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미친 권신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Kapitel 21 – Kapitel 30

30 Kapitel

제21화

김민희는 여씨의 눈에 띄기 전에 슬그머니 발길을 돌려 다른 길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하필 그 길에서 종선과 낯선 젊은 공자 두 명을 마주치고 말았다.비에 흠뻑 젖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못 본 척 돌아서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김민희는 하는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가 공손히 예를 올렸다.“숙부님.”흠뻑 젖은 그녀의 모습을 본 종선이 미간을 찌푸렸다.그가 막 입을 열려는 순간, 김민희는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그의 곁을 지나쳐 갔다.영국공부의 세자 임한은 김민희를 보자마자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그녀가 한참 멀어진 뒤에도 좀처럼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저 여인은 누구지? 지난번에 왔을 때는 보지 못한 얼굴인데.”임한이 물었다.순간 주위에 묘한 정적이 흘렀다.뒤늦게 고개를 돌린 임한은 종선의 싸늘한 눈빛과 마주쳤다. 머리끝이 쭈뼛 서는 듯한 기분에 그는 황급히 표정을 가다듬었다.그저 누구냐고 한마디 물었을 뿐인데, 저리 무섭게 노려볼 일인가.종선은 아무 말 없이 앞장서 걸음을 옮겼다.곁에 있던 푸른 옷의 공자가 나직이 말했다.“자네는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가? 딱 봐도 이 집안 여인인데, 둘째 나리 앞에서 남의 집 아씨를 그리 음흉한 눈으로 쳐다보았으니 좋아하실 리가 있나.”임한은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투덜거렸다.“내가 무슨 둘째 나리의 부인을 쳐다본 것도 아닌데, 목숨까지 들먹일 일인가…….”“그만 투덜거리고 어서 따라오게. 괜히 중요한 일이나 그르치지 말고.”*상서원.“노부인께서도 너무하세요. 아씨께서 애써 약선을 올리러 가셨는데, 옷이라도 갈아입고 몸을 좀 녹였다 가라는 말씀 한마디 없으시다니요. 이러다 병이라도 나시면 어쩌려고 그러시는지 모르겠어요.”월계는 속이 상해 견딜 수가 없었다. 노부인에 대한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정작 김민희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녀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채 물었다.“부탁한 일은 잘 처리했니?”월계가 고개를 끄덕였다.“백향루 주인을 만나고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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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이튿날, 김민희는 월계를 데리고 집을 나서 백향루로 향했다.한 달쯤 전, 김민희는 백향루의 주인 범정을 직접 찾아가 장사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백향루는 도성에서 이름난 주루도 아니었고, 자리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쟁쟁한 가게들 사이에 끼어 있으니 장사가 신통치 않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책 속 세상으로 들어오기 전, 김민희는 호텔에서 관리직으로 일했다. 덕분에 주방 사정에도 어느 정도 밝았다. 전문가라고 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이 시대에서는 그 정도 지식만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다.예전에 민철을 데리고 피란을 다니던 시절, 김민희는 한 어촌에 몸을 숨기고 지낸 적이 있었다. 그곳에는 해산물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지만, 마을 사람들끼리 잡아먹을 뿐 바깥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사람이 살아가는 데 먹는 일만큼 중요한 것도 없었다. 그곳에서 장사할 기회를 발견한 김민희는 줄곧 그 일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그러다 사씨 가문에 자리를 잡은 뒤, 사회옥의 이름을 빌려 촌장과 거래를 맺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본격적으로 장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사씨 가문에 변고가 생겼다. 그 후 김민희는 사회옥과 함께 도성으로 올라오게 되었다.벼슬살이에 바빠진 사회옥은 그 일에 더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괜히 바깥일에 나서지 말고 종씨 가문 안채에서 얌전히 지내라고 타일렀다. 자신이 그녀를 책임질 테니 아무 걱정도 하지 말라면서.하지만 김민희가 그 말을 순순히 따를 리 없었다.그녀는 거문고와 바둑, 서예와 그림 중 어느 하나 제대로 익힌 것이 없었다. 그러니 도성의 명문가 규수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훗날 사회옥이 약속을 지켜 그녀를 정실부인으로 맞아 준다 해도, 세월이 흐르면 결국 이 얼굴에도 싫증을 느낄 터였다.그때 가서 소박이라도 맞는다면 어쩌겠는가? 돌아갈 친정조차 없는 몸으로 어린 동생을 데리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김민희는 누구에게도 의지할 생각이 없었다. 