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ข้าสู่ระบบ우주가 골목 끝에서 한 번 더 손을 당겼다.
“엄마, 여기 밝은 데.”
빌라 입구의 등이 켜져 있었다. 아이는 불빛 아래로 먼저 발을 넣고 새로 짧아진 머리를 만졌다. 윤슬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은 우주가 양손을 폈다.
“아저씨는 뭘 기다려?”
윤슬은 아이 점퍼의 지퍼를 내려 주었다.
“언제?”
“아까. 가게 앞에서.”
점퍼 안쪽에 머리카락 하나가 남아 있었다. 윤슬은 손톱으로 집어 떼고 옷을 걸었다.
“가게 문 닫고 있었겠지.”
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고 욕실로 들어가 발판을 당겼다. 물 흐르는 소리가 난 뒤에도 윤슬은 현관에 서 있었다.
가방 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선우가 보내 준 사진이 화면에 남아 있었다. 머리가 똑같아진 두 아이가 나란히 웃고 있었다.
윤슬은 화면을 끄고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다.
▷
4월 8일 수요일 아침, 우주는 빌라 계단을 내려오며 가방 끈을 고쳐 멨다.
“엄마, 이쪽.”
아이가 모과나무 쪽으로 발을 돌렸다. 윤슬은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골목 바깥쪽을 가리켰다.
“오늘은 저쪽으로 가자.”
“또?”
우주가 멈춰 섰다.
그 길로 가면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접시 하나 앞을 지나게 됐다. 유리문 안에서 빵을 자르는 손이나 카운터를 닦는 이든의 등을 볼 수 있었다. 윤슬은 요 며칠 골목 어귀를 돌아서 다녔다.
“여기도 길 있잖아.”
“아저씨 집 앞에도 있어.”
“알아.”
“엄마는 왜 저 집 앞만 돌아가?”
윤슬은 아이 가방에서 한쪽으로 기운 물통을 바로 넣었다. 뚜껑이 잘 잠겼는지 확인하고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
“엄마가 생각할 게 있어서.”
우주가 윤슬의 얼굴을 올려다봤다.
“걸으면서?”
“응.”
“그럼 천천히 가.”
아이는 먼저 달려가지 않았다. 윤슬 옆에 붙어 작은 걸음으로 걸었다. 파란 운동화 앞코가 바닥의 금을 넘을 때마다 가방에 달린 고리가 흔들렸다.
윤슬은 아이 손을 조금 느슨하게 잡았다.
“우주는 빨리 가도 돼.”
“손 잡았잖아.”
우주가 잡힌 손을 들어 보였다. 윤슬은 그 손을 내려놓지 못한 채 어린이집까지 걸었다.
▷
첫 손님이 앉자 윤슬은 덮개를 펴고 목에 수건을 둘렀다.
“오늘은 어떻게 해 드릴까요?”
“옆이 자꾸 뜨니까 조금만 정리해 주세요.”
윤슬은 빗으로 옆머리를 눌러 보았다. 손님이 거울을 보며 원하는 길이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 정도요.”
“네. 여기 맞출게요.”
빗살 사이로 올라온 머리카락을 잘랐다. 가위가 닫힐 때마다 잘린 끝이 덮개 위에 떨어졌다. 길이를 맞추는 동안에는 다른 말을 고르지 않아도 됐다.
손님이 눈을 감았다. 윤슬은 귀 주변을 정리하고 목덜미에 붙은 머리카락을 털었다.
“아이 머리도 깎았던데요.”
“지난 토요일에요.”
“문밖에서 봤어요. 얌전히 앉아 있더라고요.”
윤슬은 솔을 내려놓고 작은 손거울을 들었다.
“뒤는 이 정도면 괜찮으세요?”
손님이 고개를 조금 돌렸다.
“네. 좋아요.”
계산을 마치고 문을 열어 주자 맞은편 유리문도 열렸다. 철구가 빈 상자를 안고 나왔다. 상자가 턱에 걸려 조금 기울자 안에 남아 있던 종이 포장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윤슬은 손님을 보내고 미용실 문을 닫았다.
