손을 잡았다.

모과나무를 지나자 우주가 빈손으로 머리끝을 만졌다. 손가락 사이에 잡히는 것이 별로 없는지 몇 번 집었다 놓았다.

“엄마.”

“응.”

“다음에도 손 잡아?”

윤슬의 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누가.”

“아저씨.”

윤슬은 아이 손을 다시 고쳐 잡았다.

“그때 물어보자.”

우주는 더 묻지 않았다. 파란 운동화로 바닥의 밝은 부분만 골라 밟았다. 골목 끝으로 가기 전에 윤슬은 뒤를 돌아봤다.

불 꺼진 접시 하나 앞에 이든이 서 있었다.

유리문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였다. 두 손을 내려뜨린 채 맞은편 미용실을 보고 있었다. 불이 꺼진 거울과 빈 의자 둘이 문 너머로 희미하게 보였다.

윤슬은 걸음을 멈췄다.

우주가 잡힌 손을 조금 당겼다.

“엄마?”

이든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윤슬도 부르지 않았다.

가방 안에서 휴대전화가 손목에 닿았다. 조금 전에 본 사진 속 우주는 웃고 있었다. 윤슬은 아이의 손을 놓지 않고 돌아서 걸었다.

『아저씨가 손가락을 셌다. 나도 셌다. 열 개. 아저씨는 열두 개까지 셌다.』

(7화 끝)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atest chapter

  • 일곱 살 아들의 아빠가 돌아왔다   12화. 우리 셋이 손잡고 건너

    우주는 사진이 없는 장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여기는 나중에 넣어?”“응. 또 찍으면.”“나 안 잘 때 찍어.”윤슬은 아이 손 밑에서 투명한 주머니를 펴 주었다. 우주는 빈 칸을 하나씩 짚다가 앨범을 덮었다. 아침을 먹으러 가면서도 의자는 식탁 끝에 그대로 두었다.윤슬은 의자를 안으로 밀려다 멈췄다. 두 사람이 앉아 쓰던 식탁에는 의자가 하나 더 있었다. 우주 가방을 놓거나 빨래를 잠깐 걸쳐 두던 자리였다.의자에 걸린 수건만 걷어 빨래 바구니에 넣었다.▷4월 25일 토요일 아침, 우주는 미용실 거울 앞에서 모자를 고쳐 썼다.파란 챙을 눈썹까지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윤슬이 가방에 물병을 넣는 동안에도 고개를 옆으로 돌려 보았다.“엄마, 나 안 보여?”“다 보여.”“눈은?”“챙 때문에 조금.”우주는 모자를 뒤로 돌려 썼다. 거울 속에서 눈이 다 보이자 입을 벌리고 웃었다.윤슬은 예약 장부를 다시 확인했다. 오전 예약 두 칸 사이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마지막 손님의 파마가 끝나는 시간을 손목시계로 세어 본 뒤 장부를 덮었다.“엄마는 조금 늦게 가. 아저씨랑 먼저 가 있어.”“얼마나?”“점심 먹기 전에는 갈 거야.”“그럼 빵 남길게.”“네 것은 다 먹어.”“엄마는?”“엄마 것도 있어.”말을 마치자 유리문 밖으로 이든이 보였다. 앞치마 대신 얇