그녀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었다.그런 먼 훗날의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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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김민희는 그와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제가 따로 볼일이 있어 이만 실례하겠습니다.”임한은 더는 붙잡지 않았다. 눈치껏 몸을 비켜 한 걸음 물러섰을 뿐이었다.김민희는 월계를 데리고 이층으로 올라갔다.임한은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며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넋을 빼앗긴 듯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그가 곁에 있던 시종에게 물었다.“저 낭자, 꼭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같지 않으냐?”시종은 할 말을 잃었다.한참 만에 시선을 거둔 임한의 얼굴에는 어느새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오만한 기색이 돌아와 있었다. 그는 시종에게 손짓했다.“가자. 아직 급히 처리할 일이 남았다. 야행복은 준비해 두었느냐?”“예, 나리. 진작 준비해 두었습니다.”“가자.”이층으로 올라온 월계가 말했다.“그 세자 나리, 아무래도 아씨께 마음이 있으신가 봐요.”김민희는 미간을 찌푸렸다.“신경 쓰지 마.”*김민희는 백향루에 반 시진가량 머물며 앞으로의 일을 대략 정해 두었다. 이날부터 해산물 요리도 하나둘 손님상에 오를 예정이었다.사람들이 낯선 음식에 익숙해지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법이었다. 하지만 김민희에게는 자신이 있었다.범정은 김민희를 직접 배웅하러 나왔다. 헤어지기 직전, 범정은 김민희의 손을 꼭 붙잡더니 눈시울을 붉혔다.“김 아씨, 이렇게 도와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아씨가 아니었으면 어찌해야 할지 막막했을 거예요.”범정은 지방 출신으로 사투리가 심했고, 말투와 행동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호탕하고 걸걸한 기질이 묻어났다.이 주루는 원래 범정의 시댁에서 대대로 운영해 온 가업이었다. 그동안은 남편이 경영을 도맡았고, 범정은 집에서 남편을 내조하며 아이를 돌보는 데 전념했다.그런데 일 년 전, 남편이 뜻밖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와 어린아이, 그리고 커다란 주루만 남게 되었다.범정에게는 주루를 경영할 만한 재주가 없었다. 그래도 남편이 평생 일군 가업만큼은 지키고 싶어 믿을 만한 집사에게 운영을 모두 맡겼다.하지만 반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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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종선은 검은 옷을 입은 사내를 힘껏 걷어찼다. 사내는 저만치 나가떨어지더니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그 광경을 본 다른 자객이 눈에 살기를 번뜩이며 곧장 두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그런데 바로 그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검은 옷의 사내 하나가 불쑥 뛰어들더니, 달려들던 자객을 발로 걷어찬 것이다.자신을 공격한 자가 같은 검은 옷차림이라는 사실에 자객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지만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동료들을 향해 외쳤다.“우리 중에 첩자가 있다!”그러고는 곧장 칼을 치켜들고 상대에게 달려들었다.하지만 미처 다가가기도 전에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 한 발이 그의 심장을 꿰뚫었다. 자객은 원통함이 가득한 눈을 부릅뜬 채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임한은 칼자루를 고쳐 쥐고 다가가 이미 쓰러진 자객을 한 번 더 찔러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했다.그는 달려드는 다른 자객들까지 가볍게 물리치면서도 틈틈이 김민희 쪽을 힐끗거렸다.하지만 김민희는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종선은 김민희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말했다.“나를 꽉 붙잡으시오. 무서우면 눈을 감고.”지금 이 순간만큼은 김민희도 남녀유별 따위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그녀는 두 팔로 종선의 목을 꼭 끌어안고 눈을 질끈 감은 채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두려움에 사로잡힌 김민희는 더욱 필사적으로 그에게 매달렸다. 혹여 그가 자신을 짐짝처럼 여기고 자객들의 칼을 막는 방패로 내던질까 봐 겁이 났다.자객들의 목표는 종선이었다.종선은 김민희를 품에 감싸 안은 채 침착하게 자객들을 상대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서너 명을 베어 넘겼고, 누구도 감히 그의 곁에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다. 어느새 바닥에는 쓰러진 자객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나머지 자객들도 서둘러 달아났다.