철구가 상자를 내려놓는 사이 이든이 나와 흩어진 종이를 주웠다. 종이 하나가 미용실 쪽으로 굴러왔다. 윤슬은 문을 다시 열고 그것을 집었다.
이든이 몇 걸음 건너왔다.
윤슬은 문턱 안에서 종이를 내밀었다.
“여기.”
“고마워.”
이든은 구겨진 종이를 상자에 넣었다. 손가락 마디에 붙은 종이 조각을 떼다가 윤슬 쪽을 보았다.
“우주는 갔어?”
“응. 어린이집.”
“알았어.”
말이 끝났는데도 이든은 곧장 돌아가지 않았다. 윤슬은 문손잡이를 쥔 손을 옮겼다.
‘지금.’
이든의 시선이 손잡이 쪽으로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왔다.
윤슬은 문을 조금 더 열었다. 말을 꺼내려는데 미용실 안에서 전화가 울렸다.
“전화.”
이든이 먼저 말했다.
윤슬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예약 시간을 바꾸려는 손님이었다. 장부를 펼쳐 빈칸을 찾는 동안 문밖에서 상자를 접는 소리가 났다.
통화를 마쳤을 때 이든은 이미 부엌으로 들어가 있었다.
윤슬은 예약 장부 한쪽에 놓인 달력을 당겼다. 4월 25일에 그려 놓은 동그라미가 보였다. 봄 소풍까지는 아직 날이 남아 있었다.
펜 뚜껑을 닫았다.
남은 날을 세는 대신 오늘 칸을 손끝으로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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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무렵, 윤슬은 미용실 문에 잠깐 자리를 비운다는 안내를 걸고 약국으로 갔다.
나영은 안경을 밀어 올리며 윤슬을 보았다.
“어디 아파?”
“속이 좀 답답해.”
“뭐 먹었어?”
“많이는 안 먹었어.”
나영이 몇 가지를 더 묻고 소화제를 꺼냈다. 윤슬은 설명을 들으며 계산대 모서리를 엄지로 문질렀다.
“물은 마셨고?”
“응.”
“밥도 제때 먹어.”
윤슬은 약을 가방에 넣었다. 지갑을 넣어야 하는데 손이 계산대 위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나영이 약 봉투에서 손을 뗐다.
“할 말 있어?”
“우주가 묻더라.”
“뭐라고?”
“왜 저 집 앞만 돌아가냐고.”
나영은 윤슬의 손을 보고, 골목 쪽을 보았다.
“뭐라고 했는데?”
“생각할 게 있다고.”
“우주한테는 그렇다 쳐.”
윤슬은 지갑을 닫았다.
“그 사람도 아는 것 같아.”
나영이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윤슬은 안경 너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토요일에 우주 생일을 세더라. 손가락으로.”
“그래서?”
“12월에서 멈췄어.”
나영은 계산대에 놓인 물병을 윤슬 쪽으로 밀었다. 윤슬이 뚜껑을 열자 나영은 약 봉투를 다시 가리켰다.
“그건 먹는 법 보고 먹고.”
“응.”
“돌아가는 거 그만해.”
윤슬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병을 내려놓으니 계산대에 작은 물자국이 남았다. 휴지를 찾아 닦으려는데 나영이 먼저 휴지를 건넸다.
“아이 먼저 마주칠까 봐 그랬어.”
“이미 둘은 잘 만나잖아.”
윤슬은 젖은 휴지를 접었다.
맞은편 가게를 피한 것은 우주가 아니었다. 아이는 열린 문을 보면 손을 흔들었고, 빵을 자르는 이든을 보면 들어가도 되는지 물었다. 길을 바꾼 것은 늘 윤슬이었다.
“보면 물을 것 같아서.”
“물으면 답하면 돼.”