  • 일곱 살 아들의 아빠가 돌아왔다   11화. 아저씨가 우리 집에 왔다

    우주는 유리문을 놓고도 한 번 더 뒤를 돌아봤다. 이든이 다시 칼을 든 것을 보고서야 윤슬 옆으로 붙었다.“엄마, 아저씨는 맨날 저기서 자?”“가게 뒤에 방이 있어.”“빵 옆에서?”“빵은 부엌에 있고.”우주는 가방 끈을 끌어 올렸다. 윤슬은 아이 어깨에서 뒤집힌 끈을 펴 주고 빌라 쪽으로 걸었다. 우주는 모과나무를 지날 때까지 식당 창을 두 번 더 봤다.▷4월 18일 토요일, 윤슬은 마지막 손님의 목에 붙은 머리카락을 털었다.거울 아래에는 우주가 그린 종이가 놓여 있었다. 파란 지붕 밑에 네모난 창이 세 개였다. 실제 집에는 없는 큰 창도 하나 그려져 있었다.“이건 어디야?”손님이 나간 뒤 윤슬이 물었다.“우리 집.”“창이 이렇게 많아?”“내 방에 하나 더.”“왜?”“아저씨네 보게.”윤슬은 빗에 낀 머리카락을 빼다가 손을 멈췄다. 빌라에서는 맞은편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우주는 그걸 모르지 않으면서 창을 하나 더 그렸다.“집에서는 잘 자면 돼.”“나 잘 자.”“아침에는 누가 깨워도 눈 안 뜨잖아.”“눈도 자는 거야.”윤슬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우주는 대답을 잘했다고 여겼는지 종이 아래에 자기 이름을 크게 썼다.미용실 바닥을 쓸고 수건을 세탁 바구니에 담았을 때, 맞은편에서 철구가 손을 흔들었다. 우주가 문 앞으로 달려갔다가 윤슬을 돌아봤다.

  • 일곱 살 아들의 아빠가 돌아왔다   10화. 아저씨는 아빠 없어

    윤슬은 대답 대신 빵이 든 통을 우주 쪽으로 밀었다. 우주는 수프를 한 숟가락 떠서 불고, 윤슬 앞에도 빵 한 조각을 놓았다.“엄마도 먹어.”“먹고 있어.”“더.”윤슬은 아이가 놓아 준 빵을 집었다. 예약 장부 옆 영수증이 열린 문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뒤집혔다. 윤슬은 빈 통으로 한쪽 끝을 눌러 두었다.▷토요일 예약 장부에는 빈 줄이 거의 없었다.윤슬은 손님 머리에 파마 약을 바르고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샴푸대에는 씻어야 할 수건이 쌓여 있었고, 다음 손님은 창가 의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4월 11일. 장부 위에 적힌 날짜 옆으로 하원 시간이 작게 쓰여 있었다.탁 할머니는 아침에 허리가 뻐근하다며 오늘은 계단을 덜 오르겠다고 했다. 윤슬은 우주를 데려다주고 돌아올 시간을 비워 두었지만, 앞 손님의 염색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많이 남았어요?”거울 속 손님이 물었다.“조금만 더요. 안쪽부터 확인할게요.”윤슬은 머리카락 한 가닥을 풀어 보았다. 시간을 줄이려고 서두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다시 말아 고정하고 손을 씻었다.맞은편 유리문 너머로 철구가 빈 접시를 들고 움직였다. 이든은 카운터 끝에 놓인 주문서를 보고 있었다.윤슬은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아직 번호를 묻지 않았다.기다리는 손님에게 잠깐 양해를 구하고 문을 열었다. 골목으로 나오자 이든이 고개를 들었다. 윤슬은 건너지 않고 손으로 오라고 했다.이든은 철구에게 짧게 말을 건넨 뒤 가게 밖으로 나왔다.“무슨 일 있어?”윤슬은 앞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오늘 하원만.”이든이 미용실 안을 한 번 보았다. 창가 손님이 잡지를 넘겼고, 파마 기계의 짧은 소리가 문밖까지 들렸다.“할게.”“4시 반. 모과 어린이집.”“알아. 길은 우주가 알려 줬어.”“선생님한테는 내가 전화할게. 네가 간다고.”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윤슬은 가위집에서 빠져나온 빗을 안으로 밀었다. 부탁은 끝났는데 손이 다른 일을 찾았다.“바쁘면 말해. 내가 손님한테 양해 구하고 가면 돼