임한이 달아나는 자객들을 뒤쫓으려 하자, 종선이 싸늘하게 말했다.“쫓을 것 없다.”그제야 임한은 걸음을 멈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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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목숨을 버릴 각오로 보내진 자객이었던 것이다.김민희는 황급히 휘장을 내렸다. 놀란 가슴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대낮에 황성 한복판에서 감히 조정의 고위 대신을 노릴 만한 자는 위 재상밖에 없을 터였다.“아씨, 그런데 영국공부의 세자 나리는 어째서 자객들 사이에 섞여 있었던 걸까요?”김민희는 월계의 손을 지그시 누르며 마차 밖을 한 번 살폈다. 그러고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그제야 월계는 밖에서 상 집사가 마차를 몰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얼른 입을 다물었다.김민희는 약재 꾸러미를 꼭 쥔 채 눈을 감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임한이 어째서 자객들 틈에 섞여 있었는지, 종선과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조금도 알고 싶지 않았다. 아는 것이 많을수록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법이었다.게다가 그녀는 조정의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저 제 앞가림이나 하며 조용히 살아가고 싶을 뿐이었다.*저녁 무렵, 종선이 자객의 습격을 받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종씨 가문 사람들도 모두 그 소식을 알게 되었다.바깥에서 소문을 듣고 온 월계가 허둥지둥 달려와 김민희에게 전했다.“아씨, 큰일 났어요! 송학원 하인들 말로는 둘째 나리께서 크게 다치셔서 어의까지 다녀갔대요!”송학원은 동원에 자리한 종선의 처소였다.김민희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그런데 그때 둘째 나리께서는 다친 곳이 없으셨잖아요? 어쩌다 갑자기…….”월계는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김민희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 역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어딘가 석연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김민희는 이 일을 동생에게도 숨겼다. 하지만 김민철은 누나와 월계가 외출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별일은 없었는지 걱정되어 찾아왔다.김민철은 아직도 놀란 기색이 가시지 않은 월계를 힐끗 바라보더니 나직이 말했다.“누나만 무사하면 됐어.”그러고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덧붙였다.“누가 누나를 해치려 하면, 내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김민희는 기특한 마음에 동생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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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편지만 온 것은 아니었다. 사회옥이 복숭아나무를 손수 깎아 만든 십이지 동물 조각도 함께 들어 있었다.나무를 깎아 작은 조각품을 만드는 것은 사회옥의 소소한 취미였다. 손재주가 좋은 그는 틈틈이 깎아 만든 조각들을 김민희에게 선물하곤 했다.지난해 김민희가 십이지 동물을 모두 모으고 싶다고 하자, 사회옥은 흔쾌히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그 뒤로 시간이 날 때마다 하나씩 깎아 보내 준 덕분에 어느새 제법 많이 모였다.이번에 보내온 것은 양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토끼 하나뿐이었다.김민희가 토끼띠인 것을 알고, 사회옥은 토끼 조각만큼은 맨 마지막에 선물하려고 아껴 두었던 것이다.김민희는 나무 조각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나서야 편지를 펼쳤다.편지를 읽어 내려갈수록 잔뜩 찌푸려져 있던 미간이 서서히 펴졌고, 입가에도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편지에는 김민희가 그토록 기다리던 반가운 소식이 담겨 있었다.편지에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렸으니, 늦어도 대엿새 안에는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적혀 있었다. 김민희가 종씨 가문에 더는 머물고 싶지 않다면, 도성을 떠나고 싶다 해도 괜찮다고 했다.황제가 자신을 청주 지현으로 임명했으니, 도성으로 돌아가 그간의 일을 보고한 뒤 남매를 데리고 청주로 내려가 자리를 잡으면 된다는 것이었다.청주는 도성만큼 번화하지는 않지만 산수가 아름답고 인재가 많이 나는 고장이라고 했다. 사회옥은 그저 김민희에게 자신과 함께 갈 마음이 있는지만 물었다.김민희로서는 두말할 것도 없이 가고 싶었다.그렇지 않아도 권력 다툼이 끊이지 않는 도성에 계속 머물 생각은 없었다. 가능하다면 이곳에서 최대한 멀리 떠나고 싶었다.전에는 사회옥이 종씨 가문을 떠나는 데 동의하더라도 도성에 남아 벼슬살이를 이어 가려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종씨 가문과의 인연을 완전히 끊어 내기는 어려웠다. 훗날 종씨 가문에 큰 화가 닥쳤을 때 그 불똥이 자신들에게까지 튀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었다.