윤슬이 가방을 고쳐 멨다. 나영도 계산대 밖으로 나왔다. 약국 문 앞까지 함께 걸어 나온 뒤 골목 안쪽을 바라봤다.
미용실 간판 아래 빈 의자가 유리문 너머로 보였다. 그 맞은편에서는 철구가 점심 손님을 들이고 있었다.
“오늘 말해.”
윤슬은 약 봉투가 든 가방을 한 번 눌렀다.
“말할 거야.”
“언제?”
“우주 할머니 집에 가면.”
나영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끝나고 필요하면 전화하고.”
윤슬은 대답하고 미용실로 걸어갔다. 이번에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접시 하나 유리문 앞을 돌아가지 않았다.
카운터 뒤의 이든이 고개를 들었다.
윤슬은 멈추지 않고 맞은편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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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염색 손님이 있었다.
윤슬은 귀 주변에 보호제를 바르고 머리카락을 나누어 집게로 고정했다. 붓에 묻힌 염색약을 뿌리부터 얇게 펴 발랐다. 손님은 눈을 감고 있다가 윤슬이 집게를 옮길 때 한쪽 눈을 떴다.
“제가 움직이면 안 되죠?”
“조금은 괜찮아요. 뒤로 기대지만 않으시면 돼요.”
“자꾸 졸리네.”
윤슬은 의자 등받이의 각도를 조금 바꿨다.
“이렇게 계세요. 다 바르면 쉬셔도 돼요.”
정해 둔 시간이 지나고 머리를 감기는 동안 유리문이 열렸다. 우주가 탁 할머니 손을 잡고 들어왔다.
“엄마, 나 왔어.”
윤슬은 샴푸대 쪽에서 고개를 들었다.
“응. 조금만 기다려.”
우주는 자기 책상으로 가 가방을 내려놓았다. 탁 할머니는 아이가 의자에 앉는 것을 보고 윤슬 쪽으로 왔다.
“오늘도 데리고 올라가면 되지?”
“네. 저 오늘 좀 늦을 것 같아요.”
“그래, 그래. 밥 먹이고 있을게.”
윤슬은 손님의 머리에 묻은 거품을 헹궜다. 물기를 짜고 수건을 둘러 드린 뒤에야 할머니를 다시 보았다.
“많이 늦으면 먼저 재워 주세요.”
할머니가 꽃무늬 앞치마 주머니를 눌렀다.
“잠옷은 우리 집에 있잖아.”
“감사해요.”
“애 데리러 온 걸로 뭘.”
할머니는 더 묻지 않았다. 우주 자리로 가 공책이 젖지 않도록 물통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우주는 크레파스를 꺼내고 있었다.
“엄마, 나 할머니 집에서 자?”
“늦으면 그럴 수도 있어.”
“엄마는?”
“엄마도 끝나면 갈게.”
우주가 공책을 펴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끝이 어디야?”
윤슬은 손님의 의자를 거울 쪽으로 돌려 드렸다.
“할 일이 다 끝나는 데.”
“가게 문?”
“문도 닫고.”
우주는 자기 책상 끝을 손바닥으로 짚었다.
“나는 여기 끝.”
탁 할머니가 웃으며 아이 가방에서 물통을 꺼냈다.
“그럼 끝에서 그림 그리고 있어.”
윤슬은 수건을 바꾸고 머리를 말렸다. 따뜻한 바람에 염색약 냄새가 조금 옅어졌다. 거울 한쪽으로 우주가 파란 크레파스를 굴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가 책상 아래로 떨어진 크레파스를 주웠다. 허리를 펴다가 맞은편 가게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윤슬도 거울에서 시선을 옮겼다.
이든이 유리문 가까이 서 있었다. 우주 쪽으로 손을 들어 보인 뒤 윤슬을 보았다. 윤슬은 말리던 머리끝을 빗으로 받쳤다.
이번에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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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할머니와 우주가 돌아간 뒤 마지막 손님까지 나갔다.
윤슬은 문에 걸린 안내를 뒤집었다. 시계는 저녁 일곱 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불을 끄고 우주를 데리러 갈 시간이었다.