  • 일곱 살 아들의 아빠가 돌아왔다   9화. 엄마 눈이 왜 부었어

    윤슬은 받은 빗을 선반 위에 놓았다. 빗살이 아래로 가게 놓았다가 다시 뒤집었다.맞은편 의자에 앉은 이든은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평소 손님을 앉히던 자리였다. 윤슬은 의자 높이를 낮추는 발판을 밟으려다 발을 거뒀다.“불편하면 뒤로 조금 밀어.”“괜찮아.”이든의 무릎과 윤슬의 무릎 사이에 바닥 타일의 줄이 놓여 있었다. 윤슬은 그 줄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뭐부터 듣고 싶어?”이든이 입을 열기까지 조금 걸렸다.“언제 알았어.”“네가 떠나고, 다음 달.”윤슬은 귀 뒤로 넘긴 앞머리를 다시 눌렀다.“1월 둘째 주였어. 8주라고 하더라.”이든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움직였다. 날짜를 세지는 않았다. 바지에 생긴 주름을 펴다가 손을 멈췄다.“혼자 갔어?”“응.”“그때도 혼자 살았잖아.”“살고 있었지.”윤슬은 의자 끝에 놓인 수건을 집었다. 손님 목에 둘렀다가 세탁하려고 빼 두었다. 접힌 자리가 어긋나 있어 모서리를 맞췄다.“전화할까 했어. 병원 나와서.”이든이 윤슬을 보았다.“안 했어.”“왜.”“말하면 돌아올 거잖아.”윤슬은 수건을 무릎에 내려놓았다.“연수고 뭐고, 다 두고 올 사람이었으니까.”이든은 대답하지 않았다. 의자 팔걸이를 잡았던 손이 천천히 풀렸다.“안 왔을 거라고는 못 하겠어.”“알아.”“그래도 알았어야 했어.”윤슬은 수건 모서리에서 손을 뗐다.“응. 그건 알아.”더 보탤 말은 없었다.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놓고 소식을 전하면, 이든은 돌아올 테니까. 그걸 알고도 말하지 않은 것은 윤슬이었다.“우리 붙잡지 않기로 했잖아. 연락도 하지 않기로.”“했지.”“3년 뒤 겨울에 둘 다 혼자면 다시 보기로 했고.”이든의 시선이 선반 위 빗에 잠깐 머물렀다.“그때 말하려고 했어. 네가 돌아오면.”윤슬은 무릎 위 수건을 한 번 더 접었다. 더 작게 접을 필요는 없었는데 손이 멈추지 않았다.“그때는 우주도 같이 데리고 나갈 수 있겠다 싶었어.”“골목에 왔어?”“세 번.”짧게 답하자

  • 일곱 살 아들의 아빠가 돌아왔다   8화. 응

    우주가 골목 끝에서 한 번 더 손을 당겼다.“엄마, 여기 밝은 데.”빌라 입구의 등이 켜져 있었다. 아이는 불빛 아래로 먼저 발을 넣고 새로 짧아진 머리를 만졌다. 윤슬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현관에서 신발을 벗은 우주가 양손을 폈다.“아저씨는 뭘 기다려?”윤슬은 아이 점퍼의 지퍼를 내려 주었다.“언제?”“아까. 가게 앞에서.”점퍼 안쪽에 머리카락 하나가 남아 있었다. 윤슬은 손톱으로 집어 떼고 옷을 걸었다.“가게 문 닫고 있었겠지.”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고 욕실로 들어가 발판을 당겼다. 물 흐르는 소리가 난 뒤에도 윤슬은 현관에 서 있었다.가방 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선우가 보내 준 사진이 화면에 남아 있었다. 머리가 똑같아진 두 아이가 나란히 웃고 있었다.윤슬은 화면을 끄고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다.▷4월 8일 수요일 아침, 우주는 빌라 계단을 내려오며 가방 끈을 고쳐 멨다.“엄마, 이쪽.”아이가 모과나무 쪽으로 발을 돌렸다. 윤슬은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골목 바깥쪽을 가리켰다.“오늘은 저쪽으로 가자.”“또?”우주가 멈춰 섰다.그 길로 가면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접시 하나 앞을 지나게 됐다. 유리문 안에서 빵을 자르는 손이나 카운터를 닦는 이든의 등을 볼 수 있었다. 윤슬은 요 며칠 골목 어귀를 돌아서 다녔다.“여기도 길 있잖아.”“아저씨 집 앞에도 있어.”“알아.”“엄마는 왜 저 집 앞만 돌아가?”윤슬은 아이 가방에서 한쪽으로 기운 물통을 바로 넣었다. 뚜껑이 잘 잠겼는지 확인하고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엄마가 생각할 게 있어서.”우주가 윤슬의 얼굴을 올려다봤다.“걸으면서?”“응.”“그럼 천천히 가.”아이는 먼저 달려가지 않았다. 윤슬 옆에 붙어 작은 걸음으로 걸었다. 파란 운동화 앞코가 바닥의 금을 넘을 때마다 가방에 달린 고리가 흔들렸다.윤슬은 아이 손을 조금 느슨하게 잡았다.“우주는 빨리 가도 돼.”“손 잡았잖아.”우주가 잡힌 손을 들어 보였다. 윤슬은