이제 됐다. 청주로만 떠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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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방으로 돌아온 김민철은 곧장 문을 닫았다.누나가 기워 준 옷을 품에 안고 안쪽 방으로 들어서던 그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싸늘하게 말했다.“따라오지 말라고 했잖아. 난 당신들이랑 안 가!”대들보 위 어둑한 구석에서 검은 그림자가 희미하게 어른거렸다.김민철은 그곳을 매섭게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사람을 잘못 봤어. 난 당신들이 찾는 사람이 아니야. 내 성은 김씨지, 탕씨가 아니라고!”상대가 꿈쩍도 하지 않자, 김민철은 베개 밑에서 가위를 꺼내 망설임 없이 제 손목에 들이댔다.그의 왼쪽 손목에는 가장자리가 희미한 검은 반점이 뚜렷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 모양이 꼭 달을 닮아 있었다.아직 앳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섬뜩할 만큼 단호한 결기가 서려 있었다.“당신들이 알아보는 건 이 반점뿐이잖아? 당장 떠나지 않으면 이 부분의 살을 도려내 버릴 거야!”어둠 속에 숨어 있던 자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어린아이가 설마 제 몸에 상처를 낼 리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김민철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대로 날카로운 가윗날을 움직여 제 손목의 살갗을 그었다.“안 됩니다! 가겠습니다! 가면 될 것 아닙니까! 제발…… 진정하십시오. 부디 몸을 상하게 하지 마십시오.”낮고 쉰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려 퍼졌다.그제야 김민철은 손을 멈췄다. 눈시울이 붉어진 그는 낮지만 매서운 목소리로 외쳤다.“그럼 당장 꺼져!”사르륵.희미한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자들이 일제히 자취를 감추었다.김민철은 온몸에 힘이 풀려 침상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소매로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훔쳤다.그는 가윗날에 묻은 피를 조심스럽게 닦아 낸 뒤, 가위를 다시 베개 깊숙이 밀어 넣고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손목에 가늘게 난 상처를 내려다보던 김민철은 미간을 찌푸리며 소매를 끌어내려 상처를 가렸다.낯선 자들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을 누나가 알아서는 안 됐다.절대로…….김민철은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었다.그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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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하기야 종선은 마침 휴가를 받아 집에서 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니 노부인의 처소에서 그를 마주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종선은 팔걸이가 달린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은백색 평상복을 입은 모습이 옥처럼 희고 고운 얼굴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편안한 차림 때문인지 평소의 냉랭한 기운도 한결 누그러져 보였다.김민희는 그에게 공손히 예를 올리면서도 슬쩍 눈을 들어 재빨리 그를 살폈다.종선은 두 다리를 시원스레 벌리고 앉아 있었고, 안색도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 혈색이 좋고 기운도 넘쳐 보이는 것이, 아무리 봐도 크게 다친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다.역시 꾀병이었구나.그런데 어의의 눈은 대체 어떻게 속인 걸까?아니면 황제도 사정을 다 알면서 모른 척 장단을 맞춰 주는 걸까?“민희가 왔구나. 이리 와서 앉거라.”노부인의 안색은 정말 좋지 않았다. 병색이 짙은 얼굴로 평상에 몸을 기대고 있었고, 이마에는 옥 장식이 달린 짙은 쪽빛 이마띠를 두르고 있었다.김민희는 잡생각을 떨쳐 내고 다소곳이 눈을 내리깐 채 약선을 들고 다가갔다.방 안은 창문을 꼭꼭 닫아 놓은 탓에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김민희는 숟가락으로 약선을 조금씩 떠서 노부인의 입에 넣어 드렸다.약선을 다 드시자 몸속으로 따뜻한 기운이 퍼져 나가는 듯했다. 노부인은 한결 편안해진 기색이었고, 창백했던 얼굴에도 제법 혈색이 돌았다.“이제야 좀 살 것 같구나. 역시 네가 지어 주는 약선이 가장 잘 듣는구나. 고생 많았다.”노부인은 김민희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자애롭게 말했다.김민희는 생긋 웃으며 살갑게 대답했다.“노부인께서 편안해지실 수만 있다면 이 정도 수고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노부인이 김민희를 바라보는 눈빛이 한층 더 다정해졌다.“참으로 착한 아이로구나. 우리 집안에서도 너를 서운하게 대하는 일은 없을 게다.”서운하게 대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곧 떠날 몸이었으니까.