수건을 모아 세탁기에 넣었다. 샴푸대에 남은 물기를 닦고 바닥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쓰레받기를 비운 뒤 빈 우주 자리에 가서 크레파스 뚜껑을 닫았다.
파란색 하나가 책상 밑에 남아 있었다.
윤슬은 몸을 굽혀 주웠다. 끝이 닳아 종이 껍질 가까이까지 짧아져 있었다. 아이가 깎아 달라고 했던 것이 떠올라 작은 칼로 종이를 조금 벗겼다.
크레파스를 통에 넣고 뚜껑을 닫자 더 할 일이 없었다.
윤슬은 손을 씻었다.
수건으로 손가락 사이를 닦고도 수도 앞을 떠나지 않았다. 물이 잠긴 꼭지를 한 번 더 돌렸다.
맞은편에서 빵 자르는 소리가 났다.
열린 부엌 안의 이든이 도마 위에 빵을 놓고 왼손으로 칼을 움직였다. 잘린 빵은 철구가 접시에 옮겼다. 이든은 버터를 얹은 작은 그릇을 곁에 놓고 접시 가장자리를 닦았다.
윤슬은 유리문 가까이 갔다.
철구가 종이 한 장을 들고 문 앞으로 나왔다. 안쪽에서 종이를 대고 위아래를 붙인 뒤 손바닥으로 눌렀다.
『오늘은 아홉 시에 닫습니다』
윤슬은 그 글을 끝까지 읽었다.
철구가 미용실을 보고 허리를 조금 숙였다. 윤슬도 고개를 끄덕였다. 철구는 테이프를 손목에서 떼어 카운터 안으로 돌아갔다.
윤슬은 가위집에서 빗을 꺼냈다.
빗살에 낀 머리카락은 이미 뺐는데도 손끝으로 다시 훑었다. 가위 두 자루를 꺼내 마른 천 위에 놓고 허리의 가위집을 풀었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봤다가 천 옆에 내려놓았다.
말할 순서를 정하려고 의자에 앉았다.
우주 이름을 먼저 말하면 됐다. 그다음에는 물어오는 말에 답하면 됐다. 혼자 정해 둔 문장을 길게 이어 볼수록 첫마디가 자꾸 뒤로 밀렸다.
윤슬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내가 먼저.’
미용실 문을 열었을 때 맞은편에 마지막 손님이 남아 있었다. 윤슬은 문을 다시 닫았다. 손님이 나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이번에는 청소할 것을 찾지 않고 거울 앞에 서 있었다.
▷
아홉 시가 되자 접시 하나의 부엌 불이 꺼졌다.
카운터 위 작은 등만 남았다. 철구가 문 앞 안내를 떼고 안쪽을 향해 짧게 말했다. 이든은 고개를 끄덕인 뒤 젖은 손을 닦았다.
윤슬은 미용실 밖으로 나왔다. 셔터 손잡이를 잡고 반쯤 내렸다.
쇠가 내려오는 소리에 맞은편 문이 열렸다.
이든이 골목을 건너왔다.
윤슬은 허리를 굽힌 자세 그대로 멈췄다. 이든의 신발이 문턱 앞에 섰다. 윤슬이 손잡이를 놓자 셔터가 짧게 흔들렸다.
“할 말 있어.”
윤슬이 먼저 말했다.
이든은 대답하지 않고 기다렸다. 윤슬은 손에 쥔 빗을 가위집에 넣으려다 허리가 비어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빗이 손끝에서 미끄러졌다.
바닥에 닿는 소리가 났다. 윤슬은 줍지 못하고 이든을 보았다.
이든이 두 손을 남색 앞치마에 천천히 닦았다. 오른손을 내렸다가 왼손 손가락을 한 번 폈다. 토요일 무릎 위에서 접히던 손가락이었다.
윤슬은 그 손에서 시선을 올렸다.
이든이 입을 열었다.
“우주, 내 아이지?”