  • 일곱 살 아들의 아빠가 돌아왔다   7화. 아저씨는 손가락으로 뭘 세

    윤슬은 공책을 덮어 가방 옆에 놓았다. 예약 장부에는 다음 토요일 오후가 한 칸 비어 있었다. 우주 머리를 깎으려고 남겨 둔 자리였다.방 안에서 이불 끌어당기는 소리가 났다. 윤슬은 장부를 닫고 아이 곁으로 갔다. 베개 아래에 눌린 머리카락을 빼 주자 우주가 잠결에 고개를 돌렸다. 귀를 덮은 머리끝이 손등을 간질였다.▷4월 4일 토요일, 우주는 미용실 의자 앞에서 두 발을 붙이고 섰다.“다음에.”윤슬은 아이 목에 두를 작은 수건을 펴 들었다.“오늘 하기로 했잖아.”“내일.”“내일도 머리는 깎아야지.”우주는 귀를 양손으로 덮었다. 머리카락까지 눌려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왔다.윤슬은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췄다.“귀 안 자르는 거 알지?”“아는데.”“그럼 앉자.”“싫은 건 알아도 싫어.”윤슬은 펴 놓은 수건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예약한 손님이 늦는다는 연락을 해 와서 잠깐 틈이 났다. 그사이에 끝낼 생각이었지만 우주는 의자 가까이에도 가지 않았다.“머리가 눈 찌르잖아.”“눈 감으면 돼.”우주가 눈을 꼭 감았다. 그러고는 한쪽만 살짝 뜨고 윤슬의 손을 살폈다.가위는 아직 허리 가위집에 있었다.“엄마, 조금만 잘라.”“응. 조금만.”“조금보다 더 조금.”“먼저 앉아 봐.”윤슬은 아이를 안아 의자 위에 놓았다. 높이를 맞추려고 받침을 올리고 덮개를 펼치자 우주의 턱이 벌써 가슴 쪽으로 내려갔다.지난번에도 이 자리에서 울었다. 목에 머리카락이 붙는다고 울고, 털어 주려고 덮개를 풀면 아직 안 끝났느냐고 울었다. 윤슬은 오늘 쓸 수건을 두 장 준비해 두었다.“목에 안 들어가게 할게.”우주는 수건을 두른 목을 만졌다.“여기 다 막아.”“막았어.”“뒤도.”윤슬은 목덜미 쪽을 한 번 더 접었다. 우주가 고개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만 덮개를 여미고 빗을 꺼냈다.빗살이 앞머리를 지나기도 전에 아이의 어깨가 올라갔다.“아직 안 잘랐어.”“지금 자르잖아.”“빗는 거야.”우주의 입이 벌어졌다. 윤슬은 가위를 꺼내려던 손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