그렇게 생각하던 김민희는 이어지는 노부인의 말에 안색이 확 변했다.“듣자 하니 회옥이가 예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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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김민희가 끝내 떠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자, 노부인은 그제야 그녀가 일부러 튕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자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사실 노부인이 김민희를 붙잡으려는 데에는 나름의 속셈이 있었다.첫째는 김민희가 지어 주는 약선에 상당히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민희는 종씨 가문에 들어온 뒤로 하루도 빠짐없이 노부인의 몸을 살뜰히 보살펴 왔다. 똑같은 처방이라도 다른 사람이 만들면 어딘지 모르게 효과가 덜했다.둘째는 김민희를 떠나보내기가 아쉬웠기 때문이다.김민희는 노부인의 막내딸 종영과 동갑이었다. 종영이 시집간 뒤로는 친정에 자주 들르지 못해 집 안이 적적하던 참이었다. 김민희가 곁에 있어 준다면 그 허전함도 조금은 달랠 수 있을 듯했다.노부인은 자신이 붙잡기만 하면 김민희도 기뻐하며 남겠다고 할 줄 알았다.그런데 눈앞의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마다하고, 기어이 정혼자를 따라 외진 시골까지 가서 고생하겠다니.어리석다고 해야 할지, 정이 지나치게 깊다고 해야 할지 모를 노릇이었다.노부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내 눈에는 도성만큼 살기 좋은 곳도 없어 보이는데, 너는 어찌 그리 밖으로만 나가려 하는지 모르겠구나. 되었다. 그리도 가고 싶다면 가거라.”“감사합니다, 노부인!”김민희는 그제야 크게 한시름 놓았다. 이번만큼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웃음이 절로 피어났다.“청주가 도성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앞으로도 자주 찾아뵙겠습니다.”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노부인은 손을 내저었다.“오늘 고생 많았다. 이제 별일 없으니 그만 돌아가 보거라.”김민희는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럼 노부인, 편히 쉬시고 몸조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노부인은 더는 대꾸하지 않았다.*김민희가 물러간 뒤에도 종선은 노부인의 방에 남아 있었다.어쩐 일인지 그에게서 풍기는 기운은 아까보다 한층 더 싸늘해져 있었다. 얼굴에도 짙은 그늘이 드리웠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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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노부인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사람을 잘못 보았단 말이냐!”그제야 노부인과 춘도는 동시에 모든 사정을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다.노부인은 속으로 생각했다.어쩐지 심씨 가문과의 혼담이 깨졌다는 말을 듣고도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더라니.애초에 아들이 마음에 품은 여인은 심명주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심씨 가문과의 혼사가 성사되든 말든 아무 상관이 없었던 것이리라.조금 전 그토록 언짢은 얼굴로 앉아 있던 것도 모두 김민희 때문이었다.한편 춘도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그럼 김 아씨가 일부러 둘째 나리를 유혹한 게 아니었구나. 둘째 나리께서 사람을 착각하셨다가 김 아씨의 미모에 홀딱 반하신 거였어!노부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럼 진짜 심명주는 만나 보았느냐?”종선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예, 만나 보았습니다.”짧은 대답이었지만, 심명주에게는 털끝만큼도 마음이 없다는 뜻이 분명히 담겨 있었다.노부인이 넌지시 말했다.“하지만 그 아이는 결국 청주로 떠날 게다. 너도 방금 보지 않았느냐. 기어이 떠나겠다는 뜻이 얼마나 확고하더냐.”종선은 돌려 말하지 않고 곧장 청했다.“어머니께서 그 아이를 붙잡아 주십시오.”워낙 뛰어난 아들이라 지금껏 어미에게 무언가를 부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종선이 물러간 뒤, 노부인은 탁자 위에 반 넘게 남아 있는 약선을 바라보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러고는 최 어멈을 돌아보며 일렀다.“가서 큰며느리를 불러오너라.”*상서원으로 돌아온 김민희와 월계는 곧바로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아씨, 벌써부터 짐을 싸는 건 좀 이르지 않을까요?”물건을 정리하던 월계가 의아한 듯 물었다.김민희는 방 안을 둘러보며 나직이 대답했다.“여기서 오래 지내다 보니 자잘한 물건이 꽤 쌓였잖아. 우리 물건만 있는 것도 아니고, 민철이 책도 있고. 오라버니가 돌아온 뒤에야 짐을 싸기 시작하면 떠나는 날만 늦어질 거야.”월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것도 그렇네요. 시간 있을 때 미리 조금씩 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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