윤슬은 앞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말할 순서는 더 고를 필요가 없었다.
“응.”
이든의 손이 앞치마 아래로 내려갔다.
미용실 안에서 세탁기가 멈췄다. 마지막으로 물 빠지는 소리가 나고, 조용해졌다. 윤슬은 문턱 옆에 놓인 빗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이든의 얼굴을 보았다.
이든은 입술을 한 번 눌렀다. 골목 끝을 보지도, 윤슬에게서 물러서지도 않았다.
윤슬이 반쯤 내려온 셔터를 잡았다.
“안으로 들어와.”
이든이 몸을 숙여 문 안으로 들어갔다. 윤슬이 뒤따라 들어서자 이든은 다시 문 쪽으로 돌아왔다. 손잡이를 잡고 셔터를 끝까지 내려 주었다.
유리문에 비치던 골목 불빛이 가려졌다.
이든은 잠금장치에서 손을 떼고 윤슬을 보았다.
“얘기 좀 하자. 우주 어디 있어?”
“탁 할머니 집.”
“자?”
“아마. 늦으면 재워 달라고 했어.”
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
윤슬은 문 앞을 비켜 의자 쪽으로 걸었다. 한쪽 의자에는 마른 천과 가위가 놓여 있었다. 천째 들어 선반에 옮기고 의자를 돌렸다.
손바닥이 비어 있었다.
그때 이든이 문턱 옆에 몸을 굽혔다.
바닥에 떨어진 빗을 집어 들었다. 빗살에 붙은 작은 먼지를 손끝으로 털고 윤슬 앞에 내밀었다.
윤슬은 빗을 받았다.
이든은 맞은편 의자를 당겨 앉았다.
『엄마가 늦게 왔다. 탁 할머니 집에서 잤다. 할머니 코 고는 소리는 기차 소리다.』
(8화 끝)
우주는 사진이 없는 장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여기는 나중에 넣어?”“응. 또 찍으면.”“나 안 잘 때 찍어.”윤슬은 아이 손 밑에서 투명한 주머니를 펴 주었다. 우주는 빈 칸을 하나씩 짚다가 앨범을 덮었다. 아침을 먹으러 가면서도 의자는 식탁 끝에 그대로 두었다.윤슬은 의자를 안으로 밀려다 멈췄다. 두 사람이 앉아 쓰던 식탁에는 의자가 하나 더 있었다. 우주 가방을 놓거나 빨래를 잠깐 걸쳐 두던 자리였다.의자에 걸린 수건만 걷어 빨래 바구니에 넣었다.▷4월 25일 토요일 아침, 우주는 미용실 거울 앞에서 모자를 고쳐 썼다.파란 챙을 눈썹까지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윤슬이 가방에 물병을 넣는 동안에도 고개를 옆으로 돌려 보았다.“엄마, 나 안 보여?”“다 보여.”“눈은?”“챙 때문에 조금.”우주는 모자를 뒤로 돌려 썼다. 거울 속에서 눈이 다 보이자 입을 벌리고 웃었다.윤슬은 예약 장부를 다시 확인했다. 오전 예약 두 칸 사이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마지막 손님의 파마가 끝나는 시간을 손목시계로 세어 본 뒤 장부를 덮었다.“엄마는 조금 늦게 가. 아저씨랑 먼저 가 있어.”“얼마나?”“점심 먹기 전에는 갈 거야.”“그럼 빵 남길게.”“네 것은 다 먹어.”“엄마는?”“엄마 것도 있어.”말을 마치자 유리문 밖으로 이든이 보였다. 앞치마 대신 얇
우주는 유리문을 놓고도 한 번 더 뒤를 돌아봤다. 이든이 다시 칼을 든 것을 보고서야 윤슬 옆으로 붙었다.“엄마, 아저씨는 맨날 저기서 자?”“가게 뒤에 방이 있어.”“빵 옆에서?”“빵은 부엌에 있고.”우주는 가방 끈을 끌어 올렸다. 윤슬은 아이 어깨에서 뒤집힌 끈을 펴 주고 빌라 쪽으로 걸었다. 우주는 모과나무를 지날 때까지 식당 창을 두 번 더 봤다.▷4월 18일 토요일, 윤슬은 마지막 손님의 목에 붙은 머리카락을 털었다.거울 아래에는 우주가 그린 종이가 놓여 있었다. 파란 지붕 밑에 네모난 창이 세 개였다. 실제 집에는 없는 큰 창도 하나 그려져 있었다.“이건 어디야?”손님이 나간 뒤 윤슬이 물었다.“우리 집.”“창이 이렇게 많아?”“내 방에 하나 더.”“왜?”“아저씨네 보게.”윤슬은 빗에 낀 머리카락을 빼다가 손을 멈췄다. 빌라에서는 맞은편 식당이 보이지 않았다. 우주는 그걸 모르지 않으면서 창을 하나 더 그렸다.“집에서는 잘 자면 돼.”“나 잘 자.”“아침에는 누가 깨워도 눈 안 뜨잖아.”“눈도 자는 거야.”윤슬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우주는 대답을 잘했다고 여겼는지 종이 아래에 자기 이름을 크게 썼다.미용실 바닥을 쓸고 수건을 세탁 바구니에 담았을 때, 맞은편에서 철구가 손을 흔들었다. 우주가 문 앞으로 달려갔다가 윤슬을 돌아봤다.
윤슬은 대답 대신 빵이 든 통을 우주 쪽으로 밀었다. 우주는 수프를 한 숟가락 떠서 불고, 윤슬 앞에도 빵 한 조각을 놓았다.“엄마도 먹어.”“먹고 있어.”“더.”윤슬은 아이가 놓아 준 빵을 집었다. 예약 장부 옆 영수증이 열린 문에서 들어오는 바람에 뒤집혔다. 윤슬은 빈 통으로 한쪽 끝을 눌러 두었다.▷토요일 예약 장부에는 빈 줄이 거의 없었다.윤슬은 손님 머리에 파마 약을 바르고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샴푸대에는 씻어야 할 수건이 쌓여 있었고, 다음 손님은 창가 의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4월 11일. 장부 위에 적힌 날짜 옆으로 하원 시간이 작게 쓰여 있었다.탁 할머니는 아침에 허리가 뻐근하다며 오늘은 계단을 덜 오르겠다고 했다. 윤슬은 우주를 데려다주고 돌아올 시간을 비워 두었지만, 앞 손님의 염색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많이 남았어요?”거울 속 손님이 물었다.“조금만 더요. 안쪽부터 확인할게요.”윤슬은 머리카락 한 가닥을 풀어 보았다. 시간을 줄이려고 서두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다시 말아 고정하고 손을 씻었다.맞은편 유리문 너머로 철구가 빈 접시를 들고 움직였다. 이든은 카운터 끝에 놓인 주문서를 보고 있었다.윤슬은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아직 번호를 묻지 않았다.기다리는 손님에게 잠깐 양해를 구하고 문을 열었다. 골목으로 나오자 이든이 고개를 들었다. 윤슬은 건너지 않고 손으로 오라고 했다.이든은 철구에게 짧게 말을 건넨 뒤 가게 밖으로 나왔다.“무슨 일 있어?”윤슬은 앞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오늘 하원만.”이든이 미용실 안을 한 번 보았다. 창가 손님이 잡지를 넘겼고, 파마 기계의 짧은 소리가 문밖까지 들렸다.“할게.”“4시 반. 모과 어린이집.”“알아. 길은 우주가 알려 줬어.”“선생님한테는 내가 전화할게. 네가 간다고.”이든이 고개를 끄덕였다.윤슬은 가위집에서 빠져나온 빗을 안으로 밀었다. 부탁은 끝났는데 손이 다른 일을 찾았다.“바쁘면 말해. 내가 손님한테 양해 구하고 가면 돼
윤슬은 받은 빗을 선반 위에 놓았다. 빗살이 아래로 가게 놓았다가 다시 뒤집었다.맞은편 의자에 앉은 이든은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다. 평소 손님을 앉히던 자리였다. 윤슬은 의자 높이를 낮추는 발판을 밟으려다 발을 거뒀다.“불편하면 뒤로 조금 밀어.”“괜찮아.”이든의 무릎과 윤슬의 무릎 사이에 바닥 타일의 줄이 놓여 있었다. 윤슬은 그 줄을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뭐부터 듣고 싶어?”이든이 입을 열기까지 조금 걸렸다.“언제 알았어.”“네가 떠나고, 다음 달.”윤슬은 귀 뒤로 넘긴 앞머리를 다시 눌렀다.“1월 둘째 주였어. 8주라고 하더라.”이든의 손가락이 무릎 위에서 움직였다. 날짜를 세지는 않았다. 바지에 생긴 주름을 펴다가 손을 멈췄다.“혼자 갔어?”“응.”“그때도 혼자 살았잖아.”“살고 있었지.”윤슬은 의자 끝에 놓인 수건을 집었다. 손님 목에 둘렀다가 세탁하려고 빼 두었다. 접힌 자리가 어긋나 있어 모서리를 맞췄다.“전화할까 했어. 병원 나와서.”이든이 윤슬을 보았다.“안 했어.”“왜.”“말하면 돌아올 거잖아.”윤슬은 수건을 무릎에 내려놓았다.“연수고 뭐고, 다 두고 올 사람이었으니까.”이든은 대답하지 않았다. 의자 팔걸이를 잡았던 손이 천천히 풀렸다.“안 왔을 거라고는 못 하겠어.”“알아.”“그래도 알았어야 했어.”윤슬은 수건 모서리에서 손을 뗐다.“응. 그건 알아.”더 보탤 말은 없었다.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놓고 소식을 전하면, 이든은 돌아올 테니까. 그걸 알고도 말하지 않은 것은 윤슬이었다.“우리 붙잡지 않기로 했잖아. 연락도 하지 않기로.”“했지.”“3년 뒤 겨울에 둘 다 혼자면 다시 보기로 했고.”이든의 시선이 선반 위 빗에 잠깐 머물렀다.“그때 말하려고 했어. 네가 돌아오면.”윤슬은 무릎 위 수건을 한 번 더 접었다. 더 작게 접을 필요는 없었는데 손이 멈추지 않았다.“그때는 우주도 같이 데리고 나갈 수 있겠다 싶었어.”“골목에 왔어?”“세 번.”짧게 답하자
우주가 골목 끝에서 한 번 더 손을 당겼다.“엄마, 여기 밝은 데.”빌라 입구의 등이 켜져 있었다. 아이는 불빛 아래로 먼저 발을 넣고 새로 짧아진 머리를 만졌다. 윤슬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올랐다.현관에서 신발을 벗은 우주가 양손을 폈다.“아저씨는 뭘 기다려?”윤슬은 아이 점퍼의 지퍼를 내려 주었다.“언제?”“아까. 가게 앞에서.”점퍼 안쪽에 머리카락 하나가 남아 있었다. 윤슬은 손톱으로 집어 떼고 옷을 걸었다.“가게 문 닫고 있었겠지.”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지 않고 욕실로 들어가 발판을 당겼다. 물 흐르는 소리가 난 뒤에도 윤슬은 현관에 서 있었다.가방 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선우가 보내 준 사진이 화면에 남아 있었다. 머리가 똑같아진 두 아이가 나란히 웃고 있었다.윤슬은 화면을 끄고 신발을 가지런히 놓았다.▷4월 8일 수요일 아침, 우주는 빌라 계단을 내려오며 가방 끈을 고쳐 멨다.“엄마, 이쪽.”아이가 모과나무 쪽으로 발을 돌렸다. 윤슬은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골목 바깥쪽을 가리켰다.“오늘은 저쪽으로 가자.”“또?”우주가 멈춰 섰다.그 길로 가면 어린이집에 가기 전에 접시 하나 앞을 지나게 됐다. 유리문 안에서 빵을 자르는 손이나 카운터를 닦는 이든의 등을 볼 수 있었다. 윤슬은 요 며칠 골목 어귀를 돌아서 다녔다.“여기도 길 있잖아.”“아저씨 집 앞에도 있어.”“알아.”“엄마는 왜 저 집 앞만 돌아가?”윤슬은 아이 가방에서 한쪽으로 기운 물통을 바로 넣었다. 뚜껑이 잘 잠겼는지 확인하고 지퍼를 끝까지 올렸다.“엄마가 생각할 게 있어서.”우주가 윤슬의 얼굴을 올려다봤다.“걸으면서?”“응.”“그럼 천천히 가.”아이는 먼저 달려가지 않았다. 윤슬 옆에 붙어 작은 걸음으로 걸었다. 파란 운동화 앞코가 바닥의 금을 넘을 때마다 가방에 달린 고리가 흔들렸다.윤슬은 아이 손을 조금 느슨하게 잡았다.“우주는 빨리 가도 돼.”“손 잡았잖아.”우주가 잡힌 손을 들어 보였다. 윤슬은
윤슬은 공책을 덮어 가방 옆에 놓았다. 예약 장부에는 다음 토요일 오후가 한 칸 비어 있었다. 우주 머리를 깎으려고 남겨 둔 자리였다.방 안에서 이불 끌어당기는 소리가 났다. 윤슬은 장부를 닫고 아이 곁으로 갔다. 베개 아래에 눌린 머리카락을 빼 주자 우주가 잠결에 고개를 돌렸다. 귀를 덮은 머리끝이 손등을 간질였다.▷4월 4일 토요일, 우주는 미용실 의자 앞에서 두 발을 붙이고 섰다.“다음에.”윤슬은 아이 목에 두를 작은 수건을 펴 들었다.“오늘 하기로 했잖아.”“내일.”“내일도 머리는 깎아야지.”우주는 귀를 양손으로 덮었다. 머리카락까지 눌려 손가락 사이로 삐져나왔다.윤슬은 허리를 굽혀 눈높이를 맞췄다.“귀 안 자르는 거 알지?”“아는데.”“그럼 앉자.”“싫은 건 알아도 싫어.”윤슬은 펴 놓은 수건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예약한 손님이 늦는다는 연락을 해 와서 잠깐 틈이 났다. 그사이에 끝낼 생각이었지만 우주는 의자 가까이에도 가지 않았다.“머리가 눈 찌르잖아.”“눈 감으면 돼.”우주가 눈을 꼭 감았다. 그러고는 한쪽만 살짝 뜨고 윤슬의 손을 살폈다.가위는 아직 허리 가위집에 있었다.“엄마, 조금만 잘라.”“응. 조금만.”“조금보다 더 조금.”“먼저 앉아 봐.”윤슬은 아이를 안아 의자 위에 놓았다. 높이를 맞추려고 받침을 올리고 덮개를 펼치자 우주의 턱이 벌써 가슴 쪽으로 내려갔다.지난번에도 이 자리에서 울었다. 목에 머리카락이 붙는다고 울고, 털어 주려고 덮개를 풀면 아직 안 끝났느냐고 울었다. 윤슬은 오늘 쓸 수건을 두 장 준비해 두었다.“목에 안 들어가게 할게.”우주는 수건을 두른 목을 만졌다.“여기 다 막아.”“막았어.”“뒤도.”윤슬은 목덜미 쪽을 한 번 더 접었다. 우주가 고개를 움직일 수 있을 만큼만 덮개를 여미고 빗을 꺼냈다.빗살이 앞머리를 지나기도 전에 아이의 어깨가 올라갔다.“아직 안 잘랐어.”“지금 자르잖아.”“빗는 거야.”우주의 입이 벌어졌다. 윤슬은 가위를 꺼내려던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